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8.


《우주로 간 최초의 고양이 펠리세트》

 엘리사베타 쿠르첼 글·안나 레스미니 그림/이현경 옮김, 여유당, 2020.10.18.



다투면 서로 다친다. 어쩌면 다치고 싶기에 다툴는지 모른다. 싸우면 서로 아프다. 아무래도 아프고 싶으니 싸울는지 모른다. 서로 즐겁자면 사이좋게 놀 노릇이다. 서로 기쁘자면 오순도순 나눌 노릇이다. 놀이랑 나눔이 없는 하루라면, 스스로 다치거나 아프고 싶다는, 또 옆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려는 뜻이지 않을까? 《우주로 간 최초의 고양이 펠리세트》를 읽으며 마음 한켠이 갑갑하더라. 큰나라는 왜 큰나라끼리 다툴까? 작은나라는 왜 작은나라끼리 싸울까? 잘난 나라도 못난 나라도 없는데, 왜 서로 아끼면서 살가이 돌보는 길을 못 갈까? 미국에서 나라지기 뽑는 일을 지켜보는데, 왜 온갖 잘못이 불거지는지 아리송하다. 아니, 아리송하지는 않다. 돈·이름·힘을 거머쥐어 뒷돈·앞이름·막힘을 휘두르고 싶으니 잘못을 저지른다. 말꽃짓기(사전짓기)를 밤새 하며, 또 낮에도 신나게 하며 ‘미국 나라지기 뽑기 표흐름판’을 켜 놓았는데 알쏭한 셈이 춤추더라. 나만 봤나 했더니 다른 이들도 많이 봤다더라. 중국이 뒷돈을 대면서 어느 한쪽을 밀어주려 하는구나 싶던데, 우리나라 새뜸도 이 물결에 춤춘다. 중국 뒷돈이 제주섬이며 나라 곳곳 땅을 잡아먹는 짓만 걱정하지 말자. 뒷돈으로 장사하는 이는 사슬터(감옥)로 보내야지.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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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7.


《칸무리 씨의 시계공방 1》

 히와타리 린 글·그림/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2020.9.30.



홍성에서 벗이 찾아온다. 순천에서 동생이 꽃잔치(혼례식)를 하기에 벗님 어버이나 피붙이를 스물다섯 해 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단다. 나는 벗한테 저녁하고 호떡을 사주고, 벗은 나한테 보리술을 사주어 부름이(택시) 짐칸에 실어 준다. 저녁나절 고흥읍에서 살며시 보고 헤어지는데, 벗이란 자주 못 보더라도 마음으로 이어진 사이인 만큼, 또 다음에 만날 날을 헤아리면서 저녁별을 바라본다. 《칸무리 씨의 시계공방》 첫걸음을 읽는다. 이 만화책은 열세 살 어린이하고 함께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두걸음은 어떠하려나. 군더더기 같은 그림은 굳이 안 넣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몸을 씻는’ 그림을 왜 넣어야 할까? 안 넣어도 되잖아. 즐겁게 일하고서 가볍게 쉬고, 신나게 일하고서 마음껏 논다. 알뜰살뜰 일하고서 새삼스레 동무를 찾아가서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쉰다. 멀리 돌아다녀야 쉬는 길이 되지 않는다. 맛난 밥을 사먹어야 잘 쉬었다고 할 만하지 않다.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보고 구름이랑 소근대고 별님이랑 수다를 나눌 줄 알아도 넉넉히 쉰다. 바야흐로 겨울이 코앞이라는 맵찬 바람이 찾아오려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반바지에 반소매로 돌아다닌다. 왜냐하면, 반소매로도 즐겁고 시원하며 홀가분하니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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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6.


《안녕, 밥꽃》

 장영란 글·김휘승 그림, 내일을여는책, 2020.1.22.



어제 이웃집 할아버지가 굵다란 고구마를 한 꾸러미 주셨고, 오늘은 옆밭 할머니가 “저기, 집이 감저(고구마) 좀 캐 가시오. 나가 허리가 아파 캐질 못하겠구먼. 그란데 감저를 캐서 나눌라캤더만 지(쥐)가 다 파먹어부럿어. 어쩌까나. 한나도 안 나오것네.” 하고 말씀한다. 내내 고흥에서만 나고 자라며 지낸 할머니 말씨를 곰곰이 생각한다. 처음엔 ‘집이’라는 말씨가 아리송했지만, 글을 모르는 시골 분은 으레 ‘댁(宅)’ 아닌 ‘집’이란 낱말을 쓴다. “그 집 사람이”를 ‘집이’로 말씀하시더라. 아무튼 옆밭 할머니 말씀을 듣고 호미를 챙겨 파는데 거의 안 나온다. 밑감을 챙겨 손질하고 밥을 짓는다. 밥을 지으며 나오는 그릇이며 연모는 부지런히 설거지를 한다. 그냥 두면 설거지감이 수북하지.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그릇에 퍼서 먹는다. 무럭무럭 컸지. 아직 작은아이는 밥짓기 얼거리를 못 헤아리지만 더 지켜보면 되겠지. 《안녕, 밥꽃》은 우리가 누리는 풀밥을 빛꽃(사진)하고 글로 보여준다. 알뜰히 엮었구나 싶으면서 조금 아쉽다. 어떤 풀알을 누리는가를 꼼꼼히 담으려고 너무 애쓴 탓에 빛꽃이 엉성하다. 조금 더 부드러이, 가까이, 살가이, 포근히 다가서면 좋을 텐데. 그래도 서울 이웃님이 이 책을 잘 사귀면 좋겠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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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5.


《로봇과 일자리》

 나이절 캐머런 글/고현석 옮김, 이음, 2018.3.27.



작은아이가 어제부터 “고구마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주 큰 고구마. 그러면 숯불에 구워먹게요.” 하고 노래한다. 오늘 낮 이웃 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와서 “어, 최 선비, 맨날 애들한테 풀만 뜯어먹여서 애들이 크나? 괴기도 좀 먹여야지. 그리고 고구마도 좀 먹이소.” 하면서 한 꾸러미를 안기신다. 이웃 할아버지가 베푼 고구마는 내 팔뚝만큼 굵다. 작은아이 노랫소리가 이웃집까지 퍼졌을까? 해가 기울 즈음 작은아이는 가랑잎하고 대나무를 그러모아 불을 피운다. “재를 만들어야지! 재를 만들자!” 하고는 굵직한 고구마를 하나둘 묻는다. 한참 실랑이를 하는데 재가 썩 많지 않다. 처음으로 고구마굽기를 했으니 설익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 그러나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은아이 혼자 건사하면서 고구마굽기를 했는걸. “다음엔 좀더 잘 구워야겠어.” 하면서 누나가 찐 고구마를 냠냠냠. “Will Robots Take Your Job?”을 옮긴 《로봇과 일자리》를 읽었는데, 책상맡에서 글을 살피는 이들은 이렇게 ‘글로 글을 낳는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한다. 오늘날 로봇 아닌 살림이 얼마나 될까? 벌써 ‘로봇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이지 않나? 같이 누리고 함께 나아가려고 여기면, 풀꽃나무뿐 아니라 로봇하고도 얼마든지 이웃이 되리라 본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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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11.4.


《좋아서, 혼자서》

 윤동희 글, 달, 2019.12.30.



빨래터 아랫샘을 치운다. 어제는 바람이 되게 셌지만 오늘은 보드랍다. 빨래터 윗샘도 치워야겠지만 다에날 하기로 한다. 복닥복닥 집일을 하고 마을일까지 마치고서 함씽씽이(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간다. 전주 이웃님이 손전화로 닭집 꽃종이(쿠폰)를 보내 주었는데 시골에서도 바꿀 수 있나 궁금하다. 마침 꽃종이 닭집이 고흥읍에 있고, 되는지 물으니 된단다. 두 아이하고 곁님을 헤아려 한 마리를 더 시킨다. 그런데 부피가 참 작다. 이렇게 작은가? 값은 제법 되는데? 그래 그렇구나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함씽씽이는 천천히 달린다. 굽이길을 느긋하게 가니 좋다. 건널목 하나조차 없는 시골길이니 느슨히 가도 느리지 않다. 아이들을 재우고 하루를 돌아보며 《좋아서, 혼자서》를 떠올린다. 2000년이나 2010년 무렵만 해도 이러한 말은 섣불리 하기 어려웠다면, 2020년을 넘어서는 이즈음에는 이 말씨가 제법 퍼진다. 마땅한 노릇인데 스스로 즐거울 길을 가야 맞다. 다른 눈치 아닌 스스로 마음을 읽으면서 가면 된다. 책쓴님은 서울에서 스스로 좋은 길을 가겠지. 부디 그 길이 멋길보다는 푸른길이면 좋겠는데, 남한테 이런 길을 바랄 까닭 없이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스스로 푸른길을 가면 되겠지. 시골 밤하늘은 미리내잔치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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