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68) 스스로의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한다 → 스스로 애써서 뜻을 이룬다

 스스로의 선택이다 → 스스로 고른다

 스스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다 →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다

 자기 스스로의 혁명 → 나 스스로 거듭나기


  ‘스스로’라는 한국말에 ‘-의’를 붙이는 사람이 부쩍 늘어납니다. 가만히 보면 이 말투는 “자기(自己) 자신(自身) + 의” 같은 말투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로 바꾼 말투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을 살피니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풀이합니다. ‘자기’는 “그 사람 자신”으로 풀이하고, ‘자신’은 “1. 그 사람의 몸 또는 바로 그 사람을 이르는 말 2. 다름이 아니고 앞에서 가리킨 바로 그 사람임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으로 풀이하는군요. 한국말사전은 ‘스스로’도 ‘자기’도 ‘자신’도 제대로 풀이하지 않습니다. 어설픈 겹말풀이요 돌림풀이입니다.


  ‘스스로’는 “바로 나”를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가리키지요. 그래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같은 말마디는 “스스로 애써서”로 손질할 수 있고 “바로 내가 애써서”처럼 손질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이다”도 “스스로 고른다”나 “바로 내가 고른다”로 손질할 수 있어요. 4348.10.6.불.ㅅㄴㄹ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열어 갈 것인가는

 우리 힘으로 운명을 열어 가려는가는

 우리 힘만으로 앞길을 열어 가려는가는

→ 바로 우리 힘으로 앞날을 열어 가려는가는

→ 우리 힘을 모아서 이 길을 열어 가려는가는

→ 우리 힘으로 스스로 운명을 열어 가려는가는

 우리 힘으로 당차게 새날을 열어 가려는가는

→ 우리 힘으로 슬기롭게 이 삶을 열어 가려는가는

 우리 힘으로 꿋꿋하게 새 꿈을 열어 가려는가는

《채희석-참된 삶을 위하여》(현장문학사,1989) 20쪽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의 이기심이나 욕심 같은 것을

→ 나조차도 스스로 이기심이나 욕심 따위를

→ 나조차도 나만 아는 생각이나 욕심 따위를

→ 나조차도 나만 생각하는 욕심 따위를

→ 나조차도 내 밥그릇 따위를

《조선희-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황금가지,2004) 7쪽


스스로의 독백이었기에

→ 혼자 하는 말이었기에

 혼잣말이었기에

→ 혼자서 털어놓는 말이었기에

→ 혼자 읊조리는 말이었기에

《지율-초록의 공명》(삼인,2005) 5쪽


언니들 스스로의 힘이었듯이

→ 언니들 스스로 낸 힘이었듯이

→ 언니들 스스로 보여준 힘이었듯이

→ 언니들 이었듯이

→ 바로 언니들 이었듯이

→ 무엇보다 언니들 이었듯이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살림-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살림,2005) 5쪽


다른 일을 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 다른 일을 하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다른 일을 하면서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다른 일을 하면서 스스로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다른 일을 하면서 당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박금선-내가 제일 잘한 일》(샨티,2015) 22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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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손질 366 : 피로한 엄마는 지친 목소리


 피로한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 지친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 힘든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피로(疲勞) : 과로로 정신이나 몸이 지쳐 힘듦


  한자말 ‘피로’는 “몸이 지쳐 힘듦”을 뜻합니다. 그러니, ‘피로한’ 엄마가 ‘지친’ 목소리를 낸다고 적은 글월은 겹말입니다. “지친 엄마가 지친 목소리로”처럼 적어야 옳고, 앞뒤에 다른 말을 넣고 싶다면 “힘든 엄마가 지친 목소리로”처럼 적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말사전 뜻풀이에서 ‘피로’를 “몸이 지쳐 힘듦”처럼 적을 적에도 겹말풀이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한국말사전에서 ‘지치다’를 찾아보면 “힘든 일을 하거나 어떤 일에 시달려서 기운이 빠지다”로 풀이해요. 그러니 ‘피로’라는 한자말을 굳이 쓰려 한다면 “몸이 지쳐 힘듦”이 아닌 “몸이 지침”으로만 풀이해야 올바릅니다. 4348.10.6.불.ㅅㄴㄹ



하루의 일로 몹시 피로한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 하루 일로 몹시 고단한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 하루 일로 몹시 힘겨운 엄마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에브 브리작/김경온 옮김-올가는 학교가 싫다》(비룡소,1997) 1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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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52) 아메바적


 아메바적인 광고로 얼룩지다

→ 아메바 같은 광고로 얼룩지다

→ 바보 같은 광고로 얼룩지다

 아메바적인 사고만 하는 사람

→ 얕은 생각만 하는 사람

→ 어리석은 생각만 하는 사람

→ 생각이 짧은 사람


  ‘아메바(amoeba)’는 “아메바목의 단세포 원생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메바 + 적’으로 쓰는 말투는 ‘단세포(單細胞) + 적’으로 쓰는 말투하고 같다고 할 만합니다. ‘단세포’는 ‘홑세포’를 가리키기도 할 테지만, 사회에서는 “생각이 얕거나 한 가지만 아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생각이 얕은 사람을 빗대려 한다면 ‘바보’나 ‘멍청이’나 ‘얼간이’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어리석다’나 ‘어리숙하다’나 ‘멍청하다’나 ‘바보스럽다’나 ‘터무니없다’ 같은 말을 써도 잘 어울립니다. 말 그대로 “생각이 얕다”나 “생각이 짧다”처럼 써도 됩니다. 4348.10.6.불.ㅅㄴㄹ



아메바적인 너무나 아메바적인

→ 아메바 같은 너무나 아메바 같은

→ 멍청이처럼 너무나 멍청이처럼

→ 우스꽝스레 너무나 우스꽝스레

→ 바보스럽게 너무나 바보스럽게

《이현승-생활이라는 생각》(창비,2015) 7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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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55) -의 : 상인의 출현


최초의 진전은 상인의 출현에 의해서 시작된다

→  발걸음은 장사꾼이 나타나면서 비롯한다

→ 걸음은 장사꾼이 나타나면서 떼었다

→  단추는 장사꾼이 나타나면서 꿰었다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김대웅 옮김-독일 이데올로기》(두레,2015) 106쪽


  한국말로 ‘첫’을 쓰지 않고 ‘최초(最初)’를 넣으려고 하니 ‘최초 + 의’ 꼴이 됩니다. “최초의 진전(進展)”은 “첫 발걸음”이나 “첫걸음”이나 “첫 단추”로 손질합니다. “상인(商人)의 출현(出現)에 의(依)해서”는 “장사꾼이 나타나면서”로 손보고, ‘시작(始作)된다’는 ‘비롯한다’로 손봅니다.


부엌에서는 기요의 도마질 소리가 들려온다

→ 부엌에서는 기요가 도마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문》(현암사,2015) 30쪽


  임자자리토씨를 붙여야 하는 자리에 ‘-의’를 잘못 붙였습니다. “기요‘가’ 도마질하는 소리”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벽암집》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책이었다

→ 《벽암집》이라는 어려운 이름인 책이었다

→ 《벽암집》이라는 이름으로 어려운 책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문》(현암사,2015) 30쪽


  이 글월도 토씨를 엉뚱하게 붙였습니다. “어려운 이름‘인’ 책”처럼 토씨를 붙여야 올바릅니다.


그렇게 하면 대체로 계절마다의 재배를 공부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하면 철마다 어떻게 키우는가를 얼추 배울 수 있습니다

→ 그렇게 하면 철마다 어떻게 돌보는가를 여러모로 배울 수 있습니다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임경택 옮김》(눌민,2015) 73쪽


  ‘대체(大體)로’는 ‘이럭저럭’이나 ‘웬만큼’이나 ‘여러모로’나 ‘얼추’로 손봅니다. ‘계절(季節)’은 ‘철’로 손질하고, ‘재배(栽培)’는 ‘기르기’나 ‘키우기’나 ‘돌보기’로 손질합니다. ‘공부(工夫)할’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배울’이나 ‘익힐’이나 ‘알아차릴’이나 ‘알’로 다담으면 한결 낫습니다. 4348.10.4.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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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9


 가정식백반


  ‘가정식 백반’이라는 한국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알쏭달쏭한 말이 널리 쓰입니다. 게다가 이 말이 아주 알맞거나 좋은 말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부쩍 늘어납니다. 먼저 ‘가정식’이라는 말은 한국말사전에 없는데, ‘가정(家庭) + 식(式)’이기 때문이고, 중국 한자말 짜임새입니다. ‘백반(白飯)’은 “흰밥”을 뜻하는 한자말이며, 중국에서 들어온 낱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흰밥’을 먹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흰밥은 궁중이나 부잣집에서 먹었고, 손수 흙을 가꾸어 나락을 일구던 시골사람은 ‘누런밥’을 먹었습니다. 시골사람은 쌀을 빚을 때가 아니면 겨를 함부로 벗기지 않습니다. 갓 거둔 햅쌀이라면 겨가 있는 채로 밥을 지어도 맛있습니다. 떡을 찌거나 쌀을 빚을 적에는 겉꺼풀뿐 아니라 속꺼풀도 많이 벗겨서 하얗게 되어야 다루기에 수월합니다. 이와 달리 밥을 먹을 적에는 겨만 살짝 벗길 적에 훨씬 고소하면서 맛이 나을 뿐 아니라 몸에도 도움이 되지요.


  떡을 찌거나 술을 빚는 나락은 ‘흰쌀’입니다. 밥을 끓이는 나락은 ‘누런쌀’입니다. 이때에도 ‘백미(白米)’나 ‘현미(玄米)’가 아닌 ‘흰쌀’이랑 ‘누런쌀’이에요. 그런데 ‘백미·현미’라든지 ‘백반’ 같은 낱말은 조선 양반 사회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지식인이나 관청에서 두루 썼지요. 그무렵에는 정치나 행정이나 문화나 사회 모두 ‘한자말만’ 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까지 그치지 않아서 ‘밥집’이 아닌 ‘백반집’ 같은 이름으로도 남고, 요즈음에는 ‘집밥’이 아닌 ‘가정식백반’이라는 이름으로까지 퍼집니다.


  집에서 짓는 밥은 ‘집밥’입니다. 밖에서 사먹는 밥은 ‘바깥밥’입니다. 가게에서 지어서 파는 밥은 ‘가게밥’입니다. 그런데 이런 밥을 놓고 ‘집밥·바깥밥·가게밥’ 같은 한국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고, ‘가정식백반·외식·식당밥’ 같은 말만 자꾸 퍼집니다. 4348.10.4.해.ㅅㄴㄹ



눈앞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라는 아, 이런 가정식백반 같은 충고들

→ 눈앞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라는 아, 이런 집밥 같은 도움말들

→ 눈앞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라는 아, 이런 집밥 같은 살가운 말들

→ 눈앞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라는 아, 이런 집밥 같은 포근한 말들

《이현승-생활이라는 생각》(창비,2015) 4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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