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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이야기 4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9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652
혼자 살며 깨닫는 함께 사는 기쁨
― 솔로 이야기 4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16.10.15. 6000원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6)는 ‘혼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라고 할 만합니다. 요즈음 ‘혼밥·혼술’처럼 혼자서 뭔가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북적이기도 하니, 혼자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혼삶’이나 ‘혼살림’쯤 될까요.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해서 외딴 집이나 방이나 섬에 그야말로 혼자 동떨어져서 지내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시 한복판에서 혼자 살지요. 회사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지만, 이웃이나 동무하고도 어울리지만, 언제나 ‘집에는 혼자 돌아가서’ 고요히 생각에 잠겨요. 이렇게 따진다면 《솔로 이야기》는 ‘혼집’이나 ‘혼집살이’ 이야기를 다룬다고도 할 만합니다.
‘‘나’를 위해 꾸며 놓은 방에서 편히 쉬고 있노라면, 제 자신이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어엿한 ‘어른’ 같아서, 간질간질하면서도 자랑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9쪽)
‘그 정도 일로 칭찬을 받는다는 건 민망하지만, 그래도 역시 기뻤다. 그래서 지금 자취방에서 특훈의 성과를 확인하는 중이다. 다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사는 엄마의 맛이 지금 여기 있다. 먹어 본 적 없다고 했던 파에야를, 내가 만들어 드리면 얼마나 감격하려나.’ (24쪽)
태어나서 서른 살이 넘도록 늘 어머니하고 한집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혼자 떨어져서 지내는 아가씨가 있다고 합니다. 혼자 살림을 나서 지내니 바야흐로 ‘어른’이 되었네 하고 느낀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랑스럽고 스스로 대견하며 스스로 뿌듯하다고 해요.
그런데 이러면서 마음 한쪽이 서늘합니다. 언제나 알게 모르게 곁에서 따사로이 어루만지고 보듬던 손길하고 떨어진 탓이지요. 예전에는 거의 느끼지도 못하는 듯싶던 어머니 손길이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지요.
함께 살면서 늘 받을 적에는 모르던 사랑을 혼자 살면서 비로소 느낀다고 할까요. 함께 있는 동안 한결같이 누릴 적에는 모르던 사랑을 그야말로 혼자 지내는 사이에 뒤늦게 알아챈다고 할까요.
‘그냥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며 함께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 후로 그 누구와도 잘 풀리지 않았지. 그런데 이 녀석은 이렇게 예쁘장한 여자랑. 아아, 왠지 맹렬히 화가 오르기 시작한다.’ (37쪽)
‘그랬구나. 이름이 키미코였구나. 그런 이름이었구나. 오늘 네 옛날 남친을 만났어. 나한테는 처음부터 죽어 있는 존재였던 네가 너와의 기억을 가득 간직한 살아 있는 그 사람을 데리고 온 셈이야. 기분이 묘하네.’ (61쪽)
혼자 사는 어느 사내는 혼자 사는 그 집에서 ‘귀신’을 보기도 합니다. 이승에 아쉬움이 많아서 미처 떠나지 못하는 귀신은 이 사내만 알아볼 수 있었고, 처음에는 몹시 무서웠으나 귀신이 아무런 해코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아쉬움을 풀어 달라고 하는 말을 찬찬히 듣다 보니 ‘무서움 아닌 살가움’을 느낀다고 해요.
혼자 사는 사내가 만난 귀신은 혼자 사는 사내가 애써 준 보람으로 아쉬움을 말끔히 털고 저승으로 갔답니다. 이러고서 얼마 뒤, 귀신이 귀신이 아니던 무렵, 그러니까 이승에서 따사롭고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이던 무렵 함께 있던 남자친구를 만난대요.
아무런 끈이 안 이어졌다고 여기던 사람들인데 어느덧 알게 모르게 끈이 이어집니다. 아무런 실타래도 실마리도 없던 사람들인데 어느새 마음 한쪽을 뜨끈하게 덥히는 반가운 이웃이나 동무가 됩니다.
‘솔로 생활이 길어서 잊고 있었따. 항상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만다. 청소가 좋아지고, 방에 꽃을 장식하곡,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멋들어진 음식을 휘리릭 차려내고, 멋진 방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스마트하게 사랑을 키워 가는, 그런 자기 자신을 꿈꾸지만, 무리를 하다가 중간에 지치고 만다.’ (77쪽)
만화책 《솔로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집 바깥’에서는 으레 수다쟁이요 말이 많습니다. 이러다가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혼잣말을 해요. 아니 혼잣생각을 합니다. 가만히 삶을 돌아봅니다. 고요히 살림을 되새깁니다. 찬찬히 사랑을 헤아립니다.
함께 살던 때에는 깨닫지 못하던 삶·살림·사랑을 혼자 살면서 하나둘 또렷하게 깨닫습니다. 함께 있던 때에는 느끼지 못하던 꿈·노래·웃음을 혼자 있으면서 차근차근 환하게 느낍니다.
‘나는 스스로 나에게 저주를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닐까?’ (115쪽)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건 굉장히 즐거워. 그거면 됐어.’ (133쪽)
외로워야 하거나 쓸쓸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누구나 혼자 고요히 생각에 잠기면서 삶을 돌아볼 겨를을 누려야 하는구나 싶습니다. 호젓한 방이나 집이나 쉼터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온 하루를 차분히 되새길 짬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어요.
혼술이나 혼밥이란, 또 혼놀이나 혼살림이란, 또 혼책이나 혼영화란, 이런저런 ‘혼자 짓는 삶’이란, 남하고 안 어울리고 싶은 몸짓이 아니라고 느껴요. 내 넋을 되돌아보면서 내 꿈을 씩씩하게 가꾸려고 하는 ‘혼자 있기’요, 이웃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하는 길을 곱게 살피려고 하는 ‘혼자 지내기’이지 싶습니다.
혼자인 듯하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혼자 떨어진 듯하지만 혼자 떨어지지 않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 조용히 안아 주고 보살펴 줍니다. 2016.10.1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