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동에 내리는 비 문학과지성 시인선 74
윤중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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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4



시와 술잔

― 본동에 내리는 비

 윤중호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8.11.15.



  꽃밭을 키우는 사람은 꽃밭에 물을 줍니다. 텃밭을 일구는 사람은 텃밭에 물을 줍니다. 꽃밭이나 텃밭에는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이나 남새가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사람이 따로 심었기 때문에 사람이 돌보아야 할 수 있지만, 꽃씨나 풀씨를 심으면서 이 아이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하는 이야기를 씨앗한테 들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나무에 물을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포도나무에 비료를 줄 일이란 없습니다. 냉이나 민들레한테 물을 주는 사람이란 없습니다. 나팔꽃이나 해바라기도 사람이 따로 물을 안 주어도 씩씩하게 자랍니다. 왜냐하면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차가운 기운이 감돌다가 새벽이 찾아와서 날이 밝을 무렵 이슬이 맺혀 풀잎과 줄기와 꽃망울과 뿌리는 촉촉하게 젖기 때문입니다. 꽃과 풀과 나무가 마시는 바람에는 언제나 촉촉한 기운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 헐리운 집 담장 근처에, 샛노란 / 돼지감자꽃이 피었읍니다 ..  (본동일기·하나)



  아기는 어머니젖을 먹고, 아이는 어버이가 차린 밥을 먹는데, 차츰 자라서 어느 나이가 되면 씩씩하게 홀로 서서 밥을 손수 짓습니다. 열다섯 나이나 스물 나이라면 손수 밥을 지을 줄 알아야 옳습니다. 서른 나이나 마흔 나이가 되어서도 남이 차리는 밥만 받는다면 철이 안 든 어리광쟁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많은 사내는 철이 안 드는데다가 어리광쟁이입니다. 부엌일이 아닌 밥짓기와 삶짓기를 못하는 사내가 아주 많습니다. 손에 물을 어떻게 묻혀야 하는지 모르는 사내가 매우 많습니다. 갓난쟁이 똥오줌을 치울 줄 모르는데다가, 아이를 씻길 줄 모르는 사내가 무척 많습니다.


  밥을 손수 짓지 못한다면, 몸을 스스로 어떻게 건사할까요. 삶을 손수 짓지 않는다면, 마음을 스스로 어떻게 다스릴까요. 사내는 자꾸 바보스럽고 철부지인 길을 가면서, 집 바깥이나 마을 바깥에서 맴돕니다. 사회에서 이름을 얻거나 돈을 벌거나 힘을 거머쥘는지 모르나, 이름과 돈과 힘하고 사뉘는 사내는 삶이나 사랑하고는 등지고 맙니다.



.. 나는 비탈에 산다 / 사철 응달인 비탈이라, 봄은 더디 오지만 / 겨울 소식은 언제나 일등으로 오고, / 몰랐지? 먹어봐야 입만 아리지만 / 여기서는 돼지감자꽃도 핀다 ..  (본동일기·열)



  오늘날 거의 모든 사내는 손수 술을 빚지 않습니다. 집 바깥에서 돈을 벌어 술을 사다 마십니다. 밥을 손수 짓지 못하는 사내인 터라, 술을 손수 빚을 줄 모를밖에 없습니다.


  손수 밥을 짓는 사람은 밥알 하나 허투루 다루지 않습니다. 손수 술을 빚는 사람은 술잔을 함부로 돌리거나 들이붓지 않습니다. 손수 삶을 짓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과 꿈을 노래합니다.


  그러니까, 사내는 밥도 술도 삶도 손수 일구지 않으면서 언제나 철이 없습니다. 언제나 철이 없는 채 어리광을 부리고, 이런 어리광쟁이를 너무 많은 가시내가 뒷바라지를 합니다. 바보스럽고 철이 없는 사내를 차마 내치지 못합니다. 사내는 가시내가 얼마나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는지를 하나도 못 깨닫습니다.



.. 아무도, 비껴서는 바다의 울음 소리를 / 미움이라 할 수 없으리라 / 말장 뗏목을 띄우며, 또 바람이 불고 / 온몸으로 찬 바람을 안은 채, 산비탈마다 / 겨울보리가 새파랗다 ..  (안면도·하나)



  윤중호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본동에 내리는 비》(문학과지성사,1988)를 새삼스레 꺼내어 다시 읽습니다. 이제 이 땅을 떠나고 없는 윤중호 님인데, 이녁이 아직 팔팔하게 살아서 기운차게 술잔을 들이붓던 즈음 두세 차례 마주친 예전 모습을 아련하게 그립니다. 밤새워 술잔을 들이붓던 윤중호 님은 무슨 까닭으로 그토록 술잔을 들이부어야 했을까요. 술잔을 빌어서 어떤 아픔을 달래고, 술잔을 빌어서 어떤 그리움을 씻어야 했을까요.



.. 참 알 수가 없다 / 서울이란 동네를. / 다들 참 용하게 살아가지만 / 어디를 둘러보아도 / 마른 등허리만 내다보인다 ..  (길을 익히며)



  몸이 아픈 사람은 아무것도 못 먹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몸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죽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웃이 있으나, 아픈 사람은 아무것도 안 먹고 몸을 가만히 지켜볼 때에 비로소 몸에 기운을 되살릴 수 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은 밥이나 죽이 아닌, 바람을 제대로 마시고 햇볕을 제대로 먹어야 합니다. 몸이 아픈데에도 서울이나 도시에 남아서 이름이나 돈이나 힘을 붙잡으려 한다면, 몸을 그예 망가뜨리려는 꼴이 됩니다.


  들꽃이나 들풀처럼 바람과 햇볕으로 하루를 지낼 때에 아픈 기운이 사그라듭니다. 숲에 우거진 나무처럼 오직 바람과 햇볕을 벗삼아 하루를 누릴 때에 아픈 곳이 사라집니다.


  바람결에 묻어나는 꽃가루를 마셔요. 바람결에 깃든 푸른 숨결을 마셔요. 바람결에 서리는 햇살 한 조각을 마셔요. 바람결에 감기는 흙내와 풀내를 마셔요.



.. 아직도 금강은 낮게만 흘러 / 흐르고 또 흘러, 하얀 물싸리나무꽃, 아직 / 한 묶음씩 터뜨리는지, / 그걸 보러왔어, 정말이다 ..  (어떤 이별을 위하여·둘)



  서울사람은 모두 아픈 사람입니다. 나는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아 보았는데, 서울에서 지낸 아홉 해는 날마다 아픈 삶이었다고 떠오릅니다. 아프고 아파서 술잔에 기대든 책에 기대든 동무한테 기대든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었구나 싶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서울에는 지하철은 있되 꽃이 없습니다. 서울에는 버스가 많되 들이 없습니다. 서울에는 건물과 가게가 많되 숲이 없습니다. 서울에는 문화와 문명이 넘치되 사랑과 꿈이 없습니다. 서울에는 찻길과 자동차가 물결치되 하늘과 별과 해가 없습니다.



.. 원래 시원스레 웃고 난 다음에는 / 꼭 감기를 앓기로 했다. / 이 땅에 살면 웃는 것도 죄, / 이 땅에 살면 앓는 것도 죄, / 이 딸에 살면 사는 것도 죄, / 죄, 죄, 죄, 그 많은 죄들이 / 내 대신 웃기 시작했단 말이지, 그날 저녁엔 / 히히히 ..  (저녁 편지)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머리맡에 앉아서 이불깃을 여밉니다. 아이들은 저희 아버지가 이불깃을 여미는 손길을 잠결에도 또렷하게 느낍니다. 이를 갈다가도 잠꼬대를 하다가도 가위에 눌리다가도 이불을 걷어차다가도 뒹굴뒹굴 구르다가도, 이불깃을 여미는 손길이 이마에 닿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면, 어느새 길게 하품을 하면서 아주 느긋하며 아늑한 낯빛이 됩니다.


  술 한 잔과 함께 시를 노래하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싶던 윤중호 님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 시골바람 한 줄기를 보냅니다. 4347.12.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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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12-30 09:08   좋아요 0 | URL
옮겨주신 구절을 소리내 읽어보니 듣기 좋습니다.
벌써 올 한해도 다가네요.
올한해도 따뜻한 소식 전해주셔서 즐거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숲노래 2014-12-30 09:50   좋아요 0 | URL
그저좋은휘모리 님한테도
아름다운 새해 기운과 빛살이
두루 퍼지기를 빌어요.
새해에도 아름다운 책에 깃든
아름다운 이야기를 솔솔 나누어 주셔요~ 고맙습니다 ^^
 
우두커니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2
박형권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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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8



겨울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

― 우두커니

 박형권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9.9.30.



  겨울바람을 듬뿍 쐬면서 자전거를 타면 얼굴이 까슬합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맞바람을 안고 자전거를 오래 달리면 등허리가 결립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다녀오고 나서 여러 시간 끙끙 앓습니다. 자리에 누워 등허리를 폅니다. 내가 자전거를 몰지 않고 자동차를 몬다면 등허리가 결릴 일이란 없을까요. 내가 자전거로 아이들을 이끌고 다니지 않고 자동차에 태우고 다닌다면 얼굴이 까슬할 일은 없을까요.



.. 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둔 산 아래 밭에 /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 빵 딸기우유 사서 뒤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며 가는데 /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  (우두커니)



  자전거 타기가 고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혼자 자전거를 타더라도 고단합니다. 자전거 타기가 즐겁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이를 둘이나 셋을 태우고 이끌더라도 즐겁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아슬아슬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곁에서 지켜 주는 사람이 여럿 있어도 아슬아슬하다고 느낍니다. 자전거 타기가 홀가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혼자 아무리 먼 길을 돌아다녀도 걱정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많아야 넉넉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만 원이 있건 백만 원이 있건 천만 원이 있건 천억 원이 있건, 마음이 안 넉넉할 때에 삶이 안 넉넉합니다. 주머니에 푼돈조차 없더라도 마음이 넉넉할 때에 삶이 넉넉합니다.



.. 그 밭에 가보아라 / 네가 먹고 무심코 버린 복숭아씨 / 산복숭아 되어 아비의 그늘을 만들어준다 ..  (산복숭아)



  자전거를 타는 내 마음이 고단하기에 겨울바람을 핑계로 삼아 얼굴이 까슬합니다. 자전거를 타는 내 삶이 고달프기에 겨울 맞바람을 핑계로 삼아 등허리가 결립니다. 왜냐하면, 나는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마실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든요. 자전거를 몰며 노래를 부를 적에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즐거우면서 홀가분합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를 부르기에 숨이 가쁘지 않습니다. 숨이 안 가쁘지도 않습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얼마든지 노래를 부를 만할 뿐입니다.


  언제나 내 생각이 내 하루를 짓습니다. 내가 생각하려는 대로 내 하루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기쁨이나 슬픔 같은 느낌은 모두 내가 지어서 내 앞에 나타납니다. 웃음과 눈물 같은 몸짓은 모두 내가 지어서 내 앞에 드러납니다.


  겨울이니까 찬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곧잘 포근한 바람이 붑니다. 왜 겨울에도 찬바람과 더운바람이 갈마들까요. 그리고, 여름에도 왜 시원한 바람과 무더운 바람이 갈마들까요. 우리는 저마다 어떤 마음이 되어 하루를 짓고, 어떤 생각을 펼쳐 삶을 가꿀까요.



.. 고구마꽃은 어쩌다 한번 피는 거라서 평생 가도 못 보는 사람도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데 / 주식 자랑 새 차 자랑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고구마꽃 자랑을 쓱 까뭉개버렸다 /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 밭이 피우고 비가 피우고 바람이 피운 고구마꽃을 / 내가 피운 것처럼 말한 것이 부끄러웠다 ..  (고구마꽃)



  박형권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우두커니》(실천문학사,2009)를 읽습니다. 박형권 님은 ‘우두커니’ 선 흙지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흙지기는 참말 우두커니 섰을까요. 박형권 님 마음이 우두커니이지 않았을까요. 흙지기는 딱히 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박형권 님 혼자 저이는 우두커니 있네 하고 여긴 셈 아닐까요.


  우두커니 선들, 물끄러미 선들, 하염없이 선들, 부질없이 선들, 홀가분히 선들, 차분하게 선들, 고요하게 선들, 호젓하게 선들, 한갓지게 선들, 가붓하게 선들,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서거나 믿음직히 서거나 노래하며 선대서 딱히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저 서는 모습이고, 그저 사는 모습입니다.



.. 별빛 초롱한 밤, 잠 안 오는 밤 / 허파가 헛헛한 것이 암만 생각해도 담배 생각이다 / 가게에 갔더니 / 공터에서 집 짓던 인부들 노가리 뜯어놓고 맑은 소주 마신다 ..  (봄밤)



  내 아버지가 대통령일 때에 내 삶이 즐거우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내 아버지가 대통령이기는 한데,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이였어도 내 삶은 즐거울 만한지 궁금합니다. 내 아버지가 시골 흙지기일 때에 내 삶이 고단하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고 풀을 아끼며 꽃을 사랑하면서 흙을 가꾸는 어버이가 나를 낳았으면, 나는 여러모로 일을 고단하게 하더라도 언제나 따사로운 사랑을 듬뿍 물려받거나 배울 만합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한테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가꾸면서 걸어갈 뿐입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녁 스스로 가꾸거나 일구는 길을 나한테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걷는 길과 어머니가 사는 길을 곰곰이 바라보면서 모든 내 길을 모두 내 손으로 짓습니다. 아버지가 저렇게 했기에 내가 저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했으니 내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일구는 삶을 바라보면서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일굽니다.



..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아비가 되어 서울 중랑천 옆으로 이사 온 뒤에 나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아들을 데리고 중랑천 둑길을 걸었다 기분이 좋아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때 오목눈이 떼가 우리를 지나갔다 머리에 앉아서 이마를 톡톡 쪼아보고 진주 같은 똥도 떨어뜨렸다 내 어깨에 삭정이를 물고 와서 집을 지으려는 놈도 있었다 ..  (새들이 나를 나무로 볼 때)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면서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나이를 더 먹으면 이제 오줌그릇을 아버지가 비울 일은 없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이 아직 나이가 적으니 오줌그릇을 비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나이가 어리니 밥을 차려서 주고, 옷을 빨아서 입히며, 몸을 구석구석 씻깁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어버이는 날마다 새롭게 하루를 지으면서 아이를 가르치거나 이끕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새롭게 눈을 떠서 새로운 놀이를 누리려 합니다. 어버이는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가다듬어 새로운 일을 붙잡으려 합니다.



.. 허 참, 먹을 복은 있어서, 머리 쓱쓱 긁으며 / 나를 받치느라 약간 기우뚱해지는 배에 뛰어올라 / 내 밥숟가락 하나 받았다 ..  (배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가 태어나는 자리는 삶터입니다. 꼭 이러한 삶터라서 시가 태어나지 않고, 꼭 저러한 삶터이기에 시가 못 태어나지 않습니다. 옳은 시도 그른 시도 없고, 눈부신 시도 구지레한 시도 없습니다. 다만, 바닷물 같은 시라든지 나뭇잎 같은 시는 있습니다. 구름빛 같은 시라든지 꾀꼬리 노래 같은 시는 있습니다.


  박형권 님은 《우두커니》라는 시집을 어떤 숨결이 되도록 엮어서 선보인 셈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박형권 님이 스스로 짓는 삶은 어떤 빛깔과 무늬가 되어 우리한테 이야기보따리로 건네는 싯말로 태어나는지 찬찬히 돌아봅니다. 겨울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4347.12.26.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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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이들 창비아동문고 113
윤동재 지음 / 창비 / 198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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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7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다

― 서울 아이들

 윤동재 글

 박승순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9.12.10.



  모과알은 모과나무에 달립니다. 모과알이 달리자면 모과꽃이 핍니다. 모과꽃이 피려면 모과나무가 자라야 하고, 모과나무가 자라려면 모과씨가 흙에 깃들어 찬찬히 자라야 합니다.


  씨앗은 열매가 되고, 열매는 다시 씨앗이 됩니다. 열매와 씨앗은 모두 목숨입니다. 목숨을 먹는 사람은 새로운 목숨을 잇고, 목숨을 받아들이는 숨결은 새로운 기운을 얻어 삶을 짓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누구나 무엇이든 먹기에 삽니다. 지구별에 있는 모든 목숨은 반드시 무엇이든 먹습니다. 입으로 먹든 살갗으로 먹든, 풀과 나무뿐 아니라 벌레와 짐승과 물고기 모두 무엇이든 먹습니다.



.. 서울 아이들에게는 / 질경이꽃도 / 이름 모를 꽃이 된다. // 서울 아이들에게는 / 굴뚝새도 / 이름 모를 새가 된다 ..  (이름도 모르고)



  우리 삶에서 밥은 대단히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왜냐하면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고 할 만하니까요. 그렇지만 학교를 다니면 정작 밥을 가르치거나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밥 이야기를 거의 안 다룹니다. 이제는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인문계 학교는 아이와 어른 모두 손수 밥을 짓는 살림일을 몸소 하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이란, ‘밥을 돈을 치러 사서 먹을 수 있도록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는 길’을 알려주는 데에서 그칩니다. 어떤 밥을 먹을 적에 몸이 즐거운지 안 가르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먹을 적에 삶을 아름답게 가꿀 만한지 못 가르칩니다. 어떤 밥을 어떻게 지어서 누구와 먹을 적에 삶을 사랑스레 북돋울 만한지 하나도 안 가르칩니다. 밥을 지으려면 먹을거리는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 조금도 못 가르칩니다.



.. 학교 오갈 때는 걷고 싶은데 / 자가용 꼭꼭 태워 줘요 // 이렇게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이렇게 자라서)



  예전에는 ‘서울 아이’만 질경이꽃을 몰랐을 테지만, 요즘에는 ‘시골 아이’도 질경이꽃을 모릅니다. 그리고,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 가운데 질경이꽃을 알아보는 사람이 퍽 드물고, 앞으로는 더욱 드물 테며, 대학교나 공공기관이나 법원이나 청와대나 국회나 신문사나 방송사 같은 데에서 질경이꽃을 다루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른 자리에 선 사람은 예나 이제나 무엇을 알까요? 학교에 자가용을 몰고 가는 교사는, 일터에 자가용을 끌고 오가는 어른은, 어제와 오늘 무엇을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는가요?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굴뚝새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굴뚝부터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는 비둘기나 까치나 참새쯤 으레 본다고 하지만, 이러한 새를 보면서 ‘새’를 본다고 느끼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도시에도 온갖 들풀이 돋고 시들지만, 들풀마다 어떤 이름인지 헤아리거나 살피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동시집 《서울 아이들》(창작과비평사,1989)을 쓴 윤동재 님은 〈이렇게 자라서〉라는 동시에서 묻습니다. “이렇게 자라서 무엇이 될까요 /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되었을까요? 현대문명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물질문명을 더욱 뽐냅니다.


  서울살이를 한숨지으며 바라보는 쓸쓸한 눈길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울 아이들》인데, 이 동시집이 처음 나올 즈음뿐 아니라 2010년대에도 시골은 일찌감치 시골빛을 잃었습니다. 새마을운동 탓만이 아니고 경제개발 탓만이 아니며 올림픽 탓만이 아닙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삶을 안 가르치고 입시지옥만 몰아세웁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삶을 못 배우고 입시지옥만 배우면서 길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사랑을 못 받으면서 입시지옥 무게에 짓눌리기만 합니다.



..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 내 손잡고 노래도 같이 부르고 / 모르는 것 있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고 / 어떤 때는 어머니 대신 / 라면도 끓여 주던 우리 누나 / 고등학교 다니고부터는 도무지 / 우리 누나가 아닌 것 같아요 ..  (우리 누나)



  아이들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한테 사랑을 안 가르칩니다. 입시 지도만 합니다. 아이가 바라는 사랑을 찬찬히 이야기하지도 않고, 아이가 꿈꾸는 사랑을 가만히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어른은 누구나 몹시 바쁩니다. 오늘날 어른은 참으로 일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아주 오랜 나날을 보내는데, 학교에서는 사랑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주는 학교 얼거리인데, 아이들은 시집이나 동시집을 읽으면서 어떤 마음이 될는지 궁금합니다.



.. 들길을 걷다 보면 / 도랑 가로 달개비꽃 피어 있지요 / 달개비꽃 볼 때마다 / 달개비란 이름 맨 처음 붙인 사람 / 궁금하지요 ..  (누구일까)



  뜨거운 물을 단추만 눌러서 뽑은 뒤 부으면 몇 분 뒤에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은 쓰레기를 낳습니다. 다 먹은 뒤에도 쓰레기가 남고, 컵라면을 만드는 동안에 공장에서 쓰레기가 나옵니다. 냄비로 끓이는 봉지라면도 비닐봉지가 쓰레기로 남고, 봉지라면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쓰레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공장에서 만들어 가게로 나르자면 짐차가 굴러야 하고 짐차가 구를 찻길이 있어야 합니다. 공장을 돌리자면 숲을 밀어야 하고, 나라밖에서 석유를 사들여야 하는데, 석유를 뽑는 나라는 땅뙈기를 더럽힙니다. 석유를 사들이자면 커다란 배를 무어야 할 텐데, 커다란 배를 뭇느라 바다를 더럽히고, 배를 몰자면 석유를 들여야 하니 또 바다를 더럽히며, 배를 무을 때에 쓰는 쇠붙이를 파내자고 다시 숲을 더 망가뜨립니다. 적은 돈으로 사서 먹는 라면 한 봉지 때문에 지구별 곳곳을 파헤치거나 망가뜨리거나 부숩니다.


  라면 한 봉지를 사다 먹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쁠 일은 없습니다. 무엇을 먹는지 느끼지 못한다면 삶이 없을 뿐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먹으면서 삶을 지으려고 하는지 깨닫지 않는다면 사랑이 자라지 않을 뿐입니다.


  배를 채우려고 밥을 먹는다면, 왜 배를 채워야 할까요? 배를 채워서 무슨 일이나 놀이를 할 생각일까요? 내가 누리는 일과 놀이는 무슨 보람이나 재미나 뜻이 있을까요?



.. 시냇가에 곱다랗게 / 피어 있는 제비꽃 / 물속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제비꽃)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습니다. 학교가 아이한테 가르치는 것이 똑같고, 어른이 학교와 마을과 집에서 하는 일이 똑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든 시골에서든 똑같이 하늘을 등에 입니다. 서울에서는 매캐한 먼지띠를 등에 인다고 할 테지만, 너른 누리에서 헤아리자면 먼지띠는 아주 작습니다. 지구별한테까지 빛을 보내는 다른 이웃 별을 헤아리자면 먼지띠는 아무것이 아닙니다.


  먼지띠가 아닌 온누리를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지띠 너머에 있는 수많은 별빛과 미리내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이웃 별을 사귑니다.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야 내 몸에 깃든 기운을 살핍니다.


  눈을 뜨면 어디에 있더라도 마음을 열어 사랑을 키웁니다. 눈을 못 뜨면 어디에 있더라도 눈먼 바보가 되어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못 짓습니다.


  겨울에 겨울바람을 실컷 느낍니다. 봄에 봄볕을 실컷 느낍니다. 여름에 들나물을 실컷 느낍니다. 가을에 가을빛을 실컷 느낍니다. 마음에서 자라는 꽃을 느끼면서, 들에서 피고 마당과 길가와 골목에서 함께 피는 고운 숨결을 느낄 수 있기를, 서로 이웃이요 동무인 줄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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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반 교과서 창비시선 39
김명수 / 창비 / 198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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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9



‘입시지옥 죽음터’인 학교에서

― 하급반 교과서

 김명수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3.5.25.



  노래는 모두 노래입니다. 오래된 노래가 없고 새로운 노래가 없습니다. 즐겁게 부르는 노래라면 모두 새로운 노래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노래입니다.


  꿈은 모두 꿈입니다. 오래된 꿈이 없고 새로운 꿈이 없습니다. 즐겁게 꾸는 꿈이라면 모두 새로운 꿈이고, 즐겁지 않다면 오래되거나 낡거나 묵은 꿈입니다.



.. 지금도 허리 끊어진 남북분계선 / 시계 청소를 하는 병사들의 톱에 / 아름드리 소나무는 베어져 나가는데 ..  (그 봄의 식수)



  새롭게 받아들일 때에 노래요 꿈입니다. 새로운 마음이 될 때에 노래를 부르거나 꿈을 꿉니다. 마음이 늘 새로운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마음을 늘 새롭게 다스리는 사람이 꿈을 꿉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한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니, 다른 사람이 노래를 할 적에 함께 기뻐하거나 웃지 못합니다. 새로운 마음이 되지 못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니 꿈을 꾸는 이웃이 있을 적에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지 못하면 두레나 품앗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일곱살 때였던가 / 삐라를 뿌리며 읍내 상공을 / 커다란 프로펠러 빙글빙글 돌리며 / 버짐난 우리들 머리 위로 날아가던 저 비행기 / 잠자리채 속에 사로잡았던 / 장수잠자리보다 / 더 신기하던 헬리콥터를 ..  (헬리콥터)



  김명수 님이 쓴 《하급반 교과서》(창작과비평사,1983)를 읽습니다. 어느덧 서른 해가 지난 시집입니다. 서른 해가 지난 예전 이야기를 담은 시집이라 할 수 있고, 서른 해 앞서 이 땅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을 다룬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야구방망이를 골마루에서 흔들면서 엉덩이를 후려치는 교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졌을까요? 요즈음은 서른 해 앞서처럼 이런 돈을 걷거나 저런 돈을 모으느라 아이들이 고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평화가 자라나요?



.. 소나무는 솔씨를 간직하고 섰으리라 / 지나간 겨울 산에 갔다가 / 내가 보았던 나무들의 작은 씨앗 / 멀리서 오늘처럼 비 오는 날도 / 비바람에 나무들 작은 씨앗들이 / 제 몸 묻어 푸른 산을 꿈꾸며 섰으리라 ..  (솔씨)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삽을 들고 운동장을 펴는 일 따위는 안 합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폐품수집을 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학급시설을 갖추느라 바자회를 열면서 학교에 돈을 바쳐야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골마루에 엎드려서 양초나 왁스를 문지르면서 반들반들 빛이 나도록 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는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학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늘날 학교는 어느 대목이 나아졌는가요? 오늘날 학교는 지난날 아이들이 고단하게 겪어야 했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은 사라졌다고 할 만한데, 무엇보다 가장 큰 고단함은 사라졌을는지, 아니면 가장 큰 고단함이야말로 더 커졌을는지 궁금합니다.



.. 봄이 와도 / 봄이 와도 / 고단한 봄날 / 우리 어매 홀로 조밭을 맨다 ..  (노고지리)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가장 크게 짊어지는 굴레는 ‘시험지옥’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가르치고 싶어서 학교에 넣지만, 막상 학교는 아이를 가르치는 노릇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예나 이제나 학교는 ‘입시지옥’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시험점수를 더 받아내도록 하는 데에만 바쁜 학교입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에는 어버이 스스로 ‘삶을 가르치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대학교에 보내려는 마음’으로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할까요.


  그나마 예전에는 ‘아이가 동무를 사귀면서 놀도록’ 할 뜻으로 학교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학교에서 아이들은 마음껏 놀지 못합니다. 학교는 놀이터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학교는 입시시험을 치르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 키만 크신 아버지 / 우리집 서 마지기 논농사는 어떤지요? / 제가 사는 영등포는 하늘이 어둡지만 / 흉년든 고향에도 / 하늘은 가을 되어 파랗겠지요 ..  (소액환)



  내 아이가 놀고 싶다 하더라도 다른 아이는 놀 수 없습니다. 학원에 가야 할 테니까요. 학원에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울 뜻이기 때문입니다. 웃학교에 더 잘 들어가도록 몰아세우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웃학교를 거치고 또 더 나은 웃학교를 지나서 ‘돈을 많이 벌고 몸은 덜 쓰면서 일은 수월한 일자리’를 얻도록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제 학교라는 곳은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곳인데, 입시시험으로 내모는 까닭은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려는 뜻’ 때문이고, 돈을 더 많이 벌도록 하는 일자리도 ‘나는 몸을 안 쓰고 다른 이가 몸을 쓰도록 일을 시킬 수 있는 자리에 서도’록 하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 설운 이름 너무 많다 /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 건드리면 끊어질 듯 / 바람불면 쓰러질 듯 /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 우리는 그날을 / 새봄이라 믿는다 ..  (우리나라 꽃들에겐)



  학교를 더 다닌다고 해서 됨됨이가 나아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됨됨이를 안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오직 입시시험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학교이니, 더 낫다는 웃학교에 들어가도록 시험점수는 높일 수 있더라도, 착한 마음이나 바른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상냥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이나 맑은 마음이나 훌륭한 마음이나 멋진 마음이나 예쁜 마음이나 좋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그 좋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사회에서 갖가지 사건과 사고를 터뜨립니다. ‘그 훌륭하다’는 대학교를 나온 젊은이가 정치나 경제나 문화 같은 행정을 맡을 적에 몹쓸 짓을 저지르기 일쑤입니다. ‘더 낫다는 웃학교’에는 들어가도록 길들여졌지만, 마음씨를 올바로 추스르는 길은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와 대학원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한테 ‘꿈’을 안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며 ‘믿음’을 안 가르칩니다. 이웃이 누구인지 안 가르치고, 동무가 누구인지 안 가르치며, 사람이 누구인지 안 가르쳐요.



.. 광주에 사는 내 친구 시인 / 김장독을 파묻다가 삽날에 나온 것은 / 찢어진 비닐봉지 조각이라나 / 묻혀서도 썩지 않는 비닐봉지라나 ..  (기정사실)



  시집 《하급반 교과서》를 찬찬히 읽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만 가르치는 이 얼거리를 그대로 잇는다면,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앞날을 밝힐 등불이나 별빛’이 될 수 없습니다. 머릿속에 교과서 시험지식만 가득 채운 아이들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잘못을 더 저지를 슬픈 굴레’가 되고 맙니다.



.. 어느새 자라난 아들의 머리를 / 뒷마당에 나와서 잘라주고 있다 / 헌 신문지로 목둘레를 여미고 / 눈을 덮는 긴 머리를 잘라주고 있다 / 무엇이든지 잘 잘리는 / 어머니 쓰시던 큼직한 가위 ..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면서)



  아이들한테 교과서를 가르치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교과서만 가르치려 하니 뒤틀리거나 비틀립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일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학교는 다니되 삶은 못 배우고 사랑을 못 배우며 꿈이나 믿음이나 이야기나 웃음을 배우지 못하니 바보스럽거나 미련한 굴레에 사로잡힙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두레와 품앗이를 펼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가 없는 학교는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마을음 죽음터입니다. 노래가 없는 일터와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는 모두 죽음터입니다.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대중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손수 길어올려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흘러야 합니다. 노래가 태어나야 하고, 노래가 자라야 합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물려주어야 하고,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노래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교과서가 사라지기를 빕니다. 교과서 아닌 사랑으로, 어버이가 아이를 기쁘게 가르칠 수 있기를 빕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아니라 보금자리라는 사랑터에서 아름다운 꿈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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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 애지시선 34
김나영 지음 / 애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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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7



삶을 지으면서 시를 짓는다

― 수작

 김나영 글

 애지 펴냄, 2010.10.30.



  마당에서 마을고양이가 웁니다. 마을고양이는 저마다 우리 집을 저희 터로 삼으려고 용을 씁니다. 우리 마을에서뿐 아니라 둘레 여러 마을을 아울러 ‘겨울에도 먹이를 얻을 만한 곳’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마을고양이가 조금만 운다든지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는다면 시끄러울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마을고양이는 서로 툭탁거립니다.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녀석이 꼭 덩치가 작거나 힘이 여린 녀석을 윽박지르거나 때립니다.


  덩치 큰 녀석은 어째서 그 덩치로 아름다운 짓을 하지 못할까요. 힘이 센 녀석은 어찌하여 그 힘으로 어여쁜 일을 하지 않을까요.



.. 아들 녀석의 방바닥 / 여기저기 박혀 있는 얼룩들 / 닦아도 닦아도 잘 지워지질 않는다 / 몇 번 힘주어 닦아내자 그제서야 ..  (유월)



  밤에 마당에 서면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바깥이 깜깜하고 등불이 거의 없는 시골이기에 별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별을 보고 싶으니 별을 봅니다. 고개를 들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맴을 돕니다. 얼마나 많은 별빛이 쏟아지는지 바라봅니다. 어떤 별빛이 우리 집으로 스며드는지 헤아립니다.


  별은 별을 보려는 사람한테 찾아갑니다. 별을 보려는 사람은 별을 볼 수 있을 만한 터전을 찾아갑니다. 나무는 나무를 사귀려는 사람 곁에서 자랍니다. 나무를 사귀려는 사람은 나무를 곁에 둘 수 있는 터전에서 기쁘게 삶을 꾸립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삶이 흐릅니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삶길을 걷습니다. 마음이 자라는 대로 삶이 자라고, 마음이 웃고 우는 자리가 사랑이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가내수공업을 / 어느 날 아버지가 방안 가득 부려놓았다 / 삼십 촉 전등 아래 고무판화처럼 박혀서 / 온 식구들이 너덜너덜한 삶을 풀칠하기 시작했다 ..  (사춘기)



  김나영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수작》(애지,2010)을 읽습니다. ‘나영’은 이녁이 어버이한테서 받은 이름이 아니라고 합니다. 시를 쓴 분한테는 어버이가 붙인 이름이 따로 있고, 이녁이 새롭게 누리는 이름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나한테도 이름이 여럿 있습니다. 내 어버이가 나한테 지어서 준 이름이 있고, 내가 나한테 선물한 이름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한쪽 이름만 좋아하거나 즐기지 않습니다. 내 어버이는 이녁 사랑을 담아서 나한테 이름을 주었고, 나는 내 사랑을 실어서 나한테 새로운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두 가지 이름에는 저마다 다른 사랑과 숨결이 흐릅니다.



..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  (브래지어를 풀고)



  아이한테 ‘개구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개구쟁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말썽쟁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말썽쟁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놀이순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놀이순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책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책돌이로 자랍니다. 아이한테 ‘사랑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아이는 사랑둥이로 자랍니다.


  그리고, 아이한테 붙이는 이름은 고스란히 내 이름입니다.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가 받아먹는 이야기입니다.


  조금만 생각할 수 있으면 모두 알아챕니다. 아이한테 차려서 주는 밥은 바로 어버이 스스로 먹는 밥입니다. 아이가 지내는 보금자리는 바로 어버이인 내가 지내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한테 베푸는 사랑은 바로 어버이인 내가 나 스스로한테 베푸는 사랑입니다.



.. 그때 만일 교과서가 더 재미있었더라면 때론 별책부록 안에 더 재미있는 페이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  (그때 만일 교과서가 더 재미있었더라면)



  시집 《수작》은 곱다라니 빛나다가도 어두컴컴한 굴로 들어갑니다. 가만히 웃으며 노래를 하다가도 노래를 뚝 그치고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김나영 님이 ‘밥을 안 해도 되는 사내’라면 어떤 시를 썼을까요? 김나영 님이 ‘집안 청소를 도맡지 않아도 되는 사내’라면 어떤 시를 쓸까요?


  삶을 지으면서 시를 짓습니다. 삶을 노래하면서 시를 노래합니다. 삶을 꿈꾸면서 시를 꿈꿉니다.



.. 시 쓰는 내가 책상 하나 없다 / 나는 바닥에, 거리에, 꽃잎 위에 엎드려 시를 쓴다 ..  (극빈)



  더 낫거나 덜떨어지는 삶은 없습니다. 더 나은 시라든지 덜떨어지는 시는 없습니다. 더 나은 노래나 덜떨어지는 노래도 없습니다. 사랑을 놓고도 더 나은 사랑이나 덜떨어지는 사랑을 가르지 않습니다. 오직 삶이고, 시이며, 노래요, 사랑입니다.


  스스로 찾는 즐거움입니다. 스스로 부르는 고단함입니다. 스스로 쓰는 글입니다. 스스로 짓는 하루입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따분하면서 지겹게 하루를 보내면서 따분함과 지겨움으로 얼룩진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슬프면서 아프게 하루를 보내면서 슬픔과 아픔으로 어우러진 시를 씁니다. 누군가는 스스로 꽃이 되고 들풀이 되면서 꽃내음과 풀빛으로 환한 시를 씁니다. 4347.12.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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