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숲고을빛 (2022.8.19.)

― 충주 〈책이 있는 글터〉



  어느새 온나라 거의 모두라 할 고장마다 ‘문화도시 ○○’라는 이름을 내겁니다. 다 다른 고장이 저마다 다른 빛깔인 삶꽃마을(문화도시)로 피어나서 푸르게 어우러지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허울좋게 붙이는 ‘문화’가 아닌, 참말로 삶꽃을 피우려는 마음이기를 바랍니다.


  삶꽃이라는 길에는 마땅히 종이책도 들어갈 테고, 사랑으로 짓는 집살림도 들어가며, 푸르게 품는 들숲바다도 들어갑니다. 그런데 숱한 고장에서 내세우는 ‘문화도시 ○○’를 보면 ‘책·집살림·들숲바다’는 어쩐지 안 보입니다. 무엇보다 어린이·푸름이가 안 보여요.


  어제까지 살아온 어른들 슬기를 책으로 담는다면, 오늘부터 살아가는 어린이·푸름이 꿈을 집살림으로 가꿉니다. 모레로 이어갈 살림길은 들숲바다를 푸르게 품는 마음에서 비롯해요.


  또 하나 보면, ‘책꽃(책문화)’이라 할 적에는 ‘이름난 글꾼’ 몇몇을 앞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말로 책빛을 두고두고 가꾸어 온 마을사람하고 책지기를 아우를 노릇이요, 마을책숲을 북돋울 줄 알아야 하고, 어린이·푸름이가 제 고장을 사랑하고 품으면서 뿌리를 내리도록 이바지할 노릇입니다. 서울바라기 아닌 마을바라기로 나아갈 길이면서 숲바라기·들바라기·바다바라기·하늘바라기·별바라기처럼 스스로 싱그럽게 생각을 가꾸는 마음이도록 곁에서 도울 노릇이에요.


  충주로 이야기마실을 온 길에 〈책이 있는 글터〉를 들릅니다. 2003년 가을부터 2007년 봄까지 충주 신니면에 깃들어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던 무렵에는 신니면하고 충주시가 퍽 멀어 〈책이 있는 글터〉까지 들르지는 못 했어요. 그때에는 〈수강서점〉에 겨우 한걸음을 했습니다.


  고흥으로 돌아가자면 서울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야 하는 터라 오래 머물지는 못 하지만, 책시렁이며 위쪽 이야기칸까지 둘러봅니다. 한켠에 ‘충주 글님·그림님’ 책을 그러모았는데 이오덕 어른 책은 하나도 없군요. 설마 몰랐을까요. 또는 생각조차 못 했을까요. 경북 청송에서 나고자라셨으나 삶 끝자락을 충주 기스락 숲집에 머물면서 ‘아이들이 숲을 품기를 바라는 뜻’을 글결로 가다듬으셨어요.


  한 땀씩 일군 하루는 차곡차곡 자라 어느새 숲으로 피어나는 삶으로 이어갑니다. 글이란 오롯이 삶글일 적에 숲빛으로 푸르지요. 땀방울을 옮기기에 밝고, 발자국을 담으니 맑아요. 언제나 다르면서 새로운 하루를 차곡차곡 누리듯, 글빛도 말빛도 책빛도 씨앗처럼 깃들게 마련입니다. 숲을 보면 ‘문화’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ㅅㄴㄹ


《해외생활들》(이보현, 꿈꾸는인생, 2022.7.8.)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한수정, 현암사, 2021.9.3.)

《공공의료 새롭게》(백재중,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2.7.17.)

《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후쿠자와 유키치/허호 옮김, 이산, 2006.3.17.)

《한국의 馬 민속》(임동권 외, 집문당, 1999.1.20.)

《김지하 시전집 1》(김지하, 솔, 1993.1.5.)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 1》(임혜령 엮음·김정한 그림, 한림출판사, 2011.3.4.)

《햇살은 누구에게나 따스히 내리지 않았다》(일과시, 과학과사상, 1993.12.28.)

《月城地域語의 音韻論》(최명옥, 영남대학교출판부, 1982.5.20.)

《향가의 해석》(신재홍, 집문당, 2000.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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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하고 사람 (2022.5.23.)

― 서울 〈메종인디아〉



  마을논에서 이따금 고라니를 만납니다. 가볍게 소리를 내고는 폴짝폴짝 뛰고 달리는 고라니는 싱그러운 풀을 즐깁니다. 이 땅에 사람하고 뭇숨결이 어우러지던 지난날에는 고라니도 여우도 곰도 범도 고슴도치도 수달도 늑대도 함께 들빛을 머금으면서 보금자리를 일구었어요. 이제 웬만한 숲짐승은 삶터를 빼앗기면서 목숨을 모조리 잃었고, 고라니는 길에서 자꾸 치여죽습니다.


  고라니마저 이 땅에서 사라지면 사람은 얼마나 잘 살아갈 만할까요? 개구리도 두꺼비도 맹꽁이도 뱀도 이 땅에서 쫓겨나면 사람은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갈 만한가요? 이웃숨결을 잊는 만큼 이웃사람을 잊습니다.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우리 넋은 늘 우리를 밝히는 빛이리라 생각해요. 누구를 만나 어떤 길을 가든 우리 얼은 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라지는 숲짐승을 바라보면서 들꽃 같은 사람들이 밀려나거나 밟히는 모습을 느낍니다. 삶터를 빼앗기는 새나 풀벌레나 풀꽃나무를 마주하면서 들풀 같은 사람들이 고달프거나 눈물짓는 모습을 느껴요.


  봄빛을 머금으면서 서울로 달립니다. 시외버스에서 ‘고라니’ 이야기를 노래꽃으로 씁니다. 사람인 이웃뿐 아니라 푸르게 어깨동무할 뭇숨결을 함께 헤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몇 줄 글에 얹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님은 《저만 알던 거인》이라는 이야기를 남겼어요. 오늘 우리는 “저만 알던 사람”이나 “저만 알던 사납이·글꾼·힘꾼·이름꾼·돈꾼”을 맞대어 볼 만하다고 느낍니다. “서로 알아가는 사이”로 나아가지 않을 적에는 수렁에 잠기다가 끝내 죽음구덩에 빠지리라 봅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갈아타고서 〈메종인디아〉로 찾아갑니다. 봄이 무르익으니 입가리개를 벗고서 햇볕하고 사귀는 터전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요. 나무도 멧새도 벌나비도 입가리개를 안 합니다. 사람도 홀가분히 털어내고서 만나야지 싶어요. 서울 한복판을 거닐다 보면 부릉부릉 매캐해서 돌림앓이 탓이 아니라 그저 숨이 막히기는 합니다만, 목소리를 낼 말길도 나란히 열어야지 싶고요.


  저마다 다른 책은 저마다 다른 목소리입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눈길로 밝히면서 저마다 새롭게 꿈을 키우기에 온갖 책이 태어나요. 어느 들꽃도 다른 들꽃을 흉내내지 않듯,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오늘을 글로 옮기기에 아름답습니다. 어느 나무도 우쭐거리거나 혼자만 살려고 하지 않듯, 우리는 다 다른 숱한 책을 두루 사랑하고 품을 적에 어질며 참한 어른으로 설 만합니다. 


ㅅㄴㄹ


《홍차와 장미의 나날》(모리 마리/이지수 옮김, 다산책방, 2018.10.19.)

《세 갈래 길》(래티샤 콜롱바니/임미경 옮김, 밝은세상, 2017.12.15.)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산책》(이정하, 스토리닷, 2022.4.2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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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글숲 (2022.5.25.)

― 부천 〈용서점〉



  탈을 쓴다고 해서 속빛이 바뀌지 않습니다. 탈을 쓰면 ‘탈차림’일 뿐입니다. 여우탈을 쓰기에 여우가 되지 않고, 사람탈을 쓰기에 사람이 되지 않아요. 그럴싸한 옷을 입기에 그럴싸한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멋지다는 부릉이를 몰기에 멋진 사람이 될까요? 훌륭하다는 책을 읽기에 훌륭한 사람이 될까요?


  스스로 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차근차근 심기에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마음을 스스로 밝히기에 기꺼이 손을 내밀 뿐 아니라 어깨동무를 하면서 온누리에 빛줄기를 드리워요. 사랑이란 마음으로 책을 쥐기에 어느 책을 펴든 스스로 피어나고 자라납니다. 사랑이란 마음이 없이 책을 잡기에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아름답다는 책을 펴지만, 막상 우리 삶을 추스르지 못 합니다.


  서울(도시)에는 ‘숲인 척하는’ 쉼터(공원)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이든 시골이든 ‘그저 숲인 숲’이 있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 테지요. 껍데기로는 껍데기예요. 허울로는 허울입니다. 알맹이여야 알맹이입니다.


  부천 〈용서점〉에서 ‘수다꽃’을 함께 지피면서 생각합니다. 용지기님은 이 마을책집이 ‘원미글숲’이 되기를 꿈꿉니다.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와서 책을 읽고 사고 나누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 한 그루로 서기를 바라지요.


  우리는 서로 다 다른 나무입니다. 다 다른 터전에서 다 다르게 삶을 누리면서 살림을 일구는 다 다른 나무예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오늘 할 몫이란, ‘봄(보기·보다)’이라고 느낍니다.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보고(돌보고) 마주보고 알아보고 찾아보고 즐겨볼 줄 아는 마음이기에 넉넉합니다. 우리가 아이라면, 오늘 할 놀이란, ‘그림(그리기·그리다)’이라고 느껴요. 하루를 그리고 생각을 그리고 이야기를 그리면서 웃음꽃을 그립니다.


  마음을 빛내는 분이라면 누구나 마음빛을 누릴 만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하늘빛하고 풀빛하고 눈빛을 문득 마음으로 듣고서, 가만히 옮겨적거나 풀어내는 징검다리라는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풀꽃이 들려주는 말을 글로 옮깁니다. 나무가 속삭이는 말을 글로 얹습니다. 새가 알려주는 말을 글로 엮습니다. 별빛이 노래하는 말을 글로 가꿉니다.


  글숲을 지을 수 있고, 책숲을 세울 수 있어요. 말숲을 익힐 수 있고, 살림숲을 돌볼 수 있습니다. 사랑숲으로 모일 수 있고, 푸른숲으로 삶자리를 열 수 있어요. 씨앗 한 톨을 손바닥에 올리듯 책 한 자락을 가만히 집고서 생각숲으로 들어섭니다.


ㅅㄴㄹ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도코 고지 외/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7.6.30.)

《나의 수채화 인생》(박정희, 미다스북스, 2005.3.31.)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반다나 시바/한재각 외 옮김, 당대, 2000.1.20.첫/2000.10.30.3벌)

《천천히 스미는》(G.K.체스터튼 외/강경이 옮김, 봄날의책, 2016.9.20.첫/2016.10.10.2벌)

《基督敎敎育의 課題》(D.C.Wyckoff/전택부 옮김,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57.9.15.첫/1981.3.15.3벌)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조수미, 제일미디어, 1994.6.25.)

《믿음의 名詩》(김희보 엮음, 종로서적, 1984.8.10.)

《복음주의적 학생운동》(올리버 바클레이/한화룡 옮김,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85.2.22.)

《모두를 위한 권리, 한 권으로 읽는 기본소득》(윤지영·김예슬, 나눔문화, 2020.12.14.)

《솔직히 말하자》(김남주, 실천문학사, 1989.11.25.)

《경건 생활의 기초》(에이 W.토저/강귀봉 옮김, 생명의말씀사, 1974.12.25.첫/1985.7.25.4벌)

《미스터 뱃맨의 一生》(존 번연/박화목 옮김, 대한기독교출판사, 1977.3.10.)

《권위》(마틴 로이드 죤스/김성수 옮김, 생명의말씀사, 1978.4.20.)

《귀로 웃는 집》(임영조, 창작과비평사, 1997.1.20.첫/2005.10.15.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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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길 (2022.7.26.)

― 안산 〈선들바람〉



  책집이란, 다 다르게 살아가는 하루를 저마다 다르게 그려서 담아낸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만나서 읽는 동안 언제나 새롭게 생각을 지피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을 찾아갈 적에는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이웃님이 어떤 눈길로 이 마을을 사랑하면서 살림을 지피는가 하고 느끼려고 합니다. 마을책집이 선 곳 둘레를 한동안 거닐면서 마을바람을 헤아리고, 마을 곳곳으로 햇살이 어떻게 비추는가를 살피고, 마을 빈틈이나 귀퉁이나 기스락에 어떤 들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를 돌아봅니다.


  오늘날에는 마을다운 마을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어요. 흙바닥이 사라지고 잿바닥(시멘트바닥)이 늘거든요. 부릉부릉 매캐한 길이 늘고, 아이들이 뛰놀거나 어른들이 돗자리 깔고서 수다를 떨 빈터가 잡아먹혀요. 더군다나 아이들은 마을에서 뛰놀 겨를을 빼앗기면서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히고, 어른들은 마을이웃하고 도란도란 어울리기보다는 일삯을 벌어야 하는 일터에 매이곤 합니다.


  배롱꽃빛이 눈부신 한여름 막바지에 안산 〈선들바람〉으로 마실합니다. 전라도나 경상도 시골이 아닌 경기 안산 한복판에서 배롱나무를 만날 줄 몰랐습니다. 안산은 큰고장이면서도 곳곳에 빈틈을 마련해서 풀꽃나무가 우거지도록 하는군요. 사람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조그마한 풀숲이 꽤 넓습니다.


  쉼터(공원)는 사람만 쉬어야 하는 데가 아니에요. 새도 풀벌레도 매미도 지렁이도 쉴 수 있어야 쉼터입니다. 사람들 발길이나 손길이 닿지 않는 데에서 홀가분히 풀꽃나무가 피고 질 수 있어야 쉼터입니다.


  1998년에 비로소 찰칵이(사진기)를 다루는 길을 배우기 앞서는, 스스로 찰칵찰칵 찍어서 남길 생각을 안 했습니다. 이무렵까지 책집을 다니며 김기찬 님 빛꽃책(사진책)을 곧잘 넘겼는데, “나는 내가 나고자란 인천에서 골목빛을 허벌나게 보기는 했으나 굳이 골목을 찍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인천골목을 그러려니 지나쳤는데, 2007년에 인천으로 돌아와 책숲(도서관)을 열면서 ‘인천골목으로 사진마실(출사)을 나오는 사람들이 찍는 매무새’를 석 달 즈음 구경하고 나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골목이 뭔지 생각조차 않고, 골목에서 산 적도 없고, 골목에서 살 생각도 없고, 골목사람을 이웃이나 동무로 사귈 마음마저 없는, 그렇지만 손에는 값비싼 찰칵이를 거머쥔 분이 인천골목을 엉터리로 찍고 전시회를 열며 우쭐거리는 짓이 슬펐’어요. ‘골목빛을 그저 골목빛으로 담아서 넌지시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마을책집도 언제나 마을책집입니다. 배롱꽃도 늘 배롱꽃이에요.


ㅅㄴㄹ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이식·전원경, 책읽는고양이, 2000.6.30.첫/2017.12.14.23벌)

《바닷가에 가 보아요》(제종길·임미정·이선경·이학곤·김종문 엮음, 해양수산부, 2003.12.15.)

《도시 상상 노트》(제종길 글·이호중 그림, 자연과생태, 2018.3.10.)

《한국의 조개》(민덕기·이준상, 민패류연구소·한글, 2005.2.1.)

《우렁이와 달팽이》(이준상·민덕기, 민패류연구소·한글, 2005.3.15.)

《제주도 음식》(김지순 글·안승일 사진, 대원사, 1998.5.15.첫/2016.5.25.4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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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빛나는 (2022.8.23.)

― 부천 〈빛나는 친구들〉



  불날(화요일) 아침을 부천에서 맞이합니다. 오늘은 저녁에 인천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그때까지 빈틈을 책숲마실로 누리려 합니다. 부천나루 길손집부터 천천히 걸어서 부천여고 앞자락에 있는 〈빛나는 친구들〉로 찾아갑니다. 여름볕은 후끈하고, 여름나무는 짙푸릅니다. 이 여름에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걷는 사람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합니다. 햇볕이 잘 비추는 길을 혼자 푸지게 즐깁니다.


  해는 언제 어디에나 들게 마련이지만, 모든 곳에 비추지는 못 하는 오늘날입니다. 지난날에는 어디나 고르게 해가 비추었지만, 이제는 높다랗게 솟는 잿빛집이 이웃집에 비출 해를 모조리 막기 일쑤예요. 햇볕 한 줌을 나누던 마음은 끝일까요.


  책꾸러미를 가슴에 안고서 사뿐사뿐 걸어 〈빛나는 친구들〉에 닿고 보니, 책집이름처럼 부천여고 앞을 빛내는구나 싶어요. 예전에는 배움터(초·중·고등·대학교) 앞에 으레 책집이 여럿 있었어요. 이제는 배움터 앞에서 책집이 자취를 감추고, 글붓집(문방구)마저 사라지려 합니다. 부천여고 길잡이(교사)하고 배움이(학생)는 이녁 배움터를 오가는 길목에 늘 바라보는 마을책집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눈부신가를 아직 못 느낄 수 있지만, 천천히 느껴 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일은 어려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어렵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가기에 어려워요. 스스로 고되다고 여기는 마음으로 있기에 고됩니다. 스스로 신바람으로 콧노래를 부르니 신나는 일입니다. 스스로 춤추고 노래하면서 일손을 잡으니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일이 신명납니다.


  신나게 노는 아이를 지켜보기만 해도 어쩐지 새로 기운이 솟아서 즐겁게 걸어다닐 수 있어요. 신나게 놀다가 곯아떨어진 아이를 안거나 업기만 해도 그야말로 새로 기운이 샘솟아서 신나게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하고 따지는 분을 퍽 보았어요. 빙그레 웃으며 “두 아이를 낳아서 돌보며 날마다 누리고 느낀 사랑인걸요.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뛰논 아이가 까무룩 곯아떨어질 적에 한 손으로 안고서 다른 손으로 부채질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나날이었답니다. 이렇게 사랑스레 뛰노는 아이를 지켜보고 돌아보고 다독이노라면, 어버이라는 자리는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길인가 하고 새삼스레 배워요.” 하고 대꾸했어요.


  뜨거운 여름날 뜨거운 잎물을 한 그릇 마십니다. 여름에는 뜨겁게 끓인 잎물이 몸을 살린다고 느껴요. 겨울에는 찬물로 몸을 씻으면서 새록새록 몸이 살아난다고 느껴요. 어쩌면 거꾸로 가는 삶이라 여길 테지만, 투덜거리면서도 빛날 수 있고, 노래하면서도 빛날 수 있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사이입니다.


ㅅㄴㄹ


《파친코 1》(이민진, 인플루엔셜, 2022.7.27.첫/2022.8.5.2벌)

《에센스 B국어사전》(편집부, 프로파간다, 2019.2.1.)

《우리말 활용사전》(조항범, 예담, 2005.10.1.첫/2016.7.7.8벌)

《투덜그라피 사연집, 어쨌거나 같이씹자》(공인애, 브라이트프렌즈, 2020.4.26.)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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