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0.15.

숨은책 714


《나나NANA 45호》

 전영호 엮음

 예원문화사

 1995.9.1.



  이제 사랑그림꽃(순정만화)을 읽는다고 스스럼없이 밝히는 돌이가 조금 늘지만, 지난날에는 사랑그림꽃은 순이만 보아야 한다고 여기는 눈길이 짙었고, 요새도 이 눈길은 썩 안 바뀝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누구나 읽는 책인 줄 깨닫는 분이 부쩍 늘었으나, 어른이 왜 ‘유치하게 어린이책을 읽느냐고 핀잔하거나 나무라는 사람이 아직 꽤 많습니다. 세 살 터울 언니하고 《보물섬》·《소년중앙》·《만화왕국》·《아이큐점프》뿐 아니라 《르네상스》·《하이센스》도 꼬박꼬박 챙겨 함께 읽었습니다. 이러다 언니가 스무 살에 접어들어 푸른배움터를 마치고 제가 열일곱 살로 접어들어 하루 내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힐 즈음부터 이 그림꽃을 하나도 못 읽습니다. 갓 태어난 《나나NANA》는 구경조차 못 했어요. 1995년 가을에 싸움터(군대)로 끌려가며 더 만날 길이 없더니, 겨우 집으로 돌아오고 책마을에서 일자리를 얻을 즈음에는 사랑그림꽃을 담은 달책인 《나나NANA》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아예 잊은, 아니 처음부터 못 본, 풋풋한 그림꽃이 깃든 달책을 꾸러미로 서른 해 만에 장만해서 읽다가 생각합니다. ‘사랑그림꽃을 읽는 돌이’는 싸움을 꺼리고, 순이돌이가 오순도순 지낼 사랑길을 그립니다. 어린이책을 읽는 어른도 어깨동무를 사랑하게 마련이에요. 우리는 뭔가 크게 잊다가 잃은 듯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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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0.15.

숨은책 702


《ロシアの民謠》

 井上賴豊 글

 筑摩書房

 1951.10.20.



  오늘날 우리는 매우 비뚤어진 별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마구 죽이고 숲을 함부로 짓밟는 총칼(전쟁무기)을 끝없이 만들면서 ‘첨단과학’이란 이름을 붙일 뿐 아니라, ‘방위산업 수출’이라고까지 읊습니다. 적잖은 러시아사람은 제 나라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총칼을 앞세워 이웃나라로 쳐들어갈 뿐 아니라, 이웃사람을 끔찍하게 죽입니다. 참말로 총칼로 어깨동무(평화)를 이룰까요? 총칼을 자꾸 만들기에 서로 때리고 미워하다가 죽이기까지 하지 않나요? 《ロシアの民謠》는 “附 ロシア民謠歌曲集”이라 붙이듯 러시아사람이 드넓은 숲과 들을 품고 살아오면서 스스로 지은 살림을 살며시 옮긴 노래가 무엇인가 하고 짚습니다. 언뜻 보면 메마르거나 추운 땅인 러시아일 테고, 곰곰이 보면 사이좋게 아끼고 손잡는 마음을 그리는 너른터인 러시아일 텐데, 스스로 싸움수렁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매한가지 아닐까요? 북녘도 남녘도 더 센 총칼을 만들거나 마련하려고 목돈을 씁니다. 남녘도 북녘도 러시아도 미국도 가난할 수 없어요. 총칼을 때려짓지 않으면 누구나 넉넉하게 살 만합니다. 싸움을 그치고, 우두머리를 쫓아내어, 들풀 같은 사람들이 들노래를 부르면서 들꽃내음을 마신다면, 가난도 배고픔도 없이 누구나 아늑하고 아름다울 테지요. 들노래를 잊기에 허수아비가 되어 총칼을 쥔다고 느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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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0.15.

수다꽃, 내멋대로 28 우리 아이가 읽을



나는 글을 1992년부터 비로소 썼다. 그때 고작 열여덟 살이던 푸름이로서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우리 아이가 읽을 수 있는 글만 쓰자.” 나는 어린배움터를 다닐 적이든, 푸른배움터를 다닐 때이든, 짝꿍(여자친구)이 없었다. 동무들은 내 말을 듣고서 “야, 넌 여친도 없는 주제에 무슨 네 아이가 읽을 글을 생각해?” 하면서 웃더라. “너희가 보기에도 내가 짝을 만날 수 없을 만할 텐데, 내가 짝을 못 맺고 아이를 못 낳더라도, 이웃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쓸 생각이야.” 언제나 모든 몸짓을 “우리 아이가 본다면?” 하고 생각하면서 했다. 때때로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몸짓을 한 날은 “우리 아이한테 무어라 말하지?” 하면서 혼자 낯을 붉혔다. 이때에도 난 짝꿍이 없이 혼자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했고, 한때 짝꿍을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혼자 책집마실을 다니면서도 “우리 아이가 곁에서 지켜볼 테니까”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두 아이를 낳아 시골집에서 고즈넉이 살아가는데, 혼자 시골집을 떠나 서울(도시)로 바깥일을 하러 며칠씩 돌아다닐 적에도 늘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일하러 돌아다닌다면” 하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가 곁에서 마음으로 지켜보네!” 하고 생각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의젓하고 씩씩한 어버이로서 한 걸음씩 디딜 수 있다. 나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볼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겉모습은 껍데기이잖은가? 아무리 이쁘장해도, 아무리 날씬하거나 잘나 보여도, 아무리 대단하고 비싸다는 부릉이를 몰아도, 한낱 겉모습에 껍데기일 뿐이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 때문에’ 주무르기(지압·마사지)를 스스로 익혔다. 우리 아버지는 어린배움터 길잡이(국민학교 교사)로 일했고, 날마다 술로 떡이 된 채 한밤에 들어왔는데, 날마다 마룻바닥에 털썩 엎어져서 “야, 신 벗기고 주물러.” 하면서 언니랑 나를 불렀다. 우리 둘은 거나쟁이 신을 벗기고 한 시간 남짓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온힘을 다해 주물렀다. 이러기를 열 해 즈음 하다 보니 저절로 주무르기를 익힐 수밖에. 겉으로 아무리 잘나 보이는 사람도 얼핏 보기만 해도 몸 어느 곳이 막혀서 손가락으로 콕 찔러서 눌러 주어야 하는지 마음으로 보인다. ‘눌러 줄 곳이 안 보이는 사람’은 여태 다섯 사람쯤 보았을까. 나는 내 일감(본업)인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길도, 우리나라 ‘말살림(언어문화)’을 살리려는 대단한 뜻이 아닌, 내가 낳아서 돌볼 아이에다가 이웃 아이들이 앞으로 우리 말글을 헤아리고 배울 적에 이바지할 책으로 징검다리를 삼으려는 뜻 하나로 썼고 쓴다. 내가 쓰는 우리말 이야기가 아닌, ‘책숲마실 글’이나 여러 가지 삶글(수필)이나 느낌글(비평·서평)이란, 알고 보면, ‘낱말책(사전) 보기글’로 스스로 삼으려고 쓰는 글이기도 하다. 이리하여 내가 읽는 숱한 책도 ‘아이들한테 읽으라고 건넬 만한가 아닌가’라는 잣대가 가장 크다. 줄거리가 알차도 글결이 엉터리인데다가 우리말결을 망가뜨리는 책은 차마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고 싶지 않다. 그림책이라면 엉터리로 쓴 글을 몽땅 죽죽 그어 고쳐쓴 다음에 건네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두고두고 물려받아 삶을 노래할 만한 숲집을 가꾸고서 남길 생각이다. 나는 온누리 모든 아이들이 기쁘게 물려받을 숲과 보금자리인 푸른별(지구)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든 말글에 담아서 하루를 여민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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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0.7.

수다꽃, 내멋대로 27 연휴



푸른배움터에 들어간 1988년부터 ‘쉬는날(연휴)’이 없었다. 1988∼1990년 사이에는 06시부터 22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라면, 1991∼1993년 사이에는 05시부터 23시까지 배움터에 갇힌 나날이었다. 1994년 한 해는 인천·서울 사이를 날마다 오가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고서 책집마실을 다녔고, 1995년에는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더는 다니지 않기로 하면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하루를 열고서 짐자전거로 헌책집 나들이를 다니고, 책숲·책집(대학도서관·대학구내서점)에서 곁일을 하면서 ‘이레 가운데 하루는커녕 하루 어느 때도 쉬잖고’ 일하고 배우며 살았다. 1995년 11월 6일에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서 1997년 12월 31일에 비로소 풀려날 때까지 그 싸움터에서 쉬는날이란 없었고, 다시 새뜸나름이로 일하다가 펴냄터(출판사) 일꾼으로 들어가는 1998∼2000년에도 쉬는날이 없었다. 《보리 국어사전》 엮음빛(편집장)으로 일하던 2001∼2003년에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갈무리하던 2003∼2007년에도, 인천 배다리에서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연 2007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모든 나날을 아울러도, 나는 열네 살부터 하루조차 쉬는날을 두지 않았다. 둘레에서 “무슨무슨 연휴”라고 말하면 성가시다. “개천절 연휴”라든지 “한글날 연휴”라고 하면 살짝 어리둥절하다. ‘하늘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돌아보는 자리가 없이 놀러다닌다는 뜻이자, ‘말글길을 연 날’을 우리 스스로 잊으면서 노닥거린다는 뜻이니까. 배우지 않는 하루라면 죽음길이다. ‘배움 = 학교 다니기’일 수 없다. ‘배움 = 삶을 이루는 사랑을 스스로 알아차려서 슬기롭고 즐겁게 살림을 짓는 생각을 마음에 씨앗으로 심도록 모든 숨결을 받아들이기’이다. 둘레 사람들이 ‘쉬는날 없이 살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쉬는날 없이 살지만, 누구나 느긋이 쉬는날을 누릴 노릇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나라에서 떠드는 “한글날 연휴”를 보라. ‘서울내기가 갑갑한 잿터(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푸른바람을 마시고 맛밥을 먹으려고 돈을 쓰는 며칠’을 읊지 않는가? “한글날 연휴”는 누가 누리는가? ‘공무원 아닌 일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쉬는날을 누리는가? ‘살림꾼(가정주부)’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사람은 쉬는날을 누리는가?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사람한테 해날(일요일)이 있는가?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한테 쉬는날이 하루는커녕 한나절이라도 있는가? 2022년 10월 6일 낮에 서울에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를 타는데 빈자리가 없다. 아이들을 이끌고서 할머니·할아버지·이모·이모부·사촌동생을 만나러 경기 일산에 갔다가 전남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골사람은 쉬는날(연휴)이 끼면 고단하다. 쉬는날에는 ‘시골로 가는 길’에 빈자리가 없으니까. 나는 1995∼2004년 사이에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책집을 두서너 곳씩 다녔는데, 그무렵에는 흙날(토요일)·해날(일요일)에 쉬는 책집이 아예 없다시피 했고, 한 해에 하루조차 안 쉬는 책집이 참 많았다. 2022년 무렵에 이르면 이제는 ‘쉬는날 없이 여는 책집이 아예 없다’고 할 만하다. 지난날 여러 책집에서 “사장님은 쉬는날이 없으면 힘드시지 않아요?” “쉰다고 집에 있으면 더 힘들어요. 책집사람은 책집에 앉아서 책을 보며 햇볕을 느긋하게 쬐는 일이 쉬는 셈이에요.” 같은 말을 으레 주고받았다. 한 해 내내 쉬잖고 일해야 하는 어머니하고 “어머니 오늘은 좀 쉬시지요?” “아이고, 그럼 이 많은 일을 누가 하니?” 같은 말을 늘 주고받았다. 풀꽃나무한테는 쉬는날이 없다. 바람도 해도 별도 바다도 쉬는날이 없다. 쉬는날은 뭘까? 제대로 느긋하면서 즐거이 쉬는 길이란 뭘까? 돈을 들여 서울(도시)을 벗어나는 하루가 쉬는날일까? 서울에 눌러앉는 삶이야말로 참다운 쉼을 잊고 아름다운 일을 잃으며 즐거운 놀이하고 등진 채 사람다운 사랑을 스스로 버리는 길은 아닐까? 아기한테도 아이한테도 쉬는날이 따로 없다. 어른이란 몸을 입은 ‘사회인’이란 자리에 서면 일놀이뿐 아니라 모든 숨빛을 스스로 내팽개치는 굴레라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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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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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9.24.

숨은책 757


《제주방언 연구》

 박용후 글

 동원사

 1960.9.8.



  이웃고장으로 마실을 갈 적에는 늘 그 고장에 헌책집이 있는가부터 살핍니다. 새책집에는 ‘막대기(바코드)’를 받아 ‘나라책숲(국립중앙도서관)’에 들어간 책만 깃듭니다. 이와 달리 헌책집은 ‘막대기 없이 조금만 찍어 이웃하고 가볍게 나눈 책’이 깃들어요. ‘안 파는 책(비매품)’을 만나려면 헌책집에 갈 노릇입니다. “‘안 파는 책’을 뭣하러 찾아다녀?” 하고 묻는 분이 많은데, 일제강점기에 나온 책이건, 달책(잡지)에 딸린 책(별책부록)이나 만화책뿐 아니라, 마을빛을 헤아린 책인 ‘지역문화·역사를 다룬 책’은 거의 ‘안 파는 책’으로 조금만 나왔습니다. 제주 〈책밭서점〉에서 《제주방언 연구》를 만났어요. 책밭지기님은 “이거 비매품으로 100권만 나온 책이야. 가리방이라고 알아? 쇠붓 있잖아? 그거로 하나하나 긁었는데, (제주) 관공서에서 버리더구만.” 제주말·제주살림·제주넋을 살리고 품는 길은 여럿입니다. 하늘나루(공항)를 더 짓거나 부릉길(찻길)을 더 닦기보다는, 마을빛을 온몸으로 사랑하며 여민 작은책 하나를 돌아본다면 아름답겠지요.


“위에서 고찰하여 온바와 같이 ‘탐라(耽羅)’는 ‘탐무라(耽牟羅)’에서 온 것인데 ‘탐무라’는 곧 ‘섬무라’요, ‘무리’와 같은 말로써 ‘모리>모이>뫼’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뫼’로 된 것으므로 ‘섬무라’는 곧 ‘섬뫼(島山)’를 뜻하는 것이었음을 알수 있다.” (472쪽)

.

.

제주 옛이름인 ‘탐라’ 말밑을 차근차근 두루 짚으며

캐낸 이야기를 담은 책을

거의 처음으로 만났다.


‘섬뫼’는 

“섬 + 메(산)”이자

“섬 + 담(성벽)”이라고 한다.


이리하여

‘섬뫼 = 섬메 = 섬담 = 섬나라’라고 한다.

‘탐라 = 섬나라’란 뜻이기도 한 셈이다.


이 값진 책을 버려준

제주 어느 관공서가 고맙다.


그리고 버림받은 책을

고이 손질해서 품어준

제주 책밭서점이 고맙다.

사랑한다.

.

.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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