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섣달빛 (2022.12.20.)

― 부산 〈파도책방〉



  인천에서 나고자라는 적잖은 사람들은 인천을 느긋이 바라볼 겨를이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요새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거친 인천 배움터(학교) 열두 해에 걸쳐 ‘인천사랑’을 들려주거나 밝힌 길잡이(교사)는 한 사람도 못 봤습니다. 모두 스스로 “난 인생 낙오자라서, 여기 구닥다리 인천 막장 같은 데에서 교사를 한다구!” 하면서 우리를 두들겨패기 일쑤였습니다. 1982∼1993년 사이에 온몸으로 겪은 일입니다.


  서울살이(in Seoul)를 하려다 쓴맛을 보거나 나뒹군 분들이 인천 기스락으로 들어와서 ‘문화·예술·학술 우두머리’를 꽤 합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서는 길잡이(교수) 자리를 못 얻고 ‘인천에 있는 대학교’에서 길잡이 자리를 얻고서 우쭐거리는 분을 숱하게 보았어요. 이런 분들을 스칠 적마다 딱하더군요.


  그런데 부산 동무를 사귀고 부산 이웃을 하나둘 만난 지난 서른 몇 해 동안 부산사람도 인천사람 못잖게 ‘서울바라기’가 많고, ‘서울로 안 가고 부산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온몸으로 겪는 가시밭길’이 숱한 줄 느꼈습니다.


  왜 나고자란 고장에서 고즈넉이 즐거이 일하고 살림하고 사랑하고 보금자리를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새길을 꿈꾸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싯길을 걸어야 할까요? 왜 ‘서울뚫기(in Seoul)’를 못하는 사람한테 “넌 졌어(루저·패배자)” 같은 이름을 붉게 찍으려 들까요? 고을지기(지자체장)를 뽑을(선거) 수 있대서 ‘마을살림(지방자치)’이지 않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태어나고 뛰놀고 자라는 터전에서 실컷 노래하고 꿈꾸고 사랑할 수 있을 적에 비로소 마을살림입니다.


  한 해가 저무는 섣달 끝자락에 부산마실을 합니다. 시골인 고흥 버스나루에서 한참 기다린 끝에 시외버스를 탑니다. 얼추 대여섯 시간이 넘는 먼길에 글종이를 무릎에 얹고서 얘기꽃(동화)을 한 자락 씁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시외버스는 오히려 손으로 글을 쓰기에 즐겁습니다. 부산 사상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탑니다. 고무신차림인 숲노래 씨인데, 발을 밟거나 어깨를 밀치는 손님이 여럿 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천천히 거닐며 보수동 책골목에 닿고. 이윽고 〈파도책방〉 앞에 섭니다. 올해가 가기 앞서 〈파도책방〉으로 책마실을 올 수 있어 기쁜데, 〈파도책방〉 자리는 올해를 끝으로 옮긴다는군요. 부산시하고 중구청은 여기 책골목을 사랑할 마음이 하나도 없네요. 번들거리는 새집을 지어야 ‘책골목’이 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책집이 언제나 다 다른 책빛으로 책시렁을 건사하고 책손을 맞이할 수 있을 적에 책골목입니다. ‘헌책’은 “새로 읽을 책”입니다.


ㅅㄴㄹ


《겨레의 슬기 속담 3000》(교학사 출판부 엮음, 교학사, 1988.9.25.)

《이화문고 38 倫理와 思考》(소흥렬,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5.7.25.)

《영농기술 꿩·칠면조·오리》(편집부, 오성출판사, 1973.첫/1984.2.20.재판)

《영농기술 비닐채소재배》(이경희 엮음, 오성출판사, 1979.첫/1984.2.20.재판)

《李朝木工家具의 美》(배만실, 보성문화사, 1978.9.15.)

《욕망하는 천자문》(김근, 삼인, 2003.6.27.첫/2003.7.10.2벌)

《해직일기》(조영옥, 푸른나무, 1991.5.30.)

《숲 속의 가게》(하야시바라 다마에 글·하라다 다케히데 그림/김정화 옮김, 찰리북, 2013.2.8.)

《ちびギャラよんっ》(ボンボヤ-ジュ 글·그림, ゴマブックス, 2004.5.1.첫/2005.4.10.7벌)

《名探偵 コナン 特別編 15》(靑山剛昌·平良隆久·阿部ゆたか·丸傳次郞, 小學館, 2002.4.25.)

《계몽사문고 63 파랑새》(마아테를링크/김창활 옮김, 계몽사, 1980.첫/1988.5.28.중판)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청담문학사, 1987.7.2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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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빛 (2022.12.7.)

― 광주 〈예지책방〉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오늘은 광주로 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장흥 대덕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시골에서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는 어른이 들려주는 글쓰기와 삶짓기 이야기’를 펴려고 하기에 미리 나섭니다. 돌림앓이 탓에 고흥·장흥을 잇는 시외버스가 끊겼어요. 옆 시골이지만 광주를 끼고 한참 돌아가야 합니다.


  하루를 오롯이 광주에서 보낼 텐데, 버스나루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갈아타고서 〈예지책방〉으로 찾아갑니다. 잿집(아파트) 물결을 지나고, 어린배움터 옆을 걷습니다. 책집 앞까지 왔는데 아직 안 열었습니다. 아마 바깥일을 보실 테지요.


  책집 앞에 그림책이 몇 자락 있습니다. 책벼리(도서목록)도 있습니다. 슬슬 읽고서 노래꽃(동시)을 한 자락 씁니다. 요 며칠 문득 되새기는 《이오덕 일기》를 생각하면서 ‘책한테 드림 19’을 여밉니다. 어린이·푸름이·어른이 함께 곁에 둘 만한 아름책을 떠올리면서 ‘책한테 드림’이라는 노래꽃을 엮어요. 아름책을 읽은 마음을 옮기고, 아름책에 흐르는 삶빛을 담아 봅니다.


  둘레에서는 ‘추천도서·권장도서’ 같은 일본 한자말을 쓰는데, 저는 이런 이름은 안 쓰고 싶습니다. 함께 읽자고 알려줄 만한 책이라면 ‘아름책(아름다운 책)’이나 ‘사랑책(사랑스러운 책)’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꽃책(꽃다운 책)’이나 ‘빛책(빛나는 책)’이라는 이름을 슬며시 붙이기도 합니다.


  풀꽃나무한테 이름을 처음 붙인 옛날 옛적 시골사람 마음을 그리면서 ‘아름책·사랑책·꽃책’처럼 새말을 짓습니다. 일본말 ‘동시’도 ‘노래꽃’으로 풀어내 보고요. 일본말이나 일본 한자말이라서 나쁘지는 않아요. 일본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새말을 여밀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아이를 사랑하는 눈망울로 새말을 엮을 뿐이고요.


  배우려고 하기에 멈추지 않으면서, 신나게 놀고 노래하며 달릴 줄 알기에 튼튼히 자라나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라고 느낍니다. 이무렵 빛나는 숨결은 온몸을 쓰며 움직일 적에 눈부시게 마련이에요. 젊은이뿐 아니라 누구나 쇳덩이(자동차)를 몰기보다는 자전거를 달릴 적에 어울립니다. 부릉이(자동차)하고 사귀기보다 이 땅하고 사귀는 길이 아름답습니다. 아름사람은 맨손 맨발 맨몸으로 하늘숨을 마셔요.


  우리는 ‘우리’를 씁니다. 나는 ‘나’를 쓰지요. “우리를 쓴다”나 “나를 쓴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돌아보고 아로새깁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나고, 내가 스스로 반짝입다. 얼어붙는 겨울에 즐거운 마음이 신나는 몸짓으로 피어나는 하루라면 겨울꽃이겠지요. 스스로 마음을 담아 읽으면, 어느 책이든 반짝거릴 수 있어요.


ㅅㄴㄹ


《곁책》(숲노래·최종규, 스토리닷, 2021.7.7.)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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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빛 (2022.8.26.)

― 제주 〈바라나시 책골목〉



  여름이 무르익는 새벽에 마을 앞에서 택시를 타고서 녹동나루로 갑니다. 오늘은 작은아이하고 제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제주 〈노란우산〉에서 8월 동안 ‘노래그림잔치(시화전)’를 열면서 이틀(27∼28) 동안 우리말·노래꽃·시골빛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를 꾸립니다.


  환한 아침나절에 배를 네 시간 달리는데, 손님칸(객실)에 불을 켜 놓는군요. 밝을 적에는 햇빛을 맞아들이면 즐거울 텐데요. 손님칸이 너무 밝고 시끄럽다는 작은아이하고 자주 바깥으로 나가서 바닷바람을 쐽니다. 이제 제주나루에 닿아 시내버스로 갈아탔고, 물결이 철썩이는 바닷가를 걸어서 〈바라나시 책골목〉에 들릅니다. 무더운 날씨라지만, 이 더위에는 뜨거운 짜이 한 모금이 몸을 북돋울 만합니다.


  집에서건 바깥에서건, 아이라는 마음빛을 품고서 살아가는 어른으로 바라보려 합니다. 시골길이건 서울길(번화가)이건 언제나 즐겁게 맞이하면서 다독이고 삭이자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아이하고 어깨동무할 살림터요, 우리가 쓸 글은 아이하고 노래하듯 여미고 나눌 생각이 흐르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작은아이는 배에서 내려 〈바라나시 책골목〉으로 걸어오는 길에 본 제주 모습을 글붓으로 슥슥 그립니다. 저는 배를 타고 오면서 떠올린 이야기를 쪽종이에 열여섯 줄 노래꽃으로 옮겨적습니다.


  우리말 ‘온’은 셈으로 ‘100’입니다. ‘온통·온갖·온마음·온누리’에 깃들어 살아온 이 말씨는 ‘오르다·오롯하다·옹글다·올차다·옳다’에다가 ‘옷’이라는 낱말을 이루는 뿌리인 ‘오’를 함께 씁니다.


  우리말 ‘잘’은 셈으로 ‘10000’입니다. ‘잘하다·잘나다’에 스며 이어온 이 말씨는 ‘자’를 뿌리로 삼으며, ‘자다·자라다’하고 맞물립니다. 셈으로 ‘억’을 가리키는 ‘골’은 ‘골백번’에 남아 잇기도 하지만, ‘골골샅샅·골짜기·멧골’이라든지 ‘골·고을’로도 잇고 ‘골(뇌·두뇌)’하고도 이어요.


  대단하거나 놀랍다 싶은 텃말(토박이말)을 캐내어 외워야 우리말을 사랑하는 길이지는 않습니다. 늘 쓰는 수수한 말씨에 깃든 뿌리를 가만히 짚으면서 우리 마음을 이루는 바탕에 어떤 숨결과 살림결이 스몄는가를 읽을 줄 알면 즐거울 ‘우리말 살려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할 적에 말을 말답게 살리고, 말하기를 하면서 말을 말스럽게 돌보는 실마리를 누구나 헤아리기를 바라요. 투박한 말씨 하나로 말밑뿐 아니라 밑넋을 북돋웁니다. 스스로 삶을 한결 깊고 넓게 사랑하는 길은 ‘쉬운말’에 있습니다.


ㅅㄴㄹ


《나는 누구인가》(라마나 마하리쉬/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첫/20111.10.13./고침5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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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피는 꽃 (2022.8.23.)

― 인천 〈책방 모도〉



  어제 서울·부천에서 이야기꽃을 폈고, 오늘은 인천 배다리에서 이야기꽃을 폅니다.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에 여미는 이야기꽃은 ‘마을꽃 + 숲꽃 + 살림꽃을 여미는 말꽃’이라고 할 만합니다. 드문드문 펴는 수수한 수다꽃입니다.


  저녁까지 말미가 넉넉합니다. 아침에 부천 〈빛나는 친구들〉에 들르고서 천천히 전철을 탑니다. 낮에 인천으로 가는 전철은 햇빛이 가득 들어오면서 호젓합니다. 동인천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송현2동은 안골이 꽃골목이고, 화평동에는 ‘박정희 할머니 평안수채화의 집’ 터가 있으며, 안쪽에 ‘함세덕 옛집’이 있습니다. 우리 언니는 송현1동 작은집에서 조용히 살고, 곁에 붙은 송림 1·2동은 오르막에 어깨동무하는 골목집이 호젓하지만 어느새 잿터(아파트 단지)로 바뀝니다.


  푸름이로 살던 1991∼1993년에 화수동·만석동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어요. 오랜 너나들이가 이곳에서 살았거든요. 이제 다 잿빛더미로 바뀌었지만 옛골목을 디딜 적마다 우리가 어떤 놀이를 하고 무슨 수다를 폈는지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송현초등학교하고 화도진중학교 사이에 깃든 〈책방 모도〉 앞에 섭니다. 이 포근한 자리를 마을책집으로 알뜰하게 가꾸어 내는 손길을 느끼면서 한참 해바라기를 합니다. 골목집은 서로 햇볕을 나누어요. 해가 흐르는 결에 따라 이 집에도 저 집에도 찬찬히 볕살이 스미면서 도란도란 따사롭습니다.


  마을꽃은 마을사람이 손수 씨앗을 심기에 핍니다. 이러다 작은새가 찾아들면서 꽃씨를 퍼뜨리고, 개미도 살살 오가면서 돌틈에 씨앗을 옮깁니다. 숲꽃은 들숲바다에서 사람하고 이웃으로 지내는 뭇숨결이 이 푸른별에 저마다 씨앗을 심으며 핍니다. 숲이 있기에 밥옷집을 누리고 삶을 가꿔요. 살림꽃은 어른으로서 사랑을 속삭이면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 거듭나면서 마음이랑 온몸으로 피웁니다.


  우리가 저마다 “아, 이 말은 어떤 뿌리일까?” 하고 궁금하게 바라보는 생각이 씨앗처럼 싹트면, 어느 날 문득 “아, 이 말은 아마 그런 뿌리일는지 몰라.” 하는 이야기가 빛줄기처럼 찾아들 날이 있어요. 이곳에 들꽃이 피고 우람나무가 자라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을 심으면, 어느 날 새랑 개미가 바지런히 씨앗을 물어 날라서 골목빛을 북돋웁니다.


  들꽃 같은 부드러운 말로 만나요. 아이어른은 한마음으로 상냥하게 사귈 만합니다. 숲바람처럼 싱그러운 말로 마주하기를 바라요. 바닷방울처럼 맑은 말로 어울리면서 빗물처럼 시원한 말로 이야기하면, 누구나 별빛처럼 환한 말로 생각을 펴서 글을 여밀 수 있습니다. 햇볕을 품은 말씨로 노래를 부릅니다.


ㅅㄴㄹ


《동네에서 서점이 모두 사라진다면》(김현우·윤자형, 화수분제작소, 2022.5.10.)

《사랑하는 미움들》(김사월, 놀, 2019.11.13.)

《Little People Big Dream 로자 파크스》(리즈베스 카이저 글·마르타 안텔로 그림/공경희 옮김, 달리, 2019.10.14.첫/2020.5.13.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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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2022.10.18.)

― 서울 〈신고서점〉



  서울 인왕산 곁 마을배움터에서 하루를 가꾸는 푸름이를 만나고서 한두 시간쯤 책을 살필 짬이 납니다.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느긋이 책빛을 머금고서 광화문으로 옮기려 했는데, 책집에 깃든 지 얼마 안 되어 따르릉 울립니다. 늦은낮에 뵙기로 한 분이 벌써 그쪽에 닿았답니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 하지만 5분만 스스로 누리기로 하면서 골마루를 살살 거닙니다.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이지만 “이런 겉그림이었나?” 싶어 집어드니 글님이 조정권(1949∼2017) 님한테 드린 손글씨가 있습니다. 노래책 한 자락에 남은 손글씨를 보고서 다른 노래책도 뒤적이니 여럿에 글님 손글씨가 있군요.


  여러 해 앞서 흙으로 돌아간 조정권 님이 지내던 살림집이라든지 일터 한켠에 쌓였다가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니 서로 다르게 하루를 살아내고서 이 하루를 다 다른 눈길로 가다듬은 다음 다 다른 손길을 살려서 글을 씁니다. 모든 책은 다르고, 모든 손글씨는 다릅니다. 우리말 ‘손글씨’란 낱말을 쓰는 분이 있지만 영어 ‘캘리그래피’를 쓰는 분이 있는데, ‘이쁜글씨’나 ‘바른글씨’보다 ‘그저 손글씨’를 사랑하는 이웃님이 늘기를 바랍니다.


  잘 쓴 글씨를 따라해야 하지 않아요.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을 베껴쓰기(필사)해야 하지 않아요. 잘 쓴 글씨이건 훌륭한 글이건, 그저 ‘읽고서 새긴 다음 우리 나름대로 삭인 새글씨에 새글로 풀어낼’ 적에 서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말 ‘베끼다·배우다’는 비슷하되 다릅니다. 둘 모두 지켜보고서 따라가는 몸짓을 그리지만, ‘베낄’ 적에는 그냥 머물거나 맴도는 결이요, ‘배울’ 적에는 삭이고 가다듬어 우리 손길이나 몸짓을 살리는 결입니다.


  풀을 죽이려고 뿌리기에 죽임물입니다. 죽임물을 뿌려서 살아날 풀은 없습니다. 이 풀죽임물은 풀뿐 아니라 땅을 죽이고, 땅밑으로 스며들면 냇물이며 샘물까지 죽이고, 나중에는 갯벌하고 바다까지 죽입니다. 이와 달리, 바다에서 피어난 구름이 빗물로 바뀌어 내릴 적에는 들숲을 모두 살리고 먼지를 말끔히 씻어 줍니다. 빗물 바닷물은 살림물입니다.


  풀(잡초)이 보기 싫다면서 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얼핏 반듯하거나 가지런해 보일 테지만, 숨결이 사라집니다. 베껴쓰기(필사)나 예쁜글씨(캘리그래피)는 ‘다 다른 숨결을 죽이려는 농약’이지 싶어요. 어깨동무나 살림짓기로 가기를 바랍니다. 자랑글이 아닌 살림글로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오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ㅅㄴㄹ


《샘그림문고 1 김영숙 만화작법》(김영숙, 샘, 1988.5.15.)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 민음사, 1987.3.30.)

《진흙소를 타고》(최승호, 민음사, 1987.4.15.)

《이 강산 녹음 방초》(박종해, 민음사, 1992.3.30.)

《내 무거운 책가방》(교육출판 기획실 엮음, 실천문학사, 1987.4.20.첫/1988.8.30.재판)

《풀빛판화시선 5 노동의 새벽》(박노해, 풀빛, 1984.9.25.)

《먼 바다》(박용래, 창작과비평사, 1984.11.5.첫/1988.7.5.재판)

《白衣從軍》(김성영, 횃불사, 1979.4.15.)

《三中堂文庫 356 뻐꾸기 둥지위를 날아간 사나이 (下)》(켄키지/김진욱 옮김, 삼중당, 1977.9.10.첫/1977.12.20.중판)

《한권의책 21 백범 일지》(김구, 학원사, 1986.7.1.첫/1990.10.31.8벌)

《성남지역실태와 노동운동》(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엮음, 민중사, 1986.7.10.)

《왜 그리스도인인가》(한스 큉/정한교 옮김, 분도출판사, 1982.2.22.첫/1983.4.20.재판)

《한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장주근 글·이인실 그림, 대한기독교서회, 1974.11.30.

《통일교실》(민성일, 돌베개, 1991.8.1.)

《丸 MARU 8月特大號 421호》(高野 弘 엮음, 潮書房, 1981.8.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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