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53 : 사람을 쓰는 책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집에서는 어린 딸아이하고 책을 읽고, 집 바깥으로 나오면 멧골학교 아이들하고 책을 읽습니다. 우리 살림집 위쪽으로 멧길을 따라 올라가면 멧기슭에 이오덕학교가 있고, 이곳에서 어린이랑 푸름이하고 책을 읽습니다.

 아이들하고 읽는 책은 어른인 제가 고릅니다. 어른인 제가 아이들하고 읽는 책을 고른다고는 하지만, 저 스스로 읽으며 참으로 좋다고 느낀 책이기에 아이들하고 함께 읽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저부터 찬찬히 읽으면서 마음이 넉넉해지거나 따스해진다고 느끼는 책을 아이들하고 함께 읽습니다.

 아이들 나이를 헤아리니, 아이들은 저보다 서른 살쯤 어립니다. 나이가 조금 많은 푸름이는 저보다 스물세 살쯤 어립니다. 스물세 해 앞서나 서른 해 앞서를 돌아봅니다. 그무렵 나한테 책을 읽어 준 어른이 있었나 궁금합니다. 아주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물었습니다. 어린 나한테 책을 읽어 주려는 여느 어른이나 학교 교사는 몹시 드물었습니다. 아니, 나한테뿐 아니라 내 동무한테도 책을 읽어 주는 어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우리한테 하는 일이라고는 교과서와 참고서와 자습서와 문제집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교과서부터 문제집까지 우리 머리에 쑤셔박습니다. 때때로 처넣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으며 손꼽힌다는 대학교에 우리들을 더 몰아넣어야 학교이름이 한결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몽둥이를 옆에 끼든 주먹이나 손바닥이나 군화발로 우리를 꾸욱꾸욱 누르든 하면서 시험성적 잘 나오는 시험기계로 우리들을 길들였습니다. 이러니, 책 읽어 주는 어른은 없었어요.

 그런데, 멧골학교 아이들한테 《얘들아 내 얘기를》(새벗,1986)이라는 이원수 님 수필책을 한 꼭지씩 읽히다 보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내 국민학생 때 곧잘 들었다고 떠오릅니다. 어느 분인지 떠오르지 않으나, 공부 때에 우리가 졸립다 하거나 힘들어 하면 으레 이 책에 실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그무렵에는 《얘들아 내 얘기를》에 실린 이야기인 줄 몰랐고,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 맑으면서 힘찬 목소리로 들려줄 때에 졸음이 싹 가셨습니다. 그래서 멧골학교 어린이한테 이원수 님 동화도 함께 읽힙니다. 요사이에는 《골목대장》(한겨레아이들,2002)을 조금씩 읽힙니다. 어제 함께 읽은 동화에는 “아! 자유를 좋아할 줄 알고 독립을 좋아할 줄 아는 우리 앵문조는 훌륭한 새가 아닙니까? 갇힌 몸으로 아무리 잘 먹고 지낸들 그게 행복한 생활은 아니겠지요(96쪽)!” 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1961년에 일제강점기를 되새기며 쓴 동화를 2011년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깊이 받아들이리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 어린이들이 마음밭에 ‘착한 꿈을 키우고픈 어른이 뿌린 사랑씨’ 하나를 심을 수 있으면, 차츰차츰 자라며 나중에 알차며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으리라 믿어요. 책은 한 사람이 참말 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북돋우고자 한 사람이 기쁘게(또는 슬프게) 살아온 땀방울을 담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4.3.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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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은 하루하루 더욱 깊어집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깊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읽기에 날마다 조금씩 깊어지는 삶을 누립니다.

 사람을 읽는 사람은 나날이 더욱 따스해집니다. 사람을 읽으면서 더욱 따스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읽기에 언제나 차근차근 따스해지는 삶을 맞이합니다.

 사랑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아름다와집니다. 사랑을 읽으면서 한결같이 아름다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읽기에 노상 아름다운 삶을 즐깁니다.

 책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나누는 사랑을 차곡차곡 싣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새로우면서 똑같은 삶을 마주합니다. 사랑은 내 가까이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습니다. 수많은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내 가슴으로 스며들지만, 숱한 책과 사람과 사랑이 나를 거쳐 지나갑니다. 나로서는 내가 받아들이는 책과 사람과 사랑만큼 좋은 나날을 누리지만, 나는 내가 모르는 책과 사람과 사랑이 없대서 나쁜 나날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나로서는 내가 아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언제까지나 기쁠 수 있고, 조금씩 새로 찾아서 살피는 책과 사람과 사랑으로도 한결같은 삶을 지킬 수 있습니다.

 새로 읽는 책이라서 더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을 때에 좋지, 새로운 책을 읽기에 좋지 않습니다. 좋은 책이기에 거듭 읽을 수 있으며, 좋은 책을 거듭 읽기에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운과 느낌과 꿈을 선물받습니다.

 내가 차근차근 좋은 사람으로 거듭난다면, 새로운 좋은 책을 맞아들이거나 새로운 좋은 사람을 사귀거나 새로운 좋은 사랑을 빛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늘 품에 안는 오래된 책을 다시 읽는달지라도, 오래도록 사귄 동무나 살붙이하고만 지낸달지라도, 한 사람을 지며리 사랑한달지라도, 나는 어제와 오늘과 글피가 새삼스러이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며 살아갑니다.

 좋은 책이기에 좋은 책입니다. 좋은 사람이기에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랑이기에 좋은 사랑입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더 많은 토박이말을 새롭게 배워서 글에 담아야 하지 않습니다. 좋은 말을 옳고 바르게 깨달아 알맞고 착하게 가눌 줄 알면 비로소 문학입니다. 문학은 고작 오백 낱말이나 삼백 낱말로도 태어납니다. 오천이나 삼만쯤 되는 낱말을 마음껏 부려 쓸 수 있다 해서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일곱 살 어린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쓰는 낱말로 빚을 수 없는 문학이라면 문학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습니다. (4344.3.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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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말리기


 서울로 볼일을 보러 오다. 여관에서 하룻밤 묵다. 아침에 여관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에서는 중국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온다. 나로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땅을 내려다볼 일이 없을 테니까, 이러한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그림으로 보는 일이 놀랍다. 아, 이렇게 보이는구나.

 중국땅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중국에서는 옥수수를 거두어 말려야 할 때에 널따란 고속도로를 가득 채우도록 펼쳐서 말리기도 한단다. 이리하여 옥수수 거둠철에는 고속도로를 막아 차가 못 다니도록 한단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시골에서도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 한켠에 죽 펼치곤 한다. 도시에서도 골목길 한켠은 고추를 말리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어느 골목은 한 사람이 지나갈 틈만 남기고 돌계단까지 빼곡하게 고추를 널곤 한다.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서 죽고 만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며 ­‘미군부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 삶’을 담은 사진책 《어머니의 손수건》(이용남 사진,민중의소리 펴냄)이 떠오른다.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노라면 미군부대가 군사훈련을 하는 시골마을 사람들은 거둠철에 곡식을 찻길 한켠에 널어서 말리는데, 미군부대 장갑차나 탱크는 일부러 곡식을 깡그리 밟으며 지나간단다. 한국으로 온 미국 군인 가운데에는 미국땅에서 농사꾼도 있을 테고, 미국땅에서 농사짓는 어버이를 모시는 이도 있을 텐데, 왜 미국 군인은 한국에 와서 이런 몹쓸 짓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까.

 아니, 이 나라 정부는 왜 나라밖 군대를 제 나라에 고이 모시는가. 아니, 이 나라 정부는 가을날 거둠철에 농사꾼이 곡식을 말리느라 찻길에 죽 펼쳐놓아야 할 때에, 기쁘게 ‘자, 가을날 거둠철이니까 여기 고속도로는 막겠습니다.’ 하고 외칠 수 있는가. 시골길도 아스팔트나 시멘트가 깔리는데, 가만히 헤아리면 이 시골길이란 지난날 농사꾼들이 곡식을 말리던 흙길이었다. 이 흙길에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덮이며 자동차가 오가고, 시골사람 또한 자가용을 마련해서 타고 다닌다. 이제 곡식은 길바닥에 펼쳐서 말리기보다 기계를 써서 말린다. (4344.3.5.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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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멀미


 옆지기는 차멀미를 한다. 나도 어릴 때에 차멀미를 했는데, 어느결에 차멀미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차를 탈 때에 속이 좋지는 않다. 그저 꾸욱 참을 뿐이지.

 이제 나도 옆지기만큼은 아니지만 차멀미를 한다. 시골집에서 지내다가 때때로 볼일 보러 도시로 나갈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괴롭다. 그런데 차에서 내린다고 나아지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내리’니까.

 볼일 마치고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미식거림을 참아야 한다. 오늘은 그나마 빈속으로 나왔기에 서울 닿을 무렵에 눈알이 핑핑 돌지만 그럭저럭 버틴다. (4344.3.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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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환경연대 소식지에 실으려고 쓴 글.) 


 발굽병이든 구제역이든 다 괜찮아요
 ― 제삶을 제대로 제값 치르며 살아가요



 도시에는 도시가스가 있습니다. 밥을 하거나 따순물을 쓸 때에 그닥 근심하지 않습니다. 꼭지만 돌리면 따순물 졸졸 흐릅니다.

 도시가스는 시골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시골가스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도시라 해서 모든 도시에 도시가스가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흔히들 ‘빈민촌’이라 하거나 ‘철거민촌’이라고도 하며 ‘가난한 골목집’이라고도 하는, 제가 느끼기로는 그예 달동네랑 꽃동네인 집에는 도시가스가 잘 안들어갑니다.

 아파트에서만 살아도 달을 보기 어렵지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살면 밤하늘 달을 올려다봅니다. 아파트에는 지킴이가 ‘지키는’ 꽃밭만 있으나, 골목동네 곳곳에는 골목사람 스스로 일구는 텃밭과 꽃밭이 예쁘장합니다.

 인천 창영동에서 첫째를 낳아 살던 때, 우리 집에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왔습니다. 머잖아 통째로 허물어 아파트로 확 바꾸려는 도시 정책 때문에 이러한 집은 도시에 깃들어도 도시 살림집다이 보살핌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식구는 지난여름에 인천 골목집을 떠나 음성 멧골자락 시골집으로 옮겼습니다. 시골 멧자락에 붙은 집인 만큼 도시가스 구경은 꿈도 꾸지 않고, 전화줄에 딸린 인터넷은 되게 느리기도 하며, 면내나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드뭅니다. 자가용이 없을 뿐더러 자가용 몰 생각을 안 하고 자가용 장만하거나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바깥마실을 할 때면 시골버스 지나는 때를 맞추어 큰길로 걸어 나갑니다. 으레 이십 분은 걷고, 다시 이십 분쯤 기다려 시골버스를 탑니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우리는 그냥 시골살이입니다. 하루에 여섯 대 오가는 시골버스에 맞추어 읍내를 다녀옵니다. ‘천천히’라기보다 시골살이에 맞추는 나날입니다.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추위를 느끼고,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더위를 느낍니다. 가을에는 가을빛을 느끼고, 봄에는 봄빛을 마주합니다.

 지난겨울 하룻밤 잘못한 탓에 물이 얼어붙어 삼월이 되어도 녹지 않으니 벌써 넉 달째 접어들도록 물을 길어다가 씁니다. 밥하고 설거지할 물을 길어다 쓰고, 빨래는 빨랫감을 들고 가서 하며, 몸을 씻기 참 힘듭니다. 어찌저찌 한겨울 지났고 곧 얼음이 사르르 녹아 물 한 그릇 고맙게 쓸 날을 맞이하겠지요. 힘들지만 힘든 대로 요모조모 더 알뜰히 살아내면 됩니다.

 우리 살림은 꽤나 가난해서 흔한 말로 ‘최저생계비조차 안 되는 살림돈’으로 어영부영 꾸립니다. 돈이 없으니 어디 나라밖으로 다녀온다든지 무슨 맛난 밥집을 찾아다닌다든지 예쁘장한 옷을 사입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여러 생협 물건을 장만해서 씁니다. 으레 생협 물건이 비싸다고 여기지만, 생협 물건은 안 비쌉니다. 알맞게 붙인 값이요 알뜰살뜰 쓸 물건으로 매긴 값이에요. 몸소 논밭일을 하는 사람은 알 테지요. 똥거름 내고 손수 김매어 흙을 일군 먹을거리하고 풀약이랑 비료를 먹인 먹을거리랑 같은 값이 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내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옳게 벼농사 지은 일꾼 땀방울에 값하도록 돈을 제대로 써야 올바릅니다. 생협 고기는 마트 고기보다 비싸다 하지만 마땅히 옳은 고기이고, 더 맛있으며, 더 알맞게 즐기기 마련인데다가, 고맙게 얻습니다. 항생제와 사료 안 먹인 고기란 매우 드뭅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집에 살면서 발굽병이고 뭐고를 안 느낍니다. 우리는 고기를 사먹는 일이 없고, 집에서 집짐승을 안 기릅니다. 발굽병이란, 거의 날마다 아주 많이 값싸게 고기를 먹으려 하는 도시사람들, 더욱이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라도 고기를 냠냠짭짭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도시사람들 때문에 생깁니다. 제값을 치를 줄 알며, 제삶을 꾸릴 줄 알아야, 발굽병이건 4대강사업이건 이 나라에 함부로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발굽병이란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사람 때문에 생긴 병인데, 피해는 고스란히 시골사람만 받습니다. 도시사람이야 발굽병이 터져도 고기를 예전하고 똑같이 먹으나, 시골사람은 온 마을을 소독한다느니 출입통제라느니 하면서 꽤나 시끌벅적합니다. 그래도 지난 설날부터 장마당이 다시 열렸으니, 장마당마실을 못할 일은 이제 없겠지요. (4344.3.3.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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