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201) -화化 201 : 장기화


 회담의 장기화 → 회담이 길어짐 / 회담을 질질 끎

 공사의 장기화 → 공사가 길어짐 / 공사가 늘어짐

 사건 수사의 장기화 → 사건 수사가 길어짐 / 늘어진 사건 수사


  ‘장기화(長期化)’는 “일이 빨리 끝나지 아니하고 오래 끌어짐”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말로는 ‘끌어지다’를 쓰면 되고, ‘길어지다’나 ‘늘어지다’를 쓸 수 있습니다. ‘오래가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잘 어울립니다. 4348.10.8.나무.ㅅㄴㄹ



보다 장기화한 휴가

→ 더 길어진 휴가

→ 더 늘어난 말미

 더 생긴 말미

《폴 트루니에/한준석 옮김-노년의 의미》(종로서적,1980) 57쪽


파업이 장기화될 것 같았다

→ 파업이 오래갈 듯했다

→ 파업이 길어질 듯했다

《이현승-생활이라는 생각》(창비,2015) 1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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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408) 윤潤


 가구에 윤을 내다 → 가구에 빛을 내다

 윤이 흐르다 → 빛이 흐르다 / 반질반질하다


  ‘윤(潤)’이라고 하는 외마디 한자말을 찾아보면 “= 윤기(潤氣)”로 풀이합니다. ‘윤기(潤氣)’는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운 기운”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반질반질’이나 ‘매끄러움’이 바로 ‘윤’인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반질반질’을 찾아보면 “거죽이 윤기가 흐르고 매우 매끄러운 모양”으로 풀이하고, ‘매끄럽다’를 찾아보면 “거침없이 저절로 밀리어 나갈 정도로 반드럽다”로 풀이해요. ‘반드럽다’는 “깔깔하지 아니하고 윤기가 나도록 매끄럽다”로 풀이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돌림풀이라 할 텐데, 가만히 살피면 ‘반질반질’이나 ‘매끄럽다’ 같은 한국말을 알맞게 쓰면 될 뿐이라는 대목을 보여준다고 할 만합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라면 “반질반질한 머리”나 “매끄러운 머리”라는 소리입니다. “묵은쌀은 끈기와 윤기가 떨어진다”는 “묵은쌀은 끈기가 없고 반질반질하지 않다”나 “묵은쌀은 끈기가 없고 매끄럽지 않다”는 소리예요. “피부에 윤기가 있다”는 “살갗이 반질반질하다”나 “살갗이 매끄럽다”는 소리이지요.


  ‘반질반질’하고 ‘번질번질’을 쓸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반들반들·번들번들’을 쓸 수 있고, ‘반짝반짝·번쩍번쩍’을 쓸 수 있어요.


  일본말사전을 살피면, ‘潤’을 “윤기가 있다, 광택을 내다, 훌륭하게 하다” 같은 자리에 쓴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윤·윤기’는 일본 한자말이 스며들면서 쓰임새가 퍼졌다고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4348.10.8.나무.ㅅㄴㄹ



윤이 날 때까지

→ 빛이 날 때까지

→ 반들반들할 때까지

 반들거릴 때까지

→ 반짝반짝할 때까지

→ 반짝거릴 때까지

《리타 페르스휘르/유혜자 옮김-아빠의 만세발가락》(두레아이들,2007) 31쪽


번쩍번쩍 윤이 나는 검은색 자동차

→ 번쩍번쩍 빛이 나는 검은 자동차

→ 번쩍번쩍거리는 검은 자동차

《매튜 클라크 스미스/홍수원 옮김-파브르 이야기》(두레아이들,2015) 9쪽


의자 구실을 하여 윤이 번지르르하게 났다

→ 걸상 구실을 하여 빛이 번지르르하게 났다

→ 걸상 구실을 하여 번지르르하게 빛났다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창비,2015) 35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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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697) 우선적 (于先的 / 優先的)


 우선 집에 가고 보자

→ 먼저 집에 가고 보자

→ 무엇보다 집에 가고 보자

→ 어쨌든 집에 가고 보자

 우선 이거라도 먹으렴

→ 먼저 이거라도 먹으렴

→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먹으렴

→ 배고플 테지만 이거라도 먹으렴


  ‘우선(于先)’이라는 한자말은 “1. 어떤 일에 앞서서. ‘먼저’로 순화 2. 아쉬운 대로”를 뜻한다고 하며, ‘우선적(于先的)’이라는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한자말은 ‘먼저’라는 한국말로 바로잡아야 옳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사전에는 ‘우선적(優先的)’이라고 해서 한자를 달리 적는 낱말이 나옵니다. “딴 것에 앞서 특별하게 대우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선적 해결 과제 → 한발 앞서 풀 일 / 앞서서 풀 일

 주민 우선적 태도 → 주민을 더 섬기는 몸짓 / 주민이 먼저라는 몸짓


  다른 것에 앞서 남다르게 섬기는 모습이나 몸짓을 가리킨다는 ‘우선적(優先的)’은 얼마나 쓸 만할까요? 굳이 이런 말을 써야 할까요? 한국말사전에는 “낙후된 마을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나 “공사가 끝나면 소작논을 우선적으로 배당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이 글월은 “뒤떨어진 마을을 먼저 도우려 한다”나 “공사가 끝나면 소작논부터 나누어 준다고 한다”로 손질할 만합니다. “앞서서 남달리 섬기는”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면 ‘더’를 넣어서 “더 먼저”처럼 쓸 수 있습니다. 또는 “맨 먼저”라 할 수 있을 테지요. 4348.10.7.물.ㅅㄴㄹ



물질순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 물질순환 특징을 무엇보다도 알아보아야 한다

→ 물질순환을 다른 무엇보다 먼저 살펴야 한다

→ 물질순환이 무엇인지를 맨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무라카미 데쓰오,사이죠 야쓰카,오쿠다 세쓰오-하구둑의 환경영향》(한국해양연구원,2003) 28쪽


종합일간지를 표방했지만 우선적으로 정치와 사회에 집중했다

→ 종합일간지를 내세웠지만 먼저 정치와 사회에 힘을 모았다

→ 종합일간지라 했지만 정치와 사회 기사를 더 많이 다루었다

→ 종합일간지를 내세웠지만 무엇보다 정치와 사회에 힘을 쏟았다

→ 종합일간지라 밝혔지만 다른 얘기보다 정치와 사회 얘기를 많이 실었다

《오연호-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2004) 58쪽


먼저 보기만 해. 그러면 그 애한테 뭐가 우선적으로 필요한지 알게 될 거야

→ 먼저 보기만 해. 그러면 그 애한테 뭐가 먼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있어

→ 먼저 보기만 해. 그러면 그 애한테 무엇보다 뭐가 있어야 하는지 알아

→ 먼저 보기만 해. 그러면 그 애한테 맨 먼저 뭐가 있어야 하는지 알아

《블라지미르 메그레/한병석 옮김-사랑의 공간》(한글샘,2007) 136쪽


하지만 우선적으로 자기 치유에 힘써야 하며

→ 그러나 맨 먼저 자기 치유에 힘써야 하며

→ 그러나 어느 일보다 스스로 치유하기에 힘써야 하며

→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다스리도록 힘써야 하며

→ 그러나 누구보다 스스로 돌보아야 하며

《혜별-애니멀 레이키》(샨티,2014)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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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9] 밭흙·논흙·숲흙


  밭이나 논은 흙으로 이루어집니다. 흙이 있어야 밭이나 논을 가꿉니다. 숲도 흙으로 이루어집니다. 숲에 흙이 없으면 나무나 풀은 자랄 수 없습니다. 흙이 없을 적에는 아무것도 못 삽니다. 사람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 수 있는 까닭도 흙이 있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밥을 얻고, 흙에서 집을 짓는 바탕을 얻으며, 흙에서 잘 자란 나무를 베어서 살림살이를 가꾸고 불을 지펴요. 흙이 있기에 풀과 함께 풀벌레가 있어요. 흙이 있으니 새도 풀밭이나 숲에 보금자리를 틀어요. 흙을 살피고 읽으며 헤아릴 줄 알아야 삶을 짓고 가꾸며 보살필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을 들추니 ‘논흙’하고 ‘개흙’이라는 낱말은 올림말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밭흙’이라는 낱말은 없어요. 오늘날은 누구나 도시에서 사느라 밭을 살피지 않기 때문일까요. ‘숲흙’이라는 낱말도 한국말사전에는 없어요. 가만히 생각하면 논흙이나 밭흙이나 숲흙은 모두 달라요. 개흙도 다르지요. 사람 손길을 타지 않는 숲에서 저절로 가랑잎이 쌓이고 벌레와 짐승이 죽고 나면서 태어나는 흙은 까무잡잡하면서 폭신합니다. 비료와 농약과 비닐을 머금은 흙은 누렇거나 허여면서 딱딱합니다. 거름을 잘 머금은 흙도 빛깔이 다르고, 풀이 잘 자란 곳도 흙빛이 사뭇 달라요. 사람이 흙에 두 발을 딛고 사는 줄 깨달으면서 흙하고 얽힌 말을 슬기롭게 바라본다면 삶을 곱게 다스리는 길에 눈을 뜰 수 있지 싶습니다. 4348.10.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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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80 네, 아니오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 하면, 내가 여기에 있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있고 싶을까요. 내가 여기에 있을 적에 내 마음이 가장 너그럽고 포근하면서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기 말고 다른 데에 있을 적에는 어떠할까요. 다른 데에서는 안 너그럽고 안 포근하며 안 기쁠까요? 다른 데에서도 너그럽거나 포근하거나 기쁠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내가 가장 너그럽거나 포근하거나 기쁜 곳에 깃듭니다. 잠을 자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내 보금자리는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곳에 짓습니다.


  이것을 하느냐 저것을 하느냐 하고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고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과 저것’은 어느 것이 되든 ‘고르기’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어느 하나를 고르는 길이 아닙니다. 삶은 ‘네·아니오’ 가운데 하나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가야 할 길로 가느냐 하고 스스로 묻고는 ‘네’라면 그 길로 가고, ‘아니오’라면 그 길로 안 갑니다. ‘네·아니오’는 ‘이것·저것’이 아닙니다. ‘이것·저것’은 양비론이거나 이원론이거나 이분법입니다. 삶은 둘로 가르지 않습니다. 삶은 언제나 오직 삶입니다.


  그런데 삶은 ‘한 가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삶은 ‘둘’로 가르지 않는 길이지만, ‘하나’로 뭉뚱그리는 길도 아닙니다. 삶은 늘 삶입니다. 삶은 늘 ‘삶’ 그대로 꽃피우는 길입니다.


  삶은 참말 늘 삶일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있거나 저런 사랑이 있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사랑을 다 다르게 느껴서 받아들이거나 나누지만, 다 다르게 느껴서 받아들이거나 나누는 사랑은 언제나 ‘사랑’으로 나아갈 때에 참다운 사랑이요, 사랑으로 가지 않고 ‘이런 사랑’이나 ‘저런 사랑’이 된다면, 이때에는 거짓 사랑입니다. 사랑이기에 사랑이고, 사랑은 사랑 아닌 다른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운 사랑’이나 ‘고운 사랑’은 없습니다. ‘더 나은 사랑’이나 ‘작은 사랑’이나 ‘큰 사랑’이나 ‘모자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은 그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것’이나 ‘저것’으로 나누거나 가르지 못해요. 책은 언제나 책일 뿐이에요. 좋은 책이 없고, 나쁜 책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사진은 언제나 사진일 뿐이지요. 좋은 사진이나 나쁜 사진이 따로 없습니다.


  꿈은 늘 꿈입니다. 꿈은 내가 이루려고 하는 꿈일 뿐입니다. 꿈도 삶과 사랑처럼 ‘그 결 그대로’라고 말할 뿐이면서도 다른 것이 되지 않습니다. 뭉뚱그릴 수 있는 꿈이 아니라, 꿈도 늘 그저 꿈입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은 큰 꿈도 작은 꿈도 아닙니다. 낡은 꿈도 새로운 꿈도 아닙니다. 어리석은 꿈도 놀라운 꿈도 아닙니다. 그저 꿈으로 나아가고, 그예 꿈으로 가꾸며, 그대로 꿈이 되도록 이룹니다.


  이리하여, 나는 늘 ‘네’나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내가 하려는 일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이루려는 꿈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스스로 길어올려서 나누려는 사랑인가 하고 묻습니다. 내가 날마다 아침에 새로 열어서 지으려는 삶인가 하고 묻습니다. 나는 ‘네’라고 스스로 말할 만한 길을 걷습니다. 나는 ‘아니오’라고 스스로 말할 만한 길은 안 갑니다. ‘아니오’만 자꾸 나온다면, 내가 갈 길을 새롭게 생각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사이에서 고르지 않습니다. ‘네’라고 말할 만하기에 씩씩하고 즐겁게 노래하면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 ‘네’라고 당차게 외치면서 기쁘고 아름답게 춤추면서 걸어갈 길을 생각합니다.


  삶이 되고 사랑이 되며 꿈이 될 길을 생각합니다. 삶으로 이루고 사랑으로 이루며 꿈으로 이룰 길을 걷습니다. 삶으로 나누고 사랑으로 나누며 꿈으로 나눌 이야기를 짓습니다. 나는 바로 오늘 여기에 있으면서 내 삶을 짓고, 이야기를 지으며, 생각을 짓습니다. 4348.3.23.달.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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