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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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72



그리운 사람을 보여주는 사진

―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임종진 글·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08.2.15.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기도 하다가, ‘달팽이사진골방’을 열어 사진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임종진 님이 2008년에 내놓은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랜덤하우스코리아,2008)를 읽습니다. 떠난 김광석 님을 담은 사진과 함께 김광석 님을 그리는 글을 엮은 책입니다. 떠난 이를 놓고 이렇게 사진과 글을 엮을 수 있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책이 너무 무겁다고 느낍니다. 300쪽을 조금 넘는 책인데 많이 무겁습니다. 펼쳐서 보기에도 그리 안 좋습니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이 이렇게 ‘무거운’ 사람이었던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봅니다. 엮음새도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사진 사이사이에 글을 넣은 엮음새라 할 수 있는데, 사진만 앞에 따로 그러모은 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을 그리는 글은 뒤쪽에 잔글씨로 묶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떠난 이를 그리는 사진은 ‘초점도 잘 맞추고 흔들리지 않고 빛도 잘 맞추어’야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 한 장이 있어 고마우면서 반갑습니다. 그예 사진 한 장을 바라보면서 애틋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글을 붙이는 사람이 만들어 주지 않아요. 이야기는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스스로 길어올립니다. 노래하던 김광석 님은 사진하는 임종진 님한테도 애틋하겠지요. 그런데, 이 애틋함을 책으로 묶는다고 한다면, 임종진 님 혼자 품은 애틋함을 보여주기만 할 수 없어요. 임종진 님이 늘 말하듯이 ‘소통’이란, ‘내 것을 보여주기’에 앞서 ‘너와 내가 한 자리에서 같은 눈길로 따순 사랑을 속삭일’ 때에 이룬다고 느낍니다.


  책을 ‘무겁게’ 만들려 했다면 판을 키우는 쪽이 나았을 테고, 여느 판짜임으로 사진을 앉히려 했으면 종이를 가볍게 하는 쪽이 나았으리라 느낍니다. 이도저도 아닌 판짜임으로 무겁기만 하다 보니,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임종진 님은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를 내놓으면서 “함께 나눈 작은 소통의 근거물이기도 한 필름들은 형이 삶을 멈춘 지난 1996년 1월 이후 오래도록 벽장에 들어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보낼 일이야 없지만, 그즈음 필름 안에 담긴 형의 얼굴을 다시 마주한다는 게 작지 않은 슬픔이기 때문입니다(5쪽).” 하고 말합니다. 아마 김광석 님 노래를 듣는 이들도 마음으로 슬픈 울림을 늘 느낄는지 몰라요. 그런데,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달라요. 김광석 님이 살아서 노래하던 때 노래를 듣던 어른이 아니라, 1990년대에 태어나거나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달라요. 2010년대에 태어나거나 2020년대에 태어날 아이들도 달라요. 이 아이들한테 김광석 님은 ‘꽤 먼 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저 노래로 만나는 이웃입니다.


  그리운 사람을 보여주는 사진은 어떤 빛이 될까요. 그리운 사람은 우리한테 어떤 넋이 될까요. 슬픔? 눈물? 기쁨? 웃음? 서운함? 고마움? 사랑? 미움? 무엇이 될까요.


  임종진 님은 “사진은 어떤 즐거움의 행위이고 또한 어떤 나눔의 형식을 통해 대상 자체와 소통의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첫 모델이 바로 광석이 형이었음을 이젠 스스로 인정합니다(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김광석 님 사진을 꺼내어 책으로 묶는 동안 슬픔을 말하지만, 어느덧 즐거움을 다시 말합니다.


  그래요. 슬픔과 즐거움은 남남이 아닙니다. 한몸입니다. 낮과 밤은 한몸입니다. 꽃과 열매는 한몸입니다. 풀과 나무는 한몸입니다. 비와 바람은 한몸입니다. 흙과 모래는 한몸입니다. 사람과 벌레는 한몸입니다. 하늘과 땅은 한몸입니다. 해와 달은 한몸입니다. 모든 숨결은 서로 한몸입니다.


  남남이란 없어요. 파리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개미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새가 없거나 개구리가 없으면 지구별이 어떻게 될까요. 사람이 없으면 지구별이 무너질 일이 없다고들 하는데, 사람만 있기를 바라는 현대문명은 지구별을 어떻게 하는가요. 사람도 지구별에서 아름다운 숨결 가운데 하나로 있으면서, 다른 숨결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광석 님이 부르는 노래가 슬프거나 아프다 하더라도 슬픔과 아픔이지만은 않습니다. 슬픔과 아픔이면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눈물이면서 웃음입니다. 거꾸로, 웃음이면서 눈물이에요. 언제나 한몸으로 움직이는 삶을 노래합니다. 늘 한마음이 되어 사랑하는 숨결을 노래합니다.


  임종진 님은 “그는 공연 때마다 자주 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종종 하늘 향한 그의 눈빛이 어느 곳으로 고이는지 궁금했습니다(7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임종진 님은 김광석 님을 사진으로 담으며 어떤 눈빛이거나 눈길이거나 눈높이가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디를 바라보면서 임종진 님 마음자리에 아름다운 빛을 담으려 했을까 궁금합니다.


  그냥 김광석이니까 찍은 사진인가요. 여러모로 자주 만나기에 찍은 사진인가요. 마음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노래에 맞추어 찍은 사진인가요. 따사로이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숨결로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하는 사람을 노래하듯이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가 들려주는 눈물과 웃음을 고루 섞으면서 찍은 사진인가요. 노래로 어루만지는 삶을 포근히 보듬으면서 찍은 사진인가요.


  김광석 님 몸뚱이는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러나 김광석 님 노래는 언제나 이 땅에 있습니다. 김광석 님은 돈이라든지 이름이라든지 힘 따위를 남겼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김광석 님은 맑고 밝으면서 고운 노랫가락과 함께 이야기 한 자락을 남겼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김광석 님을 찍은 사진은 무엇을 책으로 갈무리해서 남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을 그리는 사진이고, 어떤 삶과 사랑을 그리는 노래일까요. 4347.5.2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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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손바느질 - 36.5℃ 손바느질 소품 37
송민혜 지음 / 겨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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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1



사랑하며 살아가는 손빛

― 처음 손바느질

 송민혜 글·사진

 겨리 펴냄, 2014.4.10.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쌀을 씻습니다.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서 쌀을 씻습니다. 네 식구 함께 먹을 밥을 헤아리며 쌀을 씻습니다. 다음 끼니로 어떤 밥을 지어서 먹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즐겁게 누린 한 끼니를 돌아보면서, 다음 끼니에도 다 같이 즐겁게 밥 한 그릇 누리자고 생각합니다.


  쌀은 손으로 씻습니다. 냄비에 쌀과 물을 받아 살살 젓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쌀을 씻을 때에는 으레 아이들이 옆에서 지켜봅니다. 큰아이는 키가 웬만큼 자랐으니 손만 쭉 뻗으며 “나도 할래.” 하고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받침걸상을 가지고 와서 올라온 뒤 “나도 할래.” 하고 누나 말을 따릅니다.


  끼니로 먹는 밥은 논에서 거둔 벼입니다. 벼에서 겉껍질인 겨를 벗기면 비로소 쌀이고, 이 쌀을 솥이든 냄비이든 담아서 물을 맞추어 지으면 밥입니다. 요즈막에는 볍씨를 내어 모판을 만들고 모를 심는 일 모두 기계로 하지만, 예부터 모내기이든 씨뿌리기이든 모두 손으로 했습니다. 손으로 씨앗을 만져 흙에 두었고, 손으로 흙을 조물조물 만지면서 보살폈습니다. 이렇게 하고는 가을걷이에도 손으로 낫을 쥐고 손으로 볏포기를 움켜쥐면서 석석 베었어요.


  손으로 벤 볏포기는 이 다음에도 손으로 알맹이를 털지요. 손으로 짠 섬에 벼를 담고, 손으로 만든 절구에 벼를 넣어 손으로 깎은 절굿공이를 들고 겨를 벗겼습니다. 그러고는, 또 손으로 만든 키로 석석 날리면서 지푸라기가 날아가도록 했습니다. 지난날에 흔히 쓰던 조리도 손으로 만들었어요. 솥도 손으로 만들고, 부엌과 아궁이도 손으로 지으며, 집도 손으로 지었어요. 수저도 손으로 만들고, 밥상도 밥그릇도 누구나 스스로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 곰곰 제 어릴 때를 돌아보면 집에서 어른들이 바느질하는 모습을 곧잘 볼 수 있었어요. 할머니는 손수 한복을 지어 주셨고, 자투리 천으로 한복에 다는 동전들과 인형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이불 호청을 빨아 풀 먹이고 다듬이질한 뒤에 시침질 하던 모습도 생각나네요. 집에서 쓰는 바구니와 채가 닳아 구멍이 나면 아버지가 바느질해 손을 보셨고 … 아이들에게 엄마 손길 담은 소품을 선물해 보세요. 제 쓰임이 있는 소품들이라면 아이가 늘 곁에 두고 쓰면서 엄마 사랑을 담뿍 받을 수 있어요 ..  (2, 12쪽)



  아이들 손을 잡고 걷습니다. 어디이든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잡고 걷습니다. 숲에 가고 싶으면 숲으로 가지요. 들에 가고 싶으면 들로 가지요. 바다로 가고 싶으면 바다로 갑니다. 도시로 마실을 하려고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 수 있어요. 읍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이든 부산이든 인천이든 갑니다. 언제나 아이들 손을 잡습니다.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뜸하니 아이들이 저희끼리 이리 달리든 저리 뛰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읍내에만 나와도 자동차가 복닥거리기에 아이들을 불러 손을 잡습니다.


  여름에도 손을 잡고 겨울에도 손을 잡습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손을 잡습니다. 아주 꼬맹이였을 적에는 아이들이 위로 손을 뻗어야 했고, 네 살 일곱 살 천천히 자라니, 이제 아이들도 손잡기가 힘들지 않습니다.


  두 아이 어버이인 나 또한 내 어버이와 손을 잡고 컸습니다. 내 어버이도 꼬맹이인 내 손을 바투 잡았습니다. 손만 잡을 뿐 아니라 몸도 가까이 붙어요. 착 달라붙으면서 어버이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춥니다.


  참말 그래요. 사람이 많거나 자동차가 오가는 곳에서 어떤 어버이라도 이녁 아이 손을 꼬옥 잡기 마련입니다. 놓치지 않으려고,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아끼려고, 보살피려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힘껏 잡습니다.





.. 큰 통에 물을 담고 천을 넣어 서너 시간쯤 담가 두세요. 천을 만들 때 쓴 화학약품과 풀기가 잘 빠질 수 있게 조물락조물락 해 주면 좋아요. 그리고 잘 말립니다. 빳빳이 다 마르기 앞서 살짝 덜 말랐을 때 다림질을 해 주면 구김을 쉽게 펼 수 있어요 … 작은 소품 하나로 아이에게 빛나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어요 … 봄에 조카가 놀러 와서 놀다가 덥다고 바지를 벗었어요. 개구쟁이라서 내복바지에 구멍이 두 개 났네요. 그래서 자투리 천으로 퀼트솜을 덧대 꿰매 주었더니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자랑을 했대요 ..  (6, 24, 30쪽)



  우리 네 식구는 시골에서 두 다리로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달릴 때에는, 혼자 달릴 때하고 사뭇 다릅니다. 힘이 여러 곱 들기도 하는데, 이보다 두 아이와 함께 달리는 자전거는 한결 느긋하고 차분히 달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굳이 더 빨리 달리려 하지 않습니다. 애써 큰길로만 다녀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조용하며 오붓한 길을 찾아 달립니다.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한갓진 길이 즐겁습니다. 들바람을 마시고 바닷바람을 먹을 만한 길을 달리면 아이도 어버이도 함께 기쁩니다.


  자동차가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자동차는 아무 데에서나 함부로 씽씽 달리면 안 될 뿐입니다. 자동차는 아무 데나 마구 휘젓고 들어서지 말아야 할 뿐입니다. 시골이라면 마을 어귀에 자동차를 대고, 마을 안쪽으로는 걸어서 들어와야지요. 도시에서도 자동차는 동네 바깥에 대고, 동네로는 걸어서 들어서야지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대지 말아야 한다고 느껴요. 자동차는 집 앞까지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집 앞은 아이들 놀이터이거든요. 집 앞은 아이들이 노는 곳인 한편, 어른들이 일할 곳이고, 텃밭이나 꽃밭이 될 곳이며, 이웃과 만나서 어울리는 쉼터가 되어야 하니까요.


  집 앞에는 자동차를 세우지 말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껴요. 집 앞에는 나무가 우람하게 자라 고운 그늘을 드리우고 싱그러운 바람을 베풀도록 해야지 싶어요. 우리들은 집 앞에서 자라는 나무를 날마다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지지요. 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풀도 살살 쓰다듬고, 풀꽃이 피면 풀꽃한테도 인사하지요. 아이는 어버이 손을 잡으면서 즐겁고, 어버이는 아이 손을 잡으면서 기쁩니다. 사람은 나무와 풀을 쓰다듬으면서 즐겁고, 나무와 풀은 사람 손길을 타면서 기쁩니다.





.. 수업 준비하면서 재료 살 때는 되도록이면 무턱대고 비싸거나 폼 잡는 재료들은 사지 않는다. 중요한 재료라기보다 얼마나 할 마음이 있는지(하고 싶은 마음)와 ‘기본’이니까 …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품을 만들어 보세요 …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아이들 스스로 찾아보면서 계절에 따라 무슨 열매들이 있는지 둘레 모습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 책에서 말하는 대로 가로로 꽂든 내가 쓰듯 세로로 꽂든 꼭 어떻게 해야 하는 일이란 없다. 그저 쓰기 편한 대로 ‘나’에 맞춰 쓰면 된다 ..  (32, 50, 53, 63쪽)



  송민혜 님이 쓴 《처음 손바느질》(겨리,2014)을 읽습니다. 손바느질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들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쓴 책입니다. 바느질을 이럭저럭 할 수 있지만,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이들한테 길동무가 되도록 엮은 책입니다. 솜씨 좋게 바느질을 하는 이들한테 살가운 이웃이 되자면서 빚은 책입니다.




.. 그림 그린 날이나 아이 이름을 바늘땀으로 넣어 보세요. 누가 그렸는지 언제 그렸는지 남겨둘 수 있어 좋아요 … 아이는 자르고 엄마는 바느질, 사이좋게 뚝딱. 안 입는 옷과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장식줄 … 나뭇가지를 엮을 때 쉽게 글루건이나 본드를 쓸 수도 있지만 번거롭더라도 실이나 끈으로 엮어 주세요. 나뭇가지도 숨을 쉬어야 해요 … 필요해서 만들어 쓰는 물건은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도 참 기분이 좋아요 … 유리병 주머니는 작업실 겸 가게 할 때 재활용 수업으로 처음 만들었어요. 사과주스를 담았던 호리호리한 병이라 그냥 쓰기에도 예뻤지만 이야기를 넣고 싶었어요 ..  (66, 70, 77, 84, 107쪽)



  바느질은 언제나 손바느질입니다. 손이 없으면 바느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바느질이 손바느질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글쓰기가 손글 아닌 기계글이기 일쑤입니다. 오늘날에는 빨래가 손빨래 아닌 기계빨래이기 일쑤입니다. 밥 또한 손으로 짓는 손밥이 아니라 기계로 짓는 기계밥이거나 전화로 시켜서 먹는 바깥밥이기 일쑤입니다. 가게에서 사다 먹는 공장밥까지 있어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옷일까 생각해 봅니다. 손으로 알뜰살뜰 지은 ‘손옷’일까요, 아니면 기계로 지은 ‘기계옷’일까요, 아니면 공장에서 찍은 ‘공장옷’일까요. 우리가 입는 옷은 어떤 사람 손길이 탔을까요. 어떤 사람이 어떤 손빛으로 어루만진 옷을 입으면서 살아가는가요.


  바느질을 하는 까닭은 살림을 가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바느질을 하는 마음은 살림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밥을 지을 적에도, 흙을 보살필 적에도, 아이와 살아갈 적에도, 또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를 적에도, 또 자전거를 타거나 마실을 다닐 적에도, 우리들은 삶을 가꾸고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 느리게 / 한 땀 두 땀 // 빛깔 고르고 / 바늘땀 더하는 재미 // 손꽃 핀다 … 다림질한 가방을 한지에 싼다. / 바늘땀을 넣는다. / 꽃으로 여민다 ..  (17, 97쪽)



  《처음 손바느질》은 바느질을 누구나 집에서 손쉽게 즐기는 길을 보여줍니다. 나 스스로 내 옷가지를 누리고, 내 곁님과 살붙이한테 우리 옷가지를 나누며, 동무랑 이웃하고도 서로 옷가지를 주고받는 웃음을 스스로 짓도록 도와줍니다. 《처음 손바느질》은 서로 오붓하게 나누면 기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느질을 잘 하는 법보다는 바느질을 하는 즐거움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 엄마 시집 오실 때 외할머니께서 주셨다는 실패. 가만가만 가져다가 살몃살몃 담는다. 빨간 실패에는 이제 바로 감은 실, 까만 실패에는 손때 묻은 옛날 시침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니 엄마가 옆에서 “너 가져다 쓸래?” 하신다. 잠깐 탐이 났다가 “아니요.” 한다. 그대로 엄마 곁에서 할머니 곁 잇고 엄마 결이 스미기를 바라면서 ..  (167쪽)




  글을 쓰는 까닭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작가가 되려고 글을 쓸까요? 책을 내려고 글을 쓰나요? 아마 이런 까닭 때문에 글을 쓰는 분도 있으리라 느껴요. 그렇지만, 나는 즐겁고 싶어 글을 쓰고, 이웃한테 즐거운 빛을 노래하고 싶어 글을 씁니다.


  맛있게 먹으려고 밥을 지을 테지요. 그렇지만, 맛 하나로만 밥을 짓지는 않아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기운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싶은 꿈을 담아 밥을 짓습니다. 이 밥 한 그릇으로 고운 숨결을 북돋우면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하며 밥을 짓습니다.


  마실을 다닐 적에도, 이웃을 만날 적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리 집 처마에 깃든 제비집을 물끄러미 바라볼 적에도, 나비 날갯짓과 잠자리 춤사위를 지켜볼 적에도, 늘 같은 마음입니다. 내 손에서는 손빛이 우러나오기를 바랍니다. 내 눈에서는 눈빛이 해맑기를 바랍니다. 내가 쓰는 글은 글빛이 밝기를 바랍니다. 내가 읽는 책은 책빛이 따스하기를 바랍니다. 이럭저럭 살림을 꾸릴 때에는 살림빛이 넉넉하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사랑빛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삶은 삶빛이 아리땁게 드리우기를 바라고, 노래 한 가락은 노래빛이 눈부시기를 바라요. 


  바느질을 하는 손마다 손빛이 손꽃과 같이 새롭게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글 한 줄은 글빛이 밝으면서 글꽃이 되고, 이야기 한 타래는 이야기빛이 푸근하면서 이야기꽃이 됩니다. 사랑은 사랑빛이 퍼지면서 사랑꽃으로 피어납니다. 삶은 삶빛이 자라면서 삶꽃으로 피어납니다.


  바느질을 하는 손을 느껴요. 스스로 손을 움직이면서 이 손길로 쓰다듬고 보살피는 이웃을 생각해요. 내 손은 너를 어루만집니다. 네 손은 나를 어루만집니다. 서로서로 어루만지고, 스스로 어루만집니다. 어머니 손도 할매 손도, 아버지 손도 할배 손도, 아이 손도 이웃 손도, 언제나 약손이요 사랑손이며 꿈손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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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Heureka - 단편
히토시 이와아키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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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1



과학이란 무엇인가

― 유레카

 이와아키 히토시 글·그림

 오경화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5.3.25.



  과학이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과학이면 믿을 만하다고 여기는데, 참말 과학은 믿을 만한지 궁금합니다.


  과학으로 무엇을 밝힐 수 있을까요. 과학은 무엇을 할까요. 사람들 삶을 밝히는 일에 과학은 얼마나 이바지하는가요. 지구별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길에서 과학은 어떤 몫을 하는가요.


  과학이라는 이름은 자연과학이나 기술과학뿐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데까지 붙습니다. 요즈막에는 생활과학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어느 자리에나 들러붙는 과학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과학이 하나도 없다면, 과학스러운 학문이나 생각이나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면, 우리 삶은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과학이 없으면 삶이 무너질까요. 과학이 있기에 삶이 무너지지 않는가요. 과학이 없어도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는 아름답게 흐르지 않나요. 과학이 있기에 삶과 숲과 지구별과 우주까지 망가뜨리는 길을 걷지 않나요.



- 시라쿠사 출신 망명자 에피큐데스는 지척에서 한니발의 지휘를 보며 그 천재성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다. (15쪽)

- 한 명을 죽이면 살인범, 세상의 반을 죽이면 영웅, 인간을 전부 죽이면 신이다. (127쪽)




  역사란 무엇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역사라 할 적에 권력자나 통치자 이름을 들먹이곤 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문화라 할 적에 권력자와 통치자가 누리던 사치를 들먹이곤 합니다.


  정치집단이 서로 맞붙어 싸우며 죽이고 죽은 발자취가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어 이웃나라 땅을 빼앗는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유럽사람이 전쟁무기를 앞세워 지구별 수많은 나라와 겨레를 죽이고 괴롭히며 식민지로 삼은 짓이 역사일까 궁금합니다. 미국이 전쟁무기를 내세워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북미 토박이를 죽일 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군사힘으로 작은 나라를 억누르는 짓이 역사일는지 궁금합니다.


  대통령 이름은 역사가 아닙니다. 몇몇 이름난 사람들은 역사가 아닙니다. 그네들은 그저 그네들입니다. 역사란 ‘발자취’요, 발자취란 ‘살아온 나날’입니다. 삶은 다툼과 싸움도 아닙니다. 삶은 사랑과 꿈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지낸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저마다 꿈꾸고 삶을 가꾼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 “클라우디아는 이곳 시라쿠사시를 사랑하고 있소. 그래서 지금 몹시 슬퍼하고 있단 말이오. 마을 여기저기에 많은 추억이 서려 있고,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로마와 전쟁이 터졌으니 다소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건 불가항력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어제까지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끼리, 어떻게 오늘 갑자기 칼을 들이댈 수가 있소?” (149∼150쪽)

- “그 외에도 많은 걸 만들었지만 난 사실 그런 괴물들 따윈 만들기 싫었다네. 하지만 왕이 하도 간곡하게 부탁해서. 난 그 괴물들의 두목인 셈이지.” (158∼159쪽)





  땅을 일군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집을 짓고 밥을 지으며 옷을 지은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들이 노래하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나물을 뜯고 나물을 무치며 나물을 먹는 이야기가 역사입니다. 제비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역사입니다. 바다와 들과 숲이 역사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역사이고, 풀 한 포기가 역사입니다. 꽃 한 송이가 역사요, 열매 한 알이 역사입니다. 씨앗 한 톨을 건사하면서 사랑을 물려주던 기나긴 이야기가 바로 역사예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볼 뿐 아니라, 참답게 가르치지도 못해요. 우리는 오늘날 사회에서 아이들한테 역사를 제대로 못 보여줄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도 역사를 슬기롭게 깨닫지 못해요.



- “다음 두 번째 질문!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173쪽)

- “왠지 고향을 배신하는 것 같아.” “고향이 먼저 널 배신했어.” (212쪽)



  이와아키 히토시 님 만화책 《유레카》(서울문화사,2005)를 읽습니다. 유럽 어디메에서 지난 어느 한때 있었던 일을 짤막하게 다룬 만화책입니다. 과학 문명을 앞세워 전쟁무기를 만들도록 시킨 ‘임금(우두머리)’이 나오고, 과학 문명으로 만든 전쟁무기를 내세워 이웃나라를 괴롭힐 뿐 아니라, 이웃을 마구 죽이면서 ‘영웅’이 되려는 바보들을 보여주는 만화책입니다. 258쪽짜리 조촐한 만화책은 “마침내 그 모든 목격자는 스러지고 2천 년이 흘렀다.”와 같은 말마디로 끝맺습니다. 이천 해 앞서, 지구별 어디에선가 서로 죽이고 죽는 피튀기는 싸움이 한창이었다는데, 이제 모두 죽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임금이나 전쟁 지도자는 땅넓히기가 아주 대단하기라도 하듯이 사람들한테 떠벌이고, 사람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는 떡고물을 얻으려고 싸움터로 뛰어듭니다.





- “봐! 여기가 특등석이야! 좋지? 바다랑 에트나산. 이걸 그림으로 그려 목욕탕 벽 같은 데 장식하면 얼마나 좋을까.” (26쪽)

-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자에 발명가에 기술자지만 지도자는 아니오! 전장의 룰 따윌 그대로 적용해서 뭘 어쩌겠단 거요!” “너, 이놈!” “당신은 그 한니발과 호각으로 싸운 장군이고, 과거엔 적군의 왕을 자기 손으로 처치했을 정도로 대단한 용사요! ‘로마의 검’이라고까지 불리던 자가 이제 와서 망령 난 노인 하나의 목이 그리도 탐나시오? 부끄럽지도 않소?” (236∼237쪽)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세운 커다란 궁궐이나 성벽이 유물로 남곤 합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가 쓰던 금관이나 노리개가 유물로 남곤 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살면서 누린 살림살이는 어느 하나 유물로 안 남습니다. 흙집은 유물로 안 남습니다. 가끔 빗살무늬흙그릇이라든지 민무늬흙그릇이라든지 돌칼과 같이 아주 오래된 유물이 나오기도 한다지만, 이런 흙그릇이나 돌칼은 숲으로 돌아가고 흙으로 돌아가는 살림살이입니다. 유물이 될 생각이 없던 유물입니다. 이와 달리 금관이건 노리개이건 권력자나 임금이나 지식인이 건사하던 물건은 ‘남기려고 용을 쓰던 유물’입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유물이 아니기에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입던 옷은 모두 풀에서 실을 얻어 손으로 지었습니다. 잘 입은 시골옷은 흙한테 돌려주어 새로운 흙이 되고, 시골사람은 풀에서 다시 새로운 실을 얻어 새롭게 옷을 짓습니다. 시골사람이 먹은 밥은 똥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돌아갑니다. 시골사람이 마신 물은 오줌이 되어 새롭게 흙으로 깃듭니다.


  숲을 들여다봅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짐승과 새와 벌레가 나고 죽지만, 짐승 주검이나 새 주검이나 벌레 주검 때문에 숲이 지저분하거나 고약한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이와 달리, 사람이 오늘날 만든 문명은 온통 쓰레기입니다. 아스팔트 찻길을 새로 깔려고 헌 아스팔트를 걷으면 몽땅 쓰레기입니다. 아파트를 헐고 새로 올리려면 시멘트덩이는 몽땅 쓰레기입니다. 과자봉지도 쓰레기요, 비닐봉지도 쓰레기입니다. 도시나 시골이나 모두 쓰레기투성입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커다란 멧봉우리를 이룹니다.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역사란 무엇입니까? 문명과 문화란 무엇입니까? 교육과 정치와 경제와 사회란 무엇입니까? 종교와 문학과 책은 또 무엇입니까? 모두 쓰레기 아닌지요? 앞으로 이천 해가 흐른 뒤를 생각해 봅니다. 4347.5.23.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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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과 소품으로 만든 재미난 그림책 아기 그림책 나비잠
주경호 지음 / 보림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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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3



재미나게 놀 때에

― 재미난 그림책

 주경호 지음

 보림 펴냄, 2000.1.15.



  어릴 적에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왼손 손가락과 오른손 손가락을 다른 사람으로 여겨, 둘이 얽히고 설키도록 하면서 씨름을 시키곤 했어요. 놀잇감이 따로 없어도 언제나 내 두 손이 놀잇감이 되었습니다.


  예쁘다 싶은 돌멩이를 하나 주워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곱구나 싶은 가랑잎을 하나 주워 두고두고 만지작거립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봅니다.


  무엇을 손에 쥐든 재미난 놀이입니다. 무엇을 보아도 즐거운 놀이입니다. 어디에 있든 생각을 빛내어 놀이가 됩니다. 빈손이나 맨몸이라 하더라도 마음속에서는 훨훨 날거나 지구별을 두루 돌아다니거나 먼 우주로 뻗습니다.



.. 우리는 나비야, 너희는 꽃이고. 그렇지 ..  (19쪽)





  혼자서도 잘 놀고 여럿이서도 잘 놀던 아이는 어른으로 자랍니다.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낳습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며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내가 두 살일 적에, 세 살 일 적에, 네 살 일적에, 저마다 어떻게 다른 눈빛으로 놀았을는지 가만히 되새깁니다. 내가 다섯 살이고 여섯 살이며 일곱 살일 적에 어떤 눈망울로 놀았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맨몸으로도 생각을 빛내어 놉니다. 아마, 다른 집 아이들도 똑같으리라 봅니다. 시골집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돌을 만지고 흙을 만지며 풀을 만집니다. 아직 나무타기는 하지 못하나, 손과 발에 힘이 더 붙으면 나무도 얼마든지 타고 오를 테지요.


  놀면서 소리를 듣습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를 하나하나 듣습니다. 놀다가 노래를 듣습니다. 새와 풀벌레와 개구리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읊는 말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는 말이요, 아이들이 스스로 새로 짓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누리는 놀이는 먼먼 옛날부터 아이와 아이를 거쳐 이어온 놀이요, 아이가 오늘 이곳에서 새로 짓는 놀이입니다. 노래도 이와 같아요. 먼먼 옛날부터 흐르던 노래를 듣거나 부릅니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노래를 짓습니다.


  주경호 님이 빚은 그림책 《재미난 그림책》(보림,2000)은 주경호 님 스스로 즐기는 놀이를 보여줍니다. 여느 살림집에 흔하게 있는 살림살이나 옷가지를 살짝살짝 바꾸거나 손보면서 놀잇감을 만듭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재미나게 놉니다. 혼자서 놀다가 동무를 불러 함께 놉니다. 동무는 다른 동무를 부르고, 동무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 마무리놀이를 하며 잠들기까지 다시 재미난 생각을 마음에 품습니다.


  놀이가 재미있기에 노래가 재미있습니다. 놀며 재미있으니 삶이 재미있습니다. 놀이가 재미있는 만큼 하루를 재미있게 가꿉니다. 놀며 이야기를 꽃피울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합니다. 4347.5.2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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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파마 (책 + 플래쉬 DVD 1장) -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 개정판 국시꼬랭이 동네 10
윤정주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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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2



풀꽃동무

― 아카시아 파마

 이춘희 글

 윤정주 그림

 사파리 펴냄, 2005.6.15.



  시골에서 노는 아이들은 햇볕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별빛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아이들은 바람을 먹습니다. 시골에서 노래하는 아이들은 개구리와 제비와 풀벌레가 베푸는 잔치를 날마다 먹습니다.


  도시에서는 어떠할까요? 도시에서 노는 아이들은 무엇을 먹을까요? 도시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받아들일까요?



.. 엄마는 장에 가고 영남이 혼자 집을 보고 있어요. 영남이는 손거울로 이리저리 햇살을 비추며 장난을 쳤어요 ..  (3쪽)





  예전이라 한다면 언제쯤일까 모르겠으나, 아무튼 예전에는 서울도 그저 서울이었지 ‘커다란 도시’나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이라 하더라도 시골스러운 동네가 넓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에도 제비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에도 박쥐가 날아다녔고, 예전에는 서울에서도 무지개를 보거나 풀벌레 노래를 들었어요. 예전에는 서울에서도 개구리를 잡고, 잠자리를 좇으며, 나비를 하염없이 지켜볼 수 있었어요.


  이제 서울에서 골목놀이를 할 수 있는 어린이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은 모조리 학원으로 쫓겨나야 하기도 하지만, 서울이라는 곳에서 골목이 있어 보았자 몽땅 주차장으로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뒹굴며 흙을 만지고 풀꽃을 꺾을 자리가 없어요.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아이들이 놀 만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어른은 무슨 일로 그렇게도 바쁜가요. 아이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뛰놀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못하는 어른은 어떤 일을 하느라 그렇게도 바쁜가요.



.. 영남이의 뽀글거리는 앞머리를 본 미희가 킥킥 웃었어요. “젓가락으로 파마하니까 머리카락이 다 탔잖아. 이리 와 봐. 내가 아카시아 파마 해 줄게.” ..  (11쪽)



  풀꽃동무 되어 자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풀꽃동무 되며 웃는 아이들이 싱그럽습니다. 풀꽃동무답게 꿈을 꾸는 아이들이 믿음직합니다. 풀꽃동무로 거듭나는 아이들이 어여쁩니다.


  풀이랑 동무하고 꽃이랑 동무하는 아이들입니다. 풀꽃과 같은 숨결로 이웃을 헤아리는 아이들입니다. 풀꽃이 베푸는 푸른 바람을 받아 마시면서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는 아이들입니다.


  자가용 좀 치워 주셔요. 자가용 좀 아이들 눈에 안 보이는 데에 세워 주셔요. 집 둘레에 자가용이 없도록 해 주셔요. 집 둘레만큼은 아이들이 뒹굴고 뛰놀 만한 마당이 되도록 해 주셔요. 꽃씨 한 톨을 심고 풀씨 한 톨 날아와서 깃들도록 해 주셔요. 나무 한 그루를 심어 아이들과 나란히 자라도록 해 주셔요. 자가용을 장만해서 굴릴 돈으로 땅을 마련해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흙을 돌봐 주셔요.




.. 아이들은 마을 뒷동산 아카시아 숲으로 갔어요. 영남이와 영수는 미희를 따라 아카시아 줄기를 꺾었어요 ..  (15쪽)



  이춘희 님 글과 윤정주 님 그림으로 엮은 그림책 《아카시아 파마》(사파리,2005)를 읽습니다.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카락을 엮어 보글보글 꼬는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두 가시내는 아카시아 줄기로 머리카락을 엮으며 놀고, 다른 아이들은 조그마한 숲에서 풀이랑 나무랑 동무가 되어 놉니다.


  풀바람을 마십니다. 나무내음을 맡습니다. 나비와 잠자리하고 뛰놉니다. 풀벌레가 사근사근 노래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파랗게 맑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얗게 맑은 구름을 쳐다봅니다. 햇살을 누리고, 살결은 까맣게 탑니다. 아이들은 까무잡잡하게 타야 아이답습니다. 어른들도 까무잡잡하게 타야 튼튼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깜순이나 깜돌이 되어 이 땅을 씩씩하게 밟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풀과 꽃 사이에서 놀이가 태어납니다. 놀이가 빙긋빙긋 태어나는 곳에서 이야기가 즐겁게 샘솟습니다. 이야기가 즐겁게 샘솟는 곳에서 노래가 보드라이 흐릅니다. 노래가 보드라이 흐르는 곳에서 살림을 곱게 가꿉니다. 4347.5.21.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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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5-21 07:40   좋아요 0 | URL
저만 해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 이런 놀이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책 속 아이들 모습이 제 어머니로부터 들어 상상하던 모습, 가끔 사진에서 보는 어머니의 어릴 때 모습과 비슷하여 제가 겪지 않았어도 정이 갔어요. 그림책 공부 잠깐 하면서 베껴그리기 연습용으로 제가 선택한 책이기도 하지요.

숲노래 2014-05-21 16:2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그림책에 나오는 놀이는 처음 보았는데,
마을마다,
또 아이들마다
서로 재미나게 새로운 놀이를
얼마든지 만들어서 즐길 수 있으리라 느껴요.
아이들은 그저 놀이터와 빈터가 있으면
언제나 즐겁게 놀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