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다


 사라지는 책은 슬프지 않습니다. 덜 읽히거나 안 읽히는 책 또한 안타깝지 않습니다. 잊히거나 밀리는 책도 가엾지 않습니다.

 책은 만들거나 파는 사람 몫이 아닙니다. 책은 읽는 사람 몫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만들면서 숱하게 되읽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책을 파는 사람은 책을 맞아들여 책시렁에 꽂으면서 찬찬히 읽는 즐거움을 맛봅니다.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이 책들을 알아보지 못하면,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숱하게 되읽는 즐거움’이나 ‘찬찬히 읽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안타깝거나 슬프거나 딱한 쪽은 책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고운 빛 드리우는 책이 어떠한 고운 빛을 드리우는가를 읽을 때에 비로소 책도 사람도 살겠지요. 사랑스러운 손길 감도는 책이 어떠한 사랑스러운 손길이 감도는가를 헤아릴 때에 바야흐로 책이며 사람이며 살찌겠지요.

 어디까지나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책을 잘 읽을 노릇입니다. 언제나 책을 장만하여 읽을 사람이 책을 잘 새길 노릇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잘 못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 가운데 돈바라기에 매인 나머지 돈내음 물씬 나게 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따숩고 넉넉한 마음결로 살포시 보듬으면 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알차고 알뜰하며 아리따운 넋을 고이 담았달지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알아채지 못하면, 이러한 넋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책을 만드는 동안 책넋을 고이 담았으니 뿌듯합니다. 보람차겠지요. 뿌듯함과 보람참은 돈이 아니요 돈값으로 따지지 못합니다. 100만 권이 팔려야 뿌듯함에 값하겠습니까. 천만 권이 팔릴 때에 보람참에 값하려나요.

 제대로 읽으며 올바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을 때에 흐뭇하게 웃습니다. 찬찬히 읽어 착하게 어깨동무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기쁘게 춤춥니다.

 사라지는 책이 슬플 까닭이 없습니다. 헌책방 책시렁에서 열 해 스무 해 조용히 먼지를 먹다가 사라지는 책이 슬플 까닭이 없습니다. 새책방 책시렁에서 그만 밀려나 판이 끊어진들, 도서관 책시렁에서 ‘대출 실적 0’이라서 버려진들, 헌책방 책시렁에서마저 찾아드는 이가 없어 그만 사라진들, 책은 슬프지 않습니다. 우리들 사람이 슬픕니다. 바쁘고 힘들며 팍팍한 사람이 슬픕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이름을 더 날려야 하며 힘을 더 거머쥐어야 하는 사람이 슬픕니다. (4344.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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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10 15:02   좋아요 0 | URL
하지만 알팔려서 파지 공장으로 사라지는 책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ㅡ.ㅜ

숲노래 2011-02-11 03:56   좋아요 0 | URL
옳게 읽어 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삶이 더 슬프답니다... ㅠ.ㅜ
 


 설날 집일 안 하기


 설날을 맞이해서 집을 떠나 여러 날째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닌다. 집에 머물지 않으니 집일을 안 하며 지낸다. 여러 어른들 만나뵈러 찾아다니는데, 어른들마다 아이를 귀엽게 보아 주시고 아이하고 즐거이 어울리며 놀라 주신다. 아이는 아이대로 귀엽다 해 주는 분이 많고 어울릴 사람이 많다 보니 아버지나 어머니 품에 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주 모처럼 홀가분하게 지낸다. 게다가 손수 밥을 차려 식구들 먹이지 않으니 하루 내내 할 일이란 없다. 그저 자리에 앉아 밥상 고맙게 받아먹으며 입만 나불나불거릴 뿐.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니, 집을 치운다거나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참말 집일에 마음쓰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아이 옷가지를 빨래하지만, 집에 머물 때처럼 이 빨래 저 빨래를 하지 않는다. 설밥은 올해에도 어머니가 혼자서 다 하고 말았으니 도울 겨를이 없이 자잘한 일만 거들며 일마무리만 조금 돕는다. 올해에는 설밥을 함께 마련하고 싶었으나, 어머니는 밤새 혼자서 다 하셨단다.

 집일을 안 하고 아이랑 놀지 않는데, 정작 조용히 책을 읽지는 못한다. 마땅한 일이겠지. 어른들하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인천마실을 하면서 오랜만에 만난 동네 분이랑 사진벗이랑 이야기마당을 마련한다. 종이책은 읽지 않으나 사람책은 읽는다. 종이책을 들출 겨를이 없으나 사람책하고 내내 어우러진다.

 시골집으로 돌아가기 앞서 헌책방 한두 군데쯤 들를 수 있으려나. 인천에서도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겨우 맛보기만 했는데, 서울을 거치며 헌책방마실을 해 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책 구경은 못하더라도 헌책방 사진은 한두 장이라도 찍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옆지기가 둘째를 낳기 앞서 옆지기네 어르신들 만날 수 있는 일로도 고맙구나 해야지. 헌책방마실은 다음에도 할 수 있고, 아이를 낳기 앞서 첫째랑 아빠랑 둘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지.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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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 헌책방


 설을 맞이해 옆지기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을 찾아왔고, 이튿날 헌책방거리 안쪽 골목집에서 잠을 얻어 잔 뒤 헌책방을 찾아가며 설 인사를 한다. 헌책방에는 책손이 가득하고, 새로 들어오는 책손도 많아 발을 디딜 틈이 없다. 아이는 사람이 많다며 좋아한다. 아이 손을 닦이던 손수건을 아이가 뺏어 들고는 낯선 사람이나 낯선 아이를 붙잡고는 손을 닦아 주겠다며 애쓴다.

 설날이 끝나고 토요일과 일요일이 잇달아 이어진 나날,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책을 찾아 읽으려는 사람들 발길로 꽤나 북적거린다. 그런데 지난날 발길하고는 좀 다르다. 지난날에는 이곳 헌책방거리로 대중교통을 타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제는 으레 자가용을 타고 찾아온다. 두 다리로 복닥복닥 오가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고, 길가에 죽 대 놓은 자가용이며, 차를 댈 곳을 찾는 사람들을 이곳저곳에서 마주한다.

 자가용을 타고 왔으니 사들인 책을 싣고 돌아가기 수월하겠지. 자가용을 타고 왔으니 책을 장만한 다음 골목을 거닐며 동네를 둘러본다든지 동네 밥집에 찾아가기는 어렵겠지.

 그래도 퍽 긴 설 쉬는날에 헌책방마실을 하는 사람들이 놀라우며 반갑다. 인천 배다리에는 이렇게 헌책방거리가 있으며, 설 쉬는날에도 씩씩하게 문을 열어 놓으며 책손을 기다리니 참으로 고마우며 즐겁다. 헌책방 일꾼은 헌책방을 지키며 책이랑 쉬고, 헌책방 책손은 책시렁 책들을 가만히 둘러보며 책이랑 논다. 부산 보수동이랑 청주 중앙동이랑 전주 홍지서림 골목은 어떠할까. 서울 시내 곳곳에 깃든 헌책방은 또 얼마나 많은 책손이 드나들까. (4344.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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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7 23:35   좋아요 0 | URL
인천 배다리 헌책방의 경우 인천분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서울 같은 경우 지하철에서 내려서 걸어가야되서 불편하긴 하더군요.이럴때 차가 있으면 편하겠지요.그나저나 설 연휴기간에도 문을 연 헌책방도 계시네요.전 안여는줄 알고 아예 가지도 안았지만요^^

숲노래 2011-02-08 08:50   좋아요 0 | URL
꽤 많은 헌책방이 명절에도 문을 연답니다~
 



 작은집 아이들


 지난 한가위에도 작은집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올 설에도 작은집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다. 퍽 여러 해 작은집 아이들을 못 만났다고 느낀다. 작은집 아이들 이름을 떠올리면서, 이 아이들 나이가 몇 살이었는가 하고 곱씹는데, 큰애가 중학생쯤 아닐까 했으나, 작은어머니 말씀을 들으니 큰애가 고3이요 작은애가 중3이라 한다. 설에도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동네 동무를 만나서 논다는데, 이 아이들은 큰아버지 댁에 발길을 해 본 지 꽤 되었다. 올 설에는 막내 작은집 아이들이 모처럼 함께 찾아왔다. 막내 작은집 큰애는 스물여섯, 작은애는 스물넷. 못 본 지 여러 해 지났던 만큼 이렇게 숙숙 크는구나 하고 새삼 깨닫는다. 막내 작은집 작은애는 고2인가 고3때 마지막으로 보고 이렇게 보았으니 얼마만인가. 제사상을 차리고 치우는 동안 막내 작은집 아이들이 일손을 제법 거든다. 이 아이들은 알까. 저희들이 그동안 제사상 차리고 치울 때에 일손을 거의 안 도왔는 줄. 이제 이렇게 알뜰히 손길을 나누어 즐거이 도와주는 줄 깨달을까. 그러나 막내 작은집 아이들도 제사밥을 큰어머니가 어떻게 마련해서 차려 놓은 줄을 알지는 못한다. 만두를 먹고 떡을 먹고 고기를 먹고 나물을 먹고 지짐이를 먹고 닭을 먹고 하지만, 이 모든 제사밥을 밥상에 올려놓기까지 며칠에 걸쳐 몇 시간을 들여 한 땀 두 땀 사랑을 쏟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작은집 아이들이 보고 싶다. 작은집 아이들이 ㅅ대학교이든 서울에 있는 대학교이든 철썩 붙는 일도 좋다고 생각한다. 올해에 붙을는지 모르고 이듬해에 붙을는지 모른다. 그만 자꾸자꾸 떨어질 수도 있겠지. 대학생이 된 다음에는 명절마실을 할까. 대학생이 되고 난 다음 할 명절마실 때에는 작은집 아이들은 이 집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즐기거나 무엇을 느끼려나.

 나는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나날을 썩 좋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남자로 태어나서 옆지기를 만나 아이를 낳고 살아오는 나날이면서, 이렇게 명절날 쉴새없이 씩씩하게 갖은 집일을 함께 나누어 할 수 있기에 기쁘며 신난다. 내가 여자이면서 집일을 이렇게 한다면 으레 ‘아주 마땅하다’고 여길 테지만, 내가 남자이면서 집일을 이렇게 할 때에는 참말 ‘아주 고맙다’고 여기는데, 작은집 아이들이 남자이면서 명절날 안 온다든지 명절날 아무것도 안 하며 가만히 텔레비전만 본다든지 한다면 몹시 못마땅할 터이나, 여자이면서 명절날 안 오거나 그저 텔레비전만 본다든지 하는 일은 그닥 못마땅하지 않을 뿐더러 괜찮은데, 함께 저희 어머니하고 부엌일도 하고 다른 잔일을 거들 때에는 더없이 어여쁘다고 느낀다.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에 앞서 사람이고, 아이이니까. 대학생이 되기 앞서 사람이 되어야 할 우리들이고, 지식인이나 비즈니스맨이나 공무원이 되기 앞서에도 사람이 되어야 할 우리들이니까. 작은집 아이들이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비손을 올린다. (4344.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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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팔아요?


 모를 만한 사람이 아닌 알 만한 사람이 나한테 “책 팔아요?” 하고 물을 때에는 참 갑갑하다. 모를 만한 사람이 아닌 알 만한 사람조차 내가 ‘헌책방을 열어 장사하는’ 줄 여긴다. 이들은 내가 쓴 글을 제대로 읽기나 했을까. 이들은 내가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안다고 여길까. 이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뜬소문을 퍼뜨리며 다닐까.

 묵어서 좀처럼 안 보이는 헌책이나 옛책을 사고 싶으면 인터넷 검색기를 돌려서 인터넷헌책방에서 사면 그만이다. 스스로 다리품을 팔아 헌책방마실을 하기 싫으면 집에서 인터넷 켜 놓고 또닥거리면 된다. 애써 나한테 전화할 까닭이란 없다.

 그러나 나한테 책 팔라 하는 이들은 그저 책에만 눈이 멀었기 때문이니까 어쩌는 수 없다. 이 불쌍한 넋들을 어찌할 길이 없다. 나는 내가 그동안 사서 읽고 마을 도서관을 열면서 갖춘 이 책들을 팔 까닭이 없고, 팔 수 없으며, 팔 일이 없다. 도서관을 열어서 꾸리는 사람 가운데 누가 책을 팔까? 그토록 책을 갖고 싶으면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책 좀 파셔요.” 하고 여쭐 노릇이다. 아니, 이런 책들이 묵지 않도록, 새로 나왔을 때에 부디 알뜰살뜰 제값 치르며 장만해 줄 노릇이다. 널리 팔리던 때에는 장만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없다고 수선을 피운들 이 책들이 짠하고 나타날 일이란 없다.

 사람들이 참 몰라본다 싶어 하루하루 묻히는 몇 가지 묵은 헌책 이야기를 틈틈이 느낌글 하나로 적바림해 놓으면, 내가 마치 이 책들을 경매시장 같은 데에 내놓아 팔려 하는 줄 생각하나 본데, 책을 팔려면 서지사항하고 사진하고 책값만 붙여 목록을 올리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삶을 어떻게 일군다 하는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 붙이지 않는다.

 사람을 읽지 않으면서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한 일이다. 사람을 읽지 못하는 눈길로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는지 아리송한 일이다. 사람을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책마다 다 다르며 깊고 너르게 깃든 이야기를 얼마나 껴안을는지 모를 일이다.

 제발, 책 좀 내려놓자. 책은 좀 내려놓고, 돈 있으면 어떤 책이든 다 사서 간직할 수 있다는 엉터리 생각 좀 내려놓자. 돈 있는 사람은 그저 돈 있을 뿐이니까, 이 돈냄새 나는 짓은 제발 그만두자. (4344.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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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2-03 22:22   좋아요 0 | URL
ㅎㅎ 된장님께 직접 전화를 걸어서 책 팔라고 하는 사람도 있나 보군요.정성은 갸륵한데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해 집니다^^

숲노래 2011-02-03 23:59   좋아요 0 | URL
출판사로도 전화를 걸고, 인터넷에서 조금만 찾아보면 다 나오기도 하고, 그러지요 뭐... 그냥, 책에만 눈이 먼 사람들이라 더없이 딱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