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고양이야?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2 베틀북 그림책 10
기타무라 사토시 지음, 조소정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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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0



아이들 눈망울을 보셔요

― 나야? 고양이야?

 기타무라 사토시 글·그림

 조소정 옮김

 베틀북 펴냄, 2000.5.20.



  풀벌레가 노래하는 밤입니다. 아직 칠월인데 이 밤에 풀벌레 노랫소리만 들릴 뿐, 개구리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도 이런 여름밤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께에도 이런 여름밤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온 들판 개구리 노랫소리가 끊어집니다. 왜 개구리 노랫소리가 사라질까요. 왜 논에서 개구리가 울지 않을까요.


  풀벌레가 노래하는 곳도 그리 넓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풀숲이 있어야 노래할 수 있습니다. 풀숲이 없다면 풀벌레는 깃들기 어렵고, 풀숲이 없는 데에서 풀벌레는 알을 낳아 새끼를 보기 어렵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가 사라지는 데에서는 벌과 나비도 자취를 감춥니다. 개구리와 풀벌레와 벌과 나비가 사라지는 데에서는 어린이도 자취를 감춥니다. 다시 말하자면, 들이 들답지 못하거나 숲이 숲답지 못할 적에는 시골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니,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던 아이들을 몽땅 도시로 보내면서, 시골마을 자그마한 학교가 문을 닫고, 시골마을에 남은 늙은 할매와 할배는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을 쓰는 ‘새마을 농업’을 할 뿐입니다.



..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엄마 때문에 밥도 못 먹었어요. 엄마가 무지무지 화를 내더라고요. 나는 엄마 손에 붙들려 스쿨버스 타는 곳까지 끌려갔어요. 그렇게 학교에 가게 됐는데……. 그런데 아직도 내가 집에 있는 거예요 ..  (6쪽)




  도시에서는 ‘친환경’이나 ‘무농약’이나 ‘저농약’이나 ‘유기농’ 같은 이름을 붙인 곡식과 열매를 다룹니다. 도시에는 들도 숲도 없지만, 가까운 어느 가게를 가든 ‘농약을 안 썼다’고 하는 곡식이나 열매를 장만하기 쉽습니다.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것이 없는 도시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넘치고, 시골에서는 언제나 사람이 모자랍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기계가 넘치고, 시골에서도 언제나 기곗소리가 가득합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이 많아도 기계가 넘치며, 시골에서는 사람이 모자라기에 기계가 넘칩니다.


  생각할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온통 도시로 몰리는 오늘날 얼거리에서, 시골에 몇 안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농약 안 쓰는 농업’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를 낳으면 시골에서 키우지 않는 오늘날이고, 아이들이 자랄 적에 아이들더러 ‘너 농사꾼이 되렴’ 하고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는 오늘날인데, 왜 도시사람은 ‘농약 안 쓰거나 덜 쓴 것’을 그토록 찾으려 할까요.



.. 일어나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았어요. 고양이가 돼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죠. 고양이는 학교에 안 가도 되잖아요, 안 그래요 ..  (10쪽)





  마을마다 거의 비슷한 때에 농약을 칩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은 올해부터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렸’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농약 검사에서 걸렸’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안 쓰든 ‘친환경 이름이 붙은 농약을 쓰’든 해야 했을 테지만, 두 가지를 모두 어겼으니, 농약 검사를 할 때마다 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참으로 마땅한 일인데, 논에 농약을 치면 개구리가 모조리 죽습니다. 개구리를 비롯해서 거미와 잠자리도 다 함께 죽습니다. 이와 함께 제비와 수많은 새들이 죽고, 벌과 나비까지 죽어요.


  개구리와 거미와 잠자리와 제비와 새가 죽으면 어찌 될까요. 모기와 파리가 들끓습니다. 모기와 파리가 들끓으면 어떻게 할까요? 다시금 벌레 잡는 약을 끝없이 뿌리지요. 끝없는 수렁이 되풀이되는 셈이고, 끝 간 데 없이 쳇바퀴를 도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려고 농약을 칠까요. ‘새마을 농업’은 왜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을 앞세워 ‘수확량 늘리기’를 꾀할까요. 더 많이 거두어서 무엇이 좋을까요. 흙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비닐로 망가뜨리면, 이런 흙에서 이듬해에 무엇을 거둘 수 있을까요. 흙이 망가지고 들과 숲이 엉망진창이 된 시골에 어떤 어버이가 어떤 아이를 그대로 두면서 삶을 가꾸고 싶을까요.



.. 엄마는 마침내 아들에게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엄마는 걱정이 됐는지 의사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당장 와 달라고 했어요 ..  (27쪽)




  기타무라 사토시 님이 빚은 그림책 《나야? 고양이야?》(베틀북,2000)를 아이와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 날마다 늦잠을 자는 아이가 나옵니다. 아이 어머니는 날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느라 바쁩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한테 그저 밥을 먹여 얼른 학교로 보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사도 아이가 저마다 어떤 삶을 누리는지 살피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도 지치거나 고단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학교에 가기 싫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도 어른도 억지로 학교에 갑니다.


  학교란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왜 세웠을까요. 어른들한테 일자리를 주려고 만든 학교일까요.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겪게 하려고 만든 학교일까요. 학교에서는 어떤 지식을 어떤 교과서로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을까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삶을 가꾸는 어른으로 지내는가요.


  아이들 눈망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어른들은 서로서로 눈빛이 어떠한지 들여다볼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들이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는가요? 어른들은 눈빛이 해맑게 빛나는가요?


  교육을 학교에 맡기지 말아요. 아이들이 배울 것은 어른들이 먼저 스스로 배운 뒤, 아이한테 기쁘게 물려주어요. 삶을 사회나 복지나 문화에 맡기지 말아요. 스스로 삶을 가꾸면서 날마다 새롭게 노래를 불러요. 그리고, 노래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텔레비전으로 아이한테 노래를 가르치지 말아요. 어버이 스스로 즐겁게 삶을 노래하면서 이 노래를 아이들이 물려받을 수 있도록 해요.


  아이가 어떤 숨결인지 바라볼 수 있기를 빌어요. 아이로 지내면서 어른이 된 우리들은 서로서로 어떤 넋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무엇을 먹을 때에 우리 몸이 기쁘고, 어떤 일을 할 때에 웃음이 솟으며, 어느 곳을 보금자리로 삼아 어떤 마을로 일굴 때에 다 같이 어깨동무하면서 아름다울 수 있는지 생각하기를 빌어요.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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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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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5



삶을 바라보는 삶

―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글

 민병걸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2007.2.27.



  도시로 마실을 나와 아이들과 움직입니다. 개구지게 뛰논 아이들이 까무룩 잠들어 가슴으로 안고 걸어다닙니다. 길을 걸어갈 적에 ‘잠든 아이를 안은 사람’이 앞에 있어도 툭 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든 아이를 안은 사람’을 알아보고는 옆으로 비켜서 자리를 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해 툭 쳤다고 느껴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툭 치고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휘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낫거나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삶이 다른 만큼 생각이 다르며, 생각이 다르기에 마음이 다릅니다. 대통령이나 시장·군수를 뽑는 선거에서 이쪽한테 표를 주든 저쪽한테 표를 주든, 사람으로서는 모두 같아요. 그저 어느 한쪽에 마음이 갈 뿐입니다.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살핍니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출판사도 거의 모두 도시에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과 책은 으레 도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터도 삶터도 놀이터도 도시인 만큼, 도시와 얽힌 이야기가 아니면 다루지 않습니다. 도시가 아닌 곳 이야기를 다룰 적에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시골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헤아립니다. 시골에는 책방도 드물고 텔레비전 들여다볼 일도 드물며 전철도 없고 쇼핑센터나 백화점도 극장도 없습니다. 시골사람은 흙을 밟거나 시멘트로 덮은 도랑을 보거나 숲을 보거나 하늘을 보거나 새와 풀벌레를 봅니다. 시골사람한테는 흙과 풀과 나무와 냇물과 빗물과 햇볕이 대수롭습니다. 늘 곁에 있는 것을 사귀면서 돌아봅니다.



.. 디자인이란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뛰어난 인식이나 발견은 생명을 지니고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긍지를 갖게 해 준다 … 일본의 산업 디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생활문화 쪽이 아니라 경제라는 목표를 향하고 있다 … 기묘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  (10, 20, 33쪽)



  예부터 누구나 ‘흐르는 물’을 마셨습니다. 흐르는 물을 받아 밥을 짓습니다. 흐르는 물에 옷을 담가서 빨래를 합니다. 흐르는 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습니다. 예부터 ‘흐르는 물’을 누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부터 누구나 ‘흐르는 바람’을 들이켰습니다. 흐르는 바람으로 목숨을 건사하고, 흐르는 바람을 쐬며 시원하다고 느꼈으며, 흐르는 바람을 따라 날씨와 철을 살폈습니다. 옛날부터 누구나 바람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오늘날 도시에서는 흐르는 물도 흐르는 바람도 누리지 않습니다. 아니, 도시라는 곳에서는 흐르는 물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좁은 곳에 몰려들다 보니, 흐르는 물로는 목이 말라 죽을는지 모릅니다. 도시라는 작은 곳에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왁자지껄 부산스러우니, 흐르는 바람으로는 숨이 막혀 죽을는지 모릅니다.


  어떤 삶을 누리는 하루일까요. 어떤 삶을 누리려고 돈을 벌거나 학교에 다닐까요. 이웃과 나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생각을 밝힐까요. 우리 식구는 저마다 어떤 삶을 누리고픈 꿈을 키울까요.



.. 별것 아닌 작은 한마디에도 커뮤니케이션의 씨앗이 숨어 있다 … 말하자면, 정보를 다음 글줄로 연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보를 소중히 하겠다는 관점에서 책의 매력을 의식하고 있다 … 노동력이 싼 나라에서 만들어 비싼 나라에서 팔자는 발상에는 영속성이 없다 … 일본의 미의식은 주변에 있으면서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예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  (50, 110, 119, 172쪽)



  지난날에는 시골살이를 하며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쓰레기가 나올 일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골살이를 하더라도 쓰레기가 많습니다. 비닐과 농약과 비료를 잔뜩 쓰니까, 비닐쓰레기가 해마다 넘치고, 빈 농약병과 빈 비료푸대가 널브러집니다.


  예나 이제나 도시에서는 쓰레기가 나옵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를 건사할 길이 없습니다. 공장에서 만드는 물건은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 적에 늘 쓰레기가 뒤따릅니다. 공장은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힙니다. 공장은 물과 바람과 흙을 더럽히면서 돈을 법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돈을 버는 모든 일은 쓰레기를 내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쓰레기가 될 것을 만들면서 돈을 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때에는 쓰레기를 내놓지 않습니다. 돈과 쓰레기는 언제나 함께 있는 셈입니다. 시골에서 비닐과 농약과 비료를 왜 쓰느냐 하면, 돈을 벌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공장과 고속도로와 발전소를 왜 만들까요. 돈을 벌려고 만들지요. 경제개발은 왜 할까요. 돈을 벌려고 하지요. 아이들을 왜 대학교에 넣으려고 하나요. 돈을 벌라고 그러지요.


  삶을 일굴 적에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삶을 지을 적에는 쓰레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을 가꿀 적에는 우리 삶터와 일터와 쉼터 모두 아름답게 빛나고 푸르게 우거집니다. 그러니까, 삶을 일구지 않고 돈을 일구면 쓰레기와 가깝습니다. 삶을 일구는 사람은 사랑을 일구고, 사랑을 일구면서 생각과 마음을 일구며, 생각과 마음을 일구기에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 감각이 뒤떨어진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한다면 감각적으로 뒤떨어진 상품이 만들어지지만 그 나라에서는 잘 팔린다. 감각이 좋은 나라에서 정밀한 마케팅을 하면 감각적으로 뛰어난 상품이 만들어지고 그 나라에서도 잘 팔린다 … 자연과 만난다는 것은 ‘기다림’이며, 기다림에 의해서 어느새 자연의 풍요가 주변에 충만해진다 … 미래의 비전을 마련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흥행’을 계획한다는 발상은 이제 그만 버리는 편이 좋다. ‘마을 부흥’ 같은 단어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게 해서 ‘부흥된’ 마을은 무참하다. 마을은 부흥시키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매력은 오로지 풍경과 정감에 달려 있다.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요와 성숙에 진심으로 어울려 그것이 성취된 후에도 ‘홍보’ 등에 연연하지 않고 깊은 숲이나 더운 김 저편에 몰래 숨겨 놓으면 된다. 뛰어난 것은 반드시 발견된다 ..  (149∼150, 179, 190쪽)



  하라 켄야 님이 쓰고 민병걸 님이 옮긴 《디자인의 디자인》(안그라픽스,2007)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디자인을 디자인한달는지, 디자인을 디자인으로 바라본달는지, 디자인을 생각하는 디자인이랄는지, 디자인을 꿈꾸는 디자인이라 할 만하달는지, ‘디자인’으로 삶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 고속도로는 땅속 깊숙한 곳까지 파 내려가 교각을 건설하기 때문에 토지의 지하 수계를 확실하게 분리시킨다 … 환경에 주는 충격이 약한 이벤트는, 공공사업 즉 커다란 토건 공사를 기대하는 지역 경제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디자이너가 할 일은 정보의 핵심을 누구나 섭취하기 쉬운 상태로 친절하게 정리 정돈해 주는 것이다 …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말을 과거의 것으로 돌리지 말고 그 내용을 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215, 216, 227, 236쪽)



  하라 켄야 님은 디자인을 하는 사람인데, 고속도로가 어떤 곳인지 읽을 줄 압니다. 토목건설이 어떤 일인지 살필 줄 압니다. 삶과 숲과 도시와 시골을 읽을 줄 압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되는 이들은 고속도로가 어떤 곳인지 읽을 줄 알까 궁금합니다. 삶과 숲과 도시와 시골을 읽을 줄 아는 정치 우두머리는 몇이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사랑을 읽거나 마음을 읽는 지식인이나 학자는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돈을 읽는대서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돈을 읽으니 돈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삶을 읽으면서 삶으로 나아갑니다. 사랑을 읽을 적에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숲을 읽는 사람은 숲으로 나아가고, 빛을 읽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갑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읽으려 한다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으로 나아가려 하겠지요.


  마음밭에 품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흐릅니다. 마음밭에 심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자랍니다. 마음밭에 건사하는 씨앗에 따라 삶이 다르게 이루어집니다.


  어느 길을 가든 내가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어느 쪽으로 나아가든 내가 스스로 다스리는 하루입니다. 해가 나면서 아침이 밝고, 바람이 불면서 상큼하며, 구름이 흐르면서 그늘이 생깁니다. 비가 내리면서 숲이 노래하고, 비가 그치면서 꽃송이가 벌어지면서 벌과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지구별 이웃이 서로 아끼면서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는 길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4347.7.1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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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코 3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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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34



따뜻해졌어?

― 미카코 3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1.7.30.



  내가 곁님을 주무르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곧잘 아버지나 어머니를 조물조물 주물러 주곤 합니다. 조그마한 손으로 커다란 어버이 몸뚱이를 주무릅니다. 아이들 손아귀에 얼마나 힘이 있겠느냐 싶지만, 살살 만지는 손길에 묻어나는 따사로운 빛을 느낍니다. 꾹꾹 눌러 주지 않아도 개운합니다. 힘껏 짚어 주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더운 여름날 늘 아버지가 아이들한테 부채질을 선물합니다. 가끔 아이들이 아버지한테 부채질을 돌려줍니다. “아버지, 덥지요?” 하면서 이마와 콧잔등에 땀을 내면서 부채질을 합니다. “괜찮아. 고마워. 너희들이 부채질 받아.” 하면서 부채질을 다시 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압니다. 저희한테 다가오는 느낌이 즐거움인지 서운함인지 쓸쓸함인지 기쁨인지 모두 압니다. 아이들한테 어른들이 따사로운 손길을 내미는지 거친 손길을 뻗는지 모두 압니다. 사랑은 새로운 사랑이 되어 퍼집니다. 미움은 새로운 미움이 되어 번집니다.



- “잔뜩 있네. 비슷비슷한 색이.” “잘 봐. 이건 진한 빨강. 그 옆은 오렌지 빛이 도는 거. 이건, 장미색. 이건 진짜 장미꽃이 들어 있는 거라서 내가 산 물감 중에서 제일 비싸. 한번 맡아 봐.” “내가 왜?” “됐으니까 빨리!” (6∼7쪽)





  아직 수저질이 서툰 아이들한테 밥을 떠먹이곤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수저질이 익숙해지는 어느 때에 저희 작은 숟가락에 밥을 떠서 내밉니다. 이러면서 한 마디를 붙이지요. “자, 먹어.” 그래, 네가 주는 밥 맛나게 먹을게.



- “따뜻해졌어?” (18쪽)



  바람이 싱그럽게 불면서 들을 간질입니다. 바람이 푸르게 불면서 숲을 보듬습니다. 바람은 시골에서도 불고 도시에서도 붑니다. 바람은 시골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한테도 불고, 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자동차 지붕에도 붑니다.


  바람은 어떤 빛일까요. 바람은 어떤 숨결일까요. 바람 한 점은 우리한테 어떤 노래가 되어 스며들까요.


  바람을 마시면서 풀이 돋습니다. 바람을 머금으면서 나무가 우거집니다. 바람을 들이켜면서 풀벌레와 개구리가 노래합니다. 바람을 쐬면서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키웁니다.





- “뭐 먹고 싶은 거 없니?” “음. 딱히 없어. 어리광도 좀 부리고 그래. 아플 때는 아이 때로 돌아가도 되는 거야!” (50쪽)

- “토끼 만들어 줘!!” “사과 먹고 싶어?” “토끼 만들어 줘! 아니야. 잘라서 토끼로 만드는 거야!” “잘라서? 음.” “거기서 멈춰! 반 되면! 귀 만들어 줘. 여기 있는 사과도 몽땅!” “뭐?” (59쪽)



  만화책 《미카토》(미우,2011) 셋째 권을 읽습니다. 수수한 이야기가 감도는 만화책 《미카코》를 그린 쿄우 마치코 님은 어떤 넋으로 지구별을 바라볼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나온 이녁 만화책은 아직 《미카코》뿐인데, 이 만화책 한 권을 거쳐 만화쟁이 한 사람 숨결을 어느 만큼 받아마실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사랑은 작은 마을에 작게 드리웁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노래는 작은 마을에 작게 스며듭니다. 작은 아이들이 작게 빚는 꿈은 작은 마을에 작은 씨앗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자그마한 나무로 자랍니다.





- “미도리카와 애인 말이야!! 있는 거 왜 숨겼어? 그리고 그 사람 대학생이라며? 선생님이라며? 그래도 되는 거야?” “애인 같은 거 없어. 다 거짓말이야.” “그럼……. 그럼! 없는 거면 우리 사귀자!” (132∼133쪽)



  사랑은 교과서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꿈은 대학입시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노래는 졸업장에서 샘솟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책에서 흐르지 않습니다. 한겨울에 따뜻하게 내민 작은 손에서 사랑과 꿈과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한여름에 시원하게 내민 작은 손에서 이야기와 노래와 꿈과 사랑이 자랍니다. 4347.7.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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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 어린이를 위한 사진 동화 시리즈
노정환 글, 황헌만 사진, 김승태 감수 / 소년한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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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09



아주 작은 아이들

― 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

 황헌만 사진

 노정환 글

 소년한길 펴냄, 2009.6.15.



  아이들은 아주 작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사회에서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오가야 하는 아이들은 아주 작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느 만큼 자라면 유아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넣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른들은 ‘어른으로서 해야 한다는 다른 일’을 합니다. 아이가 삶을 배우거나 사랑을 느끼거나 생각을 북돋우도록 돕는 모든 일을 남한테 맡깁니다. 어른들은 얼마나 바빠서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 맡길까요.


  아주 작은 아이들은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학교와 학원에 다녀 줍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라는 대로 학교와 학원에서 수험생이 되고 입시지옥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스무 살이 지나고 서른 살이 되면, 저를 낳아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던 어버이가 하던 일을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 “네 덕분에 씨앗은 맺혔지만, 바람이 불어와 씨앗들을 멀리 실어다 줘야 해. 그래야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거든.” “걱정 마! 내가 바람을 만들어 줄게.” ..  (6쪽)





  사랑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줍니다. 꿈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꿈을 물려줍니다. 그러면, 돈을 물려받은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이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면 이녁 아이한테 돈을 물려줄까요?


  입시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입시학원을 차리기도 하고 과외강사가 되기도 합니다. 잘 보셔요. 입시미술을 배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입시미술학원에서 강사 노릇을 해요. 입시음악을 배운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가요? 입시체육을 배운 아이들은 무엇을 하지요?


  삶을 가꾸는 길을 배운 아이들은 언제나 삶을 가꾸면서 이녁 삶을 즐겨요. 삶을 사랑하는 길을 배운 아이들은 늘 삶을 사랑하면서 이녁 삶을 누려요. 삶을 꿈꾸는 길을 배운 아이들은 늘 삶을 꿈꾸면서 이녁 삶을 나눠요.



.. “안녕? 나는 노린재야. 네 엄마랑 친한 친구란다.” “어, 정말요?” “응, 이제부터 내가 엄마 대신 네 곁에 있어 줄게.” ..  (21쪽)




  아이들은 어른 옆에 서면 작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구별 테두리에서 바라보면 작습니다. 너른 우주 테두리에서 헤아려 봐요. 어른이라는 목숨은 얼마나 작은가요. 지구별과 우주라는 눈길로 바라보면, 어른은 아이와 똑같이 아주 작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이도 어른도 모두 작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큽니다. 서로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서로 아름다운 벗님입니다. 서로 아름다운 사이입니다.


  기쁘게 춤추고 즐겁게 노래하는 어른과 아이 사이로 지내기를 빌어요. 살가이 웃고 환하게 어깨동무하는 사이로 어우러지기를 빌어요. 다그치거나 닦달하지 말아요. 꾸짖거나 나무라지 말아요. 그저 따사로이 안아요.



.. 노린재 애벌레는 이슬과 민들레 잎의 즙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  (34쪽)




  황헌만 님이 사진을 찍고 노정환 님이 글을 쓴 《아주 작은 생명 이야기》(소년한길,2009)를 봅니다. 놀랍다 싶은 모습을 잘 잡아챈 사진입니다. 사진에 맞추어 글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이웃을 따사롭게 바라보는 눈길을 이 책에서 물씬 느낄 만합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수많은 숨결을 깊이 헤아리도록 돕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어제 하루 우리 집 두 아이를 어느 만큼 따사롭게 어루만졌는지 돌아봅니다. 얼마나 따사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얼마나 따사로운 눈빛으로 마주했는지 돌아봅니다. 나는 내 어버이나 내 둘레 어른들이 ‘나한테 했듯이 내 아이한테 해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대로 우리 아이한테 할’ 일이 아닙니다. 예부터 고이 흐르는 사랑을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가장 참다우면서 밝구나 싶은 사랑을 스스로 길어올려서 우리 아이들한테부터 나누면서 하루를 일굴 노릇입니다. 내 마음속에 깃든 작은 넋을 꺼내어 내 곁에 있는 작은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면서 오늘 하루 새롭게 열자고 다짐합니다. 4347.7.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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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서 <책빛숲>을 소개하는 글을 써 주었습니다.

잘 살펴 주어서 참 고맙다고 느낍니다.

이 작은 책이

우리 책마을에 사랑스러운 씨앗이 될 수 있도록

예쁜 징검돌을 놓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책과 삶]헌책방 단골 23년 ‘시간의 풍경화’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 책빛숲, 아벨서점과 배다리 헌책방거리…최종규 | 숲속여우비 | 384쪽 | 1만5000원


개인적 일기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저자 최종규가 군에서 제대한 직후인 1998년부터 두 아이의 아빠로 살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드나들며 남겨놓은 개인의 기록이다. 글과 더불어 직접 촬영한 사진들도 수록했다. 책은 하나의 공간을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이 그려놓은 ‘시간의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짧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옴니버스 소설, 혹은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저자는 이제 마흔 살이다. 그는 인천 배다리에 자리한 여러 헌책방 중에서도 특히 아벨서점의 단골이다. 이 책방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2년 7월, 저자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 살 수 없었던 독일어 교재가 물어 물어 찾아간 아벨서점에 있었다. 그때부터 주마다 두세 차례씩 아벨서점을 드나들었다. 말하자면 그는 ‘아벨서점 키드’였다. 군에서 제대해 PC통신 ‘나우누리’에서 ‘헌책방 사랑누리’라는 모임을 만든 것이 헌책방 거리에 대해 글을 쓴 계기였다. 카메라 조리개와 초점을 간신히 맞출 정도의 아마추어였지만 사진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책은 내레이션이 풍성한 한 편의 흑백영화를 보는 듯하다. 저자는 일기를 쓰듯이 헌책방거리에서 만난 책들과 그곳의 풍경을 묘사한다. 명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아벨서점의 책시렁에는 대하소설 <임꺽정>과 <객주>가 얹혀 있었다.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다 <객주>를 집어든 그는 “열 권에 1만5000원, 신문 배달을 해서 한 달 버는 일삯 32만원 가운데 1만5000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자신보다 어린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소설책을 사는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기도 하고, 서점을 나가는 여학생들의 뒷모습을 향해 “예쁘기도 하지!”라며 중얼거리는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이런 유의 책이 대개 그렇듯,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저자는 2001년부터 기획·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전남 고흥 동백마을에서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라는 모임을 꾸리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간 책 중에는 <보리 국어사전>도 있다. 그의 배다리 헌책방거리 나들이는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차츰 뜸해진다. 일과가 바쁘고, 전남 고흥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3년간의 헌책방거리 나들이는 올해 6월3일의 일기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배다리의 대창서림을 찾아가 이번에도 역시 몇 권의 헌책을 산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책을 들고 서점 문을 나서는 순간, 거리에는 비가 내리고 아이들은 비를 맞으며 깔깔거린다. 책의 마지막 미장센마저도 흑백영화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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