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1
김지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71



시와 말밥

― 花開

 김지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2.6.25.



  해가 천천히 기우는 네 시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홀로 날아다니는 노랑나비를 봅니다. 시월 한복판에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나비라니, 틀림없이 우리 집 나무나 풀밭에서 깨어난 아이인 듯합니다. 네 철 푸른 잎사귀를 매단 후박나무에 깃드는 나비 애벌레가 많습니다. 초피나무와 감나무와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와 뽕나무에도 살몃살몃 여러 애벌레가 깃듭니다. 맛나게 먹을 잎사귀가 있으면 온갖 풀벌레와 날벌레가 알을 낳아 이녁 새끼를 낳습니다.


  이 가을에 새롭게 깨어난 노랑나비는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까요. 아마, 가을날 한껏 흐드러진 고들빼기꽃을 먹을 테고, 쑥부쟁이꽃도 먹을 테며, 가을민들레나 코스모스도 먹을 테지요.



.. 주먹구구로 살아왔네 / 아직도 서투른 구구 ..  (구구)



  시월이 천천히 무르익으니 들빛은 샛노랗습니다. 일찌감치 볍씨를 심은 논은 기계를 불러 볏포기를 벱니다. 요즈음 시골은 옛날과 달라 손으로 벼를 베는 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같이 기계를 부려서 벼를 벱니다. 더욱이, 요즈음 시골을 보면 ‘유전자 건드린’ 볍씨이다 보니, 사람이 손을 써서 낫으로 베기에 퍽 어렵다 할 만합니다. 옛날 벼는 줄기가 굵고 길었으나, 요즘 벼는 줄기가 가늘고 짜리몽땅입니다.


  그래도 들빛은 들빛대로 가을빛입니다. 샛노랗게 잘 익은 나락으로 가득한 들길을 아이들과 걷거나 자전거로 오갑니다. 요즈막에는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한데, 이러한 날씨가 되니, 들마다 조물조물 푸른 잎사귀가 새로 오릅니다. 날이 추울 때에 싹이 터서 올라오는 갓이며 유채입니다.


  누가 따로 심지 않아도 갓과 유채는 씩씩하게 가을바람을 먹으면서 싹을 틔웁니다. 모두 깊이 겨울잠을 자는 철에 갓과 유채는 기운차게 줄기를 올리고 잎사귀를 벌립니다. 일찍 올라온 갓과 유채는 한겨울에도 노랗게 꽃송이를 벌립니다. 참으로 대견하면서 놀라운 아이들입니다. 



.. 감기 들린 작은놈 콜록 소리 / 내 가슴에 천둥 치는 소리 / 손에 끼었던 담배 / 저절로 떨어지고 / 춥다 / 그리고 덥다 ..  (短詩 셋)



  아이들을 모두 재운 깊은 밤에 살짝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엊그제까지 보름이던 달이 차츰 이웁니다. 이틀이나 사흘 뒤면 반달이 될 듯한데, 보름 아닌 달이면서도 하얀 빛이 무척 밝습니다. 마당이 훤하고 밤하늘 구름까지 또렷합니다.


  시골마을 달빛과 별빛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밤에 등불을 안 켜도 달빛과 별빛으로 환하면서 곱습니다.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지 않아도 됩니다. 밤길이 어두울 일은 없습니다. 그믐달이 되면 조금 어둡다 할 만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러 해 지낸 사람은 밤눈을 틔웁니다. 게다가, 그믐날은 별빛이 더욱 밝으니, 별빛을 등에 지면서 다닐 수 있어요.



.. 창 너머 / 내가 늘 바라다보는 / 감나무 한 그루에 / 감꽃이 숱하게 피었다 ..  (短詩 다섯)



  별이 있으니 별을 봅니다. 달이 있으니 달을 봅니다. 그렇지요. 별과 달을 가리는 곳에서는 별도 달도 못 봅니다. 높직한 건물이 별과 달을 가리는 데에서는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야 합니다. 높직한 건물에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데에서는 곳곳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등불을 켜니 달과 별을 잊습니다. 등불을 켜니 한낮에도 컴컴한 건물에서 햇볕과 햇빛을 잊은 채 지냅니다. 등불을 바라보니 도시에서는 지하상가와 높은 건물을 자꾸 늘리며, 등불로 문명과 문화를 만드니, 도시에서는 흙과 풀과 숲을 자꾸 밀어내거나 없애는 정책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별과 달과 해가 없다면, 지구에서는 아무 바람이 불 수 없습니다. 별도 달도 해도 잊는다면, 지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나락을 익게 하는 힘은 해입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나 감을 익게 하는 기운은 해입니다. 그리고, 달과 별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별은 서로 보살피고 가꿉니다. 온누리를 이루는 수많은 별은 서로 돌보고 어루만집니다.



.. 내 귓속에 / 한 사람 / 얼굴 없는 사람이 앉아 / 귀 기울이고 있다 ..  (그때)



  김지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花開》(실천문학사,2002)를 읽습니다. 김지하 님은 학문도 하고 문학도 하니, 글멋을 부려서 ‘花開’와 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시집 《花開》에는 ‘短詩’라는 이름을 붙인 시도 있고, 이밖에 한자로 이름을 붙인 시가 제법 많습니다.


  고려나 조선이나 일제강점기도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 한자로 시집 이름을 삼거나 한자를 빌어 시를 쓰는 분을 볼 때면 살짝 궁금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쓰는 시일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어린이가 푸름이가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사람들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꽃이 핍니다. 꽃길이 열립니다. 꽃내음이 퍼집니다. 꽃송이가 터집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란,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인 ‘벼알’인데, 벼알이 맺으려면 벼꽃이 피어야 합니다. 감알을 먹으려 해도 감꽃이 피어야 하고, 포도알을 먹으려 해도 포도꽃이 피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남새와 열매는 꽃이 피고 나서 곱게 진 뒤에라야 얻습니다.



.. 나는 / 아파트에다 / 토담집을 짓는다 // 아파트 사이사이로 /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 산책길에 / 내 발을 적신다 ..  (아파트 꿈)



  씨앗과 꽃과 열매입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입니다. 풀과 나무요, 숲과 들입니다. 하늘과 땅이며, 냇물과 바다이고, 뭍과 섬입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한자나 한문이나 책이 없었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임금이나 양반이나 사대부나 지식인이나 권력자나 종교지도자나 싸울아비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없었어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 꽃 터질 때마다 / 울리는 쇠북 소리 // 바람 / 잎가에 서성거리고 // 대낮에도 / 별들이 반짝인다 // 다시 태어나고 싶다 // 이 봄에 / 스며들듯 / 죽고 싶다 ..  (부끄러움)



  시를 써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시를 읽어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면 시를 압니다. 삶을 가꾸면 시를 알아요.


  시는 문학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시는 이론으로 쓰지 않습니다. 시는 비평이나 평론으로 읽지 않으며, 시는 학문도 예술도 문화도 교육도 아닌, 오직 삶입니다. 김지하 님이 빚은 시집 《花開》는 바로 김지하 님 삶입니다.


  그러면, 시를 쓴 김지하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가꾸는가요? 시커멓고 까마득하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무렵에는 옥살이를 하거나 숨어서 살던 대로 시를 썼을 테지요. ‘시체장사꾼’이라는 말을 읊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던 엊그제에는 엊그제대로 시를 쓸 테지요. 지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 받은 쓰라린 생채기를 법원에서 ‘15억 원 국가배상 판결’을 받은 이즈음에는 이즈음대로 시를 쓸 테지요.



.. 돋보기를 써도 / 앞이 부옇다 // 아마 / 데리다는 영영 / 못 읽을 것이다 ..  (쉰둘)



  김지하 님은 데리다를 안 읽어도 됩니다. 읽고 싶으면 읽어도 됩니다. 스스로 종이책을 펼쳐서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사람을 불러서 소리내어 읊어 달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데리다를 읽고 싶을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웃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수없이 많은 목숨과 숨결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동백꽃을 읽어 보셔요. 사광이풀을 읽어 보셔요. 코딱지나물꽃을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를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 모과꽃을 읽어 보고, 수세미꽃을 읽어 보셔요. 하늘타리꽃과 여뀌꽃을 읽어 보셔요. 억새꽃과 갈대꽃을 읽어 보셔요. 흙내음을 읽고 바람결을 읽어 보셔요. 우리 곁에 있는 살가운 이웃이 흘리는 눈물을 읽고, 우리 둘레에 있는 사랑스러운 동무가 짓는 웃음을 읽어 보셔요.



.. 병으로 / 오래 외롭다 보니 // 사람이 사람에게 / 한울님인 걸 알겠다 ..  (한울)



  꽃은 들에서 들꽃입니다. 들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터뜨립니다.


  꽃은 사람한테서 사람꽃입니다. 사람은 노래꽃과 웃음꽃과 눈물꽃과 이야기꽃을 낳습니다.


  김지하 님이 나아갈 길은 김지하 님이 스스로 가꿀 텐데, 아무쪼록, 말밥을 일으키는 삶길이 아니라, 사랑밥을 나누는 삶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밥을 지어서 노래밥을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누다가, 삶밥 한 그릇 넉넉히 자시기를 바랍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천갑자 복사빛 민음의 시 126
정끝별 지음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69



시와 교수님

― 삼천갑자 복사빛

 정끝별 글

 민음사 펴냄, 2005.4.15.



  내가 곁에 두고 사귀는 ‘교수님’이 있는지 곰곰이 돌아봅니다. 아직 나한테는 ‘대학 교수’ 벗이 없습니다. 앞으로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 교수라는 사람을 벗으로 사귀지는 않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소설가였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어린이문학 비평을 조금 쓰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동화를 쓰다가 교수가 된 사람이라든지, 이것저것 하다가 교수가 된 사람을 둘레에서 곧잘 보는데, 나는 둘레에서 교수가 된 사람은 웬만해서는 다시 안 만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웃마을에 교수님 한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고흥에서 순천까지 강의를 하러 오갑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교수님이라고 할까요. 강수돌 교수도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는 ‘몇 안 되는’ 교수님일 텐데, 이 같은 분이라면 반가우면서 즐거운 벗님이 되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손에서 흙내음이 나거든요.



.. 앉았다 일어섰을 뿐인데 // 두근거리며 몸을 섞던 꽃들 / 맘껏 벌어져 사태 지고 ..  (늦도록 꽃)



  흙내음이나 땀내음이 몸에 밴 사람일 때에 비로소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흙내음이나 땀내음이 몸에 배지 않고서는 대학교뿐 아니라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하고 만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섣부른 소리일는지 모르지요. 어설픈 생각일는지 모르지요. 다만, 내 생각은 뚜렷합니다. 어느 과목을 맡든 어떤 학문을 하든, 어른으로서 아이와 만나는 이라면, 풀과 나무와 꽃과 숲을 언제 어디에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껴요.



.. 파나마 A형 독감에 걸려 먹는 밥이 쓰다 / 변해 가는 애인을 생각하며 먹는 밥이 쓰고 / 늘어나는 빚 걱정을 하며 먹는 밥이 쓰다 / 밥이 쓰다 / 달아도 시원찮을 이 나이에 벌써 / 밥이 쓰다 ..  (밥이 쓰다)



  기저귀를 갈 줄 모르는 사내라면 아버지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미역국이나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뿐 아니라, 한집 살붙이한테 밥을 차려 주며 함께 누리지 못하는 사내라면 아버지뿐 아니라 어버이가 될 수 없다고 느낍니다. 다만, 가시내도 이와 같아요.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함께 삶을 짓고 함께 삶을 노래하며 함께 삶을 가꿀 때에 비로소 어버이요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느껴요.


  그러니까, 누군가한테 무엇을 가르치려는 사람이라면, 먼저 스스로 삶을 짓고 노래하며 가꾸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하루를 맞이할 줄 아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는 아이들은 삶을 배울 노릇이고 삶을 사랑하면서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알려준다면, 교사도 교수도 아니라고 느껴요. 이런 이들은, 지식만 다루는 이들은, 그저 지식배달부이지 싶어요. 지식배달부는 지식노동자이고, 지식노동자는 지식 한 줌에서 맴도는 사람들이지 싶어요.



.. 세상 흰빛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 사라지는 누구의 어깨일까 ..  (먼 눈)



  정끝별 님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민음사,2005)을 읽습니다. 언뜻선뜻 비치는 고운 빛줄기를 느끼다가도, 자꾸자꾸 드러나는 지식 어린 푸념을 느낍니다. 수수하면서 보드랍게 흐르는 노래를 듣다가도 왱왱거리는 지식 어린 평론을 느낍니다.


  이 느낌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어느새 마지막 시를 읽고 책을 덮습니다. 시란 무엇일까요. 시는 언제 쓸까요. 시는 누가 읽을까요. 시는 누가 누구하고 나누는 노래일까요.



.. 물만 보면 / 담가보다 어루만져 보다 / 기어이 두 손을 모아 뜨고 싶어지는 손 ..  (물을 뜨는 손)



  시 한 꼭지를 놓고 온갖 비평이나 평론을 붙이는 일이란 덧없다고 느낍니다. 문학비평이나 문학평론은 문학을 죽이는 짓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비평이나 평론은 문학을 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평이나 평론은 언제나 문학을 꽁꽁 가두기 때문입니다.


  갖가지 일본 제국주의(강점기 무렵) 한자말이나 미국 제국주의(오늘날 경제 식민지) 영어를 들먹이면서 이론과 논리를 갖춘 문학비평이나 문학평론은 문학을 짓밟기만 한다고 느낍니다.


  왜 문학을 가슴으로 안 읽고 제국주의 이론으로 읽어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왜 문학을 마음으로 노래하지 않고 제국주의 논리에 맞추어 재거나 따져야 하는지 알쏭달쏭합니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읊는 글은 노래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평이나 평론은 전문가 아니면 읽어내지도 못합니다. 아니, 전문가조차 따분하게 여깁니다. 시를 비평하거나 평론한 글을 읽는 시골 흙일꾼은 없습니다. 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글을 읽는 도시 노동자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시가 문학이라면, 문학이 삶이라면, 삶이 노래라면, 어떤 비평이나 평론도 부질없는 노릇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가리 쪼개는 짓이지 싶습니다.



.. 도둑처럼 밤에 들어 세수를 하려는데 / 여섯 살짜리 딸애 칫솔과 내 칫솔이 / 뭉개진 털을 싸 쥐고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 빈 낮 내내 딸애가 부둥켜안고 싶었던 거 ..  (밤의 소독)



  대학 교수도 시를 쓰려면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학 교수도 시를 읽으려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를 쓸 적에는 아무런 이름이 없어야 합니다. 시를 읽을 적에도 아무런 허울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쓰는 시입니다. 마음을 열어 맞아들이는 시입니다. 마음이 움직여 노래가 흐르기에 시가 태어나고, 이러한 시가 마음으로 촉촉히 젖어들면서 가락을 입힌 노래로 거듭납니다.


  시를 하든 동화를 하든 소설을 하든, 즐겁게 문학을 하려는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요. 문학은 ‘집’에서 일구는 ‘삶’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문학을 하고 싶다면 ‘집’에서 ‘삶’을 노래할 노릇이요, 문학을 더 하고 싶지 않다면, ‘교수’나 ‘교사’가 되어야겠지요.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코파이 자전거 동시야 놀자 1
신현림 지음, 홍성지 그림 / 비룡소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36



개구쟁이가 쓴 동시

― 초코파이 자전거

 신현림 글

 홍성지 그림

 비룡소 펴냄, 2007.2.23.



  우리 집 작은아이는 개구쟁이에 장난꾸러기입니다. 어떤 놀이를 하든 개구쟁이 짓을 보여주고, 언제 어디에서나 장난꾸러기다운 웃음과 모습입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는고 하면서 돌아보면, 누구이긴 누구인가 하면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왔지요. 아이를 낳은 어머니도 아버지도 어릴 적에 개구쟁이로 놀면서 장난꾸러기다운 온갖 놀이를 즐겼겠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내가 어릴 적에 개구쟁이 짓을 한참 할 적에, 우리 어버이와 형과 동무와 이웃은 어떻게 맞아들였을까 하고. 그저 예쁘거나 귀엽게 맞아들였을까요, 아니면 고단하거나 괴롭게 맞아들였을까요. 제발 그만 해 주기를 바랐을까요, 아이 때에는 누구나 그러려니 하고 여겼을까요.



.. 초코파이 자전거를 탔더니 / 바람이 야금야금 / 다람쥐가 살금살금 / 까치가 조금조금 / 고양이가 슬금슬금 먹어서 ..  (초코파이 자전거)



  신현림 님이 이녁 딸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동시를 담은 《초코파이 자전거》(비룡소,2007)를 읽습니다. 신현림 님은 틀림없이 이녁 딸아이한테 들려주는 선물과 같이 동시를 썼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신현림 님 스스로 삶을 즐기려고 이 동시를 썼어요.


  아마 이녁 어릴 적을 숱하게 떠올리면서 한 줄 두 줄 적었겠지요. 이녁 어릴 적에 어떻게 놀면서 하루를 꿈꾸었는지 되새기는 즐거움이 한 줄 두 줄 녹아들었겠지요.


  노래는 언제나 삶으로 드러납니다. 삶은 언제나 노래로 피어납니다. 노래는 언제나 삶에서 자랍니다. 삶은 언제나 노래가 있어 넉넉합니다.



.. 봄바람에 / 내 머리카락 살랑살랑 / 엄마 치마 하늘하늘 // 봄바람에 / 벚꽃잎 화르르르 // 어느새 / 봄이 활짝 피었네 ..  (봄바람)



  작은아이한테 큰소리를 치고 나면 늘 머리가 아픕니다. 작은아이한테 친 큰소리를 바로 내가 나한테 친 큰소리와 같다고 느낍니다. 꾸짖거나 나무라려는 뜻에서 큰소리를 친들 작은아이가 들을 턱이 없습니다. 오직 내 마음이 더 아프고 힘들 뿐입니다. 그러니까, 작은아이를 곁에 앉히거나 세우거나 품에 안고서 사근사근 말하면, 부드럽고 따스한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면, 작은아이는 응응 하면서 아버지 말마디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작은아이한테 들려주는 보드랍고 따스한 노래는 바로 내가 나한테 들려주는 보드랍고 따스한 노래입니다. 게다가, 작은아이가 여느 날 귀여겨들은 보드랍고 따스한 노래는 이 아이 가슴에 고이 깃들어, 어느 날 새롭게 깨어납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즐겁게 들려준 노래를 참말 잘 아로새깁니다. 이 노래를 언제 어디에서나 맑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불러 줍니다.



.. 주물럭주물럭 / 조물락조물락 // 내 양말 내 팬티야 / 조잘조잘 / 그만 떠들어라 // 잘 마를 때까지 / 포옥 자고 일어나라 // 푸욱 자고 일어나 / 어서 하늘 끝까지 펄럭여 봐 ..  (빨래)



  개구쟁이 아줌마가 개구쟁이 아이한테 동시를 써서 들려줍니다. 종이에는 글로 쓰지만, 입으로는 노래를 부릅니다. 장난꾸러기 아줌마가 장난꾸러기 아이한테 동시를 써서 읊습니다. 종이에는 글로 쓰고 나서, 입으로는 노래를 조잘조잘 읊습니다.


  개구쟁이는 무럭무럭 자라서 개구쟁이를 낳습니다. 장난꾸러기는 무럭무럭 커서 장난꾸러기를 낳습니다.


  개구쟁이는 어릴 적에 거침없이 뛰놀았습니다. 어른이 된 개구쟁이는 이녁 아이가 개구쟁이로 태어난 모습을 보면서 몹시 기쁩니다. 이제 어른과 아이가 함께 개구쟁이가 되어 뛰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난꾸러기는 어려서부터 스스럼없이 뒹굴며 놀았어요. 어른이 된 장난꾸러기는 이녁 아이가 장난꾸러기로 태어난 모습을 보면서 아주 반깁니다. 이제 어른과 아이가 나란히 장난꾸러기가 되어 온누리에서 갖가지 장난질로 웃음꽃과 노래잔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커다란 배추 / 기다란 무 / 굵다란 양파를 / 썩뚝썩뚝 썰어서 담근 김치 // 둥근 항아리에 / 새콤달콤 익어 가는 나박김치 ..  (나박김치)



  아이들은 스스로 들은 대로 말을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본 대로 움직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맞이한 대로 반깁니다. 사랑을 넉넉히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사랑을 나누는 기쁨을 압니다. 사랑을 따스히 누리며 자란 아이들은 이웃과 동무 모두 사랑을 그리고 껴안을 적에 즐거운 줄 환하게 압니다.


  언제나 노래를 들으며 자란 아이는 언제나 노래를 부르겠지요. 잘 부르거나 못 부르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부르면 됩니다. 언제나 그림을 그리며 자란 아이는 언제나 그림을 그려요. 잘 그리거나 못 그리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그리면 됩니다.



.. 쓱쓱쓱 빗자루로 쓸고 / 싹싹싹 걸레로 닦고 / 쓱쓱싹싹 청소를 했네 // 어느새 방 안은 / 환한 보름달 ..  (청소)



  아이들은 시험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어른들도 시험을 받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시험성적으로 줄을 서야 하지 않아요. 어른들도 시험성적이나 은행계좌나 이런저런 실적 따위로 줄을 서야 하지 않아요.


  아이도 어른도 즐겁게 놀아야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기쁘게 일해야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땅을 밟고 하늘을 마셔야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풀과 꽃과 나무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싱그러운 물을 마시고, 맛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는 어른도 살기 좋아요. 아이가 사랑스레 살아갈 나라라면 어른도 사랑스레 살아갈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른들은 살기 좋은 나라에서 살려는 마음을 좀처럼 안 품습니다. 오늘날 어른들은 사랑스러운 나라하고는 자꾸 동떨어지려고 합니다.


  생각해 봐요. 전쟁무기가 있으면 뭘 하겠어요? 전쟁을 하겠지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있으면 뭘 하겠어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이 없는 사람을 따돌리거나 푸대접을 하겠지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어른인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전쟁무기를 물려주겠습니까, 사랑을 물려주겠습니까. 아름다운 나라를 가꾸겠습니까, 차별과 신분이 가득한 제도권 사회에서 종살이를 하겠습니까.



.. 노란 보리 출렁출렁 / 까만 밤바람 훌렁훌렁 / 답답한 가슴 후련후련 / 노란 달 보러 간다 ..  (노란 달 보러 간다)



  개구쟁이가 쓴 동시를 곰곰이 읽습니다. 개구쟁이는 개구진 짓을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착하고 참다우면서 곱습니다.


  장난꾸러기가 쓴 동시를 찬찬히 읽습니다. 장난꾸러기는 늘 장난을 치지만, 마음은 늘 사랑스럽고 밝으면서 따스합니다.



.. 엄마 냄새 솔솔 나게 / 문 열고 일하세요 // 엄마 냄새 기분 좋아 / 실실 웃음이 나요 // 엄마! / 엄마 냄새에 취해 / 슬슬 잠이 쏟아져요 ..  (엄마 냄새)



  동시 한 줄을 쓰고자 꿈을 꿀 수 있기를 빕니다. 동시 한 줄을 낳을 때까지 사랑을 속삭일 수 있기를 빕니다. 머리로 쓰는 동시가 아니라, 오늘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쓰는 동시가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문학으로 짓는 동시가 아니라,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따사로운 숨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동시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기를 빕니다.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는 꿈을 꾸는 동시가 모인 책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속삭이려는 넋으로 태어난 동시가 이 책에 모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이나 어린이문학이 아닌, 즐거운 시요 노래이자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덮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냄새를 풍기면서 어떤 손길로 다가서는 어버이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고 이마를 살살 어루만집니다. 4347.10.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동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월 삶창시선 41
이중기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78



시월을 앞두고

― 시월

 이중기 글

 삶창 펴냄, 2014.6.30.



  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에 시집 《시월》(삶창,2014)을 읽었습니다. 다 읽은 시집을 한참 책상맡에 두었습니다. 이동안 여름이 저물고 구월로 접어들다가 어느덧 시월을 코앞에 둡니다.


  오늘은 구월 삼십일입니다. 하루가 지나면 시월입니다. 달력으로 치면 그렇지요. 그런데, 구월이든 시월이든 들이나 숲은 그대로입니다. 바다와 하늘도 그대로입니다. 달력으로 볼 적에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더라도 들이나 숲이나 바다나 하늘은 그대로입니다. 온누리는 숫자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지구별도 해도 달도 별도 숫자를 따지지 않습니다.



.. 날만 새면 공출 독촉이 채찍비로 퍼부었다 /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보릿단에서 / 꼬물꼬물 싹이 나와 질금 만드는 유월 장마에 / 숨긴 보리 꺼내 공출 안 하면 / 오막살이 몰수하겠다고 / 일가족 몰살하겠다며 콩 볶듯이 볶았다 ..  (하곡수집령)



  2014년 시월은 어떤 달일까요. 봄날 바닷속에 잠긴 애꿎은 아이들을 슬퍼하는 목소리가 아직 사그라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지난날 슬프게 목아지가 잘리면서 죽은 이들 울음소리가 아직 잠들지 못하는 시월일까요.


  한가위가 이른 올해에는 양력으로 치는 달력 숫자가 시월로 넘어가도 가을걷이를 아직 안 합니다. 일찍 심은 논은 군데군데 벼를 베었으나, 퍽 넓은 들은 누런 빛깔로 천천히 물듭니다. 아직 들판은 싯누렇게 물결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밥을 먹고 시골에서도 밥을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쌀을 사다가 밥을 먹고 시골에서는 볍씨를 심어서 가꾸어 거둔 뒤에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습니다. 어디에서나 밥을 먹어 목숨을 잇습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사람들이 쌀을 사다 먹는다 하더라도, 어딘가에는 시골이 있어야 하고, 논밭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가 아무리 커진다 하더라도 시골은 제법 넓게 있어야 하며, 시골에서 논일과 밭일을 하는 일꾼이 있어야 합니다.



.. 인민위원회 절대다수가 농사꾼들이니 / 농사꾼들이야 작게는 농민조합으로 한솥밥이요 / 크게는 인민위원회와 가마솥으로 한 식군데 / 농민조합은 무시하고 복종만 하라면 / 보소, 그 말에 어디 영이 설 수 있겠소 ..  (영천아라리 2)



  시골지기가 없으면 도시내기는 모두 굶어서 죽습니다. 시골지기가 땀흘리지 않으면,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예술도 과학도 모두 무너집니다.


  발전소가 없다 하더라도 사회는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사회가 무너집니다. 학교가 없더라도 교육은 무너지지 않아요. 시골이 없을 때에 교육이 무너집니다.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흔들거릴까요? 아닙니다. 군대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을 때에 나라가 흔들거리다가 무너져요.


  전쟁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나라를 못 지켜요. 군대가 아무리 커도 나라를 못 지켜요. 생각해 보셔요. 군인은 무엇을 먹을까요? 총알을 먹을까요? 폭탄을 먹을까요? 아닙니다. 모두 밥을 먹습니다. 이쪽 군인도 저쪽 군인도 모두 밥을 먹습니다. 제아무리 전쟁통이라 하더라도 밥을 먹을 때에는 전쟁을 그칩니다. 밥을 먹어야 싸울 힘이 나지요.


  그러니까, 밥을 얻는 시골을 지켜야 나라를 지킵니다. 밥을 얻는 시골을 잘 건사해야 나라를 지킬 뿐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목숨을 지키며, 모든 정치와 사회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과 과학과 예술 모두를 지킵니다.



.. 당신이 고등어 껍질로 밥 한 숟가락 싸 먹을 때마다 / 농사꾼 몇 사람이 죽어나간 줄은 아시오? /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겠소 / 다 내놓고 서울 아들네로 가시오 ..  (영천아라리 4)



  대통령은 없어도 됩니다. 의사와 판사는 없어도 됩니다. 교사와 교수는 없어도 됩니다. 시인과 소설가는 없어도 됩니다. 운전사와 기술자는 없어도 됩니다. 이런저런 일자리는 하나도 없어도 됩니다. 삽차와 비행기는 없어도 되고, 자동차와 기차는 없어도 됩니다. 시골이 없다면 모두 부질없습니다. 시골지기가 없으면 모두 덧없습니다.


  나라가 나아갈 길은 사람들 스스로 밥을 지을 들과 숲을 누리면서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가꾸는 삶입니다. 밥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살까요? 옷을 짓지 못하거나 집을 짓지 못하면 어떻게 사나요? 그런데,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지요? 인문책음 무엇을 말하지요? 교과서는 어떤 지식을 다루면서 시험문제를 내지요? 대학생이 된 젊은이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지요?



.. 농사꾼들은 논밭으로 가 읍내가 비워졌을 때, / 대구에서 자갈길 백 리 거침없이 / 미군전술부대가 개망나니 경찰을 데리고 와 / 마구 불 지르고 연행하면서 / 부족마을 테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사흘 만에 칠백오십 명을 끌고 가자 / 그보다 몇 배 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쳤지만 / 날 밝으면 체포와 총살은 이어졌다 / 연행이 귀찮으면 아예 심장에다 총알을 박아버리고 / “공산당은 인류의 적이다” / 이 구호로 이념 주입은 장엄하게 시작되었다 / 그리고 짐승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  (인종 청소기)



  시집 《시월》을 조용히 읽습니다. 경상도 영천에서 있던 지난 이야기를 찬찬히 그립니다. 영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깁니다. 시를 쓴 이중기 님은 영천땅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영천사람한테서 하나둘 들은 뒤 시로 다시 그립니다. 나는 《시월》을 읽으면서, 영천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엇비슷하게 일어났을 일을 가만히 그립니다. 이 땅 곳곳에서 아프고 슬프며 서러운 이야기가 생채기로 남은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하늘을 믿고 흙을 사랑하며 들과 숲과 흙을 보살핀 시골내기는 왜 목숨을 앗겨야 했을까요. 볏포기를 베고 짚신을 삼으며 지붕을 잇고 오순도순 살림을 꾸리던 시골지기는 왜 보릿고개를 넘기거나 배를 곯아야 했을까요.


  흙을 안 만진 땅임자는 왜 배가 불러야 했을까요. 흙을 밟지도 않는 임금이나 신하나 학자는 왜 밥 굶는 걱정조차 없이 살았을까요. 권력과 정치는 무엇이고, 학문과 이론은 무엇인가요. 역사는 무엇을 밝히고, 역사는 누가 누구한테 어떻게 가르치는가요. 땅이란 누구 것이며, 땅은 왜 있을까요.



.. 도망갔다 돌아온 지주들이 제일 먼저 한 짓은 / 경찰서 신축 성금 커다랗게 내놓고 / 못살아서 말 잘 들을 것 같은 몇몇을 불러 / 원하는 땅 힘에 맞게 소작을 준 뒤 / 소작 전부 돌려받는다고 통보해서 / 마을마다 집집마다 마른천둥을 퍼부었다 ..  (새벽 북소리)



  시월 문턱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썰렁하지만, 해가 높이 솟는 낮에는 덥습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무화과 없어요?” “무화과 먹고 싶니?” “네.” 소쿠리를 하나 챙깁니다. 작은아이가 들도록 건넵니다. “자, 무화과 따러 가자.”


  우리 집 뒤꼍 무화과나무를 살핍니다. 오늘은 열 알을 땁니다. 모레에도 제법 딸 만합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실컷 누립니다. 우리 집 무화과는 우리 집 아이들한테 달콤하고 맛난 샛밥이 됩니다.


  무화과나무가 있으니 무화과를 얻습니다. 무화과 열매를 따다가 모과 열매를 한 알 줍습니다. 우리 집 뒤꼍 모과나무에서 스스로 툭 떨어진 모과는 되게 큽니다. 아이 머리통보다 살짝 작습니다. 큰아이가 두 손으로 들어도 묵직하고, 작은아이는 무겁다면서 못 듭니다.


  능금나무를 심어서 돌보면 능금을 얻고, 감나무를 건사하면서 아끼면 감을 얻습니다. 호박씨를 심어 호박을 얻고, 무씨를 심어 무를 얻어요. 우리는 흙에서 목숨을 얻고, 흙에서 밥을 누립니다. 우리는 흙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흙은 괴롭힘이나 따돌림이 없습니다. 흙은 부자한테도 가난뱅이한테도 골고루 밥을 베풉니다. 그러면, 정치나 교육이나 사회나 경제나 문화는 어떠한가요? 모든 사람한테 골고루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요?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임 캡슐 속의 필통 창비아동문고 145
남호섭 지음 / 창비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35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주는 것은

― 타임 캡슐 속의 필통

 남호섭 글

 남궁산 그림

 창비 펴냄, 1995.9.30.



  노란 탱자알을 따면 단단한 열매에서 상큼한 냄새가 물씬 흐릅니다. 단단한 탱자알을 아이들 손바닥에 살그마니 올리면, 어느새 탱자내음이 아이들 손을 거쳐 아이들 온몸으로 확 퍼집니다.


  탱자나무를 바라봅니다. 우리는 탱자알을 맛나게 먹지는 않습니다. 탱자나무는 울타리 구실을 합니다. 탱자알은 그윽한 냄새를 한껏 나누어 줍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마다 구실이 다릅니다. 어느 나무는 달디단 열매를 잔뜩 나누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이 되어 줍니다. 어느 나무는 숲에 불이 나더라도 더 퍼지지 않게 막아 줍니다. 어느 나무는 새를 잔뜩 불러모아 노래잔치 이루는 쉼터 구실을 합니다. 어느 나무는 열매로 우리 아픈 몸을 다스립니다. 



.. 눈 오신다. / 이사하는 날 아침 / 이삿짐 위에 눈 쌓인다. // 이제 이사 안 가도 되는 거지? ..  (첫눈)



  소나무로 집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니, 한국에서는 소나무가 아니라면 집을 지을 만한 나무를 찾기 어렵습니다. 소나무 아닌 다른 나무는 많이 잘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숱한 전쟁과 부역 때문에 온갖 나무가 숲과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전쟁은 한국전쟁만이 아닙니다. 부역은 일제강점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조선과 고려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때에도 온갖 전쟁이 끔찍하게 잦았고, 궁궐을 짓거나 성곽을 올리거나 절집을 키우느라 큰나무가 남아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한겨레는 처음부터 소나무로 집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느티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굵고 단단하면서 곧게 잘 자라기 때문에, 느티나무는 집을 짓는 기둥으로 알맞춤했다고 해요. 정치권력이 일으킨 전쟁과 부역 때문에 느티나무가 거의 씨가 마르면서, 그 다음으로 소나무를 썼다고 합니다.


  얼추 즈믄 해쯤 되었다고 하던가요. 다시 말하자면, 즈믄 해쯤 앞서 ‘집을 지을 만한 느티나무’는 자취를 감춘 셈이라고 할까요.



.. 대공원의 공중 열차보다 / 훨씬 숨막히고 식은땀 나는 / 전철 안에서 / 그 날 나의 가장 큰 소망은 / 기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  (전철 안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에서 ‘한 대에 천 억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사들이려고 합니다. 천억 원이 넘는 전투비행기를 한 대만 살 생각이 아니라 백 대쯤 사들이려 할는지 모릅니다. 열 대를 산다면 1조요, 백 대를 산다면 10조인데, 이런 비행기를 사들인다면, 유지비와 관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듭니다.


  정부에서는 평화를 내세우면서 값비싼 전쟁무기를 자꾸 사들이려 합니다. 평화를 지키려면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그래서, 한국과 맞닿은 북녘에서도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고 합니다. 저쪽에서도 이쪽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전쟁을 막으려면, 아니 저쪽에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면 더 뛰어나고 더 값비싼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정부에서 외칩니다.


  이리하여, 북녘에서는 밥을 굶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북녘에서는 배를 곯다 못해 죽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남녘에서는 가난에 쪼들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값비싼 전쟁무기를 갖추려면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니, 제아무리 용을 써서 돈을 번다 한들 살림살이가 나아질 낌새가 없습니다. 전쟁무기와 군대에 들이는 돈은 끔찍하게 많아서, 민주이든 복지이든 교육이든 문화이든 모두 뒷전이 되어, 사회는 메마르고 정치와 경제는 매몰차기만 합니다.



.. 노오란 포클레인을 / 꿈속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 아이들뿐이다 ..  (포클레인을 꿈꾸며)



  어른들은 핵발전소를 짓습니다. 핵발전소 못지않게 쓰레기와 매연을 낳는 화력발전소를 자꾸 짓습니다. 커다란 발전소를 시골에 지으면서 도시까지 무서운 송전탑을 수천 개씩 멧봉우리마다 척척 처박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자가 우리 멧자락에 쇠못을 수없이 박았다고 하는데, 오늘날은 우리 정부가 스스로 멧자락마다 ‘쇠못보다 훨씬 무서운 송전탑’을 끝없이 박고 다시 박습니다.


  왜 도시에 ‘에너지 자급’을 할 생각이 없을까 궁금합니다. 왜 집집마다 ‘에너지 자급’을 하도록 시설을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전기로 사람들을 다스리거나 거머쥐어서, 정부가 시키는 대로 꼼짝을 못하도록 옭아매려는 뜻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리하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끔찍한 쓰레기를 선물로 남깁니다. 깨끗하거나 싱그럽던 냇물을 몽땅 시멘트덩이로 바꾸는 짓을 일삼은 어른입니다. 시골마을에 농약바람이 불게 하면서, 석면 공해 지붕을 모조리 뒤집어씌운 어른입니다. 남북이 평화롭게 나아갈 길은 안 찾고, 남북이 서로 전쟁무기로 다투도록 내모는 어른입니다. 이런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이라는 새로운 선물까지 갖다 안깁니다.



.. 선배 언니들은 / 아무렇지도 않게 / 그 옆을 지나치는데 // 올해 처음 / 개나리 담장을 보게 된 / 신입생들은 / 모두 한마디씩 하며 / 지나갔습니다. // “여기 개나리가 있었네.” ..  (개나리)



  남호섭 님이 쓴 동시를 그러모은 《타임 캡슐 속의 필통》(창비,1995)을 읽습니다. 백 해쯤 뒤를, 또는 오백 해쯤 뒤를 생각해서 타임 캡슐을 묻는다고 하는데, 굳이 묻을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핵쓰레기는 오백 해뿐 아니라 오십만 해는 갈 테니까요.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비닐봉지와 플라스틱과 가전제품은 땅속에서도 안 썩어 오백 해뿐 아니라 천 해쯤 거뜬히 갈 수 있으니까요.


  남호섭 님이 동시에 쓴 대로, 아이들은 “노오란 포클레인을 꿈속까지 끌고 들어”간다고 할 만합니다. 아이들은 꿈속에서 모든 것을 다 합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노오란 포클레인”을 생각하거나 꿈으로까지 꿀까요? 왜 아이들이 꿈속에서 훨훨 날지 않고, 신나게 놀지 않으며, 사랑을 속삭이지 않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노오란 포클레인”을 보여주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따스한 사랑이나 푸른 꿈을 이야기하지 않나요?



.. 우리의 제일 높은 산 이름 / 우리의 제일 오랜 산 이름 / 백두산, / 왜 백두산 담배는 없을까 ..  (담배 심부름)



  동시에서까지 삽차 이야기라든지 물질문명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시에서까지 담배 이야기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 메마르거나 갑갑하게 만든 굴레를 동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앞으로 슬기롭게 가꾸어 사랑스레 일굴 꿈을 동시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문에 나지 않고 방송에 나타나지 않으며 책에 적히지 않지만,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는 슬기로운 어른은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시를 쓰는 어른이 아이들한테 들려줄 이야기란, ‘슬기로운 어른’이 아름답게 가꾸는 삶과 사랑일 때에 환하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물려주는가요. 이 나라에서 아이는 어른한테서 무엇을 물려받는가요. 이 나라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주려 하는가요. 이 나라 아이는 어른한테서 어떤 동시와 노래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할까요.


  어른이 만든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눈망울에서 빛을 잃습니다. 눈망울에서 빛을 잃은 아이들은 개나리꽃도 지나치고 들꽃도 지나치며 겨울눈도 지나칠 테지요. 아이들 눈망울이 싱그러이 살아나도록 이끌 수 있는 동시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