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103
박세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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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5



바람을 먹으면서 산다

― 정선아리랑

 박세현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1.4.30.



  첫가을에는 들빛이 샛노랗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시골지기가 논마다 벼를 베면, 이제부터 늦가을 들빛은 싯누렇습니다. 벼알이 무르익을 적에는 샛노란 물결을 이루고, 벼를 모두 베고 꽁댕이만 남은 논은 시든 볏포기만 누렇습니다. 그런데, 시든 볏포기 사이로 새로운 줄기가 올라옵니다. 사람들은 벼알을 모두 거두었으나, 벼풀은 밑뿌리에서 새 힘을 끌어올려서 줄기를 올립니다. 이리하여, 늦가을과 첫겨울에는 들빛이 얼룩덜룩합니다. 싯누런 들녘에 푸릇푸릇 새로운 기운이 오르기 때문입니다.


  잘 자란 파를 칼로 삭 베면 파는 뿌리와 꽁댕이만 남습니다. 그런데 파는 다시금 기운을 차려 줄기를 올려요. 잘 자란 부추를 손으로 톡톡 끊으면 부추는 뿌리와 꽁댕이만 남는데, 부추는 새롭게 기운을 내어 줄기를 올립니다. 



.. 청량리역은 사람의 바다다.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선 사람 앉은 사람. 기차 시간이 임박하자 운명의 종이 울린 듯 겨드랑에 날개를 단 사람들은 분망하게 솟구친다. 시계탑의 시계가 현재의 시각과 현재 서울의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  (정선 가는 길)



  들풀을 모조리 뽑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들풀을 모조리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들풀을 지심으로 여겨 없애려고 하면, 흙이 함께 죽기 때문입니다. 들풀은 빗물에 흙이 쓸리지 않도록 붙잡을 뿐 아니라, 흙에 너른 숨결이 골고루 깃들도록 돕습니다. 사람들은 으레 한두 가지 씨앗만 심기 때문에 여느 논흙이나 밭흙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마련인데, 온갖 들풀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면서 흙이 골고루 튼튼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그리고, 이 들풀은 무엇보다 우리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지요. 나무만 사람한테 푸른 바람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풀과 나무가 함께 푸른 바람을 싱그러이 베풉니다. 우리는 시골에 살든 도시에 살든 언제 어디에서나 풀바람과 나무바람을 마시면서 기운을 얻습니다.



.. 정선읍에서 남면으로 가자면 / 쇄재라는 높고 아름다운 고개를 넘어간다 ..  (쇄재)



  밥을 안 먹어도 백 날이 넘도록 몸을 버틸 수 있습니다. 숨을 안 마시면 하루는커녕 한 시간은커녕 한 분을 버티기도 벅찹니다.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참을’ 뿐입니다. 참고 나서는 반드시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은 다른 무엇보다 바람을 먹으면서 흐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소담스러운 대목은 바람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챙겨야 할 밥은 바로 바람입니다. 우리가 늘 먹고 마시는 바람이 어떠한지 잘 살펴야 합니다. 나와 네가 함께 먹는 바람이 푸르고 싱그러우면서 고운 숨결이 되도록 언제나 알뜰살뜰 가꾸면서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아낙 서넛이 딸딸이에 실려 /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 산그늘이 머리 위에 얹혀 / 고운 물살을 만들어줍니다 ..  (초승달)



  박세현 님이 빚은 시를 알차게 엮은 《정선아리랑》(문학과지성사,1991)을 읽습니다. 작은 시집이 태어난 지 어느덧 스무 해 남짓 흘렀고, 이 시집은 스무 해라는 나날을 견디지 못하고 새책방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에서도 이 시집이 대출실적이 적으면 자취를 감추어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다시 펴내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헌책방에서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시집입니다.



.. 콩 심으라면 콩 심었소 / 고추 심으라면 고추 심잖았소 / 마늘이 괜찮다면 마늘도 심고 / 당근이 더 좋다면 당근을 심은 죄밖에 없소 / 콩 심으면 콩값 떨어지고 / 고추 심으면 고추값 떨어졌소 / 이제 콩 심으시라면 팥 심고 / 고추 심으시라면 마늘 심어야 옳겠소 / 말없이 밭고랑에 들러붙어 있는 우리를 / 아예 혹싸리 껍데기로 보시는지요 ..  (혹싸리 껍데기)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시골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전라남도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전라도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숲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숲바람을 먹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 어떤 바람을 먹으면서 사는가요. 이녁은 어떤 바람을 날마다 맛나게 먹으면서 사는가요. 이녁은 앞으로 이녁 아이하고 어떤 바람을 먹으면서 살고 싶은가요. 이녁 몸을 살찌우고 이녁 마음을 가꾸는 바람은 어떤 맛이고 내음이며 무늬인가요.


  햇볕과 바람과 빗물을 골고루 먹고 자라는 풀이 튼튼하고 싱그럽습니다.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비닐집에서 기름 태우는 난로가 내뿜는 뜨거운 기운과 함께 먹고 자라는 풀은 겉보기로는 멀쩡할 테지만 속은 곪습니다. 풀을 뜯는 소나 돼지가 아니라, 사료와 항생제와 촉진체만 먹고 자라는 소나 돼지를 잡아서 얻는 고기는 겉보기로는 번듯할 테지만 속은 곯지요.



.. 색종이처럼 파란 하늘입니다 / 어제 보았던 그 하늘입니다 / 하늘 위로 구름이 지나가면 그건 / 정말 멋진 그림엽서가 되고 맙니다 / 오래도록 쳐다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  (갈래국민학교)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늘 바라보는 사람은 늘 파랗게 눈부신 시를 씁니다. 하얗게 고운 구름을 늘 마주하는 사람은 늘 하얗게 고운 노래를 부릅니다. 샛노란 나락물결을 늘 돌보는 사람은 늘 샛노랗고 고소한 이야기를 짓습니다.


  어떤 시를 쓰거나 읽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가꾸거나 누리고 싶은가요? 어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오늘 하루를 기쁘게 웃고 싶은가요?


  시집 《정선아리랑》에서 들려주는 숲노래가 부른 바람으로 고이 흐릅니다. 4347.11.2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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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웃는 매미 문학동네 시인선 25
장대송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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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3



시와 텔레비전

― 스스로 웃는 매미

 장대송 글

 문학동네 펴냄, 2012.9.24.



  손가락을 움직여 또각또각 돌리면 텔레비전 화면이 바뀝니다. 손가락을 놀려 똑똑 단추를 누르면 텔레비전 화면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 있든 텔레비전이라는 기계를 두면 가만히 눕든 앉든 서든 온갖 이야기가 쉬지 않고 흐르는 물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되며, 게다가 밥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저 멍하니 마음을 다 놓고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 저 텔레비전 / 혹시 살아 있는 척하는 거 아냐 / 실은 나도 살아 있는 척하는 것 아냐 ..  (옛날 연속극)



  학교에 가면 교과서를 줍니다. 학교에 가면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 진도를 나갑니다. 학교에 가면 다른 학교로 가도록 시험문제를 알려줍니다. 학교에 가면 다음 학교가 나오고, 다음 학교에 가면 다시 다른 학교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있는 학교까지 나오면, 이제 회사가 우리 앞에 나오고, 우리는 회사에 들어가서 예순 살 남짓이 될 때까지 시키는 일을 하면 됩니다.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예순 살 남짓 되면, 이제 회사에서 나와 연금을 받으면서 자가용을 몰고 ‘연금 쓰는 삶’을 보내다가 죽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죽어서 땅에 묻히거나 불로 태워 재가 남으면 어떻게 될까요. 죽고 난 뒤 우리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어서 땅에 묻히려고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학교에 가려고 태어난 목숨일까요. 우리는 회사원이 되어 스물대여섯 살부터 예순 살 남짓까지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사람일까요.



.. 뻐기는 듯 걸음을 걷는 개에게 끌려가는 저 여자 질질 끌려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나보다 ..  (풍경)



  텔레비전을 켜면 지구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운동경기가 흐릅니다. 한국에서는 깜깜한 밤이지만, 텔레비전에 나오는 다른 나라는 환한 낮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야구나 축구나 배구나 농구나 골프나 갖가지 운동경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하나만 곁에 두면 온갖 운동선수 이름을 꿸 수 있고, 이름난 선수가 벌이는 묘기에 가까운 몸재주를 구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끄면? 텔레비전을 끄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를 마음 놓고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축구를 신나게 할 만한 빈터가 없습니다. 농구나 배구나 탁구나 골프를 할 만한 너른 터는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맨몸으로 할 수 있다는 달리기조차 홀가분하게 할 만한 데가 우리 둘레에 없습니다.


  헤엄을 칠 냇물이나 못이 없습니다. 냇물이나 못이 있어도 냇바닥을 죄 시멘트로 들이부었어요. 시멘트로 들이붓지 않은 냇물이나 못이 있더라도 공장과 발전소에서 뱉은 쓰레기물로 지저분할 뿐 아니라 농약에 찌들었습니다.



.. 벌써 며칠째다. 안개를 잡으려 철사 줄을 비틀다가 내 손가락이 비틀어졌다. 바지 주름을 세 줄로 잡아놓았는데도 헐렁한 자세로 서 있는 안개, 헐렁한 안개를 쳐다보다가 ..  (합성인간)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일하거나 놀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손전화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켜서 ‘구경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짓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노닥거리는 짓을 구경합니다. 다른 사람이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이 알리는 온갖 이야기를 고스란히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야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요. 우리 삶은 어디에 있고, 우리 사랑은 어디에서 피어날까요.


  동네에, 학교에, 마을에, 사회에, 그러니까 이 나라 어느 곳에 삶이 있다고 할는지 알 길이 없어요. 스스로 삶을 찾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 지네에 중독된 자네는 / 지리산을 돌아다니는 게 싫증 나면 /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 오곤 했는데, 요즈음도 그런가 / 삼보일배는 자네 마음에 자네가 질려서였겠지 ..  (술 한잔하게나-이원규 시인에게)



  장대송 님이 빚은 시를 엮은 《스스로 웃는 매미》(문학동네,2012)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이 오늘 누리는 하루가 고스란히 드러난 시를 읽습니다.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는 하루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웃음꽃을 피우는 나날일까요? 장대송 님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 사랑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삶일까요?



.. 불 꺼진 부엌, 나는 / 밤마다 방황하나니 / 정수기, 냉장고, 시계, 오븐, 정화기, 가습기…… / 그 푸른 LED 불빛 / 푸른 바다가 되어 나를 감시하나니 ..  (디지털의 흔적)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시는 삶 그대로 나옵니다. 시는 삶에서 고스란히 흐릅니다.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은 텔레비전에 휩쓸리는 넋이 되어 시를 씁니다. 텔레비전을 끄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끄면서 다른 것을 바라보는 눈길로 시를 씁니다.


  숲에 깃들어 숲바람을 마시는 사람은 숲바람을 시로 길어올립니다. 흙을 두 손으로 만지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은 흙내음과 씨뿌리기를 시로 추스릅니다.


  아이를 바라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이와 함께 짓는 웃음을 시로 그립니다. 아이한테 밥 한 그릇 차려서 건네는 사람은 아이와 나누는 밥내음을 시로 엮습니다.



.. 서재 불을 끄고 / 책장의 책들을 더듬으며 빠져나온다 ..  (서재)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밭으로 일구어 씨앗을 심는 넋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도시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며 컴퓨터를 켜거나 텔레비전을 켜더라도 마음을 숲으로 가꾸어 바람과 햇볕과 빗물을 머금는 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래야, 시가 노래가 되니까요. 이렇게 할 때에, 시가 사랑으로 거듭나니까요.


  노래가 되지 않는 시는 어쩐지 싱겁습니다. 사랑이 되려 하지 않는 시는 어쩐지 무뚝뚝합니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일는지 모르나, 참웃음은 겉웃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데에서 따사로이 샘솟는 속웃음이라고 느낍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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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으면서 전진한다 마이노리티 시선 24
조성웅 지음 / 갈무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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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4



누가 아이와 놀면서 살림을 꾸리는가

― 물으면서 전진한다

 조성웅 글

 갈무리 펴냄, 2006.11.13.



  조성웅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물으면서 전진한다》(갈무리,2006)를 읽습니다. 여러 시 가운데 〈도장공의 피 속에 신나기가 흐른다〉를 곰곰이 되읽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 “아이들 잘 키워보자고 하는 짓인데 / 아이들과 함께 놀아 줄 시간도 없다 / 맞벌이를 해도 보험 적금 아이들 교육비 빼고 나면 / 한 달 살기도 빠듯하다”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숱한 노동자가 읊은 노래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정규직 노동자’가 이런 노래를 읊었다면, 요즈음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 노동자’가 이런 노래를 읊습니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가 이런 노래를 읊습니다.



.. 미친 듯이 밥을 먹다가 마주치는 눈빛들 / 한꺼번에 웃는다 / 이 따뜻함을 몸은 안다 ..  (함께 밥을 먹으면 정이 든다)



  요즈음 ‘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아이와 놀 틈이 없다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는 ‘예전보다 돈은 많이 벌’되, 아이하고 잘 못 놀리라 느낍니다. 한 주에 닷새만 일하고,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하더라도, 아이들을 온갖 학원에 보내니 아이들 얼굴을 볼 틈이 없고, 저녁에 일을 마치면 으레 사내들끼리 어울려 술잔을 부딪히니, 막상 ‘돈에 매이거나 근심이 사라지는 자리’에 있어도 아이들하고 안 놀거나 못 놀지 싶어요.



.. 왜 이렇게 닮아 있는지 / 척 보면 하청인지 서로가 안다 ..  (하청노동자들의 마음은 모두 똑 같다)



  공장장은 아이들과 신나게 놀까요? 재벌 우두머리는 아이들과 즐겁게 놀까요? 이사나 사장이나 전무쯤 되면 아이들과 홀가분하게 놀까요?


  대통령이나 장관은 어떠한가요? 시장이나 군수는 어떠한가요? 국회의원이나 의사나 판사나 검사나 이런저런 전문직 사람들은 어떠한가요? 교사나 교수는 어떠한가요?


  곰곰이 돌아보면, 오늘날 한국에서는 하청 노동자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도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의사도 누구도, 아이들과 놀 틈이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아이들과 놀까요?



.. 울산시 북구 양정동 / 현대 자동차 왕국 담 밖으로 / 현대자동차 현장조직들 간판이 있다 / 노동단체 간판들이 있다 / 정치조직 간판들이 있다 / 유별나게도 이 간판들은 양정동에 밀집했다 ..  (양정 나라)



  유치원 교사도 아이들과 놀지 않습니다. 유치원 교사는 온갖 아이들한테 치이느라 고단하거나 바쁩니다.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하고 놀 수 없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유치원에 아이를 넣은 어버이는 ‘영어 빨리 가르치’고 ‘영재 교육 더 많이 시키기’를 바라거든요.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조차 놀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학습’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은 ‘학습 진도’를 나가야 하니 놀 겨를을 못 냅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도,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은 언제나 ‘학습하는 수험생’일 뿐입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한국에서는 여느 어른과 아이 모두 ‘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어른과 아이가 놀 틈이 없이, 그저 돈을 버느라 쳇바퀴처럼 하루 스물네 시간을 빙빙 돌아야 합니다.



.. 걸쭉한 오뎅국물을 더 좋아하고 / 통통한 아줌마의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다 / 오늘도 통통한 아줌마는 부지런히 떡볶이를 고추장에 버무리고 / 튀김을 붙이고 있다 ..  (나를 채우고 기운 것은)



  조성웅 님 시집 《물으면서 전진한다》를 곰곰이 읽습니다. 다른 어느 시보다 이녁 아이와 어울리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녁 아이와 어울리는 이야기는 몇 대목 없습니다. 아무래도 아이와 살을 부빌 틈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 싶어요. 아이와 눈을 마주칠 틈을 내기 어렵고, 겨우 집에서 다리를 뻗고 쉬는 날에도 ‘책을 손에 쥐느’라 바쁩니다.



.. 풀무질에서 새로 나온 트로츠키의 《노동조합투쟁론》을 읽고 있는데 / 나의 독서를 방해하고 나선 / 내 아들 문성이 / 트로츠키의 《노동조합투쟁론》을 자신의 배에 깔고 / 손으로 뜯고 입으로 빨면서 / 완전히 트로츠키의 《노동조합투쟁론》을 장악해버린다 ..  (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



  저랑 놀지 않는 아버지한테 다가선 아이는 ‘아버지가 읽는 책을 빼앗’습니다. 마치, 사용주가 노동자 일삯을 가로채는 모습하고 닮습니다. 그런데, 사용주가 노동자 일삯을 가로채면 우리들은 이맛살을 찡그리면서 ‘너 그러지 마!’ 하고 외치지만, 아이가 책을 빼앗으면 빙그레 웃으면서 ‘가만히 지켜봅’니다.


  문득 한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래요, 사용주가 노동자 일삯을 가로채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 주면 됩니다. 다 가지라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공장을 떠나면 됩니다. 일터를 떠나면 돼요. 혼자 가지고 혼자 일하라고 맡긴 뒤 떠나면 됩니다.


  시골 흙지기도 이와 똑같이 정부와 맞설 수 있습니다. 쌀값을 아주 껌값으로 여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흙을 일구되, 정부에 ‘곡식을 안 팔’면 됩니다. 이 나라 흙지기가 거둔 쌀은 아주 후려쳐서 사들이겠노라 하는 농협한테 한 톨조차 안 팔면 돼요. 농협은 다른 나라에서 쌀을 사다가 쓰라고 하면 됩니다.



.. 조명된 선동무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 신디사이저와 락 기타 음에 실리는 투쟁가요는 / 더 이상 가슴을 뜨겁게 달구지 못한다 / 연단 위는 누구도 허락 없이 올라가지 못한다 ..  (물으면서 전진한다)



  아이는 놀고 싶습니다. 아이는 놀고 싶어서 아버지 책을 빼앗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놀아요. 이때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슬기로울까요?


  네, 아버지는 책을 덮거나 책을 북북 찢어서 종이접기를 하면 슬기롭습니다. 아이와 손을 맞잡고 바깥으로 나가서 마음껏 노래하고 소리지르고 춤추고 뛰놀면 아름답습니다. 아이를 업고 안고 목에 태워서 달리면 사랑스럽습니다.


  ‘조명된 선동무’를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자리에 안 가면 됩니다. 이제부터 그런 자리는 쳐다보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셔요. 우리 아이들과 놀아요. 맞벌이를 해도 교육비가 안 나온다면, 맞벌이를 하지 말고, 아이를 학원에도 넣지 말아요. 아이들이 앞으로 ‘돈만 버는 쳇바퀴’에 빠지지 않도록, 새로운 길을 우리가 스스로 열어요. 경제에 기대지 않고, 공장에 매이지 않으며, 도시에 젖어들지 않아도, 아이가 손수 삶을 짓고 가꿀 수 있는 길을, 바로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열어요.



.. 하여튼 고향도 다르고 죄명도 다르고 / 들어온 사연도 다들 구구절절하지만 / 구치소 사람들이 구속된 공통된 사유는 / “사유재산 침범죄” ..  (1.03평 독방에서도 난 꿈을 꾼다)



  공장도 돈도 다 ‘저들이 개인소유’라고 한다면 그냥 혼자 다 갖고 놀라 하면 됩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우리 땅을 조그맣게 마련해서 손수 흙을 가꾸어 밥을 지으면 됩니다.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고, 푸른 나무를 쓰다듬으면 됩니다. 아이와 함께 들을 달리고 숲을 누리면 됩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삶이 아니라 ‘숲을 짓’는 삶으로 바꾸면 됩니다. 아이는 마음껏 놀고, 어른은 기쁘게 일하는, 가장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면 됩니다. 쥐꼬리만 한 돈은 아무리 벌어도 그예 쥐꼬리로 그칩니다. 이제 쥐꼬리는 그만 놓고, 이제 쥐꼬리는 붙잡지 말고, 이제 ‘내 삶’을 찾고 ‘우리 삶’을 누려야지 싶어요.


  우리가 저마다 ‘내 삶’을 꼭 열 해만 누려 보셔요.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공장 있고 돈 있는 이들’은 열 해 동안 다른 나라에서 돈으로 이것저것 사다 먹을 테지만, 열 해 사이에 다른 나라도 바보가 아닐 테니 차츰 비싸게 올려받을 테고, 이제 열 해쯤 뒤면 ‘아무리 공장 있고 돈 있는 이들’도 주머니를 탈탈 털며 빈털터리가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노동자도 아이와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와 대통령도 아이와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아이와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학습’시켜서 ‘입시지옥’에 밀어넣는 바보가 아닌, 아이와 기쁘게 놀고 사랑스레 꿈꾸는 ‘사람’이 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천천히 물으면서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1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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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이 컸죠
이정록 지음, 김대규 그림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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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42



아이와 함께 크는 어른

― 저 많이 컸죠

 이정록 글

 창비 펴냄, 2013.8.30.



  안 입고 묵힌 옷을 마당에 널어 말립니다. 아침에는 바람이 없더니 낮이 되면서 바람이 조금 세게 붑니다. 빨랫줄에 넌 옷가지가 팔랑거리다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마당에서 놀던 일곱 살 큰아이가 옷가지를 주워 다시 널면서 부릅니다. “아버지, 바람이 불어서 옷이 떨어져요. 아버지는 그냥 계시고, 내가 빨래집게로 집을게요.” 씩씩한 살림순이는 동생 세발자전거를 디딤판으로 삼아 올라섭니다. 동생더러 빨래집게를 하나씩 달라고 이르면서 빨랫줄에 넌 옷가지를 척척 집습니다. 다만, 옷가지에 하나씩 집어도 될 텐데 서넛씩 넉넉히 집습니다.


  살림순이는 네 살 적에도 빨래널기를 거들었습니다. 살림순이가 네 살 적에 동생이 태어났고, 동생 기저귀를 날마다 쉴새없이 빨아 쉴새없이 널었어요. 이때마다 살림순이는 한손에 젖은 기저귀를 걸친 뒤 아버지한테 한 장씩 건넸습니다. 때로는 걸상을 가지고 와서 까치발을 하며 손수 빨래집게로 집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햇볕에 기저귀가 잘 마르면 살림순이는 또 쪼르르 따라오지요. 잘 마른 기저귀를 걷을 때마다 두 팔을 벌려 받습니다. 두 팔 가득 수북하게 받은 기저귀를 집으로 갖고 들어가서 아버지하고 마주앉아서 척척 갰어요.



.. 풋고추 따러 갈 땐 고추밭 / 지푸라기 깔러 갈 땐 참외밭 / 오이순 집으러 갈 땐 오이밭 / 다 돌보러 갈 땐 텃밭 ..  (텃밭)



  아이와 함께 크는 어른입니다. 아이가 크면서 어른도 큽니다. 어른은 아이를 돌보고 먹이고 입히고 키우면서 찬찬히 자랍니다. 아이는 젖을 물고 밥을 씹으며 물과 바람을 싱그러이 맞아들이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버이는 기저귀를 빨고 널고 개고 새로 샅에 대면서 보드라운 손길과 따사로운 숨결을 배웁니다. 아이는 어버이 손길과 숨결을 물려받으면서 목숨을 살리는 사랑을 배웁니다.



.. 청둥오리들이 / 먼 하늘로 날아갑니다 ..  (청둥오리)



  아이를 낳는 사랑은 책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랑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이와 어깨동무하면서 누리는 놀이는 교과서에 없습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 새로운 아이를 낳는 꿈은 학문에도 철학에도 종교에도 과학에도 없습니다.


  먼 옛날부터 조곤조곤 속삭이는 이야기로 사랑을 물려주고 물려받습니다. 먼 옛날부터 나긋나긋 주고받는 말마디로 사랑을 이어주고 이어받습니다. 먼 옛날부터 삶에서 우러나온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꿈을 키우고 놀이를 즐깁니다.


  기쁘게 일하면서 노래가 샘솟고, 기쁘게 놀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땀흘려 일하면서 노래가 자라고, 땀흘려 뛰놀면서 노래가 거듭납니다. 어른도 노래하는 삶이고, 아이도 노래하는 삶입니다. 어른도 삶과 함께 노래를 짓는 하루이고, 아이도 삶과 함께 노래를 빚는 하루예요.



.. 일기장 / 첫 장이다. // 오늘 일기는 / 건너뛰고 / 내일부터 써야지 ..  (첫사랑)



  이정록 님이 빚은 동시집 《저 많이 컸죠》(창비,2013)를 읽습니다. 이정록 님은 재미나게 말을 엮어서 동시를 빚습니다. 말솜씨를 한껏 살려서 동시를 찬찬히 꾸밉니다.



.. 엄마가 설거지하는 사이 / 로또 복권 맞춰 보는 아빠 ..  (꼴등 아빠)



  이정록 님은 이정록 님이 아이를 곁에 두고 지내는 삶에 맞추어 동시를 씁니다. 아버지 자리이기도 하고 아저씨 자리이기도 한 눈길로 동시를 씁니다.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동무하는 마음으로 동시를 씁니다. 《저 많이 컸죠》를 읽으면, 이 동시와 걸맞는 아이가 몇 살 즈음인지 알 길은 없지만, 아이도 어른도 하루하루 새롭게 크는 삶을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합니다.


  다만, 말놀이는 재미있고, 말치레는 웃음이 묻어나는데, 말놀이와 말치레를 빼면 무엇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말놀이를 살찌우는 숨결을 돌아보면서, 아이들한테 삶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으로 스치듯이 보이는 모습이 아닌, 아이가 앞으로 즐겁게 가꾸면서 착한 넋으로 새롭게 새울 터전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치레가 튼튼하게 서도록 사랑을 알차게 보듬는 이야기가 노래마다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 외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참답게 서면서 지구별에 푸른 바람이 불도록 이끄는 사랑을 노래에 살포시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숯불갈비집에서 / 생일잔치를 했다. // 양념 갈비에 / 물냉면도 먹었다 ..  (숯불갈비)



  언제나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을 읽는다면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면서 아름다운 길로 나아갈 수 있구나 싶어요. 언제나 우리가 먹어야 할 밥을 먹는다면 마음을 따스히 돌보면서 사랑스러운 삶을 꾸릴 수 있구나 싶어요. 언제나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을 꾼다면 마음을 넉넉히 북돋우면서 즐거운 삶을 이룰 수 있구나 싶어요.


  아이는 몸뚱이만 크지 않습니다. 어른은 더 안 자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마음이 함께 자랄 때에 비로소 씩씩하게 웃습니다. 어른도 아이처럼 언제나 새롭게 자라고 생각을 키우는 숨결입니다.


  말 한 마디에서 바람이 포근히 부는 동시가 그립습니다. 글 한 줄에서 햇살 한 조각 내리쪼이는 동시가 보고 싶습니다. 이야기 한 자락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동시가 만나고 싶습니다. 4347.11.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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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살짝 엿들은 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18
양정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83



아기와 함께 사랑을 속삭입니다

― 아기가 살짝 엿들은 말

 양정자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4.4.30.



  할머니 시인 양정자 님은 《아기가 살짝 엿들은 말》(실천문학사,2014)을 선보이면서, 책이름 그대로 아기가 이 땅에 태어나 어버이한테서 들은 말을 새로운 노래로 들려줍니다.


  참말 아기는 온갖 말을 듣습니다. 따로 엿듣는다기보다, 언제나 귀를 기울이면서 온갖 말을 듣습니다. 아기는 어머니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읊는 말을 듣습니다. 아기는 할머니가 알려주는 말을 듣고, 할아버지가 속삭이는 말을 듣습니다. 아기는 저를 둘러싼 온갖 말을 들으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기는 제 둘레에서 피어나는 갖가지 말을 귀여겨들으면서 생각을 키우고 마음을 살찌웁니다.



.. 해 긴긴 봄날 우리 엄마가 온몸이 노곤한 채 / 햇빛 바른 마루에 앉아 조속조속 졸고 앉아 있는데 / 꿈에 노랑나비 한 마리가 꽃처럼 활짝 핀 엄마 몸속으로 ..  (태몽)



  글을 모르는 아이는 오직 말로 삶을 배웁니다. 글을 알지 못하는 아이는 오로지 말을 받아들여 사랑을 익힙니다. 어버이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짧게 내뱉는 말조차, 아이한테는 아주 크게 울리면서 스며드는 말입니다. 어버이 아닌 다른 어른이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내뱉는 말마저, 아이한테는 매우 크게 부딪히면서 젖어드는 말입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데리고 시끄러운 곳에 가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주고받는 말소리뿐 아니라, 자동차가 흐르는 소리라든지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 가운데 아이한테 들려주고 싶지 않은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시끄러운 곳에서는 어른도 몹시 고달프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기찻길 옆 옥탑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언제나 기찻소리 때문에 고단해야 했습니다. 기찻소리는 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늘 고단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끊이지 않는 기찻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땅이 덜덜 떨리니 집도 흔들립니다. 기차를 타면 먼 곳까지 빠르게 갈 수 있으나, 기찻길을 집 옆에 두어야 하는 사람은 날마다 귀를 찢는 소리와 웅웅거리면서 집이 흔들리는 일까지 겪어야 합니다.



.. 유치원생 내 손자가 제 강아지 끌어안고 / 무심히 혼자 하는 말 / “복실아, 너는 좋겠다, 유치원에도 안 가구. / 영어도 피아노도 안 배우고, 넌 정말 정말 좋겠다.” ..  (부러운 강아지)



  작은아이를 낳을 무렵 시골로 옮겼습니다. 작은아이는 갓 태어난 뒤부터 골짝물 흐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작은아이는 오토바이 소리라든지 짐차 소리라든지 경운기 소리도 함께 들었습니다. 골짝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곧장 새근새근 깊이 잠드는 작은아이인데, 오토바이가 지나간다든지 짐차나 경운기가 지나가면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어요. 그렇다고, ‘여기에 갓난쟁이가 있으니’ 오토바이도 짐차도 경운기도 이 둘레로 지나다니지 말라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토바이를 모는 분은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 때문에 아기가 깨는 줄 몰랐으리라 생각해요. 안다고 해서 오토바이를 안 몰 수 없기도 했을 테고요. 시골 할배는 으레 경운기를 몹니다. 이녁 집안에 이녁 손자가 있다면 경운기를 안 몰거나 덜 몰는지 모르지만, 이녁 집안에 이녁 손자가 없으면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자동차 소리를 덜 듣거나 안 들을 만한 다른 시골로 옮기면서 생각에 잠겼어요. 자동차가 없던 지난날에는 이러한 소리 때문에 고단한 어버이는 없었어요. 지난날에는 아기가 있는 이웃집을 헤아려 함부로 시끄러운 소리를 안 냈어요. 아기가 있는 이웃집 앞이나 옆을 지날 적에는 말소리를 낮추었지요.


  자동차를 몰 적에도 그렇지요. 아기가 탔다고 커다랗게 써 붙인 자동차가 있으면, 이런 자동차 둘레에서 함부로 빵빵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기가 화들짝 놀라니까요. 내 아기 아닌 다른 집 아기라도 놀래키지 않을 노릇이거든요.



.. 이웃집 두 살, 세 살짜리 연년생 언니 오빠 놀러오면 / 갑자기 무거웠던 눈꺼풀 싹 올라가고 / 두 눈이 별처럼 반짝반짝 빛납니다 / 아직 같이 놀 처지 못 되지만 / 서로 밀고 당기며 싸우며 놀기도 하는 언니 오빠를 / 쓱쓱쓱 배밀이하며 열심히 쫓아다니며 구경하기 바쁩니다 ..  (아기는 아기끼리)



  양정자 님이 쓴 《아기가 살짝 엿들은 말》을 찬찬히 읽습니다. 이녁 곁님인 소설가 할배는 어느 날 술을 입에 안 대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술을 끊지는 못한다고 하는데, 김치를 담그느라 바쁠 날을 앞두고, 이날은 이녁 곁님이 아기를 오롯이 보아야 할 테니, 아기가 싫어하는 술냄새를 풍기지 말라고 넌지시 한 마디를 했더니, 참말 이녁 곁님이 꼭 하루 동안 입에 술을 안 대었대요.


  사내는 할배 나이가 되면 조금 귀를 열 수 있을까요. 손자가 생기니, 손자를 헤아리면서 삶을 새롭게 지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은 어머니 자리에 서는 이들이 들려주는 말을 어느 만큼 귀여겨들을까 궁금합니다. 아버지 자리에 서면, 집 바깥으로 나돌면서 돈을 더 버느라 바쁘기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버지 자리에 서기에 이제 집 바깥에서 나돌던 일은 그치거나 줄이면서, 집 안쪽에서 아이하고 누리는 삶을 더 돌아볼 만한지 궁금합니다.



.. 몸에 나쁜 간식거리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 온갖 말로 아기를 달래보는데 / 종달새처럼 말 잘하는 어린 내 손녀 / 서럽게 울면서 하는 말 / “할머니, 이 세상, 왜 몸에 좋은 건 하나도 없어요?” ..  (아이스크림)



  아이 혀에 달콤하게 달라붙는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어른 혀에도 달콤하게 달라붙습니다. 무엇보다, 과자나 아이스크림은 어른이 만들어 아이들한테 팝니다. 과자 공장이나 아이스크림 공장은 모두 어른이 세웁니다. 공장지기도 어른이고, 공장 일꾼도 어른입니다.


  과자를 사 달라 떼 쓰는 사람만 아이가 아니에요. 과자라는 것을 만들어 아이한테 팔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모조리 어른이에요. 우리는 아이를 탓할 수 없습니다. 과자를 만드는 어른을 탓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땅에 아토피를 불러들인 어른을 탓할 노릇입니다. 어떤 병원 처방과 화학약품으로도 고치지 못하는 아토피를 만든 우리 어른을 탓할 노릇입니다.


  시인 할머니한테 아이가 외쳐요. “할머니, 이 세상, 왜 몸에 좋은 건 하나도 없어요?” 할머니는 할 말이 없습니다. 시인 할머니는 학교에 나가 돈을 버는 교사 노릇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인 할머니는 흙을 일구어 ‘몸에 좋은 밥’을 손수 기르는 살림지기 노릇을 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갓 핀 아침 나팔꽃처럼 환한 얼굴이 된다 / “아침이 좋아? 왜 그렇게 좋은데?” 물으면 / “왜냐하면요, 아침이 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으니까요.” ..  (야, 아침이다!)



  아이들은 저녁에 좀처럼 안 자려 합니다. 왜 안 자려 할까요? 더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아침에 아주 빨리 일어나려 합니다. 왜 빨리 일어나려 할까요? 더 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학교라는 데에 들어가면 싹 바뀌어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치고, 저녁에 늦게 자려는 아이가 없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가운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는 아이가 드뭅니다. 왜 그러할까요? 학교가 괴롭고, 숙제와 시험이 모두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놀려고 이 땅에 태어났는데, 어른들은 공부와 숙제와 시험만 잔뜩 갖다 안겨요. 이러니, 아이들은 저녁에 꾸벅꾸벅 졸아요. 학교에서도 꾸벅꾸벅 졸지요. 게다가 아침에는 어기적거리면서 잠자리에서 안 벗어나려고 해요.



.. 내일은 며느리들 와서 김장할 테니 술 작작 마시고 / 아기들 좀 봐줘야 할 것 같으니 / 술 냄새 풍풍 풍기면 / 할아버지 옆에 가려고도 하지 않을 거라고 / 술 좀 덜 마시라고 말했더니 / 언제 마누라 말 들어본 적 있었던가 / 그냥 건성으로 해본 내 충고에 / 웬걸, 무슨 기적처럼 내 남편이 그날 밤엔 / 술 한 잔도 안 마시고 들어왔네 ..  (무서운 아기들)



  우리 어른도 아침이 고단합니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신나게 웃고 노래하는 어른이 아주 드뭅니다. 아침에 일터로 가는 길에 환하게 웃음짓는 얼굴로 기쁘게 노래하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버스에서도 전철에서도 모두 똥을 씹은 듯한 얼굴입니다. 자가용을 몰면서도 입에서 거친 말이 쉬 튀어나오기 마련입니다.


  즐거운 삶이 아닌 고단한 쳇바퀴인 어른인 탓에, 아이한테도 즐거운 삶이 아닌 고단한 쳇바퀴를 베풀고 맙니다. 기쁨이 가득한 삶이 아니라 지치고 힘든 굴레인 어른인 탓에, 아이한테도 기쁨이 가득한 놀이가 아니라 지치고 힘든 입시지옥을 갖다 안기고 말아요.



.. 직장에서 돌아오면 어린 내 아이들 데리고 / 거의 매일 무조건 올랐던 동네 뒷산 / 너무 많이 올라 다녀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던 /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 같았던 성산 ..  (마포 성산)



  시인 할머니는 이녁 일터인 중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거의 날마다 동네 뒷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참말 고단하고 힘든 몸이었을 텐데, 게다가 집으로 돌아왔어도 집일이 그득그득 넘쳤을 텐데, 모든 것을 잊고 동네 뒷산에 오르셨지 싶어요.


  아이를 생각하며 동네 뒷산에 올랐겠지요. 아이와 함께 시인 할머니 이녁 삶을 생각하며 동네 뒷산에 올랐겠지요. 이녁 마음에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지 않고서야 집일을 못했으리라 느낍니다. 이녁 마음에 싱그러운 바람 한 줄기를 불어넣을 적에, 아이들도 스스로 마음밭에 싱그러운 바람씨앗을 심었으리라 느껴요.


  따사로운 마음이 따사로운 마음을 낳습니다. 포근한 숨결이 포근한 숨결을 낳습니다. 사랑으로 지은 노래는 사랑이 가득한 새로운 노래를 낳습니다. 사랑을 받아 태어난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사랑스러운 어른이 되고, 이윽고 사랑을 듬뿍 심은 씨앗으로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시인 할머니는 이녁이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가만히 귀여겨들은 말을 손자한테 조곤조곤 속삭입니다. 시인 할머니한테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살몃살몃 들은 아기는 씩씩하게 자라 아름다운 어른으로 우뚝 서리라 생각합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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