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
박원식 지음, 신준식 사진 / 리좀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6



간이역은 시골처럼 사라지네

― 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

 박원식 글

 신준식 사진

 리좀 펴냄, 2005.9.13.



  지난해까지는 항공방제를 할 적에 이레쯤 앞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곧 항공방제를 할 테니, 항공방제를 하는 날에 장독 뚜껑을 닫고 창문을 닫으며 바깥에 돌아다니지 말라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는 아무런 방송이 없이 항공방제를 합니다. 다만, 새벽 여섯 시에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합니다. 면사무소 방송이 아닌 마을방송입니다.


  지난해까지는 군청에서 ‘친환경농약’을 헬리콥터로 뿌렸습니다. 올해에는 우리 마을과 이웃한 여러 마을 모두 ‘친환경농업단지’에서 풀렸습니다. ‘기준치를 넘는 농약’이 나왔기 때문에 ‘친환경농업단지’에서 취소가 되었어요. 그러니, 올해에 농협중앙회에서 헬리콥터를 띄워서 뿌리는 농약은 ‘친환경농약’조차 아닌 ‘무시무시한 농약’입니다.


  무시무시한 농약을 뿌리는데 아무런 방송이 없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어느 시골에 가든 고추밭에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능금밭과 포도밭에도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감밭에도 농약을 뿌리고, 마늘밭과 배추밭과 파밭에도 농약을 끝없이 뿌립니다. 여느 시골사람이 ‘친환경조차 아닌 무시무시한 농약’을 뿌릴 적에 이웃집에 알리는 일이 없습니다. 이웃도 똑같이 그 무시무시한 농약을 아무 때나 뿌리니까요.



.. 하루 여덟 차례 열차가 멈추는 기차 정거장이다. 하염없이 작아서 하염없이 귀여운 간이역이다 … 상웅 유람을 한결 값지게 하는 건 마을 복판의 은행나무다. 6백여 년 풍진 세월을 쌩쌩히 견뎌 온 거목으로 하늘 가린 우듬지가 산덩어리만 하다 ..  (18, 63쪽)



  기차역이 줄어듭니다. 기차역이 서던 곳에서 살던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늙은 사람도 줄고 젊은 사람도 줄며 어린 사람도 줄었기에 기차역이 줄어듭니다.


  이제 웬만한 군 하나는 웬만한 도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하나만도 못할 만큼 사람이 적습니다. 시골 군에서 면이나 읍에서 사는 사람 숫자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는 사람보다 훨씬 적습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면에 만 사람은커녕 천 사람조차 안 되기 일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오늘날 시골에는 흙을 일굴 사람이 아주 모자랍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논밭을 일굴 사람도 모자라지만,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다녀올 사람도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게다가 기차역은 시골 면소재지를 지나가는 일도 드물고, 읍내에서 그리 가깝지도 않은 데에 있기 마련입니다. 늙어서 허리가 구부정한 할매와 할배가 기차역까지 걸어서 가기에도 벅찹니다.



.. 이런 승부역의 오지다운 고독을 노래한 어느 늙은 역원의 시 한 수가 전해진다.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 읊은 … 시장통 선술집에도 점심 겸 낮술을 펼치는 남자들 몇몇이 둘러앉아 뭔가 열변을 토한다. 차 꾸러미를 들고 나온 다방 여종업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내달린다 ..  (96, 152쪽)



  고흥에서는 기차를 타려면 이웃 순천시로 갑니다. 순천시 기차역은 꽤 크다 할 만합니다. 고속철도 지나가니까요. 그렇지만, 순천시 기차역을 드나드는 사람은 순천시 버스역을 드나드는 사람과 대면 아주 적은 듯합니다. 순천 기차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도 얼마 안 돼요.


  우리 집 아이들이 버스 멀미를 고단하게 하느라 가끔 기차를 탈 적에 곰곰이 생각합니다. 아직 전라도에서 곡성이니 구례이니 남원이니 하는 데에서 기차가 서지만, 머잖아 이런 곳에 기차가 설 일도 없지 않을까 하고. 도시사람이 곡성이니 구례이니 남원이니 놀러가니까 기차가 서지, 그곳 사람들 숫자만으로 기차가 설 일은 참 드물지 싶습니다.


  이제 몇 군데 굵직한 기차역이 아니라면 모두 작은 역으로 바뀌는구나 싶습니다. 예전 간이역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작은 역은 간이역이 되며, 꽤 커다랗던 역은 작은 역으로 되지 싶어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간이역으로 찾아간다고 하는데, 간이역으로 나들이를 하면서 어떤 ‘정취’나 ‘추억’을 받아먹을는지 모릅니다만, 정작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 눈길로 보자면, 온통 도시만 키우는 개발정책과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인 흐름에서, 무엇을 바라나 아리송하곤 합니다.


  도시에서도 그렇거든요. 도시에 있는 예쁘장한 골목을 밀어붙여서 아파트로 바꾸려는 개발정책입니다. 작은 사람이 돌보는 작은 집이 있는 작은 마을 하나쯤 아무렇지 않게 없애려 하는 문화정책이고 사회정책이며 복지정책입니다. 이 나라 교육정책은 아이들이 도시로 가도록 내몰고, 더 큰 도시로 가도록 밀어붙입니다.



.. 이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소나무가 강원도 정동진역의 ‘고현정 소나무’라는 물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고현정 소나무’는 관광 재료로써 기절할 만한 진가를 발휘해 정동진의 팔자를 일거에 뒤집어버렸다. 반면 ‘김영애 소나무’는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이 지역의 평온을 유지케 하는 데 이바지했다. 둘레의 자연상을 온존시키는 데 기여했다 ..  (222쪽)



  박원식 님이 글을 쓰고, 신준식 님이 사진을 찍은 《낯선 정거장에서 기다리네》(리좀,2005)를 읽습니다. 그야말로 자그마한 간이역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눈길로 글과 사진을 빚어서 엮은 책입니다. 간이역처럼 참 이쁘장한 책이라고 느낍니다. 이렇게 작은 이야기를 읽히면서 우리 사회가 새롭게 태어난다면 아주 아름답겠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어디를 바라보느냐 하는 대목을 살피면, 고개를 젓고야 맙니다. 누가 누구를 바라보느냐 하는 대목을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고야 맙니다.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이 있는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굳이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을 사진으로 안 찍습니다. 굳이 간이역이나 작은 기차역을 문화유산으로 삼지 않습니다. 간이역보다 훨씬 오래된 집이 마을마다 많이 있습니다. 간이역보다 아주 오래된 우물과 샘터가 마을마다 있습니다. 간이역보다 엄청나게 오래된 나무와 숲과 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요. 우리들은 어디에서 살고 어디에서 사랑하며 어디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려 하는가요. 4347.7.2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7



가장 좋아하는 이름

― 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9.15.



  둘레에서 만나는 수많은 여느 어른들은 아이들을 처음 만날 적에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묻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이를 묻습니다. 아이한테 궁금한 대목이란 나이 한 가지인 줄 여깁니다.


  둘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여느 사람들은 어른과 어른 사이에 만날 적에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잘 안 묻습니다. 그냥 나이를 묻습니다.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내가 나이가 위라 하면, 내가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내가 나이가 밑이라 하면, 이녁이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나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삶에서 누리는 나이가 내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니면 먼먼 옛날부터 살아온 내 나이가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나이를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물으면 넉넉합니다. 이름조차 안 물어도 됩니다. 서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를 가만히 느끼면서, 서로 무엇을 사랑하면서 삶을 누리려 하는지 천천히 헤아리면 넉넉합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년 간 모태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날 위해서 미팅에 데려가 주곤 하지만, 사실 나는 미팅에 나오는 남자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100% 주정뱅이이고, 나는 주정뱅이가 싫기 때문입니다.’ (6∼7쪽)

- “어머,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네 용돈은 엄마랑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번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야. 그런데 그걸 직접 받으러 오는 게 귀찮아?” (12쪽)






  둘레에서 스치는 수많은 풀과 나무 가운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가 있으나, ‘이름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란, 다른 사람이 붙인 이름입니다.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풀이나 꽃이나 열매가 우리 몸에 어떻게 좋은가 하는 대목을 안다고 할 적에도, 다른 사람이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일 뿐입니다. 나 스스로 먹고 마시고 누리면서 온몸으로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이 아닙니다.


  맨 처음 꽃한테 ‘꽃’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맨 처음 ‘민들레’나 ‘쑥’이나 ‘벼’ 같은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들은 왜 이런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쓸까요.


  그런데, ‘민들레’는 서울말이나 민들레이지, 고장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고을과 마을에서도 이름이 다릅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책과 인터넷과 학교 때문에 모두 똑같은 이름을 쓰고 말지만, 고작 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또는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다 다르게 붙인 이름을 썼습니다.



- “술 이름이 뭐가 어때서! 마스미는, 마스미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제일 소중한 딸한테 붙여 주는 게 뭐가 나빠!” (18쪽)



  지난달에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면서 ‘하늘말나리’라는 멧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주 곱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서 이름이 궁금했는데, 학자나 남이 붙인 이름이 궁금하다기보다, 내 마음속으로 이 꽃한테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이름을 잘 생각해 보셔요. 우리는 감을 굳이 ‘감’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나름대로 이름을 얼마든지 새롭게 붙이면 됩니다.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구요? 왜 남들을 생각하나요? 나를 생각해야지요.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말을 배워야 하고,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말을 배워야 하듯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하고 나는 ‘남들 말’을 배워야 할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사귀려 한다면, 서로를 제대로 배우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울릉도 호박엿’이라 말하지만, 이는 아주 엉터리 이름입니다. 울릉섬에서 퍼진 엿은 ‘호박엿’이 아니라 ‘후박엿’입니다.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로 고은 엿이기에 ‘후박엿’인데, 후박나무를 뭍사람이 거의 모르다 보니, 이름을 엉뚱하게 붙였고, 엉뚱한 이름이 오늘날에도 아직 널리 퍼진 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후박엿’이 올바른 이름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호박엿’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씁니다. 잘못된 이름을 쓰면서 잘못인 줄조차 느끼지 않을 뿐더러, 아예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 쓰면서 길들고 퍼진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올바른 이름은 묻히거나 알려지지 못하는데, 참다운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 ‘완전하게 혼자가 되어야지. 내가 바란 것은 나 자신.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혼자가 되어야 해. 다시 한 번 완전히 혼자가 되어야 해.’ (38쪽)

- ‘정말 바보 같은 여자. 너 같은 녀석은 평생 혼자 살아야 해. 평생 정신 차리지 말고, 착해빠져서 남자 보는 눈도 형편없는 상태로 울기만 하며 살아가렴. 언제든지 내가 너에게 달려갈 수 있게. 바보는 나야. 사랑해.’ (67∼70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이어 살가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찬찬히 흐릅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책상맡에 이태나 그대로 둔 채 지냈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버지 만화책에 다섯 살 적에 빨간 볼펜으로 곳곳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큰아이는 여섯 살로 접어든 뒤에 아버지 책에 그림을 더 안 그리고, 일곱 살로 넘어선 뒤에는 제가 아버지 책에 그림을 신나게 그린 줄 까맣게 모릅니다. 알려주어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만화책 《솔로 이야기》 둘째 권에서 ‘이름’과 얽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주 아끼는 딸아이한테 주정뱅이 아버지가 ‘술에 붙은 이름’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면서 늘 마시는 술에 붙은 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껴, 이 이름을 이녁한테 아주 알뜰한 딸아이한테 붙였다고 해요.




- ‘미안해요. 인정할게요. 난 도쿄로 상경한 후 계속 쓸쓸했습니다. 너무너무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84쪽)

- “물론 결혼도 전업주부도 동경하고 있지만, 난 우ㅜ카타가 좋아. 지금은 그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싶어.” (96쪽)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술에 붙은 그 이름은 처음부터 ‘술 이름’이었을까요? 그 이름이 술이 아닌 꽃한테 붙었다면? 나무한테 붙었다면? 구름이나 해나 무지개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면?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요? 술에 붙은 이름이니 영 마뜩찮을까요? 이를테면, ‘참이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술이름일 뿐일까요? ‘새누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정당 이름일 뿐일까요?


  ‘참이슬’은 술에 붙는 이름이기 앞서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가꾸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새누리’ 또한 정당에서 이 이름을 쓰기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스러운 얼을 일구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애틋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이름을 부르는 까닭은, 다 다른 넋을 다 다르다고 느끼면서 다 같은 숨결로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빛을 언제나 이루고 싶기에 이름 몇 글자를 지어서 함께 부릅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여름 밤에 아이들한테 틈틈이 부채질을 해 줍니다. 밤 열 시에서 열한 시로 넘어가면 부채질은 그칩니다. 시골집에서는 밤 열한 시부터는 선선합니다. 바야흐로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때이니, 배와 가슴에는 이불을 잘 여미어 주면서 새벽까지 새근새근 즐겁게 자야겠습니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문학과지성 시인선 44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말하는 시 60



시와 껍질

―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김혜순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5.9.1.



  아이들이 날마다 껍질을 깨고 일어납니다. 참말 아이들은 날마다 새로 깨어납니다. 이와 달리 어른들은 좀처럼 날마다 껍질을 못 깨기 일쑤이고, 못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날마다 새로 깨어나려는 생각을 안 품기도 합니다.


  삶이 따분할까요. 삶이 지겨울까요. 고단하거나 괴로워서 생각하기 싫을까요. 사회에 길든 탓에 마음속에 아무런 느낌도 빛도 일어나지 않을까요.


  어른은 누구나 아기로 태어났습니다. 아기로 태어난 목숨은 천천히 자라 아이가 되고, 다시 천천히 크면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을 보면, 나이만 먹은 어른이 있고, 나이가 아닌 슬기를 키우는 어른이 있습니다. 나이만 먹는 어른은 삶을 재미없다 여기며, 슬기를 키우는 어른은 삶을 재미있게 나눕니다.


  아이들을 볼 적에도 이와 같습니다. 날마다 늘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이 있으나, 새로운 날을 맞이했어도 좀처럼 놀 생각을 안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놀 생각이 가득한 아이가 있고, 학교에서나 학원에서나 집에서나 공부 생각에 사로잡혀 아예 놀이를 잊는 아이가 있습니다.



.. 너는 보지 않지 / 나무들 어우러진 산봉우리들과 / 그 아래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폭포들을 / 보지 않지 / 그것들을 보지 않고, 너는 / 나무뿌리 곁에 엎드리고 / 흘러가는 물 아래 엎드린 / 땅을 보지 / 수천 년 전부터 거기 살아온 / 흙을 보지 / 춤추고 일어서고 움직이는 / 대평원을 내려다보지 / 그것도 저 보름달쯤에서 보듯 / 바라만 보지 ..  (흙만 보는 사람)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흐릅니다. 구름이 흘러 그늘이 생깁니다. 칠월 무더위에 구름이 빚는 그늘은 더없이 시원하고 싱그럽습니다. 구름이 없더라도 나무가 있으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이 몹시 상큼하면서 아름답습니다. 건물이 만드는 그림자로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안 들지만, 구름이나 나무가 빚는 그늘은 그야말로 시원합니다.


  비가 옵니다. 비가 오면서 풀과 나무는 한결 짙푸릅니다. 그런데 비가 열흘 내리 들이붓다가, 또 열흘 잇달아 퍼붓습니다. 끊이지 않는 비에는 풀도 나무도 수그러듭니다. 넘치는 빗물에 풀포기가 눕고 나무가 기운을 잃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풀과 나무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물을 잘 준다 하더라도 풀과 나무는 빗물을 바랍니다. 감옥이 아무리 시설이 좋다 한들, 집과 마을이 사람한테 가장 포근하면서 아름다웁듯이, 풀과 나무한테는 ‘사람이 주는 물’이 아닌 ‘하늘이 내리는 빗물’이 가장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풀과 나무는 빗물로만 살지 않아요. 빗물만 준대서 살 수 없습니다.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풀과 나무한테는 빗물 말고 또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바로 해입니다. 햇볕과 햇살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흙입니다. 비료나 농약이 아닌 흙입니다.



.. 아버지가 허수아빌 세우신다, / 넓고 넓은 가을 들판에 / 아버지가 허수아빌 세우시고 / 넝마들에게 준엄하게 이르신다 / 황산벌에 계백 장군 임하시듯 / 늠름하게 쫓아뿌라, 잉 ..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삽니다. 밥을 먹었으면 똥오줌을 누어야 삽니다. 밥을 먹고 일하면서 잠을 자야 삽니다. 그런데, 사람은 밥만 먹거나 잠만 잔대서 살 수 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감옥에 갇힌 채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잘 수 있다면, 사람으로서 즐거운 삶이 될까요? 아이들이 값진 옷을 입고 맛난 밥을 먹으며 자가용을 타면서 학교를 오간다면, 이러한 삶이 아이들한테 즐거울까요? 오직 시험공부만 해야 하면서 지내야 한다면 아이들은 삶이 즐거울까요?


  김혜순 님이 빚은 시집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문학과지성사,1985)를 읽습니다. 스스로 껍질을 깨면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시를 읽습니다. 사랑을 꿈꾸고 싶은 노래와 같은 시를 읽습니다. 꿈을 펼치고 싶은 노래와 같은 시를 읽습니다.



.. 나는 엄마다 / 딸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 내가 또 세끼를 근엄하게 훈계하고 / 먹여서 기르니 / 나는 엄마다 / 엄마이기 때문에 / 나는 엄마 행세를 한다 / 그건 안 돼! / 하지 마! / 때릴 거야! ..  (엄마)



  우리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회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민연금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료보험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국민투표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통령이나 군수를 뽑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보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삶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면서 하루하루 웃음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숲을 누리고, 바다를 껴안으며 멧골에서 나물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줄 것이 없어 나는 자식에게 별명을 선물로 준다. / ― 가시야, 실파리야, 거머리야 / 자식은 그런 가녀린 장난감은 갖고 놀 수 없다고 투덜거린다. // 그 다음 나는 좀 더 예술적인 선물을 준다. / ― 피아노를 울려라, 딩동댕. 풀피리를 불어라, 삘릴리. 작은북을 울려라 통통통 / 자식은 나는 당신의 악기가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 그래서 나는 좀 더 딱딱하고 교훈적인 별명을 내 자식에게 수여한다. / ― 뭇솔리니! 흐루시쵸프! 마오쪄뚱! ..  (나의 詩의 발전사)



  아름답게 살 때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돈을 잘 벌기에 아름다운 삶이 아닙니다. 이름을 드날리기에 아름다운 삶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삶이 되자면, 스스로 ‘아름다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할 때에 사랑스러운 삶입니다. 교수가 되거나 작가가 된대서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넓은 아파트를 내 것으로 삼거나 큰 자가용을 내 것으로 몬대서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삶은 마음속에서 우러나옵니다. 삶은 날마다 껍질을 깨고 일어섭니다. 삶은 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을 읽으면서 노래가 흐릅니다. 노래가 흐르면서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이야기가 샘솟으니 시 한 줄을 쓸 수 있습니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목길 연가 2
아소우 미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5



여기 있고 싶어

― 골목길 연가 2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1.12.25.



  곁님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우는 아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겪은 일이라 하셨는데, 아이가 우는데 그 아이 어머니 되는 사람이 아이를 달래지 못하더랍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아이를 그 아이 어머니 되는 사람은 가만히 두기만 했다는데, 보다 못해서 아이를 품에 안고 달래 보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아이를 낳아 키우는 그 어머니는 ‘아이를 안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지요.


  어쩜 참말 그럴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러나, 참말 그럴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어머니가 틀림없이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아버지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나도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아이를 안은 적 없는’ 아버지도 만났고, ‘아이한테 말 한 마디조차 안 건네는’ 아버지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들이 마음씨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더욱이 교육을 못 받거나 생각이 얕은 사람도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교육도 높이 많이 받은 사내인데, 아버지 자리에서는 그야말로 ‘아버지 구실’을 하지 않습니다.



- “여자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쓸데없이 친절한 남자. 딱 질색이야.” (27쪽)

- “흔치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정작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그저 가시로 위협하면서, 혼자 서 보려 아둥바둥. 그러면서도 인간으로서 페어플레이 하려는 그 모습이 남녀관계와 상관없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내가 함께 서로 의지가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39∼40쪽)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른 길이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 되기’를 ‘아이한테 곁을 안 줄 뿐 아니라, 아이 돌보기는 오직 어머니한테 맡기면 되는 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되기’란 ‘집 바깥으로 나가 돈만 잘 벌면 되는 줄’ 생각할 수 있겠지요.


  집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야 아버지가 되는 줄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어머니라는 사람은 ‘때 되면 밥을 차려’ 주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밤일을 바라면 몸을 대 주어야 어머니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줄 여기는 사내가 있습니다. 어머니 자리에 있으려면 집 바깥으로 나다닐 엄두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내가 오늘날에도 제법 있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서로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가꾸어 아이와 함께 슬기로운 빛으로 거듭나는 사랑스러운 숨결인 줄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 사내와 가시내가 무척 많습니다.



- ‘사츠키 씨, 잘 됐다. 만나러 와 줬구나. 아마 저 사람, 그 말을 하러 온 걸 거야. 정말 다행이야. 저 사람, 사츠키 씨를 포기하지 않았어.’ (61쪽)

- “프랑스 같이 가자. 저금 빼 쓰며 생활하는 거면 여기나 몽마르트르나 마찬가지잖아? 불어라면 내가 가르쳐 줄게. 몽마르트르든 교토든 이 골목길이든 다 마찬가지야. 난 ‘여기(네 가슴)’ 있고  싶거든.” (70∼71쪽)




  학교에서 어버이 노릇을 가르치는 일이 없습니다. 학교는 시험공부만 시킵니다. 집에서 아버지 구실와 어머니 구실을 가르치는 일이 드뭅니다. 집에서는 학교와 학원을 보내느라 바쁩니다. 마을에서 아버지 몫과 어머니 몫을 보여주는 일이 드뭅니다. 마을은 온통 가게투성이입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흐르는 사회 얼거리만 있을 뿐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버이 노릇이나 어머니 구실이나 아버지 몫을 제대로 겪지 못합니다. 새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사회 얼거리에 길들 뿐입니다. 새로 태어나 자라면서 지구별을 새롭게 가꿀 아이들은 마음속에 사랑과 꿈을 심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톱니바퀴와 같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소모품처럼 다루어집니다. 이 아이들이 입시지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아무래도 너무 마땅합니다. 게다가 사회도 정치도 교육도 문화도 문학도, 아이들한테 빛을 보여주지 못하곤 합니다. 입시지옥이 아니면 놀음놀이입니다. 놀음놀이조차 술과 담배와 살곶이뿐입니다. 삶을 밝히는 노래가 없는 사회이고, 삶을 가꾸는 이야기가 없는 교육이며, 삶을 빛내는 꿈이 없는 정치입니다.



- “제자로 받아만 주신다면 가게 따위 내팽개치고 당장 달려갈 거예요. 난 뭐든 닥치는 대로 만드는 소품점 주인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고 싶거든요.” (82쪽)

- “그런데 스승님이 별로라는 게 잘 팔리니 희한하죠?” “못 만들었다고는 안 했어. 너무 공을 들여 재미가 없다는 거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거든.” (88∼89쪽)




  아소우 미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골목길 연가》(시리얼,2011)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나오는 사람들이 둘째 권에도 나오는데, 아주 뜻깊은 말 한 마디를 남기고 골목길을 떠나 프랑스로 갑니다. ‘여기 있고 싶다’는 말 한 마디입니다.



-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쓸 수밖에. 이젠 만드는 곳이 거의 없거든. 그 쇠꼭지도, 풀도, 주머니로 쓰는 일본 종이도, 감즙도, 자수 장인이 쓰는 바늘도, 업자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엔 남지 않았어. 유젠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야. 왜냐하면 일본의 문화니까.” (101쪽)

- “고무풀은 제가 직접 만들게요. 그렇게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괜한 걱정이에요. 마음 놓고, 전부 저한테 넘겨주세요.” (103쪽)



  삶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늘 바로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 눈을 들여다봐요.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 손을 잡아요. 오늘 여기에서 아이들을 살포시 안아요.


  함께 즐겁게 놀아요. 함께 즐겁게 노래해요. 함께 즐겁게 웃어요. 함께 즐겁게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며, 자전거를 달려요. 함께 숲길을 헤치고, 함께 바닷가에 서며,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요. 아이들이 살아야 지구별이 사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살아서 숨쉴 수 있을 때에 우리 어른들도 제대로 살아서 숨쉴 수 있습니다. 4347.7.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てっちゃん: ハンセン病に感謝した詩人 (單行本)
權徹 / 彩流社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180


사람을 읽는 이야기
― てっちゃん  :  ハンセン病に感謝した詩人
 權徹 사진·글
 彩流社 펴냄, 2013.12.18


  1967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권철 님은 199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보도사진을 배웠다고 합니다. 1999년부터는 ‘한센병 회복자’를 취재해서 일본에 있는 잡지에 사진과 글을 실었다고 해요. 이러는 동안 ‘우토로’ 이야기도 사진으로 찍었고, 우토로 이야기는 2005년에 한국에서 《우토로》(민중의소리 펴냄)라는 책으로 태어났습니다. 2014년 3월에는 《가부키초》(눈빛 펴냄)라는 사진책이 한국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한센병을 취재하던 권철 님은 한국에 있는 ‘나환자 병원’에도 찾아옵니다. 전남 고흥 소록도로 취재를 와요. 나는 곁님과 두 아이하고 고흥에서 지냅니다. 고흥으로 들어오기 앞서 이곳에 ‘나환자 병원’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길그림 종이를 방바닥에 넓게 펼치고 헤아려 보았어요. 한국 정부에서 이 병원을 고흥에 지은 까닭을 알 만했고, 고흥에서도 소록도라는 섬에 지은 까닭을 알겠더군요. 그야말로 한국에서는 외지며 먼 데가 고흥이요, 고흥에서도 소록도입니다. 고흥은 샛녘과 하늬녘과 마녘이 바다입니다. 이 가운데 남쪽인 마녘에서 소록도는 왼쪽 끝입니다. 오른쪽 끝에는 나로도가 있습니다. 나로도에는 한국 정부에서 우주선 시험 발사기지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사막에 짓는 우주선 발사기지인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멀쩡히 사는 마을’에 발사기지를 세웠어요. 그나마 나로도가 한국에서 아주 외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센병 이야기를 다룬 사진책 《てっちゃん  :  ハンセン病に感謝した詩人》(彩流社,2013)을 읽다가 ‘고흥 소록도’를 취재한 대목에서 자꾸 눈길이 멎습니다. 권철 님은 사진을 배우고 사진을 찍으려는 뜻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알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구나 싶어요. 우리 식구는 고흥을 삶터로 여겨 지내는데, 권철 님한테 고흥은 ‘소록도 병원’이고 ‘취재하러 오는 곳’이에요.






  권철 님한테 일본은 ‘사진을 배운 곳’이면서 ‘사진을 찍는 곳’이요 ‘삶을 꾸리는 곳’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한국사람은 일본을 ‘놀러가는(관광·여행) 곳’으로 삼을 텐데, 요즈막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진 곳’으로 여기기도 하리라 느낍니다. 한편, 참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일본은 ‘한국으로 쳐들어와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곳’으로 여깁니다.

  사람마다 바라보는 눈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가슴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결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빛이 다릅니다. 우리는 저마다 무엇을 바라볼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사진책 《てっちゃん》에서는 ‘텟짱’이라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텟짱만 나오지 않습니다. 한센병과 얽힌 사람들이 나오고, 마을이 나오며, 시설이 나옵니다. 한센병이란 무엇일까요. ‘나병’과 ‘문둥병’은 무엇일까요. 1941년에 이 병을 고치는 약이 나왔다고 하는데, 일본은 왜 1996년까지 한센병 환자를 ‘완전 격리’를 시키고 불임수술까지 시키는 짓을 일삼았을까요. 한국에서도 왜 한센병을 제대로 바라보거나 헤아리는 눈길이 얕을까요.






  사진책을 읽다가 생각에 잠깁니다. 사진책을 덮으며 생각에 젖습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참을 참대로 바라보려는 눈길은 서로 엇비슷합니다. 거짓을 거짓대로 깨달으려는 눈길도 서로 어슷비슷합니다. 그리고, 참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든지 거짓을 옳게 알아채지 못하는 눈길까지 서로 비슷비슷합니다.

  꼭 한센병 환자가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고급호텔이라는 곳에 후줄근한 차림새로 들어가려 하면 어찌 될까요. 고급호텔이 아닌 공공기관에서도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들어가려 하면 어떻게 되나요. 중앙정부에서 한센병 환자를 ‘완전 격리’를 시키기도 했지만, 우리들은 마을에서도 누군가를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우리들은 동네에서도 누군가를 업신여기거나 푸대접합니다. 여느 삶자리에서 여느 이웃을 따돌리거나 업신여기던 흐름이 불거지면서 ‘사람을 괴롭히거나 푸대접하는 정책’이 태어납니다.

  권철 님이 빚은 사진책 《てっちゃん》에 나오는 텟짱과 여러 한센병 환자는 아주 수수합니다. 텟짱 얼굴이나 몸은 잔뜩 곪거나 삭았다고 할 만하지만, 수수하게 보이는 한센병 환자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요. 겉모습으로 마주할까요. 속마음으로 마주할까요.

  눈을 감고 손을 잡아요. 눈을 감고 살포시 안아요. 눈만 감아도 겉모습이 아닌 속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귀를 열어도 겉차림이 아닌 속내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몸뚱이에 깃든 숨결을 헤아리면서 사귀는 이웃입니다. 몸뚱이에 서린 넋을 살피면서 만나는 동무입니다. 나와 네가 이웃인 까닭은 서로 푸른 숨결로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나와 네가 동무인 까닭은 서로 맑은 넋으로 꿈꾸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적에는 겉모습을 담지 않습니다. 속마음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동무를 사진으로 찍는다고 할 적에는 옷차림을 찍지 않습니다. 속내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권철 님이 텟짱을 비롯한 한센병 환자를 만나거나 사귄다고 할 적에도, 속마음으로 만나고 속내로 사귀었겠지요. 사진으로 사람을 읽을 적에 ‘종이나 필름에 앉힌 모습’이 아니라 ‘사람 마음에 스미는 빛’을 읽는다면 다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이룰 수 있겠지요. 4347.7.2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