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코 4
쿄우 마치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4



어디로든 날아가고 싶어

― 미카코 4

 쿄우 마치코 글·그림

 한나리 옮김

 미우 펴냄, 2012.1.15.



  보름 넘게 이어지던 비가 드디어 그칩니다. 비가 그치자마자 해가 살짝 고개를 내밉니다. 이러다가 구름 사이로 해가 다시 숨어드는데, 비가 그치니 잠자리가 온 하늘을 채웁니다. 비가 그치기를 참말 오랫동안 기다렸겠다고 느낍니다.


  보름 넘게 비가 내리고 또 내리니 온 집이 축축합니다. 우리 집 옆밭에서 자라는 복숭아나무는 기나긴 비에 해롱거리기까지 합니다. 아직 나무가 어린 탓에 모진 비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구나 싶습니다. 지난해에는 달포 남짓 빗줄기가 듣지 않아 가문 날씨에 애를 먹었는데, 올해에는 지난해와 사뭇 다른 여름입니다.


  비가 없이 땡볕만 내리쬐어도 고단하지만, 비만 줄줄 퍼붓기만 해도 고달픕니다. 지구별은 해와 비와 바람이 골고루 어우러질 때에 아름답습니다. 해나 비나 바람 가운데 한 가지만 드세게 찾아오면 몹시 힘들면서 팍팍합니다.



- “손. 잡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13쪽)

- ‘나오에 대해 알고 있는 것. 미도리카와가 금세 나를 앞지를 것이다.’ (18쪽)






  한국 정부는 곧 ‘쌀 수입 완전 자유’를 한다고 밝힙니다. 스무 해 앞서 미리 밝힌 일이라고 합니다. 이 나라 시골은 여러 가지 곡식이나 열매를 키우더라도 쌀농사가 가장 큰데, 그나마 시골사람 삶을 온통 무너뜨리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펼친 정책을 살피면, 예나 이제나 시골사람을 생각하는 정책은 한 가지조차 없었습니다. 경제개발 가운데 시골사람을 헤아린 정책은 없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오랜 시골빛을 짓밟는 정책이었습니다. 현대문명이나 산업사회 또한 시골마을을 흔들어 도시를 키우는 흐름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학교교육은 시골을 더 빨리 무너뜨리기만 합니다. 한국에 있는 학교 가운데 시골아이가 시골에서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는 곳은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온통 도시바라기로 나아가는 교육뿐입니다.


  인문책 가운데 시골살이를 밝히는 지식이 있을까요? 인문학을 말하는 지식인 가운데 스스로 시골에서 조용히 살면서 ‘아름다운 지식’을 들려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도시에만 머물지 않고 시골을 두루 찾아다니면서 소식과 이야기를 알리는 신문이나 방송은 얼마나 있는가요?


  직업교육을 보면, 100% 도시 직업을 알려주는 교육입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그저 ‘도시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알려주거나 가르칩니다.



- “오랜만에 이불을 널었거든. 맡아 봐. 해님 냄새!” ‘미안해. 사실은 카토가 아니라 (안아 주는 사람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5∼36쪽)

- “미도리카와는 어느 쪽이 예뻐 보여?”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전혀 다르잖아! 꽃과 폼폼인걸!” …… “역시 안 할래! 둘 다 갖고 싶은 건, 둘 다 필요없다는 걸 거야!” (50쪽)





  고들빼기와 부추와 젓가락나물 잎을 뜯어 아침을 차립니다. 호박과 양파와 감자를 끓여 호박감자국을 올립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구우면서 가지를 두껍게 썰어서 함께 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마루에서 놀다가 방에서 놉니다. 마당에서 우산을 쓰며 놀기도 하다가 피아노를 친다든지 바이올린을 켠다든지 피리를 붑니다. 아이들은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손에 쥐어도 놀듯이 종이를 넘깁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시험점수를 따져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우더라도 시험경쟁을 생각해야 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삶을 밝힐 만한 지식을 얻을 때에 즐겁습니다. 동무를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한식구와 오순도순 살림을 가꾸는 빛을 배울 수 있어야 비로소 교육입니다.


  사랑을 담아 차린 밥을 먹는 하루입니다. 사랑을 실어 부르는 노래를 함께 듣는 하루입니다. 사랑스레 가꾸거나 돌보는 숲에서 푸른 바람을 마시는 하루입니다. 사랑스레 짓는 논밭에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하루입니다.



- “인상파 같은 건 관심 없어. 예술일지도 모르지만 아트는 아냐.” “그럼 미도리카와는 뭐가 좋아?” “팀폼이나 코스모라운지. 그리고 …….” (61쪽)

- ‘돈도 있고, 탈것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나의 빨간 구두는 땅에 붙어 있었다.’ (74쪽)





  쿄우 마치코 님 만화책 《미카코》(미우 펴냄,2012) 넷째 권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물빛그림이 맑은 만화책 《미카코》 넷째 권에서는 어디로든 날아가고 싶은 아이들 마음이 흐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어디로든 날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 날개는 둘레에서 꺾기도 하고, 스스로 꺾기도 합니다. 스스로 날아오르고 싶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머뭇거립니다. 스스로 망설이다가 스스로 제풀을 꺾으면서 쳇쳇 하면서 한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왜 스스로 생각한 대로 훨훨 날아가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왜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을 곱게 펼치지 못할까요.


  남 눈치를 볼 일이 없습니다. 사랑은 사랑 그대로 풀면 됩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남 눈치를 보면서 ‘너를 사랑해’ 하고 말할 일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 주기를 바라면, 이러한 바람을 스스럼없이 말하면 됩니다. 괜히 마음에만 담다가 오래도록 힘들게 보내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입시 때문에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아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빛을 그리면 됩니다.


  바라봅니다. 느낍니다. 생각합니다. 움직입니다. 노래합니다. 춤을 추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 ‘1년에 한 번 오는 카드. 항상 조금 앞을 비추어 준다.’ (124쪽)

- “미도리카와는 잘 그리는데 담백해서 문제야. 수험 점수가 동점이었을 때 의지가 부족하다고 떨어질 것 같다고 할까. 콘크리트 블록을 좋아하는 거야! 좋아하게 되면 알고 싶어질 거고! 알고 싶어지면 상상해! 여기에 부딪히면 아프겠다라든지.” (134쪽)



  하늘을 나는 아이들이 귀엽습니다. 하늘을 나는 어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아이들이 어여쁩니다. 하늘을 날며 춤추는 어른들이 멋스럽습니다.


  다른 데를 보지 말아요. 내 마음을 보아요. 다른 데에 눈길을 빼앗기지 말고, 내 마음에 온 눈길을 모아 내 길을 씩씩하게 걸어요. 우리는 모두 이 삶을 저마다 가장 기쁘게 누릴 푸른 숨결입니다. 4347.7.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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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 - 별하나 그림책 3
사라 다이어 글 그림, 조은수 옮김 / 달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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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11



함께 나눌 때에 아름다운 삶

― 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

 사라 다이어 글·그림

 조은수 옮김

 달리 펴냄, 2004.2.28.



  아이들은 콩콩 뛰면서 놀 적에 즐겁습니다. 어른들은 신나게 노래하면서 일할 적에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깔깔 웃으면서 놀 적에 기쁩니다. 어른들은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일할 적에 기쁩니다.


  뛰지 못하면서 놀라고 하면 아이들은 좀이 쑤십니다. 노래를 가로막으면서 일만 하라고 시키면 어른들은 죽을 맛입니다. 웃지 못하게 막으면서 놀라고 하면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일할 때에는 웃지 말라고 윽박지르면 어른들은 괴롭습니다.



.. 날마다 꼬마 도깨비들은 밖으로 나와 “아,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 하면서 놀라워했지요 ..  (7쪽)



  도시에서는 풀이나 나무가 자랄 만한 빈터가 마땅히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손바닥만 한 땅뙈기조차 엄청나게 비싸게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풀이 자라거나 나무가 솟을 만한 땅을 그대로 두려 하지 않습니다. 가게로 쓰거나 주차장으로 삼거나 건물을 지으려 해요.


  옛날부터 어느 나라에서든 꽃그릇을 두지 않았습니다. 꽃그릇을 둘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문을 열고 내다보면 어디에나 풀밭이요 숲이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둘러싸고 온통 풀밭이면서 숲인데, 굳이 집안에 그릇을 따로 두어 꽃을 보려고 하지 않았어요. 철마다 다른 꽃을 만나면서 즐거웠고, 달마다 다른 풀과 잎을 마주하면서 기뻤습니다. 철마다 다른 나물을 캐면서 즐거웠고, 달마다 다른 남새를 거두면서 기뻤습니다.


  이제 도시에서는 어느 집에서나 꽃그릇을 둡니다. 흙이 숨쉬는 빈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 스스로 흙내음을 맡고 흙빛을 보고 싶기에 꽃그릇을 둡니다. 흙내음을 못 맡고 흙빛을 못 볼 적에는 사람다운 기운을 지키기 어렵다고 느껴, 이제 도시에서는 누구라도 꽃그릇 하나쯤 집안에 두려고 합니다.




.. 도깨비들은 저마다 가져온 것들을 돌조각 속에 잘 간직했어요 ..  (14∼15쪽)



  공원은 흙이 싱그럽게 숨쉬는 곳이어야 아름답습니다. 공원을 두는 까닭은, 엄청나게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안 미치도록’ 할 뜻이기 때문입니다. 공원 한 뼘조차 없이 시멘트 건물만 빽빽하면 어찌 될까요? 최첨단을 달린다는 건물이라 하더라도, 빽빽한 건물만 가득한 곳은 감옥하고 같아요. 풀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않는 곳은 사람들 누구나 사람다움을 잃으면서 바보가 되도록 내모는 감옥이라고 할 만합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플라스틱 잔디를 깔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흙으로 된 땅’을 밟고 걷거나 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흙내음을 맡아야지요. 비가 올 적에는 빗물이 흙땅을 튀기는 소리를 듣고, 흙땅에 빗물이 고이면서 풍기는 흙내음을 맡아야 합니다. 그저 흙뿐인 운동장인데, 이곳에 풀씨가 날아들어 온갖 풀이 자라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안 심었지만, 갖가지 풀이 싱그럽게 돋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도 어른도 푸른 생각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셔요. 지구별에 풀과 나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에서 숲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이 모두 도시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구별에서 숲과 멧골을 밀어붙여 고속도로와 골프장과 발전소만 끝없이 만들면, 관광단지와 호텔과 놀이기구와 아파트만 자꾸 만들면, 이런 지구별은 얼마나 끔찍한 감옥이 될까요?


  숲이 있어야 숨을 쉽니다. 숲이 있어야 밥을 얻습니다. 숲이 있어야 집을 지을 나무를 베어서 쓸 수 있습니다.




.. 도깨비들은 곧 깨달았어요. 해는 하늘이 없으니까 떠 있을 곳이 없고, 하늘은 땅이 없으니까 있을 데가 없고 ..  (19∼21쪽)



  사라 다이어 님이 빚은 그림책 《세상을 훔쳐간 꼬마 도깨비들》(달리,2004)을 읽습니다. 꼬마 도깨비는 여느 때에는 돌조각에 깃들어 지내는데, 아침마다 돌조각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바라본대요. 해와 구름과 들과 숲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노래한대요.


  어느 날 꼬마 도깨비들은 저마다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돌조각으로 가져간대요. 이리하여 지구별을 꾸미던 아름다운 것은 모두 사라지는데, 돌조각에 들어온 해와 바다와 흙 모두 제 빛을 잃는다지요. 혼자만 있을 수 없다지요.




.. 도깨비들은 큰맘을 먹고, 가져온 것들을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았어요 ..  (26∼28쪽)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무엇을 쓰고, 무엇을 다루는 목숨일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장난감으로 삼을까요? 어른들은 이녁 집에 무엇을 건사할까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돈을 아주 크게 여깁니다. 저마다 돈을 벌려고 힘씁니다. 돈을 더 벌어서 은행계좌에 꽁꽁 모셔 둡니다. 돈을 꽤 많이 벌었어도 이웃과 나누지 않습니다. 책을 꽤 많이 장만했어도 이웃과 함께 읽지 않습니다. 지식을 꽤 많이 갖추었어도 이웃과 주고받지 않습니다.


  어느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느 때에 즐거울까요. 어느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꼬마 도깨비들은 뒤늦게 깨달은 뒤 모두 제자리에 두었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뒤늦게 알아차린 뒤 두 손을 말끔히 비웠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두 손에 아무것도 안 쥐었대요. 꼬마 도깨비들은 ‘내 것’을 하나도 안 두고 그저 기쁘게 웃으면서 바라본대요. 4347.7.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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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는 꽃담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2
유타루 지음, 김효은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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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57


 

마음으로 새기는 별빛

― 별이 뜨는 꽃담

 유타루 글

 김효은 그림

 시공주니어 펴냄, 2012.7.20.



  개구리는 살갗으로 숨을 쉽니다. 개구리가 몸을 적시려고 뛰어드는 둠벙이나 못에 농약 기운이 흐르면, 개구리는 그만 살갗이 타면서 숨이 막혀서 죽습니다.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고 하지만, 사람도 살갗으로 함께 숨을 쉽니다.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을 적에 답답한 까닭을 제대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살갗이 숨을 쉬지 못하면, 사람도 개구리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코로 바람을 마시지요. 살갗으로 바람을 느끼지요. 그리고,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풀과 나무만 잎사귀로 햇볕을 머금지 않습니다. 사람도 살갗으로 햇볕을 머금습니다. 햇볕을 제대로 머금지 못하면, 사람들은 몸빛이나 낯빛이 파리합니다. 몸과 낯이 파리하면 ‘죽은 얼굴’이라고 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밥과 물과 바람뿐 아니라 햇볕을 함께 먹으면서 몸을 튼튼하게 건사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날 창문을 꼭 닫아걸고 에어컨을 켠다고 해서 시원하지 않습니다.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몸에도 나쁩니다. 여름날에는 여름볕을 온몸으로 먹으면서 까무잡잡하게 살갗이 타야 몸이 튼튼합니다. 예부터 아이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바뀌도록 씩씩하게 놀아야 한다 말했고, 어른들은 여름 내내 까무잡잡하게 살빛이 거듭나도록 야무지게 일해야 한다 말했습니다.



.. 승용차가 바짝 다가서며 비키라고 빵빵대.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걸어. 할아버지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 차들이 빵빵대며 휙휙 수레를 앞질러 가. 매연과 먼지가 할아버지를 옭아매듯 달려들어. 카악, 할아버지가 가래침을 모았다가 퉤엣, 뱉어 … “실례합니다.” 정장 차림의 여자가 마당에 들어와. 할아버지가 경계하듯 여자를 삐딱하니 올려다봐.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주민들 항의가 들어와서요.” 여자는 너저분한 마당을 찡그린 얼굴로 훑어보며 말을 이어 가. “동네 사람들이 밤에 너무 시끄럽대요. 고양이들 때문에요. 그리고 집이 너무 지저분해서 귀신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고들 해요.” 할아버지는 여자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해 ..  (19, 29쪽)



  바람이나 햇볕을 먹지 않고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습니다. 풀과 나무도 햇볕이나 바람이 모자란 데에서조차 뿌리를 내립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틈바구니에서도 줄기를 올리는 풀이나 나무예요. 빛 한 줄기 스미지 않더라도 꽃을 피울 줄 아는 풀과 나무입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빛이 없는 데에서도 용케 살아남습니다.


  다만, 빛 한 줄기 없는 데에서 사람들은 사람다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합니다. 목숨줄은 붙었어도 즐겁지 못해요. 목숨줄은 이으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먼 옛날에는 누구나 시골사람이었고, 누구나 시골빛이었으며, 누구나 시골살이였습니다. 궁궐에 스스로 갇힌 임금님이나 몇몇 신하나 노예를 빼면, 참말 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바람과 볕과 빗물을 먹으면서 살았어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시골사람은 모두 까무잡잡한 낯빛이요 살빛이었습니다. 서양사람을 두고 ‘흰둥이’라 말하지만, 서양사람이라고 모두 흰 살결이 아닙니다. 시골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흙빛 살결입니다.


  그리고, 도시사람은 어느 겨레나 나라에서도 허연 살결입니다. 해를 등지는 동양사람도 허연 살빛이에요. 해를 먹지 않으면, 또 비와 바람을 먹지 않으면,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몸이 아픕니다. 해를 먹어야 안 아프고,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해야 안 아픕니다.



.. 할아버지가 더럽고 때 묻은 손에 비누칠을 하면서, 땀난 얼굴을 씻으면서, 대문 쪽으로 자꾸 눈길을 돌려.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처마 밑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들여다봐 … “혹시, 딴 곳으로 이사할 생각 없으세요?” 여자의 말에 할아버지가 두 눈을 부릅떠. 몸을 부르르 떨며 양철통을 집어. “동네에 놀이터 시설을 하나 더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구청에서 놀이터로 쓸 땅을 알아보고 있거든요. 혹시 할아버지가 집을 파신다면…….” ..  (36, 54쪽)



  몸이 자꾸 아프면 마음까지 자꾸 아픕니다. 몸이 늘 튼튼하면 마음까지 으레 튼튼합니다. 몸이 자꾸 무너지면 마음까지 자꾸 무너집니다. 몸에 늘 기운이 넘치면 으레 마음에도 기운이 넘칩니다.


  우리가 몸을 가꾸려고 먹을 밥을 생각해 봅니다. 해와 비와 바람과 흙을 골고루 누린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을 때에 싱그럽습니다. 해도 비도 바람도 흙도 골고루 누리지 못한 곡식이나 열매를 밥으로 삼아 먹으면 싱그럽지 못해요. 친환경이나 유기농이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비닐집에서 키운 곡식이나 열매는 얼마나 맛있거나 몸을 살찌울까 알 길이 없습니다. 제철에 나지 않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운 곡식이나 열매를 놓고도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까요. 학교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칠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어른은 머릿속에 어떤 지식을 담았을까요. 해와 비와 바람을 등지는 학교는 아닌가요. 흙내음이나 흙빛이 없이 교과서 지식만 있는 학교는 아닌가요. 그리고, 비닐집에서 억지로 키우듯이, 학교라는 온실에서 아이들 마음속에 꿈이나 사랑은 없이 지식만 집어넣지 않나요.



..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면서, 죽은 별들에게 꽃씨를 뿌려 줄 거예요. 꽃이 피면 까만 별들이 살아날지 몰라요. 아니, 꼭 살아날 거예요. 살아나면 밤마다 하늘에서 반짝거리겠죠?” “별들이 반짝반짝할 때, 꽃향기가 밤하늘에 가득하겠는걸.” 할아버지 말에 아이가 가슴을 부풀리며 텅 빈 하늘을 올려다봐 …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아직도 아직도 미워하고 원망해.” “누구를?” “할아버지 자기 자신. 할아버지는 자기를 미워하고 원망해.” ..  (74, 91쪽)



  유타루 님이 쓴 동화 《별이 뜨는 꽃담》(시공주니어,2012)을 읽습니다. 요즈음 보기 드물도록 예쁘게 빚은 동화문학이라고 느낍니다. 줄거리도 글흐름도 여러모로 정갈합니다. 아이 말투를 조금 더 잘 살릴 수 있으면 한결 나았을 테지만, 이만큼 동화를 쓸 수 있으니 놀랍습니다. 요즈음 쏟아지는 생활동화를 보면, 너무 ‘학교’와 ‘스트레스’에 기울어집니다. 입시지옥에서 괴로운 아이들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다든지, 어른들을 모두 바보스레 비꼬는 동화문학만 너무 많습니다. 생태나 자연을 말하는 동화도 ‘숲이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어떤 빛인가’ 하는 대목까지 깊이 파고들지 못하곤 합니다.


  동화도 소설도 주의주장이 아닙니다. 동화도 소설도 논설문이나 칼럼이 아닙니다. 동화나 소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이는 하루를 환하게 웃듯이 누리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적에 동화나 소설이 됩니다.


  《별이 뜨는 꽃담》은 도시에서 흔히 볼 만한 ‘손수레 할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여기에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가 나란히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은 나이를 가로지르는 믿음을 주고받습니다. 두 사람은 겉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오직 마음빛으로 만나고, 마음빛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한테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 지식’을 읊지 않습니다. 아이는 아이 마음에 가장 곱게 스며드는 ‘별’과 ‘꽃’을 할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할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어떤 마음이었는지 문득 돌아봅니다. 할아버지도 어린 동무 아이처럼 이녁이 어릴 적에 ‘별’과 ‘꽃’을 늘 품고 살았다고 깨닫습니다. 그저 돈만 바라보면서 동무와 이웃이 없이 지내는 삶이 아니라, 언제나 별과 꽃으로 삶을 밝히고 싶은 사랑이 있은 줄 알아차립니다.



.. “할아버지네 집 담도 이렇게 꽃이 피는 담이면 좋겠어요. 꽃들이 활짝 핀 담이 할아버지네 집을 빙 둘러싸는 거예요. 정말 멋지겠죠? 그리고 …….” … 할아버지가 가 보라고 손짓을 해. 아이가 새끼 고양이를 내려놓고, 고개를 꾸벅 숙여 할아버지에게 인사해. 할아버지가 돌아서서 가는 아이를 바라봐. 저만치 가던 아이가 돌아서더니 큰 소리로 말해 ..  (95, 107쪽)



  아이는 제 어버이를 따라 다른 동네로 떠납니다. 할아버지는 모처럼 사귄 동무가 사라집니다. 다시 혼자가 됩니다. 그러나, 다시 ‘혼자’가 아니라, 이제부터 새롭게 마음을 열어 웃음꽃을 피우고 웃음나라를 가꿀 생각을 품습니다. 다시 태어날 꿈을 꿉니다. 다시 사랑할 길을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대문에 채우던 자물쇠 셋을 모두 버립니다. 그리고, 돈도 버리겠지요. 이러면서, 할아버지 집에 옛날처럼 다시금 꽃과 나무와 풀이 그윽하게 숨쉬는 ‘보금자리 숲’을 이루려 할 테고, 동네 한복판에 새로 깃드는 ‘보금자리 숲’은 이웃집에 고운 씨앗으로 퍼질 만하리라 느낍니다. 할아버지 겉모습이 아닌, ‘한 사람 가슴에 깃든 밝은 빛’을 할아버지네 이웃들도 차츰 알아보리라 느낍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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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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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3



내 동무는 누구인가

― 제7여자회 방황 1

 츠바나 글·그림

 박계현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3.5.30.



  예전에는 동무를 마을에서 사귀었습니다. 예전에는 어느 누구도 동무를 학교에서 사귀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데, 학교가 선 지는 이제 백 해를 겨우 넘어요. 아이들은 언제나 마을에서 동무를 만나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른들은 늘 마을에서 이웃을 만나 즐겁게 일했습니다. 마을지기이면서 마을동무이고 마을이웃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비로소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동무를 사귀지 못해, 학원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때로는 학교나 학원에서 동무를 못 사귀는데, 이때에는 인터넷에서 동무를 사귑니다.


  아이들이 동무를 사귀는 곳은 아이들이 노는 곳입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동무가 됩니다. 동무라고 할 적에는 함께 놀 수 있는 사이입니다. 함께 웃고 노래하면서 놀 수 있기에 동무입니다.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사이가 될 때에 동무예요.



- “딴죽 걸 부분은 많지만 오히려 이제 언급하고 싶지 않네.” “우리 같은 소시민은 고작해야 핵 셀터를 사는 일 정도밖에 못하니까.” “못 사!” “하긴, 뭔지 알아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는 많으니 일일이 다 상관할 수는 없어.” “정말 그래.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야지!” (22쪽)

- “조만간 성별도 이름도 개인정보라고 해서 비밀 취급 될 것 같아.” “응.” “그리고 마지막에는 개인지 인간인지도 모를 세계가 찾아오는 거야!” (27쪽)




  학교가 없던 지난날에는 마을이 배움터이고, 집이 배움터입니다. 아이들은 집과 마을에서 일을 익힙니다. 따로 학교를 가야 일을 익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배울 일이란, 삶을 짓는 일이에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할 줄 알아야 일입니다.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을 때에 비로소 삶을 짓습니다.


  학교는 어떤 곳일까요? 학교는 집짓기와 밥짓기와 옷짓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는 돈벌기 하나만 가르칩니다. 돈을 벌어서 집과 밥과 옷을 돈으로 장만하는 길을 알려주는 학교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땀을 안 흘리고 돈만 벌도록 알려주는 데가 학교라고도 할 만합니다. 참말 그렇거든요. 학교를 길게 다니면 다닐수록 ‘돈벌기’와 가깝다고 합니다. 학교를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학교를 오래 다니면 돈은 잘 벌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는 길과 더욱 멀어집니다. 돈을 많이 쌓아서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기에는 수월할는지 모르지만,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해야 돈을 치러 살 수 있어요. 남이 밥과 옷과 집을 장만하지 않는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것도 못합니다.



- “매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후 디지털 천국에서 재생하는 모양이야.” “이런 일을 해도 하느님한테 혼나지 않을까?” “글쎄? 뭐, 최종적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인공 신체’가 만들어지는 것을 모두 기다리고 있는데, 그무렵에는 이미 지구 인구보다 많을지도 몰라. 자, 그럼, 수속도 끝났으니 다음은 츠보이 찾기네.” “어디 있는지 알아?” “맡겨 두시라. 죽은 사람에게는 거의 사생활 같은 건 없어.” (49쪽)

- “왠지, 나는 부모님 마음대로 살려두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가짜 천국에서 급히 부활해 버려서, 뭘 어떻게 하면 좋은 건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 이건 정말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건가? 싶어서.” (52쪽)





  돈만 벌도록 아이들을 내모는 학교 얼거리요 사회 틀거리입니다. 아이들이 돈만 벌면 집이든 돈이든 옷이든, 게다가 동무와 이웃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듯이 외치는 학교요 사회입니다. 영화나 문학을 보면, 돈으로 사랑까지 살 수 있는 듯이 떠벌입니다.


  참말 그럴까요? 참말 돈으로 사랑이나 꿈이나 믿음까지 살 수 있을까요? 참말 돈으로 믿음을 살 수 있기에 예배당은 자꾸 커질까요? 참말 돈으로 꿈을 살 수 있으니, 정부는 경제개발만 끝없이 외치는가요?


  아이들은 서로 놀이동무가 되어야 아름답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길을 온몸으로 배울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은 다른 데에서 싹트지 않습니다. 함께 놀고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땀흘리는 사이에 천천히 싹트는 사랑입니다. 제대로 놀지 못한 채 나이만 먹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즐겁게 놀지 못한 채 입시지옥에서 허덕이다가 대학교에 가는 아이들은 사랑을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은 살섞기만 알아요. 사랑으로 새로운 아이를 낳는 빛을 몰라요.



- “모처럼 친구가 되었으니까 같이 집에 가자.” “미안. 잠깐만 기다려!” “친구라고 해도, 무늬만이야. 이런 건.” “응?” “왜냐하면 친구는 맞선 같은 거랑은 다르잖아?” (93쪽)

- “아무래도 시간이 된 모양이다. 아저씨도 가련다.” “가, 가다니, 어디로?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저쪽의 우주야. 뭐, 이 멋진 기회를 혼자 독점하는 것도 아까우니. 만약 너도 따분하다면.” (123쪽)




  츠바나 님 만화책 《제7여자회 방황》(대원씨아이,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고등학교 아이들 모습은 오늘날 모습은 아닙니다. 얼추 쉰 해나 백 해쯤 지난 뒤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과학문명만 앞세워 달음박질을 칠 때에 드러날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만화이기에 만화처럼(?) 말한다고 할 텐데, 먼 앞날 학교에서는 ‘동무 사귀기’가 ‘성적표 점수’에 들어갑니다. 학교에서는 억지로 짝짓기하듯이 ‘동무짓기’를 합니다. 동무하고 어떻게 지내느냐를 늘 지켜보는(감시) 눈길이 있고, 동무하고 제대로 지내지 못하면, 그러니까 ‘사회에서 바라는 동무 사귀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낙제 점수’를 받습니다.


  너무 마땅한 일인지 모르나, 만화에서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뛰놀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뛰놀 겨를이 없습니다. 줄넘기나 공차기 따위를 빼고, 아이들이 참답게 놀이를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학원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동네에서 아이들이 노나요?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빈터가 없습니다. 마땅한 빈터는 모조리 주차장이 되거나 가게가 됩니다. 쓸 만한 빈터는 어른들이 쓰레기를 마구 갖다 버려서 지저분합니다.



- “이건 좋은 걸 샀는데!” “나는 안 좋은 예감밖에 안 들어.” “그래? 왓핫핫.” “나도 웃자. 왓핫핫.” “어? 지금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없어도 웃을 수 있다니까!” (123쪽)



  아이들한테 동무는 누구인가요. 어른들한테 이웃은 누구인가요. 아이들이 동무 없이 학교만 다녀도 될까요. 아이들이 또래 동무를 사귀려면 반드시 학교에만 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마을에서 또래나 동무를 사귀면서 즐겁게 뛰놀 수 없는가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이 못 뛰놀도록 가로막기만 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에 집어넣기만 하면서 닦달하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한테 집집기와 밥짓기와 옷짓기 같은 삶짓기를 물려줄 생각을 안 하나요. 아니, 어른들은 왜 스스로 집과 밥과 옷을 스스로 지어서 누리려는 생각조차 안 하나요.


  아이들이 그저 학교에만 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는 메마른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온통 학교에만 갇혀야 하는 사회는, 동무도 이웃도 없이 차디찬 사회입니다.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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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x츠바사 3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35



어른이 만든 사회에서

― 유키×츠바사 3

 타카하시 신 글·그림

 편집부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4.30.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체육도 언론도 어른들이 만들었습니다. 전쟁무기도 어른이 만들었고, 문학과 영화도 어른이 만들었어요. 인터넷과 전화기도 어른이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농약과 비료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자동차와 고속도로도 만들었고,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은 식물원에서 새로운 꽃이나 열매를 만들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맨 처음이라 할 꽃이나 열매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다른 꽃과 열매가 있을 때에 비로소 이들 꽃과 열매를 바탕으로 조금 손질한 꽃과 열매를 만드는 시늉을 할 뿐입니다.


  우리 사회와 정치와 문화와 교육 모두 어른이 만드는데, 이 어른들은 바람이나 햇볕이나 빗물이나 흙이나 숲은 만들지 못합니다. 만들 재주조차 없거니와, 만들 생각이 없고, 만들 만한 깜냥이나 나이도 없습니다. 지구별 어떤 어른들도 숲 하나를 만들 수 없어요. 숲이 이루어지기 앞서 늙어서 죽겠지요.



- ‘난 단지 악기를 되찾아 선배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뿐. 그게 다야. 난, 결코 범인을 찾아내 벌을 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10쪽)

- ‘괜찮아, 아가야. 넌 망가지지 않았어. 미안해. 싸늘하게 식어 있는데 소리를 내서. 깜짝 놀랐지? 넌 참 예쁜 목소리를 가졌구나? 추위 때문에 튜닝은 엉망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29쪽)




  지구별 어른들 가운데 숲이나 해나 바람이나 비나 흙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만, 지구별 어른들 누구라도 숲을 하루아침에 망가뜨리거나 없앱니다. 햇볕도 바람도 빗물도 흙도 하루만에 무너뜨리거나 짓밟습니다.


  참말 그렇지요. 사랑스럽게 삶을 짓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면서, 끔찍하게 삶을 짓밟는 길로는 아주 쉽게 나아갑니다. 사랑으로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로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으면서, 끔찍하게 이웃을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은 아주 쉽게 저지릅니다.



- ‘그리고, 선배는 발견한 것이다. 이 동네처럼 저속한 ‘초능력’ 같은 힘이 아니라, 본래 선배가 전학 오기 전에 갖고 있었을 반짝이는, 빛 같은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70쪽)

- “난 전혀 몰랐어. 이제껏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른 족속의 인간들이 있다는 걸. 참 웃기지. 아무도 우릴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데.” (113쪽)




  어른은 누구일까요. 나이를 먹으면 어른일까요. 아이는 누구인가요. 나이가 적으면 아이인가요.


  오늘날 사회에서는 고작 나이 하나만 놓고 ‘어른·아이’를 가릅니다. 그러면, 나이로 가르는 ‘어른·아이’ 틀거리는 올바를까요? 아름다울까요? 알맞을까요? 사랑스러울까요?


  나이값을 못하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전쟁무기를 만들 뿐 아니라, 전쟁무기로 이웃을 윽박지르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주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아이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삶을 아름답게 지을 줄 모르는 채 나이만 먹는 사람한테도 ‘어른’이라는 이름을 주어도 될는지 궁금합니다.



- ‘난 그저 자신의 입김이 뽀얗게 천장에 떠오르는 것을 보며,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꼈어.’ (121쪽)

- “또, 또, 그, 그런 무서운 표정 지어 봤자 소용없어! 어차피 우린 어른들한테 실컷 무서운 꼴 당하고 있으니까.” (167쪽)




  타카하시 신 님 만화책 《유키×츠바사》(대원씨아이,2014) 셋째 권을 읽습니다. 아픈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프면서도 티를 내지 않는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프면서 티를 내지는 않으나, 어느새 생채기가 드러나는 아이들이 잔뜩 나옵니다.


  아이들을 아프게 내모는 사람은 언제나 어른들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낳지만, 막상 그네들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줄 모릅니다. 아마, 아이를 낳아 괴롭히거나 닦달하는 어른 스스로 ‘이녁이 아이였을 적’에 ‘이녁을 낳아 돌보았다는 어른한테서 똑같이 괴롭힘과 닦달을 받았다’고 할 만합니다. 어릴 적부터 사랑을 받은 적 없이 ‘나이만 먹고 어른이 되었’으니, 막상 ‘어른인 몸뚱이로 아이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거나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늘은 어른이지만 어제는 아이’였던 사람이 어릴 적에 ‘다른 어른이 만든 엉터리 사회’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도 정작 ‘어른이 된 오늘 이 끔찍한 사회를 허물거나 몰아내는 데에 힘을 쓰지 못’해요. 예전 어른들이 했듯이, ‘바보스러운 아이 괴롭히기’를 그대로 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사회가 아름답게 거듭나도록 하는 일’에 선뜻 나서지 않는 어른들입니다. 이러면서, 이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서 새로운 어른이 될 적에도, 오늘과 같이 똑같은 굴레와 쳇바퀴가 되풀이되도록 한다고 할까요.



- ‘산 너머에 있는 친구들, 열심히 하고 있니? 이쪽 학교는 같은 취주악부라 해도 멤버는 그리 많지 않아. 악기도 적고. 하지만 언젠가 대회에서 너희를 만날 수 있겠지. 그때까지는 이쪽 애들하고도 친해져 있을게.’ (140쪽)



  오늘 바꾸려고 할 때에 바꿀 수 있습니다. 오늘 바꾸지 않고 모레나 글피쯤 바꾸겠다고 말하면 바꾸지 못합니다. 오늘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힘을 내야 합니다. 오늘 어른인 사람들은 오늘 아이인 이웃한테 사랑을 물려줄 노릇입니다.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 아이로 무럭무럭 자라는 이웃한테 사랑을 보여주고 나눌 노릇입니다. 어른이 만든 이 사회는 바로 어른이 스스로 고쳐야 고칠 수 있습니다. 4347.7.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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