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떳떳하지 못한 ‘새움출판사’와 ‘이정서’



  즐겁게 나누려는 이야기라 한다면, 서로를 섬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섬기지 않고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린다면 아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예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은 괜히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을 한국말로 새로 옮긴 ‘새움출판사’와 ‘이정서’라는 분은 ‘사람 사이에 서로 지킬 아름다운 마음결’은 헤아리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 25년 오역의 세월이 관련 전문가도 아닌 무명의 출판인 한 명 한테 이렇게 까발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수구세력에겐 두렵고 두렵긴 할 것입니다 ..  (이정서라는 분이 남긴 글)



  새움출판사는 ‘무명 출판사’가 아닙니다. 이 출판사에서 대표로 일하는 분도 ‘무명 출판인’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낮추려는 모습일는지 모르나, 참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못한 채 씩씩하게 책마을 한길을 걷는 작은 출판사’가 수없이 많은데, 그분들 앞에서 이런 이름은 함부로 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수구세력에겐 두렵고 두렵긴”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이 될는지요? 누가 수구세력인지요?


  새움출판사에서 한국말로 새로 옮긴 《이방인》을 ‘칭찬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사람은 모두 ‘수구세력’이 되는 듯한 흐름이자 느낌입니다. 문학작품 하나를 더 깊고 넓게 생각하고 살피자는 이야기가 아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리는 말을 일삼는다면, 어떤 이야기 어떤 토론 어떤 문화 어떤 책이 이루어질까 아주 궁금합니다.



.. 지금은 그 '거짓'이 이기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간을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정당하게 책을 읽은 독자들 전부의 입을 틀어막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정서라는 분이 남긴 글)



  무엇이 거짓일까요? 새움출판사 이정서가 외치는 말을 따르지 않으면 모두 다 거짓일까요? ‘정당하게 책을 읽은 독자’는 누구일까요? 새움출판사에서 낸 책을 읽은 사람만 ‘정당하게 책을 읽은 독자’일까요?


  이정서라는 분 말마따나 ‘독자들 전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 새움출판사에서 아무리 ‘노이즈 마케팅’을 끝없이 달리더라도 ‘독자들 전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새움출판사에서 알라딘으로 찾아와 ‘새움출판사 번역책에 별점 다섯 테러(?)’를 일삼는다 하더라도 ‘독자들 전부의 입을 틀어막’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새움출판사에서는 스스로 ‘노이즈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여러 곳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면, 노이즈 마케팅이란 무엇일까요?



[두산백과] 노이즈 마케팅 [noise marketing]

: 자신들의 상품을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를 늘리려는 마케팅 기법.


[시사상식사전] 노이즈 마케팅 [noise marketing]

: 고의적 구설수를 이용하여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기법


[매일경제] 노이즈마케팅 [Noise marketing]

: 각종 이슈를 요란스럽게 치장해 구설수에 오르도록 하거나, 화젯거리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현혹시켜 인지도를 늘리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즉 소음이나 잡음을 뜻하는 '노이즈'를 일부러 조성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기법으로 주로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이나 새로 개봉하는 영화 등을 홍보할 때 많이 이용된다.



  새움출판사 이정서라는 분이 처음부터 뜻한 대로 《이방인》 새 번역은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봅니다. 여러 사전에서 밝히듯이 ‘노이즈 마케팅’이란 요란스럽게 치장하고 소비자들 이목을 현혹시킬 뿐 아니라 고의적 구설수를 이용하여 인지도를 높이면서 “판매를 늘리려는” 기법입니다.


  이는 올바른 책장사가 아닙니다. 올바른 책장사는 사람들한테 잘못된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팔아치우는 짓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읽으면서 아름답게 받아들일 책은 시끄럽게 떠벌인대서 퍼질 수 없습니다. 아마 한동안 이렇게 해서 책을 팔 수 있겠지요. 아마 한동안 이렇게 책을 팔아 몇 억쯤? 또는 일 억이나 이억 원쯤 손에 쥘 수 있겠지요.


  새움출판사 이정서라는 분한테 차분히 여쭙고 싶습니다. 책을 이렇게 팔고 싶습니까? 까뮈라는 분이 빚은 문학을 이렇게 팔고 싶습니까? 아름답게 책을 팔 수 없습니까? 사랑스럽게 책을 알리고, ‘번역 토론’을 할 수 없습니까?


  까뮈 문학이 이렇게 ‘노이즈 마케팅’으로 알려지고 팔려서 돈을 벌어도 되겠습니까? 새움출판사는 까뮈 문학뿐 아니라 다른 문학도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사람들 눈을 홀리거나 온갖 비아냥과 막말을 일삼으면서 팔 생각입니까? 이렇게 책을 팔면,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거나 문학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 번역이 낫거나 옳거나를 떠나, 책을 책으로 마주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추스르기를 바랍니다. 까뮈 문학과 《이방인》이라는 작품과 김화영이라는 번역가를 떠나서, 이 나라 모든 독자 앞에서 책을 ‘시끄럽게 망가뜨린 잘못’을 깊이 뉘우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이 되어 준 나무 앞에서 창피한 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책이 되어 준 너른 숲과 푸른 숲 앞에서 조용히 고개 숙일 줄 아시기를 바랍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4-05-08 20:21   좋아요 0 | URL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제 들어와보니.. 뭔가 큰 일이 있었네요... 잘 지내셨지요?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곧바로 여름이 따라오려고 준비하는데,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숲노래 2014-05-08 20:37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 님 서재에서 이야기를 읽었어요.
어떤 마음이며
어떤 삶이셨을까 하고
한참 생각에 잠겨 봅니다.

오늘도 마을 논마다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어요.
이 개구리들처럼
봄을 노래하고 아름답게 살아야지 싶어요.

새롭게 나온 <이방인> 번역이
서로를 아끼고 섬기면서
아름다운 책 문화와 이야기를 빚는 길이 아니라,
'노이즈 마케팅'으로 책장사로 치달을 뿐 아니라,
여러 독자들이 찬찬히 따지고 밝히는 대목을
출판사에서 모두 '바퀴벌레'로 여기면서 비아냥거리는
온갖 글을 보면서...

실망과 함께 분노까지 느꼈습니다.
참 딱하고 슬픈 일이에요.

아무쪼록,
꼬마요정 님 마음과 삶에
사랑스러운 빛이 깃들기를 빌어요.

꼬마요정 2014-05-09 21:5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함께살기님~^^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 물고기가 사라진 강의 부활에 인생을 건 남자 이야기
야마사키 미쓰아키 지음, 이정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환경책 읽기 61



샘터를 스스로 버리는 사람

―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

 야마사키 미쓰아키 글

 이정환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13.5.10.



  우리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마을에는 샘터와 빨래터가 두 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마을 어귀에 있고, 하나는 마을 안쪽에 있어요. 마을 어귀에 있는 샘터와 빨래터는 제가 아이들하고 달마다 두 차례씩 치웁니다. 이제 시골마을에서도 샘터에서 물을 안 긷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안 하니, 늘 물이끼가 잔뜩 끼거든요.


  아이들은 샘터에서 물을 마시다가 발을 담가 참방참방 놉니다.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제가 신나게 걷어내고 바닥을 벗겨 미끄럽지 않게 해 놓으면, 두 아이는 이내 빨래터로 옮겨서 한참 물놀이를 즐깁니다. 한여름에도 차갑다 싶도록 흐르는 물줄기는 한겨울에도 얼지 않습니다. 다른 곳 물은 다 얼어도 샘터와 빨래터에서는 물이 얼지 않아요.



.. “여보,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요?”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곳에는 아무거나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 골프장이나 획일화된 테마파크는 지역의 진흥과 연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만 낳았다 … 오물 속으로 잠수를 하여 살아 있는 생명체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생물을 구하면 우리 인간도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  (39, 49, 68쪽)



  흐르는 물은 얼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더럽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맑은 빛입니다. 흐르는 물에는 온갖 목숨이 깃들어 함께 살아갑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쉽게 업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이내 더러워지고 맙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맑은 빛을 띠지 못합니다. 흐르지 못하는 물에는 아무런 목숨이 깃들지 못합니다.


  바람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흐르지 못하는 바람은 싱그럽지 않습니다.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건물에서도 바람은 흘러야 합니다. 지하상가나 지하철에서도 바람은 늘 흘러야 해요. 고인 바람에서는 누구라도 숨이 막혀요. 바람이 꽉 막혀서 옴쭉달짝 못한다면 사람도 다른 목숨도 갑갑해요.


  그러니까, 물과 바람 못지않게 모든 것이 흘러야 싱그럽습니다. 돈도 흘러야 하고 사랑도 흘러야 합니다. 이야기도 흘러야 하며 지식과 책도 흘러야 합니다. 흙은 빗물 따라 냇물로 스며들어 흐르다가 모래밭을 이루거나 갯벌을 이룹니다. 뭍에서 흙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더라도, 숲과 들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가 가랑잎을 내놓고 시든 풀줄기를 내놓기에 새 흙이 자꾸 생겨요. 풀벌레가 죽고 크고작은 짐승이 죽으면서 주검 또한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흐르는 삶이 있는 지구별입니다. 흐르는 사랑으로 아름다운 지구별입니다.



.. 가장 무서운 것은 조사자의 그릇된 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국가가 공식적으로 ‘어류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다 …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세재 회사를 고발하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빨래를 할 때, 때가 잘 빠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거품이 잘 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비누나 합성세제에서 냄새가 오랫동안 지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69, 136쪽)



  지구별에 평화 아닌 전쟁이 감도는 까닭은 흐름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국경이라는 울타리를 세워서 흐름을 막으니 전쟁이 터집니다. 지구별이 모두 같은 나라라면 전쟁이 터져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울타리가 없다면 군인이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 전쟁무기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웃이 배고플 적에 도우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아픈 이웃을 보살피면서 돈을 받을 일이 없어요. 이웃한테 찾아가면서 맛난 밥을 잔뜩 챙깁니다. 이웃이 지내는 집을 고치려고 신나게 찾아갑니다. 이웃한테 책을 읽어 줍니다. 이웃한테 멋진 그림을 거저로 선물합니다. 이웃끼리 사랑스레 이야기꽃을 피우고, 이웃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혼인을 하고 제금을 나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봅니다.



.. 국토교통성을 찾아가 댐 철거와 관련된 문제를 상담해 보면 틀에 박힌 듯 이런 말이 돌아온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물고기와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합니까?” 물고기와 사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연과 관련된 문제를 양자택일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오염이나 공해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니까 … 실제로는 아무리 더러운 강이라고 해도 강은 강이다. 그곳에는 반드시 생명이 살고 있다. 불과 다섯 종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은 생명이다 ..  (149, 159쪽)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이 쓴 《강물의 숨소리가 그립다》(알에이치코리아,2013)라는 책을 읽습니다. 글쓴이는 어릴 적에 늘 즐겁게 사귀던 냇물을 오래도록 아끼고 사랑합니다. 현대문명과 도시문명이 망가뜨리고 만 냇물을 되살리려고 온힘을 쏟습니다. 그러나, 이녁이 기울이는 땀방울은 온갖 행정과 관청과 관료와 제도에 가로막힙니다. 그래도, 야마사키 미쓰아키 님은 고개를 꺾지 않아요. 냇물이 좋거든요. 냇물이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냇물이 흐르면서 삶이 흐르고 사랑이 흐르는 한편, 꿈과 이야기가 흐르기를 바라거든요.


  작은 바람은 어느새 꿈으로 자랍니다. 꿈은 시나브로 빛이 됩니다. 빛은 다시 이녁 가슴으로 스며들고, 이녁 가슴에 스며든 빛은 고운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이제 한국에서 샘터나 빨래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샘터나 빨래터가 있어도 따로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물이끼로 뒤덮여 제구실을 못합니다. 싱그러이 흐르는 샘물을 버리고 댐을 지어서 수돗물을 마시려는 한국사람입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맑은 물과 바람이 아닌, 정수기와 화학약품에 길든 물과 바람으로 목숨만 건사하려는 흐름이 됩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다울까요? 사람들 스스로 이 대목을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돈을 잘 버는 길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누리는 길을 저마다 즐겁게 찾아나설 수 있기를 빕니다. 4347.5.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아지똥 민들레 그림책 1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84



흙이 없는 땅에서 무엇이 자랄까

― 강아지똥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 1996.4.25.



  아이들이 밥을 먹습니다. 냠냠 짭짭 맛나게 먹습니다. 밥을 다 먹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은 똥이 마렵습니다. 작은 똥걸상에 앉아서 뽀직뽀직 소리를 내며 똥을 눕니다. 아이가 눈 똥이 담긴 똥그릇을 들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풀로 우거진 땅을 살펴 아이 똥을 뿌립니다. 아이들 똥은 흙에 천천히 스며듭니다. 비가 오면 빗물을 맞으면서 잘게 부서집니다. 흙은 똥을 품으면서 해마다 새롭게 거듭납니다.


  우리 아이들 똥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 둘레 풀밭에는 온갖 똥이 깃듭니다. 마을을 떠도는 고양이가 누는 똥이 깃듭니다.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살아가는 제비가 누는 똥이 깃들고, 온갖 새가 우리 집을 찾아들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다가 똥을 퐁퐁 눕니다. 아침저녁으로 풀을 뜯다가 곳곳에 떨어진 새똥을 봅니다.


  풀밭에서 살아가는 달팽이가 풀잎을 먹고 풀똥을 눕니다. 풀밭에서 볼볼 기어다니는 애벌레가 풀잎을 먹고는 풀똥을 누어요. 애벌레는 풀잎을 신나게 먹고는 풀똥을 잔뜩 눈 뒤 고치를 틀고는 나비나 불나비로 깨어나요. 풀벌레도 풀밭에서 똥을 눕니다. 개구리도 논에서 놀다가 풀밭에서 쉬면서 똥을 누어요.




..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눴어요. 골목길 담 밑 구석 쪽이에요.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강아지똥이에요 ..  (3쪽)



  마을 어귀 샘터를 보름에 한 차례씩 치웁니다. 지난날에는 마을사람 누구나 샘터에서 물을 길었고, 샘터 앞 빨래터에서 빨래를 했어요. 이제는 집집마다 땅을 파서 물꼭지를 집에서 씁니다. 집집마다 빨래기계를 들여놓습니다. 샘터에서 물을 길을 일이 없고, 빨래터에서 빨래를 할 일이 없습니다. 물을 안 긷고 빨래를 안 하기에, 샘터와 빨래터에는 물이끼가 잔뜩 낍니다.


  밀솔과 수세미를 챙겨 샘터로 갑니다. 슥슥 삭삭 비벼서 물이끼를 벗깁니다. 마을 샘터에는 다슬기 똥이 소복합니다. 다슬기는 샘터에 낀 물이끼를 먹으면서 잿빛이 감도는 똥을 눕니다. 옛날이라면 샘터도 빨래터도 시멘트 바닥이 아닌 흙바닥이나 자갈바닥입니다. 시멘트 바닥에 쌓이는 다슬기 똥은 갈 데가 없습니다. 옛날이라면 다슬기 똥은 흙으로 돌아갔을 테지요.


  흙이 사라집니다. 도시에서는 진작부터 흙이 사라졌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흙이 아닌 인조잔디로 바뀝니다. 도시에 있는 놀이터도 흙을 치웁니다. 도시에서 빈터를 찾아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작은 빈터가 있으면 주차장으로 삼아요. 빈터에서 아이들이 놀 수 없고, 빈터가 있더라도 아이들은 학원에 가느라 바쁩니다.


  시골에서는 도시 못지않게 흙이 사라집니다. 시골 고샅은 일찌감치 시멘트길이 되었습니다. 시골 논도랑은 하나둘 시멘트도랑으로 바뀝니다. 시골 논둑이나 밭둑도 차근차근 시멘트둑으로 바뀝니다. 시골에 있는 골짜기도 4대강사업을 발판 삼아 시멘트 냇바닥으로 바뀝니다. 온통 시멘트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시멘트만 있습니다.




.. “강아지똥아, 내가 잘못했어. 그만, 울지 마.” 흙덩이가 정답게 강아지똥을 달래었어요. “…….” “정말은 내가 너보다 더 흉측하고 더러울지 몰라.” ..  (8쪽)



  흙이 없는 땅에서 무엇이 자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시골에서까지 흙을 없애면 사람들이 누는 똥오줌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사료와 항생제만 먹고 자라는 돼지와 소가 누는 똥을 거름으로 삼아 ‘유기질’로 시골 논밭에 뿌려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로 파는데, ‘사료와 항생제로 이루어진 유기농’은 우리 몸에 얼마나 도움이 되거나 좋을는지 궁금해요. 도시사람이 누는 똥오줌은 어떡해야 할까요. 도시에서 건축을 하거나 정치·사회·경제를 이끄는 지식인과 전문가는 도시사람 똥오줌을 어떻게 할 생각일까요. 아니, 지식인과 전문가한테만 짐을 맡길 수 없어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과 동무는 우리 똥오줌을 어떡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변기에서 물만 내리면 끝날 일이 될는지요.




.. “얼마만큼 예쁘니? 하늘의 별만큼 고우니?” “그래, 방실방실 빛나.” “어떻게 그렇게 예쁜 꽃을 피우니?” “그건 하느님이 비를 내려 주시고, 따뜻한 햇볕을 쬐어 주시기 때문이야.” ..  (21쪽)



  권정생 님이 쓴 동화 가운데 짤막한 이야기 하나로 빚은 그림책 《강아지똥》(길벗어린이,1996)을 읽습니다. 강아지가 눈 똥이기에 강아지똥이고, 강아지는 어디에라도 똥을 누기에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개똥입니다. 흔하디흔한 똥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똥입니다. 흔하게 누는 똥은 흔하게 자라는 풀밭에 깃들고, 흔하게 자라는 풀밭은 강아지동을 고이 품으면서 새롭게 기운을 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는 여느 풀을 ‘잡초’라 일컫지만, ‘잡초’라는 일본 한자말 이름으로 된 풀은 없습니다. 풀은 그저 풀이고, 들에서 돋는 풀은 ‘들풀’이에요.


  풀이 돋기에 흙이 싱그럽습니다. 풀이 있기에 비가 오더라도 흙이 쓸리지 않습니다. 풀이 돋아 흙이 싱그러운 곳에 나무씨가 떨어지면 나무가 우람하게 자랍니다. 풀이 있어 빗물에도 흙이 쓸리지 않기에, 나무는 더욱 튼튼하게 숲을 이룹니다. 풀이 돋지 않은 곳은 비가 오면 흙이 쓸리면서 무너져요. 산사태가 나는 까닭은 풀이 없고 나무가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큰물이 지는 까닭도 풀과 나무를 아끼거나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 비는 사흘 동안 내렸어요. 강아지똥은 온몸이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어요 ..  (26쪽)



  흙이 있는 땅에서 모든 목숨이 살아납니다. 풀이 자라는 땅에서 모든 숨결이 푸릅니다. 흙과 풀이 싱그러운 곳에서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가며 이웃을 아끼는 밑바탕은 흙과 풀입니다. 흙과 풀은 바람과 해와 빗물을 사랑하며 자라고, 사람 또한 바람과 해와 빗물을 좋아하면서 함께 웃어요.


  꽃은 맑게 핍니다. 사랑꽃도 웃음꽃도 맑게 핍니다. 꽃은 고소한 똥을 받아서 맑게 핍니다. 사랑꽃과 웃음꽃은 향긋한 이야기밥을 받아 맑게 핍니다. 강아지똥 한 덩이에서 빛을 찾고, 우리가 이루는 조그마한 집살림과 마을살림에서 이야기를 일굽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5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

― 팔레스타인

 조 사코 글·그림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2002.9.16.



  땅에 농약을 치면, 사람은 땅에서 나는 곡식에 묻은 농약을 함께 먹습니다. 땅에 농약을 치면, 농약이 땅으로 스미기 앞서 바람에 후 날립니다. 농약을 치는 사람은 늘 농약을 마시고, 농약바람은 이웃에까지 퍼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나오고,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지 않고 길을 걷는 사람까지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여느 집에 있는 사람도 바깥에서 흐르는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은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집이나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였으면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숲으로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언제나 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누립니다.


  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누구라도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습니다. 집안에 있든 집밖에 있든 우리는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삶을 누립니다.




- “이스라엘은 엿먹으라고 해! 유대놈들은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거야.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저 꼴로 만들고 있다구. 그 새끼들이 그 땅에서 살려고 그러는 줄 알아? 정복하려는 거야, 정복.” (20쪽)

- ‘그곳은 실완, 아랍인들만의 마을이었다. 일 주일 전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족 몇몇을 내몰았다. 그리고 그 땅을 점거하고, 철조망을 두른 뒤, 다윗의 별을 내걸었다. 물론, 우지 기관총과 법무장관의 승인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36쪽)



  조 사코 님이 빚은 만화책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안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못 믿거나 안 믿거나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됩니다.


  참은 무엇일까요.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늘 벌어집니다.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전쟁과 폭력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똑같이 찾아듭니다. 총칼을 들고 탱크를 모는 어른들은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총질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길질을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 되는 어른은 왜 이웃과 동무한테 총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할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에 맞서 작은 무기를 든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쪽이 나를 죽이니 나도 저쪽을 죽여야 할까요. 저 녀석이 우리 아이를 때렸으니 나도 저 녀석을 때려야 할까요.





- ‘나는 ‘문제’라는 게 아마도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수백, 수천의 팔레스타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비록 그들은 영국 통치기인 1942년에 정해진 촌락의 범위 안에 갇혀 지내고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농촌의 건축 허가를 불허하는 일이 많아서, 그에 따라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법’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매년 수백 채의 불법 건물을 파괴한다.’ (81쪽)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평화가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습니다.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때에 평화입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고 보살필 때에 평화입니다. 가난한 이하고 집·돈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어깨동무할 때에 평화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도울 때에 평화입니다.


  모든 미움은 전쟁입니다. 모든 손가락질은 전쟁입니다. 도둑질도 새치기도 전쟁입니다. 입시지옥도 전쟁이고 교통지옥도 전쟁입니다. 무역도 전쟁이며 경제발전도 전쟁입니다.


  등수를 매기고 점수를 따지는 일은 모두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웃을 수 없다면 모두 전쟁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모두 전쟁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다면 모두 전쟁이에요.



- “군인 다섯 명이 저를 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동댕이쳤어요. 그 바람에 제 팔이 부러졌죠. 제가 팔을 움켜쥐는 걸 보자, 놈들은 부러진 팔을 걷어차기 시작했죠. 의사와 간호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밀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어요. 놈들은 병원 직원 한 사람의 팔도 부러뜨렸죠.” (218쪽)

-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 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 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300쪽)




  사람은 총에 맞아도 죽고, 차에 치여도 죽습니다. 배가 가라앉아도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습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둘레에서 모질게 괴롭혀서 스스로 죽습니다. 온통 죽음투성이입니다. 총과 폭탄이 춤추지 않아도 죽음수렁이라면, 이 나라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투기와 탱크가 날지 않더라도 죽음물결이라면, 이 나라는 전쟁통입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는 어떻게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이스라엘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평화로울까요. 한국 어린이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일본과 중국과 미국 어린이는 어떤 넋을 추스르면서 어떤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평화로울까요.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입니다. 그악스러운 사람이 따로 있기에 전쟁이 터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따로 있기에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악스럽게 살아가면 전쟁이 자랍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면 평화가 싹틉니다.


  미친 듯이 달리며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전쟁이에요. 농약이 춤추는 시골 논밭도 전쟁이에요. 큰도시 커다란 할인매장에서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술에 절어 해롱거리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맑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은 평화예요. 빙그레 웃으며 아침저녁을 지어 밥상에 올리는 손길은 평화예요. 풀과 나무를 살뜰히 보듬는 사람은 평화예요. 숲이 평화이고, 푸른 들이 평화입니다. 나비와 제비가 평화요, 개구리와 풀벌레가 평화입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새 - 정호승 동시집 행복한 동시 1
정호승 지음, 정지예 그림 / 처음주니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29



서로서로 별이 되어

― 참새

 정호승 글

 정지예 그림

 처음주니어 펴냄, 2010.7.27.



  참새는 노래합니다. 참새는 날마다 노래를 들려줍니다. 참새는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며 노래를 베풉니다. 참새는 도시에서조차 사람들 곁에서 살그마니 깃을 부비면서 아침저녁으로 노래합니다.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쐬면 참새가 어떤 노래를 하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를 멈추고 두 다리로 동네를 거닐면 참새가 나누려 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전화기를 끄고 고개를 들어 둘레를 살피면 참새가 이 나라 곳곳에서 아름다이 부르는 로래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들깻잎에 초승달을 따서 / 어머님께 드린다 ..  (여름밤)



  참새가 먹는 곡식은 아주 적습니다. 참새 한 마리가 먹는 밥은 아주 적습니다. 참새를 손에 쥘 수 있다면, 손바닥으로 살그마니 감싸 보셔요. 부풀린 깃털 안쪽으로 몸뚱이가 얼마나 작고 가녀린지 헤아려 보셔요. 이 조그마한 몸으로 하늘을 날고, 이 조그마한 몸에 조금씩 밥을 넣습니다.


  아이를 번쩍 안아 하늘바람을 마시도록 해 보셔요. 내 아이이든 이웃 아이이든 따사로운 손길로 아이를 안아 보셔요. 맑게 웃고 노래하다가 아이를 안아 보셔요. 아이 몸이 얼마나 작고 가벼우며 싱그러운가를 온몸으로 느껴 보셔요.


  아이는 넋으로도 하늘과 맞닿습니다. 아이는 몸으로도 하늘과 잇닿습니다. 아이는 언제나 하늘숨을 마십니다. 아이는 아침저녁으로 하늘빛을 마음에 담습니다.



.. 엄마가 날 낳기 전 / 나는 무엇이었을까 / 오월의 나뭇잎에 어리는 햇살이었을까 / 길가에 핀 한 송이 작은 풀꽃이었을까 ..  (씨앗)



  아이를 아끼지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삶은 즐겁지 않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다녀야 할 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오롯이 아이입니다. 아이는 삶을 배우고 사랑을 익히며 꿈을 키울 숨결입니다. 아이는 예비대학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예비취업생이 아닙니다. 아이는 ‘예비 어른’이 아니에요.


  참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수호지》에 나오는 원숭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옛조선 이야기에 나오는 곰과 범은 애써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잠자리는 잠자리대로 아름답습니다. 거미는 거미대로 예쁩니다. 제비는 제비대로 빛납니다. 달팽이는 달팽이대로 눈부십니다.


  사람은 그예 사람입니다. 지구별을 이루는 수많은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웃을 아끼고 동무를 사랑하는 숨결 가운데 하나인 사람입니다.



.. 내 가장 친한 친구 / 노근이 엄마가 / 지하철역 남자 화장실 / 청소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고부터 / 나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 오줌을 깨끗하게 눈다 ..  (노근이 엄마)



  정호승 님이 쓴 글에 정지예 님이 그림을 붙인 동시집 《참새》(처음주니어,2010)를 읽습니다. 보드랍게 밝은 글에 보드랍게 밝은 그림이 붙습니다. 정지예 님은 정호승 님이 쓴 글에 걸맞게 밝은 빛이 춤추는 그림과 바늘땀을 한껏 선보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글을 배우는데, 아이가 연필 아닌 실바늘을 손에 쥐고 천에 한 땀 두 땀 무늬를 놓듯이 글을 놓아도 참 곱겠네 싶습니다. 이 땅 아이들 누구나 바느질을 배우고 붓질을 배우며 빨래질과 걸레질과 비질을 배우면 아주 곱겠구나 싶습니다.



.. 겨울이면 / 하늘에 찍힌 / 새 발자국들이 / 함박눈으로 내린다 ..  (눈길)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맛’을 말하는데, ‘어머니 손맛’은 따로 없습니다. 내 어머니는 내 할머니한테 딸입니다. 내 할머니는 할머니를 낳은 분한테 딸입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어머니나 아버지입니다. 내 아이는 앞으로 커서 새롭게 어머니나 아버지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머니 손맛’은 없습니다. 오직 ‘내 손맛’입니다. 어머니가 차려서 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면, 우리 아이들한테는 어른인 우리가 손수 차려서 내주는 밥이 가장 맛있기 마련이에요.


  차근차근 흐르는 손빛이요, 곱게 잇는 손넋입니다.



..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 별들이 하나씩 있다 /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 내 마음속에 있는 그 별을 / 빛나게 해 주는 일이야 ..  (밤하늘)



  오늘 아이로 살아가는 숨결만 하늘숨을 마시지 않습니다. 어느새 어른으로 자란 사람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하늘숨을 마십니다. 모든 사람이 하늘숨을 마십니다.


  하늘숨을 마시는 우리들이니, 하늘숨이 깨끗할 때에 깨끗한 빛을 가슴에 담아 깨끗한 말을 꽃피웁니다. 하늘숨이 깨끗하지 않도록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과 관광단지와 고속도로 따위만 자꾸 만들어서 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하늘숨이 깨끗하지 못하도록 숲과 들을 밀어서 없애며 아파트와 시멘트 건물만 자꾸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 빗방울 하나가 / 바다로 가서 / 그대로 바다가 되어 버린다 // 바람 한 줄기가 / 매화밭으로 가서 / 그대로 매화 향기가 되어 버린다 // 나는 마을버스를 타고 / 집으로 가서 / 그대로 엄마의 가슴이 되어 버린다 ..  (엄마)



  서로서로 별이 되어 사랑합니다. 서로서로 별이 될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서로서로 별빛을 가슴에 품습니다. 서로서로 별빛으로 웃음을 주고받습니다. 서로서로 별내음을 맡고, 서로서로 별노래를 불러요.


  가슴에 깃든 별이 샘솟습니다. 가슴에서 자라는 별이 이웃을 밝힙니다. 가슴에서 돋는 별이 내 삶을 가꾸는 씨앗이 됩니다. 별을 품고 별을 느끼며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 시를 쓰고 읽습니다.



.. 꽃이 나를 바라봅니다 / 나도 꽃을 바라봅니다 ..  (꽃과 나)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가 나를 바라봅니다.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가 나를 바라봅니다. 숲을 바라보면 숲이 나를 바라봅니다. 사랑을 담아 씨앗을 심으면 씨앗은 사랑을 받아 자랍니다. 따스한 마음을 담아 한 마디를 건네면, 따스한 말 한 마디는 지구별을 돌고 돌아서 나한테 찾아듭니다. 4347.5.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동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