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오늘 하루는 온갖 집일을 하느라 빨래를 저녁 일곱 시가 넘어서야 한다. 아직 살림집 물이 안 녹았기에 멧길을 따라 올라가는 이오덕학교에서 빨래를 한다. 빨래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은 깜깜한 밤길. 깜깜한 시골 멧자락 밤길이니 별이 참 잘 보인다. 반짝반짝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밤에 쉬를 누러 마당으로 나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많은 별이 우리 식구를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보듬는구나 싶다. 그런데 나는 애 아버지로 얼마나 잘 살아가려나. 이렇게 따사로이 지켜보면서 보듬는 별이 많은데, 고운 목숨 하나인 사람으로서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다이 살아가는가. (4344.3.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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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등록 일제조사


 일요일 저녁 면사무소에서 전화가 온다. ‘주민등록 일제조사’를 한다는데 마을 이장이 우리 집 식구 얼굴을 모른다고 하면서, 면사무소로 와서 우리 집에 참말로 사는지를 쪽지에 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 뚱딴지 같은 소리이다. 지난 3월 3일에 민방위훈련이라 해서 새벽 여섯 시에 마을회관에 갔을 때에 마을 이장을 만났는데, 마을 이장이 우리 집 식구 얼굴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게다가 내가 이 집에서 살지 않는다면 민방위훈련 통지서는 어떻게 받고 새벽 여섯 시에 마을회관에 어찌 가겠는가. 정 궁금하면 면사무소에서 찾아와 보면 된다. 시골 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산다고 못 들르겠는가. 면사무소 일꾼은 우리보고 면사무소로 아무 때라도 들러서 이름만 적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 아무 때나 들른다면 들를 수 있겠지. 그렇지만 면사무소 일꾼이 길그림을 죽 펼쳐놓고 면사무소하고 우리 집 광월리가 얼마나 멀찌감치 떨어졌는가를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면 아무 때나 들르라는 말을 못하리라. 더구나 시골버스가 하루에 몇 대 지나가는가. 한 번 면사무소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는 줄을 헤아리기라도 할까. 여기가 무슨 서울 같은 큰도시라도 되기에 면사무소를 쉽게 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일요일 저녁에 면사무소에서 늦게까지 일하는 공무원 삶을 헤아리며 씁쓸한 말까지는 하지 못한다. 다만, 참 슬프다.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니 딱하기는 하되, 참말 면 끄트머리 자그마한 멧골집 살림살이를 곰곰이 헤아리는 공무원이라 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기는, 아직까지 ‘일제조사’라는 말을 쓰는 관청 행정부터 불쌍하다. 올해가 몇 년인데 여태껏 ‘일제조사’인가.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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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3-23 23: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요즘도 '일제조사'라는 단어를 쓰는군요!

숲노래 2011-03-23 23:59   좋아요 0 | URL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 나라예요.... ㅠ.ㅜ

 



 고양이 사진책 읽기


 아이들하고 고양이 사진책을 함께 읽는다. 제법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인 일본 사진책에 나오는 골목고양이는 하나같이 푼더분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 앞에서 두려워 한다거나 멋쩍어 한다거나 귀찮아 하지 않는다. 그저 늘 그렇듯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 사진을 죽 보여주고 나서 아이들 느낌을 들은 다음 이야기를 덧붙인다. 일본사람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사진을 이처럼 볼 수도 있다 할 테지만, 이에 앞서 일본사람들은 들고양이한테 먹이를 주기 때문에 고양이하고 사람이 살가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양이한테 밥술을 덜어 나누는 사람이라면, 고양이한테만 밥술을 덜지 않고 어렵거나 가난한 이웃한테도 밥술을 더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시골자락에서는 들고양이가 넉넉히 살 만하고 도시 골목자락에서는 골목고양이가 즐거이 살 만하다면, 이러한 곳에서는 사람 또한 어느 만큼 살 만큼 사람들 마음이 퍽 따스하다고 여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나중에 스스로 제 살림집을 마련해서 살고 싶어 할 때에, 둘레에 고양이가 얼마나 살아가는가를 살펴보아도 이 동네가 나한테 살 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4344.3.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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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사진 이야기] 5. 인천 아벨서점 2008

 헌책방은 고마운 곳입니다. 갓 나온 책을 때때로 만나기도 하지만, 잊거나 잃고 지나친 책을 새삼스레 만날 수 있으니 몹시 고마운 헌책방입니다. 웃돈을 얹는대서 사라진 책을 장만할 수 있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사라진 책이지만 누군가한테는 스스럼없이 내놓는 책이 헌책방이라는 데에서 빛이 나며 새로 읽힙니다. 이 나라 헌책방치고 널따랗거나 커다란 곳은 드뭅니다. 으레 조그맣거나 조촐합니다. 그런데 이 조그맣거나 조촐한 책쉼터에 수많은 책이 끊임없이 드나들면서 내 눈과 넋과 삶을 아리땁게 여미는 데에 길동무가 되어 줍니다. (4344.3.20.해.ㅎㄲㅅㄱ)


- 2008년.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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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3-22 22:43   좋아요 0 | URL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서 가장 책 정리가 잘된 매장이더군요.책도 많고요^^

숲노래 2011-03-23 07:42   좋아요 0 | URL
책방살림에 마음을 가장 넓고 크게 쓰는 책방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쓰레기터 뒤지기


 어제와 오늘 집안을 치운다. 다 치우지 못한다. 여느 때에 꾸준히 돌보았다면 애써 날을 잡아 집안을 치울 일이 없었을 터이나, 여느 때부터 집안을 제대로 건사하지 않았으니 날을 잡아 집안을 치운다 하더라도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여러 날이 걸리고 만다. 앞으로 며칠 더 치워야 비로소 조금 건드렸다 할 만하리라 느낀다.

 자질구레하며 쓰잘데없는 물건을 치우고, 이곳저곳에 흩어 놓던 물건을 갈무리하면서 생각한다. 쓰레기를 치우는 일꾼이란 얼마나 대단하며 고마운 사람일까. 밥을 차려 주는 사람과 함께, 쓰레기 치우는 사람은 참으로 고마우며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새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밥을 하는 일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으레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곧 살림꾼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도맡고는 있으나, 나 스스로 살림꾼이라고는 여기지 못한다. 옆지기도 내가 살림꾼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보기로도 살림을 못하고, 옆지기가 생각하기에도 살림을 ‘안 한’다.

 살림하기란 밥하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밥을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몫을 해야 비로소 살림꾼이다. 그런데, 밥을 해서 차린다 할 때에 얼마나 옳고 좋은 밥을 얼마나 옳고 바르게 차리느냐를 살펴야 한다. 밥으로 차릴 먹을거리는 어떻게 일구거나 얻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고, 밥을 차리고 치울 때에 어떻게 하는가 또한 헤아려야 한다.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쓰레기터를 뒤진다. 집은 집인데, 틀림없이 살림집은 살림집인데, 살림을 엉망으로 내팽개치듯 살아온 사람이기에 쓰레기터를 뒤지고야 만다. 밤을 잊으면서 쓰레기터를 뒤질까 하다가 그만둔다. 왜냐하면 어찌 되었든 이듬날 또 새 하루를 열어야 하고, 아이와 옆지기와 내가 먹을 밥을 차려야 하며, 이렁저렁 또 하루일을 해야 하니까. 오늘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은 건드렸으니, 이쯤에서 몸을 쉬면서, 이듬날에는 어디를 어떻게 손을 대어 치우면 좋을까를 곱씹는다. (4344.3.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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