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2022.9.8.

수다꽃, 내멋대로 24 응큼한 마흔돌이



  오늘날 ‘마흔돌이(40대 남성)’는 어릴 적에 또래(다른 성별)하고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랑길을 배운 적이 없다고 느낀다. 내 또래도, 언니동생도, 지난날 어린배움터(국민학교)하고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이란 이름조차 없었고, 더 예전에는 더더욱 없었다. 쉰돌이(50대 남성)나 예순돌이(60대 남성)나 일흔돌이(70대 남성)라면, ‘순이(여성)는 집에서 집일만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굴레에 갇힌 채 어린날과 젊은날을 보냈으리라. 둘레(사회)를 보면, 일흔돌이라 하더라도 일찌감치 이 굴레를 깨고서 ‘열린돌이(평등·평화로 가는 남성)’로 나아간 분이 제법 있다. 예순돌이에서도 꽤 볼 수 있다. 그러나 쉰돌이나 마흔돌이에서는 뜻밖에 적다. 집에서 설거지쯤은 하더라도, 집일이 뭔지 모르는 마흔돌이·쉰돌이가 넘치고, 아이를 돌보는 살림이라면 더더욱 바보에 멍청이인 마흔돌이·쉰돌이가 그득하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오나오냐로 자랐을 뿐 아니라, 스스로 나이가 든 뒤에 새길을 배우면서 어깨동무(평등·평화)로 나아가려는 몸짓보다는, 돈·힘·이름을 붙잡으려 했다. 이제 내 또래도 여느 배움터에서 으뜸어른(교장)이나 버금어른(교감)이 되고, 웬만한 일터에서는 우두머리(사장·대표)를 하는데, 슬기롭거나 참한 또래가 더러 있으나 아직 한참 멀다고 느낀다. 그러면 마흔돌이·쉰돌이는 왜 허물벗기하고 멀까? 마흔돌이·쉰돌이는 아이를 낳을 무렵 거의 모두 일터에 틀어박혔다. 아이를 돌볼 줄 아는 마흔돌이·쉰돌이는 드물다. 예순돌이·일흔돌이는 어떻게 허물벗기를 했을까? 예순돌이·일흔돌이도 아이를 돌볼 줄 모르기는 매한가지이되, 이들은 할아버지란 자리에 서면서 ‘처음으로 아기·아이·어린이’를 마주하였고, ‘아기·아이·어린이’ 곁에서 ‘동시·동화·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스스로 낳은 아기가 아닌, 딸이나 며느리가 낳은 아기를 비로소 무릎에 앉혀 달래는 동안 ‘할머니랑 며느리한테서 아기를 돌보는 길’을 꾸지람을 들으면서 차근차근 배웠고, 이러면서 부엌일이나 집안일을 천천히 거들었고, 아이랑 집안일하고 사귀면서 스스로 허물벗기라는 길을 시나브로 나아간다. 이와 달리 마흔돌이·쉰돌이는 거의 모두 돈·힘·이름을 붙잡는 데에 온마음을 바친다. 한 살이라도 젊을 적에 더 벌거나 거머쥐려 한다. 그리고 마흔돌이·쉰돌이는 아직도 ‘동시·동화·그림책’을 거의 안 읽는다. ‘동시·동화·그림책’을 안 읽는 스물돌이·서른돌이도 갇히거나 막히거나 갑갑하거나 답답한 틀에 스스로 옭아매면서 바보나 멍청이로 보내는 이들이 많더라. 아기를 낳았거나 어린길잡이(초등교사)란 일을 하기에 ‘동시·동화·그림책’을 읽어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서는 ‘참돌이(진정한 남성)’로 서면서 ‘참사랑(진정한 사랑)’을 짓고 나누려는 마음이 있다면, 아기를 안 낳은 사내라 하더라도 ‘동시·동화·그림책’을 읽을 뿐 아니라, 손수 써 볼 노릇이다. “그림책 읽는 어머니”는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를 크게 뒤흔들면서 푸르게 바꾸어 놓는 밑힘이었다. “그림책 읽는 아버지”가 이제라도 태어나거나 깨어나야, 우리나라를 확 까뒤집으면서 ‘전쟁무기·군대·우두머리’ 없이 어깨동무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열아홉 살인 1994년에도 ‘대학생이지만 인문책 곁에 꼭 어린이책을 놓았’고, 큰아이를 2008년에 낳았지만 이무렵에는 ‘동시·동화·그림책’을 읽은 지 열 몇 해가 되었기에, 집안일을 기쁘게 맡고, 하루 내내 아이랑 어우러지면서 살림을 돌보았다. 언제나 아이들이 어버이를 일깨우고 가르친다. 어린이책을 안 읽고 인문책에만 빠진 마흔돌이·쉰돌이는 대가리가 터진다. 이러니 ‘응큼질(성추행)’을 한다. 이들한테 ‘늦깎이 성교육’을 시키기보다는 어린이책을 읽히면 된다. “그림책 읽는 아버지”로 거듭나면, 바보짓을 훨훨 털어내어 참돌이로 나아가리라 본다.


ㅅㄴㄹ


멍청한 마흔돌이 이야기를

기사로 아무리 내보낸들

이 나라는 안 바뀐다.

그림책 읽는 아저씨 이야기를

기사로 담아낼 적에

비로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신문·방송과 정부는 이 나라를

아름답게 바꿀 마음이 아직도

없다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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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8.31.

수다꽃, 내멋대로 23 서점순례 책꽃마실



  읽을 책을 사러 다닌 지는 오래되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어머니나 아버지 심부름으로 달책(잡지)이며, 언니가 바라는 만화책을 사다가 날랐는데, 스스로 살림돈을 푼푼이 모은 때부터는 내가 읽을 만화책을 사려고 여러 마을 여러 책집을 드나들었다. 예전에는 어린배움터(국민학교) 곁에 ‘글붓 책집(문방구 책방)’이 꼭 여럿 있었다. 한 곳이 책시렁을 넉넉하게 두지 않기에, 만화책이건 달책이건 이곳저곳 누벼야 비로소 손에 쥘 만했다. 인천에 있는 커다란 〈대한서림〉이나 〈동인서관〉 같은 데는 만화책을 잘 안 두었다. 어린이로서 만화책을 사러 책집마실을 멀리 자주 다녀야 했다. 1992년 8월 28일 늦은낮에 인천 배다리 책골목에 있는 〈아벨서점〉에서 ‘독일말 배움책(독일어 참고서)’을 두 자락 찾아내면서 “새책집이나 책숲(도서관)에는 없어도 헌책집에는 있는 책”을 처음으로 느꼈고, “새책집은 많이 파는 책을 놓(베스트셀러 장사)”고 “책숲은 소설책 빌림터(대여점)이거나 고린내 나는 책만 묵힌”다고 느꼈다. 1992년 9월부터 이레마다 사나흘씩 인천 배다리 책골목으로 ‘책읽기’를 하러 다녔다. 어느 책집이든 발을 들이면 그 집이 닫는 때까지 눌러앉아서 책을 읽다가 두어 자락을 사들고 나왔다. 푸른배움터를 다닐 적에는 ‘책집 나들이 이야기’를 몇 꼭지 안 썼다. 이때에는 배움수렁(입시지옥)에 허덕이면서 글을 여밀 틈을 못 냈다. 1994년 봄에 ‘나우누리·하이텔’에서 박상준 님이 쓴 ‘헌책방 순례’라는 글을 읽고서 “나도 내가 다닌 책집 이야기를 이렇게 쓰면 책집을 누구나 널리 알아보면서 다닐 만하겠구나” 하고 여겼다. 이해 1994년부터 “헌책방 나들이”라는 이름을 걸고서 책집 이야기를 썼다. 때로는 “헌책방 마실·책방마실” 같은 이름을 썼다. 그런데 내가 쓰는 글에 책집 단골 어르신들은 “자네가 쓰는 글이 좋기는 한데, 글이름을 ‘나들이·마실’이라 붙이니, 고상하지 않아. ‘서점순례’라 해야 하지 않나?” 하고 핀잔하거나 타박하셨다. 새뜸(신문·방송)에서 일한다는 분들은 ‘서점투어’란 이름을 자꾸 썼다. 이러다가 어느 분이 〈헌책방 나들이〉란 이름으로 헌책집을 열었다고 하더라. 한참 힘들었다. 나는 ‘헌책방 나들이’란 이름으로 ‘책집에 나들이를 가자’는 뜻을 알렸을 뿐, 스스로 책집을 안 차렸으니까.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라는 책을 썼더니, 나중에 또 어느 분이 〈모든 책은 헌책이다〉란 이름으로 책집을 열더라. 이때에도 애먼 손가락질을 받았다. 나는 책집마실을 다닌 이야기를 글하고 빛꽃(사진)으로 여미어 누구나 읽고서 스스로 책집으로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을 뿐인걸. ‘헌책방 나들이’도 ‘모든 책은 헌책이다’도 더는 쓰고 싶지 않아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새롭게 지어서 썼는데, 2016년이었나 전남 광주에서 광주 마을책집을 알리는 꾸러미를 내면서 ‘책방마실’이란 이름을 슬쩍 가져다가 쓰더라. 헛웃음이 났다. 나더러 내가 지은 이름을 특허로 올리라고 귀띔하는 분이 많지만, 이름을 특허로 낼 마음은 없다. 다시 이름을 헤아려 ‘책숲마실’이란 이름을 걸었더니 전남 순천 도서관협회에서 그곳 달책(잡지) 이름으로 ‘책숲마실’을 쓰고 싶다고 물어왔다. 이름을 써도 되겠느냐 물어온 사람은 처음이라 그분더러 쓰라고 했는데, 막상 순천 도서관협회는 달책 《책숲마실》을 두 자락만 내고 더 안 내더라. 이러구러 2013년에 ‘책빛마실’이란 이름을 지어 《책빛마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이란 책을 내놓고, 2014년에 ‘책빛숲’이란 이름을 지어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란 책을 내놓은 적 있다. 2020년에는 ‘책숲마실’을 도로 내가 쓰기로 하면서 《책숲마실》이란 이름으로 책을 내놓았다. 우리네 마을책집 이야기를 꾸준히 쓰기에, 이 이야기를 새로 여미어 내놓을 적에는 《책꽃마실, 마을책집 이야기》란 이름을 쓰려고 생각한다. 이름짓기란 어려울 일이 없고, 남이 지은 이름을 노리거나 가로챌 까닭이 없다. 삶을 짓고 생각을 짓듯 이름을 지으면 누구나 스스로 빛난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을 이름에 얹으면 이 나라 책마을이 찬찬히 피어나면서 다같이 즐거우리라 본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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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2.8.31.

숲집놀이터 276. 한집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부장제’였을까? ‘가부장제’란 ‘가부장’이란 중국말을 쓰던 무렵에 서거나 퍼졌을 텐데, 중국이나 일본을 섬기던 무리가 나라를 휘어잡던 무렵이 아닌,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지으며 살아가던 때에는 이런 낡고 고약한 틀이 설 까닭이 없었다. 나라(정부·국가)를 보면, 으레 사내가 우두머리에 서면서 가시내를 몽땅 짓밟으려 한다. 어느 나라이고 가시내가 어깨를 펴는 틀이나 터전하고 멀다. 그런데 어떤 나라가 서든 ‘나라를 섬기지 않는 조그마한 집이나 마을’에서는 ‘가부장’이 없다. 나라(정부·국가)는 늘 사내를 홀려서 작은힘(가부장권력)을 쥐어 주고서 돈·이름·힘이란 떡고물을 안긴다. 숱한 사내는 우두머리가 시키는 대로 홀리고 휩쓸린다. 거의 모든 가시내는 나라한테 안 홀리고 안 휘둘리면서 아이를 바라보고 짝꿍을 마주한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집이라면 ‘나라를 안 쳐다보고, 나라에서 주는 떡고물을 거스르면서, 오직 아이랑 곁짝을 바라보는 살림’이다. 사람은 ‘너랑 나’ 둘이 어우러져서 ‘우리’를 사랑으로 맺는 슬기로운 살림길을 걸을 적에 비로소 빛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말은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다우려면 가시버시(남녀·부부)가 수수한 사람으로서 서로 사랑이란 슬기로 마주하는 살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생활 = 우두머리 허수아비 노릇’이다. 우리 살림집이 즐거이 ‘한집’을 이루자면, 아무도 우두머리(가부장)일 수 없다. 어버이도 아이도 저마다 지킴이요 돌봄이로서 보금자리를 가꾸기에 반짝반짝 별빛으로 햇빛으로 즐거운 오늘을 짓고 누리고 나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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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수다꽃, 내멋대로 22 부채



  싱싱칸(냉장고)를 쓴 지 얼마 안 된다. 작은아이가 두돌맞이 즈음일 무렵 비로소 들였다. 싱싱칸 없이 어찌 사느냐고 묻는 분이 많지만, 이 나라 사람들이 싱싱칸을 쓴 지는 기껏해야 쉰 해가 채 안 된다(2022년으로 보면). 다들 싱싱칸 없이 밥을 잘 해먹었고, 밥찌꺼기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싱싱칸이 집집마다 퍼지면서 외려 밥을 제대로 못 해먹는다고 느낀다. 싱싱칸을 안 쓰는 집이 없다시피 하면서 밥찌꺼기에 밥쓰레기가 흘러넘친다고 느낀다. 보라. 큼지막한 싱싱칸을 하나조차 아닌 둘이나 셋까지 들여놓은 집이 수두룩한데, 그 집에서 아무런 밥찌꺼기나 밥쓰레기가 안 나오는가? 알뜰히 밥살림을 하는가? 싱싱칸을 두었으니 비닐을 안 쓰나? 외려 싱싱칸을 쓰면 쓸수록 비닐쓰레기조차 더 늘지 않는가? 싱싱칸을 집에 들이기는 했으나 바람이(선풍기) 없이 살았다. 가시어머니가 우리 시골집으로 놀러오시면서 “선풍기도 없이 어떻게 살아? 난 더워.” 하면서 장만하셨다. 가시어머니가 우리 시골집으로 나들이하시면 헛간에서 바람이를 꺼냈고, 우리 스스로 바람이를 쓸 일은 없다시피 했다. 나한테는 부채가 있으니까. 우리 집에는 부채가 많다. 두 아이를 돌보며 두 손으로 부채를 하나씩 쥐고서 한나절을 거뜬히 부쳐 주었다. 한여름밤에는 두 아이 사이에 서서 두 손으로 가벼이 팔랑팔랑 부채질을 하면서 자장노래를 불렀다. 한 시간도 두 시간도 아닌 너덧 시간을 부채질을 하자면 안 힘드느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아이를 돌보면서 어떻게 힘들다고 생각해요? 아이한테 힘들다는 몸짓이나 마음을 물려주거나 가르치고 싶으셔요?” 하고 되물었다.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해주면서 노래를 부르고 웃고 춤추었다. 왜? 즐거운 살림꽃이니까. 어머니라면 아기한테 젖을 물릴 테고, 아버지라면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 곁에서 가볍게 부채질을 할 노릇이다. 부채질을 하는 아버지는 ‘아기 어머니’가 배고플 즈음 맞추어 밥을 지어서 차려놓는다. 부채질을 하는 아버지는 아기가 똥오줌을 누면 기저귀를 갈고서 기저귀빨래를 한다. 아기가 똥을 눈 때에는 물을 끓여서 알맞게 추스른 다음 씻긴다. 여름철에는 날마다 대여섯 벌씩 씻기고 빨래를 했다. 아니, 여름철에는 한 시간마다 빨래를 했으니, 날마다 스물넉 벌씩 빨래를 했다.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이웃은 “밤에 왜 안 자고 빨래를 해요?” 하고 묻는다. “아기가 밤이라 해서 똥오줌을 안 누나요? 자면서 똥오줌을 누는 아기는 잠이 안 깨도록 살살 다독이면서 기저귀를 갈고 씻겨 주지요.”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노래하고 부채질하고, 이러면서 저잣마실을 하고, 낱말책(사전)을 쓰는 일을 하고, 이래저래 갖은 일을 즐거이 맡았다. 큰아이가 기저귀를 뗄 즈음 작은아이가 태어났기에, 작은아이가 기저귀를 떼는 날까지 하루에 30분 넘게 느긋이 잠자리에 든 일이 없다. 늘 15∼20분 사이로 눈만 붙이는 쪽잠살림이었는데, 낮에는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골짜기나 바다나 숲으로 마실을 다녔다. 부채질을 하는 어버이는 언제나 온몸으로 아이들을 품고 사랑하며 걷고 자전거를 달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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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8.22.

숨은책 739


《朝鮮敎會史序論》

 샤를르 달레 글

 정기수 옮김

 탐구당

 1966.5.20.첫/1977.8.15.고침



  우리나라 발자취(역사)를 다룬 책이 꾸준히 나오지만, 창피한 민낯을 스스럼없이 밝히는 일은 드물어요. 숱한 책(역사를 다룬 인문책)은 우두머리·글바치·벼슬아치를 둘러싼 줄거리를 짚을 뿐, ‘이름없이 살림을 지으며 아이를 낳고 돌보며 흙을 일구어 살아온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는 거의 안 짚거든요. 2015년에 《벽안에 비친 조선국의 모든 것》이란 이름으로 새로 나온 《朝鮮敎會史序論》입니다. 샤를르 달레(Charles Dallet 1829∼1878) 님이 쓴 책이고, 적잖은 이야기는 어릴 적에 마을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적 있습니다. 할머니를 낳은 할머니가 겪고, 할아버지를 낳은 할아버지가 치른, 아프면서 슬픈 멍울은 ‘조선왕조실록’ 따위에는 안 적혔을 테지만, 들꽃 같은 사람들 마음에는 똑똑히 남았겠지요.


ㅅㄴㄹ


“조선 귀족은 도처에서 지배자와 폭군처럼 행세한다. 대귀족이 돈이 없으면, 하인을 보내서 상인이나 농민을 잡는다. 그 자가 기꺼이 돈을 낼 때에는 놓아 주고, 그렇지 않으면 양반 집에 끌고 가서 가두고, 먹을 것을 안 주고, 요구하는 금액을 치를 때까지 때린다.” (179쪽)


“조선에서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서와 같이, 풍속은 무섭게 부패해 있으며, 그 필연적인 결과로 여성의 보통 처지는 불쾌하리만큼 저열한 상태에 있다. 여자는 남자의 반려가 아니라, 노예에 불과하고, 쾌락 또는 노동의 연장에 불과하며 …… 여자는 이름이 없다.” (199쪽)


#CharlesDallet #HistoireDeLEgliseDeCo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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