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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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9



청소년은 외롭지 않다

― 난 빨강

 박성우 글

 창비 펴냄, 2010.2.26.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시골에서 어버이를 거들어 흙을 일구는 씩씩한 푸름이를 찾아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이 같은 푸름이를 한둘쯤이라도 만나기는 대단히 힘들겠지요. 대학교를 마친 뒤 시골에서 흙일을 배우고 싶은 젊은이가 있더라도, 시골일을 익힐 만한 시골마을을 찾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견습 농사꾼’을 받아들일 만한 시골은 어디에 있을까요? 모심기와 벼베기부터 씨앗 갈무리와 씨뿌리기를 찬찬히 가르치면서 재워서 키울 만한 시골마을은 어디에 있을까요.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젊은 넋이 시골에 뿌리를 내려 시골일을 배우도록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푸른 넋이 흙을 만지며 자라지 못하도록 가로막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든 푸름이와 젊은이가 도시에서 쳇바퀴를 돌도록 내몹니다. 어른도 아이도 회사원이 되거나 가게·공장 일꾼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는 길만 보여줍니다.



.. 여름방학이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왔다는 에리카와 에밀리와 카리와 캐서린 누나를 만났다 // 김치와 꽃게장과 청국장과 밴댕이젓에 하나같이 손을 대지 못하던 누나들은 고개만 절레절레, 한정식 밥상을 물렸다 허기졌을 배로 한옥마을 골목을 돌았고 은행나무 그늘에 들어 더위를 식혔다 ..  (한옥마을 일박)



  오늘날 아이들은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제대로 바라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날마다 바람을 마시면서도 바람맛을 안 느낄 뿐 아니라, 아이들한테 바람맛을 가르칠 줄 모릅니다.


  우리는 바람을 모르고도 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바람을 배우지 않고도 살 만한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이나 운동선수는 바람을 익히지 않고도 삶을 꾸릴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대학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를 마실 수 없다면, 대학교쯤은 아무것 아닙니다. 아파트나 자가용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바람 한 줄기 누릴 수 없다면, 아파트이고 자가용이고 대단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려면, 숨을 쉬어야 하고, 숨결을 보듬어야 하며, 숨소리를 나누어야 합니다.

  목숨을 서로 아끼고 보살필 때에 아름답습니다. 목숨에서 우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나눌 수 있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목숨을 함께 지키고 가꾸면서 꿈을 키울 때에 즐겁습니다.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피아노도 치고 싶고 / 시도 쓰고 싶다는 /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내 친구, 선미)



  박성우 님이 이 나라 푸름이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쓴 시를 묶은 《난 빨강》(창비,2010)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청소년시’를 모았다고 합니다. ‘동시’와 ‘어른시’처럼 푸름이한테도 따로 ‘푸른시(청소년시)’가 있을 만하리라 느낍니다. 그러면, 이 나라 푸름이가 읽을 푸른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을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입시지옥을 다루면 될까요? 학원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부부싸움과 이혼 같은 다툼을 다루면 될까요?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이성친구 살결을 주무르는 이야기를 다루면 될까요? 젖가슴이 볼록 나오거나 거웃이 돋는 모습을 다루면 될까요?


  어떤 이야기이든 모두 다룰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른시를 쓴다면, 또 우리가 어른으로서 푸름이한테 시를 한 자락 들려주려고 한다면, 겉모습을 넘어서거나 아우르거나 품을 수 있는 마음결을 들려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푸름이 스스로 마음을 가꾸고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꿈을 노래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쉬는 시간마다 가출 계획을 짰다 / 가출 계획서를 작성하기에는 /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  (신나는 가출)



  청소년한테 들려주는 시라고 하는 《난 빨강》에서는 어떤 사랑을 보여줄까요? 어떤 꿈을 밝힐까요? 어떤 이야기와 어떤 노래와 어떤 웃음과 어떤 눈물을 알려줄까요?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입니다. 그리고, 푸름이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이고, 어른도 사람입니다. 이리하여, 푸름이가 읽을 시이든, 어린이가 읽을 시이든, 어른이 읽을 시이든, 모든 시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가장 곱게 여미면서 아낄 사랑을 담고, 꿈을 그리며, 이야기를 짓는 얼거리로 환하게 피어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이 짓는 글이고, 사람이 짓는 삶이며, 사람이 짓는 말이거든요.



.. 단짝 애들은 학원으로 몰려가고 / 나는 여느 때처럼 그냥 집으로 갔다 ..  (학원)



  청소년문학은 청소년만 누리는 문학이 아닙니다. 청소년부터 누리는 문학입니다. 청소년한테만 머무는 문학이 아니라, 청소년과 이웃한 어린이한테 손짓을 하는 문학이요, 청소년과 함께 지내는 수많은 어버이와 둘레 어른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문학입니다.


  청소년은 나이를 더 먹으면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성년식을 하거나 스무 살이 되거나 주민등록증을 받는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거나 술과 담배를 거리낌없이 누릴 수 있대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란, 철이 든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른이란, 철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서른이나 마흔이라 하더라도 철이 들지 않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리광쟁이입니다. 나이가 쉰이나 예순이라 하더라도 철이 없으면 어른이 아닙니다. 이때에는 바보이거나 멍텅구리입니다. 나이가 일흔이거나 여든이라 하더라도 철을 알지 못하면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이란, 철을 알아 슬기로운 넋으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입니다.



.. 쉬는 날 아침에 머리 좀 빗으면 / ―넌, 아침부터 머리만 빗냐 ..  (대체 왜 그러세요)



  박성우 님은 시집 《난 빨강》에서 어떤 철을 푸름이와 나누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성우 님은 이 시집에서 푸름이한테 어떤 철을 보여주면서, 어떤 어른으로서 이 땅에서 씩씩하고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삶을 가꾸는가를 밝히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땅 푸름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이 땅 어른들이 외롭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날이면 날마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서 쳇바퀴를 돕니다. 이 나라 어른들은 외로움에 목이 말라서 인터넷에 빠지고 손전화에 사로잡힙니다. 어린이와 푸름이는 어버이와 둘레 어른한세터 삶을 배우니, 언제나 다른 어른들이 늘 보여주는 대로, 이성친구 살결을 비비는 짓을 사랑으로 잘못 아는데다가, 인터넷과 손전화를 들락거리면서 노닥거려야 삶이 즐거운 줄 잘못 알고, 스무 살만 넘으면 술과 담배에 절면서 살아요.


  청소년문학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겉모습을 훑어서 이럭저럭 그럴듯하게 그리는 글은 청소년문학이 아닙니다. 이런 글은 문학이 아닌 관찰기, 이른바 ‘청소년 관찰기’입니다. 우리 어른들이 청소년문학을 일구어 푸름이와 함께 꿈을 꾸고 싶다면, 어른으로서 먼저 꿈을 꾸는 삶을 지어서, 즐겁게 빚은 사랑스러운 하루를 글로 담아서 보여주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푸념하지 마셔요. 아이들 앞에서 꿈을 꾸셔요. 아이들한테 돈을 주지 마셔요. 아이들한테 사랑을 주셔요.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몰아세우지 마셔요. 아이들을 두 팔을 벌려 포근히 안아 주셔요.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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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했다 깬 것 같다 - 경남여고 1학년 학생들이 쓴 시
경남여고 1학년 학생들 지음, 구자행 엮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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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8



학교에서는 모두 똑같다

― 기절했다 깬 것 같다

 경남여고 아이들 글

 구자행 엮음

 나라말 펴냄, 2011.8.5.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나들이를 옵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예전에는 혼자 나들이를 왔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갓난쟁이를 업고 왔으며, 아이가 제법 자라 씩씩하게 걷고 뛸 적에는 아이 손을 잡고 왔습니다. 어제는 두 아이를 시골집에 두고 혼자 옵니다.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여러 책방을 둘러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아이와 함께 읽을 책을 살핍니다. 이 책 저 책 만지작거리다가, 이곳을 찾아온 다른 책손을 스치기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책방골목에 온 어머니가 많고, 때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아이 손을 잡고 걷기도 합니다. 일요일이니 아버지를 제법 볼 수 있는데, 여느 날이라면 거의 어머니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책방골목에서 책마실을 하는 여느 어버이를 문득 가만히 바라봅니다. 내가 고르던 책을 손에 쥔 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우리 시골집에 있는 아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 이른 아침 학교로 가는 봉고 / 그 속에는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 아이들이 앉아 있다 ..  (봉고/조연경)



  어린이책을 고르는 사람은 거의 모두 어머니입니다. 아버지 가운데 어린이책을 고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어느 어머니는 이녁 곁님(아이 아버지)한테 이런 작가 저런 출판사 책이 좋다면서 찬찬히 알려줍니다. 어느 아버지는 이녁 곁님(아이 어머니)더러 마음에 드는 책은 다 골라서 사자고 말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으레 아이와 나란히 서서 책을 찬찬히 넘기면서 살 만한지 안 살 만한지 살핍니다. 아이 아버지는 으레 사진기를 들고 두 사람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마실을 나온 아버지 가운데 집으로 돌아가서 그림책을 함께 읽거나 아이한테 읽어 줄 분은 얼마나 될까요. 아버지는 집에서 아이와 뛰놀거나 뒹굴기만 할까요, 아니면 아이와 그림놀이도 하고 책놀이도 할까요.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은 누가 맡을까요.



.. 옆에서 학생부장 선생님이 서 계신다. / “너 이리 와 봐. 니 치마가 규정에 맞다고 생각하니?” / “키가 커서 맞는 치마가 없어요.” / “우리 학교 교정은 치마가 무릎을 덮어야 한다.” / 하면서 5만 원이나 하는 치마를 또 사라고 한다 ..  (교복/최은영)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여느 아버지는 집 바깥에서 돈을 버는 일에 아주 크게 마음을 쏟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느 아버지 가운데 집에 오래 머물면서 아이가 자라는 결을 꾸준히 살피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 마음밭에 씨앗을 심는 아버지가 대단히 드뭅니다. 아이가 읽을 책을 골라서 선물할 줄 아는 아버지는 아주 드물고, 아이가 배울 삶과 사랑과 꿈을 보여주거나 알려주거나 밝히는 아버지는 그지없이 드뭅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이한테 꿈을 심어 줄까요? 어머니는 아이한테 사랑을 심어 주나요? 어머니는 아이한테 이야기를 심어 주는가요?



.. 선생님이 와 보라는 신호 / 손이 먼저 머리 위로 올라온다. / “그게 무슨 선생님 앞에서 할 소리야 새끼야.” / 선생님은 이 새끼 저 새끼 욕이란 욕 다 하면서 / 왜 나한테만 난리야 ..  (최악의 체육 시간/양정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머니 가운데 스스로 즐겁게 아침저녁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일을 건사하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낳아 보살피는 어머니 가운데 아버지더러 집밖에서만 나돌지 말고 집안에서 함께 사랑을 꽃피우도록 이끄는 분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뱃속에 아기를 열 달 동안 못 품습니다. 꼭 이 때문은 아닐 텐데, 아이를 온몸이나 온마음으로 품는 몸가짐을 못 갖추기 일쑤예요. 그래서, 어머니 자리에 있는 이들이 아버지를 새롭게 일깨우거나 가르치거나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까지 학교를 다니거나 회사를 다니거나 술동무와 사귀거나 인문책을 조금 읽기는 했을 테지만,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사랑할 줄 아직 모르는 아버지요 사내입니다. 그러니, 이런 아버지나 사내를 바로 어머니나 가시내가 찬찬히 일깨우거나 가르치거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 공부하다 앞을 보니 / 조그마한 아이들이 / 누워 있다. / 온몸이 뜨거운 아이 / 온몸이 차가운 아이 / 온몸이 따듯해 보이는 아이 / 그리고 누워 있다가 / 선생님에게 자주 잡히는 아이 / 아, 나도 저기 따뜻해 보이는 아이처럼 / 조금이라도 정말 조금이라도 / 누워 있고 싶다 ..  (부러운 분필/문윤경)



  경남여고 푸름이가 쓴 시를 모아서 엮은 《기절했다 깬 것 같다》(나라말,2011)를 읽습니다. 여러모로 푼더분하구나 싶은 이야기가 깃듭니다. 경남 ‘여자 고등학교’ 아닌 ‘남자 고등학교’에서 시를 쓰도록 했다면 이만 한 이야기가 나왔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합니다.


  남자 고등학생도 이웃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마음결이 없지는 않겠지요. 남자 고등학생도 너른 사랑을 마음자리에 심을 수 있겠지요. 남자 고등학생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꿈을 곱게 여밀 수 있겠지요.



.. 맑다. / 푸르다. / 내 마음과 같았으면 / 좋겠다 ..  (창밖/김지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만 시키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참말 바랍니다. 도시이든 시골이든, 모든 아이가 제 고장에서 즐겁게 삶을 배워서 제 고장에서 씩씩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고등학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서울로 아이를 올려보내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그저 시골을 떠나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에 들어가도록 다그치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배워서 사랑하고 꿈꾸도록 이끄는 고등학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아빠는 늘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단다. / 내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하면 / “그거 하게? / 그런 걸론 먹고 못 산다. / 니보다 뛰어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내 꿈을 깔아뭉갠다. /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더니 / 순 거짓말이다 ..  (반어법/임성미)



  푸른 아이들은 무엇을 바랄까요? 삶을 바랍니다. 푸른 아이들은 무엇을 꿈꿀까요? 사랑을 꿈꿉니다.


  이 나라에 40만이나 있다고 하는 교사들은 부디 이 대목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한테 시험공부는 그만 시키기를 바라요. 아이들은 교과서를 배우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삶을 배우려고 태어났어요. 아이들은 등급이나 성적을 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았어요. 아이들은 꿈을 키우려고 태어났어요.



.. 친구가 배가 고프다 해서 / 우리 집 근처 시장에 갔다. / 나는 배가 불러 / 하나만 시켜 먹으라고 하고 / 아주머니께 한 그릇만 달라고 했다. / 조금 기다리니 / 그릇 두 개가 나왔다. / 어, 한 개만 시켰는데요? / 혼자 먹으면 쓰나! ..  (시장 칼국수/이정은)



  아이들은 앞으로 돈을 잘 버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장사꾼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앞으로 아름다운 어른으로 자라야 합니다.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제 고장에서 즐겁게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입시지도와 성적지도와 진로지도는 있지만, 삶이나 꿈이나 사랑을 함께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푸름이가 쓴 시를 모은 《기절했다 깬 것 같다》 같은 책은, 힘겨운 아이들이 속풀이를 하도록 돕기는 하지만, 정작 어떤 꿈으로 나아갈 때에 즐겁거나 아름다운가까지 짚거나 이끌거나 돕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두껍고 딱딱하며 메마른 입시지옥이라는 울타리에 갇힌 몸으로는 이만큼 하기도 힘들 수 있어요. 부산에 있는 작은 고등학교 한 곳에서 입시지옥 울타리를 걷어치우거나 없애기는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 있습니다. 입시지옥 울타리가 아무리 높다 한들, 아이들 삶은 바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제 삶을 사랑하도록 돕는 몫은 바로 어버이와 어른한테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모두 똑같습니다. 게다가 집에서까지 모두 똑같습니다. 동네에서마저 모두 똑같습니다. 다 다른 모든 아이들을 다 똑같은 틀에 가두는 사회 얼거리를 그저 팔짱을 낀 채 구경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한테 시 한 줄만 맛보인 뒤 고등학교를 마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내딛으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둘레에 있는 다른 어른과 어버이도 눈을 뜰 수 있도록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청소년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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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창비시선 3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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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0



시와 콩밥

― 밥값

 정호승 글

 창비 펴냄, 2010.11.5.



  콩을 심어서 콩을 얻기도 하고, 콩을 심지 않으면서 콩을 얻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오늘날 심어서 거두는 콩은 들콩이나 돌콩을 갈무리해서 알이 더 굵도록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알갱이가 맺는 들콩이나 돌콩을 훑어도 꽤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들콩이나 돌콩은 퍽 작습니다. 그렇지만 자그마한 콩알에는 모든 것이 다 들었습니다. 안 들은 것이 없습니다. 크기만 작을 뿐입니다. 크기를 키운 오늘날 콩에도 이것저것 들었을 테지요. 그런데 오늘날 콩은 비료와 농약을 먹어요. 새와 멧돼지가 파먹으려 한다면서 시골에서는 고단하다고도 말합니다.


  새와 멧돼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깊은 두멧자락까지 고속도로와 기찻길을 낸다면서 구멍을 뻥뻥 뚫을 뿐 아니라, 골프장을 짓느니 발전소와 송전탑을 때려박느니 하면서 마구 들쑤셔요. 새와 멧돼지가 누릴 밥이 거의 사라집니다.



.. 진달래 핀 / 어느 봄날에 / 돌멩이 하나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  (부활)



  새와 멧돼지 때문에 못살겠다 싶으면 새와 멧돼지를 모조리 잡아서 죽여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새와 멧돼지 따위는, 노루와 고라니 따위는, 멧토끼와 들쥐 따위는 몽땅 잡아서 죽여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새가 사라진 지구별’이 어떤 모습이 될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은 새가 사라진 지구별’이 어떻게 될는지 하나도 헤아리지 않습니다.


  가을날 참새가 벼알을 쪼아먹는들 대수롭지 않습니다. 가을에 참새는 벼알을 좀 쪼아야 합니다. 겨울에도 참새는 사람이 밥을 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자그마한 참새가 봄부터 가을까지 애벌레와 나비와 나방을 엄청나게 잡아먹었거든요. 사람이 농약과 살충제로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는 수많은 애벌레와 날벌레를 참새와 박새와 콩새 같은 자그마한 새들이 아주 많이 잡아먹었어요.



.. 거울을 보다가 가끔 / 내 얼굴이 악마의 얼굴이 아닌가 / 한참 들여다볼 때가 있다 ..  (거울)



  노루와 고라니와 멧토끼와 들쥐는 무엇을 할까요? 이들은 풀을 뜯습니다. 나뭇잎을 갉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저곳 길을 내거나 건물을 세우거나 집을 짓거나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를 세운다면서 숲과 들을 갈아엎거나 짓밟습니다. 이리하여 ‘풀을 먹는 숲짐승’은 풀을 얻기 자꾸 힘들고 맙니다. 사람들은 농약을 뿌린다든지 ‘풀 베는 기계를 기름으로 돌리’면서 고달픈 짓을 하는데, 숲짐승은 이 풀을 감쪽같이 먹어치워요.


  지난날에는 집집마다 소나 돼지나 닭을 키우면서 풀을 먹였습니다. 고작 쉰 해 사이에 사람들은 소나 돼지나 닭을 공장에서 키워서 가게에서 사다 먹는 얼거리가 되었습니다만, 예부터 어느 시골에서나 둘레에 흔하게 돋는 풀을 함부로 안 베었어요. 사람이 나물이나 약으로 쓸 때에 베고, 짐승한테 먹이로 주려고 할 때에만 베었습니다.


  숲짐승은 ‘먹을 풀’이 사라지니 논으로 밭으로 달려서 이런 푸성귀와 저런 남새를 파먹거나 갉아먹을밖에 없습니다.



.. 자살하지 마라 / 별들은 울지 않는다 ..  (별들은 울지 않는다)



  정호승 님이 쓴 《밥값》(창비,2010)이라는 시집을 읽습니다. 밥값, 그래요, 밥값입니다. 정호승 님이 바라보는 밥값이란 무엇일까요. 정호승 님은 어떤 밥값을 하면서 삶을 가꿀까요. 이 나라와 삶터를 아름답게 가꾸는 땀방울로 밥값을 하는가요. 어린이와 어른한테 사랑과 꿈을 심는 일을 하면서 밥값을 하는가요.



..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처럼 산다 /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  (폐사지처럼 산다)



  옛 절터에서 쓰러진 탑을 세우는 일을 한다는 정호승 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아직 ‘참된 길로 가는 탑’을 세운 적이 없다지만, 옛 절터에서 쓰러진 탑을 세운다고 하는군요.


  정호승 님으로서는 그 길이 이녁한테 가장 알맞겠다 싶어서 그 길을 가는구나 싶습니다. 그러한 일이 바로 이녁한테 밥값이 되리라 여기면서 그 길을 가는구나 싶어요.


  그런데, 쓰러진 탑이라면 그대로 두기를 바라요. 쓰러진 탑이란 돌덩이예요. 돌덩이는 처음부터 숲에 있던 돌이에요. 옛 절터는 숲으로 돌아가도록 놓아 주셔요. 쓰러진 탑은 숲에 있던 수많은 돌로 돌아가도록 놓아 주셔요.


  숲에서 씨앗을 주우셔요. 들콩을 줍고 돌콩을 주우셔요. 사람이 안 심었어도 언제나 사람과 모든 숲짐승한테 밥이 되는 들콩과 돌콩을 주우셔요. 사람이 심지 않아도 씩씩하게 돋으면서 열매를 베풀 뿐 아니라, 농약과 비료 때문에 죽어 버린 흙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들콩과 돌콩을 주우셔요.



.. 희디흰 눈길 위로 / 누가 걸어간 / 발자국이 보인다 ..  (눈길)



  우리 함께 ‘들콩밥’ 한 그릇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서로 ‘돌콩밥’을 한솥 가득 지어 이웃과 동무를 불러 밥잔치를 할 수 있기를바랍니다.


  시는 억지로 쓰려고 해서 쓸 수 없습니다. 시는 문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는 우리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노래하면 저절로 흐릅니다. 시는 문학이 아닌 삶이기 때문입니다.


  시를 써서 문학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를 읽어 문화를 누릴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밝히려고 시를 씁니다. 삶을 사랑하려고 시를 읽습니다.


  멧토끼 발자국을 따라 우리도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길에 자동차 바퀴 자국을 남기지 말고, 우리 두 발로 걷는 자국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쓰러진 탑’도 ‘참된 길을 여는 탑’도 안 세워도 됩니다. 삶을 누리면 되고, 삶을 지으면 되며, 삶을 가꾸면 됩니다. 이 눈길을 함께 걸어갈 아이들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조그마한 보금자리와 마을을 닦도록 손길 살그마니 보태면 됩니다. 그게 밥값이지요. 4347.10.1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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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거리 문학동네 동시집 3
곽해룡 지음, 이량덕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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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7



꿈과 사랑이 흐르는 삶

― 맛의 거리

 곽해룡 글

 이량덕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11.24.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이 돈을 잘 벌어서 돈을 잘 쓰는 어른이 되기보다는, 삶을 즐겁게 가꾸면서 사랑을 기쁘게 나눌 숨결로 자랄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가슴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꾸고, 다시 사랑이라는 씨앗을 거두어 새롭게 심을 줄 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들이 / 바닷물을 끌어당긴다 ..  (밀물)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모두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랐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동안 삶을 익히고 삶을 가꾸며 삶을 사랑합니다. 어른은 모두 아기로 태어나 사랑을 받았고 꿈을 키웠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시골 할머니 집에서 / 받아 온 꽃씨 / 우리 집 담장 밑에서 / 나팔꽃으로 피었습니다 ..  (나팔꽃)



  씨앗이 뿌리를 내립니다. 씨앗에서 줄기가 오릅니다. 처음 오르는 줄기는 아주 가냘픕니다. 아기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도 끊어질 만합니다. 나무씨이든 풀씨이든 첫 줄기는 아주 가녀립니다.


  가녀린 줄기에서 가녀린 잎이 돋습니다. 이 첫 잎을 ‘싹’이라고 합니다. 새싹이 돋은 씨앗은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먹으면서 흙 품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윽고 줄기가 단단하게 굵고 잎은 넓어집니다. 줄기와 잎과 뿌리가 알맞게 자라면서 어느 만큼 따사로운 기운을 머금을 무렵 가만히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꽃송이는 벌과 나비와 개미를 부릅니다. 게다가 사람까지 부르지요. 벌과 나비와 개미는 먹이를 찾아 꽃송이한테 다가갑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숨결을 받고 싶어서 꽃송이한테 다가섭니다.



.. 사람들이 모를 심듯 / 새들은 나무를 심는다 ..  (똥 누러 가는 새)



  아름다운 꽃송이는 여러 날 바람에 한들거리면서 즐겁게 한삶을 누리다가 사르르 집니다. 꽃송이가 지면서 씨방이 굵습니다. 씨방은 차츰 여물고, 어느새 새로운 목숨을 안은 씨앗이 태어납니다.


  씨앗이 씨앗을 낳습니다. 씨앗은 씨앗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을 베푸는 씨앗은 새로운 사랑을 베풀 씨앗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씨앗은 앞으로 새롭게 사랑을 노래할 씨앗으로 숨결을 잇습니다.


  꽃이 진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은 살짝 서운하지만, 씨앗이 맺은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부풉니다. 그래, 올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찾아오면 다시 꽃잔치를 누릴 수 있어. 이 씨앗을 보면서 다시금 기운을 차려야지.



.. 꽃길 걷다 보면 / 나도 모르게 / 찐―짠 찐짠 찐짠 / 노래가 나온다 ..  (꽃길)



  곽해룡 님이 빚은 동시를 그러모은 《맛의 거리》(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동시가 이 작은 책에 깃듭니다. 곽해룡 님이 어린 날부터 어른이 된 오늘까지 스스로 사랑하며 살던 이야기가 작은 동시에 조촐히 깃듭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사랑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요. 꿈이란 꿈입니다.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꿈은 대학교가 아닙니다. 사랑은 아파트가 아닙니다. 꿈은 서울살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은 꿈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꿈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 “그래.” / 연속극에 붙들린 엄마 /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  (엄마를 구하다)



  동시집 《맛의 거리》는 애틋하면서 살갑습니다. 다만, 조금 더 헤아려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숨결’이 될 수 있으면 한결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놓은 사회 얼거리를 보여주는 동시도 나쁘지 않고, 어른들이 만든 슬픈 울타리를 건드리는 동시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시로는 노래를 부르기 어려워요.


  아이들이 부르고 어른들도 함께 즐길 노래는 우리가 다 함께 나아갈 사랑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여야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엄마를 구하다〉 같은 작품은 재미있고 어떤 상징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지만, 이 동시를 노래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며시 나무라는 재미난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끝이에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내 동생〉 같은 작품도 아름답다 할 만하지만, 여기에서 끝이에요. 더 뻗지 못해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을 꿈과 사랑이 흐르지 못합니다.



.. 어제는 벽에 / 달을 그려 / 엄마한테 혼나고 // 오늘은 풍선을 그려 / 혼나고 / 울다 잠든 / 내 동생 ..  (내 동생)



  함께 지을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씨앗을 심는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누릴 꿈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씨앗이 꽃이 되고 다시 씨앗이 되는 이야기를 어깨동무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짓듯이 동시를 짓기를 바랍니다. 재미난 몇 가지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기보다, 꿈꾸는 삶과 사랑하는 삶을 따사롭게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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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삶
양정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시를 말하는 시 80



함께 꾸리는 삶

― 내가 읽은 삶

 양정자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4.6.10.



  아이들이 입는 옷은 작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옷을 입을 뿐, 어른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른 가운데에는 몸집이 큰 사람이 있고 몸집이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몸집이 크대서 큰 사람이 아니고, 몸집이 작대서 작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몸집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씻깁니다. 작은 옷을 벗긴 뒤 작은 몸을 슥슥삭삭 문지르면서 씻깁니다. 아직 아이들은 몸도 손도 발도 조그맣기에, 스스로 제 몸을 씻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몸집이 큰 어른이 아이들을 씻깁니다.


  기운이 센 사람은 기운이 여린 사람보다 짐을 잘 나릅니다. 기운이 세니 짐을 잘 나르거나 더 나르겠지요. 기운이 여린 사람은 짐을 덜 나를 테며, 때로는 아무 짐을 못 나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두 사람은 똑같이 배가 고픕니다. 센 사람이나 여린 사람이나 배고프기는 서로 마찬가지요, 밥을 똑같이 먹어야 합니다. 기운이 센 사람이라서 두 그릇을 먹거나 기운이 여린 사람이라서 반 그릇만 먹어도 되지 않습니다.



.. 할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광활했던 들판. 어두웠던 마음을 알 수 없는 환희로 가득 채워주었던 드높은 하늘, 뭉게구름, 반짝이던 나뭇잎들, 시뻘건 황토밭들, 그 붉은 흙 위에 어른어른 눈부셨던 빛 아지랑이들 ..  (초록빛 들판)



  아이들이 놉니다. 뛰고 달리면서 놀기도 하고, 뒹굴면서 놀기도 합니다. 까르르 노래하면서 놀기도 하고, 장난감을 잔뜩 어지르면서 놀기도 합니다. 놀다가 꽈당 넘어지기도 하고 쿵 부딪히기도 합니다. 놀다가 물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물을 튀기기도 합니다.


  노는 아이들은 저마다 놀고 싶은 대로 놉니다. 한 시간을 놀기도 하고, 두 시간을 놀기도 하며, 서너 시간이나 대여섯 시간을 잇달아 놀기도 합니다. 하루 내내 놀기도 하고, 잠을 잊은 채 놀다가 어느새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얼마만큼 놀아야 즐거울까요. 아마, 놀고 싶은 대로 놀아서 아쉬움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놀아야 즐겁겠지요. 참말 마지막 남은 힘까지 모두 쏟아서 더는 놀 기운이 없어야 비로소 아이들은 놀이를 그칩니다.



.. 점심도 굶고 열심히 그 애를 따라다니는 나를 엄마는 걱정하셨지만, 놀이에 열중했던 우리는 배고픈 줄도 몰랐네. 무언가를 우리는 끊임없이 찾아 먹었으니까. 띠뿌리, 메싹뿌리, 진달래, 찔레순, 아카시아꽃, 버찌, 삘기, 까마중, 산딸기, 머루, 다래, 으름, 알밤, 산고욤, 홍시, 까치밥 ..  (준식이)



  함께 꾸리는 삶입니다. 두 어버이가 함께 꾸리는 삶입니다. 함께 걷는 길입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걷는 길입니다. 함께 사랑하는 하루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아끼는 하루입니다.


  여름에는 해가 떨어지면 비로소 시원하고, 가을에는 해가 떨어지면 서늘하며, 겨울에는 해가 떨어지면 춥습니다. 봄에는 해가 떨어지면 어떤 기운이 될까요. 아무래도 봄이 되어야 이 기운을 알 테지요.


  가을에 익는 나락은 갓 벤 뒤에는 겨까지 함께 먹어도 고소합니다. 아니, 갓 벤 나락은 알맹이와 겨가 모두 맛납니다. 따사로운 볕을 듬뿍 받아들인 냄새와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나락을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껍데기를 벗기지 않은 벼알일 때에는 이듬해에 볍씨로 씁니다. 사람들은 벼알을 먹을 적에 겨를 빻아서 벗깁니다. 겨를 벗긴 벼알을 심어서 싹을 틔우기는 어렵습니다. 벼알이 싹을 트려면 껍데기인 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씨앗은 껍데기가 있어야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모든 씨앗은 겉씨와 속씨로 이루어진다고 할 만합니다. 둘은 늘 함께 한몸을 이룹니다.



.. 청소시간, 교무실에서, 나는, 너무나 잘난 척하는 부유하고 집안 좋은 아이들이 청소는 전혀 하지 않고, 비단결 같은 희고 통통한 두 손가락 끝으로 무슨 징그러운 벌레나 잡듯이 마지못해 더러운 걸레 한 귀퉁이를 집어 흔드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았네 ..  (사춘기 - 청개구리)



  양정자 님이 빚은 시집 《내가 읽은 삶》(실천문학사,2004)을 읽습니다. 시집 《내가 읽은 삶》은 산문시를 담은 책이라 할 만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산문시라기보다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할머니가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할머니가 이녁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스스로한테 스스로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집 살림이 어떻게 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쥐꼬리만한 월급날 사오시는, 좁은 방을 가득 채웠던 책들. 사상계, 니체와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각종 철학책과 역사책들, 늘 바쁘고 피곤했던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읽었던 책들 ..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2 - 아버지의 꿈)



  ‘노래’가 있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지어서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요즈음은 이런 노래를 두고 ‘민요’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그저 노래를 스스로 지어서 불렀습니다.


  지난날에 사람들이 스스로 지어서 부른 노래는 그예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꾸리는 삶을 스스로 가락을 입혀서 불렀습니다. 절구를 빻다가, 장작을 패다가, 나무를 하다가, 바느질을 하다가, 물레를 잣다가, 베틀을 밟다가, 바구니를 엮다가, 짚신을 삼다가, 콩을 삶다가, 메주를 띄우다가, 아이들을 재우다가, 갓난쟁이한테 젖을 물리다가,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조곤조곤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날마다 이야기잔치이면서 노래잔치였습니다.


  이야기는 늘 삶에서 태어납니다. 하루하루 꾸리는 삶을 고스란히 노래로 부릅니다. 날마다 일구는 삶을 낱낱이 노래로 부릅니다.


  즐거움이 노래가 됩니다. 서운함이 노래가 됩니다. 웃음과 눈물이 모두 노래가 됩니다. 꿈과 사랑이 노래가 됩니다. 미움과 아픔과 생채기가 노래가 됩니다. 무엇이든 노래가 되고, 무엇이든 즐거운 이야기로 뿌리를 내립니다.



.. 어려울 때 이렇게 서로 돕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것이 삶을 사는 방식이었네. 그 훌륭한 방식을 대놓고 비난할 수는 없었지만, 내게는 너무나 싫었던 그 방식이 어린 나의 끔찍한 고민이었네 ..  (집 5 - 충남 합숙소)



  노래하는 아이 곁에는 노래하는 어른이 있습니다. 우는 아이 곁에는 우는 어른이 있습니다. 놀이하는 아이 곁에는 놀이와 일을 함께 누리는 어른이 있습니다.


  어른이 웃으면서 아이한테 웃음을 물려줍니다. 아이가 웃으면서 어른한테 웃음을 일깨웁니다. 어른이 노래하면서 아이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아이가 노래하면서 어른한테 노래를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하루도 아름답게 이야기 한 타래가 노랫가락처럼 포근하게 흐릅니다. 4347.10.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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