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19.

숨은책 806


《人間敎育の最重點 環境敎育論》

 松永嘉一

 玉川學園出版部

 1931.5.3.



  온누리 책을 둘로 바라봅니다. ‘읽을 책’하고 ‘읽은 책’입니다. ‘손길 닿을 책’하고 ‘손길 닿은 책’이며, ‘기다리는 책’하고 ‘품은 책’입니다. ‘새책’이라면, 읽을 책이자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책입니다. ‘헌책’이라면, 읽은 책이자 손길이 닿아 품은 책입니다. 광주 계림동을 걷다가 〈문학서점〉 앞을 지나가던 어느 날, 어쩐지 제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는 책이 있겠다고 느꼈어요. 미닫이를 열고 들어가서 처음 쥔 책은 《人間敎育の最重點 環境敎育論》입니다. 이웃나라 한쪽에 총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쪽에 ‘사람을 가르칠 적에 눈여겨볼 터전은 무엇인가?’ 하고 조곤조곤 짚는 이야기를 펴는 사람이 있군요. 우리는 1931년 무렵에 우리 스스로 어떤 터전으로 이 나라를 가꾸어야 한다고 여겼을까요? 총칼에 눌려 입을 다물기 일쑤였을까요, 어린이를 헤아리며 어른답게 참말을 외쳤을까요? 오랜책 안쪽에 붉은글씨 ‘瑞坊公立普通學校 印’이 있습니다. ‘서방공립보통학교’는 광주군(광주광역시) 서방면에 1921년 10월 4일에 연 배움터요, 1927년에에 ‘제2보통학교’로, 1938년에 ‘광주 북정공립심상소학교’로, 1950년 12월 1일에 ‘광주 수창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답니다. 누가 읽고 건사한 배움책숲(학교도서관) 자취일까 어림하다가, 우리는 우리 손자취를 손쉽게 버린다고 느꼈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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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숲노래 책읽기 2022.12.15.

헌책읽기 1 創作과 批評 44, 1977 여름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일곱 살에 ‘창작과비평사’란 이름을 비로소 알고, 열여덟 살인 1992년부터 ‘창작과비평’ 새김판(영인본)을 꾸러미로 들여놓고서 읽다가, 낱책으로 나온 낡은 《創作과 批評》을 하나씩 모으곤 했습니다. 새김판으로도 글은 다 읽을 수 있되, 처음 나와 읽히면서 바스락바스락 낡아가는 종이를 쥐면, 지난 한때를 함께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느낄 만하거든요. 《創作과 批評 44, 1977 여름》은 열여덟 살에 진작 챙겨서 읽었고, 《분단시대의 역사인식》도 이무렵에 읽었어요. 강만길 님이 갈무리한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미〉를 서른 해 만에 되읽어 봅니다. 1977년이나 1992년에도 해묵지 않은 글이었고, 2022년에도 밝은 글입니다. 다만, 글에 한자가 곳곳에 깃드니 요사이에는 이 대목이 걸려서 못 읽을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강만길 님도 ‘한글 창제’라 했으나 ‘훈민정음 창제’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세종 임금은 ‘한글’이 아닌 ‘훈민정음’을 내놓았습니다. ‘한글’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즈음 주시경 님이 처음 지은 글이름이요, 우리나라가 총칼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밑틀을 ‘말글’로 삼아서 한뜻을 펴려는 이름입니다. 세종 임금은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내세워 ‘새나라 조선’이 ‘옛나라 고려’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들려주면서 임금틀(왕권)을 단단히 받치려 했습니다. 굳이 ‘고려’란 이름과 틀을 모조리 버리고서 중국을 섬기는 ‘봉건사대주의 조선’으로 뻗어나가는 길을 사람들한테 차근차근 알리려 했어요. 우리는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벼슬꾼(정치꾼)이 “국민 여러분을 위하여”라 말하기에 오늘날 벼슬꾼이 “수수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여겨도 되겠습니까? 위아래(신분·계급·권력)가 무시무시하던 조선에서 ‘들꽃사람(백성)’은 ‘사람값’을 받지 못 하는 종살이(노예생활)였습니다. 위(권력자)에서는 ‘듣기 좋은’ 말을 폅니다. 그러나 위에서 듣기 좋은 말을 펼 수밖에 없도록 사람들 스스로 들불을 일으켜 왔습니다.


《創作과 批評 44, 1977 여름》(편집부, 창작과비평사, 19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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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와서야 고유한 글을 가지지 못한 국가의 체면 문제가 생각되게 되었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 고대국가 성립시기에 있어서의 정복전쟁의 영웅적 기록이 모두 한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그만두고라도 …… 흔히 사대주의가 본격화한다고 말하는 이조 초기에 와서 왜 국가적 체면을 생각하고 우리글을 만들게 되었는가 하는 점에 의문이 있다. (305, 306쪽)


한글의 창제도 새 왕조의 지배권력이 백성들에게 제시한 이익조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치자층의 자애심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백성세계가 스스로의 자의식을 높여감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戰利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09쪽)


지배목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한글은 창제 당초부터 백성들을 대상으로 이조왕권의 정당성과 존엄성을 고취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글로써 무엇보다 먼저 ‘龍飛御天歌’를 지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 한편 15세기는 이조적인 지배질서를 확립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던 때였다. 이 때문에 관료층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고려시대까지의 불교적인 생활양식을 청산시키고 유고적 생활규범으로 철저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것을 위하여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을 만들고 그것으로 각종 儀禮書를 지어 퍼뜨릴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31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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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숲노래 사랑꽃 2022.12.4.

숲집놀이터 278. 문해력



갈수록 ‘문해력’이 떨어져서 걱정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우리말꽃을 쓰는 사람으로서 ‘문해력’이란 일본스런 한자말을 못 알아듣겠다. 갑작스레 떠오른 이 일본스런 한자말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고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나온다. ‘초등 문해력’을 다룬 책이 밀물처럼 쏟아지는데, 죄다 부질없는 부스러기라고 느낀다. 어린이·푸름이가 “글을 잘 못 읽는다”고 걱정할 일은 터럭조차 없다. 글을 잘 못 읽는다면, 말부터 잘 못 알아듣는다는 뜻이다.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 글을 못 읽을 수 없다. 그러면 생각하자. 어린이·푸름이는 어떤 말글을 못 알아보거나 못 읽는가? 바로 ‘어른들이 아무렇게나 쓰거나 어렵게 쓰거나 마구 뱉어내거나 쳇바퀴에 길든 말글’을 못 알아보거나 못 읽는다. 우리는 우리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 한 나날이 무척 길다. 한글날 언저리에 기껏 ‘SNS 언어파괴’나 ‘공공기관 영어남발’ 같은 말이 떠돌지만 으레 그날 하루만 반짝한다. 모든 말썽덩이 말글은 ‘어른이 썼’다. 어린이를 탓하면서 ‘어린이가 골아프게 어려운 일본말씨나 옮김말씨나 영어를 외우’도록 내몰지 말자. 어른부터 우리말을 처음부터 새로 배울 노릇이다. 글에 ‘-의·-적·-화’만 안 써서 끝이 아니다. 우리 넋을 우리 마음에 어질게 담는 우리 말글로 생각을 가꾸는 길을 펴야 비로소 어른이다. ‘글힘(문해력)’은 ‘말힘(언어력)’을 사랑으로 돌보는 보금자리에서 비로소 깨어난다. 새말을 스스로 지을 줄 알면 말힘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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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726


《한검바른길 첫거름》

 정렬모 엮음

 대종교총본사

 1949.5.1.



  총칼로 윽박지른 일본을 이 땅에서 떨치려고 일어선 숱한 분들이 ‘대종교’에 한마음으로 뭉친 줄 모르며 살았습니다. 배움터 열두 해 동안 가르친 어른이 없습니다. 주시경 님 발자취를 헤아리다가 뒤늦게 알았어요. ‘대종교’는 한자로 ‘大倧敎’라 적습니다. 《한검바른길 첫거름》은 ‘한검’으로서 ‘바른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첫거름)’을 쉽게 풀어내는 꾸러미입니다. ‘마루뜻풀이(종지강연)’처럼 우리말로 쉽게 적고서 한자를 보탭니다. 여느 자리에서는 ‘한얼이야기·한배이야기·믿음이야기’처럼 따로 한자를 안 보태고서 믿음길을 들려줍니다. 대종교에서 함께 부른 ‘한얼노래’에는 “얼노래·세얼·세마루·한울집·믿음의즐거움·한길이열림·사람구실·한결같은마음·힘을부림·죄를벗음”이 있군요. “사는준비·미리막음·봄이왔네·가을이왔네·아침노래·저녁노래·끼니때노래”도 새삼스럽습니다. 다만, 해적이에 “개천 四四0六해 五달 一날”이라 적은 대목은 티끌입니다. 우리 겨레가 ‘한겨레·배달겨레’요, 서울 한복판은 ‘한가람’이 흐르고, 우리글은 ‘한글’입니다. 이 모든 이름에는 ‘하늘(한)’이 깃들어요. 불교·천주교·기독교 같은 믿음길은 우리 말글·땅·이웃·숲을 얼마나 살피는 매무새일까요? 바른길도, 마음길도, 넋길도, 숨길도, 빛길도, 말길도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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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3.

숨은책 653


《モダン 新語辭典》

 早坂二郞·松本悟郞 엮음

 浩文社

 1931.10.20.첫/1932.3.1.다섯벌.



  우리는 우리 손으로 바깥길을 익히거나 살필 겨를이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중국을 섬기는 몸짓이 너무 드센 나머지, 한문만 글이라 여기면서 한글을 얕보고 깎아내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곰곰이 보면,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본 수수한 시골 어버이는 글(한문)을 하나도 모르지만 말(우리말)로 살림을 짓고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벼슬아치·임금·붓바치는 말(우리말)이 아닌 글(한문)로 나라일·감투를 거머쥐면서 들꽃사람(백성·한문을 모르는 채 흙을 일구는 사람)을 짓밟고 괴롭히며 우려먹었습니다. 벼슬을 쥔 사내들이 세운 꼰대질(가부장권력)이 무너지던 1900년 언저리에 일본말이 밀물처럼 흘러들어요. 일본이 총칼로 뒤덮은 1910년 무렵부터는 ‘일본이 일본 한자말로 받아들인 바깥길(서양문화·문물·문명)’이 너울거렸습니다. 《モダン 新語辭典》은 일본사람이 바깥길을 받아들이려고 애쓴 자취가 물씬 흐릅니다. ‘새롭고(モダン) 새로운(新語) 말’을 꾸린 작은 책을 펴면, 영어를 어떤 한자말로 옮겨야 사람(일본사람)들이 알아듣기 좋으려나 하고 생각한 자취를 읽을 만합니다. 우리는 아직 영어도 한문도 일본 한자말도 ‘우리 말글’로 옮기는 기틀을 안 닦거나 못 세웠습니다. 새술을 새자루에 담듯, 새길은 우리 새말로 담는 넋을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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