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메뚜기 이웃 (2022.8.6.)

― 대전 〈우분투북스〉



  집안살림은 집안을 돌보아야 스스로 익힙니다. 책집살림은 책집을 꾸려 보아야 스스로 배웁니다. 석 달, 여섯 달, 한 해, 세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쉰 해, 이처럼 차근차근 나아가는 살림길입니다. 첫 석 달을 지내면 다음 석 달을 버티며 새롭게 배우고, 이다음에는 한 해를 살아내는 길을 바라보고는, 세 해를 일구는 숨결을 헤아리다가, 다섯 해를 거쳐 열 해를 이루는 살림꽃을 피울 만하다지요. 열 해를 살아내면 스무 해를 고즈넉이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서른 해 무렵 고빗사위에 이르고, 이 고개를 넘으면 쉰 해를 부드러이 살아내면서 사랑이 무르익어 열매를 맺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집살림 이야기는 숱한 책집지기가 이야기로 매무새로 책시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버이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살림빛을 가꾸듯, 작은 책벌레는 온나라 마을책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책살림길하고 맞닿는 온살림빛’을 시나브로 배웠습니다.


  우리말은 ‘빛’하고 ‘빛깔’입니다. 한자말 ‘색(色)’을 써도 나쁘지 않지만, ‘빛’하고 ‘빛깔’이 뭐가 다른지, 또 ‘빛살’하고 ‘빛발’하고 ‘빛줄기’는 무엇인지, ‘빛’에 차근차근 여러 말을 붙여 보면 생각을 넓힐 만합니다.


  대전 〈우분투북스〉를 찾아갑니다. 알을 잔뜩 품어 곧 낳을 무렵인데 그만 사람하고 자전거한테 밟혀서 죽은 안쓰러운 메뚜기를 봅니다. 어쩌다 이렇게 밟히고 또 밟혔을까요. 새로 깨어나지 못 한 메뚜기알은 어미 배에 깃든 채 길바닥에 아주 납작하게 으스러졌습니다.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고 지나갔습니다. 한참 가다가 돌아섰습니다. 납작하게 이 땅을 떠난 메뚜기 주검 곁에 쪼그려앉습니다. “몸을 내려놓으면서 아픔은 사라졌어. 비록 새끼 메뚜기가 태어나지는 못 했지만, 네 사랑은 이 고을에 남는단다. 부디 너그럽고 넉넉하게 바람빛으로 날아다니렴.” 하고 속삭이고는 풀밭으로 메뚜기 주검을 옮깁니다.


  저마다 즐겁게 온마음으로 하루를 짓는 손길로 아이 곁에 서기에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으로서 노래하는 하루이기에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곁에 달라붙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걷다가 읽다가 쓰다가 밥짓다가 빨래하다가 잠들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른인가? 나는 어른으로 가는 길인가?’ 〈우분투북스〉에서 땀을 식히면서 책을 고릅니다. 고른 책을 셈합니다. 셈한 책을 등짐에 담습니다. 서울로 갈 칙폭이를 타러 부지런히 달립니다.


ㅅㄴㄹ


《월간 옥이네 61호》(박누리 엮음, 월간 옥이네, 2022.7.5.)

《우리는 군겐도에 삽니다》(마츠바 토미/김민정 옮김, 단추, 2019.3.25.)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이연희, 봄날의책, 2022.3.21.첫/2022.4.21.2벌)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제임스 베리 글·안나 쿠냐 그림/김지은 옮김, 나는별, 2021.11.27.)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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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쉼터 (2022.7.27.)

― 인천 〈호미사진관 서점안착〉



  땀을 뻘뻘 흘리는 한여름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틈틈이 씻고 바람을 쐽니다. 여름이니 땀을 흘리고, 이 땀을 물로 씻고, 씻은 물은 바다로 흘러들고, 바다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에 서린 기운을 느껴 아지랑이로 바뀌더니, 새삼스레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서 구름을 이루고, 이윽고 온누리를 훨훨 날다가 들숲마을로 사뿐히 내려앉는 빗방울로 찾아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건 물줄기로 몸을 씻건, 이 물방울이 푸른별을 고루 도는 하루를 되새깁니다.


  책짐을 이고 진 채 새로 책집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은 시골과 다른 까만길(아스팔트 도로)을 적시느라 흙으로 스미지 못 하지만, 바퀴에 밟히다가도 새록새록 하늘로 오르는 아지랑이로 바뀌어 비구름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이제 인천지하철을 내려 걸어갑니다. 인천 서구 안골목에 담배꽁초가 많습니다. 고흥도 읍내나 면소재지 길바닥에 담배꽁초가 허벌납니다. 꽁초든 빈 깡통이든 어른부터 마구 버리고, 아이들은 ‘볼꼴사나운 어른 몸짓’을 늘 느끼면서 어느새 이 몸짓을 따라합니다. 어린쉼터가 없는 이 나라에는 어른쉼터도 없습니다. 푸른쉼터도 없어요. 작은 마을책집은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땀을 훔치고 언손을 녹이는 조촐한 쉼터 노릇인 책터라고 여깁니다.


  책집 〈서점 안착〉에 닿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다가가는 손길은 내려앉는(안착) 손길로 잇고, 옆자락 책을 다독이는 손빛으로 뻗고, 손끝으로 퍼지는 줄거리는 마음으로 감겨들면서 문득 이야기씨앗으로 자랍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우리말 ‘베껴쓰기’는 “남이 써 놓은 글을 그대로 따라가는 길”입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배워쓰기’라 하면 “남이 일군 열매를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가꾸어 받아들이는 길”을 열 만합니다.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베껴쓰기(필사)를 해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아직 덜 아름답거나 안 훌륭하더’라도, 우리 오늘 하루를 투박한 손길로 누구나 스스럼없이 ‘새로쓰기’를 하기를 바라요. 이름나야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적는 글이기에 즐겁습니다. 잘팔려야 훌륭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걷는 오늘이기에 반갑습니다.


  책집을 새로 들를 적마다 등짐 무게를 더합니다. 묵직묵직 책짐을 지고서 걷다가 생각합니다. 걸어다니며 담배 태우는 아저씨·할배는 뭘까요? 이분들은 스스로 이녁 마을을 안 쳐다보기에 안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눈빛으로 우리 마을을 바라볼 적에 저마다 이 마을길을 가꿀 사랑씨앗을 심으리라 봅니다.


ㅅㄴㄹ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기사님 글, 서혜미 엮음, 2020.3.2.)

《두 아이와》(김태완, 다행하다, 2022.1.10.)

《이런 시베리아》(앵서연, 2020.9.8.)

《HOMIE》(미적미, 서점안착, 2020.6.7.)

《인천책지도》(퍼니플랜 엮음, 인천광역시, 2019.9.9.)

《COMMA 46 Dive》(강지원 엮음, COMMA, 202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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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빛 (2022.12.20.)

― 부산 〈파도책방〉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적잖은 사람들은 인천을 느긋이 바라볼 겨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요새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거친 인천 배움터(학교) 열두 해에 걸쳐 ‘인천사랑’을 들려주거나 밝힌 길잡이(교사)는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모두 스스로 “난 인생 낙오자라서, 여기 구닥다리 인천 막장 같은 데에서 교사를 한다구!” 하면서 우리를 두들겨패기 일쑤였습니다. 1982∼1993년 사이에 온몸으로 겪은 일입니다.


  서울살이(in Seoul)를 하려다 쓴맛을 보거나 나뒹군 분들이 인천 기스락으로 들어와서 ‘문화·예술·학술 우두머리’를 꽤 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는 길잡이(교수) 자리를 못 얻고 ‘인천에 있는 대학교’에서 길잡이 자리를 얻고서 우쭐거리는 분을 숱하게 보았어요. 이런 분들을 스칠 적마다 딱하더군요.


  그런데 부산 동무를 사귀고 부산 이웃을 하나둘 만난 지난 서른 몇 해 동안 부산사람도 인천사람 못잖게 ‘서울바라기’가 많고, ‘서울로 안 가고 부산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온몸으로 겪는 가시밭길’이 숱한 줄 느꼈습니다.


  왜 나고자란 고장에서 고즈넉이 즐거이 일하고 살림하고 사랑하고 보금자리를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새길을 꿈꾸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싯길을 걸어야 할까요? 왜 ‘서울뚫기(in Seoul)’를 못하는 사람한테 “넌 졌어(루저·패배자)” 같은 이름을 붉게 찍으려 들까요? 고을지기(지자체장)를 뽑을(선거) 수 있대서 ‘마을살림(지방자치)’이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태어나고 뛰놀고 자라는 터전에서 실컷 노래하고 꿈꾸고 사랑할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마을살림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 부산마실을 합니다. 시골인 고흥 버스나루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시외버스를 탑니다. 얼추 대여섯 시간이 넘는 먼길에 글종이를 무릎에 얹고서 얘기꽃(동화)을 한 자락 씁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시외버스는 오히려 손으로 글을 쓰기에 즐겁습니다. 부산 사상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탑니다. 고무신차림인 숲노래 씨인데, 발을 밟거나 어깨를 밀치는 손님이 여럿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천천히 거닐며 보수동 책골목에 닿고. 이윽고 〈파도책방〉 앞에 섭니다. 올해가 가기 앞서 〈파도책방〉으로 책마실을 올 수 있어 기쁜데, 〈파도책방〉 자리는 올해를 끝으로 옮긴다는군요. 부산시하고 중구청은 여기 책골목을 사랑할 마음이 하나도 없네요. 번들거리는 새집을 지어야 ‘책골목’이 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책집이 언제나 다 다른 책빛으로 책시렁을 건사하고 책손을 맞이할 수 있을 적에 책골목입니다. ‘헌책’은 “새로 읽을 책”입니다.


ㅅㄴㄹ


《겨레의 슬기 속담 3000》(교학사 출판부 엮음, 교학사, 1988.9.25.)

《이화문고 38 倫理와 思考》(소흥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5.7.25.)

《영농기술 꿩·칠면조·오리》(편집부, 오성출판사, 1973.첫/1984.2.20.재판)

《영농기술 비닐채소재배》(이경희 엮음, 오성출판사, 1979.첫/1984.2.20.재판)

《李朝木工家具의 美》(배만실, 보성문화사, 1978.9.15.)

《욕망하는 천자문》(김근, 삼인, 2003.6.27.첫/2003.7.10.2벌)

《해직일기》(조영옥, 푸른나무, 1991.5.30.)

《숲 속의 가게》(하야시바라 다마에 글·하라다 다케히데 그림/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2.8.)

《ちびギャラよんっ》(ボンボヤ-ジュ 글·그림, ゴマブックス, 2004.5.1.첫/2005.4.10.7벌)

《名探偵 コナン 特別編 15》(靑山剛昌·平良隆久·阿部ゆたか·丸傳次郞, 小學館, 2002.4.25.)

《계몽사문고 63 파랑새》(마아테를링크/김창활 옮김, 계몽사, 1980.첫/1988.5.28.중판)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청담문학사, 1987.7.2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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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빛 (2022.12.7.)

― 광주 〈예지책방〉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광주로 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장흥 대덕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시골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어른이 들려주는 글쓰기와 삶짓기 이야기’를 펴려고 하기에 미리 나섭니다. 돌림앓이 탓에 고흥·장흥을 잇는 시외버스가 끊겼어요. 옆 시골이지만 광주를 끼고 한참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광주에서 보낼 텐데, 버스나루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서 〈예지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잿집(아파트) 물결을 지나고, 어린배움터 옆을 걷습니다. 책집 앞까지 왔는데 아직 안 열었습니다. 아마 바깥일을 보실 테지요.


  책집 앞에 그림책이 몇 자락 있습니다. 책벼리(도서목록)도 있습니다. 슬슬 읽고서 노래꽃(동시)을 한 자락 씁니다. 요 며칠 문득 되새기는 《이오덕 일기》를 생각하면서 ‘책한테 드림 19’을 여밉니다. 어린이·푸름이·어른이 함께 곁에 둘 만한 아름책을 떠올리면서 ‘책한테 드림’이라는 노래꽃을 엮어요. 아름책을 읽은 마음을 옮기고, 아름책에 흐르는 삶빛을 담아 봅니다.


  둘레에서는 ‘추천도서·권장도서’ 같은 일본 한자말을 쓰는데, 저는 이런 이름은 안 쓰고 싶습니다. 함께 읽자고 알려줄 만한 책이라면 ‘아름책(아름다운 책)’이나 ‘사랑책(사랑스러운 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꽃책(꽃다운 책)’이나 ‘빛책(빛나는 책)’이라는 이름을 슬며시 붙이기도 합니다.


  풀꽃나무한테 이름을 처음 붙인 옛날 옛적 시골사람 마음을 그리면서 ‘아름책·사랑책·꽃책’처럼 새말을 짓습니다. 일본말 ‘동시’도 ‘노래꽃’으로 풀어내 보고요. 일본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라서 나쁘지는 않아요. 일본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새말을 여밀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망울로 새말을 엮을 뿐이고요.


  배우려고 하기에 멈추지 않으면서, 신나게 놀고 노래하며 달릴 줄 알기에 튼튼히 자라나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라고 느낍니다. 이무렵 빛나는 숨결은 온몸을 쓰며 움직일 적에 눈부시게 마련이에요. 젊은이뿐 아니라 누구나 쇳덩이(자동차)를 몰기보다는 자전거를 달릴 적에 어울립니다. 부릉이(자동차)하고 사귀기보다 이 땅하고 사귀는 길이 아름답습니다. 아름사람은 맨손 맨발 맨몸으로 하늘숨을 마셔요.


  우리는 ‘우리’를 씁니다. 나는 ‘나’를 쓰지요. “우리를 쓴다”나 “나를 쓴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아로새깁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나고, 내가 스스로 반짝입다. 얼어붙는 겨울에 즐거운 마음이 신나는 몸짓으로 피어나는 하루라면 겨울꽃이겠지요. 스스로 마음을 담아 읽으면, 어느 책이든 반짝거릴 수 있어요.


ㅅㄴㄹ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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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빛 (2022.8.26.)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여름이 무르익는 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녹동나루로 갑니다. 오늘은 작은아이하고 제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제주 〈노란우산〉에서 8월 동안 ‘노래그림잔치(시화전)’를 열면서 이틀(27∼28) 동안 우리말·노래꽃·시골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를 꾸립니다.


  환한 아침나절에 배를 네 시간 달리는데, 손님칸(객실)에 불을 켜 놓는군요. 밝을 적에는 햇빛을 맞아들이면 즐거울 텐데요. 손님칸이 너무 밝고 시끄럽다는 작은아이하고 자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쐽니다. 이제 제주나루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탔고, 물결이 철썩이는 바닷가를 걸어서 〈바라나시 책골목〉에 들릅니다. 무더운 날씨라지만, 이 더위에는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이 몸을 북돋울 만합니다.


  집에서건 바깥에서건, 아이라는 마음빛을 품고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시골길이건 서울길(번화가)이건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면서 다독이고 삭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아이하고 어깨동무할 살림터요, 우리가 쓸 글은 아이하고 노래하듯 여미고 나눌 생각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작은아이는 배에서 내려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걸어오는 길에 본 제주 모습을 글붓으로 슥슥 그립니다. 저는 배를 타고 오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쪽종이에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옮겨적습니다.


  우리말 ‘온’은 셈으로 ‘100’입니다. ‘온통·온갖·온마음·온누리’에 깃들어 살아온 이 말씨는 ‘오르다·오롯하다·옹글다·올차다·옳다’에다가 ‘옷’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인 ‘오’를 함께 씁니다.


  우리말 ‘잘’은 셈으로 ‘10000’입니다. ‘잘하다·잘나다’에 스며 이어온 이 말씨는 ‘자’를 뿌리로 삼으며, ‘자다·자라다’하고 맞물립니다. 셈으로 ‘억’을 가리키는 ‘골’은 ‘골백번’에 남아 잇기도 하지만, ‘골골샅샅·골짜기·멧골’이라든지 ‘골·고을’로도 잇고 ‘골(뇌·두뇌)’하고도 이어요.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텃말(토박이말)을 캐내어 외워야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지는 않습니다. 늘 쓰는 수수한 말씨에 깃든 뿌리를 가만히 짚으면서 우리 마음을 이루는 바탕에 어떤 숨결과 살림결이 스몄는가를 읽을 줄 알면 즐거울 ‘우리말 살려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 말을 말답게 살리고, 말하기를 하면서 말을 말스럽게 돌보는 실마리를 누구나 헤아리기를 바라요. 투박한 말씨 하나로 말밑뿐 아니라 밑넋을 북돋웁니다. 스스로 삶을 한결 깊고 넓게 사랑하는 길은 ‘쉬운말’에 있습니다.


ㅅㄴㄹ


《나는 누구인가》(라마나 마하리쉬/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첫/20111.10.13./고침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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