와카코와 술 1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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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1



혼자 있을 적부터 잘 먹고 잘 놀아야

― 와카코와 술 1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4.12.20. 8000원



  만화책 《와카코와 술》(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5) 첫째 권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을 좋게 생각하는 이하고 안 좋게 생각하는 이가 크게 갈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고작 대여섯 해쯤만 앞서도 한국에서 이런 만화책이 나오기 어려웠을 테고, 열 해쯤 앞서라면 더더욱 어려웠을 테며, 스무 해쯤 앞서라면 엄두조차 못 냈으리라 싶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이 만화책에는 ‘혼자 살면서 혼자 술을 즐기는 아가씨’가 나오거든요. 사내가 혼자 술을 마시는 이야기는 흔해도 가시내가 혼자 술을 마시는 이야기는 아직 안 흔하거나 수수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이기도 해요.



산책으로 상쾌하게 땀을 흘렸다. 누가 알쏘냐. 산책을 위해 입은 옷에 숨겨진 원대한 계획을. 모든 것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서 한잔 걸치기 위해. (11쪽)


어떠냐. 혼자서 음식을 독차지한 당당한 모습. 이게 다 내 거라고. (13쪽)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가시내가 혼자 살면서 혼자 맛집이나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혼밥이나 혼술을 즐긴 지는 그리 오랜 일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엇비슷하리라 느껴요. 혼자 지구별을 돌아다니는 사내는 꽤 있었어도, 혼자 지구별을 두루 누비는 가시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도 했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 갑갑하고, 아직 닫혔으며, 아직 까마득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를 깨려는 몸짓이 있고, 이 사회로는 도무지 안 된다고 느끼는 숨결이 있으며, 이 사회를 앞으로 아름답게 바꾸려는 넋이 있어요.



오늘 밤은 나랑 데이트할 예정. (22쪽)


봄 야채는 보통 풋내가 나고, 쓰다고들 하는데, 그런 봄의 맛에 차가운 미즈와리가 몸을 파고들어 풋내가 맛있게 느껴지더라고. 어른의 봄. (57∼58쪽)



  혼자 일하고 혼자 살면서 혼자 차리는 밥상을 푸짐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밥상을 혼자 차려서 먹기도 수월하지 않을 수 있으나, 혼자 밥을 먹으려고 바깥에서 밥집을 찾기에도 수월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여럿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떠들거나 온갖 밥을 차리는 자리도 즐겁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혼자 조용히 밥상맡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서 천천히 수저를 들 적에도 즐거워요.


  저는 예전에 혼자 살 적에 바깥일을 마치고 책방에 들러 혼자 여러 시간 책을 누리고는, 혼자 술집에 들러 안주 하나를 시키고 맥주 두어 잔을 마시면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2000년대 첫무렵이었는데,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겠지요.



다 같이 먹을 때는 창피해서 뼈에 붙은 살을 들고 뜯을 수 없었다. 이 뾰족뾰족한 곳을 발라내서 먹는 것까지 참았었으니까.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피라냐가 물어뜯듯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질 걱정 없이, 이렇게 느긋하게 마시며 즐길 수 있다니, 행복해. (106∼107쪽)



  혼자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차려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냥 냄비 하나로 밥을 지어 가볍게 먹을 수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더 느긋하게 온갖 반찬을 아기자기하게 지어서 넉넉하면서 느긋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지만, 혼자이기에 더 많은 것을 하면서 스스로 북돋울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혼자일 적에 더 알뜰히 즐길 수 있는 살림일 적에, 둘이나 여럿이어도 새롭게 알뜰한 살림으로 나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이느냐고도 하지만, 혼자 있을 적부터 잘 살고 잘 먹고 잘 노는 몸짓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여럿이 어울릴 적에도 잘 살고 잘 먹고 잘 노는 나라를 가꾸는 슬기가 자랄 수 있지 싶습니다. 2016.12.1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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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두사람 1
요시다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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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0



돈 버는 일 아니어도 ‘기쁨’일 수 있어요

― 일하지 않는 두 사람 1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5.9.30. 5000원



  돈을 버는 길은 여러 가지예요. 먼저, 스스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장사도 가게를 마련하는 가게장사가 있고, 길에 물건을 늘어놓는 길장사가 있어요. 요새는 인터넷으로 사고파는 누리장사(인터넷장사)도 있어요. 그리고, 어느 일터를 오가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이른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노동자가 되는 길이에요. 어느 일터를 다니더라도 일감이 있을 적에만 드나들 수 있지요. 이밖에, 장사를 안 하고 일터를 안 다니더라도 저마다 솜씨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돈을 벌 수 있어요.


  돈을 버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회사원이 아니어도 장사꾼이 아니어도 돈은 얼마든지 벌어요. 그러니 아이들이 어떤 일거리를 찾아서 돈을 벌더라도 어버이로서는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아이 스스로 가장 좋아할 뿐 아니라 기쁘게 사랑할 만한 일거리를 찾도록 북돋우면 되지 싶습니다.


  《일하지 않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5)이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한 권 두 권 꾸준히 나오며 다섯 권을 넘기는 작품인데요, 책이름처럼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이 나옵니다. 이들은 어느 갈래로도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밖에 나가기 싫다. 하아.” “야, 너. 이제 잠만 자면 되는데, 운세고 뭐고가 어디 있어?” “그것도 그렇네.” (7쪽)


“무슨 일 하려고?” “글쎄, 접객업이려나?” “접객?” “그럴 수가. 그렇게 활기찬 일을. 대, 대단하다.” “훗. 농담이야. 내가 일을 할 리가 없잖냐.” “다행이야. 나만 혼자 남겨지는 줄 알았어.” (11쪽)



  두 사람 가운데 동생은 ‘일을 안 할’ 뿐 아니라 ‘집 바깥으로 나가기’조차 몹시 싫어합니다. 머리를 깎기도 싫고, 새 옷을 얻기도 싫습니다. 아무리 맛난 밥집이 있어도 밖에 나가기 싫습니다. ‘예전에 학교를 다닐 적’에 얼굴을 알던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해요.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은 두 사람이 왜 ‘집에서만 맴돌고 바깥으로 나가려 않는가’ 하는 실마리를 환하게 밝혀 주지 않습니다. 다만 살몃살몃 ‘두 사람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럴 만한 까닭하고 일’이 있었구나 하고 어림하도록 이끌어요.



‘커트비 4600엔. 보여줄 상대도 없는 머리 때문에 4600엔. 중고 게임 사서 오빠랑 놀고 싶었는데.’ (18쪽)


“사람 이외의 생물로 태어나고 싶었는데. 난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사람.” “터무니없는 소리 마라. 여동생이여. 나나 너 같은 게으름뱅이가, 사람 이외의 동물이나 벌레로 태어나 봐. 십중팔구 태어난 그날에 죽을걸?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인 거야.” (39쪽)



  낯선 사람을 만나기 몹시 꺼리고, 낯익은 사람은 더더욱 만나기 꺼리는 동생을 지켜보는 오빠는 언제나 동생하고 사이좋게 놀아 줍니다. 오빠는 도서관이나 책방을 거리낌없이 ‘츄리닝 차림’으로 다녀요. 다른 사람 눈을 살피지 않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집에서 혼자 여러모로 공부도 하고, 그림(만화)도 그립니다. 그러나 구태여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거리’를 찾아나서려 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동생 때문이지 싶어요. 동생은 오빠가 집 바깥으로 일거리를 찾아서 나가면 ‘혼자 버려진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동생이 가장 마음을 놓고 가장 느긋한 생각으로 가장 아늑하게 놀거나 지낼 수 있는 길을 이모저모 생각해 내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오빠도 그저 동생한테만 맞추는 ‘집에서 놀기’가 아니라 스스로 ‘머리를 쓰고 생각을 키우는 놀이’가 되도록 나아가지 싶어요.



“공부라도 좀 하지?” “응? 공부?” “그래, 공부. 예를 들면. 그래, 영어 공부를 해서 토익 시험을 쳐 본다든가.” “여, 영어? 우리나라 사람이랑도 얘기를 잘 못하는데, 외국인이랑 얘기하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49쪽)


“다들 대단하다. 매일 시간 맞춰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우리들은 이제 잘 건데. 뭔가 엄청나게 미안한 기분이 들어. 아침부터 밖을 보다니, 할 일이 못 되는 것 같아.” (121쪽)



  돈을 버는 일을 해서 이 돈으로 집을 장만하거나 자동차를 굴리거나 맛난 밥을 사먹거나 멋진 옷을 갖춰 입어도 기쁠 만해요. 그리고 딱히 돈을 벌지 않더라도 어머니 아버지랑 한집에서 조용히 지내면서 살림도 같이 하고, 돈을 쓰는 일이 거의 없이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어도 기쁨이 될 만하지 싶습니다.


  다만 ‘알차게’라는 대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꼭 돈을 버는 데에 품을 팔고 시간을 써야 알차다고 여길 사람이 있을 테지만, 마음이 느긋하면서 아늑하도록 하루를 지낼 적에 ‘알찼구나’ 하고 여길 사람이 있어요.


  아이들을 생각해 보면 그래요. 아이들은 돈을 벌지 않아요. 아이들은 늘 즐겁게 뛰어놀아야 비로소 즐거워요. 아이들은 신나게 뛰놀거나 구르면서 삶을 하나둘 배울 적에 기뻐요. 사랑받으면서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아이들은 늘 기뻐요.


  어쩌면 《일하지 않는 두 사람》에 나오는 두 사람은 스무 살이 넘는 나이에도 ‘아직 그대로 아이’가 되어 지낸다고 할 만해요. 어떤 생채기가 마음에 남아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삶일 수 있겠지요. 스무 살에서 서른 살에도, 또 마흔 살에도 쉰 살에도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 있으니 두 사람이 ‘백수’로 놀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다른 눈길로 보면, 아이들이 맑고 밝게 뛰놀 수 있는 보금자리를 바라면서 ‘기쁘게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어버이가 있는 만큼,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아주 많이 느리게 자라고 더디게 배우면서 앞으로는 홀로서기나 새로서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똑같은 나이에 시집장가를 가거나 일자리를 얻어야 하지 않아요. 사랑으로 지켜보고, 사랑으로 어루만질 수 있으면 우리 모두 기쁜 보금자리를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어린이 같은 마음결을 북돋아 주고 싶습니다.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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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두사람 2
요시다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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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59



서로 이웃이 되는 길

― 일하지 않는 두 사람 2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5.10.31. 5000원



  서로 이웃이 되려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옆집에 살기에 이웃이 되지 않아요. 옆집에 살면 그저 ‘옆집 사람’일 뿐이에요. 옆집에 사는 사람이라는 자리를 넘어서 ‘이웃’이 되려면 나부터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해요. 옆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하거나 멀리하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야 하고, 옆에 사는 사람들이 나를 따스히 반기거나 맞이할 수 있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요.



“그보다 너, 오늘은 빈손으로 온 거야?” “응? 빈손?” “우리 여동생은 완전히 널 매번 뭘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던데.” (9쪽)


“오늘은 2월 22일이야.” “오. 그렇구나. 네 생일이었어.” “맞아, 생일이야.” “생일 축하해. 하루코.” “고마워.” “좋아, 그렇다면 이 오빠가 특제 미로를 그려서 너한테 선물해 주지.” “뭐?” (23쪽)



  ‘내가 이만큼 해 주었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이 나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안 되느냐고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만큼을 해 주든 저만큼을 해 주든 대단하지 않아요. 옆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느긋하지 않’으니 이웃이 될 틈을 줄 수 없습니다. 옆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마음이 즐겁지 않’기에 이웃이 될 겨를을 줄 수 없어요.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5) 둘째 권을 읽으면서 이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일하지는 않는 두 사람인데, 이 두 사람한테 다가서고 싶은 사람이 둘 있어요. 한 사람은 그저 그이 여느 모습이나 몸짓대로 다가섰다가 그만 동생을 깜짝 놀래킵니다. 이녁으로서는 아무 짓을 안 했다고 여길 수 있지만, ‘동생으로서는 너무 놀랄 만한 모습이나 몸짓’이었거든요.



‘옆집에 사는 바보 남매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잠이 든다. 예민한 성격이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계속 고민이었다. 그날에 있었던 사소한 일이 신경 쓰여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에 이사 와서 내 고민은 해결되었다. 일도 안 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만 하는 나날, 그런 그들을 보고 있으면 모든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져, 바로 잠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30∼31쪽)



  옆집에 있는 두 남매한테 다가서고픈 옆집에 사는 사람도 다른 한 사람하고 비슷한 일을 겪습니다. 그저 두 남매 가운데 한 사람이 쓰레기를 마을 한쪽에 내놓으려고 나왔기에 가만히 인사만 했을 뿐인데 둘 모두 놀라요. 그런데 옆집에 사는 사람은 다른 한 사람(오빠하고 동무인 사람)보다는 더 마음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이 남매가 이 작은 인삿말에도 움찔하면서 놀라는 까닭을 헤아려 보고, 더 부드럽게 다가설 길을 생각해 보지요. 이제껏 서로 모르던 낯선 사이였으니, 처음으로 다가서려고 할 적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핍니다.



“쿠라키 씨, 요즘 표정이 부드러워졌네?” “아, 그런가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겠지?’ “남동생과 여동생 삼고 싶은 사람이라면 생겼어요.” (103쪽)


“여동생도 오빠 말고 다른 사람과 놀기도 하는구나. 나도 가능성이 있을까? 같이 게임하고 싶다. 게임은 해 본 적도 없지만.” (106쪽)



  두 남매를 옆집에 두고 지켜보는 사람은 ‘사회에서 보자면 바보 남매’인 두 사람을 ‘좋은 동생으로 삼고 싶은 두 사람’으로 여깁니다. 아껴 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하고, 돌보아 주고 싶은 마음이 흐른다고 해요.


  아마 이러한 착한 마음이 되기에 이제껏 낯선 사람이었을 누구한테 가만히 다가설 숨결이 싹틀 수 있구나 싶어요. 이제껏 살며 낯도 이름도 몰랐고 알 까닭도 없던 사람한테 한 걸음씩 다가서면서 이녁 스스로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날 수 있어요. 이제껏 회사에서 늘 딱딱한 낯빛이었다지만, ‘이웃집 두 남매’를 따사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길을 스스로 키우면서 ‘부드러운 낯빛’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에 나오는 어머니랑 아버지는 어느 한켠으로는 두 아이를 걱정하지만, 곰곰이 살피면 ‘이 두 아이는 노상 아이로구나’ 하고 늒면서 마음을 놓기도 해요. 아이다운 마음인 두 사람은 참말로 착하면서 싱그럽게 하루를 기쁘게 누리거든요. 그러니 이 두 사람하고 이웃이나 동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천천히 하나둘 생길 만하지 싶어요.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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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두사람 3
요시다 사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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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58



즐거운 삶을 찾는 하루

― 일하지 않는 두 사람 3

 요시다 사토루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6.1.31. 5000원



  만화책 《일하지 않는 두 사람》(대원씨아이,2016)을 셋째 권까지 읽으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만화책에는 거의 집에만 틀어박히며 지내는 두 사람이 나와요. 한 사람은 오빠이고, 한 사람은 여동생입니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여동생을 돌보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여동생은 다른 사람들 앞에 좀처럼 못 나선다 하고, 다른 사람들하고 말을 섞기도 힘들다고 해요. 이런 여동생이 외롭지 않도록 오빠는 여동생하고 ‘집에 틀어박히는 나날’을 누립니다. 일부러 집에 틀어박혀서 여동생이 안 심심하도록 놀아 준다고 할까요.



“오빠, 대단하다. 직장인은 돈을 주고 물을 사는구나. 단란주점 같은 데도 가곡 그러나요?” “뭐어? 단란, 주점? …… 선배가 가자고 해서, 딱 한 번 가 본 적이 있어.” “오, 직장인!” (12쪽)


‘어? 안 사시는 건가? 그럴 수가. 아아, 이런 과자 정도는 얼마든지 사 줄 수 있는데. 사서 건네주고 싶어. 숙면에 대한 보답으로 건네주고 싶어.’ (28쪽)



  앞선 두 권을 읽을 적에도 어렴풋이 느끼는데, 만화책에 나오는 오빠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거의 일부러 여동생한테 맞추어 주지 싶어요. 이렇게 해야 여동생이 느긋할 수 있거든요. 이러면서도 오빠는 가만히 있지 않아요. 바지런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고,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값싸게 책을 사서 읽어요. 때로는 고등학교 적 수학 문제집을 풀기도 합니다.


  아는 사람이 바쁘다고 해서 만화 배경 그려 주는 일을 하고 일삯을 받아 오기도 해요. 이런저런 모습은 동생으로서는 대단해 보입니다. 다만 동생은 오빠가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해도 그저 놀라워할 뿐, 스스로 나서지 못해요. 오빠가 밥을 지어서 차려 줄 적에도 놀라워할 뿐 좀처럼 스스로 못 나서요.



“이렇게 잔뜩 네잎클로버가 있어도, 우리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거 아냐?” “매일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니, 나름 행복한 거지.” “그것도 그러네.” (29∼30쪽)


“오랜만에 개최해 볼까 해. 영화 합숙을!” “여, 영화 합숙. 하자. 영화 합숙 하자!” “좋아! 비디오 대여점으로 출발!” “옛썰!” (90쪽)



  두 사람은 돈을 버는 일만 안 할 뿐입니다. 게으름을 피운다기보다 응어리를 깨려고, 껍질을 깨기까지, 조용히 근심걱정 모두 털면서 가장 즐거울 하루를 생각해서 이 길대로 나아가지 싶어요. 그래서 오빠도 동생한테 맞추어 준다기보다 오빠 스스로 가장 즐거울 놀이를 찾고, 동생도 동생 나름대로 스스로 가장 즐거울 삶을 찾도록 함께 나아가는 길을 걸어가지 싶습니다.


  이리하여 이런 두 남매가 하루 내내 근심걱정 안 모으고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웃집 사람은 두 사람 때문에 마음이 가벼워져요.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든 굳이 근심걱정을 마음에 안 담아도 된다고 하는 대목을 ‘바보 남매’한테서 배우거든요. 두 남매는 어느 모로는 바보스러운 모습이 될 테지만, 바로 이 바보스러운 모습이기에 이웃한테는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스며들 수 있어요. 2016.12.1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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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이 왔다 - 다카하시 루미코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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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57



딱 한 번 지나쳤을 뿐인데 죽을 줄이야

― 거울이 왔다

 다카하시 루미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6.10.25. 9000원



  내 손바닥에 거울이 생겨서 이 거울로 ‘몹쓸 짓을 하는 사람’이 보이고, 그 몹쓸 짓을 하는 사람 마음속에서 꾸물거리는 ‘몹쓸 벌레’를 끄집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이리하여 손바닥 거울로 ‘내 둘레에 있는 몹쓸 벌레 몸짓’을 찾아내어 하나하나 끄집어낸 뒤에 나 스스로 지근지근 밟아서 이 벌레를 죽여야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손바닥 거울을 하루라도 제대로 안 쓸 적에는 그만 목숨을 앗길 수 있다면?


  언제나 꿈나라 생각이 철철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만화로 빚는 다카하시 루미코 님 단편만화책 《거울이 왔다》(학산문화사,2016)를 읽으면서 ‘손바닥 거울’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단편만화책 《거울이 왔다》에는 손바닥 거울 이야기도 있고, ‘앙갚음하는 돌’ 이야기도 있으며, ‘넋으로 사람 몸에 깃든 고양이’ 이야기도 있으며, ‘나한테만 안 귀여운 꽃’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별은 수많은 얼굴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모든 이야기는 짤막하게 끝맺는데, 하나같이 삶하고 죽음이 맞물립니다.



‘7월 27일, 오늘은 중요한 모의고사 날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만, 알았으면서도 그냥 넘기고 말았다. 모의고사만 보고 처리하면 되겠지, 하고. 하지만, 딱 한 번 그냥 지나쳤을 뿐인데, 죽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6∼7쪽)


“네 장례식에 갔었어. 거기서 네 이름과 학교를 알았거든. 7월 27일 모의고사 날, 육교에서 살해당했지?” ‘어, 꿈이 아니었던 말이야?’ “하지만 오늘은 아직 여름방학 전, 이잖아?” “왠지 몰라도 돌아온 것 같아.” “그러니까 시간이 말이야? 죽기 전으로?” (13쪽)



  우리는 다들 바쁘다고 할 만해요. 저마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해서 바빠요. 학생은 학교공부로 바쁘고, 여느 어버이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느라 바빠요.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바쁘고, 정치인이나 경제인은 이녁대로 바쁘며, 교사도 운동선수도 모조리 바빠요. 이러다 보니 서로 저마다 바쁜 탓에 ‘스스로 즐겁게 할 일’을 놓치기도 하고, ‘함께 마음을 기울일 일’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거울이 왔다》에 실린 첫 이야기 ‘거울이 왔다’는 바로 이 대목을 건드리는구나 싶어요. 고등학생이라 해서 모의고사 때문에 바쁜데, 이 모의고사는 고등학생한테 목숨하고 바꾸어도 될 만큼 크거나 아름답거나 대수로운 일이었을까요? 고등학생일 적에는 모의고사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른 핑계를 대다가, 그만 어느 결엔가 늘 바쁘다는 핑계를 입에 달고 살지는 않을까요?



‘나를 발판삼아 내 불행을 이용해 자리를 꿰찬 카자미란 놈. 이걸로 저주하면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뭘 하는 거지? 남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누군가를 죽여 봤자, 내가 내 일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63쪽)


‘드라마 스태프 여러분, 매니저 사쿠타 씨, 미안해요. 저는 죽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 사람을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살짝 밀었을 뿐인데,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제 끝났어. 어쩌다 이렇게 돼 버린 걸까.’ (80∼81쪽)



  이웃을 시샘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내가 스스로 내 일을 즐겁고 아름답게 잘 한다면, 내가 굳이 이웃을 시샘할 까닭이 있을까요? ‘앙갚음하는 돌’ 이야기는 이 대목을 가만히 짚어 줍니다.


  살짝 밀쳤을 뿐인데 계단 앞에서 밀쳤대요. 한 사람은 가파른 계단 앞에서 살짝 밀쳐졌을 뿐이지만 크게 나뒹굴었대요. 다만 이렇게 굴러떨어진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노릇이에요. 살짝 밀친 사람은 ‘고작 살짝 밀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계단 밑으로 내려가서 ‘나뒹군 사람이 다쳤는지 살았는지’ 살피지 않아요. 계단에서 바로 굴러떨어졌으니 이른바 응급처치라도 할 만하지만, 이마저도 두려움 때문에 못해요. 이러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죽였으니 스스로 죽어야겠다’고 생각해요.



“토라치요. 내가 울면 얹제나, 이렇게 눈물을 닦아 줬지. 토라치요는 여기 살아 있어.” (157쪽)


‘나는 생각했다. 토라치요가 내게 쐰 것은, 나와 미야가 화해할 때까지 지켜보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170쪽)



  두려움이 큰 탓에 아무 일을 못 할 수 있습니다. 미움을 키우는 탓에 아무 일도 못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생채기가 크다고 여기면서 아무 일을 못 할 수 있어요. 하나하나 생각하고 차근차근 돌아본다면 달라질 만하지만, 두려움이나 미움이나 생채기가 앞을 가로막고 말아요.


  만화책 한 권이 우리 삶하고 죽음이랑 얽힌 모든 실타래를 풀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이 작은 만화책에 실린 자그마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 살림살이나 매무새나 몸짓이나 눈길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하는 대목을 살며시 되돌아보도록 북돋운다고 느껴요.


  안 바쁠 적에는 핑계를 안 대면서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안 바쁠 적에도 어쩌면 자꾸 핑계를 대면서 안 아름다운 일을 하지는 않는가요? 바쁘든 안 바쁘든 마음자리에 꿈을 키우지 않는다면 핑계라고 하는 씨앗이 싹을 트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면서 어느새 핑계나무가 우거져 버리지는 않을까요? 만화 한 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저 ‘만화책에만 나오는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2016.12.1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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