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팔월에 써둔 글이네요. 아직 책살림을 시골로 다 옮기기 앞선 때 겪은 일을 고스란히 살려서 '밥그릇' 이야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말 16] 밥 한 그릇

 인천 골목동네 살림집을 충주 산골마을로 옮겼습니다. 아직 다 옮기지 못한 책짐 때문에 홀로 인천으로 와서 책을 묶고 나르며 쌓는데, 밥때가 되면 밥을 사 먹어야 합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무렵 김밥을 사러 시내로 나갑니다. 시내에서 김밥과 보리술을 장만한 다음 도서관으로 돌아옵니다. 김밥을 먹으며 아까 이곳으로 오던 길에 밥집 안쪽에 붙은 차림표를 본 일을 떠올립니다. 밥집에 혼자 들어가서 사 먹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어느 밥집이든 차림표가 아닌 ‘메뉴(menu)’를 붙이고 있습니다. 이 차림표에 적힌 글월은 ‘공기(空器)밥’입니다. “공기에 담은 밥 한 그릇”이라 ‘공기밥’이라 하겠지요. 그런데 ‘공기’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공기’란 무엇인지요. 혼자이든 여럿이든 밥집에 가면 으레 “여기 밥 한 그릇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지만, 이런 제 말을 알아듣는 밥집 일꾼은 아직 못 봅니다. 모두들, 누구라 한들 ‘공기밥’이랑 ‘밥공기’가 익숙할 테니까요. “밥 한 그릇”이라는 말을 다 알기는 하여도, 밥집에서는, 아니 밥집이 아닌 ‘식당(食堂)’이니까 그러할는지 모르는데, 저절로 ‘공기밥’입니다. (4343.8.2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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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6] 작은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 어머니가 큰마음 먹고 저한테 ‘다달 학습지’ 하나를 받아서 주었습니다. 웅진아이큐라는 데에서 나오는 학습지였고, 이 학습지에 곁달린 이야기책에는 “큰 마음 작은 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학습지는 제대로 안 풀면서 “큰 마음 작은 아이” 이야기책은 알뜰히 읽고 즐겼습니다. 어느 날 이 이야기책 이름을 “큰 아이 작은 마음”이라고 잘못 말해, 형은 이 이름을 갖고 동생을 오래도록 놀렸습니다. 학습지를 만들던 어른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 노릇은 없으나, 어찌 되었든 아이들이 몸은 작아도 마음은 크다는 뜻을 나누고프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엉뚱하게도 저는 몸은 크면서 마음은 좁은 아이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벌써 스물 몇 해가 흐른 지난일인데 오늘까지 이때 일은 잊히지 않습니다. 저는 예나 이제나 ‘작은사람’, 곧 ‘작은이’이면서 ‘큰마음’이고프기 때문인지 모르며, 이제는 제법 ‘큰사람’, 곧 ‘큰이’가 되었으나 아직까지 ‘작은마음’에 머물거나 갇히거나 옭매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꼭 큰마음이라 해서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작은이 작은마음, 곧 작은사람 작은넋이어도 얼마든지 아름답습니다. 크든 작든 내 결대로 살아가며 곱게 여미면 좋습니다. (4343.11.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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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5] 글읽기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라는 낱말 하나 새로 일구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이 낱말을 일구기 앞서까지는 모두들 ‘글짓기’만 했습니다. 글을 짓는 일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독재정권 입맛에 맞추는 틀에 박힌 글을 반공이니 효도니 충성이니 하며 쏟아낼 때에는 참으로 슬픕니다. 밥을 짓듯이 글을 지을 수 있고, 집이나 옷을 짓듯이 글을 지을 수 있다는 테두리에서 똑 떨어져 나간 ‘글짓기’라는 낱말은 그예 죽은 낱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죽은 말에서 아이들이 홀가분할 수 있도록 ‘글쓰기’라는 낱말을 예쁘게 일구었습니다. 밥짓기 집짓기 옷짓기 삶짓기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에 비로소 ‘글짓기’ 또한 제자리를 찾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까마득한 일이 될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밤하늘 보름달과 나란히 반짝거리는 밝은 별을 헤아리면서 ‘글쓰기’하고 ‘글짓기’가 곱게 어울릴 앞날을 손꼽아 봅니다. 글을 쓰듯 삶을 쓰기 마련이기에 ‘삶쓰기’를 함께 곱씹고, 삶을 쓰듯이 삶을 읽기에 ‘삶읽기’를 바라다가는, 아하, 책도 삶도 글도 사람도 다 참답게 읽으며 껴안아야 아름다운 길이기에 ‘글읽기’부터 옳게 가누도록 내 매무새 다스려야겠구나 싶습니다. (4343.11.2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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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7] 남자와 여자

 우리 말은 ‘사내’와 ‘계집’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우리 말로 여기는 흐름은 꽤 예전부터 꺾였습니다. ‘사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안 받으면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놓고는 깎아내리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계집’이라는 낱말을 섣불리 올리면 인권모독이나 인권침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인천 싸리재길을 늘 지나다니면서 이 거리에 자리한 가구집들 이름이 어떠한가를 따로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리바트가구이든 시몬스침대이든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던 얼마 앞서 ‘레이디가구’라는 이름이 붙은 가구집 옆을 스치다가 ‘레이디’라는 이름을 붙인 가구 회사는 어쩜 이름을 이리 지었을까 싶어 궁금했습니다. 우리 말로는 ‘아가씨’이잖아요. 또는 ‘아씨’나 ‘색시’쯤 될 테지요. 그런데 ‘색시’라는 낱말도 얕잡는다는 느낌을 받는 낱말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아씨가구’라 하면 낫다 여길는지 모르나, 이 또한 모를 노릇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 고스란히 글로 담지 못합니다. 똥오줌 누는 뒷간에 ‘남자-여자’라 적힌 모습을 보기조차 힘듭니다. (4343.9.1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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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24] 스물네 시간

 아이랑 아이 엄마랑 하루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냅니다. 세 사람이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하루 한 시간은커녕 하루 한 분조차 안 됩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 한 주 이레, 한 달 서른 날, 한 해 열두 달 내내 함께 살아가며 같이 움직이고 나란히 잠자리에 듭니다. 밥을 한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책을 읽는다든지 글을 쓴다든지 다른 일을 한다든지 하면 아이는 혼자 심심해 하곤 하지만, 이내 혼자 소리지른다거나 노래부른다거나 춤을 춘다거나 합니다. 엄마나 아빠 따라 책을 펼친다든지 사진찍기 놀이를 하거나 드러눕거나 마구 달라붙거나 엉겨붙습니다. 아이는 스물네 시간 함께 살아가며 제 어버이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따릅니다.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서로서로 마주하는 가운데 닮아 가기도 하고 안 닮아 가기도 합니다. 아이도 그렇겠지요. 제 어버이 삶을 고스란히 따르기도 하지만, 제 어버이 말을 하나도 안 들으며 제멋을 찾아 제길을 갈 테지요. 아이와 아이 엄마하고 보내는 하루 스물네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길다고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밥하고 빨래하며 쓸고닦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아침 되고 아침이 낮 되며 낮이 저녁 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또한 퍽 짧습니다. (4343.11.1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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