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52 : 사람이 쓰는 책


 《일본 만화 현대사》(요시히로 코스케 씀,융성출판사 펴냄,1998)라는 자그마한 책이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일본만화를 꽤 읽는다 하더라도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니까 이런 책이 있는 줄 아는 분은 드뭅니다. ‘한국 현대사’조차 잘 모르거나 잘 안 살피는 흐름을 생각한다면, 한국 현대사조차 아닌 일본 만화 현대사 같은 책을 애써 찾아 읽으려는 사람이란 드물 수밖에 없겠지요. ‘한국 만화 현대사’ 같은 책조차 한국사람은 안 읽을 테지만, 이런 책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 만화 현대사》를 내놓은 출판사는 안 팔릴 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책을 기꺼이 옮긴 셈입니다. 틀림없이 이 작은 책 하나를 읽으며 우리들이 배우거나 살피거나 느낄 대목이 있으니 냈겠지요.

 이 책을 읽는다 해서 일본만화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만화밭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넓기 때문에 조그마한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밝힐 수 없습니다. 만화쟁이 한 사람이 걸은 길만 살펴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하거나 넘치거든요. 얇은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다루려 한다면 아주 깊게 파헤쳐 두루 살피는 눈썰미여야 합니다.

 얇은 만큼 금세 책을 읽고 덮습니다.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글쓴이가 남자이다 보니 ‘남자 어린이’가 ‘남자 어른’이 되는 동안 좋아한 만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신문사 기자입니다. 기자라서 글을 못 쓰란 법이 없으나, 기자는 여느 사람들처럼 글을 홀가분하게 쓰지 못합니다. 기자 또한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만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신문 독자한테 많이 읽힐 글’에 매이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으레 교수·기자·학자·전문가·비평가·작가·교사·유명인사·정치꾼·연예인 들이기 일쑤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쌓아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이 쓴 책이 책방을 뒤덮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 손에서 태어난 책·농사짓거나 기계를 만지는 일꾼 손에서 태어난 책·어린이나 할머니 손에서 태어난 책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쓰는 수수한 책은 싹틀 땅이 없습니다. 작은 사람이 쓰는 작은 책은 뿌리내릴 터전이 없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 넘칩니다. 정보를 쌓은 사람들이 정보를 가득 담은 책이 쏟아집니다. 삶을 아끼는 책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책이나 살림을 어여삐 꾸리는 사람이나 흙을 알뜰히 일구는 사람이나 아이를 애틋이 돌보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쓰는 책을 마주하기 매우 힘듭니다.

 글쓴이 이름을 돋보이려는 책은 많습니다. 글쓴이 지식과 정보를 선보이려는 책 또한 많습니다. ‘일본 만화 현대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기대(30쪽)”를 나누려 하던 데즈카 오사무 님 넋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 이루어졌다는데, 한국땅 책마을과 사람마을이란, 책터와 살림터란, 얼마나 사랑어린 꿈이나 아름다운 빛줄기가 감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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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과 책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손에 들고 읽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강다리 건널 때면 책을 덮습니다. 넓은 한강과 한강 둘레를 뒤덮은 시멘트 건물을 봅니다. 이 시멘트 건물은 뿌연 먼지띠가 곱게 감싸안습니다. 그래서 이곳, 한강을 끼는 서울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사는 사람들은 먼지띠 위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낮하늘, 하얀 별이 가득가득 반짝이는 까만 밤하늘을 볼 수 없고, 보지 못하다가는, 생각도 안 하고 말거나, 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4339.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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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책 몇 권을 읽다가


 지난주에 서울마실과 인천마실을 하면서 여러 책방에서 동시책을 여러 권 읽었다. 갓 나온 동시책부터 요 대여섯 해 사이에 나온 동시책을 죽 읽는데, 어느 동시책이고 선뜻 책값을 치러 살 만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지난날 이오덕 님이 우리네 동시 문화를 슬프게 꾸짖기도 했으나, 아직까지도 우리네 동시 문화란 조금도 나아지거나 발돋움하지 못한다. 게다가 섣부르거나 어설프거나 어이없다 싶을 만한 말재주 피우기가 동시인 줄 생각하는 흐름이 걷히지 않는다. 아니, 이런 거품이 더 커진다. 장삿속으로 어린이책을 내놓는다는 출판사가 아니라 하던 꽤 손꼽히는 출판사에서 내놓은 동시책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제는 어린이책 내는 출판사가 한결같이 장삿속을 안 따질 수 없기 때문에, 말재주 피우기 동시책을 보란 듯이 내놓으면서 아이들 마음과 머리와 삶을 엉망으로 흐트리는 데에 한몫 하도록 거드는 셈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런 동시는 예전에든 오늘이든 앞으로든 어디에서나 누구이든 쓰기 마련이다. 이런 동시가 책으로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하고, 이런 동시책을 어느 출판사에서 내놓느냐를 따질 일이다.

 조금 더 생각한다면, 말재주를 피우는 동시답지 않은 동시를 쓰는 까닭은, 이러한 동시를 쓰는 사람들 삶하고 이어진다. 삶부터 재주 피우듯 겉치레로 흐른다면, 이러한 삶을 꾸리는 사람이 쓰는 동시는 뻔하다. 삶을 알차게 꾸리는 사람이 동시를 알차게 안 쓸 수 없다. 삶을 즐거이 일구는 사람이 동시를 즐거이 안 쓸 수 없다. 삶을 아름다이 돌보는 사람이 동시를 아름다이 안 쓸 수 없다.

 동시란 말재주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시는 말재주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른시 또한 말재주가 아니다. 곧, 시란 말재주가 아니다. 시는 말놀이 또한 아니다. 말놀이를 하면서 시를 쓸 수 있고, 말재주를 부리면서 시를 써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말재주나 말놀이는 시가 아니다. 말재주를 피우든 말놀이를 즐기든, 이렇게 하고픈 사람 마음이지만, 말재주란 재주부리기이고, 놀이란 놀음놀이일 뿐이다.


.. 쏜살같이 헤엄쳐 도망가는 / 송사리 지느러미 / 얇아요 / 꽃나무 둘레에서 잉잉대는 / 꿀벌의 날개 / 참 얇아요 / 얇은 건 부지런해요 / 부지런하니까 얇은 거예요 ..  (ㅊ에서 펴낸 ㅈ시인 동시집 ㄲ에서)


 글을 더 잘 쓰도록 글재주를 갈고닦는다든지, 문학을 더 잘 하도록 문학수업을 받는다 해서 동시를 잘 쓰거나 문학을 한결 잘 하지 않는다. 내 삶을 옳게 깨닫고, 내 삶을 참다이 사랑하며, 내 둘레 사람들 삶을 착하게 어깨동무할 때라야 비로소 내가 쓸 동시이든 문학이든 제자리를 찾도록 이끈다.

 쓰이는 동시나 읽히는 동시나 참 슬프다. (4344.2.22.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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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남기는 삶


 한국에서도 어느 동화쟁이는 백 권이 넘는 동화책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동화책 한 권을 쓰기조차 버거운데 벌써 백 권이나 썼느냐며 놀랍니다. 그러나 동화책을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이 일에만 마음을 쏟으면, 다달이 한 권씩 써낼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권을 써내면 한 해이면 열두 권, 열 해이면 백스무 권입니다.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어르신 가운데 책을 몇 권 안 남긴 분이 많습니다. 훌륭하다는 이분들이 남긴 책을 읽다 보면, 이렇게 좋은 글이 담긴 책이 몇 권 안 되니 몹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들 훌륭한 어르신들은 책을 더 많이 남길 수 없습니다. 훌륭한 삶이란 책만 남기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훌륭하다는 어르신이 남긴 책으로보다, 훌륭하다는 어르신하고 만나거나 마주한 삶을 손꼽으면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기 마련입니다.

 책은 재미있어야 읽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다는 책일지라도 재미있지 않으면 못 읽는다고 합니다. 훌륭하게 살아간 사람이더라도 재미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람은 재미있게 살아야 하거나, 사람이 글을 써서 책을 이룰 때에는 줄거리와 뜻과 생각이 재미있어야 하는 셈이 될까요.

 재미있을 때에 읽는 책이고, 재미없을 때에는 안 읽거나 못 읽는 책이라 한다면, ‘재미’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재미’하고 ‘즐거움’은 다릅니다. ‘좋아함’하고도 다르며, ‘사랑’하고도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담은 책인 낱말책, 그러니까 국어사전을 들추면 ‘재미-즐거움-좋아함-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말을 담은 책이나 말을 다루는 책을 읽는다 해서 ‘재미’가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어요.

 재미란 확 빠져드는 이야기가 될까요. 즐거움이란 확 빠져들지 않더라도 반가이 여기면서 오래도록 누릴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좋아함이란 재미나 즐거움이 없더라도 내 마음을 쏟아서 받아들일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사랑이란 재미나 즐거움이나 좋아함이 없을지라도 내가 아낌없이 돌보거나 믿을 만한 이야기가 될까요.

 책을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있고, 책을 읽는 좋아함이 있습니다. 여기에 책을 읽는 사랑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재미도 즐거움도 좋아함도 사랑도 아닌 지식과 정보와 자격증(또는 졸업증)에 따라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시험을 앞두고 읽는 교과서와 참고서가 이러한 책읽기입니다. 운전면허증이든 무슨무슨 자격증이든 따려고 치르는 시험 때문에 하는 책읽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다시금 돌아봅니다. 사람들은 왜 책을 남길까요. 사람들은 왜 책을 쓸까요. 재미있게 읽으라고 하는 책을 쓰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즐겁게 읽으라고 하는 책을 쓰는 사람 마음은 어떠할까요. 좋아하거나 사랑할 만한 이야기를 책으로 담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지식과 정보와 자격증(또는 졸업증)을 거머쥐도록 이끄는 책을 쓰는 사람은 무슨 생각일까요.

 어쩌면,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을 안 남길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삶과 사랑과 사람 이야기를 고이 적었을지라도,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재미’라든지 ‘즐거움’이라든지 ‘좋아함’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정보’라든지 ‘자격증(또는 졸업증)’에 얽매인다면, 책을 책으로 마주하는 보람이나 뜻이나 기쁨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불 가까이 가지 마.” 하고 말한다든지 “누운 사람 머리 위로 지나가면 안 돼.” 하고 타이르는 까닭이란 재미 때문도 즐거움 때문도 좋아함 때문도 사랑 때문도 지식 때문도 정보 때문도 자격증(또는 졸업증) 때문도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온 발자국을 남깁니다. 이 발자국을 스스로 그러모으든 남이 그러모아 주든 하면서 책이 태어납니다.

 재미있다 하든 즐겁다 하든, 또 지식이나 정보에 도움이 된다 하든, 자격증을 따는 데에 힘이 되었다 하든,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갈래라 하든, 어떠한 책이든 읽는 사람이 스스로 따지거나 재거나 나눕니다. 우리는 책을 왜 읽을까요. 우리는 책에 무슨 이야기가 담겼다고 생각을 할까요. 아니, 책에 담긴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책을 읽기는 하는가요. 책을 읽고 난 다음 내 삶은 ‘책을 읽기 앞서’하고 얼마나 다른가요. (4344.2.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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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1 : 사람을 읽는 책


 사람이 읽는 책은 사람을 읽는 책입니다. 사람을 읽지 못한다면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람은 책으로 사람을 읽어야지, 돈을 읽거나 지식을 읽거나 슬기를 읽거나 정보를 읽거나 시험문제를 읽거나 공식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이렇게 읽자면 읽기는 읽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읽는 사람은 사람다움이 아닌 돈과 지식과 갖가지 정보조각에 파묻혀 허우적댑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읽고픈 책을 읽기도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힙니다. 아이들은 책읽기가 놀이입니다. 책으로 읽는 책이라기보다 새로운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마주하는 만남입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을 읽은 다음 느낌글을 쓰도록 시킨다든지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든지 합니다. 여기저기서 정보를 그러모아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왜 ‘추천 명작 좋은 책’을 잔뜩 읽히려 하지요? 아이들이 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아이들이 좋은 사람이 되기를 빕니까? 아이들이 고운 사람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참다운 사람으로 자라기를 꿈꿉니까?

 어른들이 책을 읽습니다. 바빠서 책이란 거들떠보지 못한다는 사람이 있고, 바쁘기 때문에 살짝 쉴 겨를에 즐겁게 책맛에 빠져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쁠 때에는 틈을 내어 읽는 책입니다. 한갓질 때에는 신나게 즐기는 책입니다. 바쁘다고 밥을 거르거나 잠을 미룰 수 없습니다. 거른 밥은 나중에 곱배기로 먹기 마련이요, 미룬 잠은 나중에 몰아서 자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바쁘다며 책을 안 읽는 사람은 나중에 어찌 되나요.

 지식을 얻거나 돈벌 구멍을 찾거나 갖가지 정보조각을 그러모으자며 책을 읽는다면, 이는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없습니다. 지식읽기·돈읽기·정보읽기입니다. 책읽기가 아닙니다. 사람을 읽을 때에만 책을 읽는다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읽을 수 없고, 사람을 읽지 않는다면 책읽기는 무시무시한 바보짓이 되고 맙니다.

 한 줄을 읽어도 책이고, 열 쪽을 읽어도 책이며, 한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책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도 사람이며, 만 사람을 만나도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만 사람을 겉훑기로 사귀기보다는 한 사람을 옳으며 가까이 사귀는 일이 아름답다’고 머리로 헤아립니다. 참다운 동무 한 사람이 거짓스러운 동무 만 사람보다 훨씬 나으며 좋은 줄을 머리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참다이 읽는 책 한 권과 어설피 읽는 책 만 권은 어떠한가요. 지식으로만 읽는 백만 권하고 삶으로 읽는 책 한 권은 어떠하나요.

 헌책방에서 만화책 《아프리카의 꿈》(문계주 그림,서화 펴냄,1993)을 찾아서 읽습니다. 고등학생 때 벌써 읽은 만화이지만 새삼스럽다 싶어 다시 장만해서 읽습니다. 예전에 읽은 책으로 다시 읽기도 하지만, 아예 새로 사서 다시 읽기도 합니다. 읽고픈 책이라면 두 번 세 번 사는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읽을 만할 뿐 아니라 선물하고픈 책이기에 여러 권 사서 우리 집 책꽂이에 넉넉히 갖추었다가, 틈틈이 만나는 좋은 벗님한테 기쁘게 선물하곤 합니다. 나한테 좋은 책이니까 언제나 새로 장만해서 거듭 읽은 다음 건사하고, 나한테 좋은 사람이니까 늘 새 마음으로 새로운 책을 선물합니다. 《아프리카의 꿈》 85쪽에 “나와 같이 (아프리카로 다시) 가자. 이제 다시는 널 슬프게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속으로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버이와 다른 살붙이 모두 잃은 외로운 아이가 아프리카에 버려졌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는 아프리카 수풀에서 자연스레 하나되어 예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만화나 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4344.2.1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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