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나뭇잎집 징검다리 3.4.5 8
소야 키요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 한림출판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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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1



풀빛을 먹고 꽃내음을 마시며

― 숲 속의 나뭇잎집

 하야시 아키코 그림

 소야 키요시 글

 한림출판사 펴냄, 1999.10.25.



  우리 집 큰아이가 길에서 벌한테 몇 방 쏘인 뒤부터 마당에서 놀 생각을 안 합니다. 벌한테 쏘이기 앞서까지는 아이 스스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놀 뿐 아니라, 동생을 데리고 온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말없이 마을 빨래터까지 가서 옷을 옴팡 적시도록 물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벌은 꽃이 핀 데를 찾아다닙니다. 꽃이 핀 데가 있으면 벌은 웅웅거리면서 꿀을 찾거나 꽃가루를 모읍니다. 우리 집은 농약을 하나도 안 치고 풀을 함부로 뽑거나 베거나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는 후박나무가 크게 자랍니다. 우리 집 옆밭에 갓꽃과 유채꽃이 그득하고, 사월에 후박꽃이랑 초피꽃이 환합니다. 벌이 모이기에 좋은 터전입니다. 후박꽃과 초피꽃과 갓꽃과 유채꽃뿐 아니라, 제비꽃이랑 민들레꽃도 많이 피고, 봄까지꽃은 아직 피며, 뒤꼍에는 살갈퀴꽃이 피어요. 곧 돌나물꽃이 필 테고, 갈퀴덩굴꽃도 핍니다. 동백꽃은 차츰 지지만 장미꽃이 피려 해요. 장미꽃이 환하게 빛나고 나면 붓꽃도 피겠지요.


  우리 식구가 심은 꽃보다 흙밭에서 풀이 스스로 틔우는 꽃이 훨씬 많습니다. 아니, 우리 식구는 꽃을 따로 안 심는다고 할 만합니다. 풀밭을 이루면 풀이 스스로 꽃을 피웁니다. 사람이 심어서 키우는 꽃 못지않게, 어쩌면 사람이 심어서 키우는 꽃보다, 들꽃과 풀꽃과 나무꽃이 한결 싱그러우면서 짙은 내음을 퍼뜨린다고 할 만합니다.





.. 은아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볼에 빗방울이 똑 하고 떨어졌습니다. “아이, 차가워!” ..  (2쪽)



  우리 집은 언제나 꽃빛입니다. 꽃을 보려고 심은 꽃은 없어도, 봄부터 가을까지 꽃내음이 흐르고 풀내음이 짙습니다. 겨울을 앞둔 십일월 끝무렵까지 까마중꽃이 핍니다. 고들빼기꽃도 십일월까지 핍니다. 그러니, 아이가 벌을 무서워한다면 더는 놀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른봄부터 늦가을까지 온통 꽃내음이니 벌과 나비가 십일월까지 있어요. 벌과 나비하고 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놀지 못합니다. 벌과 나비를 살가이 사귀지 못하면 시골에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시골에서 뱀을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해요. 시골에서 벌레를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합니다. 시골에서 밤을 무서워해도 지내지 못하지요.


  가만히 보면, 시골에서는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도깨비를 무서워할 일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어요. 다만 한 가지는 무서워할 만해요. 무엇이냐 하면 농약입니다. 모든 목숨을 다 죽이는 농약 한 가지만큼은 무서워할 만합니다.





.. “비가 와도 괜찮아. 나에게는 비를 피할 수 있는 멋진 집이 있으니까.” ..  (6쪽)



  하야시 아키코 님 그림하고 소야 키요시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숲 속의 나뭇잎집》(한림출판사,1999)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집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혼자서 신나게 노는 ‘나뭇잎집’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아끼고 사랑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아이는 마당에서도 놀고 나뭇잎집에서도 놀며 보금자리에서도 놉니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걱정하지 않고 놉니다. 아이는 어디에서나 푸른 숨결을 마시면서 놀아요. 풀빛을 먹고 꽃내음을 마십니다. 하늘빛을 먹고 흙빛을 마십니다.



.. “비가 그쳤어. 이제 엄마가 기다리는 집으로 모두 돌아가자.” ..  (24쪽)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안 갇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흙을 만지고 풀을 뜯으며 꽃을 아끼면서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들어선 뒤에도 교과서와 문제집만 옆구리에 끼지 말고, 들꽃으로 목걸이를 하고 팔찌를 하며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들피리를 부르고 바람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한테 대학교는 대수롭지 않아요. 대학교에 가도 되고 안 가도 됩니다.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어도 되고, 돈 안 벌며 시골에서 흙을 만져도 돼요. 아이들이 저마다 스스로 삶을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마음씨를 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제 보금자리를 아끼고, 우리 마을을 아끼며, 이 지구별을 아끼는 따사로운 사랑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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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 나의 서울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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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8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담으면

― 북촌

 한정식 사진·글

 눈빛 펴냄, 2010.4.5.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담으면 즐겁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내 보금자리란 무엇인가요. 즐겁게 살아가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꿈을 키우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이야기를 속삭이는 곳이 보금자리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쉬고 지내는 곳은 ‘집’입니다. 집에서 사랑과 꿈이 숨쉬도록 한다면 ‘보금자리’입니다. 이와 달리 ‘주거지’나 ‘주소지’는 잠을 자려고 하는 곳이나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곳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부동산’이 될 수 있고 ‘아파트 동호 수’가 되기도 해요.


  집을 사진으로 찍을 때와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때조차 느낌과 마음과 생각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주거지와 주소지를 사진으로 찍으면 어떤 느낌과 마음과 생각이 될까요. 부동산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파트 동호 수를 사진으로 찍으면?


  1937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한정식 님이 선보인 사진책 《북촌》(눈빛,2010)이 있습니다. 1937년에 태어났으나 열 살 나이라면 1947년이요, 여덟 살 나이에 해방을 맞이했고, 열세 살에 한국전쟁을 만났습니다. 열여섯 살에 전쟁이 끝났고, 스무 살은 1957년입니다.




  한정식 님은 사진책 《북촌》에서 “모두들 공해와 닳은 인심을 들먹이며 시골과 자연을 예찬하지만 내게 있어서 서울은 내 시골이요, 내 자연이다 … 내 어린 날의 서울은 납작했다 … 내 어린 날의 서울 골목은 좁고 길었다. 놀아도 놀아도 해가 지지 않아, 엄마나 조르려고 담장을 손으로 훑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골목은 얼마나 길었던지. 밤엔 외등도 없어, 어두워서 집에 들어가려면 그 기나긴 골목 어느 모퉁이에 도깨비라도 앉아 기다릴 것만 같아(11∼1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옳습니다. 1990년대 서울이 아닌, 또 1980년대 서울이 아닌, 게다가 2000년대나 2010년대 서울이 아닌 1930∼40년대 서울은 서울이라기보다 시골이랄 수 있어요. 게다가 1940∼50년대 서울은 우물물을 긷고 물장수가 다니며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던 서울입니다. 그무렵에도 행정수도 서울은 여느 시골보다 컸겠지요. 그러나, 그무렵 행정수도 서울은 들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나부끼며 들꽃이 피던 서울입니다.


  한정식 님은 “나는 기록성에 매달리기보다는 예술성에 기울었다. 내 기질 탓이었다. 귀국 후의 첫 개인전도 기록성과는 인연이 먼 〈나무〉였다. 그 전시에 이명동 선생과 함께 오셨던 임 선생이 역시 이명동 선생과 함께 낙담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눈길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5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하는 한정식 님은 왜 ‘나무’를 사진으로 찍었을까요. 그리고, ‘나무’를 찍는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예술’일까요.


  여느 보금자리를 찍는 사진은 무엇일까요. ‘기록’일까요, ‘예술’일까요. 여느 골목동네를 찍는 사진은 또 무엇이라 해야 할까요. ‘기록’일까요, ‘예술’일까요. 한정식 님이 선보인 《북촌》은 ‘기록을 한 책’일까요, ‘예술을 보여주는 책’일까요.




  한정식 님은 어린 날 “언젠가는 학교에 늦어 또 지각했다고 담임선생님께 꾸중 들을 게 뻔해서, 아예 학교를 집어치우고 감투바위에 올라앉아 놀다가 어머니가 정성껏 싸 준 도시락 까먹고 학교 끝날 때쯤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요새는 학교에서 급식을 하니 도시락이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도시락을 몰래 까먹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도시락을 들고 학교를 땡땡이친 뒤 나들이를 다닐 수 없습니다.


  한정식 님이 찍은 사진으로 그러모은 《북촌》에는 한정식 님이 누린 어린 나날 이야기가 고스란히 흐릅니다. 어릴 적에 본 바위 빛깔이 흐르고, 어릴 적에 바라본 하늘과 땅과 이웃집과 동무 얼굴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사진책 《북촌》은 사진책입니다. 사진을 찍어서 엮은 책이니 사진책입니다. 이 사진책은 기록물이 아니고 예술품이 아닙니다. 사진책입니다. 왜냐하면, 가회동이든 사직동이든 ‘사라진 모습’을 찍은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로 넘어선 오늘날 돌아보면 ‘사라진 모습’이겠으나, 한정식 님이 골목을 거닐던 그때에는 ‘그곳에 고스란히 있는 모습’이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동네였고, 사람이 사랑을 속삭이는 골목이었습니다.


  어쩌면,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기록이 되도록 하려는 뜻에서 사진을 찍었을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 내자동 근처를 지나며 잠시 사직공원 쪽으로 눈길을 돌리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내수동, 그 납작하고 아담하던 내수동 일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거기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100쪽).”와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북촌》은 여러모로 기록물로 여길 만합니다. 그러면, 참말 《북촌》은 기록물로 바라보면 될 책일까 궁금합니다. 이 책을 기록물로만 바라보면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한정식 님은 “그들이 서울에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복잡한 교통에 오염된 공기 탓도 있겠지만, 실은 여기 서울에 그들의 살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탓이리라. 서울 말씨나 말투도 그들의 입에 밴 사투리가 아니고, 들어서는 골목길이 발길에 익숙지 않으니 수십 년을 살아도 서울은 제 고향이 아니요(57쪽).” 하고 이야기해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사진입니다. 글은 글입니다. 사랑은 사랑입니다. 평화는 평화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사진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기를 써서 예술을 한다면 예술이지 사진이 아닙니다. 연필로 글을 쓸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만화를 그릴 수 있어요. 연필을 쥐었기에 모두 글이 아니고 그림이 아니며 만화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하려고 만들어요.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릅니다. 평화는 평화가 부릅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킵니다. 서로를 사랑하려면 사랑을 해야지 돈을 건넬 일이 아닙니다. 돈으로는 사랑을 못합니다. 돈으로는 돈을 나눌 뿐입니다. 금반지를 끼워야 사랑이 아니고, 구리반지를 끼우니 사랑이 아니라 하지 않습니다. 아무 반지가 없으니 사랑이란 말을 못 쓸까요?


  기록은 언제나 기록일 뿐이고, 예술은 언제나 예술일 뿐입니다. 더 낫지도 않고 더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입니다. 골목은 언제나 골목이요, 서울은 언제나 서울입니다. 사람들이 살가이 어깨동무하는 보금자리는 언제나 보금자리다운 빛과 숨결이 흘러요.


  “낙산사처럼 완전히 소실된 뒤에도 옛 모습을 찾아 주는 것만이 전통의 올바른 계승일까. 숭례문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아랫도리가 남았고 숭례문 현판이 용케 살았다고 해서 그것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이 전통 계승의 유일한 길, 최선의 길이었을까, 의문이 든다(115쪽).”와 같은 이야기를 찬찬히 읽으며 사진책 《북촌》을 덮습니다. 낙산사는 낙산사이고, 숭례문은 숭례문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대로 느끼거나 깨닫지 않기에 ‘문화재 되살리기’를 합니다. 낙산사와 숭례문은 ‘문화재’일까요?


  국립공원은 무엇일까요.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국립공원일까요, 지리산이나 다도해일까요. 국립공원이기 앞서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국립공원이 된 뒤 지리산이나 다도해는 어떤 곳인가요. 지리산은 늘 지리산이고, 다도해는 늘 다도해예요.


  우리는 무너진 지리산을 되돌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망가진 다도해를 되찾지 못합니다. 새로운 지리산을 가꾸고, 새롭게 다도해를 보살핍니다.




  아마 ‘북촌’이라는 곳은 한정식 님이 처음 태어나 자라던 때 모습을 거의 다 잃었으리라 느낍니다. 게다가 북촌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아이가 있으면, 이 아이가 오늘날 돌아보아도 북촌은 예전 모습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2010년대에 북촌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 뒤에는 무엇을 느낄 만할까요.


  아스라한 옛 이야기를 되찾으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이 더 뜻있거나 값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러한 사진일 뿐입니다. 추억을 바라면 추억을 찍고, 오늘을 바라면 오늘을 찍어요. 이야기를 바라면 이야기를 찍고, 사랑을 바라면 사랑을 찍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내 보금자리를 누리는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내 보금자리처럼 내 이웃 보금자리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우리가 함께 누리는 즐거움과 사랑스러움을 사진으로 보여줍니다.


  사진이 사진인 까닭은, 사진은 우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이야기가 솔솔 피어나는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사진기로는 기록물을 만들 수 있어요. 사진기로는 예술품을 빚을 수 있어요. 그리고, 사진기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4347.4.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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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정거장 Happy Station - I Love Madagascar
신미식 지음 / 푸른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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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66



즐겁게 찍는 사진은

― 행복정거장

 신미식 사진·글

 푸른솔 펴냄, 2008.11.22.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될까요? 사진을 배우려는 분들은 으레 이렇게 물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을 까닭은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이라는 낱말을 바꾸면 되거든요. 자, 다시 물을게요. 어떻게 살면 될까요? 사랑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떤 일을 하면 될까요? 일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이와 어떻게 살면 될까요?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면 될까요?


  마음이 있다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쉽게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있다면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는 ‘삶을 어떻게 꾸리느냐’와 똑같은 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사진을 찍는 까닭’과 ‘아이를 사랑하는 까닭’이 서로 같은 줄 느끼지 못합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푸른솔,2008)을 내놓은 신미식 님은 “마다가스카르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행복이었다.” 하고 말합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은 사진책이면서 사진공책입니다. 신미식 님이 찍은 사진을 담은 책이면서, 사이사이 수첩이나 공책으로 쓸 수 있도록 빈자리가 많습니다.


  사진책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머리말에만 짤막하게 적은 글을 읽어 봅니다. 신미식 님은 “내가 이 나라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난 이 나라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신미식 님은 마다가스카르가 신미식 님한테 ‘나 너 사랑해’ 하고 읊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마음으로 들은 노래를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서 마음으로 책을 엮습니다.




  신미식 님으로서는 “이제는 어느덧 고향과도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 땅과 사람들. 그리움을 두고 떠나온 것은 사람만은 아니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들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나만의 보물이다. 자칫 세상에 등장하지 못할 뻔한 아이들과 아름다운 풍광들을 마음껏 넣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하고 마무리짓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서울 북촌이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부산 광복동이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라다크가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핀란드가 좋습니다. 누군가한테는 마다가스카르가 좋습니다.


  사진책을 덮고 문득 생각에 잠깁니다. 한국을 좋다고 말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한국땅 구석구석을 두 다리로 천천히 밟으면서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풍광이나 풍경이 아닌 삶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한국을 아름답게 노래할 사진가는 있을까요. 그림쟁이 고흐 님이 감자 먹는 시골사람을 그림으로 담았듯이, 시골에서 흙을 가꾸며 아끼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을 분이 있을까요.


  아무렴, 틀림없이 있습니다. 〈전라도닷컴〉이라는 잡지는 오로지 시골 할매와 할배를 사진과 글로 보여줍니다.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며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할매와 할배가 늘 주인공이 되어 잡지를 가득 채웁니다. 한국에서 이런 잡지는 아직 없습니다. 농협에서 내는 잡지나 신문에서도 농사꾼이 주인공이 되지 않아요. 농림수산부에서 내는 기관지나 사외보에서는 농사꾼이 주인공이 될까요? 된 적이 있을까요?





  즐겁게 찍는 사진은 이웃한테 즐거운 웃음을 베풉니다. 즐겁게 찍는 사진은 사진쟁이 스스로 아름답게 웃는 씨앗을 베풉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즐겁게 살 때에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찍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즐겁게 찍으면 됩니다. 사진 역사에 이름이 남아야 하지 않습니다. 비평가나 평론가가 눈여겨보아 주어야 하지 않아요. 사진잡지에 실려야 하지 않아요. 사진은 그저 즐겁게 찍을 뿐입니다. 삶은 그저 즐겁게 가꿀 뿐입니다. 우리 삶이 신문에 나거나 방송에 나거나 책으로 나와야 하지 않아요. 우리 삶은 늘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사진으로 찍든 안 찍든 언제나 즐거운 하루입니다. 사진으로 돌아보지 않더라도, 글로 되새기지 않더라도, 그림으로 다시 보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빛을 뽐냅니다. 사진책 《행복정거장》은 신미식 님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담습니다. 작고 수수한 이야기가 가만히 흐릅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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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친구 웅진 우리그림책 1
한태희 지음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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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0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 로봇 친구

 한태희 글·그림

 웅진주니어 펴냄, 2005.10.20.



  어른들이 죽음수렁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살짝 벗어나 배를 타고 나들이를 가던 길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배에 갇힌 채 그대로 바닷속에 잠겼고,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배에서 빠져나와 살아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고운 숨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참으로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바닷속에 가라앉아 죽은 아이들이 죽지 않았다면,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렸을까요. 바닷속에 가라앉지 않고 살아난 아이들 앞에는 무엇이 이 아이들을 기다릴까요.



.. 나에게는 로봇 친구가 있습니다 ..  (2쪽)



  아이들은 며칠쯤 학교를 벗어나 뛰놀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작 며칠을 뛰놀 뿐, 다시 학교에 갇힌 채 입시지옥에 허덕여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기 앞서도 어머니 뱃속에서 영어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태어나서 뒤집고 볼볼 길 적에 영어 노래를 다시 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두 발로 서서 뛰놀 무렵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들어가서 또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영어 낱말을 배워야 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뛰놀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빈터를 모두 주차장이 빼앗습니다. 시골에서는 빈터 하나 없이 모조리 논이나 밭으로 일구는데, 빈터, 그러니까 수풀이 있으면 풀이 자라지 못하도록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또는 비닐쓰레기를 태우는 자리로 빈터를 삼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신나게 뛰놀지 못합니다. 그나마 시골 아이는 웬만하면 한층집에서 살지만 도시 아이는 층집에서 살아요. 층을 이룬 아파트에서는 뛰지도 달리지도 구르지도 노래하지도 못합니다. 피아노를 신나게 칠 수 없고 피리를 마음껏 불 수 없어요.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아이들을 기다리는 한 가지는 입시지옥입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오면 취업지옥이 기다립니다. 취업지옥을 빠져나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이들 앞에는 온통 지옥입니다. 하늘나라 아닌 지옥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 지옥만 만들어 놓고는 밀어넣습니다. 아이들은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목숨이 아닙니다.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나 외롭습니다. 쓸쓸합니다.



.. 목요일, 나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큰고시로 말했습니다. “로봇, 꼭꼭 같이 놀자.” 하지만 로봇은 피자를 엄청나게 많이 만드느라 바빴습니다 ..  (18∼21쪽)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돌멩이를 넣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주머니에 모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콧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이마에 땟국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손톱 밑에 때가 끼지 않습니다. 놀지 못하니까요. 놀 수 없으니까요.


  어릴 적에 놀지 못하는 아이들이 푸른 나날 누리는 때에도 놀지 못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친들 놀지 못합니다. 대학교까지 마쳤어도 놀 겨를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놀이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얼싸안고 춤추거나 노래할 줄 모릅니다. 배운 적이 없거든요. 아이들은 어른들마냥 담배를 태우고 술을 마십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흉내내를 내느라 바빠 일찌감치 입술을 박고 살갗을 부빕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꽁무니를 좇느라 동무를 주먹으로 괴롭히고 등수와 서열과 계급과 신분과 재산으로 가릅니다.



.. 로봇은 한참을 자고, 자고, 또 잤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늦게서야 일어났습니다. “우리, 같이 놀자.” 로봇은 나를 보며 말했습니다 ..  (30쪽)



  한태희 님이 빚은 그림책 《로봇 친구》(웅진주니어,2005)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로봇 친구》에는 ‘로봇 친구’가 나옵니다. 그런데, 로봇은 ‘친구’라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놀지 못합니다. 놀 겨를이 없습니다. 로봇을 친구로 둔 ‘아이’도 놀 겨를이 없습니다. 이 공부를 하고 저 숙제를 하며 그 유치원(또는 학교)에 가야 합니다. 이레 가운데 일요일 늦은낮에야 비로소 같이 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와 로봇은 무엇을 하며 놀까요. 무엇을 하며 놀 수 있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한테 어떤 놀이를 물려주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서로 동무 삼아 즐겁게 놀도록 맑고 밝으며 너른 빈터를 내주는가요. 아이들이 흙과 모래와 돌을 만지도록 해 주는가요. 아이들이 냇가에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할 수 있는가요. 오늘날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놀이를 잊거나 잃으면서 아이한테 아무런 놀이를 안 물려주거나 못 이어주지 않나요. 오직 입시지옥으로 내몰고, 그예 취업지옥에 디밀면서 아이들을 들볶거나 괴롭히지 않나요.


  같이 놀 때에 즐겁습니다. 같이 웃고 노래할 때에 즐겁습니다. 레크레이션이 아닌 놀이입니다. 여가나 취미가 아닌 놀이입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놀이입니다. 온몸으로 놀고 온마음으로 놉니다. 사랑스레 어깨동무를 하고 기쁘게 손을 잡습니다.


  길거리를 보셔요. 도시에도 시골에도 놀이터란 없습니다. 들어갈 수 없는 잔디밭이 있는 공원이 있을는지 모르고, 어르신 운동기구를 몇 놓은 손바닥만 한 쉼터는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신나게 땀흘리며 뛰놀 빈터는 이 나라 어디에도 없습니다. 4347.4.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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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 언니 - 권정생 소년소설, 개정판 창비아동문고 14
권정생 지음, 이철수 그림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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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님 문학을

아이도 어른도

즐겁고 아름답게 읽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밑힘으로

삼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


어린이책 읽는 삶 51



“나 대신 아파 달라.”
― 몽실 언니
 권정생 글
 이철수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1984.4.25.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입니다. 비는 사월에도 오월에도 내립니다. 유월에도 칠월에도 내리겠지요. 지난해를 돌이키면, 지난해 여름에 고흥에는 비가 거의 안 내렸습니다. 골짜기에는 물줄기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나 고흥은 예부터 물이 모자란 곳이었기에 그동안 둠벙이나 못을 무척 많이 팠어요.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지난여름에 물이 모자란 곳은 드물었습니다. 다만, 못이나 둠벙을 파지 않고 새로 일구는 비탈논이나 비탈밭이었으면 모두 메말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여름에 비가 달포 남짓 한 방울조차 안 내리니, 마을마다 큰일이 납니다. 그동안 이 나라 시골은 관행논으로 바뀌어 비료와 농약을 쓰는 농사짓기를 합니다. 논둑과 밭둑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논도랑도 시멘트도랑으로 바꿉니다. 이제 시골 논자락에서 미꾸라지를 잡지 못하고, 시골에서 반딧불이를 찾기 어렵습니다. 반딧불이가 있자면 다슬기가 살아야 하는데, 다슬기가 살 수 없도록 시멘트도랑으로 바꾸었어요. 게다가 시멘트도랑은 깊어 개구리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물에 잠겨 죽습니다. 때 없이 농약을 치니 논에 논거미가 없어요. 논거미가 없을 뿐 아니라, 밭자락에 벌이나 나비가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비닐집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이 손으로 하나하나 꽃가루받이를 시켜요. 벌이나 나비를 부르지 않고, 개미를 부르지도 않습니다.

  벌이나 나비가 없고 풀벌레도 자취를 감춥니다. 자취를 감출밖에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모든 벌레가 살 수 없는 터전으로 만들었거든요. 이리하여 새들은 애벌레를 잡아먹을 수 없습니다. 애벌레를 잡아먹으며 생태계 균형을 맞추던 새이지만, 이제는 곡식을 쪼아먹고, 밭에 심은 씨앗을 캐먹습니다.


.. 만주나 일본 같은 외국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줄지어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사람들에게, 기대했던 조국의 품은 너무나도 초라하고 쌀쌀했다. 그래서 말만으로 해방된 조국에 빈몸으로 찾아온 그들은 살아갈 길이 없었다 … 밀양댁의 울음소리는 골짜기에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고개 위에서 몽실은 밀양댁의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눈자위가 씀벅거려지고 코가 찡하게 더워져 왔다. 몽실은 입슬을 꼭 깨물었다. “엄마 잘못이 아니야, 엄마 잘못이 아니야…….” … 가물가물한 남폿불을 걸어 놓고 모두가 열심이었다. 배운다는 것은 어머니의 젖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하고 몸을 살찌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머리가 깨고 생각이 자라게 한다 ..  (7, 44, 68쪽)


  지난날에는 시골이든 도시이든 제비집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제비는 사람이 사는 집에다가 둥지를 틉니다. 처마 밑을 좋아해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요. 그러면, 둥지를 드나들며 똥을 누지요. 새끼 제비가 똥을 누도록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도록 해서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 똥구멍을 살몃살몃 쫍니다. 그러면 새끼 제비는 꽁지를 둥지 밖으로 내밀면서 똥을 영차 하고 누고, 어미 제비는 새끼 제비가 똥구멍으로 내보낸 똥을 부리로 잡아채서 바닥으로 떨구어요.

  다른 새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지 못해서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새도 이처럼 어미 새가 새끼 새 꽁지를 살몃살몃 쪼아 똥이 나오도록 하지 싶어요. 고양이도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똥구멍을 핥으면서 똥이 나오도록 해 줍니다.

  그러니까, 처마 밑 제비집은 날마다 똥벼락입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장대로 제비집을 허뭅니다. 이때에 암제비가 알을 품었다면 그만 알이 다 깨져요. 어린 제비가 아직 자랄 때라면, 어린 제비는 아직 날갯짓을 못하는 채 떨어져 죽습니다.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인천에서도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은 으레 학교 건물 처마 밑 제비집을 찾아다니며 떨구었어요. 긴 장대를 마련해서 제비집이란 제비집은 모두 치웠습니다.

  둥지와 새끼를 잃은 제비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시 씩씩하게 흙과 지푸라기를 물어다가 새 둥지를 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새 둥지를 지어서 다시 알을 까면 어른들은 또 제비집을 헐어요. 몇 차례 되풀이합니다. 이리하여, 중국 강남에서 한국으로 찾아오던 제비들은 그만 새끼를 못 낳은 채 슬픈 날갯짓으로 태평양 건너 중국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 냉이꽃이 하얗게 자북자북 피었다. 골목길은 너무도 환하고 따뜻하다 … 이 산골 마을 이름은 댓골이라 했다. 뒷산 골짜기로 보리둑나무가 무성하여 달밤엔 은빛 잎사귀가 아름다왔다 … 아버지 정씨는 주인집에서 세 끼 밥을 먹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몽실이 혼자 밥을 지어 먹었다. 산나물을 뜯어다가 죽도 끓였다. 누더기 같은 아버지의 옷을 깨끗이 빨고 집안 청소도 했다 … 북촌댁은 다소곳이 말이 없는 여자였다. 몸이 약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따금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나타나곤 했다. 가난하고 적막한 집안 살림을 알뜰하게 매만졌다. 몽실의 해진 저고리를 예쁘게 기워 주고 아버지의 고무신도 자주 깨끗이 씻어 주었다 ..  (9, 18∼19, 52, 55쪽)


  비가 오는 아침에 두 아이를 씻깁니다. 두 아이를 씻기고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나는 빨래기계를 안 쓰고 내 두 손을 씁니다. 빨래기계 없이 스무 해 넘게 빨래를 하며 살기도 했지만, 두 손으로 아이들 옷가지를 복복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 몸과 넋을 헤아립니다. 이 작은 옷을 입는단 말이지? 이 작은 옷이 이렇게 흙투성이 되도록 뛰놀았단 말이지?

  작은 옷을 비비고 헹구면서 아이들을 어떻게 아끼고 살림을 어떻게 가꿀 때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합니다. 다 씻은 아이들은 저희끼리 재잘거리고 놉니다. 어느새 네 살이 된 작은아이는 일곱 살 누나가 읊는 말을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누나가 노래를 부르면 저도 부르겠다면서 똑같이 따라합니다.

  두 아이가 노는 소리를 한귀로 들으며 빨래를 하다가, 우리 집 씻는방 바깥문 모기그물을 문득 봅니다. 지푸라기 같아 보이는 무언가 모기그물에 있기에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어, 지푸라기가 아닙니다. 사마귀입니다. 아직 사월인데 무슨 사마귀인가 하고 입김을 호 붑니다. 저런. 지난가을께 이곳에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한 채 그대로 말라죽은 사마귀인 듯합니다. 넌 어쩌다가 이 모기그물 한쪽에 갇혀서 그만 목숨을 잃었니. 이 모기그물 언저리에 모기가 많이 앉으니 모기를 잡으려다가 그만 발이 끼어서 빠져나가지 못했니.

  시골집을 여러 날 비우고 돌아오면,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굶거나 말라서 죽은 벌레를 곧잘 봅니다. 용케 어느 빈틈으로 들어온 듯한데 나갈 구멍을 못 찾은 셈입니다. 작은 새는 빈집이나 빈 건물에 살그마니 들어가서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잘못 들어갔다가 나올 구멍을 못 찾아서 그만 빈집이나 빈 건물에 갇혀서 죽는 새도 있습니다. 쥐약 먹고 죽은 쥐를 잡아먹고는 배앓이를 하고 죽는 들고양이가 있습니다.

  시골이라는 데는 사람을 살리는 모든 먹을거리를 일구어 거두는 곳이지만, 농약바람이 분 뒤 시골은 삶터이기보다는 죽음터로 흐르기 일쑤입니다. 지난여름에 달포 남짓 비가 안 오면서 논마다 멸구가 많이 생기니 마을마다 농약을 날마다 엄청나게 뿌렸는데, 이때에 온 마을 제비와 참새와 딱새가 참 많이 죽었습니다. 새들은 농약을 맞아서도 죽고, 농약 묻은 곡식을 쪼아먹다가 죽으며, 농약 맞아 해롱거리는 애벌레나 나비나 잠자리를 잡아먹다가 죽습니다.


.. 자주 어머니와 싸우긴 했지만, 역시 몽실의 진짜 아버지는 한없이 가난한 그 아버지뿐이다 … 할머니는 몽실에게 수다스러울이만큼 심부름을 시켰다. “몽실아, 애기 기저귀 빨아 오너라.” 몽실이는 기저귀를 빨았다. “설거지 해라.” “마루를 훔쳐라.” “방을 쓸어라.” 이제 여덟 살인 몽실은 시키는 것을 싫다고도 할 수 없었다 … 맑은 개울물에 기저귀랑 저고리랑 담그어 놓고 방망이로 토닥토닥 두들겨 빤다. 몽실이와 순덕은 딴 아이들보다 빨래도 잘한다 … 집에 와서 몽실은 가지고 온 쑥떡을 북촌댁 앞에 내밀었다. “이건 떡 아니니? 어디서 난 거야?” “남주네 거여요.” “너 먹잖고 왜 갖고 오니?” “난 먹었어요. 그러니 어머니 잡수셔요.” … 어쩐지 몽실은 밀양댁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기를 가졌어도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을 수 없는 북촌댁은 왜 굳이 이런 곳에 시집을 왔을까? 그러고는 그 가난을 이렇게 견디고 있을까? ..  (12, 21, 33, 78, 79쪽)




  지난 2007년 봄에 권정생 님이 죽었습니다. 아프디아픈 몸으로 살다가 그예 죽었습니다. 권정생 님은 안동 조탑마을 조그마한 흙집에서 지낼 적에 이녁을 찾아온 손님이나 이웃한테 늘 “나보고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하는 건, 죽으라는 이야기보다 더 나쁜 이야기기예요. 나 대신 아파 주면 좋겠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권정생 님더러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요.’ 하고 안부를 여쭈던 이들은 머쓱해 합니다. 뒷통수를 긁습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던 일이라고 느껴요. 권정생 님은 아파서 죽지 못하던 몸이었고, 권정생 님을 찾아온 이들은 안 아프고 죽음을 생각하는 일이 없는 몸이니까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 마음이나 몸을 얼마나 알까요.

  권정생 님은 허리에 구멍을 뚫어 노란 호스를 끼운 채 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산다.”면서 “이렇게 아픈데 참 죽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프다거나 죽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손님들이 아뭇소리를 못 합니다. 바람이 싸합니다. 그러면 권정생 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돌립니다. “저거 저 풀 아나? 한 번 뜯어 봐.” 하고 묻습니다. 사람들은 권정생 님이 가리키는 풀을 잘 알아보지 못합니다. “뭐라더라, 요즘에는 허브라고 하던가? 다들 그런 풀을 꽃집에서 사다가 화분에 두는가 보더만, 우리 나라에도 옛날부터 향긋한 풀이 있었어. 박하라고. 얘가 박하풀이야.” 하면서 손수 박하풀을 뜯어서 코에 대 보라고 건넵니다. 박하풀 한 줌을 건네받아 코에 대다가 입에 넣어 살짝 씹습니다. 냄새로도 맛으로도 참말 박하풀 냄새가 그윽하며 좋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어지르고 사느냐고 하지만, 아픈데 어떻게 치우겠어요. 누가 와서 집을 치워 준다면 하지 말라고 말려. 다 어지르고 사는 듯이 보이지만, 아파서 드러누울 적에 손에 닿는 자리에다가 물건을 놓았으니 하나도 건드리면 안 돼. 다 그 자리에 있어야 찾아서 쓸 수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무엇이고 저것은 어느 때에 쓰는 무엇이라고 알려줍니다. 한번은 빨랫줄을 가리키면서 “저기 봐요. 저것은 전기 공사 하는 이들이 버리고 간 건데, 굵은 전깃줄이 하도 아깝다 싶어서 살짝 휘어 놓으니까 빨래집게가 돼. 플라스틱으로 만든 빨래집게는 비 오고 해 나면 삭는데, 굵은 전깃줄 조각은 비가 오든 해가 나든 그대로 두면 돼. 평생 쓸 수 있는 빨래집게야. 내 발명품이야.” 하고 이야기합니다.


.. “누가 그걸 곧이듣니? 할아버지가 잘못한 거지. 아무리 자식이지만 빨갱이한테 떡을 해 주고 닭을 잡아 주다니, 그건 백 번 천 번 잘못한 거야.” “아버지!” 몽실이 정씨 얼굴을 쳐다봤다. 어두운 움막 속에서도 그걸 알 수 있었다. “…… 그렇지 않아요. 빨갱이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원수가 될 수 없어요. 나도 우리 아버지가 빨갱이가 되어 집을 나갔다면 역시 떡 해 드리고 닭 잡아 드릴 거여요.” “…….” 정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말이 맞죠?” 정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어머니, 이젠 울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어머니도 입술을 깨물어요. 저하고 함께 열심히 살아요. 절대 울지 않고 어머니를 돕겠어요.” 그날 이후 몽실은 딴사람처럼 되었다. 울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61, 84쪽)


  2004년과 2005년에 한두 차례씩 조탑마을에 찾아간 적 있습니다. 나는 조탑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으나, 조탑마을에 찾아가는 분이 함께 찾아뵙자고 해서 여러 차례 인사를 여쭈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는 권정생 님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 일을 하려고 찾아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권정생 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이 둘레를 오가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러면서 권정생 님이 다른 분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를 머릿속에 가만히 담았습니다.

  어느 날에는 “동화 몇 편 썼다고, 그거 대단하다고 보면 안 돼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여러 차례 들려주었습니다. 권정생 님이 쓴 동화 가운데 여러 권이 널리 사랑받아 꽤 많이 팔린다고 하지요. 그러나 권정생 님은 제발 그런 이름을 내려놓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온누리에 대단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스스로 작게 살고 작은 이웃을 언제나 어깨동무하면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상을 몇 가지 받는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국회의원으로 몇 번 뽑힌다거나 대통령이 되었대서 대단하지 않아요. 시장이나 군수가 되면 대단할까요? 내가 쓴 책이 백만 권이나 천만 권이 팔리면 대단할까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밥을 먹습니다. 밥을 안 먹으면 굶겠지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하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재채기를 해요. 숲이 우거져서 바람이 싱그럽고 맑으면 대통령도 어린이도 즐거워서 활짝 웃어요. 대통령도 어린이도 해가 나지 않으면 추워요. 해가 나서 햇볕이 골고루 비출 적에 비로소 지구별이 따스해요. 바람이 숲을 따라 불면서 도시와 시골을 살살 어루만져야 모든 숨결이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어쩌면, 권정생 님은 너무 아픈 몸이었기에 여러 가지를 남보다 일찍 깨달았는지 몰라요. 죽어서 다시 태어날 수 있으면 아프지 않고 튼튼한 몸으로 태어나 예쁜 각시를 만나서 오붓하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시는 마음을 알겠어요. 어느 날에는 “나더러 글이 좋다고 써 달라고 하는 곳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남들 앞에서 말한다고 해서 내 몸이 좋지 않아요. 내가 이렇게 손님을 만나 30분 말하면, 손님이 가고 난 다음 한나절 드러누워서 앓아야 해. 그렇게 앓아누워 끙끙거리다가 원고지에 한 줄 쓰고, 또 앓으며 끙끙거리다가 한 줄 쓰고,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쓰기가 힘들어.” 하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좀 안 아프다 싶어서 원고지 몇 장을 썼더니, 바로 이튿날에 꼼짝도 못하고 하루 종일 드러눕기만 했어.” 글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는 글은 어떻게 태어날까요. 우리는 동화책 《몽실 언니》를 하루, 아니 몇 시간, 아니 한 시간만에라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몽실 언니》라는 책 하나만큼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앓아눕고 얼마나 끙끙거렸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요.




.. 몽실은 벌떡 일어나 앉아 인민군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인민군 여자는 몹시 슬픈 표정이었다. “왜 그러니?”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여요? 그리고 누가 더 착한 거여요?” “…….”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여요?” 인민군 여자가 누운 채 말했다.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다 착하다.” … “몽실아.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면 나쁘게 된단다.” … 의용군 아이가 어깨에 멘 총을 벗겼다. 그리곤 돌아서서 총구멍을 겨누었다. “왜? 넌 나 같은 아이도 죽일 줄 아니?” “그래, 죽일 줄 안다.” 몽실의 눈에 파아랗게 불길이 올랐다. “죽여 봐! 어서 죽여 봐!” “…….” 의용군 아이와 몽실의 눈이 마주쳐서 움직일 줄 몰랐다. 둘은 그렇게 마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용군 아이가 고개를 떨구었다. “어머니이…….”  ..  (114, 122∼123쪽)


  동화책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 펴냄)는 1984년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나는 이 동화책을 1984년에 읽지 못했습니다. 1984년은 나로서는 국민학교 3학년입니다. 내 아버지는 국민학교 교사였으니 아버지가 이 동화책을 알아보고 사 주실 만했지만, 내 아버지는 내가 국민학교를 마치기까지 동화책을 사 준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학급문고로 동화책을 사서 갖추셨을까요?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어버이가 교사로 일한다 하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이녁 아이한테 책을 읽히지는 않겠지요. 책을 읽히더라도 모든 ‘교사이자 어버이’가 아름다운 책을 추리거나 가리거나 골라서 읽히지는 않겠지요.

  나는 《몽실 언니》라는 동화책을 군대에 끌려가기 앞서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때까지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1994년 겨울에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에서 ‘1984년 첫판’으로 찍힌 낡은 동화책을 보았습니다. 낡은 판으로 만난 책이기에 절판이 된 책인지 꾸준히 사랑받는 책인지 몰랐습니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나온 동화책이네’ 하고 생각하며 사 둔 뒤, 군대에서 스물여섯 살을 살아내고 사회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이 책을 읽었습니다.


.. 별이 너무도 많이 나와서 하늘이 온통 꽃밭 같았다 … 몽실은 영원히 이 집에서 함께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겨울바람이 추웠지만 최씨집은 매우 따뜻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행복한지도 모른다 … 몽실의 눈에 물기가 젖고 있었다. 난남이도 그랬었다는 걸 알았다. 최씨집 아저씨 아주머니가 아무리 알뜰하게 보살펴 줘도 난남이는 어딘가 사랑에 굶주리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럼, 엄마는 어쨌어?” “엄마는 그냥 많이 아파서 돌아가셨단다.” “우리 엄마가 죽었어?” 난남이는 몽실이 잡고 있는 손을 그만 놓아 버리고 뒤로 돌아앉았다. 커다란 눈으로 바람벽을 줄곧 바라보는 사이에 눈물이 괴어 올랐다 굵은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  (116, 175, 182, 192쪽)


  어릴 적에 《몽실 언니》를 읽었으면 내 삶은 어떠했을까 궁금하곤 합니다. 우리 사회와 이웃과 시골과 마을과 정치와 교육과 문화를 더 슬기롭게 들여다보는 눈길을 틔울 수 있었을까요. 《몽실 언니》를 스물네 살에 읽었으니 외려 이 동화책이 들려주는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한결 차근차근 받아먹을 수 있었을까요.

  어릴 적에도 읽고 나이든 뒤에도 읽으며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을 수 있다면 참 아름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동화책을 모르는 채 산다 하더라도 내 삶이 안 아름다우리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나 스스로 아름답게 가꿀 때에 아름답습니다. 어떤 책 하나를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놀라운 스승을 만나서 배워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습니다.

  권정생 님은 아무한테서도 동화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 곁에는 이오덕 님이 있어 언제나 말동무가 되고 삶동무가 되며 길동무가 되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한길을 걸었어요. 그러나 이오덕 님은 권정생 님한테 ‘동화 작법’이나 ‘글쓰기 이론’을 한 차례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권정생 님은 그저 이녁이 태어나서 살아온 길을 가만히 더듬고 헤아리면서 피를 뱉으며 원고지를 채웠습니다. 원고지 한 장을 쓰고 피를 한 움큼 쏟고, 다시 원고지 한 장을 쓰며 피를 한 움큼 뱉았다고 해요.

  참말 어떤 기운이 권정생 님을 이끌어 글을 쓰도록 했을까요. 원고지 한 장을 30분에 걸쳐 겨우 마무리지으면 가슴에서 피가 끓어 울컥하고 나온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픈 몸이면 그저 드러누운 채 누군가 돌봐 주기를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 왜 아픈 몸을 자꾸 움직이며 살았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그토록 글을 썼을까요. 왜 아픈 몸을 아파 하면서 자꾸자꾸 새롭게 글을 쓰고 이웃들한테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까요.


.. “언니, 왜 안 먹고 가만 있어?” “아냐, 먹을게.” 몽실은 밥을 떠 입안에 넣었다. 떠넣으면서 이건 어느 집에서 얻은 것이고, 이건 또 누구네 집에서 얻은 것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 “난남아, 넌 아버지 모시고 집에 있거라. 언니 혼자서 밥 얻어 올게.” “응, 갔다 와.” 난남은 쉽게 대답했다. 어른들이 입는 해진 군복을 허리 밑까지 외투처럼 입은 몽실 언니가 깡통을 들고 집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난남은 자꾸만 슬퍼졌다 ..  (201, 222쪽)




  “이 문고리에 줄을 달았어. 누가 찾아오면 힘들어서 서지도 못해. 이렇게 문간에 앉아서 문고리를 붙잡아야 해. 그런데 문고리를 잡아도 힘들어. 그래서 한동안 문고리를 잡고, 힘들면 문고리에 매단 줄에 팔을 걸쳐. 이렇게 잡아야 앉아서 얘기할 수 있어.” 힘든 몸인데 곧잘 읍내 저잣거리에 마실을 가십니다. 힘겨운 몸이지만 아침에 밥을 끓입니다. 가끔 고등어를 사다가 굽기도 합니다. “내가 밥을 하루에 한 번만 해. 아침에 밥을 해서 밥통에서 숟가락으로 반을 갈라. 반은 아침에 먹고 반은 저녁에 먹어.” 권정생 님을 찾아온 손님이 빵 한 조각을 잘라 건넵니다. “얘, 정우야. 예전에 네 아버지(이오덕 님) 살아 계셨을 적에는 이런 것 못 먹었다. 이런 것 먹으면 나쁜 것 먹는다면서 꾸짖으셨어.”

  권정생 님은 하루하루 살면서 나이를 먹었고, 할아버지 나이까지 살았습니다. 1937년에 일본에서 태어나 2007년에 조용히 숨을 거두기까지 이녁이 낳은 아이는 없었으나, 이녁 둘레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를 이녁 아이로 여겼습니다. 아픈 몸으로 글을 쓴 힘은 바로 이 땅 모든 아이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리라 느낍니다. 아프기에 글을 쓰고, 아프기에 생각을 하며, 아프기에 하루하루 살아냈다고 느낍니다.

  동화책 《몽실 언니》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은 모두 아이들한테 동무가 되는 글입니다. 아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힘든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슬픈 아이한테 동무가 됩니다. 그리고, 안 아픈 아이와 안 힘든 아이와 안 슬픈 아이한테도 동무가 됩니다.

  모든 아이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기를 바라는 꿈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기를 바라는 넋으로 글을 썼다고 느낍니다.

  글이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입니다. 동화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입니다. 책은 무엇일까요. 삶을 사랑하는 빛을 가꾸는 숨결로 어깨를 겯고 함께 나아가는 슬기입니다.


.. 난남은 안네를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몽실이도, 죽은 금년이 아줌마도, 한국의 모든 여자들은 안네 같다고 생각했다 … 난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로 현관문 기둥에 기대어 서서 몽실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었다 ..  (269, 270쪽)


  동화책 《몽실 언니》에 나오는 몽실이는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친아버지도 새아버지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도 새어머니도 사랑합니다. 친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도 사랑합니다. 이북에서 내려온 앳된 군인도 사랑하고, 이남에서 올라가는 젊은 군인도 사랑합니다. 부산 길바닥에서 숨진 모든 이웃을 사랑합니다. 풀빵장수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몽실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뚜벅뚜벅 절름절름 걷습니다. 가파르고 메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습니다. 어쩌면 누구보다 아픈 몸이요 마음일 테지만, 몽실이는 씩씩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말 씩씩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꼭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몽실이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 한 가닥을 붙잡고 살아갑니다. 다리가 다쳐도, 배를 곪아도,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어도, 애틋한 동생하고 헤어져야 해도, 몽실이는 눈물 한 움큼을 삼키고 다시 일어섭니다. 권정생 님 스스로 피를 뱉고 다시 뱉으면서도 원고지와 연필을 놓지 않았듯이, 몽실이는 언제나 새롭게 일어나서 이 길을 걸었어요.

  나는 권정생 님이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 가운데 “나 대신 아파 달라.” 한 마디를 늘 가슴에 새깁니다. 아프게, 아프게, 이 말 한 마디를 새깁니다. 그리고, 동화책 《몽실언니》에 나오는 몽실이가 난남이한테 선물한 책 《안네의 일기》처럼, 몽실이도 안네도 이 땅 모든 어머니와 딸과 할머니는 모든 이웃과 숨결을 사랑하며 살았다고 느낍니다.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아픈 몸으로 새로 밥을 지어서 먹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끙끙 앓다가도 일어나 글을 한 줄 적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하늘을 우러러보고 별을 바라보며 박하풀 한 줌 뜯어서 이웃한테 건넬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사월 끝무렵, 비가 내리니 우리 집 처마 밑 제비집이 조용합니다. 빗물이 살짝살짝 들을 적에는 제비들이 바지런히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더니, 빗줄기가 굵으니 모두들 제비집에 가만히 옹크리면서 서로 깃을 부빕니다.

  사랑이에요. 사랑입니다. 오직 사랑입니다. 지구별을 밝히고 모든 보금자리에 숲내음이 감돌도록 북돋우는 힘은 사랑입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를 뿐이요, 평화를 바라는 이라면 사랑스럽게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4347.4.2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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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3-0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뵌 적이 있으시네요.
그토록 편찮으셨다니 가슴이 아파옵니다.
삶과 문학이 일치했던 작가라는 책소개 글에 목이 메입니다.
권정생님을 더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2016-03-03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0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