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1등 하지 마 크레용하우스 동시집 2
이묘신 지음, 박혜선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52



나는 재미있게 놀고 싶어

― 너는 1등 하지 마

 이묘신 글

 박혜선 그림

 크레용하우스 펴냄, 2012.10.30.



  아이는 누구나 스스로 놉니다. 장난감을 손에 쥐어도 잘 놀고, 장난감이 손에 없어도 잘 놉니다. 우리 집 두 아이도 이렇게 놀지만, 나도 어릴 적에 이렇게 놀았습니다. 장난감이 있으면 있는 대로 놀며, 장난감이 없으면 손가락을 장난감으로 삼고, 나뭇가지나 돌이나 가랑잎을 장난감으로 삼으며, 머릿속으로 온갖 장난감을 그려서 놉니다.


  우리는 손에 쥔 장난감으로도 놀지만, 마음속에 생각으로 그린 장난감으로도 놉니다. 손에 쥔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을 뿐 아니라, 마음속으로 그린 장난감도 놀랍고 재미있습니다. 어느 장난감을 갖고 놀든, 마음을 따사롭고 넉넉하게 둘 수 있으면 됩니다.



.. 봉숭아 꼬투리에서 터진 씨앗들 / 바람과 술래잡기한다 ..  (나야, 나)



  시골에서 나무를 바라보며 놉니다. 나무를 탈 수 있고, 나무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커다란 나뭇줄기에 귀를 가만히 대고 한참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에 귀를 대고 눈을 감다가 깜빡 잠들 수 있습니다. 때로는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 수 있어요.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운 날 풀밭에서 잠들면 아주 상큼합니다.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따사롭게 돌보는 손길을 실컷 누립니다. 우리 몸에 아픈 데가 있다든지, 우리 마음에 슬픈 데가 있으면, 흙과 풀과 바람과 볕과 나무가 우리를 곱게 어루만지면서 다독여 주어요.


  나는 어릴 적부터 풀밭에 드러누워 잠들기를 즐겼습니다. 어쩐지 이렇게 잠들면 무척 달콤하면서 아늑했어요. 도시에서는 풀밭을 만나기 어렵고, 마땅한 풀밭을 찾기란 매우 힘들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풀밭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곳에 드러누웠어요.


  풀밭에 드러누우면 개미가 내 몸을 타고 기어다닙니다. 풀밭에 드러누워 가만히 있으면 메뚜기나 사마귀도 내 둘레로 지나갑니다. 누워서 하늘을 보면,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하늘을 가르는지 알아챕니다. 누워서 눈을 감으면, 풀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엄청난 노래잔치로 스며들고, 때때로 섞이는 멧새 노랫소리는 놀라운 숨결처럼 깃듭니다.


  그러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풀밭에 누워서 노는 삶’을 누렸습니다. 누구나 풀밭에서 뒹굴고 풀밭에서 누우며 풀밭에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내가 기분 좋아 흥얼거리면 / 엄마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 / 내가 아파서 기운 없으면 / 옆에 있는 엄마도 힘이 없는 거야 ..  (엄마와 이어진 줄)



  흙바닥에서 뛰어놀면 다치는 일이 없습니다. 물구나무를 서든, 구르기를 하든, 흙바닥에서는 아무도 안 다칩니다. 흙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마음껏 달리고 뛰고 구릅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에서 뛰어놀다가 넘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깨집니다. 더군다나,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바닥은 거의 자동차가 차지합니다. 아이들이 놀 빈터가 없어요.


  도시에서 흙이 사라지며 아이들은 놀이를 빼앗깁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를 도시로 빼앗겼고, 시골에서 아이를 도시로 빼앗기면서 농약과 비료가 춤추니, 시골은 도시 못지않게 풀밭도 빈터도 도시만큼 거의 없습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으며, 놀 생각마저 어른한테 빼앗깁니다. 아니, 학교와 학원으로 닦달하는 어른한테 모든 삶을 빼앗기는 아이입니다.



.. 할머니는 밥상을 가져와 / 텔레비전 앞에 앉았어요 / - 그래, 너하고 나하고 마주 보고 밥이나 먹자 ..  (할머니와 밥)



  이묘신 님 동시집 《너는 1등 하지 마》(크레용하우스,2012)를 읽습니다. 동시집 이름부터 축 처집니다. 1등을 하지 말라는 소리가 흐르는 동시라니, 이러한 삶이 오늘날 아이들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가슴이 시립니다. 왜 1등을 하지 말아야 할까요. 왜 1등이 되면 서로 고단할까요. 어른이 세운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왜 서로 다투거나 옥신거려야 할까요.



.. 윗집 빨랫줄에 / 매달린 / 빨래집게들 // 빨강 / 노랑 / 파랑 // 봄바람에 / 흔들흔들 / 꽃잎 같아 ..  (빨래집게)



  놀지 못하는 아이는 배우지 못합니다. 학교에만 가면 배운다고 잘못 생각하기 일쑤인데,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만 시키는 학교는 참말 아이한테 아무것도 안 가르칩니다. 시험공부는 ‘공부’조차 아닐 뿐 아니라, 어떤 ‘가르침·배움’도 될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를 어디에 쓰나요? 시험공부로 밥을 짓거나 옷을 짓거나 집을 짓지 않습니다. 시험공부로는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시험공부로는 꿈을 꾸지 못합니다. 시험공부로는 동무를 못 사귀고, 어른을 섬기지 못하며, 여행이나 놀이도 누리지 못해요. 시험공부로는 오직 대학입시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공부를 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어른은 아이한테 시험을 들이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어른이 할 일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며, 아이와 사랑으로 삶을 지어야 할 뿐입니다.


  사랑스레 즐겁게 읽을 책이 아니라면, 아이한테 책을 주지 말 노릇입니다. 독후감을 쓰거나 논술 훈련을 잘 하도록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삶에 빛이 되는 길동무로 삼도록 하는 책입니다. 사랑을 누리거나 나누는 길잡이가 되는 책입니다.



..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 줬어요 / - 여우는 교활했어요 / - 엄마, 교활이 뭐야? / 엄마는 얼른 국어사전을 가져왔어요 / - 교활은 간사하고 꾀가 많다는 거야 / 꾀가 많은 건 알겠는데 간사란 말은 어려웠어요 / - 간사한 거는 뭐야? / 다시 사전을 찾는 엄마 / - 응, 간교하고 남을 잘 속이는 거야 / 속이는 건 알겠는데 간교가 뭔지 궁금했어요 / 엄마가 사전을 다시 찾았지요 / - 간교는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거야 / - 어? 교활이 또 나왔네 / 사전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엄마도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  (말꼬리)



  동시를 쓰는 어른은 글줄에 꿈을 실을 수 있기를 빕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언제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노래인 동시이니, 아이들이 언제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꿈을 싣고 사랑을 담아 곱게 글을 쓰기를 빕니다. 노래가 될 만한 놀이를 어른부터 스스로 즐기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노래로 다시 태어날 만한 삶을 어른부터 스스로 가꾸면서 동시를 쓰기를 빌어요.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문학을 맛보거나 문화를 즐겨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예술을 알거나 교육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놀면서 가슴에 사랑을 담고 마음에 꿈을 심어야 합니다. 동시가 나아갈 길은 ‘사랑을 노래하는 삶을 짓는 따사로운 꿈길’이라고 생각합니다.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들레처럼 2015-02-07 23:1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른이 할 일과 동시가 나아갈 길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 겠어요.

숲노래 2015-02-08 05:10   좋아요 1 | URL
스스로 삶을 즐겁게 지으면
시는 노래가 되어 저절로 흐르니
굳이 동시를 쓰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다 그렇답니다~~
 
밀물결 오시듯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4
이봉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시 91



내가 너를 바라보듯이

― 밀물결 오시듯

 이봉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12.30.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눈을 뜨지요. 눈을 뜨고 나면 오늘 할 여러 가지 일이 떠오릅니다. 어느 일부터 즐겁게 할까 하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몸을 비트는데, 가만히 보면 이런 ‘몸 비틀기’는 춤사위입니다. 괜히 춤을 추고, 조용히 이부자리에서 벗어나 부엌으로 가면서 춤을 춥니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부엌에 와서 오늘 아침에 지을 밥을 생각합니다. 흐르는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습니다. 마당으로 내려와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동이 텄으면 동 튼 하늘을 보고, 아직 어두우면 어두운 하늘을 봅니다.


  이제 마당을 둘러싼 우리 집 나무를 바라보고, 뒤꼍에 가서 뒤꼍 나무한테 인사합니다. 나무한테 인사하러 마당과 뒤꼍을 거닐면서 어깨춤을 춥니다. 왜냐하면, 우리 집 나무한테 내 춤사위를 보여주면서 나 스스로 홀가분한 몸이 되려 하니까요.



.. 아버지 혼자 고향 흙집 골방에서 컥컥 울기도 하셨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버지 속이 타고 얼굴 해쓱해지도록 서울 놈은 고향에 그늘 한 폭 드리워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버진 그 ‘큰 그늘 덕’을 톡톡히 보셨다 ..  (서울놈들)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를 돌아보면, 아침 낮 저녁으로 이 나무가 얼마나 야무지게 자라는가 하고 느낄 만합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이 아이들이 날마다 얼마나 튼튼하게 자라는가 하고 느낍니다. 늘 바라보니 ‘키가 얼마나 크’고 ‘몸이 얼마나 자라는가’를 못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이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한참 만에 보아야 ‘키가 부쩍 자란’ 줄 느끼지 않아요. 아이들이 아침저녁으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만 보아도 키가 어느 만큼 자라는가 느낄 수 있고,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면서도 얼마든지 키와 몸을 헤아립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마실을 다니는 동안에도 이 아이들이 어느 만큼 자라는가를 깊이 깨닫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몸에 달린 눈’으로만 서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보는 눈’이 있기에 서로 사랑하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고 섬기는 마음은 바로 ‘마음으로 보는 눈’으로 기릅니다. 몸으로 보는 눈으로는 그저 몸만 지켜볼 뿐입니다.



.. 청소 시간 비질에 열심이던 다영이가 또록이 묻는다. // 선생님, 누군가를 좋아하면 진짜 가슴이 두근거려요? / 왜? 너도 요새 누군가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냐? / 아니요, 책에서는 그러던데 진짜도 그러나 궁금해서요 ..  (피어버린 꽃에는 안 보이는 떨림이)



  이봉환 님이 빚은 시집 《밀물결 오시듯》(실천문학사,2013)을 읽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이봉환 님입니다. 그러니, 이 작은 시집을 보면, 이봉환 님이 날마다 마주하는 ‘시골 아이’ 몸짓과 웃음과 눈물이 짙게 드러납니다. 시집 《밀물결 오시듯》에는 이봉환 님이 나고 자란 시골 삶터 이야기가 흐르는 한편, 이봉환 님이 맡아서 가르치는 시골 아이 이야기가 흐릅니다.



.. 바느질에 갇힌 어머니 한숨이 솜이불에 남아서 / 겨우내 우리 몸은 포근하였던 것 / 그 많은 날들을 잠들 수 있었던 것 ..  (밀물결 오시듯)



  내가 너를 바라보듯이 네가 나를 바라봅니다. 내가 너를 사랑으로 바라보듯이 네가 나를 사랑으로 바라봅니다. 가는 말이 고우니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은 참말입니다. 내가 너한테 사랑을 보내는데, 네가 나한테 미움을 보내지 못합니다. 더러, 네가 나한테 미움을 보낼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나는 압니다. 네가 나한테 미움을 보내더라도, 이 미움은 ‘사랑이 깃든 미움’인 줄 압니다. 그래서, 네가 너한테 사랑을 보냈을 적에 네가 나한테 미움을 보내더라도 네가 밉지 않아요. 반가우면서 그예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심어서 사랑을 가꿉니다. 사랑을 가꾸어서 사랑을 거둡니다. 사랑을 거두어서 사랑을 갈무리합니다. 사랑을 갈무리한 뒤 겨울을 나고, 겨울을 다 나고 나면 새로운 봄에 사랑을 새롭게 심습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이기에, 볍씨도 심고 사랑도 심으며 꿈도 심습니다. 이야기도 심고, 노래도 심으며, 시(글)도 심습니다. 시집 한 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을 고루 누린 삶이 묻어나는 노랫가락입니다.



.. 지선이와 지은이는 복도를 지나 당당하게 집으로 갑니다. 맨날 거짓말하고 바른 행동 안 하는 쟤네들과는 앞으로 같이 놀아주지도 않을 작정입니다 ..  (왕따)



  너와 나는 지구사람입니다. 너와 나는 지구이웃입니다. 너와 나는 지구동무입니다. 너와 나는 지구사랑이고, 지구꿈이며, 지구노래입니다. 이 별에서 함께 어깨를 겯고 씩씩하게 걷습니다. 너와 나는 길동무요, 때때로 서로 길잡이가 되어 줍니다. 어느 때에는 서로 이슬떨이가 되고, 언제나 살가운 너나들이로 지냅니다.


  네가 나한테 보내는 사랑을 받으니, 나도 너한테 사랑을 보냅니다. 아주 마땅해요.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을 보냅니다.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고는 새로운 사랑을 물려줍니다. 싯말 한 마디는 언제나 사랑으로 씨앗을 심는 손길로 씁니다. 4348.2.4.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양물감 2015-02-04 13:00   좋아요 0 | URL
시집을 잘 읽지는 않지만, 가끔은 시가 위로도 되고 편안해질 때가 있어요.
소개해주시는 시집, 관심 갖고 보겠습니다.

숲노래 2015-02-04 13:13   좋아요 1 | URL
시는 언제나 노래가 되어
우리 마음을 따사롭게 밝히는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곤 해요.
하양물감 님은 아이와 함께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
 
닳지 않는 손 - 서정홍 동시집
서정홍 지음, 윤봉선 그림 / 우리교육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34



아이를 쓰다듬는 손은 나중에

― 닳지 않는 손

 서정홍 글

 우리교육 펴냄, 2008.5.30.



  오늘 내 손은 두 아이를 쓰다듬습니다. 두 아이한테 내가 어버이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두 아이를 쓰다듬으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두 아이는 내 손길을 받으면서 새근새근 잠들지요. 아이들도 꿈을 꾸고, 나도 꿈을 꿉니다. 우리는 다 함께 가슴에 꿈을 하나씩 품으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 하루 일 마치고 돌아온 / 어머니, 아버지는 / 밤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 서로 발톱을 깎아 주고 / 서로 어깨를 주물러 줍니다 ..  (어른이 되면)



  큰아이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듯해서, 살며시 큰아이 손을 잡습니다. 큰아이한테 소근소근 말을 겁니다. 큰아이는 아버지 말을 들으면서 가만히 눈을 감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싶을 무렵 살며시 일어나서 옆방으로 나오니, 두 아이가 번쩍 눈을 뜨고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합니다. 으잉? 너희들 자는 척했니? 그래 그렇구나. 너희들 마음은 그렇구나.


  아이들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일부러 듣지는 않습니다. 조그마한 시골집에서는 작은 소리도 옆방까지 잘 들립니다. 나는 아이들 말소리를 들으면서 즐겁습니다. 아마 두 아이도 아버지가 저희 귀에 대고 따사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 몹시 즐거우면서 설렐 테지요.



.. 나무로 만든 / 숟가락과 젓가락도 닳고 / 쇠로 만든 / 괭이와 호미도 닳는데 / 일하는 손은 왜 닳지 않을까요 ..  (닳지 않는 손)



  삶을 밝히는 말은 아주 쉽습니다. 왜냐하면, 쉬운 말이 넋을 살찌우고, 넋을 살찌운 말은 다시 삶을 살찌우기 때문입니다. 늘 먹는 수수한 밥이 날마다 몸을 살찌우듯이, 늘 주고받는 말은 마음을 살찌웁니다.


  이러구러 꾸미는 말은 삶을 살찌우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꾸미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럭저럭 덧붙이는 말은 삶을 북돋우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덧붙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랑’이나 ‘옷을 새로 주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은 그저 사랑입니다. 다른 것을 꾸며서 덧붙이지 않습니다. 꽃은 꽃 그대로 꽃이지, 꽃에 다른 빛깔을 입혀야 더 곱지 않고, 무언가 스티커를 붙여야 더 예쁘지 않습니다.


  양념을 치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양념만으로는 밥을 먹을 수 없을 뿐입니다.



.. 그런데 요즘은 양복 한 벌 값이 / 한 해 내내 먹을 쌀값보다 비싸다지. / 그렇게 비싼 옷들이 / 집집마다 옷장에 가득 쌓였다지 ..  (옛날이야기 4)



  서정홍 님 동시집 《닳지 않는 손》(우리교육,2008)을 읽습니다. 동시집 《닳지 않는 손》은 서정홍 님이 살아온 나날을 적은 책이고, 이 책은 바로 이녁 아이한테 물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어버이요 아버지로서 지은 삶을 담은 책이면서, 아이가 앞으로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는 꿈을 실은 책입니다.



.. “아버지, 농촌에는 왜 / 할머니와 할아버지밖에 살지 않을까요? / 할머니와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 누가 농사지을까요? / 우린 무얼 먹고 살지요?” ..  (‘고구마 캐기’ 행사에 다녀와서)



  나는 아이들한테 글을 적어서 건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적어서 건네는 글을 받습니다. 나는 아이들한테 그림을 그려서 건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그려서 건네는 그림을 받습니다. 아이들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아버지한테 내밉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쓴 글과 그린 그림을 받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늘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글과 그림을 선물로 주고받을 뿐 아니라, 노래를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꿈과 사랑을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이야기와 숨결을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받을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 아니라, 그저 주는 선물입니다. 주면서 자꾸 줄 수 있는 선물이요, 주기에 언제나 줄 수 있는 선물입니다. 나누기에 늘 나눌 수 있는 사랑이요, 나누면서 한결같이 나누며 웃음이 피어나는 사랑입니다.



.. ‘어머니,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 공장에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합니까? / 사람들 머리도 예쁘게 깎아 주고 / 빵도 맛있게 만들어 주고 /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  (하고 싶은 말)



  시는 시인이 쓰지 않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품는 사람이 시를 씁니다. 노래는 가수가 부르지 않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심는 사람이 노래를 부릅니다. 웃음은 익살꾼이 베풀지 않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두는 사람이 웃음을 퍼뜨립니다.


  서정홍 님은 시인일까요? 네, 시인이지요. 시를 쓰기에 시인이 아니라, 사랑을 가슴에 품고 아이를 어루만지니 시인입니다. 시집을 선보였기에 시인이 아니라, 아이와 부를 노래를 꿈꾸면서 흙을 가꾸기에 시인입니다. 강의도 하고 글도 쓰기에 시인이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삶을 짓는 길을 걸어가기에 시인입니다.



.. 산이고 들어고 가는 데마다 / 농약을 뿌려 대는 바람에 먹을 게 없어요. / 산에 들에 먹을 게 없어 사과밭에 왔더니 / 사과밭 주인이 타앙 타앙 총을 쏘아 댔어요. // 작은 도시고 큰 도시고 가는 데마다 / 자동차 매연과 공장 굴뚝 연기 바람에 / 집 지을 데가 없어요. // 사람 발길이 뜸한 / 전봇대 위에 집을 지었더니 / 순찰 아저씨가 화를 내면서 / 집을 부수었어요 ..  (애물단지)



  겨울에 꽃이 핍니다. 추운 바람을 맞지만, 이 겨울에도 낮에는 고운 볕이 있기에 싱그러이 꽃송이가 터집니다. 동백나무에서도 꽃이 피지만, 들판에서도 조그맣게 꽃이 핍니다. 다른 어느 풀보다 유채나 갓은 한겨울에 꽃을 피웁니다. 냉이와 봄까지꽃도 한겨울에 꽃을 피웁니다. 사진가한테 널리 알려진 몇몇 ‘이름난 겨울꽃’이 아니어도 들판을 살펴보면 온갖 들꽃이 올망졸망 피어나서 ‘겨울나물’이 되어 줍니다. 이 겨울나물은 사람한테뿐 아니라 숲짐승한테도 고마운 밥입니다. 목숨을 살리고, 목숨을 살찌우며, 목숨을 북돋웁니다. 삶을 키우고, 삶을 가꾸며, 삶을 짓습니다.



.. 지난봄에도 올봄에도 / 창원대로에 벚꽃이 피었어요. // 한 해 내내 매연을 마시고도 / ‘야, 봄이다 봄이야!’ / 보란 듯이 벚꽃이 피었어요. // 자동차 매연도 / 봄한테는 이길 수 없나 봐요 ..  (봄)



  겨울에 잠든 땅이 깨어나서 봄이 피어납니다. 봄에 피어나는 흙은 여름에 한껏 자랍니다. 여름에 한껏 자란 흙은 가을에 무르익습니다. 가을에 무르익은 흙은 겨울에 다시 잠듭니다. 한 해가 흐르듯이 한 철이 흐르고, 한 날이 흐릅니다. 이러한 결에 따라 한 삶이 흐릅니다.


  나는 다시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밤이 깊으니 아이들은 깊이 잠듭니다. 아이들이 이불을 잘 덮는지 살피고, 이 작은 몸뚱이에 깃든 숨결이 꿈을 피우는 꽃송이로 여물기를 바랍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함께 피어나는 꽃이 될 테며, 아이들은 나를 믿고 또 나한테 기대면서 기쁘게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겠지요. 나도 아이들을 믿고 또 아이들한테 기대면서, 우리는 스스로 홀가분하면서 함께 어깨동무하는 길동무가 되겠지요. 4348.1.28.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 들고 자는 언니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사랑하는 시 51



내 노랫소리가 너한테 닿아

― 빵 들고 자는 언니

 고형렬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1.8.10.



  동시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모두 동시이지는 않으나, 동시는 늘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동시라는 옷을 입고 나온 글 가운데 노래로 부를 수 없다면, 이러한 글은 동시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동시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왜 동시가 노래인가 하면, 동시는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회에서 일본 문학가들이 지은 ‘동시’라는 낱말을 빌어서 쓰는데, 우리 겨레가 이 땅에서 먼먼 옛날부터 쓰던 낱말로 적는다면, 우리 어른이 손수 지어서 아이한테 손수 물려주는 ‘글’은 바로 ‘노래’입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노래를 부릅니다. 어른은 아이한테 노래를 읊습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따사로움을 맞아들입니다. 아이는 둘레 어른한테서 노래를 받고서는 기쁨을 누립니다.



.. 엄마 손은 시장 본 사람들을 쳐다봐요 / 이 파를 사세요 이 파를 사세요 / 아기는 꿈을 꾸다가 파단을 든 / 엄마 손에 날아와 있어요 ..  (엄마 손)



  이야기는 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노래와 춤을 아우릅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요새는 문학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를 빚지 못해요. 요즈음 쏟아지는 어른문학이나 어린이문학을 보면 ‘줄거리’는 있되 ‘이야기’는 없습니다. 줄거리를 짜서 뭔가 재미가 있을 듯하게 꾸미기는 잘 하지만, 이야기를 사랑스럽게 엮어서 아이들과(또는 동무가 될 어른들과) 기쁘게 손을 맞잡는 노래나 춤으로 나아가지 못해요.


  다시 말하자면, ‘줄거리’란 ‘가르침(교훈)’입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줄거리(가르침)가 깃들되, 저절로 깃듭니다. 이야기에는 줄거리가 있어요. 그러나, 줄거리만으로는 이야기가 안 되지요.



.. 쌩 사라지는 찬바람 / ‘아 저게 뭐야?’ / 온몸으로 느낀다 / 엄마 등은 / 따뜻한 온돌이 된다 ..  (첫 추위를 느껴요)



  고형렬 님이 쓴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창작과비평사,200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이 책은 ‘겉모습’은 ‘동시집’이지만, 아무래도 속살로 살피자면 ‘노래책’이 아닙니다. 우리 겨레가 예부터 아이와 어른이 함께 누리던 ‘글’은 바로 ‘노래’인데, 고형렬 님이 빚은 이야기는 노래에 닿지 못합니다. 교과서에 실릴 법하거나, 교과서에 실어도 될 법한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들이 손수 삶을 가꾸거나 사랑하면서 누릴 노래가 되기는 어렵겠구나 싶습니다.


  말을 고치자면, 고형렬 님은 이녁 나름대로 ‘이야기’를 빚겠다고 했지만, 그만 ‘줄거리’를 짜는 데에서 그쳤습니다. 설익은 줄거리에 줄 띄우기와 글잣수 맞추기만 시늉으로 해서 ‘동시’라는 껍데기를 입혔습니다.


  그러니까, 교과서에 실리는 동시라든지 교과서에 실을 법한 동시란, 줄거리만 있는 ‘교훈’, 다른 말로 하자면, 아이들을 삶으로 이끌지 않고 ‘지식으로 길들이려는 제도권 교육’이라는 뜻입니다.



.. 잠자리는 화곡동 아이들을 가만두지 앟는다 / 아이들을 산으로 불러 낸다 // 엄마는 잠자리를 잡지 말라 하지만 / 아이들은 즐거워 잠자리만 따라간다 ..  (잠자리)



  동시집 《빵 들고 자는 언니》에는 ‘어른 목소리’만 넘칩니다. 그나마 ‘아이 목소리’도 깃들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냥 목소리’일 뿐, 노래로 삭이지 못했습니다. 줄을 가르고 연을 맞추며 글잣수를 가다듬으면 동시일까요? 아닙니다. 참다운 동시란, 그러니까 참다운 노래란, 늘 언제 어디에서나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어버이와 어른이 먼저 부르고, 아이가 기쁘게 맞아들여 부르는 노래일 때에 동시입니다. 악보가 없이도 노래로 부를 수 있을 때에 노래입니다. 악보를 꾸미고 콩나물을 그려야 노래가 아니에요. 기쁨으로 우러나와서 불러야 노래입니다. 그렇지만 고형렬 님 동시집은 좀 억지스레 꾸민 ‘어른 목소리’가 곳곳에 튀어나옵니다.



.. 모두 나무 색깔이어요 / 누가 저런 색깔을 칠해 주었을까요 ..  (북한산 버들치)



  내 노랫소리가 너한테 닿을 때에 웃습니다. 네 노랫소리가 나한테 닿을 때에 웃습니다. 동시라는 옷을 입히는 글을 쓰자면, 내가 먼저 웃고, 네가 함께 웃는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너와 내가 서로 한목소리가 되어서 기쁘게 노래를 부를 만한 글을 써야 동시입니다. 4348.1.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의 솔밭 창비시선 141
황명걸 지음 / 창비 / 199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시 90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하루

― 내 마음의 솔밭

 황명걸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1.5.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물구나무서기를 언제 했는가 하고 더듬으니 거의 서른 해 만입니다. 어릴 적에 하고는 다시는 안 하며 살았습니다.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일까요, 마음이 무겁기 때문일까요.


  요 며칠 사이에 춤을 춥니다. 이제는 내 마음결에 따라 춤을 춥니다. 걸음을 내디딜 적마다 춤짓이 됩니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비가 바람을 타듯이 가볍게 춤을 추며 걷습니다. 여러 날 춤을 추다가 오늘은 문득 떠올라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벽에 대고 발을 찹니다. 발은 가볍게 벽에 닿고, 아아 물구나무서기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몸짓이었네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마흔두 살에 하는 물구나무서기는 하나도 안 힘들 뿐 아니라 아주 가볍습니다. 몸이 가볍게 달라지니 저절로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 시골에 살면서 / 요즈음 나의 바람은 / 넓도 좁도 않은 솔밭을 / 내 마음밭에 키우고 싶음 뿐 ..  (내 마음의 솔밭)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생각합니다. 벽에서 발을 떼고 팔로만 서고 싶습니다. 팔로만 선 뒤 천천히 팔걸음을 하고 싶습니다. 팔걸음으로 거닐면서 발로는 춤을 추고 싶습니다. 두 팔로 씩씩하게 이 땅을 짚으면서 두 발로 즐겁게 하늘을 휘젓고 싶습니다.


  물구나무서기는 이 땅을 뒤집지 않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이 땅에는 위아래가 없는 터전인 줄 환하게 보여줍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머리에 피가 쏠릴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는 위와 아래가 없으니까요. 중력으로 움직이는 지구별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이는 지구별이니까요.



.. 언젠가는 만나볼 고향의 처자를 희망 삼아 / 돼지껍질 반 접시에 소주 한 고뿌를 호강으로 여기며 / 질기게 기다리며 살아가는 / 고향 사람 초로의 날품팔이꾼 / 살아 있으면 내 작은삼촌 나이뻘 되는 / 삼촌 같은 고향 사람 ..  (고향 사람)



  황명걸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내 마음의 솔밭》(창작과비평사,1996)을 읽습니다. 황명걸 님이 시집을 펴낼 무렵에는 경기도 양평에서 ‘화랑까페’를 꾸렸다고 합니다. 2010년대가 깊어 가는 요즈음에도 화랑까페는 그대로 하실까요? 드문드문 시집을 낸 황명걸 님은 앞으로 다시 한 번 시집을 더 선보일 수 있을까요?



.. 한여름 한낮의 한길에서 / 난데없이 악쓰는 소리 비명 지르는 소리 / 전자오락실 앞에서 사람들이 / 땅굴 파는 두더지 때려잡기에 열이 올랐다 ..  (미친 짓거리)



  어리거나 젊은 사람만 물구나무서기를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마흔 살이건 쉰 살이건 예순 살이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하려고 하면 누구나 물구나무서기를 하지요. 왜냐하면, 물구나무서기는 훈련을 거쳐서 하지 않거든요. 훈련을 거쳐서 더 놀라운 재주를 뽐내려는 물구나무서기가 아니라, 몸을 스스로 다스리면서 곱게 가꾸고 싶은 물구나무서기이거든요.


  시를 잘 써야 시를 쓰지 않습니다. 마음이 있을 적에 시를 씁니다. 문예창작학과를 나왔다거나 문학잡지에 시를 선보였기에 시인이 아닙니다. 삶을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며 동무와 함께 웃는 사람이 시인입니다. 시집을 여러 권 냈기에 시인이 아니고, 마음이 착하게 흐르는 사람이 시인이에요.



.. 세살 난 딸 서정이가 / 은희의 〈꽃반지〉를 노래한다 / 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아빠 곁에서 / 오빠는 열심히 안마하고 / 엄마는 꼼꼼히 가계부를 적는데 ..  (저녁의 불청객)



  숲을 사랑하는 사람은 숲님입니다. 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들님입니다. 해를 사랑하는 사람은 해님입니다. 달을 사랑하면서 달님이요, 별을 사랑하면서 별님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시인입니다. 저마다 다 다른 숨결을 사랑하는 시인입니다. 황명걸 님은 시골을 사랑하면서 시골님이 되어 시집을 한 권 꾸렸지 싶습니다. 이 나라 수많은 고운 님들도 저마다 고운 넋을 살려서 고운 시집을 쓸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