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녹는 소리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 싶어 퍼뜩 깨어난다. 그러나 꿈이었다. 한숨을 쉬고 입맛을 다신다. 옆지기도 잠결에 물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옆지기 또한 꿈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기다린다. 늘 기다리고 언제나 기다리며 자꾸 기다린다.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내 하루하루 삶을 글로 적바림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따순 봄을 기다리면서 내 글과 사진에 조금 더 따순 기운이 스밀 수 있기를 바란다.

 잠든 아이 이마를 쓸어넘긴다. 깊은 밤 아이가 쉬 마렵다며 깨어나기에 기저귀를 푸니 벌써 오줌으로 젖었다. 오줌을 참다 못해 조금 지리고 일어났을까. 아이는 제 변기에 앉는다. 푸직푸직 소리가 난다. 아하, 요 나흘 동안 물똥을 싸더니 아직 속이 안 좋아서 이렇게 또 자다가도 물똥을 싸는구나. 아이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는다. 한참 똥을 누는 아이를 기다린다. 다 눈 아이를 안아서 밑을 씻는다. 바지를 다시 입힌다. 이제 속이 개운한지 깊은 밤인데 조잘조잘 떠들며 노래까지 부른다. 아이로서는 깊은 밤이건 한낮이건 아침이건 새벽이건 똑같을까. 놀고 싶을 때에 놀고, 잠보다 밥보다 놀이가 더 좋을까.

 아침이 되어 비가 멎는다. 어제는 하루 내내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며 도랑 얼음과 계단논 얼음도 꽤 녹았다. 그러나 다 녹지는 않았다. 아직 비가 찬비인 듯하다. 찬비를 지나 따순비가 되어야, 그러니까 그냥 봄비라 할 비가 아니라 참말로 따뜻한 봄비가 되어 온 들판과 멧자락 얼음과 눈을 스르르 녹일 수 있을 때에 우리 집 겨우내 얼어붙은 물도 녹을 테지.

 똑같은 비라 할지라도 찬비는 얼음을 녹이지 못한다. 똑같은 비인데 따순비는 얼음을 녹인다. 똑같은 가슴이더라도 찬가슴은 사람들 마음을 녹일 수 없겠지. 똑같은 글이더라도 따순글이 될 때에 다른 사람들보다 내 가슴부터 사르르 녹일 수 있겠지.

 이 비가 지나고 비를 몰고 온 매지구름이 물러나면 바야흐로 따스하면서 살랑바람이 부는 파란 봄하늘이 찾아올까 궁금하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거듭 기다린다. 이제 집에서 빨래하고 설거지하며 걸레 빨아 집안 구석구석을 닦고 싶다. (4344.2.28.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른들은 왜 이렇게 우리말을 못 할까요


 올봄에 내려 했으나 아무래도 봄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에 담을 글을 쓴다. 이제 큰 고비는 지났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어른들이 잘못 쓰는 말’ 꼭지를 다 썼으니까. ‘어른들이 잘못 쓰는 말’이란 수천 가지가 아닌 수만 가지나 수십만 가지가 되기 때문에, 이 가운데 삼사백 가지쯤 추려서 갈무리하는 내내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드디어 이 골머리 터지는 글쓰기를 마쳤다. 아마 오늘 저녁이나 다음주부터 아이들하고 푸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쓸 텐데, 얼추 쉰 가지 물음을 추리면서 맨 마지막에 내가 쓴 물음 하나를 넣는다.

 “어른들은 왜 이렇게 우리말을 못 할까요?”

 내가 어린이나 푸름이라 할 때에 어른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한 마디이다. 왜 이렇게 어른들은 우리말을 엉터리로 하면서, 우리말을 알맞고 바르게 배우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말을 엉터리로 쓰면서 엉터리로 쓰는 모습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말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면서 책 많이 읽거나 가방끈 길거나 교수이니 국회의원이니 뭐니뭐니 하고 내세운들 무슨 쓸모가 있습니까? (4344.2.27.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를 담은 그림책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주보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나무는 다릅니다. 나무이기는 똑같은 나무이지만, 나무가 뿌리내려 지내는 터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사람이랑 시골사람은 다릅니다. 둘은 사람이라는 테두리에서는 같으나, 지내는 보금자리가 다릅니다. 그러나, 도시사람하고 시골사람이 다르대서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하고 시골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도,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라는 나무치고 제 목숨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나무는 없습니다. 한국땅 도시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는 백 해를 살아남기도 힘듭니다. 한국사람 살아가는 도시는 끝없이 다시 파헤치거나 무너뜨려 개발하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는 집짓기만 하기 때문에, 나무 몇 그루쯤이야 돈으로 사서 심으면 그만이라고 여깁니다. 쉰 해를 살았건 이백 해를 살았건, 고운 목숨 하나로 나무를 살피지 않는 도시입니다.

 시골이라 해서 나무가 잘 살아남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땔감으로 베기도 하지만, 이보다 지난 한국전쟁 때 온통 죽고 말아 벌거숭이가 된 멧자락에 아무 나무나 함부로 심는 바람에 이 나무들은 제 결대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씨앗을 흙에 내어 자라난 나무는 많지 않습니다. 나무가 나무다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그래도 시골 멧자락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심건 저런 까닭으로 심건, 열 해 스무 해 지나면서 저희끼리 씨앗을 내어 천천히 조용히 자랍니다. 사람들이 솎아내기를 하지 않거나 가지치기를 굳이 하지 않는다면, 시골나무는 시골나무 그대로 마음껏 자랍니다.

 도시나무는 걷는 사람한테 걸리적거리거나 오가는 자동차한테 번거로우니까 가지를 자릅니다. 전깃줄에 걸린다느니 건물 창문을 가린다느니 해서 줄기이든 가지이든 뭉텅뭉텅 자릅니다. 숲에서 살아가는 나무도 키가 클수록 줄기가 위쪽으로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시골나무는 키가 크면서 제 스스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립니다. 억지로 가지를 잘라내면서 줄기를 위쪽으로 올리지 않습니다. 잎사귀가 햇볕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 하니까 위쪽 가지가 아래쪽 가지보다 잎이 우거집니다.

 도시에서는 어린나무를 보기 힘듭니다. 아니, 도시에는 어린나무를 아예 볼 수 없다고 해야겠지요. 시골땅에서 웬만큼 키운 다음 가지치기를 한 젊은나무를 심으니까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무는, 또 도시사람이 ‘나무숲’이라는 수목원을 찾아가서 마주한다는 나무는, 가지가 으레 위쪽에만 남습니다. 어느 나무이든 잔가지가 얼마나 많은데,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나무 잔가지’를 볼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겨울을 난 나무마다 새로 뻗는 가지가 얼마나 많은가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봄이 되기 앞서 도시 공무원들은 ‘가로 정비’라는 이름을 붙여 잔가지며 몸통 아래쪽 가지는 모조리 잘라내거든요.

 그림책에 담기는 나무란, 으레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림쟁이가 그림으로 담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책마을 일꾼이 엮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들여다보는 그림책 나무입니다. 흙에 씨앗을 떨구어 천천히 뿌리를 내리며 새 목숨을 영차영차 일구는 시골나무가 그림책에 담기는 일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는 흙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지만, 사람은 흙이 없는 곳에서도 살아가는 나머지, 나무와 흙과 햇볕과 바람과 물과 풀과 짐승이 어떻게 얼크러지는가를 도시사람으로서는 헤아리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도 ‘나무 이야기 다룬 그림책’이라도 읽어야 도시사람 마음에 푸른 싹이 틉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이래저래 어수룩하거나 어설픈 자연 그림책이든 나무 그림책이든 가까이해야, 모자라나마 나무사랑 흙사랑 자연사랑 사람사랑을 조금이나마 맛보거나 생각할 만합니다.

 나무다운 나무를 그리지 못하는 도시사람 그림책이지만, 어찌 되든 나무이기는 나무이지, 하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런 나무를 그린 그림책이라도 만들고 팔며 사서 읽습니다.

 나무는 그림책이 아니라 멧자락에 있습니다. 나무는 사진책이나 도감이 아니라 시골마을이나 우리 집 자그마한 마당에서 살아숨쉽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으로 보는 눈 152 : 사람이 쓰는 책


 《일본 만화 현대사》(요시히로 코스케 씀,융성출판사 펴냄,1998)라는 자그마한 책이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일본만화를 꽤 읽는다 하더라도 쉽게 읽기 힘든 책이니까 이런 책이 있는 줄 아는 분은 드뭅니다. ‘한국 현대사’조차 잘 모르거나 잘 안 살피는 흐름을 생각한다면, 한국 현대사조차 아닌 일본 만화 현대사 같은 책을 애써 찾아 읽으려는 사람이란 드물 수밖에 없겠지요. ‘한국 만화 현대사’ 같은 책조차 한국사람은 안 읽을 테지만, 이런 책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일본 만화 현대사》를 내놓은 출판사는 안 팔릴 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책을 기꺼이 옮긴 셈입니다. 틀림없이 이 작은 책 하나를 읽으며 우리들이 배우거나 살피거나 느낄 대목이 있으니 냈겠지요.

 이 책을 읽는다 해서 일본만화가 걸어온 발자취를 짚을 수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만화밭이 어마어마하게 크거나 넓기 때문에 조그마한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밝힐 수 없습니다. 만화쟁이 한 사람이 걸은 길만 살펴도 두툼한 책 하나가 될 만하거나 넘치거든요. 얇은 책 하나로 일본만화를 다루려 한다면 아주 깊게 파헤쳐 두루 살피는 눈썰미여야 합니다.

 얇은 만큼 금세 책을 읽고 덮습니다.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글쓴이가 남자이다 보니 ‘남자 어린이’가 ‘남자 어른’이 되는 동안 좋아한 만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신문사 기자입니다. 기자라서 글을 못 쓰란 법이 없으나, 기자는 여느 사람들처럼 글을 홀가분하게 쓰지 못합니다. 기자 또한 스스로 사랑하는 사람과 삶과 만화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신문 독자한테 많이 읽힐 글’에 매이기 일쑤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으레 교수·기자·학자·전문가·비평가·작가·교사·유명인사·정치꾼·연예인 들이기 일쑤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쌓아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얻는 사람들이 쓴 책이 책방을 뒤덮습니다.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 손에서 태어난 책·농사짓거나 기계를 만지는 일꾼 손에서 태어난 책·어린이나 할머니 손에서 태어난 책은 거의 없거나 아예 없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쓰는 수수한 책은 싹틀 땅이 없습니다. 작은 사람이 쓰는 작은 책은 뿌리내릴 터전이 없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이 지식을 다루는 책이 넘칩니다. 정보를 쌓은 사람들이 정보를 가득 담은 책이 쏟아집니다. 삶을 아끼는 책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책이나 살림을 어여삐 꾸리는 사람이나 흙을 알뜰히 일구는 사람이나 아이를 애틋이 돌보는 할머니 같은 사람이 쓰는 책을 마주하기 매우 힘듭니다.

 글쓴이 이름을 돋보이려는 책은 많습니다. 글쓴이 지식과 정보를 선보이려는 책 또한 많습니다. ‘일본 만화 현대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기대(30쪽)”를 나누려 하던 데즈카 오사무 님 넋이 튼튼한 뿌리가 되어 이루어졌다는데, 한국땅 책마을과 사람마을이란, 책터와 살림터란, 얼마나 사랑어린 꿈이나 아름다운 빛줄기가 감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4344.2.26.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강과 책


 아무리 재미있는 책을 손에 들고 읽더라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강다리 건널 때면 책을 덮습니다. 넓은 한강과 한강 둘레를 뒤덮은 시멘트 건물을 봅니다. 이 시멘트 건물은 뿌연 먼지띠가 곱게 감싸안습니다. 그래서 이곳, 한강을 끼는 서울에서 일하거나 놀거나 사는 사람들은 먼지띠 위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낮하늘, 하얀 별이 가득가득 반짝이는 까만 밤하늘을 볼 수 없고, 보지 못하다가는, 생각도 안 하고 말거나, 잊어버리기까지 합니다. (4339.2.18.쇠.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