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네덜란드사람 (2022.10.19.)

― 서울 〈카모메 그림책방〉



  어제 하루는 책짐을 잔뜩 짊어진 채 서울 여러 곳을 휘휘 걷고 달렸습니다. 오늘은 아침에 마을책집 한 곳만 들러서 책상맡에 앉아 얘기꽃(동화)을 쓰다가 고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앞서 들른 창신동 책집에 찾아온 다른 손님이 꽤 큰소리로 수다꽃을 한참 피웁니다. 일찍 일어나서 걷고, 또 걷고, 내처 걷습니다. 한참 땀을 빼고서 〈카모메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가을볕이 따끈따끈 내려앉습니다.


  책시렁을 헤아리다가, 그림책을 읽다가, ‘자벌레’ 그림책을 오랜만에 되읽다가 ‘레오 리오니’ 님 삶길을 노래꽃(동시)으로 문득 적어 봅니다. 처음 ‘레오 리오니’ 님 그림책을 만난 해는 1988년이라고 떠오릅니다. 그무렵에는 그림님 이름을 몰랐어요. 책집에서 동무를 기다리며 문득 집어든 책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어요. 1994년에 네덜란드말을 배우는 배움터에 들어갔으나 그림님이 네덜란드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네덜란드말을 가르치는 이들은 이분 그림책을 알까요?


  모든 말은 어버이가 맨 처음 들려주면서 물려주는데, 어른이 되어 이웃말을 처음 배우려는 사람한테는 그림책하고 노래책(동시집)이 어울립니다. 네덜란드말을 배우려는 이웃님이라면, ‘네덜란드말로 나온 레오 리오니 그림책’을 장만해서 읽으면 무척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말을 배우고 싶은 이웃나라 사람한테는 어떤 그림책이나 노래책을 건넬 만할까요? 우리는 아직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사랑으로 여민 그림책이나 노래책’이 거의 없지 않나요? 무늬는 한글이되 우리말이 아닌 책이 수두룩합니다.


  잘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서두르려는 마음을 털어내고서 느긋하게 찬찬히 보는 눈빛을 밝히기를 바라요. 책집 골마루를 한나절쯤 천천히 거닐고 또 거닐면서 두리번두리번 되읽고 새로읽는 눈망울을 가꾸기를 바라요.


  봄에도 꽃이 피고 가을에도 꽃이 핍니다. 봄볕도 온누리를 살리고, 가을볕도 온누리를 살립니다. 봄바람도 싱그럽고 가을바람도 싱그럽습니다. ‘자연 예찬’이 아닌 ‘숲을 노래’하는 마음을 한결같이 품을 적에 비로소 어른입니다. ‘문화 비평’이 아닌 ‘살림을 짓’는 손길을 아이들하고 누릴 적에 즐거운 어른이에요.


  풀씨를 돌보는 손길이 마을을 살린다고 느낍니다. 나무씨를 보듬는 손길이 나라를 살리는구나 싶습니다. 마음씨를 사랑하는 손길이 이 별을 빛낸다고 생각해요.


  다시 등짐을 짊어지고서 전철나루로 걸어갑니다. 버스나루에 닿아 꾸벅꾸벅 졸며 시외버스를 기다립니다. 시외버스를 한참 달리고서야 잠을 깹니다. 버스가 전라남도로 접어들 즈음 바깥으로 별이 보입니다. 머잖아 서울에도 별이 돋기를 빕니다.


ㅅㄴㄹ


《비밀의 숲 코끼리 나무》(프레야 블랙우드, 창비, 2022.9.30.)

《하나는 뱀이 좋아》(가니에 안즈/이구름 옮김, 나는별, 2022.9.17.)

《꿈틀꿈틀 자벌레》(레오 리오니/이경혜 옮김, 파랑새, 2003.11.15.첫/2007.5.28.3벌)

《곰인형의 행복》(가브리엘 벵상/이정기 옮김, 보림, 1996.8.30.첫/2009.2.20.1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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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아름답게 (2022.10.19.)

― 서울 〈뭐든지 책방〉



  어제 어쩌다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라는 데를 아마 열다섯 해 만에 지나가 보는데, 이 앞에 선 ‘지킴이(경비원)’가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입가리개나 차림새를 꼬치꼬치 따지면서 윽박지릅니다. 어깨띠를 차면 스스로 대단하거나 잘난 줄 알며 ‘마름’질을 일삼는 허수아비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입가리개로 코를 옴팡 안 덮는 길손이 하나라도 있으면 〈교보문고〉에 큰일이라도 터질까요? 그런데 ‘교보문고 안쪽에 있는 찻집’에 바글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입가리개를 안 하면서 재잘재잘 큰소리로 수다를 떠는데요? 이들더러 왜 ‘입다물고 입가리개 똑바로 써!’ 하고 윽박지르지 않을까요?


  우리는 넋나간 나날을 보냅니다. 고작 1미터도 아닌 10센티미터 옆에서는 깔깔깔 떠들면서 입가리개를 안 합니다. ‘어깨띠를 두른 지킴이’는 저쪽은 안 쳐다보면서 이쪽을 지나다니는 사람들한테 이 말 저 말 무섭게 읊습니다.


  ‘좋은책’을 읽기에 ‘좋은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마음’이란 따로 없습니다. ‘좋은길’조차 없습니다. ‘좋음·나쁨’은 ‘옳음·그름’으로 가르는 굴레이자, 싸움(전쟁)을 벌이는 불씨일 뿐입니다. 우리가 ‘아름책’을 읽을 마음을 품지 않고서 자꾸 ‘좋은책’을 읽거나 알리려(추천) 한다면, 그만 끝없이 싸움을 걸면서 ‘니 쪽 내 쪽’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불구덩이에 잠겨듭니다.


  아름다움에는 좋음도 나쁨도 없습니다. 사랑에는 옳음도 그름도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은 ‘니 쪽 내 쪽’을 안 가릅니다. 언제나 어깨동무로 포근히 다독이면서 돌아보는 숨결이기에 아름다움이요 사랑이고, 아름책이자 사랑책입니다. 다만, 아름책이나 사랑책은 ‘베스트셀러’도 ‘스테디셀러’도 ‘고전’도 ‘추천도서’도 아닙니다. 아름답기에 아름책이고, 사랑이기에 사랑책이에요.


  서울 바깥일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려는 아침에 창신동 골목길을 걸어서 〈뭐든지 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오랜만에 이 골목을 거닙니다. 동대문 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지만, 창신동은 작은집이 옹기종기 햇볕을 나누며 차분합니다. 바람도 별빛도 누구한테나 찾아듭니다. 가을도 겨울도 어디에나 스며듭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북돋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어질게 읽고 새기면서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가 있기에 이 별이 살아나고 새 하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마음빛을 되새기는 어른이 있기에 이 별에 노래가 흐르며 하루가 반짝입니다. 어린이로 살던 지난날을 잊은 사람은 ‘어른 아닌 늙은이’로 뒹구는 꼰대짓을 합니다.


ㅅㄴㄹ


《식물 심고 그림책 읽으며 아이들과 열두 달》(이태용, 세로, 2021.11.2.)

《사이에서, 그림책 읽기》(김장성, 이야기꽃, 2022.1.31.)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김영화, 이야기꽃, 2022.8.8.)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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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삯 (2022.8.18.)

― 수원 〈오복서점〉



  오늘은 충북 충주 노은면으로 갑니다.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고흥읍에서 광주를 거쳐 수원 가는 시외버스를 타는데 길이 한참 막힙니다. 수원에서 충주 노은을 지나가는 13시 30분 버스를 놓칩니다. 17시 버스를 타야 합니다. 세 시간 남짓 빕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오복서점〉으로 갑니다.


  나라에서는 전기차를 사면 이래저래 덤(보조금)을 잔뜩 주지만,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거나 버스를 타는 사람들한테 푸른삯(친환경 교통비)을 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갈수록 부릉이(자가용)가 안 줄고 늘기만 합니다. 부릉이를 여럿 굴리는 집에는 낛(세금)을 몇 곱으로 물려야 올바르지 싶습니다. 집을 한 채 아닌 여러 채 거느릴 적에도 낛을 몇 곱으로 물려야 올바를 테고요.


  아이한테는 숲(자연)을 굳이 가르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어버이로서 어른으로서 아이랑 살림을 짓는 보금자리에 숲을 품으면 넉넉합니다. 가르칠(교육) 적에는 한 가지 틀만 보고 듣고 겪는다면, 삶자리에서 숲을 품으면 늘 새롭게 빛나는 하루로 푸르게 노래할 테지요. 가르치지 말고 살아가면 됩니다.


  아플 적에는 돌봄터(병원)보다는, 멧골을 오르거나 바다에 가면 말끔히 털어낼 만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 나라에 참다운 ‘돌봄터’는 없이 ‘앓이(병) + 터(원)’만 있습니다. ‘앓이터’를 자꾸 들락거리니 자꾸 아플밖에요. 멧골이나 바다나 들이나 숲을 밀어없애는 고장이라면, 사람이 사람답게 못 살도록 가로막는 셈입니다. ‘앓이터(병원)’를 줄이고, 잿터(아파트)는 그만 짓고, 마당 있는 집을 누리면서 마당을 나무울타리로 두르는 살림터로 바꾸어야 튼튼몸으로 피어납니다.


  작은 헌책집 골마루를 한 바퀴 돌면서 책을 한 아름 고릅니다. 골마루를 한 바퀴 더 돌며 책을 한 아름 더 살핍니다. 숲은 ‘똑같은 풀꽃나무’가 아닌 ‘다 다른 풀꽃나무’가 저마다 싱그러이 빛납니다. 책집이나 책숲이라면 ‘똑같은 베스트셀러’를 잔뜩 쌓지 말고 ‘다 다른 아름책’을 하나만 놓아야지 싶어요.


  우리나라 큰책집은 어디를 가나 똑같습니다. 그저 ‘똑같은 베스트셀러’만 우글우글해요. 베스트셀러는 줄거리도 얼거리도 비슷합니다. 이런 책을 자꾸 더 많이 팔거나 읽힐 적에는, 우리 스스로 틀에 박힌 마음으로 길들면서 ‘다 다른 눈빛’하고 등집니다. 책집지기라면 ‘언론보도를 안 받은 책’을 알아보면서 책시렁에 놓고, 책손이라면 ‘다 다른 수수한 들꽃을 닮은 책’을 가려낼 노릇입니다.


  제대로 물어보면 제대로 실마리를 찾습니다. 뜬금없이 물어보면 뜬금없이 헤매기는 하되, 뜬금없는 길을 돌고서 실마리를 찾습니다. 모든 삶은 다 다른 길입니다.


ㅅㄴㄹ


《다울라기리의 탐험》(川喜田二郞/박종한 옮김, 명문당, 1980.12.25.)

《정상의 순례자들》(신승모, 수문출판사, 1990.2.15.)

《獨逸史 上》(R.H.텐브록/김상태·임채원 옮김, 서문당, 1973.8.10.첫/1975.3.20.중판)

《獨逸史 下》(R.H.텐브록/김상태·임채원 옮김, 서문당, 1973.8.15.)

《新稿 一般經濟史》(최호진, 동국문화사, 1954.4.20.)

《더듬거리며 하는 말》(조용란, 성요셉출판사, 1982.12.20.)

《英語に强くなゐ本, 敎室では學べない秘法の公開》(岩田一男, 光文社, 1961.8.5.첫/1961.10.25.210벌)

《漢文故事物語》(長谷川節三·荒牧純一, 評論社, 1968.첫/1970.4.20.재판)

《菜根譚》(洪自誠/鄭志明 옮김, 金楓出版社, 1988.12.재판)

《インカ文名》(Henri Favre/小池佑二 옮김, 白水社, 1977.9.10.)

《世界の人形》(世界の友會 엮음, 保育社, 1963.9.1.)

《日本人と日本文化》(司馬遙太郞, 中央公論社, 1972.5.25.)

《내고장전통가꾸기 (내고장 자랑)》(편찬위원회, 신안군, 1992.12.10.)

《全羅文化硏究 3집》(이강오와 네 사람 엮음, 전북향토문화연구회, 1988.12.31.)

《順天市의 文化遺跡》(순천대학교박물관·순천시, 1992.2.29.)

《세종학연구 1》(편집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10.9.)

《성경속의 우리말 語原(어원)을 찾아서》(박기환, 해피&북스, 2009.2.28.)

《Doddlmoddl》(Wolfdietrich Schnurre 글·Egbert Herfurth 그림, Aufbau, 2003)

《1988年 서울 戒嚴令》(落合信彦/정성호 옮김, 일월서각, 1986.4.5.)

《시골로 가는 길》(이주형, 풀빛, 1985.3.16.)

《마밍가족 이야기》(토비 얀손/김재천 옮김, 공감사, 1997.7.10.)

《현자 나탄》(G.E.레씽/윤도중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1.8.10.)

《日本往來 1호》(최선규·박철균 엮음, 중원문화교류연구회 일본연구원, 1978.2.20.)

《日米關係の展開》(田中直吉 엮음, 日本國際政治學會, 1961.12.15.)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한영순 옮김, 육영사, 1974.10.15.)

《標準陽歷 明文萬歲歷》(김혁제 엮음, 명문당, 1965.1.30.)

《新編 尺牘大方》(지송욱 엮음, 신구서림, 1915.8.16.첫/1925.1.10.1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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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가락 (2022.7.27.)

― 인천 〈딴뚬꽌뚬〉



  태어나서 자란 인천에서 조용한 나날이란 드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부릉이(자가용)를 건사한 집이 드물었기에 부릉거리는 소리는 얼마 못 들었지만, 집집마다 흘러넘치는 갖은 소리가 온마을을 휘감았습니다. 일하는 소리, 심부름하는 소리, 노는 소리, 꾸중하거나 우는 소리, 놀거나 웃는 소리, 왁자지껄 이야기하는 소리가 어우러졌습니다.


  큰길은 서울로 떠나는 커다란 짐차가 땅을 울리는 소리, 하늘은 갈매기하고 비둘기가 어우러진 소리, 땅은 참새하고 제비가 어울리는 소리, 여기에 뭉게구름이 피어나면서 다가와 소나기를 퍼붓는 소리가 흘렀어요. 짐을 실은 기차가 오가는 소리, 연탄공장에서 깜돌을 찍는 소리, 그리고 어느 집마다 있던 쥐가 갉거나 달리는 소리가 있었어요.


  오늘날에는 온갖 소리보다는 부릉부릉 뒤덮는 소리 한 가지로구나 싶습니다. 숱한 소리는 어디 갔을까요? 뛰놀며 복닥거리는 어린이 노랫소리는 어디 있을까요? 아기를 달래며 자장자장 들려주는 말소리는 사라졌을까요?


  매캐하게 감도는 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걷다가 〈딴뚬꽌뚬〉에 깃듭니다. 똑같은 틀로 짜맞추는 부릉부릉이 아닌, 다 다른 삶결로 스스로 노랫가락을 지을 수 있다면, 어느 곳이나 보금자리로 가꿀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사랑받는 린드그렌 님은 아이를 품에 안고서 웃고 춤추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썼고, 안데르센 님은 아이들을 곁에 앉히고서 눈물을 흘리다가 빙그레 웃으면서 토닥토닥 노래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썼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몸짓으로 하루를 쓰는 눈빛일까요.


  나라(정부·사회)에 길든 글꾼(기자·작가)이 퍼뜨리는 글하고, 아이를 품고 바라보는 살림살이를 손수 돌보는 수수한 사람이 심는 글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한테 이바지할 글’은 쓸 수 없습니다. ‘모두한테 좋을 글’이란 없습니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글’을 쓸 뿐이고, ‘곁에 있는 아이 눈을 맑게 바라보는 글’을 쓸 적에 비로소 사랑씨앗을 꿈으로 그려낼 뿐입니다.


  작은책이든 큰책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값싼 판이든 비싼 판이든, 헌책이든 새책이든, 손수 장만하든 빌리든, 읽고 배워서 새롭게 펴는 마음이라면 모두 아름답습니다. 읽으면서 배우거나 새롭게 펴려는 마음이 없으면 으레 빈 껍데기입니다.


  아이들한테서 한소리·잔소리를 듣는 어른은 늘 새로 배우면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들한테 한소리·잔소리를 하는 어른은 늘 쳇바퀴에 갇혀 허우적거려요.


ㅅㄴㄹ


《워킹푸어 가족의 가난 탈출기》(강은진, 작아진둥지, 2022.6.22.)

《어느 아이누 이야기》(오가와 류키치 글·타키자와 타다시 엮음/박상연 옮김, 모시는사람들, 2019.1.25.)

《Graphic Novel 26 아기공룡 둘리》(박소연 엮음, 피오니, 2017.5.1.)

《닮다, 나와 비슷한 어느 누군가에게》(최하현, 부크크, 2020.10.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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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이 싹튼 밑힘 (2023.3.9.)

― 청주 〈중앙서점〉



  오늘은 새벽 세 시 무렵 하루를 엽니다. 청주로 책숲마실을 갈 참이라 이래저래 글살림을 여미고 부엌을 갈무리하고 짐을 꾸립니다. 아침 첫 시골버스로 고흥읍에 가고, 전남 광주로 건너가는 시외버스를 탄 뒤, 대전으로 넘어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서, 이제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탑니다. 청주에서 내려 한참 걷습니다. 이 고장이 어떻게 바뀌는가 하고 읽다가 등판에서 땀이 흐를 즈음 시내버스를 타고서 충북도청 곁에서 내려 ‘청주 책골목’으로 갑니다.


  2023년에 충북 청주에는 〈대성서점〉하고 〈중앙서점〉이 곧게 헌책집살림을 잇습니다만, 스무 해 앞서만 해도 헌책집이 열 곳을 아우르는 고장이었고, 서른∼마흔 해 앞서는 더 많았습니다. 청주에는 청주교대에 충북대처럼 배움빛을 헤아리는 젊은이가 꾸준히 물결쳤기에 새책집도 헌책집도 꽤 많았어요. 이제는 예전같지 않으나, ‘교대가 있는 작은고장’은 새책집·헌책집이 나란히 북적이면서 삶빛을 알뜰히 여미려는 숨결이 흘렀습니다.


  겉이 허름해 보이거나 데께가 내려앉은 모습만으로 ‘헌책’이라 여긴다면, 책을 모르는 셈입니다. 손길을 닿아 즐거이 읽힌 뒤에 새롭게 닿을 손길을 기다리는 하늘빛을 품은 속빛으로 ‘헌책’을 마주할 적에, 비로소 책길을 열 만합니다.


  헌책집을 드나들기에 ‘책을 알지’ 않아요. 새책은 아직 읽히지 않으며 기다리는 책이요, 헌책은 새롭게 읽히며 빛나려는 책입니다. 새책은 이제 막 태어나서 싹트려는 책이고, 헌책은 이미 씨앗이 트면서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오르려는 책입니다. 책마을이 아름드리로 우거지자면 ‘책 = 새책 + 헌책’이라는 얼거리를 곰곰이 짚으면서 알뜰살뜰 북돋울 노릇입니다. ‘새책 : 새로 지은 손길이 새로 읽을 이웃한테 흐르는 책’이요, ‘헌책 : 이미 지은 손빛이 새로 가꿀 눈빛으로 퍼지는 책’입니다.


  청주에도 ‘알라딘중고샵’이 있고, 이런 누리책집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굳이 손에 책먼지를 안 묻혀도 말끔한 책을 손쉽게 찾고 사고 되팔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알라딘중고샵’은 ‘바코드 없는 책’을 다룰 줄 모르고, 살필 길이 없어요. 온누리 헌책집은 마을에서 마을빛으로 지은 작은책(비매품·독립출판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여서 오래도록 나누고 알린 책터입니다. 헌책집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마을책집(동네책방)은 싹조차 틔우지 못 했습니다. 많이 팔리는 책도 다루되, 거의 안 팔렸지만 뜻깊게 되읽으며 배울 어진 삶빛을 담은 책을 품은 헌책집을 잇는 밑힘을 청주시는 앞으로 얼마나 살리거나 키울 수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ㅅㄴㄹ


《맨발의 겐 2》(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이종욱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0.8.25.)

《맨발의 겐 9》(나카자와 케이지/김송이·익선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2.7.27.)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포올러스/김명순 옮김, 두풍, 1987.10.20.첫/1989.1.30.중판

《어둠의 속》(조셉 콘라드/나영균 옮김, 자유교양사, 1989.7.15.)

《大地의 딸》(아그네스 스메들리/타혜숙 옮김, 한울, 1993.5.29.첫/1993.7.5.2벌)

《유태인의 천재들》(유안진, 문음사, 1979.9.10.첫/1980.8.30.중판)

《파름문고 44 사랑의 물레방아 下》(로렛타 깁슨/유종숙 옮김, 동광출판사, 1984.4.15.)

《지성문고 38 결혼》(알베르 카뮈/이재하 옮김, 동천사, 1988.7.15.)

《太白山脈 1》(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3.10.25.62벌)

《太白山脈 2》(조정래, 한길사, 1986.10.5.첫/1994.4.4.57벌)

《왕따 리포트》((주)가우디 엮음, 우리교육, 1999.5.15.)

《구름》(구드룬 파우제방/김헌태 옮김, 일과놀이, 2000.11.23.첫/2004.1.103.2벌))

《휴지 하나 시 하나》(윤상화, 푸른숲, 1992.7.10.)

《삼부경》(金水寺 이법홍 엮음, 안양암, 1964.)

《피안으로 가는 길》(제1군사령부 엮음, 제7지구인쇄소, 1977.)

《봄눈 개관기념, 詩의 여백이 있는 노트》(조희선, 꽃잠, 2016.9.24.)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유승희 옮김, 가나출판사, 1989.5.20.)

《문집 1호 우리 한 번 걸어 보자》(글다솜, 일터기획, 1994.3.31.)

《사람의 길 예수의 길》(이현주, 삼민사, 1982.10.25.첫/1989.9.20.중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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