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 새만화책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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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3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

― 옥상에서 보는 풍경 1

 정송희 글·그림

 새만화책, 2009.1.15.



  정송희 님이 선보인 만화책 《옥상에서 보는 풍경》(새만화책,2009)은 정송희 님이 보낸 어린 나날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정송희 님 어린 나날을 고스란히 밝혀서 그린 만화입니다. 이 책에 ‘1’라는 숫자가 붙은 만큼 뒷이야기가 곧 나올 듯했는데, 2009년에 첫 권이 나온 뒤 여섯 해가 되도록 다음 권은 나오지 못합니다. 정송희 님은 다른 만화도 꾸준히 그리시는 듯한데, 아무래도 ‘내 이야기’를 그리기가 훨씬 어려울까요.


  만화에 담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겪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내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는 ‘한 번 그리면 끝’이라고 여길는지 모르지만, 내 이야기만 만화로 그리더라도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가 샘솟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 즐기는 놀이 하나를 놓고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날마다 즐긴 놀이는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겪지 않은 이야기는 ‘취재’를 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그린 이야기를 그리더라도, 이 이야기를 그리려면 여러모로 깊고 넓게 살펴서 더 배워야 하고, 다른 책도 많이 읽어야 하며, 여러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 “흙으로 된 걸 어떻게 먹냐?” ‘그걸 누가 모르나. 적어도 예쁘게 만들었으니, 맛있게 먹는 시늉이라도 하면 좋지 않은가. 심심해 죽겠단 사람이 그거 하나 못 해? 나는 가짜를 진짜처럼 먹는 법을 오빠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10쪽)

- ‘공기놀이는 잘 하는 사람이랑 잘 못하는 사람이 한 조가 돼야 재밌나 보다.’ (31쪽)

- ‘광주 집에는 마당이 없어서 메리처럼 큰 개는 살기 힘들단다. 엄마는 새벽부터 밤까지 개미처럼 바쁘다. 나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된단다.’ (35쪽)





  내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손수 심어서 피우는 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내가 기쁘게 가꾸어 피운 꽃을 이웃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인 셈입니다. 그러니,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정송희 님이 손수 가꾼 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만화라는 틀로 담아서 새롭게 들려주는 작고 수수한 삶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모든 수수한 이웃이 저마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어떤 사랑과 꿈을 가꾸었는가 하는 실마리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정송희 님은 어릴 적에 무엇을 보았을까요? 한숨 짓는 어머니를 보고, 고단한 어머니를 보며, 한숨과 고단함이 잇달아 흐르지만 웃음과 느긋함을 잃지 않는 어머니를 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뚝뚝하지만 살가운 마음이 넘치는 아버지를 봅니다. 조잘조잘 시끄러운 듯해도 사랑스러운 언니를 봅니다. 하나뿐인 오빠를 봅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즐기는 온갖 놀이를 보고, 도시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 늘 따분하게 흐르는 하루를 봅니다.


  《옥상에서 보는 풍경》을 보면, 그린이 정송희 님이 혼잣말로 읊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옛날을 돌아보니 하나씩 떠오르는 ‘혼잣말 같은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모든 혼잣말 같은 이야기는 바로 정송희 님 스스로 어릴 적에 그 자리에 느낀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은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았어도 사진처럼 가슴에 아로새긴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정송희 님이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기역, 니은, 디귿.” “저건 뭐다냐?” “몰라.” “거기, 왜 안 따라하냐?” “그게, 뭔지 몰라서라.” “모르니까 따라해야제!” ‘말문이 막혔다. 점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이렇게 재미없다는 게 신기했다.’ (43∼44쪽)

- ‘집에 있을 땐 심심해 죽겠더니, 학교에 가니까 집에 오고 싶었다.’ (45쪽)

- ‘셋째 언니는 우리들의 자랑거리다. 그리고 착하다.’ (57쪽)





  재미있다 싶은 놀이를 많이 하며 보낸 어린 나날이 되어야,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가 많지 않습니다. 재미있다 싶은 놀이는 거의 못 하면서 따분하게 보낸 어린 나날이라 하더라도, 만화로 그릴 만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어릴 적에 올려다본 하늘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혼자 맡은 꽃내음 이야기를 얼마든지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천천히 걷던 길을 가만히 그릴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먹던 밥과 오늘 먹는 밥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야기 하나를 그릴 수 있습니다.



- “우리 집도 슈퍼 하면 좋겠다.” “왜?” “맞아, 그럼 좋겠다.” “너, 과자 맘껏 먹고 싶어서 그러제?” “어, 그럴 수도 있구마잉!” “저, 능청!” “그게 아녀. 슈퍼 아줌마는 편해 보이는데, 엄마는 여인숙 한다고 만날 이불 빨고, 청소하고, 쉴 틈이 없잖냐!” “원메, 참말로 기특하네!” “오!” (63쪽)

- “나도 처녀 적에, 제비 다리 고쳐 준 적이 있었제.” “제비가 뭐라도 가져왔다요?” “그건 모르겠다. 암튼, 이듬해 봄에 그 제비가 다시 오긴 했제. 그 제비를 다시 보니까 그저 좋더구만, 내 맘이.” (66∼67쪽)

-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너처럼 힘든 일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 되제.” “도움은 아줌마한테서 받았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은혜를 갚는다요?” “세상일이란 게 그렇다잉.” (85쪽)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네 사람이 과자 한 봉지를 먹으면서 이야기잔치를 펼칩니다. 과자 한 봉지쯤이라면 곧 바닥이 날 테지요. 그러나, 서로 한 조각씩 천천히 씹으면서 까르르 웃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쉬워 누구 한 사람이 심부름을 다녀올 수 있고, 밭둑에서 쑥을 뜯어 쑥부침개를 부칠 수 있습니다. 슬슬 밥을 차릴 수 있으며, 마당에 놓은 평상에 드러누워 봄볕을 먹을 수 있어요. 봄이니 들마실을 하면서 유채잎을 뜯거나 봄나물을 캘 수 있습니다.


  과자 한 봉지를 사러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조잘조잘 떠들면서 나들이를 갑니다. 과자는 두 봉지나 세 봉지를 살 수 있지만, 한 봉지만 살 수 있습니다. 고작 과자 한 봉지라 하지만, 과자 한 봉지를 사러 일부러 제법 먼 조그마한 가게까지 갈 수 있어요. 과자를 사려는 뜻보다, 마음 맞는 동무랑 천천히 나들이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뜻입니다. 이리하여, 어릴 적에 겪은 이런 ‘과자 사러 다녀온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화로도 그릴 수 있고 글로도 쓸 수 있어요.



- ‘짝꿍은 마치 내가 없는 듯, 혼자서 계속 먹는다. 이 모든 게 내겐 매우 낯설다. 엄마는 먹을 게 있으면 항상 나눠 먹었다.’ (89쪽)

- ‘또 여인숙이 문제인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주산을 잘하던 셋째 언니는 얼마 전 은행에 취직했다. 셋째 언니는 남들이 집에서 나가는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일찍 나간다. 아침에 여인숙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인숙이 뭐길래.’ (123쪽)

- ‘여름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 내려갔다. 들판과 냇가에서 하루 종일 놀다 보면, 어느새 자그만 마을에 어둠이 깔리고, 하늘은 붉은 석양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 식구도 시골에서 살면 참 좋을 텐데.’ (140쪽)





  한국 만화에서 크게 모자란 대목은 ‘수수한 맛’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은 ‘투박한 사랑’입니다. 한국 만화에서 자꾸 도드라지는 아쉬운 대목은 ‘작은 삶’입니다.


  군사독재가 있었고, 군사쿠테타가 있었으며, 끔찍한 학살이 있었습니다. 거짓부렁으로 가득한 신문과 방송과 책이 있으며, 무시무시한 입시지옥이 있으며, 끝없는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렁에서도 아이들은 웃고 뛰놉니다. 아무리 학원과 학교 사이에서 쳇바퀴를 돌더라도, 아이들은 언제나 작은 놀잇감 하나로도 신나게 웃고 떠듭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사람들을 짓누르거나 억누르더라도, 작고 수수한 사람들은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웁니다. 웃음꽃은 언제나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웃음꽃이 있기에 삶을 짓습니다.


  어느 역사 현장에 있어야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고무줄놀이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가랑잎이 구르는 소리를 듣고 까르르 웃은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주고받을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 ‘평소에는 손 하나 스치지 않던 사촌오빠가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고 돌아섰다. 아버지는 도시의 비싼 생활비 때문에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일하는 주연이 엄마, 그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을 생각하라고 했단다. 일주일 만에 사촌오빠네는 도시 살림을 뚝딱 정리했다. 주연이도 떠나게 된 셈이지만, 우리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마 도시에서 즐겁게 논 적이 없어서일 거다.’ (142쪽)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이 피고, 내가 안 심은 꽃이 핍니다. 내가 심은 꽃은 어느새 지더니 새롭게 씨앗을 맺어 둘레에 퍼집니다. 한 번 심은 꽃은 스스로 씨앗을 퍼뜨리며 씩씩한 어미꽃이 됩니다. 어쩌면 온누리 들과 숲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꽃은 맨 처음에 누군가 심은 씨앗이 퍼진 아이들일 수 있습니다. 작은 손길 하나로 심은 사랑이 오랫동안 천천히 퍼지면서 지구별을 아름답게 가꾼다고 할 만합니다.


  조그마한 만화책에 담은 조그마한 이야기가 꽃처럼 핍니다. 네 이야기가 피고, 내 이야기가 핍니다. 우리 이야기가 활짝 핍니다. 봄바람을 맞으면서 피고, 봄볕을 먹으면서 핍니다. 사이좋게 피어나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아름다운 숨결이 되어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한테 예쁜 이야기밥이 됩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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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지음, 나기호 옮김 / 애니북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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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5



별을 헤아리는 사람

― 별을 새기다

 나카노 시즈카 글·그림

 나기호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6.1.10.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별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문득 생각하면 말놀이 같은데, 가만히 돌아보면 말놀이가 아닙니다. 별을 못 보는 사람은 처음부터 별을 헤아릴 마음이 없습니다. 별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별을 헤아릴 마음으로 지냅니다.


  시골에 가야 보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보는 별입니다. 시골에서만 쏟아지는 별이 아닙니다.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쏟아지듯이 볼 수 있는 별입니다.


  불을 끄면 별이 한결 잘 보이겠지요. 그러나, 불 때문에 별이 더 보이거나 덜 보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보고, 내 마음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별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늘과 마주해야 별이 내 가슴으로 쏟아집니다. 별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으니, 내 가슴에 들어올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날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걸 보면 지긋지긋해진다. 치료를 해 주고 있는 건지, 그냥 괴롭히고 있을 뿐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7쪽)

- ‘아무리 설교를 한들, 어떤 녀석에게 말을 한들, 이 녀석들은 초콜릿 먹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9쪽)





  바쁜 삶에 어떻게 별을 보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별을 못 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바빴고, 우리는 언제부터 별을 못 보았을까요?


  가만히 따져 보셔요. 우리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단 지는 기껏해야 서른 해쯤 될락 말락 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독재정권이 밀어붙인 뒤부터 비로소 ‘바쁘다’는 말이 불거졌고, 도시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돈을 벌 일자리를 찾으면서 바야흐로 ‘바쁘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도시에 몰려서 사니, 도시사람은 너나없이 바쁩니다. 어른도 바쁘고 아이도 바빠요. 어른은 돈을 버느라 바쁘고, 아이는 학교와 학원에 얽매이느라 바쁩니다. 바쁜 어른은, 번 돈을 쓰느라 다시 바쁩니다. 놀러다니거나 술을 마시느라 바쁘고, 인터넷과 스포츠와 게임과 텔레비전과 영화 같은 문화생활을 누린다든지 여행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도 게임을 하랴 시험공부에 매달리랴 이래저래 참으로 바쁩니다.



-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 지당했다. 짐승이든 귀신이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바빴던 내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22쪽)

- ‘셋이 화음을 맞추기엔 조금 어려움이 따르지만, 꼭 잘할 수 있을 거야. ‘도’만 같이 잇어 준다면, 이대로 영원히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어.’ (45쪽)




  나카노 시즈카 님이 빚은 만화책 《별을 새기다》(애니북스,2006)를 읽습니다. 어쩜 이렇게 ‘톤’으로 하나하나 알뜰히 만화를 빚었을까 싶어 놀랍습니다. 오늘날처럼 바쁜 사회에서 이런 만화를 하나 선보이자면 얼마나 손을 많이 써야 할까요. 바쁜 사람들이 이 만화를 느긋하게 넘기면서 차근차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요? 바쁜 도시사람이 이 만화를 차분하게 읽으면서 하나하나 별자리를 읽거나 헤아릴 틈이 있을까요?



- “무엇보다 오로라가 가장 보고 싶어! 직접 눈앞에 펼쳐지는 오로라는 장관이겠지?” “당연하지! 어찌나 눈이 많이 오는지 파묻힐 지경이라니까! 수백 마리의 야생 순록이 설원을 가로질러 내달리고, 오로라는 매일 별이 가득한 하늘에 커튼처럼 펄럭여 보일 거야!” (101쪽)

- ‘형의 몸은 칠흑 같은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형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둠을 받아들여 자신의 별로 승화시키는 이 의식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151쪽)



  지구도 별입니다. 해도 별입니다. 달도 별입니다. 온누리에 가득한 별은 모두 별입니다. 지구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참말 ‘사람’입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같이 사람이요, 다 다르게 사람입니다. 함께 삶을 짓는 사람이요, 함께 사랑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별을 헤아리는 사람은 삶을 헤아립니다. 별 흐름을 읽으면서 삶 흐름을 읽습니다. 별자리를 헤아리면서 삶자리를 헤아리고, 별노래를 부르면서 삶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별을 아는 사람은 삶을 압니다. 별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은 삶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학문으로 파고드는 별읽기라면 아무것도 몰라요. 이와 같지요. 학문으로 파고드는 삶읽기라면, 이때에도 아무것도 모릅니다.





- “널 괴롭히던 녀석들은 네가 약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힌 것이 아니라, 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두려워서 그런 거야.” (154쪽)

- “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그림을 새겨 넣을 필요가 없어. 원래부터 너만의 문양을 지니고 있으니까!” (156쪽)



  내 별은 내 가슴에 있습니다. 네 별은 네 가슴에 있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별을 품습니다. 나는 내 별을 내 가슴에서 꺼내어 내 온몸에 새깁니다. 너는 네 별을 네 가슴에서 꺼내어 네 온몸에 새겨요.


  내 별이 빛나고, 네 별이 빛납니다. 내 별이 춤추고, 네 별이 춤춥니다.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별춤을 추면서 별노래를 부릅니다. 언제나 고운 별빛으로 흐드러지고, 늘 사랑스러운 별내음을 맡으면서 하루를 짓습니다.


  만화책 《별을 새기다》를 가만히 새깁니다. 아픈 아이들이 나오고, 노래하는 아이들이 나오며, 초콜릿을 먹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웃는 아이와 우는 아이가 나옵니다. 모두 별빛처럼 초롱초롱 해맑은 눈망울로 우리를 바라봅니다. 4348.3.17.불.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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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잔 인생 한입 3
라즈웰 호소키 지음, 김동욱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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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82



바람 한 줄기를 마시며

― 술 한 잔 인생 한 입 3

 라즈웰 호소키 글·그림

 김동욱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2.8.30.



  나는 어릴 적부터 냄새를 잘 못 맡았습니다. 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어린 날부터 코가 나빴습니다. 코가 나쁘니 냄새를 잘 못 맡고, 냄새를 잘 못 맡으니 맛을 잘 못 느꼈으며, 숨조차 쉬기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탓도 있을 테지만, 내가 어릴 적 뛰놀던 곳에는 언제나 큰짐차 배기가스와 흙먼지가 뒹굴었고,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가득했으며, 집과 학교 사이에 있던 연탄공장에서 늘 탄가루로 날렸습니다. 국민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늘 공장(이라기보다 공단)을 옆에 낀 삶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아마 내 몸은 ‘냄새’를 받아들이기 몹시 싫어했겠구나 싶어요. 내 몸은 스스로 지키려고 냄새를 손사래쳤을 수 있습니다.



- “이런 대가족에 남자는 너 하나라. 날 왜 불렀는지 알 것 같다.” (14쪽)

- ‘역시 3000엔짜리로 사 갈까. 화창한 봄날에 모처럼 한잔 하는데 쩨쩨하게 그런 빈티 나는 술이나 마실 수야 없지.’ (37쪽)



  코는 늘 안 좋았으나, 때때로 코가 확 트이는 때가 있습니다. 매캐하거나 갑갑한 곳이 아닌, 싱그러운 풀과 나무가 있는 데에 닿으면 코가 확 트입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움직이더라도 이러한 기운을 코가 느낍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잠들었어도 ‘아, 바야흐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곳에서 벗어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으로 접어들면, 내 코는 언제 그렇게 막히고 괴로웠는가 싶도록 확 트인 채 하늘바람을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앞서, 내 몸에 깃들거나 쌓인 모든 앙금을 갈아치우려고 해요. 새로운 기운이 감돌고, 기쁜 숨결이 춤출 수 있도록 바람 한 줄기를 고맙게 마십니다.



- “그래도 기왕 돈 내고 들어온 건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지, 아깝잖아요.” “카스미 씬 왜 그렇게 쩨쩨해? 그냥 잔디에서 마음껏 뒹굴대다 가는 요금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84쪽)



  라즈웰 호소키 님이 빚은 만화책 《술 한 잔 인생 한 입》(AK커뮤니케이션즈,2012) 셋째 권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도시에서 여느 회사를 다니는 여느 일꾼입니다. 날마다 ‘술 한 잔’을 한다고 하는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한 잔’이 아니라 ‘석 잔’쯤이라 할 테고, 석 잔조차 아닌 ‘서른 잔’이라고 할 만큼 술을 마십니다. 무어라고 할까요, 살아가는 기쁨이 술이라고 할까요. 술이 있기에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 지내고, 술이 있으니 하루하루 일터에 나가며, 술이 있는 동안 다른 모든 일을 잊고 느긋하게 잠드는 이야기입니다.



- “나한테는 말이야, 스키야키는 전야제 같은 거라고. 스키야키는 술이 잘 안 들어가잖아. 금방 배도 부르고. 그렇지만, 다음날 남은 건 또 술안주로 딱이거든.” (187쪽)



  바람 한 줄기가 붑니다. 바람 한 줄기는 들판을 가득 채운 나락에 깃들어, 우리가 먹는 밥이 됩니다. 바람 한 줄기는 너른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우리가 먹는 물고기마다 스밉니다. 바람 한 줄기는 능금밭과 딸기밭을 지나며, 우리가 즐기는 능금과 딸기에 서립니다.


  우리는 술을 빌어 바람을 마십니다. 밥을 빌어 바람을 먹습니다. 고기와 열매를 빌어 바람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목숨을 먹으면서 내 목숨을 잇습니다. 다른 목숨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다른 목숨을 살린 숨결이요 바람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흐르는 바람이 뭇목숨을 살리고, 뭇목숨을 살리는 바람이 이 목숨과 저 목숨 사이를 잇습니다. 모든 술맛과 물맛과 밥맛이란 바람맛입니다. 바람 한 줄기를 먹으면서 오늘 하루가 흐릅니다. 4348.3.16.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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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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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479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 닥터 슬럼프 완전판 1

 토리야마 아키라 글·그림

 설은미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0.12.25.



  2010년에 ‘완전판’으로 다시 나온 《닥터 슬럼프 완전판》(학산문화사,2010) 첫째 권을 곰곰이 읽습니다. 《은하패트롤 쟈코》는 아이들한테 읽혀도 재미있다고 느껴서 《닥터 슬럼프》도 장만해서 읽습니다. 그런데, 《닥터 슬럼프》는 그리 재미있지 않습니다. 줄거리 흐름에 따라 어떤 생각을 들려주려 하는가 하는 대목은 알 만하지만,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짜야 할까 싶고, 이러한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보여주어서 무엇이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불량아’라는 아이는 학교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수업을 하다가 대놓고 술을 마십니다. 로봇을 만든 박사는 ‘변태 잡지’를 아무렇지 않게 읽으며 집 곳곳에 둡니다. 일본 사회와 문화가 이러한 모습이라고 보여줄 만하고, ‘변태 잡지’와 ‘시사 잡지’가 다를 바 없다고 할 만하니, 어떤 잡지를 집에 두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닥터 슬럼프》에서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삶을 짓는 기쁨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바보스러운 사회에서 다 같이 바보스럽게 뒹구는 이야기를 넉넉히 찾아보면서, 이러한 바보짓에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흐를 뿐입니다.



- “두렵다. 난 나의 재능이 두려워. 이토록 완벽한 인간형 로봇을 뚝딱 만들어 치우다니.” “바, 박사님! 날 수가 없어요!” “누가 날랬어? 굳이 날 필요 없잖아!” “못 나는 거야?” (8쪽)



  생각이 날개처럼 돋으려면, 삶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야 합니다. 생각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려면, 홀가분한 넋으로 홀가분한 마음과 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흔히 ‘자유로운 상상력’을 말하는데, ‘자유’란 무엇이고 ‘상상력’이란 무엇일까요? 아무것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는 모습이 ‘자유’일까요? 무엇이든 만화로 그리거나 영화로 찍으면 ‘상상력’일까요?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른 금을 그으면서 서로 틀을 짓는 모습이라면, 이러한 틀짓기도 삶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이쪽으로만 가야 옳거나 저쪽으로만 가야 옳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내 내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녀!” “왜?” “그야 친구니까.” “누가 맘대로 친구야?” “헤헤헤, 친구란다! 우린 불량아야, 불량아!” (31쪽)



  《닥터 슬럼프》에 나오는 박사가 바보스럽다거나, 펭귄마을 학교가 바보스럽다고 할 만하기에, 이러한 틀을 짠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는 만화책이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보면서 웃음이 나오지 않고,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노래가 흐르지 않습니다. 모두 쳇바퀴처럼 틀에 맞추어 움직이는 흐름을 그대로 두기에 재미없는 사회에서, 박사는 스스로 재미있는 무언가를 누리려고 로봇을 만들고 여러 기계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런 기계를 자꾸자꾸 만들더라도 스스로 재미나지 않습니다. 따분한 삶에서 박사 스스로 이것저것 만들지만, 새로운 기계는 어느 한때 따분함을 달랠 뿐, 새로운 하루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되지 않습니다.


  더욱이, 박사는 아라레라는 로봇을 만들면서 이 아이한테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합니다. 학교에 보내기는 하지만, 박사 스스로 아라레한테 아무런 삶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무런 사랑을 들려주지 못하며,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지 못해요.



- “거대 털벌레!” “아, 아니야. 저건 곰이라는 거야. 아기 곰일 때부터 길렀는데 저렇게 크게 자란 거야. 하지만 늘 저 작은 우리 안에 갇혀 있으니, 참 안됐어.” “나쁜 짓 했어?” “그런 건 아닌데.” (87쪽)



  ‘불량아’라고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재미가 없고, 집이나 마을에서도 따로 재미가 없겠지요. 재미가 없으니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고, 심심풀이를 찾아서 떠돌기에, 스스로 이루는 삶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얼거리로 흐르는 《닥터 슬럼프》이고, 이쁘장한 그림과 여러 주인공이 나오기는 하지만, ‘새로움’이 드러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볼 때에 ‘만화’이기 때문에 쉽게 빠져듭니다. 재미있든 재미없든 그저 만화를 펼칩니다. 이야기가 있든 없든 그저 만화에 사로잡힙니다. 그냥 들여다보면서 길들거나 익숙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른이라면, 축구라든지 야구라든지 이것저것 스스로 ‘취미’로 여겨서 즐깁니다. 사회의식에 젖어 여러 가지를 ‘다양한 문화’로 누립니다. 이 만화책이 ‘어른판’이라고만 한다면, 이 만화를 어른판으로 어른끼리 얼마든지 즐길 만하겠지요. 4348.3.11.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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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5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78



봄바람이 가볍게 분다

― 미카코 5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2.12.30.



  이웃집 할아버지가 쪽파를 열 꾸러미 건네주십니다. 열 꾸러미나 되는 쪽파를 한꺼번에 먹을 수 없으니, 울타리를 따라 한 줄로 옮겨심습니다. 우리 집도 이웃집도 모두 시골집이기에, 흙에서 캔 쪽파는 다시 흙을 파서 뿌리를 잘 덮어 주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흙에 뿌리를 심으면 줄기(잎)는 다시 올라옵니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내내 먹을 수 있어요. 쪽파는 뿌리만 살짝 다듬어서 써도 되지만, 알뿌리를 땅속에 그대로 두면서 언제까지나 기쁘게 새로운 잎을 얻을 수 있습니다.


  쪽파가 아닌 큰파도 뿌리를 땅에 심으면 꾸준하게 새 잎을 얻습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풀은 푸르게 다시 돋기 마련이라, 한 번 심으면 이 아이들은 오래도록 우리한테 고마운 밥이 되어 줍니다. 겨울을 앞두고 꽃이 피고 씨앗이 맺도록 지켜보면, 새로운 씨앗이 퍼지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얻어요.


  들딸기도 이와 같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훑어서 먹고, 나머지를 그대로 두면 해마다 덩굴을 뻗으면서 이듬해에는 더 넉넉히 열매를 베풀어요. 열매나무도 이와 같지요. 가지치기를 굳이 해야 하지 않습니다. 줄기가 튼튼하고 굵으면서 우람하게 자라도록 돌보면, 열매나무는 해마다 더욱 싱그럽고 맛난 열매를 나누어 줍니다.





- ‘심장이 뛰는 건 달려서 그런 게 아니다.’ (9쪽)

-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나와 어제랑 똑같이 천천히 걸었다.’ (13쪽)



  여덟 살 큰아이와 아침에 쑥을 뜯는데, 큰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왜 여기저기 돌아가면서 뜯어?” “응, 한곳에서만 뜯으면 이 아이들이 더 못 자라잖아. 돌아가면서 조금씩 뜯으면 더 오래 더 많이 뜯을 수 있어.”


  많이 심기에 많이 거둔다지만, 많이 거둔다고 해서 모두 다 먹지 못합니다. 모두 다 먹지 못하면 이웃하고 나누거나 다시 흙한테 돌려줍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굳이 많이 심어야 하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심되, 조금 넉넉히 심으면 됩니다. 즐겁게 누릴 만큼 심고, 즐겁게 돌보면서 봄과 여름을 지냅니다. 즐겁게 돌보아 가을에 거두면, 겨울에 다시금 즐겁게 추위를 나면서 고마운 밥을 누려요.





- ‘한 번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빨간 열매. 아직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다.’ (58쪽)

- ‘카토를 좋아하지만, 진짜 사랑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67쪽)

- ‘흘러가게 두는 거 그만할래. 이 빨간 구두는 어디에도 날 데려다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 걷기로 했다.’ (69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다섯째 권 끝자락을 보면 2013년에 여섯째 권을 곧 선보인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2014년을 지나고 2015년이 되어도 《미카코》 여섯째 권은 한국말로 나올 낌새가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곧 내놓겠노라 밝힌 여섯째 권이라도 나와야 할 텐데, 책에 나오는 광고는 그냥 광고로 끝날까요. 아니면, 여러 해 동안 겨울잠을 자던 책이 새봄에 새롭게 나올 수 있을까요.





- “이거, 나오 엄마가 드리래.” “그러고 보니, 둘 다 새엄마네.” (86쪽)

- “괜찮지 않을까? 이치무라 네 일이니까, 네 결정이 제일 옳아.” ‘미도리카와의 침묵은, 좋은 바람을 기다리는 시간 같다.’ (106쪽)



  봄바람이 가볍게 붑니다. 삼월 팔일 낮에는 우리 집 마당에서 나비를 처음으로 봅니다. 벌은 지난달부터 보았고, 나비는 어제부터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집에서 나비를 어제부터 보았지만, 이 나비는 더 일찌감치 다른 곳에서 깨어났을 수 있어요. 아니면, 우리 집 풀숲이나 나무 한쪽에서 조용히 깨어났을 수 있습니다.


  이제 무당벌레를 꽤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갓잎과 유채잎은 올해에 새로 깨어난 벌레가 갉아먹은 자국이 많습니다. 모과나무에 움이 터질 듯 말 듯 부풀고, 매화나무는 며칠 뒤면 꽃망울이 터질 듯합니다. 이웃집은 벌써 닥나무 꽃이 피었고, 이웃 여러 마을에서는 매화꽃이 가득 터지기도 했는데, 우리 집 나무는 조금 늦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나무가 꽃을 조금 늦게 피운다면, 다른 마을 나무보다 더 오래 피우는 셈입니다. 늦꽃이 오래 간다고 할까요. 그야말로 따사로운 볕과 바람이 아침저녁을 감돌 무렵에 우리 집 나무들이 기지개를 마치고 깨어난다고 할까요.





- ‘만약에 지금,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하면,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114쪽)

- “어떤 집이 지어질까? 모른다는 건 제일 좋을 때라고 생각해. 뭐든 될 수 있다는 거니까.” (119쪽)

- “버렸다고? 어째서. 좋은 추억이었는데!” “또 그릴게. 천재소년이 아니라, 이번엔 천재가 되어 보일게.” (124쪽)



  만화책 《미카코》에 나오는 ‘이치무라 미카코’는 천천히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제껏 ‘제 마음’에 따라 걷지 않던 길이지만, 이제부터 제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이냥저냥 휩쓸리듯이, ‘제 마음’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둘레에서 바라는 대로 떠돌며 다녔지만,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 마음이 아닌 ‘내 마음 바라보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길을 갑니다. 내 길을 갈 적에는 내 둘레에서 깜짝 놀랄 수 있어요. 그렇지만, 다 괜찮아요. 내가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해서 ‘네 생각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뜻이 아니었음’을 밝힌 셈이니, 내 둘레에서도 ‘내 생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걷는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 둘레에서 내 길을 꾸밈없이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면? 아마 이때에는 내 둘레에 있던 사람이 나를 떠나겠지요. 그러면, 이들더러 떠나라고 하면 됩니다. 나는 너를 굳이 붙잡아야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내가 네 삶을 뒤따라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너는 네 삶으로 가야 하고, 나는 내 삶으로 가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곳으로 따라간다고 해서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려면 사랑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이치무라 미카코’는 시나브로 제 길을 찾아서 걷습니다만, 이 아이와 맞물리는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는 아직 제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미도리카와라는 아이도 앞으로 제 길을 제대로 찾고 싶습니다. 《미카코》 여섯째 권에서는 이 이야기가 더욱 넓고 깊으면서 따사로이 흐를 테지요. 아무튼, 너무 늦지 않게 여섯째 권이 한국말로 나오기를 빕니다.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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