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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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31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술 한잔 즐기는 아가씨

― 와카코와 술 5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6.4.25. 8000원



  만화책 《와카코와 술》은 일본에서 만화영화와 연속극으로도 나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작품을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몄다고도 해요. 나는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았고 방송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 만화를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며서 내보냈는지를 여태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는 연속극으로 새롭게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만화책에는 ‘와카코’라고 하는 젊은 아가씨가 혼자 술집을 다니면서 술맛을 즐기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굳이 술동무를 찾지 않고, 딱히 술벗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러한 줄거리이니 한국에서 새로운 연속극을 꾸미면서 “나에게 건배를”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바로 내가 나한테 술잔을 짠하고 부딪힙니다. 바로 내가 나한테 ‘너 오늘 하루 씩씩하게 잘 보냈어!’ 하고 북돋우면서 술 한잔 내밀 만합니다.



사람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 날에는 따뜻한 술로 마무리하고 싶다. (11쪽)


이 굴에 우스터소스, 케첩, 마요네즈라는 3대 어린이 양념을 찍어 먹는 거야. 들썩이는 마음을 억누르며 맥주를 한 모금. (38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첫머리를 보면, 아침에 낯선 사람한테서 따스함을 느낀 기쁨을 저녁에 술 한잔으로 마무리하겠노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러한 기쁨은 굳이 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누릴 만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혼자 호젓하게 술 한잔을 즐기면서 더욱 새삼스레 기쁨을 북돋울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만화책 주인공 와카코는 저녁에 찾아간 술자리에서 ‘이녁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옆자리 사람한테 따스한 손길을 베풉니다.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손짓이었지만, 이 손짓으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쏠쏠히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받은 옆자리 사람은 웃음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쁨은 기쁨으로 이어지는 셈일까요. 내가 받은 기쁨은 내가 남한테도 스스럼없이 나누어 주는 기쁨이 되는 셈일까요. 아니, 남이 나한테 기쁨을 베풀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얼마든지 다른 사람한테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겠지요.



아침술은 어떤 맛일까. 아침부터 술을 마신다는 배덕감을 초월해,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다 들어. (44쪽)


튀김의 풍성함. 매실과 차조기의 산뜻함. 야채, 고기.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든 색이 선명한 요리라 소주와 한층 더 잘 어울리는구나. (69∼70쪽)



  신나게 밥을 짓습니다. 나는 내가 먹을 밥을 늘 스스로 짓는다고 할 텐데, 곁님하고 아이들이 먹을 밥을 늘 손수 짓습니다. 엊그제 아침에 미역을 불리니 이 모습을 본 곁님이 무척 반깁니다. 미역국이 더없이 맛있으니 반갑다고 한마디를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가 하고 그저 그렇게 여겼는데, 냄비에 밥물을 맞추어 불을 올리고 나서 미역국에 넣을 무를 썰고 소고기를 헹구다가 문득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늘 밥을 지어서 차리는 사람으로서 ‘맛있다’라든지 ‘반갑다’라든지 ‘즐겁다’ 같은 아주 짤막한 한 마디를 들으면, 그때에는 몰라도 나중에 밥을 차리고 치울 적에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즐겁게 둘러앉아 한 끼니를 맛나게 먹습니다. 밥그릇을 비우고 밥상도 이럭저럭 치운 뒤에 막걸리 한잔을 밥상맡에 올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온 젊은 아가씨만큼은 아닐 테지만, 나도 혼자서 술 한잔을 즐겨 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술을 이야기하는 만화’를 읽을 적에는 이렇게 술 한잔을 옆에 놓고서 읽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말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것도 꽤 즐거운 것 같아. 술과 안주가 맛있기도 하지만, 역시 이런 것도 밖에서 마실 때의 즐거움이겠지? (98쪽)


아아아, 아아아아, 이 작은 한 접시 안에 감동이 살아 있구나. (102쪽)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는 작품은 ‘맛난 술’이 얼마나 맛난가를 전문가처럼 짚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맛난 술을 빛내는 안주’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전문가처럼 조목조목 밝히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요리법(레시피)’은 하나도 안 다룹니다.


  마치 아이들처럼 밥 한 그릇을 기쁘게 맞아들이는 마음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밥상맡에서 이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삶고 다듬고 했는가’를 묻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저희 입에 들어오는 밥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생각할 뿐입니다. 아이들은 저희가 수저를 들고 먹는 이 밥으로 얼마나 ‘즐거운’가를 헤아릴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처럼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술 한잔을 즐기는 젊은 아가씨 삶이 차분하게 드러나는 만화책 《와카코와 술》이라고 할 만해요. 대단한 ‘미식가’도 아니고 놀라운 ‘맛집 찾기’도 아닌 만화입니다만, 수수한 삶을 수수하게 사랑하고 수수하게 누리는 기쁨을 조용히 드러내는 만화라고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코리아타운을 산책. 풍겨 오는 불고기의 향기. 가게 앞에 늘어선 다양한 김치와 부침개. 모든 게 매력적. 이렇게 쭉 늘어놓아서 그런지 다른 음식도 덩달아 맛있어 보인다. 그래서 아무 가게나 얼른 들어가 한잔 마시고 싶은 그런 충동에 자꾸만 휩싸인다. (137쪽)



  《와카코와 술》 다섯째 권 끝자락에는 ‘코리아타운’을 사뿐사뿐 걷다가 떡볶이에 막걸리를 즐기는 모습이 흐릅니다. 떡볶이에 막걸리라니! 한국에도 이처럼 분식하고 술을 즐기는 곳이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떡볶이라면 아이들하고 즐기는 한 끼니라고만 여겼는데, 술을 좋아하는 이라면 이렇게 어우를 수 있겠구나 싶군요. 떡볶이에 곁들이는 튀김도 멋진 술안주라고 말하는 대목을 보면서, 술꾼(또는 술님) 눈길로는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해요.


  그리고 만화책에 나오는 막걸리 한 병(페트병) 값은 1000엔입니다. 일본사람으로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엔이 여느 값일 테지요. 한국에서는 막걸리 한 병에 1000원 언저리이지만요. 다시금 재미있네 하고 생각하면서 다섯째 권을 덮습니다. 2016.6.1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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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의 남편 1
타가메 겐고로 지음, 김봄 옮김 / 길찾기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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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29



아빠가 둘, 또는 서로 아끼는 곁님

― 아우의 남편 1

 타가메 겐고로 글·그림

 김보미 옮김

 길찾기 펴냄, 2016.5.10. 7000원



  만화책 《아우의 남편》(길찾기,2016)은 ‘남자 동성애’를 다룹니다. 그렇다고 이 만화책에서 사내끼리 살을 섞는 대목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둘째 권에서는 달라질는지 모르나, 이제 막 한국말로 나온 《아우의 남편》 첫째 권을 보면, ‘남동생이 남자와 혼인한’ 이야기가 흐르며, 이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우와, 외국인이다.” “외국인 아닙니다. 캐나다 사람.” (19쪽)


“저는 카나의 고모부입니다.” “무슨 말이야? 의미를 모르겠어!” “저는 캐나다에서 야이치 씨의 남동생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니까 카나의 고모부예요.” (21쪽)



  쌍둥이 형제 가운데 동생은 어느 날 쌍둥이 형한테 ‘드러내기(커밍아웃)’를 했고, 이무렵부터 쌍둥이 형은 동생을 차츰 멀리했다고 해요. 쌍둥이 동생은 이즈음부터 다른 길을 걷다가 캐나다로 건너가서 살았고, 그곳에서 ‘합법 동성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은 캐나다에서 그만 죽었고, 이녁하고 함께 살던 캐나다 사내가 일본으로 건너옵니다. ‘짝을 잃은 캐나다 사내’는 이녁 짝이 태어나서 자라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그리웠고, 일본에 있는 ‘이녁 짝 식구’가 궁금했다고 해요.



“야이치 씨, 카나 아빠. 카나를 위해 매일 밥 짓고 청소하고 세탁하고, 그거 훌륭한 일이잖아요?” (68쪽)


“캐나다인 고모부가 생기다니, 왠지 대단하고 왠지 신나!” “그런가? 나도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려나.” (74∼75쪽)



  아이를 낳으려면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어머니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다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나 아버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보살필’ 수 있어요. 낳지 못하더라도 너르고 따스한 사랑은 얼마든지 베풀 수 있지요.


  다른 여러 나라에서는 ‘어머니만 둘’이라든지 ‘아버지만 둘’인 집이 제법 있어요. 한국에서는 이러한 집을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한국은 아직 ‘동성결혼’을 법으로 받아들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말이에요, 혼인을 한다고 해서 ‘살섞기’를 꼭 해야 하지 않습니다. 동성이 아닌 이성끼리 혼인을 했어도 ‘살섞기’를 하지 않는 집이 차츰 늘어나요. 동성이 아닌 이성끼리 살면서 ‘살섞기’를 안 할 뿐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는 집도 차츰 늘어나지요. 왜냐하면 서로 마음과 뜻이 맞으면서 고이 사랑하는 살림을 바랄 적에는 살섞기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따사롭고 넉넉한 숨결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허즈밴드는 료우지. 료우지의 허즈밴드는 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동생이 남자와 결혼해서 줄곧 내 마음 한구석에서 카나가 한 말처럼 ‘마이크랑 료우지, 어느 쪽이 남편이고 어느 쪽이 아내였어?’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91∼92쪽)



  사내와 가시내가 혼인을 하면 어느 한쪽을 아내라 하고 다른 한쪽을 남편이라 해요. 사회라는 틀에서는 이렇게 ‘성별’과 ‘이름(설 자리)’을 가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남편 몫’이나 ‘아내 구실’을 넘어서 ‘서로 아끼는 사이’로 지낼 수 있어요. 이를테면 성별에 따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성별을 가르지 않고 누구한테나 똑같이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저는 ‘곁님’이라는 이름을 제 나름대로 지어서 씁니다. 곁에서 아끼고 보살피는 살가운 임(님)이라는 뜻으로 쓰는 ‘곁님’이라는 이름은 내 짝꿍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도 하지만, 내 짝꿍이 나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곁님’이라는 낱말 얼거리처럼 ‘짝님’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해요. 한짝이나 짝꿍을 이루는 살가운 임(님)이라는 뜻으로 ‘짝님’이라고 하지요.


  사랑할 수 있기에 함께 살고,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함께 산다고 느낍니다. 한집에 아버지가 둘일 수 있고, 어머니가 둘일 수 있어요. 아이한테는 고모나 고모부가 모두 사내일 수 있고, 이모나 이모부도 모두 가시내일 수 있어요. 성별로 가르는 겉모습보다 마음으로 드러나는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필 때에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살림이 되리라 느낍니다. 만화책 《아우의 남편》이 ‘동성결혼’을 바라보거나 마주하는 눈길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6.1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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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철공소 5
무네히로 노무라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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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28



용접공을 좋아하는 투박한 만화

― 말랑말랑 철공소 5

 노무라 무네히로 글 ·그림

 이지혜 옮김

 시리얼 펴냄, 2016.3.25. 8000원



  만화책 《말랑말랑 철공소》 첫째 권이 2012년에 처음 나왔을 무렵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그무렵에 이 만화책을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안 두껍고 무지개빛을 넣지 않은 판짜임인데 8000원 값은 세다고 여겼습니다. 《말랑말랑 철공소》는 꾸준히 나오면서 2016년에 다섯째 권이 나옵니다. 책값은 2012년이나 2016년이나 8000원입니다. 다섯 해 동안 책값이 그대로이네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달리 생각해 봅니다. 2016년에 8000원이라면 2012년에 5000원이나 6000원쯤 해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요.



“요짱, 이 일은, 프로 복서처럼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입사한 날부터 누구든 바로 프로야. 그러면서 기술이 붙어 가지만, 프로 의식만은 가지고 있어야 해. 요짱은 이제 남에게 줄 수 있는 위치니까.” (117쪽)



  만화책 《말랑말랑 철공소》는 책이름처럼 철공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철공소는 용접기를 빌어 쇠붙이를 말랑말랑하게 주무른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단하고 투박한 쇠붙이를 다루는 사내들은 얼핏 단단하고 투박해 보이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말랑말랑한 마음결이요 살림이라는 대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러면서 ‘철공소 일꾼’을 남편으로 둔 아내가 마을에서 이웃하고 어떤 말을 섞는가 하는 대목도 살짝살짝 재미나게 비추어 줍니다.


  《말랑말랑 철공소》 다섯째 권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이 만화책을 철공소와 용접과 쇠붙이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빚은 작품입니다. 만화로 다루는 이야기가 철공소와 용접과 쇠붙이일 뿐, 여느 순정만화나 운동만화나 생활만화하고 비슷한 결이요 흐름입니다.


  용접공이라고 해서 아주 남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대목을 보여주고, 여느 사람하고 똑같은 용접공이지만 용접공은 용접공 나름대로 기쁨과 보람을 누린다고 하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 만화책이 더 번역된다고 할 적에 여섯째 권이나 일곱째 권을 새로 장만해서 읽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수수하고 투박한 눈썰미로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는 만화책입니다만, 바로 이 자리에서 가만히 맴돌기만 하거든요. 꾸준히 ‘다른 이야깃감’을 끌어내어 연재를 잇는 일도 재미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숨결과 눈길’을 다룰 때에 비로소 고요히 빛이 나는 어여쁜 수수함이나 투박함으로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한 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다는 느낌에 아쉽고, 한 발 더 넓게 얼싸안지 못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밋밋합니다. 2016.5.27.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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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게 물드는 눈 2 - 완결
우니타 유미 지음, 김재인 옮김 / 애니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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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27



말은 어설퍼도 마음은 잘 다가왔어

― 푸르게 물드는 눈 2

 우니타 유미 글·그림

 김진희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6.4.29. 7000원



  우리는 서로 말을 주고받아요. 말을 주고받는 까닭은 내 말뜻을 알리면서 네 말뜻을 들어야 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서로 말뜻을 알리고 듣기도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서로서로 어떤 마음인가 하는 대목을 함께하려는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밥상맡에서 밥이 맛있다고 말을 한다면, 어떤 마음이나 몸짓으로 이런 말을 할까요? 녹음된 목소리를 기계처럼 읊는 말인가요, 아니면 마음을 깊이 담아서 노래처럼 들려주는 말인가요?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늘 다른 마음이요 언제나 새로운 마음이며 노상 사랑을 품는 마음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내 말이 마음을 전해 줬어?” “저, 전해졌어. 제대로 전해졌어.” (11쪽)


“유키코도 외쿡인이었구나!” “아, 아이다! 내 일본인이다!” “뭐?” “아, 난 몰라. 사투리 터져 버렸어.” (46쪽)



  우니타 유미 님이 만화로 들려주는 ‘사람 사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인 《푸르게 물드는 눈》(애니북스) 둘째 권을 읽으면서 ‘말에 담는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모두 두 권으로 마무리짓는 이야기인데, 2013년에 첫째 권이 나온 뒤 세 해가 지나서야 둘째 권이 나옵니다. 참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하고 느끼는데, 빨리빨리 그려내어 빨리빨리 읽고 치우는 만화가 아니니, 이쯤 기다리는 일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피우는 나즈막한 숨결이 싱그럽다고도 느낍니다.


  만화책 《푸르게 물드는 눈》은 두 사람 사이에 얽히는 사랑스러운 마음을 다룹니다. 한 사람은 일본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사람입니다. 다만, 일본과 중국이라고 하는 ‘나라(국적)’는 겉모습입니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시골이라 할 만한 곳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대학교에 들어가려고 도쿄로 왔고, 다른 한 사람은 중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다가 일본으로 배움길을 왔어요. 두 사람은 ‘다른 터전’에서 태어나서 자랐으니 다른 말과 삶과 살림이 몸에 익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다른 터전’에서 무르익은 말·삶·살림을 ‘하나인 사랑’으로 지피려 합니다.



“유키코는 물건 아니야! 중요한 건 유키코 마음이야!” (67쪽)


“게츠, 나 말이야, 사투리 공부할까?” (71쪽)



  아직 일본말이 서툰 중국 유학생은 ‘표준 일본말’을 알아듣거나 따라하는 일도 살짝 벅찹니다. 이녁은 ‘시골 일본말’을 처음 들은 자리에서 ‘시골 일본말’은 ‘외국말’로 여깁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도 엇비슷해요. 요새는 방송이나 책이나 교과서나 학교나 사회 얼거리 때문에 고장말이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깊은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는 분들은 ‘표준 한국말’이 아닌 ‘시골 한국말’을 쓰셔요. 시골에서는 공공기관이나 학교조차 모두 표준 한국말을 씁니다만, 작은 마을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와 할배는 으레 시골 한국말을 써요.


  서울말에 익숙하면 시골말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서울말은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주고받는 말이요, 시골말은 시골에서 주고받는 말입니다.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저마다 고장말이 있습니다. 미국도 서부와 중부와 동부와 남부와 북부가 말이 다르고, 중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쓰는 영어가 다릅니다. ‘사는 터전’이 다르기에 삶이나 살림도 다르기 마련이라, 말도 함께 달라요.



“됐다! 마도카는 익숙한 고향 말을 듣고 안심하고 싶은 것뿐이다! 거꾸로 말해서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단 거고! 게다가 내 마음 같은 건 딱히 알려고도 안 했잖아?” (103쪽)


“나에겐 모두 확실히 전달되었어. 안심해.” (140쪽)


“사모님은 아야메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하시나 봐요.” “아하하. 그야 엄마니까 대충은!” (146쪽)



  모든 사람이 서울말을 쓰기에 서로 말을 잘 나누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둘레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이 대목을 쉽게 알 수 있어요. 서로 ‘같은 표준 한국말’을 쓰지만 ‘의사소통이 안 된다’거나 ‘말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표준말을 쓰기에 서로 마음을 환하게 열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고 느껴요. 똑같은 표준말을 쓰느냐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구나 싶어요. 만화책 《푸르게 물드는 눈》에서도 나오듯이, 일본사람하고 중국사람이라고 하는 머나먼 틈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 따사로이 아끼고 너그러이 보듬으려고 하는 사랑스러운 마음이 있을 때에 비로소 ‘마음 나누기’를 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같은 말’을 쓰기에 나누는 마음이 아니라, ‘같은 마음’이 되어 ‘같은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일 때에 나누는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는 생각해. 제대로, 포기하지 않고, 말하면, 틀림없이 마음은 전해진다고.” (167쪽)



  서로 사랑이기에 푸르게 물들 수 있습니다. 푸르고 싱그럽게 물들 수 있어요. 푸르면서 싱그럽게 피어나는 풋풋하면서 고운 숨결로 물들 수 있어요.


  마음을 나타내려고 말을 하기에 마음이 드러나요. 마음을 읽으려고 귀를 기울이기에 마음을 알아요. 마음을 주고받으려고 입을 열기에 마음을 함께 열어요. 마음을 나누려고 부드러이 손을 내밀기에 함께 삶을 짓는 기쁜 사랑으로 피어나요. 2016.5.2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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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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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26



겉치레를 버리고 새로움을 찾는 삶

― 천재 유교수의 생활 26

 야마시타 카즈미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4200원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빚은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학산문화사,2008) 스물여섯째 권을 읽으면 책끝에 뒷이야기가 붙습니다. 애장판이 아닌 가벼운 낱권책으로 나올 적에 뒷이야기가 붙기도 하고 안 붙기도 하는데, 스물여섯째 권에 붙은 뒷이야기는 남다릅니다. 그린이 야마시타 카즈미 님이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가 어떤 사람인가를 짤막하게 밝히기 때문입니다.



“‘왜?’냐는 물음에 대해 대답을 못하는 것은 생각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증거란다.” (9쪽)


‘정직하게 말하면 됐을 텐데. 사실은 그 책의 의미를 하나도 모른다고.’ (21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꽤 오랫동안 읽었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한국말로는 1999년에 첫째 권이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스물여섯째 낱권책이 나올 즈음은 이 만화책을 스무 해 즈음 그렸다고 합니다. 스물여섯째 낱권책 뒷이야기를 보면, 그린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야기를 아주 짧게 적으면서, 이 만화에 나오는 유교수는 바로 이녁 아버지가 바탕이 되었다고 해요.


  만화책에는 ‘유교수네 네 딸’이 나오는데, 만화를 그린 분은 참말로 ‘교수 아버지를 둔 네 자매 가운데 막내’였으며, 경제학과 교수인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까지 ‘연구’를 하면서 보냈다고 합니다. 늘 연구를 하고 책을 읽던 아버지는 네 딸하고 논 일이 아주 드물다고 해요. 그래도 넷째 딸은 이런 아버지를 싫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늘 곁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는군요. 늘 지켜보았고, 아버지 이야기를 언니하고 어머니한테서 들으며 이 만화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잘은 몰라도, 일본은, 많은 것을 버리며 앞으로만 가요. 다들 앞으로도 영원히 커지기만 한다고 착각하면, 그 자리에서 다 멈춰버릴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41쪽)


“스트립쇼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걷지만, 조금 전까지 어떤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었을까 상상하면 재미있거든요. 엉큼한 얼굴들이지만 어쩐지 밉지는 않고, 때로는 사랑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이상한가?” (45쪽)



  만화책 《천재 유교수의 생활》 첫째 권을 1999년에 처음 만날 무렵에도 문득 느꼈습니다만, 이 만화책에 나오는 유교수는 예나 이제나, 그러니까 첫째 권이 나올 때이든 스물여섯째 권이 나올 때이든, 또 서른 몇째 권이 나온 뒤이든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릴 적이든 젊을 적이든 정년퇴직 언저리이든 ‘겉치레’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겉을 꾸미지 않아요. 유교수가 마음을 두는 곳은 언제나 ‘마음’입니다. ‘마음’에 마음을 두면서 살아요. 마음을 가꾸자고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일어나고, 밤마다 즐겁게 되새기면서 잠듭니다.



“할아버지, 이 사람 누구예요?” “할아버지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란다.” “소중한 사람? 하나코보다?”“소중한 사람에게 우열을 따져서는 안 돼. 소중한 사람은 마음 여기저기의 한켠에 있어도 되는 거야.” “엉! 하나코는 하나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도 이 나이가 돼서야 겨우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됐지.” (62∼63쪽)


“할아버지! 카메라로 찍지 말고 이 비디오로 찍으라니깐요!” “비디오가 반드시 좋다는 법은 없어요. 순간적인 약동을 기억에 오래 새기려면 정지화면이 더 좋을 때도 있단다.” (166쪽)



  만화책 한 가지를 스무 해 넘게 그릴 수 있는 바탕이라면 무엇보다 ‘꾸준함’이라고도 하겠지만, 이 꾸준함을 잇는 기운이란 늘 ‘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지 싶습니다.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가꾸려는 숨결이기에 오래도록 한 가지 만화를 그릴 수 있고, 이 만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운 마음결’로 살림을 짓는 이야기를 들려줄 만하리라 느낍니다.


  이리하여, 만화책뿐 아니라 우리들 여느 삶자리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똑같은 몸짓을 되풀이하면서 스무 해나 마흔 해를 살기는 어렵습니다. 겉보기로는 똑같아 보일는지 모르나, 속보기로는 늘 새롭기에 아침저녁으로 기쁘게 웃으면서 살림을 지을 만해요. 한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아이를 사랑하는 숨결로 쉰 해나 일흔 해를 사는 기운이란 ‘깊고 넓으며 따사로이 마주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바라신다면, 제가 나이마다 겪은 ‘첫 경험’을 모두 들려 드릴까요? 그 차이가 사소하다 해도, 60세가 되지 전에 60세를 경험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 다른 뭔가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미지로 가는 위대한 첫걸음이죠!“ (205쪽)


“예, 저는 자신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거죠. 그렇군! 즉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은, 당신의 인생을 모두가 사랑한다는 뜻이군요!” (207∼208쪽)



  만화책에 흐르는 말을 가만히 곱씹습니다.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찍는 마음을 생각해 보고, ‘소중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고 밝히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으면 동무를 사귈 수 있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보고, 해마다 늘 새로운 삶을 겪을 뿐 아니라 날마다 늘 새로운 하루를 만난다고 하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섭니다만, 막상 유교수라고 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자리에 서기’이지 싶어요. 스스로 교수라고 생각하기보다 ‘배우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가르칩니다. 늘 새롭게 배우는 기쁨을 누리면서 가르칩니다. 머릿속에 든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아니라, 스스로 새롭게 배우는 삶·살림·사랑을 이웃하고 나누려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스무 해 넘는 나날에 걸쳐 수십 권이 나온 만화책으로 여길 수 있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라고 할 만하지만, 나는 이 만화책을 한 권씩 오래도록 되읽고 돌아보면서 생각을 기울입니다. 한 번 슥 훑고 줄거리만 좇은 뒤에 덮는 만화책이 아니라, 뒤엣권이 언제 나오나 하고 손꼽는 만화책이 아니라, 권마다 다 다르면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 함께 나눌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생각하는 길동무책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만화책을 처음 보던 1999년에는 좀 시큰둥하기는 했는데 다시 볼수록 새로웠고, 이제는 이 만화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도 있을 만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만화를 그린 분이 이녁 아버지한테 ‘마음을 가꾸고 새로 배우는 삶’을 물려받았다면, 나는 내 나름대로 언제나 새로 배우면서 우리 아이들한테 ‘삶을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길’을 즐겁게 물려주자고 생각합니다. 2016.5.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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