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람들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넘치다가는 원자력발전소가 터진다. 끔찍하다 싶은 일 세 가지가 잇따른다. 일본 후쿠시마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원자력발전소가 터지면서 방사능에 곧바로 맞은 사람들은, 방사능이 바람과 물에 섞이기 때문에 이 바람과 물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은, 또 방사능을 쐬지 않거나 방사능이 섞인 바람과 물을 마시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제 고향마을로 돌아가서 고향집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방사능으로 물든 흙을 일구며 곡식이나 푸성귀를 거둘 수 있을까. 방사능이 내려앉은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원자력발전소 터진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딱지는 앞으로도 이어질 텐데, 이들이 도쿄로 옮기거나 훗카이도로 옮긴다 한들, 제대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후쿠시마 마을이라는 딱지 때문에 후쿠시마 사람들을 마주 바라보기 거북하다든지 손을 잡는다든지 하기 싫다며 손사래치는 사람들이 차츰차츰 나타나지 않을까. 아니, 벌써부터 제법 많지 않을까.

 체르노빌 사람들이라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드리마일 사람들이라 하면 어떻게 여길까.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한국땅 시골마을 사람들이라 하면 어떻게 바라볼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원자력발전소 옆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이 덥혀진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사람이 꽤 많다. 발전소 쪽에서는 ‘온배수’라 하고, 흔히 ‘열폐수’라 하는, 몹시 뜨거운 물로 물고기를 길러 바다에 풀어놓는다고도 한다.

 예부터 영광 하면 영광굴비라 했으나, 이제는 영광 하면 영광원자력발전소이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35%만 전기로 쓰고 10%는 굴뚝으로 버려지며 55%는 열폐수로 버린단다.

 골이 띵하다. 영광에서 마시는 바람과 후쿠시마에서 마시는 바람과 서울에서 마시는 바람은 얼마나 깨끗하며, 우리 몸에 좋다 할 수 있을까. 영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물을 마시며, 후쿠시마에서 살아야 할 사람은 어떤 물을 마셔야 하며,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얻은 물을 마시는가. (4344.3.1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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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 새 나비와 새 개구리


 오늘부터 드디어 이불 빨래를 한다. 손으로 빨까 생각했는데 옆지기가 이오덕학교에서 빨래기계를 빌려서 쓰자고 말한다. 요즈음 가뜩이나 기운이 많이 떨어졌다고 느끼기에 옆지기 말을 듣기로 한다. 빨래기계를 빌리는 김에 이불을 두 채 빨자고 생각한다.

 가장 때 많이 탄 이불부터 두 채를 안고 빨래감과 설거지거리를 안고 멧길을 오른다. 계단논 얼음은 아직 다 안 녹았다. 학교 헤엄터에도 얼음이 아직 그대로이다. 이러니 우리 집 물도 아직 안 녹을 테지. 그런데 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린다. 어, 어, 벌써 나비인가? 저녁이 되면 퍽 쌀쌀한데 나비가 이렇게 팔랑거려도 괜찮은가.

 빨래기계 앞에 선다. 이불을 한 채씩 넣고 대야로 물을 부으며 비누를 골고루 문지른다. 단추를 누르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기계를 들여다보니 멈췄다. 왜 멈추었을까. 다시 단추를 누른다. 돌아간다. 씻는방에 가서 빨래를 한다. 빨래를 하고 나서 능금을 씻는다. 능금과 빨래를 통에 담고 빨래기계 있는 데로 간다. 빨래기계가 또 멈췄다. 빨래기계를 만진 지 너무 오래된 탓일까. 아니, 나는 빨래기계를 만진 적이 없나. 요새 빨래기계는 단추 몇 번 누르면 다 되는 듯한데, 아닌가. 다시 단추를 이래저래 누른다. 이번엔 제대로 돌아가려는 듯하다. 한 시간 육 분 걸린다고 불이 깜빡인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 마친 빨래감을 들고 집으로 내려온다. 옆지기가 수제비 반죽을 한다. 아이가 옆에서 알짱알짱하면서 거들겠다고 나선다. 함께 밥을 먹고 나서 아이가 또 더럽힌 옷 두 벌을 벗겨 빨래하러 올라간다. 빨래기계 있는 데로 가니 빨래가 다 되었다. 아이들이 노는 철봉대에 이불을 하나씩 펼쳐서 넌다. 아이 옷가지 두 벌을 새로 빤다.

 아침부터 해바라기를 시킨 이불은 방으로 들인다. 방과 마루를 옆지기하고 함께 치우고 이래저래 쓸고 닦기를 더 한 다음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나가기로 한다. 오늘은 장날이라서 반찬감을 좀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읍내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숨을 헐떡이는데 왼편 비탈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 이곳에서는 벌써 개구리가 깼나.

 어제 집식구들 다 함께 읍내마실을 나올 때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골버스라 할지라도 차에 타면 멧개구리 깨어나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구나. 이렇게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걷지 않고서야 이른봄 첫 개구리 울음소리를 맞아들이지 못하는구나.

 읍내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에서 다시금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는다. 구불구불 멧길을 걷는 아저씨 하나 보인다. 아저씨도 개구리 소리를 함께 듣겠구나. (4344.3.12.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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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53 : 사람을 쓰는 책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는 어린 딸아이하고 책을 읽고, 집 바깥으로 나오면 멧골학교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우리 살림집 위쪽으로 멧길을 따라 올라가면 멧기슭에 이오덕학교가 있고, 이곳에서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읽는 책은 어른인 제가 고릅니다. 어른인 제가 아이들하고 읽는 책을 고른다고는 하지만, 저 스스로 읽으며 참으로 좋다고 느낀 책이기에 아이들하고 함께 읽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찬찬히 읽으면서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따스해진다고 느끼는 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들 나이를 헤아리니, 아이들은 저보다 서른 살쯤 어립니다. 나이가 조금 많은 푸름이는 저보다 스물세 살쯤 어립니다. 스물세 해 앞서나 서른 해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 나한테 책을 읽어 준 어른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아주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물었습니다. 어린 나한테 책을 읽어 주려는 여느 어른이나 학교 교사는 몹시 드물었습니다. 아니, 나한테뿐 아니라 내 동무한테도 책을 읽어 주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우리한테 하는 일이라고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자습서와 문제집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교과서부터 문제집까지 우리 머리에 쑤셔박습니다. 때때로 처넣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으며 손꼽힌다는 대학교에 우리들을 더 몰아넣어야 학교이름이 한결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몽둥이를 옆에 끼든 주먹이나 손바닥이나 군화발로 우리를 꾸욱꾸욱 누르든 하면서 시험성적 잘 나오는 시험기계로 우리들을 길들였습니다. 이러니, 책 읽어 주는 어른은 없었어요.

 그런데, 멧골학교 아이들한테 《얘들아 내 얘기를》(새벗,1986)이라는 이원수 님 수필책을 한 꼭지씩 읽히다 보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내 국민학생 때 곧잘 들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느 분인지 떠오르지 않으나, 공부 때에 우리가 졸립다 하거나 힘들어 하면 으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무렵에는 《얘들아 내 얘기를》에 실린 이야기인 줄 몰랐고,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 맑으면서 힘찬 목소리로 들려줄 때에 졸음이 싹 가셨습니다. 그래서 멧골학교 어린이한테 이원수 님 동화도 함께 읽힙니다. 요사이에는 《골목대장》(한겨레아이들,2002)을 조금씩 읽힙니다. 어제 함께 읽은 동화에는 “아! 자유를 좋아할 줄 알고 독립을 좋아할 줄 아는 우리 앵문조는 훌륭한 새가 아닙니까? 갇힌 몸으로 아무리 잘 먹고 지낸들 그게 행복한 생활은 아니겠지요(96쪽)!”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1년에 일제강점기를 되새기며 쓴 동화를 2011년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깊이 받아들이리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어린이들이 마음밭에 ‘착한 꿈을 키우고픈 어른이 뿌린 사랑씨’ 하나를 심을 수 있으면, 차츰차츰 자라며 나중에 알차며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으리라 믿어요. 책은 한 사람이 참말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북돋우고자 한 사람이 기쁘게(또는 슬프게) 살아온 땀방울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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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하루하루 더욱 깊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기에 날마다 조금씩 깊어지는 삶을 누립니다.

 사람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따스해집니다. 사람을 읽으면서 더욱 따스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읽기에 언제나 차근차근 따스해지는 삶을 맞이합니다.

 사랑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아름다와집니다. 사랑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아름다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읽기에 노상 아름다운 삶을 즐깁니다.

 책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을 차곡차곡 싣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똑같은 삶을 마주합니다. 사랑은 내 가까이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내 가슴으로 스며들지만, 숱한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나를 거쳐 지나갑니다. 나로서는 내가 받아들이는 책과 사람과 사랑만큼 좋은 나날을 누리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책과 사람과 사랑이 없대서 나쁜 나날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아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쁠 수 있고, 조금씩 새로 찾아서 살피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한결같은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새로 읽는 책이라서 더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에 좋지, 새로운 책을 읽기에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이기에 거듭 읽을 수 있으며, 좋은 책을 거듭 읽기에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 느낌과 꿈을 선물받습니다.

 내가 차근차근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새로운 좋은 책을 맞아들이거나 새로운 좋은 사람을 사귀거나 새로운 좋은 사랑을 빛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품에 안는 오래된 책을 다시 읽는달지라도, 오래도록 사귄 동무나 살붙이하고만 지낸달지라도, 한 사람을 지며리 사랑한달지라도, 나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새삼스러이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며 살아갑니다.

 좋은 책이기에 좋은 책입니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랑이기에 좋은 사랑입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더 많은 토박이말을 새롭게 배워서 글에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옳고 바르게 깨달아 알맞고 착하게 가눌 줄 알면 비로소 문학입니다. 문학은 고작 오백 낱말이나 삼백 낱말로도 태어납니다. 오천이나 삼만쯤 되는 낱말을 마음껏 부려 쓸 수 있다 해서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쓰는 낱말로 빚을 수 없는 문학이라면 문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4344.3.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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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말리기


 서울로 볼일을 보러 오다. 여관에서 하룻밤 묵다. 아침에 여관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나로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땅을 내려다볼 일이 없을 테니까, 이러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그림으로 보는 일이 놀랍다. 아, 이렇게 보이는구나.

 중국땅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옥수수를 거두어 말려야 할 때에 널따란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도록 펼쳐서 말리기도 한단다. 이리하여 옥수수 거둠철에는 고속도로를 막아 차가 못 다니도록 한단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시골에서도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 한켠에 죽 펼치곤 한다. 도시에서도 골목길 한켠은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골목은 한 사람이 지나갈 틈만 남기고 돌계단까지 빼곡하게 고추를 널곤 한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고 만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미군부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삶’을 담은 사진책 《어머니의 손수건》(이용남 사진,민중의소리 펴냄)이 떠오른다.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노라면 미군부대가 군사훈련을 하는 시골마을 사람들은 거둠철에 곡식을 찻길 한켠에 널어서 말리는데, 미군부대 장갑차나 탱크는 일부러 곡식을 깡그리 밟으며 지나간단다. 한국으로 온 미국 군인 가운데에는 미국땅에서 농사꾼도 있을 테고, 미국땅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모시는 이도 있을 텐데, 왜 미국 군인은 한국에 와서 이런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까.

 아니, 이 나라 정부는 왜 나라밖 군대를 제 나라에 고이 모시는가. 아니, 이 나라 정부는 가을날 거둠철에 농사꾼이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에 죽 펼쳐놓아야 할 때에, 기쁘게 ‘자, 가을날 거둠철이니까 여기 고속도로는 막겠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가. 시골길도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깔리는데, 가만히 헤아리면 이 시골길이란 지난날 농사꾼들이 곡식을 말리던 흙길이었다. 이 흙길에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덮이며 자동차가 오가고, 시골사람 또한 자가용을 마련해서 타고 다닌다. 이제 곡식은 길바닥에 펼쳐서 말리기보다 기계를 써서 말린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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