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오월광주 (2022.5.16.)

― 광주 〈일신서점〉



  어느새 ‘오월광주’란 넉 글씨는 한 낱말로 뿌리내린 듯합니다. 해마다 오월이면 전남 광주는 길을 막고서 여러 잔치를 벌입니다. 그래요, ‘잔치’를 벌입니다. ‘고요히 기리는 자리’가 아니라 왁자지껄한 잔치판입니다. 2022년 5월 18일을 앞두고 광주로 바깥일을 보러 가는 김에 헌책집 〈일신서점〉에 들릅니다. 저는 광주책집을 자주 드나들지는 않습니다만, 광주에서 책집마실을 하며 다른 책손을 스치거나 만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누가 오월광주를 묻는다면, 전남사람으로서 “왁자판을 꺼리며 이름을 감추고 들풀로 가만히 지내는 사람이 한쪽이라면, 왁자판을 벌이고 왁자지껄하게 나서는 사람이 한쪽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몸이 다치는 바람에 귀가 먹어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는 〈일신서점〉 할배는 구부정한 몸이어도 꾸준히 새 헌책을 추스르고, 언제 찾아들는지 알 길이 없는 책손을 기다립니다. “내가 이제 내년이면 구십이오. 올해로 책장사를 51년 했소. 광주고 옆에서 헌책방을 하는 〈광일서점〉이 나보다 딱 5∼6년 늦어. 나도 젊었을 적에는 무등산에 맨발로 오르고 얼음물에도 들어갔네만.”


  오월 햇볕은 아주 여름볕입니다. 이 후끈한 날에 길거리에서 입가리개를 꿋꿋이 쓴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나라가 시키야 움직인다면 종(노예)입니다. 가게에서 먹을 적에는 가리개를 벗다가, 햇볕이 후끈거리는 길거리에서는 가리개를 쓰는 몸짓이 두동진 줄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말을 안 한다면, 우리는 모두 생각을 잊거나 잃은 종살이인 셈입니다.


  남이 내주는 홀가분(자유)은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빛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길, 곧 ‘나사랑 = 홀가분(자유)’입니다. 참다운 오월넋이라면 겉치레를 감추는 모든 울타리를 걷어내는 들풀물결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시켜야 읽는 책이라면 아예 안 읽는 쪽이 낫습니다. 책읽기도, 삶읽기도, 나라읽기(정치·사회읽기)도, 마음읽기도, 사랑읽기도, 언제나 스스로 눈망울을 빛내는 길일 노릇입니다.


  앞으로는 스스로 마음을 읽고 사랑하는 길로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늘까요? 마을빛을 북돋우는 징검다리 노릇을 쉰 해 남짓 이은 작은책집을 눈여겨보는 발걸음이 새롭게 깨어날 수 있을까요? 겉에 먼지가 묻거나 긁혀도 책입니다. 사납빼기가 북북 찢더라도 책에 깃든 이야기는 안 찢깁니다. 어떤 총칼도 사랑을 건드리거나 더럽히지 못 합니다. 오직 우리 생각이 마음을 건드리고, 우리 마음이 사랑을 움직입니다. 사랑이란 마음으로 사랑을 생각하며 쥐는 책일 적에 아름답습니다.


ㅅㄴㄹ


《民俗學辭典》(民俗學硏究所 엮음, 東京堂出版, 1951.1.31.첫/1980.6.20.55벌)

《民衆과 民族》(송건호, 명진사, 1979.10.15.)

《湖巖自傳》(이병철, 중앙일보사, 1986.2.12.)

《創業》(중앙일보 경제문제연구소, 중앙일보사, 1986.6.20.첫/1988.5.4.4벌)

《鄕土서울 50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엮음, 서울특별시, 1991.2.15.)

《머리를 좋게하는 두뇌개발 백과》(이기한, 새로운문화사, 1979.12.25.)

《己未를 알자》(이일구, 무림사, 1979.5.1.)

《즐거운 가정요리》(하명희·정미나, 식생활연구회, 1997.3.)

《내 고장 鄕土飮食》(관광과 엮음, 전라남도, 1987.5.)

《新藥의 副作用과 處方》(편집부 엮음, 한샘문화사, 1974.1.25.첫/1974.2.7.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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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밥 (2022.7.1.)

― 서울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어제는 내내 구름바다에 함박비가 쏟아지던 하늘인데, 오늘은 파랗게 열립니다. 이 멋진 여름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누구나 튼튼합니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들꽃은 꽃송이가 짙다지만, 해를 못 먹는 들꽃은 시들시들하고, 해를 못 받는 나무는 열매를 거의 못 냅니다. 사람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해가 쨍쨍 날 적에는 되도록 가볍거나 짧거나 단출히 입고서 해를 쬘 노릇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늘 여름이라고 하지만, 으레 웃통을 벗고 아랫도리만 살짝 걸칠 뿐입니다. 온몸으로 해를 듬뿍 먹어요. 우리 겨레도 지난날에는 ‘흙을 일구며 살던 사람’은 가벼운 차림새였습니다. 지난날 시골아이는 천조각을 아예 몸에 안 걸치고 해바라기로 빗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뛰놀았습니다.


  땡볕을 실컷 받고 걸으며 돌아보는데, 입가리개를 걷어치우거나 여름볕에 살갗을 내놓는 서울사람이 얼마 안 됩니다. 하나같이 그늘에 있으려 하고 해를 꺼립니다. 해바람비가 몸을 살리는 줄 못 느끼는구나 싶고, 해바람비가 몸을 어떻게 살리는지를 배운 적이 없을 수 있겠구나 싶어요.


  요즈음은 풀밥(채식·비건)을 한다는 분이 부쩍 느는데, 거의 서울사람(도시인)입니다. 풀밥살림은 안 나쁩니다만, 가게에서 풀을 사다가 먹을 적에는 곰곰이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친환경·유기농 채소’는 거의 비닐집에서 키웁니다. ‘관행농 채소’는 거의 맨땅에서 키웁니다. 이름은 ‘친환경·유기농’이지만 비닐집에서 꼭짓물(수돗물)만 먹기 일쑤요, ‘관행농’은 풀죽임물(농약)에 죽음거름(화학비료)을 잔뜩 머금지만 해바람비를 쐽니다.


  둘 다 살림풀하고는 먼 셈인데, 해바람비를 못 받은 ‘비닐집 꼭짓물 푸성귀’가 참답게 사람한테 이바지할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푸성귀를 새삼스레 비닐자루에 담아 ‘형광등 불빛’이 내리쬐는 시렁에 놓는걸요.


  아침 일찍 〈책이는 당나귀(책이당)〉 앞에 닿습니다. 책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이니, 바깥책(외국도서)을 우리말로 옮기는 ‘나귀’ 님도 일찍 책집 앞으로 옵니다. 열 몇 해 만에 얼굴을 보면서 책수다를 누립니다. 담배·아야후아스카 이야기도 우리말로 옮긴 ‘나귀’ 님이 ‘입가리개·미리맞기(백신)’하고 얽힌 민낯을 다룬 이웃글(외국 자료)을 우리말로 옮기도록 북돋울 펴냄터가 있기를 빕니다.


  서울 시내버스 504를 타 봅니다. 장승배기나루를 지나며 보니, 〈문화서점〉은 잘 있구나 싶습니다. 동작구청 건너에 있는 〈책방 진호〉는 저녁 다섯 시 무렵 연다는 알림글이 붙는데, 책시렁이 많이 비었습니다. 빈 책시렁은 쓸쓸합니다.


ㅅㄴㄹ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시몬 비젠탈/박중서 옮김, 뜨인돌, 2005.8.10.첫/2019.10.30.고침)

《노래하는 복희》(김복희, 봄날의책, 20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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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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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 (2022.6.30.)

― 서울 〈콕콕콕〉



  인천으로 가려고 고흥서 안산버스나루로 달렸고, 〈딴뚬꽌뚬〉을 들르고서 서울로 전철을 달리는데, 오늘 서울 볼일이 사라집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오류동에 있는 그림책집 〈콕콕콕〉을 가 보려고 합니다. 함박비가 쏟아집니다. 인천에서는 썩 굵지 않은 빗줄기였으나, 전철을 내려 걷자니 후두둑 시원스럽습니다.


  함박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은 혼자입니다. 서울에서 맨몸으로 빗물을 누리는 사람은 없을 만하지요. 서울이기에 오히려 빗물을 맞으면서 몸도 마음도 바다빛을 품으면서 씻을 만한데요. 모든 빗물은 바다에서 옵니다. 맑고 드넓은 바닷방울이 빗방울로 겉모습을 바꾸니, 빗물은 매우 싱그럽습니다.


  그나저나, 책집은 일찍 닫으신 듯합니다. 빗길에 쓴 노래꽃(동시) ‘프리다 칼로’를 문고리에 걸어 놓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려다가, 찰칵 찍어 책집지기님한테 띄웁니다. 디딤칸에 앉아 숨을 돌립니다. 빗물에 젖지 않도록 등짐을 다시 여미고, 길손집으로 일찍 가서 빨래를 하고 누울 생각을 하며 빗길을 걷는데 책집지기님이 기꺼이 다시 나와 주신다고 알립니다. 책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림책집 〈콕콕콕〉은 이 이름처럼 콕콕콕 내리는 빗물처럼 북새판 서울 한켠에서 차분히 다독이는 자리라고 느낍니다. 저마다 나아가는 길을 짚고, 스스로 피어나는 길을 돌아보고, 새롭게 자라나는 길을 생각합니다. 걸상에 앉아 빙그르르 둘러보노라면 문득문득 이 그림책하고 저 그림책이 고개를 내밉니다. 이미 읽은 그림책도, 앞으로 읽을 그림책도, 오늘 만날 그림책도, 나중에 다시 볼 그림책도, 새록새록 헤아립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줄 몰랐을 적에는 그냥그냥 빽빽하고 매캐하고 복닥거리는 서울 어느 곳입니다. 마을책집에 한 발짝 들어서고서 다리를 쉬고 눈망울을 밝힌 뒤로는 한여름에 눈꽃송이를 그리고 한겨울에 들꽃잔치를 떠올리는 이야기터입니다.


  다시 함박비를 맞으며 걷습니다. 의왕에서 서울마실을 온 이웃님을 만나 두런두런 어울립니다. 밤이 깊을 즈음 길손집에 들어서서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다리가 퉁퉁 붓습니다. 등짐살림을 다 꺼내어 바람을 쏘이고서 빨래를 합니다. 이튿날은 맑게 갠 하늘빛을 누리며 걸으리라 어림하며 꿈나라로 갑니다.


  어릴 적부터 숲빛이나 시골빛이나 바다빛을 품고 자라나는 어린이가 그림을 사랑한다면, ‘엘사 베스코브’ 님이나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나 ‘바바라 쿠니’ 님이나 ‘이와사키 치히로’ 님처럼 사랑으로 짙푸른 그림책을 선보일 새내기를 만날 수 있겠지요. 요새는 가뭇없이 사라진 듯한 그림책밭 앞길을 그려 봅니다.


ㅅㄴㄹ


《내가 예쁘다고?》(황인찬 글·이명애 그림, 봄볕, 2022.6.1.)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문학동네, 2022.6.8.)

《가슴이 콕콕》(하세가와 슈헤이/김숙 옮김, 북뱅크, 2017.11.15.)

《탑의 노래》(명수정, 글로연, 2022.2.11.)

《심장 소리》(정진호, 위즈덤하우스, 2022.3.15.)

《우리말 동시 사전》(숲노래·사름벼리·최종규, 스토리닷, 2019.1.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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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꽃 피다 (2022.7.19.)

― 연천 〈오늘과 내일〉



  엊저녁은 부천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오늘은 벼르던 연천마실을 합니다. 길그림으로 보면 양주나 포천보다 북녘으로 더 들어가는 길인데, 막상 전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서 다른 전철로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다시 갈아타고서 버스까지 갈아타고서 〈오늘과 내일〉이 깃든 마을로 가고 보니, 다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군요. 부릉이로 슥 달리면 이만큼 안 들 테지만, 이 전철 저 전철에 버스로 갈아타고, 또 기다리는 틈을 살피니 만만찮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 전철을 갈아타면서 여러 전철을 구경하고 여러 마을을 돌아볼 뿐더러, 서거나 걸상에 앉아 하루쓰기에 글쓰기에 노래쓰기를 합니다. 길에서 한참 보내는 만큼 책을 석 자락 읽습니다. 부릉이를 몬다면 훨씬 빨리 책집에 닿을 테지만 책을 못 읽을 테고 글을 못 쓸 테지요.


  연천 시골버스는 38선을 가로지르고, 싸움터(군대) 옆 ‘다방·이발소’를 스칩니다. 오래된 이곳을 드나드는 싸울아비(군인)는 얼마나 될까요? 지난날 ‘싸움터 옆 가게’는 ‘노닥집(유흥업소)’이었습니다. 이제 오랜 ‘다방’이며 마을가게 앞에는 꽃그릇이 줄지어 해바라기를 합니다.


  연천이나 철원·양구·고성은 남녘으로서는 가장 북쪽이요, 북녘으로서는 가장 남쪽인, 이 땅으로 놓고 본다면 한복판인 터전입니다. 둘로 갈린 나라가 맞닿는(접경지대) 곳에 깃든 책집을 찾아가는 길에 흰도라지꽃·무궁화·나리꽃·애기똥풀꽃처럼 한여름꽃을 만납니다.


  흔히들 여름에 무슨 꽃이냐고 하지만, 나락꽃도 팔월에 이르러야 피고, 늦여름에는 까마중꽃에 부추꽃이 한창인걸요. 다 다른 철마다 다 다르게 꽃이 피고, 다 다르게 흐르는 바람은 다 다르게 속삭이는 노래로 골골샅샅 스밉니다.


  전남 고흥부터 경기 연천까지는 멀다면 멀 테지만, 거꾸로 연천서 고흥이라는 길도 멀 테지요. 그러나 동글동글 돌아가는 푸른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마주한다면 늘 마음으로 만날 테니 썩 먼발치는 아니라고 느껴요.


  총으로 노려보며 가시울타리를 세운다고 해서 마음이 막히지 않습니다. 눈빛을 틔우지 않기에 스스로 갇힙니다. 손을 뻗으면 닿는 자리라서 ‘곁’이나 ‘옆’이 아니에요. 마음이 흐르면서 포근히 어루만질 수 있는 눈망울로 서로 바라보는 자리이기에 곁이나 옆입니다. 여름에 어떤 여름꽃을 곁에 두나요? 가을에 어떤 가을빛을 나란히 놓나요? 마음에 어떤 책을 품으려는 사랑인가요? 허울을 걷어내고 겉치레를 씻어내어 오롯이 마음을 밝히는 넋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되살리기의 예술》(다이애나 애실/이은선 옮김, 아를, 2021.7.8.)

《동네에서 만난 새》(이치니치 잇슈/전선영 옮김, 가지, 2022.2.1.)

《도시를 바꾸는 새》(티모시 비틀리/김숲 옮김, 원더박스, 2022.1.5.)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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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지기 자리 (2022.8.24.)

― 순천 〈책방 심다〉



  서울·부천·인천을 돌며 편 이야기꽃을 마치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이제 쉼철(휴가시즌)은 거의 끝이라지만, 서울서 고흥 돌아가는 시외버스는 빽빽합니다. 어찌할까 하다가 영등포로 전철을 타고 가서 기차로 순천으로 달립니다. 느릿느릿 기차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눈을 붙입니다.


  한낮에 순천에 닿습니다. 오랜 길손집이 늘어선 골목을 걸으며 〈책방 심다〉로 갑니다. 오랜 길손집은 바깥담에 번쩍이는 불빛을 달지 않습니다. 길가에 꽃그릇을 놓거나 들꽃이나 넝쿨이 자라도록 담을 내어줍니다.


  골목마을은 골목집이 서로 햇볕을 나누어요. 몇몇 집만 해를 차지하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자그마한 빈터에 꽃씨를 심거나 나무를 가꾸지요. 이와 달리 높다랗게 솟는 잿빛터(아파트단지)는 서로 해를 나누지 않아요. 따로 쉼터를 꾸미면서 꽃뜰을 가꾸기는 하되, 마을사람이 손수 꽃뜰지기 노릇을 하지는 않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집은 마을 빈터에 들꽃이 자라도록 북돋우고 들빛을 나누려는 골목집하고 닮습니다. 더 높거나 이름난 책보다는, 마을살림을 헤아리는 책을 조촐히 건사하지요. 마을마다 옹기종기 꽃뜰이 있으면 나긋나긋 싱그러이 풀빛을 나눕니다. 마을마다 마을책집이 있으면 느긋느긋 즐거이 책빛을 나눌 테지요.


  나라에서는 고을마다 배움터(학교)를 세워서 우리가 배울 이야기를 차근차근 폅니다. 아이들은 배움터를 다니거나 스스로 책을 찾아 읽거나 어른 곁에서 함께 살림을 돌보면서 삶을 돌아보고 익혀요. 빌려서 읽는 책을 건사하는 책숲(도서관)은 여러 갈래 책으로 길잡이 노릇입니다. 사들여서 읽을 책을 펼치는 책집은 스스로 눈길을 밝혀서 오늘을 새롭게 헤아리도록 북돋우는 길동무 구실입니다.


  책숲만으로는 책밭을 넓게 가꾸지 못 해요. 새로 나오는 책뿐 아니라, 오랜 아름책을 알아보고 알리는 책일꾼은 바로 책집지기예요. 책숲지기(도서관 사서)는 마을사람이 책을 넓고 깊이 읽고 생각하도록 돕는 몫이라면, 책집지기(책방 운영자)는 마을사람이 스스로 사랑을 가꾸는 길에 동무이면서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오늘 〈책방 심다〉에는 최원형 님이 마실을 왔습니다. 순천 언저리로 이야기마실(강연여행)을 오신 듯합니다. ‘생태·환경’ 이야기를 글이며 말로 꾸준히 펴시는데, 앞으로는 ‘숲·시골’ 이야기를 펴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낱말이 다르면 삶도 눈길도 이야기도 달라요. ‘생태·환경’이란 일본스런 한자말에 머물면 ‘서울에서 보는 눈’에서 맴돕니다. ‘숲·시골’이란 수수하고 쉬운 우리말을 쓸 적에는 비로소 ‘시골 어린이 눈’으로 온누리하고 별누리를 바라볼 수 있어요.


ㅅㄴㄹ


《주업은 농사 부업은 의사》(손세호, 심다, 2021.8.15.)

《14마리의 빨래하기》(이와무라 카즈오/박지석 옮김, 진선아이, 2022.7.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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