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2
김인국.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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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2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

―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김인국·손석춘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5.18.



  한국말사전에서 ‘독재(獨裁)’를 찾아보면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다시 ‘독단(獨斷)’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남과 상의하지도 않고 혼자서 판단하거나 결정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이들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이들 뒤를 이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이는 어떠할까요. 그리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는 어떠하나요.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자리에 선 이들 가운데 너른 목소리를 귀여겨들으며 정치를 펼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더 헤아려 보면, 조선 왕조도 독재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계급을 나누던 사회도 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신분과 계급에 따라 질서를 세우는 정치나 사회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모든 틀은 독재입니다.



.. 교회가 바라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투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다정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제발 아프게 때리고 찌르고, 뜨겁게 지져대지 말고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자는 것뿐입니다 … 원래 개도 안 물어 가는 물건이 돈인데, 돈 많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러고, 돈 없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런단 말입니다 … 1970년대에는 신부들만 해도 참 씩씩하고 자유로웠어요. 그런데 가난하던 교회 살림에 여유가 생기면서 신부들도 잘 안 움직이거든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겠어요? 돈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  (5, 80, 81쪽)



  지난날에는 씨받이로 독재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한테 ‘임금님 바라보기’만 시켰습니다. 오늘날에는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한테 ‘대통령 바라보기’를 시킵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선거를 할 수 있기에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선거하는 곳에 몽둥이나 총칼을 쥔 군인·경찰이 없으면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는 이 나라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이웃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지며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 새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 하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 얼거리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주권이 사람들한테 있으니 ‘민주’라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여느 사람들한테 있지 않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이런 권력자한테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주권이 재벌한테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권이 건물임자나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누리는 주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는 주권을 기자와 지식인과 작가와 교수가 거머쥐기도 합니다.



.. 그 사람들은 고엽제 피해가 우리 때문에 생긴 줄 아는 걸까요? 우리가 자기들 월남에 보내고, 자기들 머리 위에 살인적인 고엽제를 마구 뿌려서 그런 몹쓸 불행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물어 보고 싶어요 …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제복을 벗어라!” 이게 단골 구호예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여태껏 군복을 안 벗어요. 팔십 노인들이 말입니다. 제대한 지가 벌써 오십 년이 넘는데 … 사람들이 지금 선거부정을 몰라서 안 움직이는 게 아닐 겁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욕망 때문에 안정을 희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도 나타난 결과입니다. 자기 작은 이익만 지키면 내어줄 수 있는 것 다 내어주겠다는 게 지금 민심인데 저희가 그런 마음에 일일이 보조를 맞출 순 없어요 ..  (14∼15, 15, 23쪽)



  한국에서 농사짓는 시골사람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농협에 쌀과 곡식과 열매를 안 팔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비닐과 기계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공장 일꾼이나 사회 일꾼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공장 일꾼인 노동자가 파업을 할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버스를 멈추거나 철도를 멈출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가게를 닫거나 발전소를 멈추거나 전화국을 닫거나 수돗물을 끊거나 회사를 쉴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대입시험 지옥에서 벗어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외우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인터넷게임에서 홀가분할 권리가 없습니다.



.. 함부로 살아도 제 이익만 지킬 수 있다면 된다는 마음이 너무나 커졌어요 … 사제들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대중이 들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서 너무 앞질러간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일차 임무는 대선 무효, 대통령 해고를 선언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든 권좌를 고집하든 그것은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각자 심판받을 일입니다 … 대통령이든 시민이든 나중에 역사의 법정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 백성들이라고 힘없이 당하는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하지 않다는 거죠. 권력자들의 악행을 보았으면 대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진실을 들어도 그것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박정희가 친일을 한 사실, 애꿎은 사람들을 죽인 사실, 수많은 성적인 탈선을 한 사실, 뭐 이런 사실을 얘기해 줘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  (39, 40, 82쪽)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입니다. 민주선거로 독재자가 태어나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힌 채 바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달셋방에서 지내며 이웃을 사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장이나 군수가 다세대주택에서 층간소음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법관이나 변호사가 저잣거리에서 저잣마실을 하고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줄까요? 집에서 빨래는 누가 할까요? 집에서 청소는 누가 할까요?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척척 집어넣기만 하면 될까요?


  마을살림은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두레나 품앗이란 무엇일까요?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이란 무엇일까요? 4대강 사업은 무엇을 하려는 짓이었나요? 시화호와 새만금은 어떤 지식인과 교수가 앞장서서 밀어붙인 짓이었나요?


  쌀개방이나 자유무역협정을 할 적에, 농사꾼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담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일 적에, 시골사람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골 젊은이를 죄 도시로 빼앗아 공장 일꾼으로 값싸게 부려먹은 사회와 정치와 교육 얼거리는 누구 머리로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 염수정 추기경은 복음이 갖고 있는 현실적이고도 사회적인 측면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 만일 추기경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교황이 개탄해 마지않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풍덩 빠지고 말 겁니다 … 송구스럽습니다만 추기경은 현실을 제대로 보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속은 썩었는데 껍데기만 보고 좋다고 하시는 거지요 … 새 교황이 나왔지만 구태에 찌든 사람들은 여전히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 교회 지도자들의 언어가 이상한 별나라에서 들려오는 말처럼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 글 쓰고 말하는 언론인들도 사람인데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언론인의 펜은 두 마리의 개를 감시하라는 펜이지 아부하라는 펜이 아닙니다 ..  (47, 49, 54, 64, 94쪽)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철수와영희,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옥천성당지기인 김인국 님하고 대학교수 일을 하는 손석춘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입니다. 성당지기는 성당에서 사회를 읽고, 성당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을 읽습니다. 성당지기는 ‘새로운 독재’가 이 나라에 굳세게 버틴다고 느끼는 한편, 천주교회에서도 ‘새로운 독재’가 무시무시하게 버틴다고 느낍니다.


  독재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면 독재자는 얼마나 즐거울까요. 독재를 하는 보람은 얼마나 누릴 만할까요. 독재자는 목숨이 다해서 죽는 날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독재를 부추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재를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독재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는지요. 독재가 멈추지 않도록 불러들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교황이 아직도 교황궁에 들어가지 않고 여러 신부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중궁궐에 갇혀 세상과 영영 멀어질까 봐 안간힘을 쓰시는구나 싶던데요 … 123년 전에 이미 교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고약한 천민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아무런 성찰을 안 했어요 … 찾아가는 곳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자본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용산에서 삼성물산을 봤는데, 4대강 사업 공사현장에 가도 삼성, 제주 강정에 가 봐도 삼성이 있어요 … 경상도에 가서 새누리당 찍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생활 안에서 되도록 삼성과 거리를 두도록 하자는 게 무척 어렵겠지요. 신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우리 일상 전반을 워낙 공고하게 지배하는 삼성이니까요. 삼성카드 쓰지 말자, 삼성 갤럭시 쓰지 말자고 하면 깜짝 놀라요 ..  (69, 71, 78, 79쪽)



  오월비가 내립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갓 모내기를 마친 논에 포근히 감겨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모내기를 앞둔 논에 살뜰히 스며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보리베기를 앞둔 들에 싱그러이 젖어듭니다.


  빗물은 어디에나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은 들과 숲에도, 고속도로와 발전소 지붕에도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면서 맑은 숨결이 되고, 빗물을 머금은 흙은 더욱 기운을 내어 풀과 나무가 푸르게 자라는 밑힘이 됩니다. 비가 그친 뒤 해가 나면서 들과 숲은 한껏 빛나고, 하늘과 구름은 한결 맑아요.


  삶이란 밝은 빛이고 맑은 숨결입니다. 사랑이란 밝은 노래이고 맑은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두레와 품앗이로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민주라 한다면, 참다운 민주라 한다면, 빗물과 같은 틀을 빚습니다. 착한 민주요, 아름다운 민주라 한다면, 햇볕처럼 따스하고 흙처럼 고소한 얼거리를 이룹니다. 즐거운 민주요 기쁜 민주라 한다면, 들과 숲처럼 사람살이를 살찌우는 밑바탕이 될 테지요.



.. 어머니는 지금까지 제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하느님이 시키신 일 하느라 고생한다고 격려하세요 … 강물처럼 유장한 역사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신앙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끝에 맺어진 열매가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씨가 물려지고 물려진 끝에 가장 아름답게 싹튼 자리가 예수의 몸입니다 ..  (89, 91쪽)



  민주선거로 민주를 이루려면 우리 보금자리가 언제나 민주여야 합니다. 민주선거로 민주를 빛내려면 우리 살림살이가 늘 민주여야 합니다. 참다운 민주가 이루어지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때에 민주를 한껏 북돋웁니다. 착한 민주로 즐거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민주를 더욱 살찌웁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삶터를 수수하게 가꾸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어른이 자라요.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슬기롤 빛내어 일구는 마을에서 사랑스러운 어른이 살아요.


  민주를 이룬 마을이라면 우두머리가 없어도 됩니다. 모든 마을사람이 저마다 마을지기입니다. 민주를 이룬 나라라면 우두머리, 이를테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한 사람조차 없어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지기이고 님이며 하느님입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지만,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아무나 될 수 없다지만,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누구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름다운 나라살림이 될 때에 나라가 아름답습니다. 지리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시장이 되고 군수가 되며 뭣뭣이 될 때에 나라가 사랑스럽습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보아야 한다면 늘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읽어야 하면 오직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삶을 보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면 누구라도 하나를 알아야 해요.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꽃을 보아요. 풀을 읽어요. 나무를 배워요. 하늘을 보아요. 흙을 읽어요. 냇물을 배워요. 숲을 보아요. 들을 읽어요. 바람을 배워요.



.. 슬픈 일은 대통령만 〈조선일보〉의 논설과 칼럼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교회의 고위급 성직자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는 신문은 조중동 딱 세 개로 국한됩니다 … 사람들이 성경의 눈으로 신문을 보게 될까요? 아니면 신문의 눈으로 성경을 보게 될까요 … 텔레비전 드라마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쌍용자동차나 기륭전자,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관심 없게끔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 (95, 97쪽)



  어리석은 독재 정치에 사로잡힌 나머지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하고 동떨어진 슬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바보스러운 독재 정치에 길든 탓에 참답거나 착하거나 넉넉한 삶하고 등진 아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언제 웃을까요? 즐거울 때에 웃겠지요. 이웃이 아프거나 힘들 때에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노래할까요? 기쁠 때에 노래하겠지요. 이웃이 슬프거나 고단할 때에 노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웃습니다. 아픈 이웃을 달래면서 웃음을 되찾도록 웃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래합니다. 슬픈 이웃을 다독이면서 노래를 되찾도록 노래합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고 노래는 노래를 낳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을 낳아요.


  왜 자꾸 독재자가 ‘민주선거’로 뽑힐까요. 우리는 왜 ‘민주선거’를 치르면서도 독재자를 뽑고 말까요. 바로, 우리 삶이 아직 민주가 아니고 평화가 아니며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삶을 민주와 평화와 자유로 가다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참민주로 선거를 하고, 참다운 이슬떨이를 뽑아서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심부름꾼이 되려는 정치 지도자가 나오려면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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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4-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

숲노래 2014-05-21 16:24   좋아요 0 | URL
이제껏 이런 '민주선거'를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는 그칠 수 있을는지 궁금해요...
 
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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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0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 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새만화책 펴냄, 2014.3.20.



  며칠 앞서 읍내마실을 갔다가 찜통더위에 몹시 애먹었습니다. 고작 오월 십육일인데 이렇게 덥나 싶더군요. 군내버스를 타고 창문을 열며 바깥바람을 쐬다가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로 돌아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덥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마 들에 있으면 덥다고 느낄 만할 테지만,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수북한 곳에 있으면 더위를 못 느낍니다. 나무가 없거나 풀을 찾아보기 힘든 데에 있으면 끔찍하게 덥습니다.


  읍내나 면소재지에 가면, 이곳에서 나무를 보기란 어렵습니다. 읍내도 면소재지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꼼꼼하게 길바닥을 메꿉니다. 논이나 밭 옆을 지나가지 않고서야 읍내에서도 흙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빈터와 숲을 밀어 주차장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몇 억이나 수십 억이나 수백 억까지 들여 시내 한복판에 공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정작 시골에서는 푸른 숲이나 우람한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자동차를 세우려고 용씁니다.



- “어디미 큰 집 한 채 부순 나무를 가지와서 집을 지었어. 그런 나무라야 나중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물론 새 나무도 섞어서 쓸 데는 쓰고.” (12쪽)

- “학교 끝나기만 하면 집으로 달아오고. 어떤 때는 동네 사램들이 부러 귀경을 와. 나중이 집 옆이 심은 꽃낭구랑 자라이까 집이 더 멋있어. 봉이나무에 봉이가 열면 따 먹고.” (20쪽)




  선풍기나 에어컨을 튼대서 더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 한쪽이나 방 한켠에 차가운 바람이 불도록 한대서 더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해야 안 덥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할 테지요. 나무만 있어서는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무만 있으면 나무도 몹시 힘듭니다. 나무는 뿌리를 마음껏 뻗을 만큼 너른 흙땅을 누려야 하고, 나무뿌리가 바깥에 툭 불거지지 않도록 온갖 풀이 알맞게 자라서 흙을 덮어야 합니다. 풀이 없는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릴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서 흙이 깎입니다. 풀이 있는 흙은 빗물에 좀처럼 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풀만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풀이 밟혀 못 일어나도 풀은 흙을 단단히 움켜쥐기에 나무뿌리가 흙땅에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돕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 흙을 알뜰히 돌보고, 풀과 나무가 햇볕을 듬뿍 받아들이면서 물기 머금은 바람을 내뿜을 때에 비로소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시골 읍내라 하더라도, 또 시골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오늘날은 도시와 똑같이 죄다 아스팔트에다가 시멘트이고, 나무까지 없으니 무척 후덥지근합니다.



- “잔치가 무시기 좋은 일로 하는 기 아이라. 군인 끌려 나가면 살아 돌아올지 모르이까 하는 거야. 군인 끌려 나가는 집이서 잔치를 하는 거야 … 잔치는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해.” (36∼37쪽)

- “이 사램 말하는 거를 봅세. 우리가 자식 혼인시기는 거, 자식이 맘이 있는 디 보내야지 떡을 보고 혼인을 시기겠슴메. 싹 가지고 가기오.” (66쪽)





  나무가 없으면 더위에 지치고, 풀이 없으면 더위에 치입니다. 나무와 풀이 있으면 그늘이 지고 빈 자리가 없어 남새를 얻기 어렵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새도 곁에 풀이 잘 자라면 한결 싱그럽고 맛있습니다. 들에서 돋는 풀이란 모두 나물이기도 합니다. 굳이 풀을 죽이거나 뽑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먹는 풀이 아니면, 옷을 짓거나 새끼를 꼴 적에 쓰는 풀이기 마련입니다.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도, 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었어요. 어느 겨레이든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었습니다. 흙밥을 먹고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으며 풀밥(또는 흙밥)을 먹으면 더위를 모릅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며 나무를 쓰다듬으면 더위도 추위도 모릅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지 못하는 곳이 덥거나 춥습니다. 풀과 나무가 사랑스레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리가 고단하면서 메마릅니다.


  살며시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사막이나 북극이나 남극은 어떠한가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해요. 왜 더울까요. 왜 추울까요. 풀과 나무가 없으니 덥거나 추워요. 왜 고단할까요. 풀이 없거든요. 왜 힘들까요. 나무가 없거든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숲을 가꾸고 들을 보살펴야 즐겁게 살 만한데,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사회가 숲이랑 들을 함부로 망가뜨리기에 어느 곳에 가더라도 덥거나 춥구나 하고 느낍니다.



- “그 병신 같은 사람들이 게으름 피우고 놀고먹던 사람들이야?” “우리 고향이서는 놀고먹는 사램이 없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지.” “엄마!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기 땅이 없으니까 못 살고 못 배우고 그런 거지. 그런 사람에게 땅을 줘야 맞는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 땅이 자기 땅이면 먹고는 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땅을 뺏더라도 절반이나 뺏던가 해야지 몽땅 뺏는 건 말도 안 되지.” (112∼113쪽)

- “이북이 있는 식구들도 다른 나라에서 다 만난다는데 우리 숙자는 왜, 왜, 이남이 있는 언니가 자기를 찾지도 않나 그럴 같애. 지금 형편은 이런 줄도 모르고 ‘언니가 잘사는데 나를 찾지도 않는구나’ 그럴지 몰라. 만나면 좀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 살기도 힘들고, 그래도 만나 보깁어.” (119쪽)





  김은성 님이 그린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14) 둘째 권을 읽습니다. 김은성 님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입니다. 김은성 님네 어머니는 북녘사람입니다. 북녘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갑니다. 이 만화책에는 어머니가 북녘에서 즐겁게 누리던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이 나옵니다.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리는데, 늙은 어머니는 이녁이 어릴 적을 돌아보면서 ‘괴롭거나 아프거나 슬픈’ 일 못지않게 ‘즐겁거나 웃거나 사랑스러운’ 일을 조곤조곤 떠올립니다. 웃고 울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다가 가슴을 찢으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 “바다가 밤인데도 어둡지 않아. 달빛이 비추더라고. 맘이 탁 트이는 것도 같고 아인 것도 같고. 이 생각 저 생각 드더라고.” (154쪽)

- “그렇기 오래 안 가다가 친정집이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안막 앞이 우리 논이서 추새(일)를 하다가 우리를 보더이 손을 논물이 씻고 나오더라구.” (159쪽)



  늙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 사람들이 더위나 추위를 그닥 많이 타지는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꼭 김은성 님네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집을 떠올려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이나 창호종이 한 장만 바른 문으로 살았어요. 샤시문이고 무슨 문이고 이중창이고 없었습니다. 창호종이 한 장을 바른 문 안쪽이 바로 방이요 살림터입니다. 지난날에는 전라남도 바닷가에 있는 마을조차 얼음이 꽝꽝 얼었다고 해요. 영도 밑으로 열이나 스무 금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는데, 다들 잘 살았어요. 오리털이니 무슨 털이니 하는 두꺼운 옷이 없었어도 다들 잘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추위를 견디었을까요?


  아무래도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느껴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 바람이 모질게 불지 않습니다. 나무와 풀이 푸르게 덮인 곳은 갑자기 뜨거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따순 기운이 쉬 식지 않습니다. 둘레 삶터가 알맞을 뿐 아니라, 집을 나무와 흙으로 지어요. 집 안팎이 무척 좋습니다. 온도계로 따져서 ‘대단한 추위’라고 말할 일이 없습니다. 온도계는 생각할 일이 없어요. 겨울은 겨울답게 옷을 한 꺼풀 껴입습니다. 여름은 여름답게 물을 만지고 바람을 쐬면서 지냅니다.





- “시숙이 밥을 차려 주니 자시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웃고. 식구 떼 놓고 왔는데도 집이 와서 그런가 좋아하더라구.” (183쪽)

- “젊었을 때 그 혈기 있던 시절 마늘대가리가 불기불기하고 툭툭 터지고 석 접이나 되는 꿈을 꿨는데 깨나니까 기분이 왜 또 이러니야. 내 고향집이 한 번 가 보깁다. 그 집에 우리 형부가 살고 있었다는데.”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 “60년이 지나니까 더 나. 만약 고향이 간다면 모를 파헤쳐 뼈를 만지 보면 좋겠어.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이.” (197쪽)



  만화를 그린 분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곁님 어머니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모든 어머니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우리들 어머니라면, 웬만한 분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자라셨을 테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시골 비슷한 터전에서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라면 거의 모두 흙과 풀과 나무하고 벗삼으면서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누리셨겠지요.


  우리 어머니는 모두 시골빛을 먹으며 활짝 웃던 숨결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마다 시골내음을 마시며 맑게 노래하던 넋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 함께 시골꿈을 꾸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던 사이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왜 샹냥하거나 고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이녁 어릴 적에 어떤 삶터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고운 빛을 품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은 즐겁게 살아가면서 씩씩하게 자라 할머니(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 땅 아이들은 앞으로 즐겁고 씩씩하게 크면서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로 삶길을 걷습니다. 다들 고운 이야기 한 자락을 가꾸면 좋겠어요. 모두들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면 좋겠어요.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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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그림책은 내 친구 7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 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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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1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기

― 생각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논장 펴냄, 2004.3.20.8



  생각한 대로 이룹니다. 생각하지 않은 대로 이루지 않습니다. 생각할 수 없던 일은 이룰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생각에 날개를 달아야 하는 까닭은, 아이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키워야 비로소 이루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좀처럼 삶을 가꾸지 못하는 탓이라면, 어른들이 스스로 생각힘을 잃거나 잊거나 놓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안 하면서 쳇바퀴 돌기를 할 뿐이면,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우거나 잊으면서 쳇바퀴 돌기에 머문다면, 날마다 고단하면서 지칠 뿐입니다.



.. 생각은 무엇일까? 글쎄……. 한번 생각해 볼까 ..  (5쪽)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낳습니다. 사랑스러움을 생각하는 사람이 사랑스러움을 낳습니다.


  누군가 전쟁을 생각한다면? 전쟁을 낳아요. 누군가 독재를 생각한다면? 독재를 낳지요. 누군가 국가보안법이나 막개발을 생각한다면? 참말 국가보안법이나 막개발을 낳아요.


  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노래가 흘러요. 즐거운 춤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에 즐거운 춤이 흐릅니다. 기쁜 놀이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기쁘게 놀아요.


  아이들이 날마다 새롭게 놀 수 있는 까닭은 언제나 놀이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날마다 즐거이 기운을 내면서 밥을 짓고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까닭은 언제나 즐거운 삶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생각은 그림과 이야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책 아닐까 ..  (20쪽)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님이 빚은 그림책 《생각》(논장,2004)을 읽습니다. 생각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고 손을 내밉니다. 생각을 함께 찾고, 생각을 함께 누리자고 이야기합니다.



.. 생각은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릴 수도 있고, 쓸 수도 있고, 춤추게 할 수도 있어요. 생각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28쪽)



  아침저녁으로 슬기롭게 생각하면 아침저녁으로 슬기로운 빛이 감돕니다. 아침저녁으로 맑은 삶을 생각하면 아침저녁으로 맑은 노래가 감돕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싶나요. 아이들과 어떤 생각으로 삶을 빛내고 싶은가요. 어떤 삶을 생각하고 싶나요. 어떤 사랑을 생각하면서, 어떤 꿈으로 나아갈 생각인가요.


  아이들이 자꾸 생각을 잃거나 잊으면서 입시지옥에 시달리니까 사회가 어둡습니다. 아이들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도 꿈을 놓거나 내버리지 않으니까 사회가 아직 밝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을 지어요. 아이들과 함께 삶을 지어요. 아이들과 함께 사랑을 짓고, 꿈을 지으며, 이야기를 지어요. 삶을 지으려는 사람만 삶을 짓습니다. 생각을 지으려는 사람만 생각을 짓습니다. 사랑을 지으려는 사람만 사랑을 짓습니다.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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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의 외딴섬 여행 무민 그림동화 14
토베 얀손 글.그림, 이지영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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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0



노는 아이들이 예쁘다

― 무민의 외딴섬 여행

 토베 얀손 글·그림

 이지영 옮김

 어린이작가정신 펴냄, 2014.4.22.



  놀면 재미있습니다. 노는 아이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놀지 못하면 재미없습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는 언제나 재미없습니다.


  놀이는 놀이 강사한테서 배워야 하지 않습니다. 놀이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가르쳐야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놀이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놀이는 학원에서 알려주지 않습니다.


  놀이는 늘 스스로 빚습니다. 스스로 웃고 노래하면서 놉니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눈을 살며시 감고 마음속으로 하늘을 훨훨 납니다. 구름을 가르고, 무지개를 건넙니다. 냇물에서 헤엄치고 바닷속을 누빕니다.



.. “우리가 섬에 갇힌 거예요? 책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스노크 아가씨는 어쩐지 신이 난 것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모닥불은 괜히 껐구나.” 무민 엄마는 당분간 섬에서 지내려는 것처럼 보였지요 ..  (8쪽)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놀며 큽니다. 학교를 다니더라도 학교에서 놀지 못하면 아이들은 크지 않습니다.


  놀지 못하는 아이는 나이만 먹습니다. 나이만 먹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철이 없습니다. 놀지 못한 채 어린 나날을 보냈으니 철이 들 수 없습니다. 놀지 못하면서 어린 나날이 지나갔으니 몸이 제대로 크지 못합니다.


  즐겁게 놀지 못하고서 어른이 된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기쁘게 놀지 않고서 어른이 된 사람은 동무와 어깨를 겯기 어렵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뛰놀아야 웃습니다. 햇볕에 까무잡잡하게 살갗이 타야 노래합니다. 손에 땟국이 흐르도록 뛰놀아야 밝게 웃습니다. 손등도 발등도 햇볕에 타서 까맣게 바뀌어야 맑게 노래합니다.



.. 뗏목은 생각보다 훨씬 튼튼했어요. 출렁출렁 파도에 맞추어 흔들흔들 움직여 재미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우르르 쾅! 천둥소리가 나고,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어요 ..  (12쪽)





  토베 얀손 님이 빚은 그림책 《무민의 외딴섬 여행》(어린이작가정신,2014)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무민은 언제나 ‘놉’니다. 무민 식구는 언제나 ‘놉’니다. 무민네 어머니도 아버지도 언제나 놀면서 하루를 누려요. 무민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언가 ‘일’하는 모습은 언제나 ‘놀이’와 같아요.


  놀듯이 일하는 무민네 어머니와 아버지이니,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골을 내지 않습니다. 놀면서 일하는 무민네 식구이니, 언제나 웃고 노래하면서 삶을 가꿉니다.


  배를 타고 외딴섬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 배가 떠내려 갑니다. 배가 없으니 그냥 외딴섬에서 살자고 생각합니다. 나무를 주워 뗏목을 엮습니다. 뗏목을 타고 바다를 가르다가 찻잔도 망원경도 그만 흘립니다. 이러다가 거센 물결에 휩쓸려 그만 뗏목도 조각조각 부서지면서 흩어집니다.



.. “폭풍이 멎으니 정말 아름답구나.” 무민 엄마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감탄했어요 ..  (24쪽)



  무민네 어머니는 비바람이 멎고 난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름답구나.” 하고 말합니다. 무민네 아버지는 고단하게 나들이를 했으나 곧 새로운 나들이를 꿈꿉니다. 무민은 바로 이런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함께 살아갑니다. 무민은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삶을 배웁니다. 무민은 늘 사랑을 배우고 꿈을 배웁니다. 무민은 학교를 안 다니지만, 가장 아름다우면서 빛나는 넋을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습니다. 무민네 어버이도, 또 무민네 이웃도 학교를 안 다닐 테지요. 그렇지만 무민네 식구와 이웃 모두 서로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서로를 헤아리고 보살핍니다. 따사로운 사랑이 흐르는 마을입니다. 너그러운 꿈이 자라는 삶터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나요. 우리 아이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눈빛으로 뛰노는가요. 우리 아이들은 오늘 어떤 놀이를 즐기면서 얼굴이 새까맣게 타는가요. 4347.5.1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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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엄마야 저학년이 좋아하는 책 1
이금이 지음, 한지희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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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3


 

지구별은 어머니이면서 아버지

― 땅은 엄마야

 이금이 글

 한지희 그림

 푸른책들 펴냄, 2000.3.1.



  나무가 있기에 지구별이 푸릅니다. 나무 곁에 풀이 자라기에 지구별이 푸릅니다. 나무 곁에서 자라는 풀에서 꽃이 피기에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 곁에서 자라는 풀이 숲을 이루어 온갖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아가기에, 사람들은 이곳에 보금자리를 두면서 날마다 즐겁게 웃을 수 있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지구별은 푸르지 않아요. 나무 곁에 풀이 자라지 않으면 지구별에 푸른 빛이 피어나지 못해요.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숲에 벌레와 새와 짐승이 살지 않으면, 사람들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 달님은, 사탕을 문 것처럼 탐스런 강이의 뺨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강이의 입가에 방시레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달님의 뽀뽀가 강이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었나 봅니다 ..  (12쪽)



  지구별은 어머니입니다. 뭇 목숨이 살아갈 수 있도록 따스하게 품으니 어머니입니다. 나무는 어머니입니다. 온갖 목숨이 푸른 바람을 마실 수 있도록 포근하게 감싸니 어머니입니다. 풀은 어머니입니다. 모든 목숨이 즐겁게 얼크러지면서 밥을 얻도록 따숩게 건네니 어머니입니다.


  지구별은 아버지입니다. 뭇 목숨이 사랑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품으니 아버지입니다. 나무는 아버지입니다. 온갖 목숨이 웃으며 사랑할 수 있도록 너그러이 감싸니 아버지입니다. 풀은 아버지입니다. 모든 목숨이 기쁘게 노래하면서 사랑하도록 신나게 어깨동무하니 아버지입니다.



.. “땅은 엄마야!” 강이가 아빠 손을 잡으며 불쑥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아빠는 강이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봐, 아빠. 나무랑 풀이랑 꽃이랑 다 땅에서 나오잖아. 나도 엄마 배에서 나왔잖아. 그러니까 땅은 엄마지.” ..  (39쪽)



  이금이 님이 글을 쓰고 한지희 님이 그림을 그린 《땅은 엄마야》(푸른책들,2000)를 읽습니다. 외딴 멧골자락에 조용히 깃든 세 식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다리를 접니다.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멧골자락에서 나무내음을 맡고 풀바람을 마십니다.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노래를 듣습니다. 나무에 앉은 새가 노래합니다. 풀밭에서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논과 둠벙과 냇물에서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노래를 들으며 살아가는 아이는 마음속에 노래를 품습니다. 노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는 따사로운 빛을 마음속으로 품습니다. 스스로 노래하고 스스로 사랑합니다.


  아이는 아기붕어가 달한테 묻는 말, “달님, 사람들은 왜 우리한테 모든 걸 빼앗아 가려는 걸까요(50쪽)?”를 들었을까요. 아이는 아기붕어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지구별(땅)이 어머니와 같은 줄 깨달을까요. 아이와 지내는 어버이는 아기붕어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또는, 지구별 목소리나 숲 목소리나 풀밭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 “붕어가 어디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할까, 한번 생각해 보자. 좁고 물도 뿌연 유리병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할까?” 강이는 유리병을 바라보았습니다. 뿌연 물 속에서 아기붕어가 괴로운 듯 아가미를 뻐끔거렸습니다. “아, 아니오.” ..  (72쪽)



  사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이룹니다. 사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이룹니다. 사랑은 어버이와 아이가 나란히 이룹니다. 사랑은 사람과 숲이 같이 이룹니다. 서로 아낄 때에 사랑입니다. 함께 웃을 적에 사랑입니다. 나란히 노래할 적에 사랑입니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즐겁게 삶을 가꿀 적에 사랑입니다.


  동화책 《땅은 엄마야》는 ‘땅은 엄마’라 하는, 아주 쉬우면서 마땅하고 따사로운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줍니다. 다만, 여기에서만 그치니 아쉽습니다. ‘땅은 엄마’라는 외침말 한 마디에서 그치지 말고, 땅이 얼마나 너르며 따사로운 어머니 품인지, 또 이 땅이 사람과 뭇 숨결한테 얼마나 반가우며 고마운 아버지 품인지, 조곤조곤 보여주면서 밝히면 한결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5.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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