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어떻게 찾을까? - 도서관에 가자 2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 달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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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0



책, 도서관, 책방

― 책은 어떻게 찾을까?

 아카기 간코 글

 스가와라 게이코 그림

 고향옥 옮김

 달리 펴냄, 2008.12.24.



  오늘날은 도서관에서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도 책을 수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이나 책방까지 가지 않고도 집에서 책을 거뜬히 찾을 수 있습니다. 목록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우면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책 하나 찾는 일이란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서관이나 책방에서는 목록으로 띄운 책이 아니면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안 갖춘 책은 찾아볼 수 없어요.


  사람들이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이나 책방에 가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모든 책이 ‘도서관’과 ‘새책방’에 가지는 않습니다. 중앙정부에서 만들었으나 도서관에 안 들어가는 책이 있고, 도매상을 거쳐 팔려고 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다루지 않습니다. 그림책도 다루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책 도서관이 제법 많이 생겼는데, 인표어린이도서관이 나타나기 앞서까지 어린이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기란 아주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에서는 동화책조차 제대로 안 갖추었으니까요. 이는 오늘날에도 엇비슷해요. 동화책이나 그림책은 ‘아이만 보는 책’이라 여기면서 여느 도서관에서는 이 책들을 안 갖추려 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여느 어른이 어린이도서관에 가야 할까요? 무엇보다 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모든 사람이 두루 즐기’도록 하는 책으로 느끼지 못할까요? 왜 만화책은 도서관에 안 갖추려 할까요?



.. 이 방법은, 0에서 9까지 열 개의 수를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누는 방법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열 개 가운데 어딘가에 꼭 들어가야 합니다 ..  (16쪽)




  도서관에서는 ‘도서관 분류법’으로 책을 바라봅니다. 도서관에서는 ‘사서 눈길과 손길’로 책을 다룹니다. 분류법에 들어가기 어려운 책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어렵지만, 처음부터 분류법에 끼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가 받아들이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사서 몇 사람이 수십만이나 수백만에 이르는 책을 늘 그대로 건사하기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책을 바라는 사람은 다 달라, 어떤 이는 책을 함부로 다룰 텐데, 도서관 바깥으로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어떻게 다룰는지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딱지나 스티커를 붙입니다. 어느 책은 겉장(표지) 하나에 온갖 품과 땀을 담아서 아름답게 여미었으나, 딱지와 도장과 바코드를 겉장 한복판에 떡하니 붙이면서 겉장 모양새를 송두리째 가리기도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애써 곱게 겉종이를 만들어 끼웠는데, 도서관에서는 겉종이를 뜯어서 버리곤 합니다.


  이웃나라 도서관은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는 주한미군 도서관에서 책을 다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에서는 책마다 얇고 속이 잘 비치는 비닐을 씌웁니다. 도서관 딱지나 바코드를 붙일 적에는, 책겉에 도서관에서 따로 씌운 비닐에 붙입니다. ‘책에 대고 바로 붙이’지 않습니다. 주한미군 도서관도 한국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책 안쪽과 책등에 도장을 신나게 찍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책 겉장을 다치게 하지 않아요. 주한미군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책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 상상해 보세요. 의과대학 도서관과 건축대학 도서관이 책을 똑같이 분류할 수 있을까요? KDC 하나하나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외워 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분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  (30쪽)





  아카기 간코 님이 글을 쓰고 스가와라 게이코 님이 그림을 그린 《책은 어떻게 찾을까?》(달리,2008)라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도서관에 가자’라는 이름으로 세 권짜리 엮은 이야기꾸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에서 어린이한테 도서관 나들이를 즐겁게 북돋우도록 빚은 그림책입니다. 첫째 권은 《도서관은 어떤 곳일까?》이고, 셋째 권은 《주제를 어떻게 정할까?》입니다. 둘째 권은 《책은 어떻게 찾을까?》입니다. 어린이가 도서관에 나들이를 할 적에 궁금해 할 세 가지를 잘 간추려서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멋진 얼거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림책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도서관을 말하는 책’인데, 이 그림책은 한국 십진분류법 가운데 어디에 들어갈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책이 없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이 책이 있는데 “026(문헌정보학-일반 도서관)”에 있다고 합니다. 새책방에서는 이 책을 “국내도서-어린이-초등1∼2학년-그림책”에 넣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들한테 이 책을 ‘문헌정보학’이라느니 ‘일반 도서관’이라느니 하고 갈라서 알려준다 한들 찾아보기 어려우리라 느낍니다. 그저 ‘그림책’으로 넣을 때가 ‘초등1∼2학년’으로 나눌 때가 어울릴 테지요.


  그런데 왜 ‘초등1∼2학년’으로 나눌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모든 어린이가 초등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일까요. ‘중등∼고등’이 아닌 ‘청소년’으로 나누어야 할 노릇이고, ‘어린이’도 나이에 맞게 나누어야 할 노릇일 텐데요.


  그나저나, 《책은 어떻게 찾을까?》는 판이 끊어졌습니다. 도서관이나 헌책방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책을 일찌감치 장만한 도서관이 있으면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 테지만, 앞으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실적’이 적거나 없다면서 치우려 한다면,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는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지만, 도서관에서 ‘장만해서 건사했다가 빌려 읽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 몇 해 묵히다가 버리’면, 도서관에 가도 ‘책을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빌려서 읽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하더라도 책을 알뜰히 건사하면서 지킬 수 있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많이 낡거나 닳은 책을 새로운 책으로 바꾸는 도서관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책이 있는 곳간이 되고, 책으로 삶을 밝히는 길을 여는 도서관이 되기를 빕니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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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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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61



새하얀 소리는 해맑은 삶노래

― 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12.25.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흐릅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소리가 흩날립니다. 흔히들 빗소리는 들어도 눈소리는 못 듣는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에도 소리가 흐릅니다. 갑자기 고요한 기운이 돌면서 소복소복 톡톡 하는 소리가 납니다. 자동차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온갖 기계가 끝없이 움직이는 도시에서는 눈소리를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눈이 펑펑 내려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기계도 멈춘다면, 바야흐로 눈소리가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랑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아직 눈이 쌓이지 않았을 적에도 눈소리를 듣고는 눈을 번쩍 뜨면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 ‘조금만 더 버티면 봄이었는데.’ (5쪽)

- “지금, 내 안은 텅 비었거든. 그래서 뭔가를 얻을라고 찾아 헤매는 듯한 느낌이데이.” (23쪽)

- “츠가루. 츠가루샤미센.” “아아, 요시다 형제나 아가츠마 같은? 하긴, 요즘 유행이니까.” “유행? 정식으로 하는 사람은 유행 같은 거 상관 안 한데이/” (33쪽)




  모기가 날며 애앵애앵 날갯소리를 냅니다. 파리가 날 적에도 날갯소리를 냅니다. 벌도 날갯소리를 내요. 그러면, 나비는 어떠할까요. 나비가 날면서 내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잠자리나 개똥벌레는 어떠할까요. 이들 날벌레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를 헤아릴 수 있겠어요?


  요즈음에는 전문직업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어떤 이는 ‘절대음감’이라고도 합니다. 평론을 하든 심사를 하든,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자그마한 소리까지도 알아채거나 살피는 듯합니다.


  그러면, 이들 평론가나 심사자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라든지 ‘가수인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뿐 아니라, 바람이 풀잎과 나뭇잎을 간질이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풀잎에 내려앉는 소리라든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소리라든지, 매미가 허물을 벗는 소리라든지, 나비가 꿀과 꽃가루를 빨아먹는 소리를 얼마나 알아차리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 “때리는 것도 모자라서, 악기까지 상하게 할 셈이야?” (16쪽)

- “유나 씨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 (44쪽)

- “타케토. 너는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구나? 너는 음악을 할 자격이 없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 사진은 뭐냐? 어떻게 악기를 다루는 팔을 짓밟을 수 있어?” (82∼83쪽)





  시골에서 할매나 할배는 ‘호미질 하는 소리’나 ‘낫질 하는 소리’만 듣고도, 호미나 낫을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몸인가를 느낍니다. 지겨워 하는 빛인지 즐거워 하는 빛인지 곧바로 알아채거나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글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지겨운 숙제를 하는지 즐겁게 글빛을 가꾸는지, 이런 소리로 마음빛을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며 내는 소리를 듣고는 어떤 삶빛이 흐르는가를 읽을 수 있어요. 처마를 따라 똑똑 또는 줄줄 흐르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날씨가 어떠한가를 읽을 수 있어요. 하늘 따라 흐르는 구름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귀여겨듣는다면 하루 날씨뿐 아니라 며칠 동안 어떤 날씨가 될는지 읽을 수 있어요.


  동이 트면서 해가 저 멧등성이 너머로 올라올 적에도 소리를 듣습니다. 빛과 볕만 느끼지 않아요. 소리가 함께 있습니다. 바닷물이나 냇물이 찰랑거릴 때 물결소리만 있지 않아요. 물내음과 물빛이 함께 있습니다.



- ‘내는 말이제, 봄이 좋다. 하지만도, 겨울이 싫은 건 아니데이. 츠가루의 겨울은 얼어붙을 만큼 춥지만, 해님이 나와서 조금씩 눈을 녹이면, 소리가 변하제. 여름도 가을도 똑같은 기라. 계절마다 소리가 변하니까네. 그 소리를 언제든지 낼 수 있으면 행복한 기라.’ (88∼90쪽)

- “내는 내가 좋아서 켜는 것 외에는 관심 없다!” (149쪽)





  라가와 마리모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2) 첫째 권을 읽으면서 눈과 귀와 살갗이 모두 즐겁습니다. ‘새하얀 소리’란 무엇일는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즐겁습니다. ‘해맑은 소리’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짚으면서 즐겁습니다.


  오래된 악기 하나를 켤 줄 알기에 남다른 소리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서양 악기를 켜든 한국 악기를 켜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켜는 악기일 때에 비로소 대수롭고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다. ‘소리’를 줄이면 안 된데이.” (160쪽)

- “연주의 우열은 뭘로 정해지노? 아무리 곡에 감정을 실어도, 서투른 건 서투른 기다.” ‘‘할배’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배’의 소리가 없어졌다는 건, 길러 준 부모와 스승을 동시에 잃었다는 뜻이다. 우리 형제는 똑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80∼181쪽)





  악기를 타면서 ‘소리를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밥맛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사랑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삶은 늘 그대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되어 누리는 삶이기에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내 둘레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가수가 되어야 노래를 하지 않아요. 요리사가 되어야 밥을 짓지 않아요. 재단사가 되어야 옷을 짓지 않아요. 작가가 되어야 글을 쓰지 않아요. 사진가가 되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삶으로 짓고 가꾸는 노래입니다.



- “연주의 우열 말이다. 내는 기준 같은 거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수많은 샤미센이 울려도 형의 소리를 알 수 있데이.” (184쪽)



  한국에서 꼭 가야금을 타거나 거문고를 뜯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 나와야 하지는 않습니다. 대금이나 소금이나 풀피리를 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이 꼭 한국에서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빛을 노래하고 들으면서 삶을 가꾸는 따사롭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아주 아리땁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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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일공일삼 40
캐서린 패터슨 지음, 이다희 옮김 / 비룡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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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60


 

‘우리 집’이 즐겁다

―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

 캐서린 패터슨 글

 이다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6.11.10.



  우리 집 식구가 함께 먹을 풀을 아침에 뜯는데 풀사마귀 한 마리가 손등에 폴짝 뛰어오릅니다. 풀잎에 앉아 다리를 쉬거나 먹이를 기다리던 사마귀는 깜짝 놀랐으리라 생각해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웬 풀잎이 손등에 붙어서 안 떨어지나 싶어 다른 손으로 슥슥 털려 했는데, 털려다가 멈추었어요. 풀잎이 아닌 사마귀가 손등에 붙었으니까요.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를 슥슥 턴다면서 쳐냈으면 사마귀는 몹시 아팠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마귀는 날 수 있습니다. 사마귀한테는 날개가 있거든요. 내 손등에 올라탄 사마귀는 날아갈는지 안 날아갈는지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서서 사마귀를 바라봅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에서 안 떨어지고 싶은지, 톱니처럼 뾰족한 발을 내 손등 살갗에 박습니다. 간질간질합니다. 한참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귀엽습니다. “너도 우리 집이 좋지?” 하고 물으면서 풀사마귀를 강아지풀로 살그마니 옮깁니다. 풀사마귀는 강아지풀로 옮겨 탑니다.



.. 앨리스 선생님이 한숨을 쉬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기어 손잡이를 잡고 기어를 넣었다. “질리야.” “내 이름은 갈라드리엘이에요.” 질리가 이를 꽉 문 채 말했다. 앨리스 선생님은 질리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 네빈스 가족은 희고 깔끔한, 먼지 없는 집에 살았다. 네빈스 가족이 살고 있던 나무 한 그루 없는 동네에는 하나같이 희고 깔끔하고 먼지 없는 집들만 있었다. 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건 질리뿐이었다 ..  (12, 21쪽)



  나는 이제껏 세 가지 사마귀를 보았습니다. 첫째는 풀빛으로 몸빛이 고운 풀사마귀입니다. 둘째는 흙빛으로 몸빛이 어두운 흙사마귀입니다. 사마귀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바라보는 대로 사마귀를 부릅니다. 풀밭에 있으면 그야말로 풀하고 똑같아 보이기에 풀사마귀라고 부릅니다. 가을날 가랑잎이 지고 풀잎이 시들어 누렇게 빛이 바랜 곳에서 흙빛하고 똑같이 있는 사마귀를 보면서 흙사마귀라고 부릅니다. 셋째는 깜사마귀입니다. 깜사마귀는 올들어 봄날에 처음 보았어요. 까만 빛과 하얀 빛이 서로 줄무늬처럼 엇갈리는 조그마한 사마귀를 보았어요. 까만 줄무늬가 있으니 깜줄무늬사마귀라고 해야 할까 싶던데, 풀밭에서 사마귀를 만나면 어쩐지 반갑습니다.


  다른 풀벌레는 쉬 내뺍니다. 이를테면 메뚜기나 방아깨비나 여치나 풀무치는 같이 놀 생각을 않고 폴짝폴짝 내뺍니다. 사마귀는 언제나 그냥 있습니다. 사마귀는 내 손등이나 어깨나 머리에 곧잘 올라탑니다.


  사마귀도 노래하겠지요. 사마귀는 사마귀대로 노래를 하겠지요. 귀뚜라미와 방울벌레만 노래를 하지 않고, 사마귀도 노래를 하겠지요. 바람이 잔잔한 저녁나절 우리 집 둘레에서 울리는 온갖 풀벌레 노랫소리 사이에 사마귀 노래도 있겠지요.



.. “윌리엄 어니스트니?” “아니요.” 질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전데요.” “아.” 비록 눈은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아저씨는 환하게 웃었다. “네가 새로 온 여자 아이구나.” 아저씨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다른 아이들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엄마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바보 같고 멍청한 아이들 곁에도 엄마가 있는데 ..  (28, 55쪽)



  마당에서 사마귀랑 놀다 보면 어느새 들고양이 새끼가 뒤쪽에서 슬금슬금 걸어 나옵니다. 우리 집 광은 들고양이가 밤잠을 자고 새끼를 낳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태 앞서 몇 마리가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고, 올해에 세 마리가 또 태어났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바지런히 마을을 돌면서 들쥐를 잡습니다. 어미 고양이는 들쥐를 주둥이에 물고 새끼 고양이한테 갑니다. 새끼 고양이 앞에서 들쥐를 내려놓습니다. 이태 앞서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 가까이 올 생각을 안 하지만, 우리 집 마당을 이 아이들도 놀이터로 삼습니다. 올해 깨어난 들고양이는 사람하고 꽤 가까운 데까지 와서 놉니다. 손이 닿는 데까지는 안 오지만, 섬돌에 놓은 신을 작은 주둥이로 물면서 놀기도 하고, 빨랫대 다리를 깨물기도 합니다. 평상 다리를 긁기도 하고, 아이들이 타는 자전거를 만지기도 합니다.


  새끼 고양이로서는 우리 집 온갖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만지면서 재미있다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나는 마룻바닥에 조용히 앉아서 새끼 고양이 놀음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재미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 랜돌프 아저씨는 행복한 얼굴로 듣고 있다가는 이내 질리를 거들었고 질리 한 사람의 목소리만 울리던 것이 합창으로 변했다 … 질리는 랜돌프 아저씨의 팔꿈치를 잡고 조심스럽게 계단 아래로 안내했다. 질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트로터 아줌마의 표정은 질리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늘 그리워했던 그런 표정일 게 틀림없었다 … 윌리엄 어니스트는 네빈스 아줌마네 장식장 속에 있는 길쭉한 골동품 잔이 아니었다. 윌리엄 어니스트는 어린아이였다. 위탁 가정에 맡겨진 어린아이. 강해지지 않으면 트로터 아줌마가 없을 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터였다 ..  (70∼71, 92, 164쪽)



  캐서린 패터슨 님이 쓴 어린이문학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2006)를 읽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아이는 저한테 내키지 않는 사람한테는 ‘질리’라는 이름을 쓰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는 제 이름이 ‘질리’가 아니고 ‘갈라드리엘’이라고 밝히기도 하지만, 어머니한테서 받은 ‘갈라드리엘’이라는 이름을 아무나 함부로 부르는 일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질리’이든 ‘갈라드리엘’이든 이 아이는 어머니하고 함께 살지 못합니다. 아버지하고도 함께 살지 못해요. 이 아이를 낳음 어머니는 아이한테 전화조차 하지 않고, 편지도 안 씁니다. 짤막하게 끄적인 엽서만 몇 해에 한 차례 띄웁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혼잣몸인 어린 질리나 갈라드리엘은 ‘위탁 아이’가 되어 여러 집을 떠돕니다. 마음을 붙일 데가 없이 집과 학교를 자주 옮깁니다.



.. “만나서 반가웠어요.” 질리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싫었다. 어쨌든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아닌가. 아니,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 “할머니랑 같이 살기 싫어요.” “하지만 질리, 넌 말을 배운 뒤로는 툭하면.” “할머니랑 살고 싶다고 한 적 없어요! 엄마랑 살고 싶다고 했어요. 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아니에요. 난 할머니를 알지도 못해요!” “넌 네 엄마도 모르잖아.” “알아요! 기억해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 질리가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가족? 하지만 트로터 아줌마는 가족이 되고자 했다. 더 이상 이사하지 않는 것? 트로터 아줌마는 그것도 주고자 했다. 아니다. 질리가 원한 건 ‘위탁’ 자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  (185, 196, 202쪽)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에 나오는 아이는 오직 한 가지를 바랍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낼 집’입니다. 다른 꿈은 없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안 바랍니다. 돈을 바라는 일도 없고, 맛난 밥을 바라는 일도 없으며, 멋진 자가용을 타고 나들이를 다니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크든 작든 초라하든 우람하든,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어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을 뿐인 아이입니다. 아이는 ‘우리 집’을 갖고 싶습니다. 전세이건 월세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다른 사람 집에 얹혀서 지내든 내 집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얼싸안고 까르르 웃다고 기쁘게 노래하는 삶을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 “특별한 날이라서 이렇게 준비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 할머니는 사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혼자 된 뒤로 늘 부엌에서 밥을 먹었거든. ‘혼자’라는 말이 질리의 머릿속을 울렸다. 질리는 ‘혼자’인 게 어떤 건지 잘 알았다. 하지만 톰슨 파크에서 지내 본 뒤에야 가까이 있던 사람을 잃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질리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남편과 아들, 딸을 모두 잃었던 것이다. 정말로 ‘혼자’였다 …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엄마의 얼굴은 다른 모든 방과 마찬가지로 이 방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아, 엄마. 왜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왜 날 버리고 떠나셨어요? 질리는 벌떡 일어나 엄마의 사진을 뒤집어 티셔츠 아래 다시 숨겨 버렸다 ..  (215, 218∼219쪽)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재웁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잠자리에 듭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어버이입니다. 어버이인 터라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리를 누립니다. 아이들은 저희한테 아버지요 어머니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글을 제법 잘 쓰는 일곱 살 큰아이는 종이를 작게 오린 뒤 연필로 또박또박 “아버지 좋아요♡”라든지 “어머니 사랑해요♡”와 같은 글을 쓴 다음, 이 쪽종이를 뒤집어서 살그마니 건넵니다.


  밤에 빗소리를 듣습니다. 빗소리에 문득 잠을 깹니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섬돌을 살핍니다. 빗물이 어디까지 튀는지 보면서, 섬돌 둘레에 널브러진 아이들 신을 추스릅니다. 비가 안 들이치는 데에 신을 옮깁니다. 아이들이 걷어찬 이불을 찾아 여미어 줍니다. 밤바람은 한여름에도 차니, 마룻문을 닫습니다. 부엌 개수대에 설거지를 안 하고 남은 그릇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엊저녁에 먹고 남긴 국이나 밥이 있는지 냄비를 열어 봅니다. 밤에 한 차례 집안을 돌아보고는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이불을 또 여미고는, 아이들 사이에 가만히 눕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느새 뒹굴뒹굴 하면서 저희 손이나 발을 내 몸뚱이나 다리에 척 걸칩니다. 이러고는 쩝쩝 짭짭 입맛을 다시면서 고로롱고로롱 소리를 내면서 어떤 꿈나라를 날아다닙니다.


  집이란 어떤 곳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잠만 자는 곳일는지, 집이란 고단한 몸을 쉬는 곳일는지, 집이란 살림을 꾸리고 사랑을 나누는 곳일는지 찬찬히 헤아려 봅니다.


  집이란 어떤 곳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 궁금합니다. 집을 재산으로 여겨 부동산처럼 사고팔 때에 즐거울까 궁금합니다.


  누구나 마당이 있는 예쁜 집을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마당 한켠에서 자라는 커다란 나무를 쓰다듬으면서 즐겁게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기를 빕니다. 누구나 풀노래를 듣고, 풀벌레와 놀며, 풀피리를 불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랑스러운 우리 집’을 노래하면서 삶을 한껏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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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 한국기층문화의 탐구 4
황헌만 사진, 김홍식 외 글 / 열화당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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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82



시골집을 찍는 사진

― 草家

 황헌만 사진

 김홍식·박태순·임재해 글

 열화당 펴냄, 1991.1.20.



  사진책 《草家》(열화당,1991)를 읽을 때에는 늘 즐겁습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집이 가득가득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집에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엿볼 수 있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초가》라는 책은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인문책’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사진책으로 삼습니다. 글로 ‘풀집’을 이야기할 때에는 제대로 와닿지 않지만, 사진으로 풀집을 이야기할 적에는 살갗으로 와닿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은 황헌만 님은 “초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의 일이었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미련스럽다 할 지경으로 이 일에 매달려, 이제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237쪽).” 하고 말합니다. 1991년에 나온 책이니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에 찍은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황헌만 님이 아니더라도 1970∼80년대에 조금만 눈빛을 밝혀 시골을 돌아다녔으면 ‘풀집’ 사진과 ‘고샅’ 사진과 ‘시골’ 사진을 훌륭히 남길 수 있었어요.


  1970∼80년대에 한국 사진가 가운데 몇 사람쯤 시골마을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았을까 궁금합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막바지에 이른 때요 간첩신고가 불을 뿜던 때였기에, 시골에서 사진을 찍기란 아주 힘들었을까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 불꽃을 피우던 때였기에, 먹고살기에 빠듯하여 필름을 장만해서 사진을 찍기란 몹시 힘들었을까요?


  《초가》에 나오는 모습은 아주 오래된 집이 아닙니다. 쉰 해를 묵거나 백 해를 묵은 사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르고 끔찍하게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깃발이 나부낀 바람에, 이 책에 나오는 모습은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 옛적 이야기 같습니다.






  황헌만 님은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초가들은, 지금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거나 ‘지붕개량’으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 도로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국토의 살결’이 오죽 달라졌는가. 초가는 한반도로부터 떠나가고 있으나, ‘초가 사진’이 마치 초상화들처럼 남아 있게 된 것에 한 작가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삼아 볼 수 있을까(237쪽).” 하고 말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오늘날에는 ‘슬레트 지붕’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슬레트 지붕은 머잖아 모두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나라에서 돈을 들여 치워 주기도 하지만, 슬레트 지붕은 비바람과 햇볕에 삭고 낡아 쉬 부스러집니다. ‘새마을운동 역사 기록관’을 세울 일이 아니라면 슬레트 지붕을 건사할 일이 없을 테고, 이런 지붕을 얹은 시골집이나 도시집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도 아주 드물리라 생각해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남기는 일(기록)’이 사진찍기일까요. 무엇이든 다 찍어서 남기면 사진이 될까요. 이를테면, 독재자를 찍는 사진도 ‘남기는 일’이 되고, 독재정권 군홧발을 휘두른 이들을 찍는 사진도 ‘남기는 일’이 되나요.






  적잖은 사진가는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고 4대강사업 현장을 ‘그림처럼 멋있게’ 찍습니다. 이런 사진도 우리 사회와 역사를 남기는 일이 될까요.


  《초가》에 글을 쓴 박태순 님은 “대중문화 조작의 이런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즐겨 부르던 민요는 무어라 했던가.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고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지어내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라 했다(21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요. 저도 어릴 적에, 1980년대에 이런 노래를 흔히 듣고 불렀습니다. 저도 동무들과 동네 골목에서 놀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골집을 찍는 사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시골에 할매와 할배가 아주 많습니다. 젊은이는 거의 다 도시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시골에 남는 젊은이나 어린이나 푸름이를 깔봅니다. 도시로 갈 재주가 없어서 남는 찌끄레기인 듯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 시골로 온 사람을 두고는 ‘돈도 있고 생각도 있는’ 사람으로 칩니다. 시골에서 내처 살아온 사람과 시골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는 시골사람 눈매가 사뭇 다릅니다.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오늘날 시골을 돌며 사진을 찍는 사진가 한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어떤 빛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까요. 어릴 적부터 시골에 그대로 뿌리를 내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있을까요? 나이 들어 깨우친 빛이 있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와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있을까요? 그저 늙고 쭈그러든 할매와 할배만 어두컴컴하거나 슬프거나 쓸쓸한 모양새로 찍는 사진가만 있을까요?


  아이들이 시골에서 놀 수 있기를 빕니다. 어른들이 시골에서 일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시골에서 살림집을 곱게 꾸미면서 아름답게 꿈을 꿀 수 있기를 빕니다. 아름답게 가꾸는 삶을 아름다운 눈빛을 밝혀 사진으로 찍는 이웃이 있기를 빕니다. 사랑스레 돌보는 시골살이를 사랑스러운 손길을 뻗어 사진으로 담는 동무가 있기를 빕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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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시인선 106
안명옥 지음 / 천년의시작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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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62



시와 먹구름

― 칼

 안명옥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8.11.30.



  일곱 살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멧기슭에 자리한 이웃집에 마실을 간 뒤, 천천히 길을 걸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웃집에서 면소재지까지 한 시간 오십 분 동안 걷습니다. 시골에서는 군내버스를 타는 데가 드문드문 있을 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읍내로 가도록 버스길이 뻗으니, 이웃마을에서 우리 마을로 돌아가자면 한참 걸어야 합니다.


  아직 뜨겁게 내리쬐는 팔월 십일일 햇볕을 받으면서 걷습니다. 구름이 살살 흐르면 햇볕을 가리면서 그늘이 집니다. 바람이 쏴아 불면 햇볕을 받으면서 걷더라도 시원합니다.


  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적에는 구름을 올려다보기 어렵습니다. 아주 눈부시기 때문입니다. 해를 등지고 걸을 적에는 구름을 올려다보기 수월합니다. 이맛살을 쫙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안 아픕니다.



.. 언니, 사는 게 너무 힘드네 / 그렇게 사는 게 다 네 업이야 ..  (무거운 도화지)



  구름은 여러 겹입니다. 구름은 높이마다 다릅니다. 아주 높이 뜬 구름이 있고 나즈막하게 흐르는 구름이 있습니다. 탁 트인 들길을 걸어가면서 온갖 구름을 만납니다. 온갖 구름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갖 구름한테 노래를 들려줍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해창만 들길을 걷습니다. 큰아이를 업다가 안다가 걸립니다. 일곱 살 큰아이는 무척 씩씩하고 튼튼하지만, 뙤약볕을 두 시간 가까이 걷기란 만만하지 않겠지요.


  아이를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습니다. 아이를 안고 걷는 동안 노래를 부릅니다. 아이가 그만 내려서 걷겠다고 할 적에는 손을 잡고 노래를 부릅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이 길을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도 못 봅니다. 경운기를 달리는 사람 서넛, 자가용을 달리는 사람 스무 남짓, 짐차를 달리는 사람 열 즈음 만납니다.



.. 나무껍질을 벗긴다 / 대패질을 하면서 나무의 결을 만들어가면 / 조금씩 드러나는 나무 색깔, / 애무하듯 구석구석 정성을 들이며 / 결을 따라 부드럽게 사포질한다 ..  (바로크가구)



  예전에는 누구나 이 길을 걸었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만 한 길을 걸어서 학교도 다니고, 면내나 읍내를 다녔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런 길을 걸어가면서 노래를 불렀겠지요. 예전에는 누구나 이런 길을 걷다가 나무그늘에서 다리를 쉬고 도랑물에 목을 축였겠지요.


  오늘날에는 십 분 넘게 길을 걷는 시골사람조차 만나기 어렵습니다. 도시에서도 십 분 넘게 길을 걷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삼십 분 넘게 걷는다든지 한 시간 넘게 걸어서 학교나 회사를 오가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걸어다니면서 노래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귀에 소리통을 꽂고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있겠지만,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서 걷는 사람은 참말 얼마쯤 있을까요.


  그래요. 이제 이 나라에는 노래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채우는 대중노래는 있습니다. 돈을 벌려고 부르는 노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삶을 지으려고 부르는 노래는 없습니다.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면서 즐겁게 가슴에서 샘솟는 노래는 없습니다.



.. 오래전에 입었던 바지를 꺼내 입는다 //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살 ..  (구름바지)



  안명옥 님 시집 《칼》(천년의시작,2008)을 읽습니다. 안명옥 님 삶과 넋과 꿈이 깃든 시집을 읽습니다. 안명옥 님은 이녁 삶과 넋과 꿈을 ‘칼’이라는 낱말 하나로 갈무리합니다.


  칼이란 무엇일까요. 전쟁을 벌여 서로서로 죽고 죽이는 무기일까요. 부엌에서 통통통 고소한 도마질 소리를 내면서 살가운 숨결을 나누어 주는 밥을 짓는 살림살이일까요.


  나물을 다듬는 칼일까요. 물고기 대가리를 따는 칼일까요. 나무를 깎는 칼일까요. 능금알을 쪼개는 칼일까요.



.. 내 귓속에서 / 세상의 소리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있다 / 소리는 쌓여서 무덤을 이룬다 / 빛을 향해 열려 있는 내 몸 / 조용히 흘러 들어와 내 몸 어딘가에 / 소리 그림자를 저장해 두는 것들 ..  (귀-2)



  오늘 나는 큰아이와 두 시간 가까이 들길을 걸어 군내버스를 타려 했는데, 그만 코앞에서 놓칩니다. 고단하고 발이 아픈 큰아이를 가슴에 안고 잰걸음으로 면소재지에 들어서려는 때에 군내버스가 우리 앞을 부웅 스치고 지나갑니다. 버스를 부를 겨를도 없이, 버스를 잡을 틈도 없이, 군내버스는 저 앞으로 멀리 사라집니다.


  버스를 탔으면 찻삯 1500원이 들었을 텐데, 택시를 불러 8000원 찻삯을 치릅니다. 그래도 아이와 함께 집에 잘 들어왔고,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함께 씻긴 뒤 새 옷을 입힙니다. 땀에 옴팡 젖은 두 아이 옷과 내 옷을 조물조물 주물러 빨래합니다. 기지개를 켜고 마당에 내다 넙니다. 아침에 빨아서 내다 넌 옷은 다 말랐습니다.


  파랗게 싱그러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천천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봅니다. 한참 구름을 바라보면 구름빛은 찬찬히 바뀝니다.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구름은 없습니다. 올해까지 마흔 살을 살면서 이제껏 똑같은 구름을 본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앞으로 마흔 살을 더 살아도 똑같은 구름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 혼자, 길을 간다 // 지도 한 장 펼쳐보아도 /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 어렴풋이 빛이 보이는 쪽으로 걷는다 / 이정표의 글자들이 흔들린다 ..  (먹구름)



  네 살 작은아이는 아직 ‘먹구름’이라는 낱말을 모릅니다. 네 살 아이는 먹구름을 볼 때면 “저기 까만 구름 있어.” 하고 말합니다. 그래, 너한테는 까만 구름이로구나. 그렇지만, 까만 구름도 ‘까만 빛’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잿빛이라고 해야 맞겠지. 때로는 짙은 잿빛일 테고 여느 때에는 옅은 잿빛인 구름일 테지.


  여름에는 구름이 흘러 시원합니다. 여름에는 구름이 흐르면서 바람이 산뜻합니다. 여름에는 구름이 끼면서 그늘이 드리워 더위를 식힙니다. 구름이 있으면 에어컨도 선풍기도 부채도 다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해가 따순 볕을 내리쬐고 틈틈이 구름이 흐르면서 숲과 들과 마을과 집이 모두 아름답게 빛납니다. 4347.8.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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