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1.17.

숨은책 779


《혈(血)의 루(淚)》

 이인직 글

 서림문화사

 1981.10.30.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다니던 1991∼93년 무렵 ‘이광수·최남선 친일’을 찔끔 배웠습니다. 배움틀(교육과정)로는 일본바라기(친일)를 딱히 따지거나 나무라지 않고, 둘을 뺀 다른 일본바라기가 누구요 무슨 짓을 했는지 아예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무렵 짤막하게 “이인직 《혈의 누》는 신소설의 효시”라고만 가르치더군요. 막상 《혈의 누》는 어떤 글이요 줄거리인지 찾아보거나 읽을 길이 없고, 길잡이는 챙겨 주지 않았습니다. 헌책집에서 《혈(血)의 루(淚)》를 보는데 겉그림이 예스럽구나 싶어 집어들었습니다. 1906년에 썼다는 글을 읽으며 지난날 우리말씨를 엿봅니다. ‘여성’보다는 ‘계집’이란 말이 흔하고 ‘어기뚱·더적더적·아드득·모랑모랑·모짝’이나 ‘샐녘·피비·뱃나들이·발씨·드난·뒤웅박·숫접다·냅뜨다·돌쳐서다·떼거리·물속길’처럼 살려쓴 말씨가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이인직 이분은 1904년 러일전쟁 무렵 일본 육군성에서 통역으로 일했고, 이완용 심부름꾼으로 1910년 한일합방을 이끌었다지요. 1915년에 일본 우두머리를 기리는 글을 바치기도 하다가 1916년에 죽습니다. 한겨레 마음에 피눈물이 맺도록 나부대고서 썩 오래 살지도 못 했어요. 그래, ‘피눈물’이지요. ‘혈의 누·혈의 루’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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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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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숲노래 사랑꽃 2022.11.13.

숲집놀이터 277. 도시는 나쁠까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은 나쁘다”고 여길는지 모르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서울은 나쁘다”고 여길는지 모른다. 하나는 뚜렷하다. 서울이든 시골이든 스스로 마음에 들거나 사랑하는 곳에서 살아간다. 시골이 덜 마음에 들기에 시골에서 안 살고, 서울이 마음에 들 수 없어 서울에서 안 산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버이나 둘레 어른이 안 가르쳤어도 스스로 몸마음으로 느껴 “우리는 서울에서 안 살겠어요. 우리는 학교라는 틀에 박힌 수렁에도 가지 않겠어요.” 하고 말했다. 가만히 보면 둘레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한테 “서울에서 살면 이런저런 게 좋고, 학교에 가면 이런저런 게 좋아.” 하고만 말한다. 서울이나 배움터에서 무엇이 말썽이거나 뒤틀리거나 얄궂은지는 말하지 않더라. 아마 그분들 스스로 생각조차 안 한 대목이겠지. 시골에서도 얄궂은 모습은 으레 볼 수 있다. 서울에서도 돋보이는 대목은 많다. 그렇지만 전라도하고 경상도가 있듯, 강원도하고 충청도가 있듯, 제주도하고 경기도가 있듯, 다 다른 고장에서 저마다 푸르게 꿈을 키워서 하루를 일구기에 즐겁다. 어느 시골아이가 ‘서울·학교’가 어느 대목에서 얄궂고 말썽이며 끔찍하다고 생각을 밝힌다면,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서울·학교’에서 곪은 구석을 차근차근 바로잡거나 고치거나 손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어른’이란 이름을 쓸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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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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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삶읽기 2022.11.9.

수다꽃, 내멋대로 30 자가용



  아마 1990년이었지 싶은데, 그해에 우리 아버지는 빚을 내어 부릉이(자가용)를 장만했다. 해마다 설·한가위뿐 아니라 크고작은 비나리(제사)에 작은아버지는 번쩍거리는 부릉이를 몰고 와서 자랑했다. 어머니·언니·나는 작은아버지가 부릉이를 자랑하건 말건 대수롭지 않았으나, 아버지만큼은 늘 켕겼나 보다. 우리 아버지가 부릉이를 장만할 즈음, 우리가 살던 13평짜리 다섯겹(5층) 잿빛집(아파트)에 부릉이가 딱 둘이었다. 쉰 집이 한덩어리인데 제법 넓은 빈터에 부릉이가 둘. 이 부릉이가 없던 때에는 빈터가 온통 우리 아이들 차지였다면, 우리 아버지조차 빚을 내어 장만한 뒤로 하나둘 늘면서 어느새 어린이가 놀 자리를 몽땅 빼앗겼다. 열여덟 살이던 1993년 겨울, 이제 배움수렁(대학입시)을 끝낸 또래는 아침에 배움터에 나온 다음 ‘운전면허 시험공부’를 한다면서 빠져나갔다. 이때 나는 “아, 나는 면허도 안 따고 싶고, 부릉이는 더더욱 안 몰고 싶어.” 하고 생각했다. 1995년부터 자전거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 노릇을 하면서 내 몸은 자전거하고 두 다리한테 맞춘다. 1995∼2004년에 서울에서 살며 날마다 책집마실을 했는데, “그 많은 책을 무겁게 이고 지고 들고 가나? 차가 있으면 수월할 텐데! 내가 몰던 차 줄까?” 하는 이웃이 제법 있었다. “아뇨. 부릉부릉 몰면 책을 못 읽어요. 길에서 손잡이만 붙들지요. 게다가 글을 못 쓰지요. 더구나 기름값 탓에 책값을 못 씁니다. 전 두 다리하고 자전거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2004년에 권정생 할배는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을 안 할 수 있다〉란 글을 내놓는다. 이 글 첫머리는 “승용차를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달아나야 한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달아나 이전에 우리가 버려두고 떠나왔던 시골로 다시 돌아가서 15평짜리 작은 집을 짓고 살아야 한다. 가까운 데는 걸어다니고 먼 곳에는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백만 원 들던 생활비는 50만 원으로 줄어들 것이다.”와 같다. 이 글을 읽고 한때 부릉이를 버린 분이 꽤 있다고 들었으나 거의 다 도로 부릉이를 장만했다지. 부릉이만 버린대서 끝이 아니다. 잿빛집을 버리고 서울을 버리고 ‘마침종이(졸업장)·솜씨종이(자격증)’를 버리고, 이름값(명예)을 버려야 한다. 나는 2010년에 〈자가용을 버려야 책을 읽는다〉란 이름으로 글을 썼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갈수록 책을 안 읽는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넘치기에,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까닭은 바로 ‘부릉이(자가용)’를 붙잡을 뿐 아니라, 잿빛집을 붙잡고, 서울바라기를 하기 때문인걸. 시골로 삶터를 안 옮기고, 이름값을 안 내려놓으려 하니, 책을 못 읽는다. 모두 매한가지이다. “부릉이를 버려야 숲을 살린다”, “부릉이를 버려야 서울을 살린다”, “부릉이를 버려야 제주바다를 살린다”, “부릉이를 버려야 아이들이 산다”, “부릉이를 버려야 참 민주·평화·평등을 이룬다”처럼 말할 만하다. 부릉이를 몰면서 어깨동무(성평등·페미니즘)를 이룰 수 없다. 부릉이를 몰면서 아이사랑을 할 수 없다. 부릉이를 모는 주제에 어떻게 들숲바다를 푸르게 품는 길을 가거나 목소리를 내겠는가? 부릉이를 버려야 모든 싸움(전쟁)을 녹여버릴 수 있다. 부릉이를 버려야 사람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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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7.

숨은책 770


《實錄 眞相은 이렇다, 惡名높은 金正一의 正體》

 김현수·오기완·이항구 글

 한국교양문화원

 1978.6.23.



  우리는 ‘우리말·우리나라’처럼 ‘우리’라는 낱말을 두루 씁니다. “우리 엄마”나 “우리 마을”처럼 쓰고, “우리 이야기”라 합니다. ‘나의(나 + 의)’는 일본말 ‘私の’에서 따왔는데, 일본은 영어 ‘my’를 ‘私の’로 옮겼고, 우리는 영어 낱말책을 일본사람이 엮은 대로 받아들인 터라, 이 부스러기가 오늘까지 퍼져 사그라들지 않습니다. ‘우리’를 줄여 ‘울’이고 ‘하늘(한울)’을 가리키는 바탕이며 ‘아우르다·어울리다·울타리’에 이 ‘울(우리)’이 깃들어요. 그렇지만 이런 우리말을 배움터에서 안 가르칠 뿐더러, 스스로 돌아보지 못 해요. 이처럼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살피지 않거나 못 하는 버릇은 《實錄 眞相은 이렇다, 惡名높은 金正一의 正體》 같은 책으로 쉽게 엿볼 만합니다. 북녘은 남녘을 헐뜯고, 남녘은 북녘을 깎아내리는 짓을 1948년 즈음부터 끝없이 해댔습니다. ‘한울타리’인 줄 잊기에 사납게 노려보며 할퀴고 쳐들어갑니다. ‘하늘빛(한울빛)’을 잃기에 손가락질에 삿대질이에요. 나라에서는 어깨동무 아닌 깎음질을 하는 책을 자꾸 찍었고 반공웅변·반공독후감을 시켰어요. 이 책에는 “발송 no.400-139 공음국민학교 78.10.13.” 같은 글씨가 찍혀요. 고창 시골배움터로도 뻗은 슬픈 자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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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1.7.

숨은책 615


《살길 찾은 동촌마을》

 소진탁 글

 안신영 엮음

 대한기독교계명협회

 1956.7.25.첫/1958.6.10.두벌



  지난날 나리(양반) 가운데 아주 드물게 호미·낫·쟁기를 쥔 사람이 있습니다만, 거의 모두는 임금바라기를 하며 먹물꾼에 머물렀어요. 임금이나 벼슬아치는 호미·낫·쟁기를 모릅니다. 쥔 적이 없고 볼 일마저 없어요. 오늘날 나라지기(대통령)를 비롯해 벼슬꾼(정치인·공무원)에 글꾼도 호미·낫·쟁기를 안 쥐고 모릅니다. 꽃그릇(화분)하고 땅은 달라요. 꽃그릇을 건사하더라도 해바람비를 맞이하는 땅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꽤 오래도록 ‘어리석은 시골을 일깨우’려는 글바치는 ‘글도 책도 모르는 시골사람’을 내려다보듯 나무라고 이끌려 했어요. 그런데 예부터 흙지기는 밥옷집을 손수 건사했고, 말조차 손수 지은 사투리를 썼어요. 이와 달리 임금·벼슬꾼·글바치는 중국·일본을 섬기며 한문·한자말을 외웠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 똑똑하다는 이들은 서울바라기를 하면서 시골을 떠났고, 시골사람을 바보로 여기면서 새마을바람 따위를 일으켜 비닐에 풀죽임물(농약)을 옴팡 쓰도록 내몰았어요. ‘덧벌레(기생충)’를 다스리는 줄거리인 《살길 찾은 동촌마을》은 시골사람이 배고프다며 아무것이나 주워먹는다고 탓합니다. 흙이나 샘물이나 풀꽃나무가 나쁠 수 있을까요? 나쁘다면 숲을 망가뜨린 서울일 텐데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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