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6
스티븐 존슨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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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7



바람이 들려주는 교향곡

― 말러, 그 삶과 음악

 스티븐 존슨 글

 임선근 옮김

 포노 펴냄, 2011.1.15.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갑니다. 여름이 한껏 무르익은 칠월 막바지 들길을 자전거로 지나갑니다. 바람이 불면서 볏포기가 눕습니다. 바람이 멈추면서 볏포기가 섭니다. 바람이 다시 불어 볏포기는 다시 눕고, 바람이 이리저리 불면서 솨르르 솨솨 스스 소리를 냅니다.


  자전거를 세웁니다. 들 한복판에서 바람노래를 듣습니다. 푸르게 일렁이는 물결이 펼쳐집니다. 눈으로는 푸른 물결을 바라보고, 귀로는 벼물결 소리를 듣습니다. 여름날 들에서 누리는 이 빛과 소리는 교향곡과 같구나 싶습니다. 들빛은 들노래로 되고, 들노래는 들빛이 됩니다. 서로 어우러지는 풀내음입니다.



.. 말러는 특유의 격정으로 답했다. “아니요.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 … 왜 말러를 설명하면서 ‘자기 몰입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매혹적’이라고 했을까? 그의 음악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아름답고 생생하게 극적이며 뛰어나게 창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말러 음악에서 말러를 인식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  (15, 16쪽)



  볏포기가 그윽하게 노래를 베풀지만, 안타깝게도 풀벌레 노랫소리는 못 듣습니다. 아니, 군데군데 더러 풀벌레가 가늘게 노래를 합니다. 바로 어제그제 농협에서 항공방제를 했습니다. 이틀에 걸쳐 마을 들판 구석구석에 농약을 뿌렸습니다.


  지난해와 그러께에는 친환경농약을 뿌린다고 했으나, 이제는 ‘그냥 농약’을 뿌립니다. 무척 무서운 농약을 헬리콥터를 띄워 샅샅이 아주 많이 뿌립니다. 이러다 보니 풀벌레와 개구리가 거의 모조리 죽습니다. 논에 우렁이를 푼 곳이 있지만, 우렁이도 농약을 먹고 죽습니다. 나비와 벌이 자취를 감춥니다. 잠자리도 많이 줄었습니다. 날벌레와 애벌레를 먹고 살아가는 새도 여러모로 줄어듭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는 있으나, 이밖에 다른 노래가 거의 없습니다. 무척 스산한 여름입니다. 시원하거나 싱그럽지 못한 여름입니다.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노래하지 못하는 시골 들판이라면, 이곳에서 어떤 열매가 자랄까 잘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간질이면서 찰랑거리기는 하나, 마을 언저리에서 나무를 구경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나무그늘을 싫어하기에 마을에 큰나무가 없습니다.



.. 그는 평생 동안 이렇듯이 자연에 열중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경치와 소리에 둘러싸여 작곡을 할 때 그는 가장 행복해 했다 … 아직까지 전해지는 이 작품들은 비록 가볍지만 앞으로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할 것임을 알리는 예고편이다. 이 곡들에서 이미 말러는 당대 표현 관습의 한계에 저항하고 있었다 … 슬픔은 말러가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해 주었다 ..  (25, 35, 38쪽)



  자전거를 달려 골짜기로 갑니다. 그나마 멧골에 농약을 뿌리지는 않았으니, 숲으로 깃들 적에는 풀벌레 노래를 듣습니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풀벌레입니다. 귀뚜라미가 멧길에서 폴짝폴짝 뜁니다. 그리고 이곳과 저곳에서 멧새가 지저귑니다. 마을과 들에서 듣지 못한 다른 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과 골짝물에 온몸을 담급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며, 나뭇잎이 서걱이는 동안, 풀벌레와 멧새가 웁니다. 바야흐로 큰 노래가 됩니다. 싱그럽게 살아서 숨쉬는 너른 교향곡이 이루어집니다.


  땀으로 옴팡 젖은 몸을 골짝물로 씻고 나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스티븐 존슨 님이 쓴 《말러, 그 삶과 음악》(포노,2011)을 읽습니다. 지휘를 하고 교향곡을 쓴 말러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말러라는 사람은 노래를 지으면서 “심판은 없다. 죄인도 의인도 없다. 대단한 것도 하찮은 것도 없다. 징벌도 보상도 없다. 벅찬 사랑의 느낌이 우리로 하여금 앎과 삶의 기쁨에 젖게 한다(75쪽).” 하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직 그 누구도 이토록 오묘한 자연의 이면을 간파하지 못했어(95쪽).” 하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말러, 그 삶과 음악》을 읽으면, 말러라는 사람이 노래를 지으려고 혼자 들어간 조그마한 오두막 사진이 있습니다. 참말 자그마한 오두막인데, 오두막은 숲 한복판에 있습니다. 오두막 바로 앞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우뚝 솟았습니다. 말러라는 사람은 이곳에서 노래를 짓다가 곧잘 바닥에 크게 드러누웠다는데, 크게 드러누워야 땅이 들려주는 기운을 잘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지요.



.. 이 해를 거의 빈 오페라 일에 매달려 보내면서 말러는 ‘세상의 소란’에 너무나 깊이 말려들어 있었다. 사랑과 음악과 조용한 땅에서의 평화에 자신을 내맡기고 싶어 하는 내용은 여름휴가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말해 준다 … 제9번 교향곡에 죽음의 그림자가 떠돌긴 하지만 이것이 꼭 말러가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말의 마지막 몇 마디에서 말러는 ‘우리는 아이들을 태양이 빛나는 언덕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 날씨 좋은 저 놓은 언덕 위에서’라는 가사를 담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제4곡의 마지막 서정적인 프레이즈를 바이올린 선율에 실어 인용한다 ..  (122, 194∼195쪽)



  《말러, 그 삶과 음악》에는 시디가 두 장 함께 있습니다. 눈으로는 책에 적힌 이야기를 읽고, 귀로는 책에 깃든 시디를 틀어서 노래를 듣습니다. 말러라는 사람이 어떤 넋으로 노래를 지었는지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말러라는 사람이 가락에 담고 싶었다는 ‘숲노래’는 무엇이었을는지 가만히 귀여겨듣습니다.


  어디에서 바람이 불고, 어디에서 풀이 울며, 어디에서 풀벌레와 새가 지저귀는지 찬찬히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물이 흐르고, 어디에서 물결이 일며, 어디에서 구름이 흐르는지 하나하나 짚습니다.


  바람이 교향곡을 들려줍니다. 다만, 바람 혼자서 교향곡을 들려줄 수 없습니다. 바람을 쐴 풀벌레와 개구리와 멧새가 있어야 합니다. 풀을 아끼고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해님이 방긋 고개를 내밀고, 구름이 상긋상긋 웃으며, 비와 눈과 무지개가 골고루 어울려야 합니다. 달과 함께 별이 반짝이고,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가 있어야 하며, 아이들과 숲놀이를 즐기는 아버지가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바람이 되어 노래를 짓습니다. 스스로 바람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노래를 듣습니다. 스스로 바람빛이 되어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 바람내음으로 거듭나면서 노래에 젖어듭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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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7-2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우연히 말러교향곡 부활을 듣고 말러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몇 년전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단이 말러2번 연주를 했는데 그 곳에 있던 친구가 그 연주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라더군요. 부럽게도 ㅎㅎ

숲노래 2014-07-27 10:44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시디로 듣고 나서
유투브로 알아보니
여러모로 노래를 듣기가 좋은 환경이 되었더군요~
인터넷은 이럴 때에 참 고맙구나 싶어요.


꼬마요정 2014-07-27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으로 처음 댓글 다는데 어렵네요ㅜㅠ 풀벌레도 없고 나무도 없다니.. 안타깝습니다.

숲노래 2014-07-27 10:44   좋아요 0 | URL
농약을 엄청나게 뿌려대니 풀벌레는 거의 다 죽고,
논이고 밭이고 마당이고 햇볕이 더 많이 들어오라면서
나무를 죄 베어서 없애니
길에도 마을에도 나무가 아주 드물답니다 ^^;;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8
니시마키 가야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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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3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

―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

 니시마키 가야코 글·그림

 이선아 옮김

 비룡소 펴냄, 2007.6.1.



  밥이 맛있는 까닭은 갖은 솜씨를 부려서 멋지게 차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한테 따스한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따스하게 차렸기 때문입니다. 라면 한 그릇이든 가락국수 한 접시이든 모두 맛있습니다. 즐겁게 웃으면서 해님과 같은 사랑을 담아서 내미는 밥 한 그릇이 새롭게 기운을 차리도록 이끕니다.


  날마다 기쁜 날입니다. 태어난 날이라거나 어떤 기림날이기에 기쁜 날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쁜 날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니 어느 하루인들 안 기쁜 날이 될 수 없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내리는 날이든, 몹시 더운 날이든 매우 추운 날이든, 우리한테는 하루하루 한결같이 아름답게 기쁜 날입니다.


  한 해 가운데 하루만 골라서 케익을 굽거나 떡을 빚을 까닭이 없습니다. 날마다 케익을 구워도 되고, 날마다 떡을 빚어도 됩니다. 우리 삶에서 오늘 하루는 가장 새로우면서 빛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날마다 차려서 날마다 먹는 밥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맛난 숨결이 됩니다.



.. 사짱은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었어요. 엄마는 늘 “천천히 먹어야지.” 하고 말하지만 오늘은 그럴 짬이 없어요. 왜냐하면, 쉿, 엄마한텐 비밀이거든요 ..  (2쪽)




  꼭 자가용을 달려서 먼 데로 바람 쐬러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기차를 타고 한참 달리는 곳까지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꼭 배나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를 다녀와야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마을 한 바퀴를 돌아도 재미있습니다.


  선물은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나들이도 언제나 마음으로 합니다. 선물로 꽃을 한 송이 꺾어도 되고, 선물로 삼으려고 꽃을 한 다발 꺾어도 됩니다. 들에 나가 꽃을 종이에 곱게 그린 뒤, 그림을 선물할 수 있어요. 들에서 만난 꽃밭을 가슴으로 듬뿍 안아 노래를 하나 지은 뒤, 노래를 불러서 선물할 수 있습니다. 들꽃 이야기를 글로 써서 편지를 선물해도 돼요. 들꽃을 사진으로 담아 넌지시 보여주듯이 선물할 수 있어요.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하루이기에,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이 됩니다.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마음으로 날마다 새로우면서 기쁜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어 보셔요.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즐겁습니다. 아이 손에 내 손을 얹어 보셔요. 손을 맞대기만 하더라도 따사롭습니다.



.. 사짱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어요. “엄마, 왜 그래?” 사짱이 묻자, 엄마가 문을 빠끔 열고는 물었어요. “저 애들, 네 친구니?” ..  (22쪽)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가슴에 안기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에 업히고 싶습니다. 품에 안기면서 포근하고, 품에 안으면서 웃음이 피어납니다. 등에 업히면서 신나고, 등에 업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아이와 함께 날마다 새로운 삶을 지으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빨래를 하면서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아이를 재우고, 설거지를 하며, 비질을 하는 동안 노래가 샘솟습니다. 밭일을 하거나 들일을 할 적에도 모두 노래를 했어요. 길을 걸으면서 노래를 했고, 불을 지피거나 나무를 하면서 모두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노래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대중노래를 듣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지만, 스스로 내 삶에서 내 노래를 길어올리는 사람을 만나기 아주 어렵습니다.


  왜 노래를 짓지 않을까요. 왜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요. 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짓지 않을까요. 왜 언제나 새로운 삶으로 사랑을 짓지 않을까요.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물려주지 않거나 왜 아이들한테 사랑을 가르치지 않을까요.  



.. 혼자 남은 꼬마 늑대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사짱이 깜짝 놀라며 꼬마 늑대한테 다가가 물었어요. “왜 그러니, 꼬마 늑대야? 수프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났어?” 꼬마 늑대가 잘래잘래 고개를 흔들었어요. 그러더니 이제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어요 ..  (32쪽)




  니시마키 가야코 님이 빚은 그림책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나》(비룡소,2007)를 읽습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혼자서 그림책을 읽습니다. 나는 아이 곁에서 아이가 그림책 읽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가 한 번 다 읽은 뒤, 책에 적힌 글월을 몇 가지 다듬습니다. “닭고기 수프가 얼룩덜룩(4쪽)”은 “닭고기 국물이 얼룩덜룩”으로, “사짱은 지금 들판으로 가고 있답니다(6쪽)”는 “사짱은 이제 들판으로 간답니다”로, “달걀 프라이가 나한테 달려오고 있어(8쪽)”는 “달걀 부침이 나한테 달려와”로, “덕분에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20쪽)”는 “그래서 사짱은 꽃을 많이 많이 땄답니다”로, “늑대는 식탁 위에 올라앉아(24쪽)”는 “늑대는 밥상에 올라앉아”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32쪽)”는 “훌쩍훌쩍 울어요”로,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42쪽)”는 “엄마는 아이가 하나 더 생긴 듯해”로 다듬습니다.



.. 사짱은 꼬마 늑대를 식탁에서 내려 주며 말했어요. “우리 엄마를 잠깐 빌려 줄 테니까 안아 달라고 해 봐.” … 한동안 엄마 품에 안겨 있자 꼬마 늑대는 다시 힘이 났어요. 그래서 엄마 무릎에서 폴짝 뛰어내렸지요. “나 이제 그만 갈래.” 꼬마 늑대는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서 말했어요. “엄마, 다음에 또 안아 주세요.” ..  (36, 40쪽)



  아이는 어머니한테 선물을 하고 싶어 들판으로 갑니다. 예쁜 들꽃을 꺾고 싶거든요. 그림책을 보면, 아이가 지내는 집 둘레에도 들꽃은 많구나 싶어요. 그러나 아이는 굳이 먼 들판까지 갑니다. 왜냐하면, 오늘은 남달리 기리면서 누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집 둘레 들꽃은 언제나 집에서 즐겁게 바라봅니다. 먼 들판에 피는 들꽃은 집으로 가져와서 새로운 꽃바람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아이는 어머니 생일을 기리고 싶은 마음인데, 곰곰이 따지면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생일입니다. 날마다 생일잔치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동이 트면서 새롭게 깨어나거든요. 늘 새롭게 태어나는 하루이니 날마다 생일이고 잔치예요.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아마 날마다 꽃을 꺾지 싶어요. 어머니가 태어난 날 하루만 꽃을 꺾지 않고 날마다 꽃놀이를 할 테지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도 어느 하루만 아이를 안지 않고 날마다 아이를 안을 테지요.


  기운을 차리도록 이끄는 빛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담은 손길로 밥을 짓습니다. 사랑을 실은 눈빛으로 마주봅니다. 사랑을 엮은 이야기가 깃든 책을 읽습니다. 4347.7.2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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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햇살과나무꾼 옮김, 일론 비클란드 그림 / 논장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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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2



스스로 선물하는 사랑

―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펴냄, 2014.6.30.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고 싶습니다. 폭신한 걸상에 앉아 알맞게 발을 구르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깔깔 웃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달리면서 자동차 때문에 막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두 다리로 달리고 싶습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리면서 하루를 신나게 누리고 싶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거나 학원에 가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언제나 구슬땀 흘리면서 씩씩하게 달리면서 놀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나비가 날듯이, 잠자리가 날듯이, 제비가 날듯이, 크고 작은 수많은 새가 하늘빛을 머금으면서 눈부시게 날듯이, 온몸으로 활개를 치면서 달리고 싶습니다. 성적표에 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들 어버이가 가진 돈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해를 마주하면서 햇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빛이 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눈빛을 밝히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 로타는 그 말에 더욱 화가 났어요. 로타는 아빠 엄마한테 말했어요. “들었죠?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건 자전거가 없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샌드위치를 조금 오물거리고 나서 다시 종알거렸어요. “나 진짜로 자전거 탈 수 있어. 비밀이지만!” ..  (4쪽)




  칠월 여름을 맞이하여 비가 안 오는 날이면 자전거를 몰아 골짜기로 갑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습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습니다. 나는 두 아이를 앞자전거 발판을 구르면서 힘껏 이끕니다. 골짜기로 가는 길은 오르막이고 비알이 가파릅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고갯길을 오릅니다. 한참 고갯길을 오르면 물살이 빠르면서 시원한 골짜기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마음껏 물장구를 칩니다. 아이들은 골짜기에서 기쁘게 물놀이를 합니다.


  더위에 흘린 땀을 골짝물로 씻은 뒤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제는 내리막입니다. 오르막에서는 다 함께 땀을 흘리지만, 내리막에서는 다 같이 바람을 가릅니다. 오르막이 고될수록 내리막이 시원합니다. 비탈길이 힘겨울수록 내려올 적에 빠릅니다.


  골짜기로 가는 동안 이웃마을 들길을 지납니다. 아직 농약을 치지 않을 무렵에는 들빛이 짙푸르면서 잠자리와 개구리와 풀벌레와 멧새가 가득합니다. 시골에 젊은이가 없대서 헬리콥터를 불러 항공방제를 한 차례 하고 나면, 잠자리가 사라지고 개구리 노랫소리가 죽으며 풀벌레도 멧새도 어느새 자취를 감춥니다.



.. 로타는 새로 받은 선물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때는 자전거 생각을 까맣게 잊었어요. 아침나절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갖고 놀고, 그림책도 보고, 줄넘기도 하고, 그네도 타면서 아주아주 즐겁게 놀았죠 ..  (8쪽)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를 달리는 아이들은 들길을 누리지 못합니다. 자전거는 달리지만,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를 누리지 못합니다. 바람에 눕는 풀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을 못 보는 도시 자전거입니다. 도시에서는 언제나 자동차를 살펴야 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이 아주 줄어요. 자동차 때문에 자전거뿐 아니라 골목놀이가 사라져요.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은 놀 곳이 없어요.


  축구장이 있어야 공차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골목에서나 빈터에서나 마음껏 공차기를 하고픈 아이들입니다. 야구장이 있어야 공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나무막대기와 공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라도 공치를 하고 싶은 아이들입니다.


  우리가 누릴 곳은 따사로운 보금자리입니다.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물려줄 선물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나무를 심을 만한 마당과 자전거를 달릴 만한 골목이나 고샅과 동무들과 어울려 뛰놀 빈터와 숲을 어른들 스스로 곱게 가꾸어 아이들한테 이어주어야지 싶습니다.



.. “자, 밤세, 쌩쌩 달리는 거야.” … 요나스와 미아 마리아보다 훨씬 빨리 바람을 가르며 쌩쌩 달렸죠. 그래요. 트집쟁이 거리에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달리는 자전거는 여태껏 아무도 본 적이 업었어요. 로타가 소리쳤어요. “멈춰! 멈춰!” 하지만 하전거는 멈출 수 없었고 로타도 멈출 수 없었어요 ..  (19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쓴 글에 일론 비클란드 님이 그림을 담은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논장,2014)를 읽습니다. 멋진 그림책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어》는 스웨덴에서 1971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1982년과 1984년에 처음 옮겼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는 ‘현대세계걸작그림동화’ 가운데 11번으로 나왔고, 이때 붙은 책이름은 《로타와 자전거》(백제/문선사 펴냄)입니다. 1980년대에 처음 나왔다가 어느새 사라진 이 그림책을 아끼는 분이 꽤 많았으나 오래도록 되살아나지 못했는데, 2014년에 드디어 논장 출판사에서 곱다라니 엮어서 선보입니다.


  예전 책과 새로운 책을 함께 놓고 살핍니다. 예전 책에서 살짝 뭉개진 그림이 새로운 판에서는 잘 살아납니다. 얼굴빛도 마을빛도 모두 새로운 판이 한결 곱습니다. 그리고, 예전 책은 그림 가장자리가 잘렸으나, 새로운 판은 그림을 잘 살려 주었습니다.


  책이름처럼 이 그림책은 ‘다섯 살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타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나는 우리 집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몇 해 앞서부터 즐겁게 보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 말고도 다른 이야기에서 한껏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로타 생일에 온 식구가 기뻐하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다음으로, 로타가 그네 선물을 받아서, 마당에 선 커다란 나무에 그네를 걸고는 하얀 꽃잎이 나부끼는 한복판에서 노는 모습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로타가 사는 마을 곳곳에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이 즐겁고, 집집마다 마당이 있으며,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흩날릴 뿐 아니라, 빨래가 해바라기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이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 바로 그때 길 저쪽에 아빠가 보였어요. 로타는 기둥 위에서 잽싸게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아빠가 로타한테 딱 맞는 작은 자전거를 끌고 오지 뭐예요! “어, 어떻게 된 거지?” 하고 로타는 혼잣말을 했어요 ..  (27쪽)





  로타한테는 무엇이든 언제나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베푼 자전거만 선물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마을이 선물이요, 아름다운 보금자리가 선물입니다. 멋진 오빠와 언니가 선물이고, 살가운 어머니와 아버지가 선물입니다.


  우리한테는 무엇이 선물일까요. 우리는 어떤 선물을 누리면서 살아가나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무엇을 선물로 삼아서 나누어 주는가요. 우리 어른은 스스로 어떤 빛을 선물로 누리면서, 아이들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싶은가요.


  다섯 살 로타는 자전거를 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서른 살이나 마흔 살이나 쉰 살인 어머니와 아버지인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꿈을 꿀 수 있습니까?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까? 삶을 지을 수 있습니까?


  요즈막에 시골에서는 농약을 뿌리느라 어디에서나 어수선합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1970년대부터 불어닥친 농약바람은 2010년대를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웬만한 어버이들은 ‘농약 덜 쓴 쌀’이나 ‘농약 안 친 쌀’을 사다 먹으려고 애쓰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농약을 한 차례라도 더 치려고 애씁니다.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낳은 아이(손자와 손녀)를 먹이겠다면서 시골 할매와 할배는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을 가을마다 보내 줍니다. 시골에 늙은 어버이를 두고 도시로 떠난 딸아들은 시골서 보낸 쌀보다는 생협 매장에서 ‘유기농 쌀’이나 ‘친환경 쌀’을 사다 먹는다지요. 시골에서는 일손이 없다며 농약에만 기대려 하고, 도시에서는 사람이 넘치고 온갖 병치레가 넘실거리면서 농약을 타지 않은 곡식을 바랍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다섯 살 로타라면 이 나라 시골에서 어떻게 흙을 가꿀까 궁금합니다. 다섯 살 로타가 이 나라 도시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루를 누릴까 궁금합니다. 4347.7.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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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7~12권 박스 세트 2 - 전6권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2011년 9월부터 쓰던 <나츠코의 술> 느낌글을 2014년 7월에 마무리짓는다. 기쁘면서 홀가분하고 서운하면서 설렌다. 7권부터 12권에 이르는 책들에 붙인 느낌글을 한 자리에 모은다.


..


12권 : 목숨을 다스리는 (2014.7.24.)

http://blog.aladin.co.kr/hbooks/7083707


11권 : 맛·삶·사랑을 느끼는 사람 (2013.6.18.)

http://blog.aladin.co.kr/hbooks/6420329


10권 : 사랑맛이 날 때에 (2013.4.16.)

http://blog.aladin.co.kr/hbooks/6311080


9권 : 농약 안 쓰기를 바라나요 (2012.12.28.)

http://blog.aladin.co.kr/hbooks/6039603


8권 : 귀여운 벌레 (2012.10.12.)

http://blog.aladin.co.kr/hbooks/5903994


7권 : 마음을 고스란히 담는 손길 (2012.7.5.)

http://blog.aladin.co.kr/hbooks/5711595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면서

삶을 사랑하는 기운을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여서

하루를 기쁘게 열고 '지을'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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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12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8



목숨을 다스리는

― 나츠코의 술 12

 오제 아키라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2.25.



  시골에서는 으레 새벽 일찍 하루를 엽니다. 동이 트기 앞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매한가지입니다. 하루를 일찍 열고 일찍 닫습니다. 이른 새벽에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일손을 여밉니다. 고요하게 맞이하는 새벽이면서 하루이고, 가장 맑고 밝은 기운으로 여는 삶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지구별 모든 곳이 시골입니다. 지구별에 도시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어느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동이 트기 앞서 하루를 열었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은 가장 맑으면서 밝은 기운으로 하루를 열었고,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기쁜 넋으로 삶을 지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을 거머쥐려는 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옷을 짓지 않으며 집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은 ‘스스로 할 일’을 남한테 시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안 하면서 주먹힘과 군대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스스로 할 일, 그러니까 ‘짓기(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안 하는 사람들은 삶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하루를 새롭게 짓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이면서 ‘스스로 해야 하지만 스스로 안 하는 일’을 남한테 시키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녁과 똑같이 틀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억누릅니다. ‘사회’란 바로 ‘똑같은 틀’입니다. 정치권력을 지키도록 하는 틀이 바로 사회입니다.





- “진정해라, 나츠코. 아직 갈 길이 멀다.” “2주쯤이야 금방인걸! 난 작년부터 기다렸다고. 그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야.” (11쪽)

- “왜 그러냐?” “긴조 상조 때까진 술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아. 2주 동안 참으며 시음에 대비하고 싶어.” (19쪽)



  사회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지키면 될 뿐입니다. 사회에는 새로운 바람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그대로 이어야 할 뿐입니다.


  새로움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표를 민주 제도에 따라 꾸준히 치르더라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틀을 그대로 이으려고 할 뿐이기 때문에, 이 정당이나 저 정당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정당 아무개가 정치 일꾼이 되더라도 사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당 일꾼은 정당 밥그릇에 따라 ‘사회를 그대로 잇는 틀’을 단단히 하려는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틀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사회를 이으려는 마음이기에, 학교교육이 불거집니다.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시키고, 똑같은 대입시험을 치르게 하며, 똑같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이끄는 까닭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학교교육은 오직 한 가지 길을 가리킵니다. 사회를 그대로 건사하는 길, 바로 이 한 가지 때문에 학교교육에 나라돈을 엄청나게 들입니다.


  아주 마땅한 일일 텐데, 사회를 그대로 지키는 뜻을 이으려는 학교교육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시골일을 안 가르칩니다. 시골학교조차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안 시킵니다. 그리고, 사회를 지키는 뜻만 가르치는 학교인 터라,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기’라든지 ‘마음에 드는 짝꿍을 만나서 사랑스럽게 어울리기’를 안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꿈을 키우는 삶’이라든지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셨나요? 볼 수 없습니다. 학교는 이런 일을 하려는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모든 사람을 나이에 따라 틀에 맞추려고 할 뿐이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빛을 가꾸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옷차림까지 아주 판에 박도록 길들입니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더 틀에 박힐 뿐 아니라, 생각이 갇히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삶과 생각과 마음이 흐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사랑이나 꿈은 자라지 못하고, 정치권력자가 꾀하는 대로 사회를 따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2년 전 고작 한 움큼의 볍씨였던 쌀이 이제, 조금씩. 들어 봐요! 양조장이 새로운 술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누룩의 속삭임이에요.” (23쪽)

- “준마이 생산량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10% 정도입니다. 그렇게 양이 적은 건 아무래도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근대화했다 해도 결국은, 인간의 감이라든가 오랜 경험이라는 미지의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음식이나 술을 만드는 데 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잖아요. 아무래도 살아 있는 것을 상대하다 보니.” (30∼31쪽)



  예부터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정치권력자는 어떤 땅을 이녁 경계로 삼아서 ‘나라’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예부터 지구별 시골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곧 나라’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전에는 마을마다 말이 다르고 밥과 옷과 집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삶이 달랐어요. 스스로 삶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지으니, 마을마다 말과 옷과 밥과 집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옷을 손수 지어서 입었습니다. 똑같은 옷이 한 벌조차 없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살아갑니다. 밥을 스스로 지어서 먹습니다. 마을뿐 아니라 집마다 물맛이 다르고 땅 높낮이가 달라요. 그러니, 집집마다 이녁 집안 기운에 맞추어 밥을 다르게 짓습니다.


  밥맛이 다르다는 소리는, 끼니마다 밥맛을 새로 짓는다는 뜻입니다.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도 늘 삶을 짓는다는 뜻이요, 하루 내내 새로운 이야기가 넘실거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밥을 짓건 풀을 베건 길쌈을 하건 나락을 털건 지붕을 잇건 무엇을 하건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누구나 언제나 노래를 불렀어요. 하루 내내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삶을 새로 지으니,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민요를 채집하는 학자’가 없어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노래를 담습니다. ‘민속문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도, 마을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어 ‘문화를 이룹’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삶에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루 내내 스스로 노래를 안 짓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상업노래는 있을는지 모르나, 스스로 이녁 삶에서 길어올리는 노래는 없습니다.




- “같은 술쌀을 같은 방식으로 빚어도 서로 다른 술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 “물론이지. 아니, 오히려 똑같은 술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나 할까.” (69쪽)

- “나츠코. 올려도 될까?” “물론이지!” “여보. 나츠코와 양조장 사람들이 만들어 줬어요. 당신의 목숨이에요.” (131∼132쪽)



  도시가 커지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바라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떠나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안 바라는 일입니다. 요즈음은 정치권력자가 생각을 넓혀 ‘시골로 떠나는 사람을 길들이는 새로운 길’을 만들곤 합니다. 요새는 나라에서 ‘귀농·귀촌 지원사업’을 꾀합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가려는 뜻은 ‘도시에서 이루는 사회가 사람을 죽음 구렁텅이로 내모는 줄 뼛속 깊이 느끼기 때문’인데,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사람들한테 ‘시골에서조차 논밭을 일구어 돈을 버는 쳇바퀴 삶이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시골살이는 ‘논밭에서 유기농 곡식과 열매를 키워 돈을 버는 삶’이 아닙니다. 시골살이는 말 그대로 ‘시골을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내 말’을 되찾으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삶’을 가꾸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빛’을 바라보려고 시골에 갑니다.


  말과 삶과 빛을 되찾고 제대로 바라보면서 가꾸는 동안, 시나브로 ‘밥짓기·옷짓기·집짓기’에 눈을 뜹니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길든 몸인 터라, 도시에서 묻은 때와 먼지를 털면서 시골빛을 받아들일 몸과 마음으로 가다듬습니다.


  시골에 와서 농약이나 비료나 농기계를 쓰려 한다면, 도시에서 지내는 삶하고 똑같습니다. 시골에 와서 돈벌이를 생각하려 한다면, 도시에서 보내는 쳇바퀴하고 똑같습니다. 삶을 지을 때에 삶이 빛나고, 사랑을 지을 때에 사랑이 따뜻합니다. 꿈을 지을 때에 꿈을 이루고, 노래를 지을 때에 언제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 “내 오장육부가 춤을 추고 있어. 술을 마시고 우는 건 내 평생 처음이라고. 내가 고생해서 지은 쌀이, 이렇게 엄청난 술이 되어 돌아오다니.” (155쪽)

- “중간 작업부터 마무리 작업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줄이나. 그게 포인트란 걸 잊지 마라.” “네.” “우리 역할은 누룩과 효모에게 명령하는 게 아니다. 이 녀석들이 건강하게 활약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지.” (183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2) 열둘째 권을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열둘째 권을 읽은 뒤 오래도록 곰곰이 삭힙니다. 제대로 거둔 나락은 여러 해 묵힌 뒤 심어도 씩씩하게 싹을 틔우며 자랍니다. 알뜰히 빚은 만화책이라면 여러 해 묵히면서 생각하더라도 아름다운 슬기를 베풉니다.


  가만히 따지자면, 우리가 익힐 이야기란 ‘슬기’입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를 익힐 노릇입니다. 지식 가운데 ‘참다운 지식’을 익혀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삶을 밝히려면 지식이 아닌 ‘슬기’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똑똑히 바라보면서, 똑똑히 알고, 똑똑히 움직이며, 똑똑히 생각하고, 똑똑히 사랑하는 동안, 똑똑히 이루는 삶으로 나아가는 빛이 바로 ‘슬기’입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는 ‘지식’을 배울 일이 아닙니다. 논밭이 아닌 흙과 숲과 들을 사랑하는 ‘슬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느껴서 받아들일 일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 열두 권을 돌아보면, 열두 권 가운데 열한 권은 ‘시골에서 흙을 어떻게 만져야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두 권 가운데 고작 한 권에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해님과 같은 술을 빚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한 거라면. 그럼에도 사에키의 가업을 잇겠다 하는 거라면, 나는.” “아버지, 전 이제 24살이 됐어요. 앞으로는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도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술을 빚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191쪽)



  목숨을 다스리는 술 한 방울입니다. 목숨을 보살피는 밥 한 그릇입니다. 목숨을 살찌우는 말 한 마디입니다. 목숨을 북돋우는 웃음 한 자락입니다. 목숨을 일깨우는 눈빛 한 줄기입니다. 목숨을 바라보는 사랑 한 타래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에 나오는 나츠코는 열둘째 권을 마무르는 자리에서 스물네 살이 됩니다. 더없이 꽃다운 나이라 할 만하면서, 비로소 피어나는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둘에 열둘을 더한 스물넷이라는 나이는 스스로 삶을 가꾸어 빛내는 나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스물네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전쟁훈련에 시달리는 나이인가요? 가시내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취업 후보생으로 보내는 나이인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스물네 살을 맞이할 적에 아이들 스스로 어떤 삶을 꽃피우도록 어떤 슬기를 물려주는가요?


  천천히 동이 틉니다. 멧새와 들새는 일찌감치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새끼를 까서 다 키운 어미는 ‘다 자란 새끼 새’와 함께 즐겁게 날갯짓을 하면서 하늘을 가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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