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탑을 줍다 창비시선 240
유안진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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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6



시와 숟가락

― 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글

 창비 펴냄, 2004.10.15.



  숟가락 하나만 있으면 밥을 먹습니다. 네 식구가 숟가락 하나로도 밥을 넉넉히 먹습니다. 숟가락 하나로 네 사람 입이 즐겁습니다. 서둘러 먹지 않는다면, 넷이서도 숟가락 하나로 얼마든지 기쁩니다.


  숟가락 하나로 밥을 풉니다. 숟가락 하나로 국을 뜹니다. 숟가락 하나로 반찬을 집습니다. 아이들은 숟가락질을 기다립니다. 어른도 숟가락질을 기다립니다. 몸을 살찌우고 새로운 기운을 북돋우는 밥 숟가락을 서로 나눕니다.



.. 나는 늘 사람이 아팠다 / 나는 늘 세상이 아팠다 / 아프고 아파서 ..  (내가 가장 아프단다)



  마실을 다니면서 수저를 챙깁니다. 어른 몫 수저는 따로 안 챙깁니다. 두 아이 수저를 챙깁니다. 집에서 쓰던 수저를 잘 건사해서 가방에 넣습니다. 이웃집으로 찾아갈 적에 이웃집에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가 있습니다. 그러나, 웬만한 밥집에는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가 없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있거나 눈썰미가 밝은 어른이 있거나 아이를 아끼거나 사랑하는 어른이 있는 바깥밥집이 아니라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두지 않습니다.


  더 헤아려 보면,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두는 바깥밥집은 아이가 먹을 만한 덜 짜고 안 매우며 덜 달며 안 시큼한 밥이나 국이나 반찬을 마련합니다. 아이가 쓸 만한 작은 수저를 안 두는 바깥밥집은 어른이 먹을 만한 밥만 차리기 마련인데, 어른 가운데 맵거나 짜거나 달거나 시큼한 것을 못 먹는 사람을 못 헤아리기 일쑤입니다.



.. 벌건 대낮에 도깨비를 기다린다 ..  (도깨비를 기다리며)



  요즈음 아이들은 풀을 잘 못 먹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풀을 먹어 본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젖먹이 아기라면, 어머니가 풀밥을 즐겨먹어야 풀맛을 압니다. 왜냐하면, 풀밥 먹는 어머니한테서는 풀내음이 감도는 젖이 나오거든요. 풀밥을 먹던 어버이는 젖떼기밥을 마련할 적에 풀죽을 쑬 수 있습니다. 풀죽을 쑤는 어버이는 풀물을 갈아서 아이한테 먹입니다. 풀물을 갈아서 먹이는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풀물을 마시고, 날풀을 뜯어서 먹습니다. 아이가 혼자서 수저를 쥐고 밥을 먹을 즈음,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즐거이 풀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늘 어버이와 먹는 밥입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란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늘 어른들과 먹는 밥입니다. 아이들이라서 밥가리기를 하지 않아요. 모두 어른들이 시킵니다. 아이들이라서 소시지나 과자만 즐기지 않아요. 아이 곁에서 어른들이 소시지나 과자를 즐기니까 아이들 입맛이 달라져요.


  아이들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만들지 않습니다. 어른이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만듭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내민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받습니다. 어른이 만든 캐릭터 상품을 아이들이 받습니다. 어른이 만든 도시나 시골에서 아이들이 태어나서 자랍니다.



.. 그러나 그는 / 그를 버린 세상 어디서나 핀다 / 태양보다 태양다운 외로움의 이름 / 빈센트 반 고흐 / 는, 해바라기꽃 이름이다 ..  (고흐 꽃)



  어른이 날마다 마시는 바람을 아이도 날마다 마십니다. 어른이 늘 마시는 물을 아이도 날마다 마십니다. 어른이 날마다 보는 바깥모습을 아이도 날마다 봅니다.


  어른이 두 다리로 걷기를 즐기면, 아이도 두 다리로 걷기를 즐깁니다. 어른이 노래와 춤을 즐기면, 아이도 노래와 춤을 즐깁니다. 어른이 맑은 눈망울로 온누리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펼치면, 아이도 맑은 눈망울로 온누리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으면서 기쁩니다. 사랑을 물려받으며 기쁜 아이들은 이윽고 새롭게 가꾼 사랑을 이웃한테 돌려줍니다. 꿈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꿈을 이웃한테 돌려주고, 웃음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웃음을 이웃한테 돌려줍니다.



.. 내 하늘은 이 오두막이야, 우리집이야, 마당 쪽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 밀려왔지요 ..  (선녀의 선택)



  유안진 님이 빚은 시집 《다보탑을 줍다》(창비,2004)를 읽습니다. 유안진 님은 길에서 다보탑을 줍습니다. 유안진 님은 이녁 아이한테 다보탑을 물려줄 만합니다. 다보탑을 물려받은 아이는 이웃한테 다보탑을 돌려줄 수 있겠지요.


  유안진 님은 이녁 어머니 말씀을 돌이키고, 어릴 적 숟가락을 되새기며, 날마다 늙는 이녁 몸을 곱씹습니다. 이리하여, 이 모든 넋과 숨결이 고스란히 싯말 하나로 태어납니다.


  즐겁게 웃을 적에는 즐겁게 짓는 웃음이 시로 태어납니다. 슬프게 울 적에는 슬프게 짓는 울음이 시로 태어납니다. 삶이 고스란히 시가 되고, 시는 다시 삶이 됩니다. 사랑이 그대로 시가 되며, 시가 다시 사랑이 됩니다.



.. 우물가엔 구기자나 향나무를 심어야, 그윽한 물맛으로 우물과 사람이 함께 편안하다면서, 쓰고 난 물로 토란을 키우셨지 ..  (어머니의 물)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아니, 삶을 아름다움으로 나눌 수 있을까요. 이렇게 흐른 삶이라면 아름답고 저렇게 흐른 삶이라면 안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랑이 빛날까요. 아니, 사랑을 빛으로 가를 수 있을까요. 이 사랑이라면 안 빛나고, 저 사랑이라면 빛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유안진 님은 유안진 님대로 웃고 노래하면서 살아온 나날을 시로 그렸으리라 느낍니다. 유안진 님이 바라보고 마주하며 부대낀 대로 찬찬히 노래하고 꿈을 꾸는 하루였으리라 느낍니다. 아무쪼록 마음 가득 평화와 나무 한 그루가 깃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5.2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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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스 지음, 가비 카벨리우스 그림, 이필렬 옮김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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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4



우리 몸을 살리는 숨결

―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서 글

 가비 카벨리우스 그림

 이필렬 옮김

 창비 펴냄, 2004.5.25.



  바람이 거세게 불면 자전거가 앞으로 잘 안 나아갑니다. 자동차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그대로 달릴 테지요. 무거운 쇳덩어리인데다가 기름을 태워서 달리니, 자동차를 달리면서 힘들 일은 드물어요. 맞바람을 맞으면서 이 바람이 그치기를 바랄 만하지만, 아이들과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맞바람을 그대로 맞기만 할 뿐, 바람이 수그러들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이쪽에서 가면 맞바람이지만 저쪽에서 오면 등바람이에요. 가는 길에 맞바람이면 오는 길에 등바람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자전거를 달리기에 수월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날이 무덥습니다. 바람이 불기에 따순 기운을 옮깁니다. 바람이 불어서 서늘한 기운을 옮깁니다. 바람이 부니 우리들은 늘 새 숨을 마시고, 바람이 부니까 풀과 나무가 싱그러이 빛날 수 있으며, 바람이 불어 지구별에 골고루 온갖 목숨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 사람의 몸은 태양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 흙 한 줌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들어 있을까요? 열 마리? 쉰 마리? 100마리? 믿어지지 않겠지만, 흙 한 줌 속에는 지구 전체에 살고 있는 사람 수보다 더 많은 생명이 숨어 있습니다 ..  (7, 24쪽)



  비가 내리면서 뭍에 새 기운이 감돕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며 사람도 논밭을 가꿉니다. 비가 내려 뭍에서 흙이 쓸려 바다로 가니, 갯벌이 싱그럽고 바다에도 새 기운이 감돕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아마 지구별에는 푸른 빛이 사라지겠지요. 비가 없이는 물을 쓸 수 없고, 비가 없이는 들과 숲에서 풀도 나무도 자랄 수 없어요.


  꽃은 정수기 물로 크지 않습니다. 열매는 수돗물로 익지 않습니다. 어느 목숨이든 페트병에 담긴 물을 달게 마시지 않습니다. 바닥이 흙인 내나 가람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야 싱그럽게 빛나는 목숨입니다. 시멘트로 덮은 바닥을 흐르면 내나 가람이 아니요, 시멘트로 가두는 댐에서 플라스틱이나 쇠붙이나 시멘트로 만든 길을 거쳐서 흐르도록 하는 물은 목숨을 살리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풀과 나무는 흙땅에 뿌리를 내려요.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이룬 땅에 뿌리를 내리는 풀이나 나무가 아닙니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뚫고 자라는 풀과 나무는 흙을 찾아 뿌리를 뻗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삶터를 뒤덮습니다. 시골도 도시도 온통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어씌웁니다.



.. 옛날에 물방아는 곡식을 빻는 일 말고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의 힘으로 무거운 해머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물방아도 있습니다. 이런 물방아가 있는 방앗간에서는 쇠를 두들겨 칼 또는 낫을 만들었습니다 ..  (15쪽)





  기스베르트 슈트로트레서 님이 글을 쓰고 가비 카벨리우스 님이 그림을 그린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창비,2004)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얻는 기운(에너지)이 어디에서 비롯하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지구별에서 어떤 기운을 얻어서 문명사회를 누릴 수 있는지 가만가만 알려줍니다. 석탄과 석유와 가스에 기대는 문명사회인데, 이 세 가지만으로는 문명사회가 버틸 수 없을 뿐 아니라, 머잖아 무너질밖에 없는 흐름을 밝힙니다.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를 읽는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이 책을 쓰거나 옮긴 분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을까요. 바람과 물과 해가 사람을 살리는 바탕이라면, 우리는 문명사회를 어떻게 가꾸어야 할까요. 바람과 물과 해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가 되어야 옳지 않나요. 바람과 물과 해를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과 문화가 되어야 바르지 않나요. 바람과 물과 해를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마을과 보금자리를 일구는 길을 찾아야 아름답지 않나요.



.. 과학자들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확실한 것은 열기가 나무의 탄수화물을 분쇄하고, 이때 많은 빛과 열이 방출된다는 것입니다. 이 빛과 열은 태양에서 나와 나무 속에 붙잡힌 에너지입니다 ..  (31쪽)



  그림책 《바람과 물과 태양이 주는 에너지》는 ‘과학’과 ‘문명’이라는 틀에서 바람과 물과 해를 바라봅니다. 바람과 물과 해에서 기운(에너지)을 얻는 흐름은 보여주지만, 막상 이런 기운을 왜 얻어야 하고 왜 누려야 하는지를 밝히거나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전기를 써야 하니 전기를 만들어야 하는 얼거리에 갇힙니다. 전기를 왜 써야 하는지, 전기를 쓰는 우리 사회와 문명은 어떤 모습인지를 밝히거나 보여주지 못해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쓸까요? 우리는 전기를 얼마나 써야 할까요? 마을을 수수하게 일구며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이 쓰는 전기는 아주 적어요. 그러나, 군사과학이라든지 전쟁무기라든지 군부대를 거느리느라 쓰는 전기가 대단히 많습니다. 핵무기를 비롯한 갖가지 전쟁무기와 군부대 때문에 전기를 엄청나게 쓰는 문명사회입니다. 미국도 러시아도 한국도 모두 똑같습니다.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을 치르며, 또 무슨무슨 운동경기를 치른다면서 쓰는 전기가 어마어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바람을 골고루 나누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물을 함께 나누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해를 함께 즐기는 삶인가 궁금합니다. 우리 몸을 살리는 숨결이라는 바람과 물과 해를 슬기롭게 맞아들이거나 나누는 길을 잊은 채, 앞날을 읽거나 그리지 못하는 채, 쳇바퀴를 도는 문명사회와 제도권교육이라고 느낍니다. 4347.5.2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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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바다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1
앤드루 바이어트 외 지음, 김웅서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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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보슬비 님 고맙습니다~! ^^


..


찾아 읽는 사진책 174



파란 별을 품은 가슴으로

― 아름다운 바다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1)

 앤드루 바이어트·앨러스테어 포더길·마서 홈즈

 김웅서·정인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2002.8.1.



  ‘The Blue Planet’이라는 이름으로 영국에서 나왔던 책을 읽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바다》(사이언스북스,2002)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The Blue Planet’이라 할 적에는 ‘아름다운’이라는 낱말은 없을 텐데, 너르며 깊은 바다를 보여주는 사진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보니, 이렇게 뜻을 바꾸어서 붙였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파란 별’이라고만 책이름을 붙이면 못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으니 “아름다운 바다”라는 책이름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을 둘러싼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헤아려 봅니다. 한국은 바다가 아름다운 나라일까요? 이웃 일본은 어떨까요? 이웃 중국과 러시아는 어떤가요? 한국과 꽤 가깝다고 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바다는 어떤가요?


  ‘마틴 파’라는 분이 찍은 사진을 보면, 쓰레기가 둥둥 떠서 흐르는 바닷가에서 아이와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 모습이 있습니다. 어른도 아이도 쓰레기가 둥둥 흐르는 곳에 발을 담글 뿐 아니라 몸을 담급니다. 그리고, 이 어른과 아이는 쓰레기가 둥둥 흐르는 곳에 쓰레기를 더 버립니다.


  나는 내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을 떠올립니다. 이때 우리 아버지는 나와 형을 데리고 네 식구가 곧잘 마실을 다녔어요. 자가용이 없이 시외버스와 기차를 타고 꽤 먼 데까지 마실을 다녔습니다. 이때에는 솥이랑 천막까지 짊어지고 마실을 다녔어요. 언젠가 동해 쪽으로 마실을 갔는데, 사람도 많고 쓰레기도 많았습니다. 가게는 바가지를 씌우기 바쁘고, 오줌을 누려고 하면 냄새가 고약합니다. 사람들은 바닷가에 놀러 왔는지 먹고 마시다가 쓰레기를 버리려 왔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도시를 떠나 ‘깨끗한’ 바다를 보러 마실을 왔으면, ‘깨끗한’ 바다가 ‘깨끗하게’ 잇도록 잘 돌보고 아껴야 할 텐데, 이런 손길을 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오늘 나는 두 아이를 거느리는 어버이입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바닷가로 마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택시를 불러 네 식구가 함께 바닷가로 마실을 가기도 합니다. 이른바 ‘여름 휴가철’에는 바닷가에 갈 생각을 안 합니다. 시골에 있는 우리 집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어 ‘여름 휴가철’에도 바닷가에 몇 차례 간 적 있는데, 들끓는 도시 관광객이 버리는 쓰레기가 차마 보기에 너무 끔찍해서 싫어요.


  관광객은 어떤 사람일까요. ‘깨끗한’ 시골이나 숲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도시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일까요? 바닷가에도, 골짜기에도, 마을에도, 들과 숲에도, 논둑과 밭둑에도 온통 쓰레기입니다.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은 아무것이나 다 버리고,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농약병과 비료푸대와 술병과 비닐 따위를 버립니다.


  한국과 이웃한 일본은 핵발전소가 터졌습니다. 이제 일본 바다는 방사능으로 더러워진 바다입니다. 러시아와 미국에서도 핵발전소가 터졌지요. 두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진 지 제법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방사능 찌꺼기는 사그라들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는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서 움직여요. 핵잠수함과 핵항공모함이 늘 움직입니다. 전투함이 바다를 가르고, 전투기가 하늘을 찢어요. 이런저런 전쟁무기는 모두 핵물질이나 석유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쓰레기를 버리지요. 게다가, 러시아와 미국 두 나라는 바다에서 핵무기 실험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한국과 이웃한 중국도 핵무기 실험을 숱하게 했고, 중국은 한국과 맞닿은 바닷가에 공장을 무섭게 때려지어요. 중국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한국으로 밀려옵니다. 한국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또 일본으로 밀려갑니다. 그러면, 일본 바닷가에서 버리는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요?


  아름다운 사진과 이야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자꾸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떠올립니다. ‘깨끗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을 떠올립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내뿜습니다. 도시를 버티려면 수많은 공장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쓰레기를 내놓고 매연을 뿜어야 합니다. 시골에서는 도시에 내다 팔 곡식과 열매를 엄청나게 쏟아내려고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아주 많이 씁니다. 도시사람을 먹이려고 닭공장과 소공장과 돼지공장을 돌립니다. 알에서 깬 지 한 달쯤 된 병아리를 재빠르게 살찌워서 닭고기로 만들어 냅니다. 닭공장에서는 알 낳는 닭을 잠을 안 재우고 사료를 끝없이 먹여서 닭을 ‘알 낳는 기계’로 들볶습니다.


  모두들 돈을 벌 생각으로 엉망이 됩니다. 도시와 시골은 돈 때문에 서로 엉터리가 됩니다. 도시에서는 돈 때문에 다투다가 다치고, 싸우다가 죽습니다. 시골에서는 돈 때문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쓰다가 흙을 망가뜨리고, 시골사람도 농약에 몸을 다쳐서 죽습니다.


  그렇지만, 바다는 아직 아름다운 바다입니다. 바다는 아직 파랗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지구는 아직 푸르게 빛나는 숨결입니다. 그러니까, 바다는 파랗게 빛나고, 뭍은 숲을 이루어 푸르게 빛납니다. 파란 빛깔과 푸른 빛깔이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노래가 됩니다. 물은 파랗게 맑을 때에 싱그럽고, 풀은 푸르게 밝을 때에 싱싱해요. 사람은 파란 기운과 푸른 기운을 함께 맞아들이고 드러낼 때에 아름답습니다.


  우리 가슴에 있는 파란 별을 느끼기를 빌어요. 우리 마음에 있는 푸른 꽃을 깨닫기를 빌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파란 별이 있어요. 사람이라면 모두 마음속에 푸른 꽃이 빛나요.


  아름다운 바다를 누리려면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다를 아름답게 가꾸려면 우리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이 모두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아름답게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으려면, 삶도 사회도 정치도 문화도 마을도 학교도 집도 모두 아름다운 빛이 흘러야 합니다.


  파란 별을 품은 가슴으로 함께 노래해요. 푸른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함께 춤추어요. 파랗게 꿈을 꾸고, 푸르게 사랑해요.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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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6
로저 뒤봐젱 지음, 서애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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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94



읽는 책과 살아가는 빛

―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로저 뒤봐젱 글·그림

 서애경 옮김

 시공사 펴냄, 1995.6.30.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책은 모으라고 있지 않습니다. 책이 있는 까닭은 이야기를 적어서 알려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담아 이웃한테 널리 퍼뜨리고 싶기에 책을 엮습니다.


  정치권력이나 사회권력이나 문화권력을 거머쥔 이는 이러한 권력을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뜻에서 책을 엮습니다. 권력을 움켜쥐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이는 이웃한테 사랑을 한결 따사로이 알려주거나 들려주고 싶어서 책을 엮습니다.


  끼리끼리 권력을 더 단단히 다지려고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자만 알 수 없다고 여겨, 다 함께 슬기를 빛내고 삶을 밝히는 길을 알도록 하고자 책을 엮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 이 지구별에는 두 갈래 사람과 삶이 있어요. 전쟁무기를 만들어 전쟁을 꾀해 돈과 이름과 힘을 거머쥐려는 갈래가 하나 있어요. 삶을 짓고 사랑을 나누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하려는 갈래가 하나 있습니다. 책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납니다. 신문과 방송도 이러한 갈래에 따라 태어나요.




.. 피튜니아는 하는 짓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을 받는 암거위야 …… 피튜니아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딱정벌레를 잡아 먹기도 하고, 클로버 이파리를 물어 뜯기도 하고 풀 이파리에 맺힌 이슬 방울을 쪼기도 했지 ..  (5쪽)



  로저 뒤봐젱 님이 빚은 그림책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시공사,1995)는 꽤 오래된 작품입니다. 미국에서 1950년에 처음 나왔어요. 한국말로는 1995년에 처음 나왔으니, 한국 어린이는 미국에서 마흔다섯 살 묵은 그림책을 누리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오래되었다거나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책이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가를 찬찬히 밝혀서 알려주거든요.



.. “옳아, 주인 집 아들 빌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옆구리에 끼고 오는 것을 보았어. 이건 책이야. 그래 맞아. 책이야! …… 이제 생각난다. 바로 며칠 전에 펌킨 씨가 빌에게 책은 아주 소중한 것이랬지. 펌킨 씨가 그랬잖아.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고.” ..  (8쪽)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수수한 암거위입니다. 여느 암거위처럼 풀밭을 돌아다닙니다. 벌레를 잡고 풀잎을 뜯으며 이슬을 마십니다. 더없이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하루를 누립니다. 아마 모든 들짐승이 이처럼 수수하면서 평화롭기에 사랑스러우면서 즐겁게 살아갈 테지요.


  들짐승이나 멧짐승한테는 ‘똑똑함’이나 ‘잘남’이 따로 없습니다. 더 높은 짐승이나 더 낮은 짐승이 없습니다. 더 높은 벌레나 더 낮은 벌레가 없습니다. 서로 얼크러집니다. 함께 어우러집니다. 같이 살아갑니다.


  이와 달리 사람들은 스스로 틀을 짓습니다. 아니, 사람들 스스로 틀을 짓는다기보다 문명사회에서 틀을 짓습니다. 문명사회가 된 뒤부터 제도권이라는 틀이 생기고, 제도권에서는 숫자로 삶을 가르지요. 숫자로 삶을 가르니, 은행계좌로 틀을 가르고, 집 넓이와 땅 넓이로 틀을 갈라요. 벌어들이는 돈과 따는 점수로 틀을 가릅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으로 틀을 짓고, 운동경기 또한 숫자로 틀을 짓습니다.


  우리는 삶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숫자로 틀을 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도권 울타리에 깃들어 문명사회에 젖어드는 사이에 어느덧 ‘삶을 누리는 길’이 아니라 ‘숫자에 몸을 맞추고 숫자에 마음이 얽매이는’ 나날이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쳇바퀴질을 해요. 쳇바퀴 삶이 되고, 쳇바퀴 지식이 되며, 쳇바퀴 직업과 학교가 됩니다.


  책을 100권 읽은 사람이 책을 1권 읽은 사람보다 낫지 않습니다. 책을 999권 읽은 사람이 책을 1000권 읽은 사람보다 못나지 않습니다. 책을 한 권조차 본 적 없는 사람이 책을 한 권 읽은 사람보다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을 들추지 않은 사람이 책을 백만 권쯤 들춘 사람보다 뛰어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삶은 숫자로 나누지 못합니다. 웃음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노래는 숫자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무슨무슨 방송이나 ‘순위 차트’에서 1등이 되어야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순위 차트’에서 100등이나 1000등쯤 하면 안 즐거운 노래가 아니에요.


  그림 한 점이 백 억원에 팔리면 훌륭한 작품일까요? 사진 한 점이 일 억원에 팔리면 빼어난 작품일까요? 글 한 줄을 천만 원에 팔면 놀라운 작품일까요?





.. 피튜니아는 주저앉아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끝내는 한숨을 내쉬었단다. “이제 알았다.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속에 넣어야 해. 지혜로워지려면 읽는 법을 배워야 해.” ..  (31쪽)



  졸업장은 종이 한 장입니다. 돈도 종이 한 장입니다. 책은 종이꾸러미입니다. 졸업장으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삶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책으로 삶을 가꾸지 않습니다.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기쁘게 웃으면서 하루를 누리면 삶이 기뻐요. 스스로 속삭이는 사랑이요, 스스로 나누는 사랑이고, 스스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이면 삶이 사랑스럽지요.


  책은 읽으라고 있습니다. 삶은 사랑하라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빛을 이웃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하루하루 가꾸면서 살림을 알뜰살뜰 다스릴 적에 삶이 빛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암거위 피튜니아는 책을 ‘들고 다니지 않’기로 합니다. 피튜니아는 책을 ‘읽고 생각을 기울이며 마음을 쓰고 사랑을 나누’는 길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4347.5.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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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국어사전
채인선 지음 / 초록아이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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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163



한국말을 가르칠 줄 모르는 어른들

― 나의 첫 국어사전

 채인선 글

 초록아이 펴냄, 2008.1.25.



  동화를 쓰는 채인선 님은 2005년에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쓰고, 2008년에 《나의 첫 국어사전》을 씁니다. 모두 1400 낱말에 이르는 올림말을 담고, 다섯 살부터 여덟아홉 살 어린이까지 보도록 책을 엮었다고 합니다. 한국은 한국말이 따로 있는 나라이지만, 막상 어린이가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올바르게 배우도록 이끄는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흐름에서 《나의 첫 국어사전》은 여러모로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왜 “나의 첫 국어사전”일까요? ‘나의’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은 ‘내’입니다. ‘나의’는 일본말 ‘私の’를 엉터리로 옮긴 번역 말투입니다. ‘너의’나 ‘우리의’도 모두 잘못 쓰는 말투입니다. 한국말은 ‘네’이고 ‘우리’입니다. 영어사전에서 ‘my’를 찾아보면 ‘내’라 풀이하지 않고 ‘나의’로 풀이해요. 영어사전도 한국말을 올바르게 다루지 못해요. 어린이가 처음 볼 한국말사전이라는데, 책이름부터 어긋나니 아쉽습니다.


  책을 들여다보면, ‘같다’를 풀이하며 “내 신발이 빨간색이고 동생 신발도 빨간색이면” 하고 적습니다. 이런 낱말풀이에서는 “내 신발”과 같이 바르게 적습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왜 엉터리가 되어야 했을까요?


  올림말을 살피면 굳이 안 실어도 될 낱말이 수두룩합니다. 짐승을 가리키는 이름은 ‘한국말사전’에 담을 까닭이 없습니다. ‘교통’이나 ‘예술’이나 ‘학교’ 같은 낱말을 “첫 한국말사전”에 왜 담아야 할까요? 주욱 살피면, “가방 가수 감옥 건물 고속도로 공원 공장 과자 과학자 광고 교실 교통 구급차 군인 금붕어 기계 기록 기린 냉장고 다람쥐 달 달걀 닭 독수리 동물원 동요 동화 돼지” 같은 올림말은 덜어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다 알 만한 낱말은 “첫 한국말사전”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첫 한국말사전”은 아이들이 한국말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슬기롭게 배우도록 돕는 책이 되어야 알맞습니다.


  책에 실은 모든 낱말을 살필 수는 없으나, 낱말풀이가 올바르지 않은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짚어 봅니다.





[가깝다]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거리가 짧은 거예요

→ 낱말풀이에서 ‘-의’를 함부로 자꾸 씁니다. 이 낱말풀이에서는 ‘-의’를 덜어야지요. 그리고 ‘거(것)’를 지나치게 씁니다. ‘것’을 자꾸 쓰는 말버릇은 우리 말투가 아니에요. 번역 말투입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한국말 이야기인 만큼, 이런 말투와 말버릇을 모두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가꾸다] 어떤 것을 돌보고 보살피는 거예요

→ ‘가꾸다’를 ‘돌보고 보살피는’이라 풀이하는데, ‘돌보다’와 ‘보살피다’는 무엇일까요? 채인선 님은 ‘돌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는 거예요”로 풀이하고, ‘보살피다’는 “정성껏 보호하고 돕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뒤죽박죽 돌림풀이입니다. 《나의 첫 국어사전》은 바로 이런 낱말들, ‘가꾸다·돌보다·보살피다’가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가운데] 가운데는 어떤 곳의 중간이에요

→ ‘가운데’를 ‘중간(中間)’이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면 어쩌지요? 아이도 어른도 이런 낱말풀이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가수] 노래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입니다

→ 아이들도 ‘가수’가 어떤 사람인지 알 테지요. 이런 낱말은 “첫 국어사전”에 실을 만하지 않습니다. 낱말풀이에서도 “직업으로 가진 사람”과 같은 글이 올바르지 않습니다. ‘가지다’라는 낱말은 이처럼 쓰지 않습니다. 이 글은 “직업으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라 적든지, 글 뒤쪽을 “직업인 사람입니다”라 적어야 올바릅니다.



[가장자리] 어떤 것의 둘레나 주위를 말해요

→ ‘둘레’는 무엇이고, ‘주위(周圍)’는 무엇일까요? 어른이 만든 《표준국어대사전》도 이런 낱말을 죄다 돌림풀이로 적을 뿐입니다. 두루뭉술한 돌림풀이는 안 해야 합니다.




[가정] 가족들이 한집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가정이라고 해요

→ 채인선 님은 ‘식구’라는 한국말을 안 씁니다. ‘가족(家族)’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결혼(結婚)’도 일본 한자말입니다. 한국말은 ‘식구’이고 ‘혼인’입니다. 왜 ‘혼인신고서’라 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왜 예부터 ‘혼인 잔치’나 ‘혼례식’이라 했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한국말을 가르치거나 들려줄 적에는 한국 문화와 삶도 함께 짚고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감사] 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거예요

→ 한국말은 ‘고맙다’입니다. ‘感謝’라는 한자말을 굳이 쓸 일이 없기도 하고, 이 사전에 넣을 일도 없습니다.



[감추다] 어떤 물건을 가리거나 숨기는 거예요

→ ‘가리다’와 ‘숨기다’를 써서 ‘감추다’를 풀이합니다. 이 사전에서 ‘숨기다’를 보면 “어떤 것을 안 보이게 하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숨기다’를 다시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뜻을 알 만한데, 그러면, ‘감추다’와 ‘가리다’와 ‘숨기다’는 또 어떻게 다른 낱말일까요?




[강하다] 바람이 강하다는 것은 바람이 몹시 세고 빠르게 부는 거예요

→ 외마디 한자말 ‘强하다’를 풀이하면서 한국말 ‘세다’를 넣습니다. 한국말 ‘세다’를 한자로 옮기면 ‘强하다’이지요. 이리하여, 채인선 님은 ‘세다’를 “강하고 힘이 많은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건널목] 찻길이나 기찻길을 건너기 위해 만든 장소입니다

→ 채인선 님은 한자말 ‘장소(場所)’를 자주 씁니다. 한국말 ‘곳’과 ‘데’와 ‘자리’를 쓰지 않습니다. 한국말을 알려주거나 밝히는 사전이 되어야 합니다.



[겉] 수박의 겉은 녹색이고

→ ‘녹색(綠色)’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초록(草綠)’은 중국 한자말입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한국말은 ‘풀빛’입니다.



[게으르다] 한 게으른 아이가 일하기 싫어하다 소가 되었다는

→ “한 게으른 아이”는 없습니다. 영어 번역 말투로 이런 보기글을 넣으면 어떡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게으른 아이가”라 적거나 “게으른 아이 하나가”로 바로잡아야겠습니다.





[계곡] 산과 산 사이에 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 채인선 님은 한국말 ‘골짜기’는 이 책에서 안 다루고, 한자말 ‘溪谷’만 다룹니다. ‘계곡’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풀이합니다. 한국사람은 어떤 낱말을 써야 할까요? 《표준국어대사전》 말풀이가 잘 보여주지요?



[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계절이라고 합니다

→ 채인선 님은 한국말 ‘철’을 이 책에서 안 씁니다. 한자말 ‘季節’만 다룹니다. 그런데 ‘철’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 계절(季節)”로 풀이해요. 어린이 사전이나 어른 사전이나 모두 엉터리입니다.



[고장] 기계나 물건이 잘못되어 쓸 수 없게 된 거예요

→ 한국말 ‘고장’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한자말 ‘故障’은 한국말 ‘망가지다’로 다듬어야겠지요.



[김치]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에요. 김치는 빨갛고 매워요

→ 한국사람이 고추를 먹은 지 얼마 안 됩니다. 김치를 ‘빨갛고 맵’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예부터 김치는 빨갛고 맵지 않았습니다. 예부터 김치란 소금에 절인 남새였어요. 더욱이, 한국사람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김치는 겨울을 나면서 누리던 먹을거리입니다. 문화와 역사와 삶을 제대로 살피고 바라보면서 올바로 다루어야 합니다. 오늘날 ‘빨간김치’를 널리 먹는다 하더라도, 김치는 ‘하얀김치’가 바탕이요, 소금에 절인 남새라는 밑뜻에서 테두리를 넓힐 뿐입니다.




[나쁘다] 좋지 않은 거예요

→ ‘나쁘다’를 이렇게 풀이하면 ‘좋다’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채인선 님은 ‘좋다’를 “무엇이 마음에 들 때나 도움이 될 때 좋다고 해요”로 풀이합니다. “나쁘다 = 좋지 않다”처럼 풀이하는 일은 바로잡아야겠습니다.



[닮다] 모양이나 행동이 비슷한 거예요

→ 채인선 님은 ‘비슷하다’를 “똑같지는 않지만 서로 같아 보이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같다’는 “키 차이가 없으면 키가 같다고 합니다”와 같이 적습니다. 이래저래 말뜻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습니다.



[더럽다] 때가 묻었거나 지저분한 거예요

→ ‘더럽다’와 ‘지저분하다’는 다른 낱말입니다. 다른 두 낱말을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더하다] 어떤 것을 다른 것에 합치는 거예요

→ 한국말 ‘더하다’를 풀이하면서 한자말 ‘合치다’를 쓰면 어떡하지요?




[덥다] 날씨가 더우면 북극곰은 하루 종일 물속에 들어가 있어요

→ ‘덥다’라는 낱말을 보여주면서 동물원 북극곰을 이야기합니다. 동물원은 어떤 곳일까요? 한국에서 살 수 없는 짐승을 억지로 데려와서 가둔 우리가 동물원인데, 이러한 동물원을 보여주는 한국말사전은 아이한테 어떤 넋을 밝힐는지 모르겠습니다.



[두렵다] 어떤 것이 무섭고 걱정이 되는 거예요

→ ‘두렵다’를 풀이하면서 ‘무섭다’라는 낱말을 쓰는데, 채인선 님은 ‘무섭다’를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서로 옹글게 돌림풀이가 됩니다. 참말 아무것도 알 길이 없습니다.



[마련]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거예요

→ ‘마련하다’라는 낱말은 ‘장만하다’와 ‘갖추다’를 함께 묶어서 살필 낱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찬찬히 살피지는 않고 ‘준비(準備)’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채인선 님은 ‘준비’를 “필요한 일을 미리 해 놓는 거예요”로 풀이합니다. “미리 해 놓는” 일이 ‘준비’라면 “미리 준비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모습] 사람의 생긴 모양이에요

→ ‘모습’을 풀이하면서 ‘모양’이라는 낱말을 씁니다. 다시 ‘모양’을 찾아보면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할 때 써요”로 풀이합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낱말풀이를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변하다] 어떤 것이 처음과 다르게 되는 거예요

→ 외마디 한자말 ‘變하다’입니다. 한국말은 ‘바뀌다’나 ‘달라지다’입니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배워야 합니다. 한국말을 배워야 한국사람입니다.



[실수] 조심하지 않아 일을 잘못한 거예요

→ ‘失手’는 한자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이 한자말을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으로 풀이합니다. 채인선 님은 《표준국어대사전》 낱말풀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자, 그러면 여쭙겠습니다. ‘잘못’은 무엇인가요?



[죽다] 살아 있지 않은 거예요

→ ‘죽다’를 ‘살다’와 맞서는 낱말로 풀이하면, ‘살다’는 또 무엇일까요?



[지루하다] 재미 없는 시간이 계속되는 거예요

→ 채인선 님은 ‘재미 없는’이라 띄어서 적으나, ‘재미없다’는 한 낱말입니다. ‘재미없다’와 ‘지루하다’는 서로 어떻게 다를까요? 그리고, 다른 한국말 ‘따분하다’는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요?



[피곤] 몸이 지치고 힘든 거예요

→ ‘疲困’은 한자말입니다. 이 낱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몸이나 마음이 지치어 고달픔”으로 풀이합니다. 채인선 님은 ‘고달픔’을 ‘힘듦’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또 여쭙겠습니다. ‘지치다’와 ‘힘들다’와 ‘고달프다’는 무엇을 뜻할까요?






  나는 《나의 첫 국어사전》이라는 책이 아주 엉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쁘게 잘 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국말을 다루는 눈길이나 손길이나 매무새나 넋은 그리 아름답지 않구나 싶습니다. 한국말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마는 《나의 첫 국어사전》입니다. 한국말을 아이들한테 슬기롭게 보여주지 않는 《나의 첫 국어사전》입니다.


  아직 한국에서 어린이가 볼 만한 한국말사전이 없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영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한국말을 잘못 다루거나 엉망으로 다루는 모습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이러한 잘못을 옳게 들여다보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무쪼록 《나의 첫 국어사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올림말을 가다듬고 낱말풀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제대로 엮은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어린이 한국말사전’이 나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4347.5.2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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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o8990 2022-02-0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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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2-02-05 08:22   좋아요 0 | URL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을 2014년에 썼는데
그 뒤로도 <어린이 우리말꽃>을 새로 쓰면서
여태 마무리를 못 짓는군요.
그래도 몇 해 뒤에는
새롭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즐겁고 상냥한
<어린이 우리말꽃>을 추슬러서 선보여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