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어제책 2022.12.28.

헌책읽기 4 할아버지의 부엌



  나라에 이바지하고 일터(회사)에 몸바치는 사내가 수두룩합니다. 요새는 사내 못잖게, 때로는 사내보다 더 나라하고 일터에 이바지하거나 몸바치는 가시내가 참 많습니다. 곰곰이 보면 어린배움터부터 ‘바깥살이(사회생활)’를 해야 마치 ‘나찾기(자기계발)’를 이룬다고 가르칩니다만, 참말로 집밖을 오래 떠돌면서 돈을 벌고 이름을 얻고 힘을 부려야 ‘나찾기’일까요? 요새는 손수 밥차림을 하는 사내가 부쩍 늘었으나 아직 밥차림을 등지거나 못 하는 사내가 수북해요. 더구나 밥차림을 익히거나 다루면 ‘가시내답지 않다(성평등하고 멀다)’고 여기면서 손에 물을 안 대는 분이 차츰 늘어납니다. 1990년에 우리말로 나온 《할아버지의 부엌》은 나라나 일터에만 온마음을 다하고 살다가 자리에서 물러난 사내들이 ‘마을에 동무도 이웃도 없을 뿐 아니라, 마을을 하나도 모르고, 집살림이며 집안일은 더더욱 모르는 바보스러운 하루’를 나이든 딸아이가 하나하나 짚고 가르쳐 주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할아버지가 되고서야 비로소 홀로서기다운 홀로서기를 처음 배우는 아장걸음’은 사내를 보여줘요. 그런데 앞으로는 “할아버지 부엌”뿐 아니라 “할머니 부엌”을 말할 때로 다가간다고 느껴요. 2030년을 지나고 2040년 무렵이면 부엌칼도 도마도 다룰 줄 모르는 가시내가 수북하지 않을까요? 손전화로 시킬 줄은 알되 집에서 살림할 줄 모르는 순이돌이가 넘실거리겠지요? 그동안 나라지기(대통령)를 마친 이들은 하나같이 우람집(대궐)을 짓고서 숨었습니다. 시골 오두막이나 서울 골목집에 깃들어 ‘수수한 들꽃살림’을 짓는 이가 없습니다. 높다란 벼슬이나 감투를 거머쥔 이도 매한가지입니다. 글이름을 판 사람도 엇비슷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는 삶일까 처음부터 짚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배움터에서 무엇을 보고 자라는지 다시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부엌일이며 집안일을 안 하고서 배움터만 오래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바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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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부엌》(사하시 게이죠/엄은옥 옮김, 여성신문사, 1990.5.10.)



아버지가 ‘혼자살기’를 선언한 때부터 나는 경제적으로 가계를 꾸리는 방법, 혼자 사는 방법을 아버지에게 가르쳐 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34쪽)


언니들은 아버지가 욕심쟁이고 자기 멋대로라고 한다. 그러나 혼자 사는 나는 아버지의 기분을 손에 쥐듯 알 수 있다. 나는 너무 바쁘다 보니 외로움을 뼛속 깊이 느낄 사이가 없지만 아버지는 하루 종일 자유시간. (190쪽)


회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고, 가족을 위해 이를 악물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도 해왔다. 그리고 나서 문득 돌이켜보니, 거기에는 따뜻하게 마음을 쉴 수 있는 가정이 없었다. (20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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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어제책 2022.12.28.

헌책읽기 3 협궤열차



  전라도하고 경상도라는 고장을 가르는 말씨가 있습니다. 여수·순천·광양을 가르고, 진주·하동·거창을 가르는 말씨가 있어요. 순천·고흥이 말씨가 다르고, 하동·함안도 말씨가 달라요. 더 들어가면, 고흥이나 함안에서도 읍내하고 면소재지 말씨가 다르고, 더 깊이 들어서는 시골마을마다 말씨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인천하고 서울하고 수원하고 부천하고 시흥도 말씨가 다를 테고, 인천에서도 주안하고 석바위가 말씨가 다를 테며, 인천 창영동하고 송림동하고 도화동하고 숭의동도 말씨가 다르게 마련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를 헤아리면서 글을 쓰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협궤열차》는 틀림없이 인천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풀어내겠구나 싶어서 집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소설이라는 줄거리’를 볼 텐데, 저는 ‘인천이라는 삶자리’를 읽어 보았습니다. ‘수인선’을 탄 일은 아주 어릴 적 같아 잘 안 떠오르지만, 수인선을 디디면서 한나절 멍하니 걷던 일은 또렷이 떠오릅니다. 어린이·푸름이로 살던 여덟∼열아홉 살 사이에 젓가락 같은 쇳길(철길)을 으레 걸어서 오갔어요. 요새야 버스도 많고 자주 다닌다지만, 예전에는 서울·부산 아닌 데에서는 잦지 않았습니다. 걷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칙칙폭폭 거의 안 다니는 쇳길을 디디며 오가는 사람도 제법 있어요. ‘인천사람이라면 이러지는 않을 텐데’ 싶은 대목을 내내 느끼며 《협궤열차》를 읽었습니다. 주안사람도 석바위사람도 이러지는 않다고 느끼며 읽었어요. 그냥 ‘글감’으로 좁은길(협궤열차)을 그렸을 테지요. 얼핏 구경한 모습이 아닌, 골목 한켠에 깃들어 보면서, 또 잿빛더미(아파트 단지)가 아닌 논밭에 소금밭이 너른 ‘귀퉁이 도시’를 살아내면서 좁은길 이야기를 써 보았다면 이 책에 ‘인천말씨’가 조금은 묻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으로 떨어지는 소설’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수인선’을 다루면서 막상 수원을 얘기하는 글꾼은 없다시피 하고, 인천을 다뤄도 겉훑기로 딴 얘기만 편다는 소리입니다.


ㅅㄴㄹ


《협궤열차》(윤후명, 창, 1994.5.15.)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수원과 인천 송도 사이를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도 한다. “그거 트럭하고 부딪쳐도 넘어지겠군.” 누군가가 말한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는 조그만 열차. (68쪽)


나는 달려가서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별일 있졌저.” “무슨 일?” 나는 겨울 추위에 빨갛게 상기된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비를 안 가져왔거든.” “그래서?” 나는 물었다. “담에 갈 때 드린다고 했지.” 이렇게 수인선 협궤열차는 오늘도 하루에 세 번씩 다니고 있다. (69쪽)


그는 석바위가 고향이라고 하였다. 석바위는 주안에서 소래로 오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석바위에서 소래 사이에 펼쳐진 논들의 고즈넉한 정적을 생각하며 사내에게 갑자기 오래 사귀어 온 것처럼 친근감을 느꼈다. 사내는 하룻밤 아무 데서나 지내고 내일 아침 영화를 촬영하는 곳으로 찾아가 볼까 하는 길이라고 말하며 담배를 땀바닥에 버리고 발로 문질렀다. 바람이 벌판을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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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숨은책 / 숲노래 어제책 2022.12.26.

헌책읽기 2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



  어릴 적부터 둘레 어른들은 뻔질나게 ‘나라사랑·겨레사랑(애국·애족)’을 해야 한다고 외쳤고, 아이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사랑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시켰어요. ‘반공 웅변·글짓기’를 시키고, 툭하면 길거리에 어깨띠나 머리띠를 한 채 한나절을 땡볕이나 눈바람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도록 시켰습니다. 제가 태어난 1975년에 ‘박정희 유신헌법 개헌 국민투표’가 불거졌고, ‘긴급조치 9호’로 온나라를 더 차갑게 짓밟았습니다. 1952년에 태어난 박근혜 씨로서는 1975년이면 스물네 살인데 ‘아버지가 하는 짓’을 막거나 말릴 만한 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이녁은 이런 사납짓을 막은 적이 없고 잘못이라 느끼지 않으면서 살아왔다고 느껴요.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은 박근혜 씨가 마흔두 살에 내놓은 책입니다. 책이름처럼 “수수한 집”에서 태어났기를 바란다고 내내 밝히지만, 정작 ‘보임틀(텔레비전) 구경’으로만 시골살이를 그릴 뿐, 막상 스스로 서울을 떠나 오두막이나 텃밭일로 삶을 지을 생각은 안 했습니다. 박근혜 씨는 내내 ‘아버지 박정희를 꼭두(영웅)로 세우기’를 했고 ‘아버지 박정희만큼 나라사랑·겨레사랑을 누가 했느냐’고 사람들한테 따지거나 가르치려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배부른 돼지”로 살면 즐겁거나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총칼에 주먹질로 윽박지르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스로 땀흘려 얼마든지 넉넉히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두레·품앗이·울력’으로 살아왔습니다. 꼭두에 서서 꼭두각시를 휘두르는 짓이 나라사랑일 수 없어요. 맨발로 논밭에 서고, 맨손으로 풀꽃을 쓰다듬고, 맨몸으로 나무를 품을 줄 아는, 그야말로 수수한 하루야말로 푸른별사랑이요 나라사랑이며 겨레사랑일 테지요. 아직 안 늦었습니다. 이제라도 임금집(궁궐)을 버리고서 ‘열댓 평 작은 시골집’으로 옮기시기를 바라요. 작은 시골집에서 나무를 심고 멧새랑 노래하는 ‘작은살림(평범한 가정)’을 살아내시면 조금이라도 허물씻이를 할 만합니다.


ㅅㄴㄹ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박근혜, 남송, 1993.10.30.첫/1994.8.6.7벌)



충성을 얘기하고 뭐가 어떻고 말이 많았던 그는 결국 마음에 있는 것은 자리 하나였다. 도저히 능률을 내지 못해 다른 자리로 옮기라고 하니까 반발하고 속좁은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12쪽)


평범하게 산다 해도 행과 불행은 있기 마련이겠으나 평범한 인생이 부럽기만 하다. TV를 통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보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38쪽)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중상이 또 시작된 것을 보면 역시 기념 사업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실컷 왜곡을 애써 벗겨 놓으면 또다시 새로 만들어 왜곡을 시작한다. 그리고 국가에 대해 품으셨던 그 원대한 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피땀 흘리셨던 노고, 이 모든 것은 제대로 계승되지도 못하고 내팽개채져 있는 것이다. (53쪽)


어제 ‘세계의 어린이’ 프로에 등장한 터키 소녀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곳은 여성들이 주로 밭일을 하며 목화도 따고 하는데,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하니까 17세에 결혼해서 평생 밭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같이 복잡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에겐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로 들리지만 그 소녀가 누리는 소박한 꿈과 행복이 부러웠다. (60쪽)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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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22.

숨은책 801


《How Big is Big?》

 Herman Schneider·Nina Schneider 글

 Symeon Shimin 그림

 Scholastic

 1946/1950/1964.



  크다면 얼마나 클까요? 작다면 얼마나 작을까요? 좋다면 얼마나 좋고, 나쁘다면 얼마나 나쁠까요? 흩날리는 눈은 하늘을 덮습니다. 내리는 비는 들을 적십니다. 아기는 조막손 같으나 어느새 단단하고 굵은 손으로 자라나고, 어른은 아이 곁에서 살림을 지으면서 투박하면서 빛나는 손으로 거듭납니다. 자그마한 돌 하나도 별입니다. 우리가 어우러지는 푸른별(지구)도 별이고, 해도 별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별이고, 고양이도 개미도 모기도 별이에요. 다 다른 별 가운데 죽어도 되거나 죽여도 될 숨결은 없습니다. 《How Big is Big?》은 꽤 묵은 그림책인데 어릴 적에 ‘배움곁책(학습지 별책부록)’으로 만난 적 있습니다. 1984∼85년 사이에 보았다고 느끼는데, 집에 그림책이 따로 없던 살림이었으나, 그때 받은 ‘배움곁책’에 《How Big is Big?》하고 《AMOS & BORIS》가 있었어요. 두 그림책을 틈날 때마다 되읽으면서 생각날개를 폈지만,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마친 어느 날 어머니가 이 작은 그림책을 다 버리셨어요. 이제 배움수렁(입시지옥)에만 마음을 써야 하니까 버렸다고 하시더군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림책’으로 여기지만, 지난날에는 ‘아이만 그림책’으로 여겼어요. 우리가 어른스런 어른이라면 쉰 살이나 일흔 살을 지나더라도 그림책 몇 자락을 아름답게 품으면서 마음을 돌보리라 생각합니다.


#SymeonShimin 1902∼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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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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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제책 2022.12.19.

숨은책 803


《寫眞藝術의 創造》

 A.파이닝거 글

 최병덕 옮김

 사진과평론사

 1978.6.30.



  가난한 살림에 후줄그레한 찰칵이(사진기)를 쓰는 저를 딱하게 여긴 어른 한 분이 2000년 겨울에 “사진을 좀더 잘 찍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무렵 제 두 달치 일삯을 치를 만한 찰칵이를 사주신 적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찍는지 알아야 한다며 ‘김기찬 골목 사진 전시회’에도 끌고 가서 보여주었고요. 작은 보임집(전시관) 한켠에 앉아서 ‘손님 없는 곳’을 지키던 흰머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분이 김기찬 님인 줄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2005년 8월 27일에 김기찬 님은 찰칵이를 내려놓고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해 9월에 서울 용산 어느 ‘갤러리’에 김기찬 님 책(소장도서)을 드렸다(기증)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10월 8일 용산 헌책집 〈뿌리서점〉에 갔더니 “어, 최 선생, 오늘 좋은 사진책이 잔뜩 들어왔어. 여기 와서 보시게!” 하고 부릅니다. 무슨 사진책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김기찬 님 책’입니다. “사장님, 지난달에 ○○갤러리에 드린 책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래? 그런데 다 고물상에 버려졌던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날 차마 책더미를 들추지 못 했습니다. 이레 뒤(2005.10.15.) 다시 와서 ‘안 팔리고 남은 부스러기’인 《寫眞藝術의 創造》를 삽니다. 붉게 밑줄 그으며 읽은 자취가 고스란하고, 책끝에 ‘김기찬 1979.3.17.’ 같은 글씨가 남습니다. 이튿날 충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며 ‘2005.10.16. 동서울→무극’ 표를 꽂아 놓습니다. 2005년 이무렵, 저는 이오덕 어른 글(유고)을 갈무리하며 지냈어요. 헌책집 〈뿌리서점〉 지기님은 “나중에 들어 보니 그 갤러리에서 자기들 책하고 겹치는 책은 다 버렸다고 하더라고. 귀하지 않은 책은 버렸다고 하더구만.” 하고 뒷얘기를 들려줍니다. 책 안쪽에 남은 “동방서림 22-1207 구내 3404” 쪽종이를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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