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1747) 비인간적


 비인간적 행위 → 사람답지 못한 짓 / 말도 안 되는 짓 / 끔찍한 짓

 비인간적인 고난 →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 / 모진 가시밭

 비인간적인 제도 → 사람을 억누르는 제도 / 사람을 짓누르는 제도


  ‘비인간적(非人間的)’은 “사람답지 아니하거나 사람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누군가 “비인간적 행위를 한다”면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한다”는 말이고, “모질거나 끔찍한 짓을 한다”는 말이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다”거나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답지 않은’ 모습이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아무래도 모질거나 끔찍할 테고, 사납거나 나쁘거나 짓궂다고 할 만합니다. 때로는 무시무시하거나 무서운 모습일 수 있고, 못되거나 못난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람답지 않은 모습이기에 사람을 저버린다든지 사람을 억누르거나 괴롭히기도 할 테고요. 4348.9.25.쇠.ㅅㄴㄹ



비인간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도록 해 주는 활동이란

→ 사람 대접 못 받는 상황을 잘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짐승만도 못한 상황을 훌륭히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사람답게 살 수 없는 나날을 슬기롭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끔찍한 삶을 씩씩하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괴로운 삶을 꿋꿋하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고달픈 삶을 다부지게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 힘겨운 삶을 새로 힘내어 이겨내도록 해 주는 일이란

《레오나르도 보프/김수복 옮김-해방신학 입문》(한마당,1987) 17쪽


내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나빴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짓궂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모질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 내가 얼마나 못된 짓을 했는지 말해 주는

《하이타니 겐지로/햇살과나무꾼 옮김-내가 만난 아이들》(양철북,2004) 36쪽


그렇게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짓

→ 그렇게 못되고 끔찍한 짓

→ 그렇게 모질고 무시무시한 짓

→ 그렇게 미치고 소름돋는 짓

→ 그렇게 어처구니없고 모진 짓

→ 그렇게 터무니없고 사나운 짓

→ 그렇게 어이없고 무서운 짓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163쪽


그 반대라면 과학은 전적으로 비인간적인 활동이 될 테니까

→ 그 반대라면 과학은 모두 사람을 저버리는 짓이 될 테니까

→ 그렇지 않으면 과학은 몽땅 무시무시한 짓이 될 테니까

→ 그렇지 않다면 과학은 언제나 끔찍한 짓이 될 테니까

《장마르크 레비르블롱/문박엘리 옮김-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휴머니스트,2015) 6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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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7 왜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모르기에 궁금합니다. 어떻게 그처럼 돌아가는지 모르니 궁금합니다. 까닭을 몰라 알고 싶으며, 영문을 몰라 알려 합니다. 궁금함을 풀려는 마음이고, 까닭을 알아내려는 마음이며, 영문을 찾으려는 마음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한 마디 말을 터뜨립니다. “왜?”


  아이들은 늘 묻습니다. 아이들은 아주 짧게 묻습니다. “왜?” 아이들은 그야말로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른 것을 안 따지면서 그저 궁금합니다. 어른들이 어느 것이 옳다고 하면 왜 옳은지 궁금하고, 어른들이 어느 것이 그르다고 하면 왜 그른지 궁금합니다. 옳음과 그름을 구태여 왜 나누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옳거나 그르다고 따지기 앞서 즐겁거나 기쁜 삶을 생각하면 될 텐데 하고 궁금합니다.


  새롭게 알려는 마음이기에 “왜?” 하고 묻습니다. 아직 듣지도 보지도 겪지도 않았으니 “왜?” 하고 묻습니다. 스스럼없습니다. 거침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마음으로 묻습니다. 사회의식이나 고정관념이나 편견으로 묻지 않고, 티없이 열리고 가없이 넓으며 끝없이 깊은 마음으로 묻지요, 꼭 한 마디를, 바로 “왜?”라고 하면서.


  어른들이 “왜?”라는 말을 쓸 적에는 아이들과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티없고 가없으며 끝없이 묻지만, 어른들은 으레 ‘두려움’과 ‘무서움’과 ‘걱정’과 ‘근심’을 부여잡고서 묻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틀에 갇히고 굴레에 사로잡힌 채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알아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어른들은 ‘왜’ 따라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른들은 하기 싫고 알기 싫으며 따르기 싫습니다. 어른들은 마음을 조금도 안 열면서 묻는데, 마음을 안 연 채 읊는 ‘왜’는 궁금함이 아닙니다. 거스르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른들은 손사래치면서 눈을 감고 싶기에 ‘왜’라는 말마디로 고개를 홱 돌립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하나도 안 두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바라보거나 듣거나 겪으니 즐겁게 묻습니다. 아이들은 “왜?” 하고 물으면서 새로운 마음이 되기에 기쁩니다. 앞으로 새로운 숨결로 새로운 이야기를 누릴 만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똑같이 쓰는 ‘왜’입니다. 이곳에서든 저곳에서든 같은 말로 쓰는 ‘왜’인데, 막상 다른 마음으로 쓰고 마는 ‘왜’입니다. 이리하여, ‘여는 마음’으로 묻는 “왜?”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고, ‘갇힌 마음’으로 대꾸하는 “왜?”는 두려움으로 치닫는 제자리걸음이 됩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우리는 새로움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두려움에 스스로 갇히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사회의식을 붙잡은 채 종으로 얽매인 수렁에 빠지고 말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인지 안 알아보려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웃음과 노래를 길어올려 스스로 사랑스러운 삶을 지으려는 몸짓을 잃을까요? 4348.3.9.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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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7] 과자굽기



  이 나라에 빵이나 과자 같은 먹을거리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됩니다. ‘빵’이나 ‘과자’라는 낱말을 쓴 지도 얼마 안 돼요. 빵이나 과자를 마련할 적에 쓰는 낱말도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빵이나 과자를 놓고 예전에 쓴 말을 헤아리면 ‘빵굽기·과자굽기’입니다. 수수한 여느 사람들은 ‘빵굽기·과자굽기’라 했고, 일본을 거쳐서 전문 지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제빵·제과’라 했어요. 전문으로 빵이나 과자를 굽는 사람은 예전에는 한자를 빌어서 ‘製’를 썼는데, ‘製’는 “지을 제”입니다. 그러니 이 한자를 쓴 ‘제빵·제과’는 ‘빵짓기·과자짓기’처럼 옮겨야 올발랐다고 할 만합니다. ‘밥짓기’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제빵·제과 전문가나 국어학자는 ‘밥짓기·밥하기’를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싣지 않았고, ‘빵짓기·과자짓기’ 같은 낱말도 따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빵이나 과자는 밥과 달리 굽습니다. 그래서 ‘빵굽기·과자굽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맞지만 ‘제빵·제과’만 한국말사전에 싣고 말아요. 게다가 ‘밥짓기·밥하기’는 한국말사전에 없고 ‘요리(料理)’만 싣는데, 요리라는 한자말을 “음식을 만듦”으로 풀이하고 맙니다. 한국말사전부터 이러다 보니 “요리 만들기·밥 만들기·빵 만들기·과자 만들기” 같은 엉터리 말이 퍼져요. ‘밥짓기·빵짓기·과자짓기’하고 ‘밥하기·요리하기’하고 ‘빵굽기·과자굽기’를 써야 알맞습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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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404) 공功


 혁혁한 공을 세우다 → 훌륭한 일을 했다 / 훌륭히 이바지했다

 그의 공이 컸다 → 그이 힘이 컸다 / 그가 크게 이바지했다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 얼마나 많은 땀을 들였던가

 외동딸을 공을 들여 길렀다 → 외동딸을 알뜰살뜰 길렀다


  외마디 한자말 ‘공(功)’은 “1. = 공로(功勞) 2. = 공력(功力)”으로 풀이합니다. ‘공로(功勞)’는 “일을 마치거나 목적을 이루는 데 들인 노력과 수고”라 하고, ‘공력(功力)’은 “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힘”이라고 해요. 그러니, ‘功’이라고 하는 외마디 한자말은 “땀(노력과 수고)”과 “힘(정성)”을 가리킨다고 할 만합니다.


  더 헤아린다면, ‘공로’는 ‘이바지’라고 할 만합니다. ‘공력’은 ‘도움’이라고 할 만하지요. ‘공’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공을 세운다”고 할 적에는 “도움이 되었다”나 “이바지를 했다”는 뜻입니다. “공을 들인다”고 할 적에는 “땀을 쏟는다”거나 “힘을 들인다”거나 “애쓴다”는 뜻입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우리는 각각 이 귀중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날마다의 공을 들여야 한다

→ 우리는 저마다 이 알찬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힘을 들여야 한다

→ 우리는 저마다 이 훌륭한 열매를 맺게끔 날마다 힘을 쏟아야 한다

→ 우리는 저마다 이 알뜰한 열매를 맺기까지 날마다 땀을 들여야 한다

→ 우리는 저마다 이 고운 열매를 맺으려면 날마다 온힘을 다해야 한다

《엘렌 지 화잇/왕대아 옮김-가정과 건강》(시조사,1950) 머리말


무척 공을 들였겠지만

→ 무척 땀을 들였겠지만

→ 무척 품을 들였겠지만

→ 무척 사랑을 들였겠지만

→ 무척 힘을 들였겠지만

→ 무척 애를 썼겠지만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149쪽


출판사에서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 출판사에서 얼마나 품을 들이는지

→ 출판사에서 얼마나 땀을 들이는지

→ 출판사에서 얼마나 힘쓰는지

→ 출판사에서 얼마나 애쓰는지

→ 출판사에서 얼마나 땀 흘리는지

《장마르크 레비르블롱/문박엘리 옮김-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휴머니스트,2015) 7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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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7


 빵 만들기


  밥은 ‘짓’습니다. 또는 밥은 ‘합’니다. 그래서 ‘밥짓기·밥하기’ 같은 말을 씁니다. 밥은 ‘만들’지 않습니다. 옷이나 집도 ‘짓는다’고 합니다. 옷이나 집은 ‘만들’지 않아요. 그런데 요즈음 “주먹밥을 만든다”라든지 “짜장면을 만든다”라든지 “쌀로 만드는 요리”라든지 “맛있는 밥을 만들자” 같은 엉뚱한 말이 자꾸 퍼집니다.


  주먹밥을 할 적에는 “주먹밥을 뭉친다”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이미 지은 밥을 뭉쳐서 주먹밥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짜장면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짜장면은 ‘볶는다’나 ‘끓인다’고 말합니다. 또는 “짜장면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쌀로 하는 요리”나 “쌀로 짓는 요리”라 해야 올바르고, “맛있는 밥을 하자”나 “맛있는 밥을 짓자”라 해야 올발라요.


  서양에서는 예부터 ‘빵’을 먹습니다. 한겨레는 빵을 먹은 지 얼마 안 됩니다. 빵을 놓고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빵은 밥과 달리 짓거나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빵은 으레 “빵 만들기”나 “빵 만드는 법”처럼 말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빵을 만들 수 있을까요?


  조각가나 예술가가 있어서 돌이나 나무나 시멘트나 쇠붙이 따위로 뚝딱뚝딱 ‘만든다’면 “빵 모습인 조각 작품을 만든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입에 넣어 먹을 빵이라면, “빵을 굽다(빵굽기)”처럼 말해야 합니다. 빵은 굽지요. 만들지 않고 ‘굽다’라는 낱말로 나타내야지요. 과자도 빵처럼 ‘굽는다’고 해야 합니다. 공장에서 기계로 척척 찍는다면 이때에는 ‘만들다’를 쓸 테지만, 사람이 손으로 빚어서 먹는 빵을 가리킬 적에는 아무 낱말이나 쓰지 않아요. 반죽을 주물러서 예쁜 모습이 되도록 한다면 ‘빚다’라는 낱말을 써 볼 수 있습니다. 4348.9.24.나무.ㅅㄴㄹ



제빵사가 빵을 만들기 위해

→ 제빵사가 빵을 구우려고

《장마르크 레비르블롱/문박엘리 옮김-프랑스 아이의 과학 공부》(휴머니스트,2015) 9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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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9-24 09:0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빵은 굽습니다~ 요즘 동사들이 너무 무작위로 사용되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요런 현상도 영어식 표현이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영어로 짓는다를 어떻게 쓸까요. 딱히 요거다 하는 단어가 없어요~~

숲노래 2015-09-24 09:41   좋아요 0 | URL
한국말도 영어도 일본말도
모두 성격이 달라요.
그래서 영어나 일본말을 한국말에 1:1로 맞출 수 없듯이
한국말도 영어나 일본말로 1:1로 맞출 수 없어요.

낱말 하나로는 맞출 수 없고
문장으로 어떻게 쓰느냐를 놓고서
번역을 해야 할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