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곁에 그림책 (2022.9.19.)

― 부천 〈용서점〉



  어질기에 할아버지라고 느낍니다. 슬기롭기에 할머니라고 느낍니다. 착하기에 아버지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참하기에 어머니란 이름이로구나 싶습니다. 때로는 슬기로운 할아버지에 어진 할머니가 있고, 참한 아버지에 착한 어머니가 있어요.


  착한 아버지로 살자면, 바느질을 하면서 밥짓기·빨래하기를 노래하며 누릴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참한 어머니로 살자면, 뜨개질을 하면서 글쓰기·그림그리기로 삶을 가꾸어 아이하고 함께 놀 줄 알아야지 싶어요. 돈버는 일보다 집안일을 해야 빛나는 돌이요, 이름얻는 일보다 꿈그림을 빚어야 눈부신 순이라고 봅니다.


  전철을 타고 서울서 부천으로 가는 길에 생각에 잠깁니다. ‘비닐자루’가 나쁘대서 곳곳에서 치우려 한다지만, 막상 시골 밭뙈기는 비닐투성이에 비닐집입니다. 더구나 요 몇 해 동안 사람들 입을 ‘플라스틱 가리개’로 덮어씌웠습니다. 몇몇 분은 ‘플라스틱 가리개’가 나쁜 줄 알기에 ‘천 가리개’를 손수 뜨거나 지어서 썼는데, 나라(정부)에서는 ‘천 가리개’는 쓰면 안 되고 ‘플라스틱 가리개’만 써야 한다고 떠들었습니다.


  땅에 나쁜 비닐자루라면, 먹는샘물을 담은 페트병도 우리 몸에 나쁘고, 입가리개도 나쁠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쯤 스스로 눈을 뜨고 귀를 열며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부천 〈용서점〉에 닿아 수다꽃을 느슨히 폅니다. 우리 곁 그림책이란, 줄거리도 가르침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집에서 어버이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서 천천히 한 쪽씩 읽어 주면서 함께 즐겁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글을 떼면, 아이 목소리로 그림책을 누리면 새롭게 즐거워요.


  그림책도 만화책도 글책도 틀림없이 ‘아름책’하고 ‘장삿책’이 있습니다. 널리 알아보고 사랑하는 아름책이 있다면, 나라에서 우격다짐으로 ‘플라스틱 가리개’를 써야 돌림앓이에 안 걸린다고 뻥치듯 읽히는 장삿책이 있어요. 우리는 어떤 손길을 여미어 책을 쥐는 삶길인지 돌아봅니다.


  수다꽃을 펴며 자리맡에 빈책(공책)을 잔뜩 펼칩니다. 수다꽃을 마치고서 길손집으로 갈 적에는 빈책을 주섬주섬 다시 꾸립니다. 시골집을 떠나 먼길을 다녀올 적에는 이 길에 보고 듣고 겪고 배울 이야기를 적을 ‘빈책’을 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어야 알지 않습니다. 나무나 새한테 ‘플라스틱 가리개’를 씌우면 나무가 죽겠지요.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빛을 생각하고 참길을 그리는 하루을 지으면, 누구나 아름길을 깨달으면서 스스로 살림꾼으로 서리라 봅니다.


ㅅㄴㄹ


《비밀 친구》(달과 강, 어떤우주, 2022.9.16.)

《나는 매일 그려요》(이정덕·우지현, 어떤우주, 2022.7.16.)

《주머니 속의 詩》(황동규·정현종 엮음, 열화당, 1977.11.20.첫/1978.4.20.재판)

《레닌》(루카치 외/김학노 옮김, 녹두, 1985.6.15.)

《브레히트의 리얼리즘론》(베르톨트 브레히트/서경하 옮김, 남녘, 1989.1.25.)

《독일문화사》(W.피스만/양도원 옮김, 한마당, 1987.9.1.)

《눈물은 한때 우리가 바다에 살았다는 흔적》(김성광, 걷는사람, 2019.2.22.)

《책숲마실》(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9.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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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랑 나무랑 메를 담는 (2021.10.31.)

― 진안 〈책방사람〉



  그제 서울로 작은아이랑 함께 가서 바깥일을 보고서 어제 고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서울에서 새로 바깥일을 봐야 하기에 오늘 다시 짐을 꾸렸고 전주를 거쳐 진안으로 건너갑니다. 진안군청 가까이에는 그동안 찻집으로 꾸리던 “공간153” 한켠을 〈책방사람〉으로 꾸며서 여는 분이 있다고 들었어요.


  시외버스는 진안 버스나루에 닿기 앞서 멈춥니다. 여기서 내리는구나 싶어 내렸더니 더 가야 하더군요. 그러나 일찍 내렸기에 진안읍 어귀를 감싸는 가을숲을 만납니다. 시골이라면 읍내보다 읍내 바깥이 포근해요. 모든 시골 읍내가 서울을 닮지만, 모든 시골 ‘읍내 바깥’은 저마다 다른 시골빛으로 영글며 짙푸릅니다.


  가을빛을 오른쪽으로 끼며 걷다가, 시골도 서울도 배움터(학교)를 숲 기스락에 마련하면 어울리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푸름이·어른 모두 집하고 배움터 사이를 두 다리나 자전거로만 오가도록 하면 아름답겠지요. 시청·군청 같은 벼슬집(공공기관)도 부릉이(자동차)가 못 들어서도록 하면서, 누구나 두 다리하고 자전거로만 다니도록 하면 멋스러울 테고요.


  나라에서는 ‘전기자동차’에 목돈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는데, 푸른길을 살리려면 ‘자동차 아닌 자전거하고 뚜벅이’한테 목돈을 쓸 노릇이에요. 부릉종이(면허증) 없이 걷는 사람이랑 자전거를 타는 사람한테 목돈을 주면 이 나라는 저절로 푸른길로 접어들 만해요. 벼슬꾼은 살림돈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아직 모릅니다.


  작은책집 〈책방사람〉에 닿아 등짐을 내립니다. 땀을 식히면서 책시렁을 둘러봅니다. 어버이한테 아이란, 또 아이한테 어버이란, 생각을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즐거운 사이라고 느껴요. 어깨를 겯거나 손을 맞잡으며 걸어가기에 한집안입니다. 핏줄로만 이을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림이란, 참말로 마음을 담은 빛살이라고 느낍니다. 붓을 놀려 종이에 담기에 그림이지 않아요. 붓 없이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담아도 그림입니다. 아름책 《플랜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는 붓도 종이도 없지만 늘 흙바닥에 그림꽃을 피우면서 ‘언젠가 돈을 모아 꼭 종이를 사야지’ 하고 생각해요. 네로가 종이에 처음 담은 그림은 ‘아로아’였고, 아로아네 아버지는 네로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그림빛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수로울 일이 없어요. 눈감은 이가 알아보지 않는들, 눈뜬 스스로 활갯짓을 하면 언제 어디나 그림누리입니다.


  작은책집을 알아보는 사람이 작은책집을 사랑하고, 작은마을을 사랑하며, 작은사람으로서 함께 어깨동무를 합니다. 작은씨앗이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룹니다.


ㅅㄴㄹ


《나의 프리다》(앤서니 브라운 글·그림/공경희 옮김, 웅진주니어, 2019.2.2.)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최광진 글, 미술문화, 2016.6.20.)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3.10.)

《우리말 글쓰기 사전》(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19.7.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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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고 싶다면 (2021.10.29.)

― 서울 〈숨어있는 책〉



  시키는 일이기에 ‘심부름’입니다. 나라일이란 ‘심부름’이라고 합니다. 나라지기도 벼슬꾼(공무원)도 ‘들풀 같은 사람들이 바라는 길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서 하나하나 할 노릇’이기에 ‘나리’가 아닌 ‘심부름꾼’일 노릇입니다.


  모르는 분이 더 많은 듯싶은데 ‘통령·대통령’은 일본 한자말입니다. 우리는 이 일본말을 여태 그냥 씁니다. 일본에서도 ‘통령’이 일본말인 줄 모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아는 사람도 많아요. 굳이 일본 눈치를 볼 까닭은 없으나 ‘낡은(군국주의 시대) 일본말’을 제 나라 꼭두지기 이름으로 쓰는 우리나라입니다.


  한자를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만, 쓸 자리를 가려서 쓸 일입니다. 나라일을 맡는 꼭두지기를 우리말로 이름을 새롭게 붙일 줄 모른다면, 우리 스스로 아직 넋을 추스르지 못 한다는 뜻이요, 눈먼 굴레에 갇혔다는 뜻입니다. ‘학교’에서 쓰는 말도 죄다 일본말이지요. 우린 언제쯤 ‘선생·교사·교장·교감·수업·과목·교과서·급식·구령대·조회’ 같은 굴레를 벗을 수 있을까요.


  생각하지 않기에 굴레를 뒤집어쓴 줄 모릅니다. 조금 생각한다면 굴레를 느낍니다. 생각에 날개를 달면 스스로 굴레를 내려놓거나 벗습니다. 하늘빛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생각으로 바다를 품고 바람을 안으면 누구나 홀가분합니다. 누가 시키는 대로 외우면 심부름을 하듯 굴레에 갇히는 마음입니다. 차근차근 말빛을 고르기를 바라요. 몸하고 마음이 자라나는 어린이처럼, 몸짓도 마음빛도 자라날 어른입니다. 반짝반짝 생각을 가꾸어 살림을 짓기에 ‘어른’이라는 이름입니다.


  꿈은 크기가 없습니다. 사랑도 크기가 없습니다. 말도 마음도 크기가 없어요. 오롯이 꿈이고 사랑이고 말이고 마음이에요. 꿈·사랑·말·마음은 깨지지도 부서지지도 망가지지도 더러워지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꿈이 있기에 스스로 빛나고, 사랑으로 말하기에 스스로 넉넉하고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까닭을 알까요? 빠져도 새로 나는 줄 늘 보여주거든요. 이가 빠지든 손톱이 빠지든 다시 날 만합니다. 다시 나지 않으면 죽음이거든요.


  가을빛이 깊은 날에 〈숨어있는 책〉에 찾아듭니다. 배우고 싶기에 책집을 찾아갑니다. 새로 나오는 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기에, 이미 나왔으나 모르고 살아온 책을 만나려고 헌책집에 깃듭니다. 널리 팔리지 않았어도 속깊이 이야기씨앗을 품은 책을 하나둘 쓰다듬으면서, 한때 널리 팔린 듯싶으나 이내 사라지는 얄팍한 책을 새록새록 만지작거리면서, 새롭게 나눌 길을 그립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을 나누어야 나눔이지는 않아요. 하루를 즐거이 한 걸음씩 내딛는 마음으로 나눕니다.


ㅅㄴㄹ


《가버린 부르조아 세계》(나딘 고디머/이상화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8.5.25.)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法 속에서 詩 속에서》(최종고, 교육과학사, 1991.10.20.)

《생명과 희망》(채수명/채승석 옮김, 예찬사, 1986.8.10.)

《日本神話》(박시인, 탐구당, 1977.5.30.)

《マンガ 韓國現代史》(金星煥·植村隆, 角川ソフィア文庫, 2003.2.25.)

《분교마을 아이들》(오승강 글, 인간사, 1984.5.5.첫/1987.7.10.두벌)

《질서속에 민주발전을 이룩하는 해(1989년도 노태우대통령 연두회견 전문)》(노태우 말, 문화공보부, 1989.1.20.)

《朝鮮のこころ》(金思燁, 講談社, 1972.9.28.)

《朝鮮民族を獨み解く》(古田博司, 筑摩書房, 2005.3.10.)

《新朝鮮事情》(Jacques PezeuMassabuau/菊池一雅·北川光兒 옮김, 白水社, 1985.6.25.)

《밥상 아리랑》(김정숙 글/차은정 옮김, 빨간소금, 2020.3.27.)

《1파운드의 복음 1》(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3.30.)

《1파운드의 복음 2》(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4.30.)

《1파운드의 복음 3》(타카하시 루미코/권경일 옮김, 서울문화사, 1999.6.30.)

《황새울 편지》(윤정모, 푸른숲, 1990.1.5.)

《한글을 세계문자로 만들자》(박양춘, 지식산업사, 1994.10.9.)

《流言蜚語論》(원우현 엮음, 청람, 1982.4.20.)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론기획 대학신서 편집회의, 새론기획, 1980.9.1.)

《군종신부》(정승현, 성바오로출판사, 1981.11.10.)

《咸錫憲 人生論》(함석헌, 정우사, 1978.5.20.)

《航空·宇宙의 世界》(홍성균, 일지사, 1975.6.5.)

《李光洙全集 第十九卷》(이광수, 삼중당, 1963.9.20.)

《黃順元全集 第三卷》(황순원, 창우사, 1964.12.15.)

《民衆時代의 文學》(염무웅, 창작과비평사, 1979.4.25.)

《선택》(새로운인간 기획실 엮음, 한마당, 1987.11.15.)

《강아지풀》(권오삼, 교음사, 1983.5.1.)

《그 빛속의 작은 生命》(김활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65.2.25.첫/1983.9.15.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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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이웃 (2022.8.6.)

― 대전 〈우분투북스〉



  집안살림은 집안을 돌보아야 스스로 익힙니다. 책집살림은 책집을 꾸려 보아야 스스로 배웁니다. 석 달, 여섯 달, 한 해, 세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쉰 해, 이처럼 차근차근 나아가는 살림길입니다. 첫 석 달을 지내면 다음 석 달을 버티며 새롭게 배우고, 이다음에는 한 해를 살아내는 길을 바라보고는, 세 해를 일구는 숨결을 헤아리다가, 다섯 해를 거쳐 열 해를 이루는 살림꽃을 피울 만하다지요. 열 해를 살아내면 스무 해를 고즈넉이 살아간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서른 해 무렵 고빗사위에 이르고, 이 고개를 넘으면 쉰 해를 부드러이 살아내면서 사랑이 무르익어 열매를 맺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집살림 이야기는 숱한 책집지기가 이야기로 매무새로 책시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버이 곁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살림빛을 가꾸듯, 작은 책벌레는 온나라 마을책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책살림길하고 맞닿는 온살림빛’을 시나브로 배웠습니다.


  우리말은 ‘빛’하고 ‘빛깔’입니다. 한자말 ‘색(色)’을 써도 나쁘지 않지만, ‘빛’하고 ‘빛깔’이 뭐가 다른지, 또 ‘빛살’하고 ‘빛발’하고 ‘빛줄기’는 무엇인지, ‘빛’에 차근차근 여러 말을 붙여 보면 생각을 넓힐 만합니다.


  대전 〈우분투북스〉를 찾아갑니다. 알을 잔뜩 품어 곧 낳을 무렵인데 그만 사람하고 자전거한테 밟혀서 죽은 안쓰러운 메뚜기를 봅니다. 어쩌다 이렇게 밟히고 또 밟혔을까요. 새로 깨어나지 못 한 메뚜기알은 어미 배에 깃든 채 길바닥에 아주 납작하게 으스러졌습니다.


  이맛살을 살짝 찡그리고 지나갔습니다. 한참 가다가 돌아섰습니다. 납작하게 이 땅을 떠난 메뚜기 주검 곁에 쪼그려앉습니다. “몸을 내려놓으면서 아픔은 사라졌어. 비록 새끼 메뚜기가 태어나지는 못 했지만, 네 사랑은 이 고을에 남는단다. 부디 너그럽고 넉넉하게 바람빛으로 날아다니렴.” 하고 속삭이고는 풀밭으로 메뚜기 주검을 옮깁니다.


  저마다 즐겁게 온마음으로 하루를 짓는 손길로 아이 곁에 서기에 어른입니다. 나이만 먹는 이는 어른이 아닙니다. 어른으로서 노래하는 하루이기에 아이들이 활짝 웃으면서 곁에 달라붙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걷다가 읽다가 쓰다가 밥짓다가 빨래하다가 잠들다가 생각합니다. ‘나는 어른인가? 나는 어른으로 가는 길인가?’ 〈우분투북스〉에서 땀을 식히면서 책을 고릅니다. 고른 책을 셈합니다. 셈한 책을 등짐에 담습니다. 서울로 갈 칙폭이를 타러 부지런히 달립니다.


ㅅㄴㄹ


《월간 옥이네 61호》(박누리 엮음, 월간 옥이네, 2022.7.5.)

《우리는 군겐도에 삽니다》(마츠바 토미/김민정 옮김, 단추, 2019.3.25.)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이연희, 봄날의책, 2022.3.21.첫/2022.4.21.2벌)

《아피야의 하얀 원피스》(제임스 베리 글·안나 쿠냐 그림/김지은 옮김, 나는별, 2021.11.27.)

《곁말, 내 곁에서 꽃으로 피는 우리말》(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2.6.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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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쉼터 (2022.7.27.)

― 인천 〈호미사진관 서점안착〉



  땀을 뻘뻘 흘리는 한여름이 흐릅니다. 시골에서 살기에 틈틈이 씻고 바람을 쐽니다. 여름이니 땀을 흘리고, 이 땀을 물로 씻고, 씻은 물은 바다로 흘러들고, 바다는 사람들이 흘리는 땀에 서린 기운을 느껴 아지랑이로 바뀌더니, 새삼스레 하늘로 천천히 올라가서 구름을 이루고, 이윽고 온누리를 훨훨 날다가 들숲마을로 사뿐히 내려앉는 빗방울로 찾아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건 물줄기로 몸을 씻건, 이 물방울이 푸른별을 고루 도는 하루를 되새깁니다.


  책짐을 이고 진 채 새로 책집마실을 다니며 길바닥에 떨어지는 땀방울은 시골과 다른 까만길(아스팔트 도로)을 적시느라 흙으로 스미지 못 하지만, 바퀴에 밟히다가도 새록새록 하늘로 오르는 아지랑이로 바뀌어 비구름하고 하나가 될 테지요.


  이제 인천지하철을 내려 걸어갑니다. 인천 서구 안골목에 담배꽁초가 많습니다. 고흥도 읍내나 면소재지 길바닥에 담배꽁초가 허벌납니다. 꽁초든 빈 깡통이든 어른부터 마구 버리고, 아이들은 ‘볼꼴사나운 어른 몸짓’을 늘 느끼면서 어느새 이 몸짓을 따라합니다. 어린쉼터가 없는 이 나라에는 어른쉼터도 없습니다. 푸른쉼터도 없어요. 작은 마을책집은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땀을 훔치고 언손을 녹이는 조촐한 쉼터 노릇인 책터라고 여깁니다.


  책집 〈서점 안착〉에 닿습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습니다. 다가가는 손길은 내려앉는(안착) 손길로 잇고, 옆자락 책을 다독이는 손빛으로 뻗고, 손끝으로 퍼지는 줄거리는 마음으로 감겨들면서 문득 이야기씨앗으로 자랍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우리말 ‘베껴쓰기’는 “남이 써 놓은 글을 그대로 따라가는 길”입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배워쓰기’라 하면 “남이 일군 열매를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가꾸어 받아들이는 길”을 열 만합니다. 아름답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베껴쓰기(필사)를 해도 안 나쁘지만, 이보다는 ‘아직 덜 아름답거나 안 훌륭하더’라도, 우리 오늘 하루를 투박한 손길로 누구나 스스럼없이 ‘새로쓰기’를 하기를 바라요. 이름나야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우리가 손수 적는 글이기에 즐겁습니다. 잘팔려야 훌륭한 글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걷는 오늘이기에 반갑습니다.


  책집을 새로 들를 적마다 등짐 무게를 더합니다. 묵직묵직 책짐을 지고서 걷다가 생각합니다. 걸어다니며 담배 태우는 아저씨·할배는 뭘까요? 이분들은 스스로 이녁 마을을 안 쳐다보기에 안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우리 눈빛으로 우리 마을을 바라볼 적에 저마다 이 마을길을 가꿀 사랑씨앗을 심으리라 봅니다.


ㅅㄴㄹ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기사님 글, 서혜미 엮음, 2020.3.2.)

《두 아이와》(김태완, 다행하다, 2022.1.10.)

《이런 시베리아》(앵서연, 2020.9.8.)

《HOMIE》(미적미, 서점안착, 2020.6.7.)

《인천책지도》(퍼니플랜 엮음, 인천광역시, 2019.9.9.)

《COMMA 46 Dive》(강지원 엮음, COMMA, 2022.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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