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 누리집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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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 깁고 더하기
― 알쏭달쏭한 국어사전 돌림풀이는 언제까지?


  안타까운 노릇인데, 사람들이 말결을 잘 살피지 않고 아무렇게나 쓰는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실리곤 합니다. 사람들이 널리 쓰기 때문에 사전에 올림말로 실을 수도 있으나, 사람들이 ‘널리 잘못 쓰기’ 때문에 사전은 이를 바로잡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을 못하곤 해요. 아직 한국에서 한국말사전은 길잡이 노릇을 못하기 일쑤입니다. 이러다 보니, 한국말사전을 들출 적에 알쏭달쏭한 낱말이나 뜻풀이가 꽤 많습니다.

  ‘외갓집’이나 ‘처갓집’은 겹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외가·처가’는 틀림없이 ‘집’을 가리키니, 이 한자말 뒤에 ‘-집’을 붙일 수 없어요. 왜 ‘외갓집·처갓집’처럼 겹말을 쓸까요? 왜 이런 겹말을 한국말사전에 올림말로 실을까요? 왜 한국말사전은 이런 겹말을 사람들이 털어내거나 고쳐쓰도록 못 이끌까요?

  ‘외갓집·처갓집’처럼 겹말을 쓰거나 ‘초가집’처럼 겹말을 쓰는 까닭은 아무래도 ‘외가·처가·초가’라는 한자말이 ‘집’을 가리키는지 모르는 탓이 가장 크리라 봅니다. 이런 한자말이 ‘집’을 가리키는지 안다면 뒤에 ‘-집’을 안 붙이겠지요.

  국립국어원은 이 말썽거리를 풀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외갓집·처갓집’은 사이시옷을 붙이고, ‘초가집’은 사이시옷을 안 붙인다는 이야기만 합니다. 얄궂게 쓰는 말투를 슬기롭게 가다듬으려고 하는 데에는 마음을 못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
가루분(-粉) : 가루 상태로 만든 분
분가루(粉-) : 1. 화장품으로 쓰는 분의 가루 2. 분처럼 하얀 가루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가루분(-粉) :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해 바르는, 가루 상태의 분
분가루(粉-) : 1. 화장용(化粧用)으로 쓰이는 분의 가루 2.분처럼 하얀 가루

(북녘 조선말대사전)
가루분(-粉) : 가루로 된 분
분가루(粉-) : 1. 화장품으로 쓰는 분의 가루 2. 분처럼 하얀 가루


  ‘가루분’하고 ‘분가루’라는 겹말이 있습니다. 두 겹말 모두 한국말사전에 오릅니다. 뜻풀이를 보면 언뜻 두 낱말이 다른 자리에 쓰는구나 싶으나, 가만히 헤아리면 두 낱말은 같은 자리에 씁니다. “가루로 된 분”이든 “분의 가루”이든 똑같지요.
  그런데 말이에요, 한자 ‘粉’은 “가루”를 뜻합니다. ‘분 = 가루’요 ‘가루 = 분’입니다. 사람들이 ‘가루분·분가루’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이처럼 겹말로 얄궂게 쓴 지 오래되었기에 두 낱말을 한국말사전에 올릴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는 두 낱말을 슬기롭게 가다듬어서 올바로 쓰도록 잘 이끌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가루분 : → 얼굴가루 . 화장가루
분가루 : → 얼굴가루 . 화장가루
얼굴가루 : 얼굴을 가꾸려고 바르는 가루
화장가루 : 얼굴이나 살갗을 가꾸려고 바르는 가루


  얼굴에 바르는 가루라면 ‘얼굴가루’라 하면 됩니다. 화장을 하려고 바르는 가루라면 ‘화장가루’라 하면 돼요. 이제 슬기로우면서 즐겁게 새 낱말을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사람이 슬기로우면서 즐겁게 쓸 낱말을 새롭게 짓는 틀을 선보이기도 해야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반복하다(反復-) : 같은 일을 되풀이하다
되풀이하다 : 같은 말이나 일을 자꾸 반복하다. 또는 같은 사태를 자꾸 일으키다
거듭하다 : 어떤 일을 자꾸 되풀이하다
자꾸 : 여러 번 반복하거나 끊임없이 계속하여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반복하다(反復-) : 거듭해서 되풀이하다
되풀이하다 : 반복하여 행하다
거듭하다 : 1. (사람이 언행을) 다시 한 번, 또는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다 2. (시간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다
자꾸 : 1.잇달아서 여러 번 2.끊이지 않고

(북녘 조선말대사전)
반복하다(反復-) : 1. 되풀이하거나 거듭하다
되풀이하다 : 같은 일이나 행동 또는 말을 거듭하는것
거듭하다 : 자꾸 되풀이하거나 거듭 이룩하다
자꾸 : 1. 잇달아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줄곧 2. 정도가 더욱더 심하게


  한자말 ‘반복하다’는 “되풀이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 ‘되풀이하다’는 “반복하다”를 뜻한다고 해요. 돌림풀이입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퍽 쉬운 낱말인 ‘반복하다·되풀이하다’일 테니, 두 낱말을 굳이 한국말사전을 뒤져서 말뜻을 알아보려는 사람이 없을 수 있어요. 이러다 보니 한국말사전은 무척 쉬운 낱말을 이렇게 돌림풀이로 다루곤 합니다. 너무 쉬운 탓에 너무 쉽게 다루거나 너무 쉽게 지나친다고 할 만해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반복하다’를 “거듭해서 되풀이하다”로 풀이하는데, ‘거듭하다’는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다”로 풀이해요. 이는 돌림풀이일 뿐 아니라 겹말풀이입니다. 도무지 말뜻을 제대로 짚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저 알쏭달쏭할 뿐입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반복하다 : → 되풀이하다
되풀이하다 : 같은 말·일·몸짓을 똑같이 하거나 이어서 하다
거듭하다 : 1. 어떤 일을 하고서 더 하다 2. 어떤 일을 이어서 똑같이 하다
자꾸 : 1. 여러 번 똑같이 하면서 이어 2. 더욱 크게 3. 어쩔 수 없이 더욱


  한자말 ‘반복하다’를 쓰지 말자고 하기보다는 ‘반복하다 → 되풀이하다’처럼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되풀이하다’라는 낱말을 제대로 차근차근 풀이해 주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되풀이하다·거듭하다’가 돌림풀이가 안 되도록 잘 가다듬어야겠지요. 이 세 가지 낱말을 다룰 적에 나오기도 하는 ‘자꾸’라는 낱말도 돌림풀이나 겹말풀이가 안 되도록 잘 추슬러 주고요.


(표준국어대사전)
의미(意味) : 1. 말이나 글의 뜻 2. 행위나 현상이 지닌 뜻
뜻 : 1. 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 2. 말이나 글, 또는 어떠한 행동 따위로 나타내는 속내 3. 어떠한 일이나 행동이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
뜻하다 : 1. 무엇을 할 마음을 먹다 2. 미리 생각하거나 헤아리다 3. 어떤 의미를 가지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의미(意味) : 1. 어떤 말이나 글이 나타내고 있는 내용 2.어떤 사물이나 일, 행동 따위가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 3.어떤 일이나 행동 따위에 담겨 있는 뜻이나 의도
뜻 : 1. 말이나 글 또는 어떠한 행동으로 나타내는 내용 2. 무엇을 바라거나 이루겠다고 속으로 품고 있는 마음 3.어떠한 일이나 행동을 하는 가치나 중요성
뜻하다 : 1. 가리켜 나타내다 2. 미리 헤아려 짐작하거나 기대하다 3. 할 생각을 가지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의미(意味) : 1. 말이나 말마디 등이 담고있는 내용 2. 말이나 행동이 담고있는 속심이나 의도 3. 어떤 사물현상이 담고있는 의의나 가치 4. = 뜻
뜻 : 1. 무엇을 하려고 속으로 먹은 마음 2. 말이나 글 또는 그밖의 어떤 행동으로 나타내는 내용 3. (어떤 일이나 행동이 가지는) 그럴만한 까닭이나 의도
뜻하다 : 1. 어떤 뜻을 품거나 마음을 먹다 2. 어떤 내용의 뜻을 가지거나 나타내다 3. 미리 헤아리거나 생각하다


  우리가 사전을 찾아보려 한다면 ‘뜻’을 제대로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말뜻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짚으며, 제대로 헤아리고 싶기 때문이에요. 뜻도 모르고 잘못 쓰는 말이 아닌, 뜻을 알며 슬기롭고 즐겁게 하는 말이 되도록 한국말사전을 곁에 두면서 읽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뜻·뜻하다’를 찾아보면 《표준국어대사전》은 ‘의미’라는 한자말을 쓰기도 합니다. 한자말 ‘의미’를 찾아보면 ‘뜻’을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또 다른 의미의 자원을 뜻했습니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는데, 이 말마디는 “또 다른 뜻의 자원을 뜻했습니다” 꼴이 되어 겹말입니다. ‘의미 → 뜻’인 줄 미처 몰랐기에 이처럼 겹말을 쓴 셈이에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의미 : →  뜻
뜻 : 1. 무엇을 하겠다고 품는 생각이나 꿈 2. 어떤 말·글·움직임·몸짓으로 나타내는 생각 3. 어떤 일·움직임·말에서 드러나는 값어치나 보람
뜻하다 : 1. 무엇을 하겠다는 뜻·생각·마음·꿈을 품다 2. 어떤 줄거리나 이야기를 가리키거나 나타내다 3. 미리 생각하다


  한국말사전은 ‘의미 → 뜻’으로만 다루어도 되리라 느낍니다. 아니, 이렇게 다룰 적에 뜻이나 느낌이 한결 또렷하겠지요. ‘뜻·뜻하다’를 풀이할 적에는 한자말 ‘의미’를 엉뚱하게 넣어 겹말풀이가 되지 않도록 잘 살펴야겠어요.

  말뜻을 바르게 짚도록 돕는 사전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말결을 슬기롭게 짚도록 이끄는 사전일 적에 즐겁게 펼쳐 읽을 만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슬기롭고 즐겁게 배우도록 이끄는 한국말사전이 되기를 빕니다. 2016.1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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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돌림풀이와 시골을 얕잡는 말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2] '수확하다·거두다, '손수·직접'


말을 익힐 적에는 사전을 곁에 놓습니다. 영어를 익힐 적에는 영어사전을 곁에 놓고, 일본말을 익힐 적에는 일본말사전을 곁에 놓습니다. 그러면 한국말을 익힐 적에는 어떻게 할까요? 마땅히 한국말사전을 곁에 놓을 텐데, 정작 한국사람 가운데 한국말사전을 곁에 놓고서 한국말을 익히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사전을 어떻게 찾는가를 가르칩니다만, 어린이가 중학교에 들고부터는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일이 매우 드물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입시에 얽매인 탓도 크지만, 학교나 사회에서 어린이와 푸름이가 한국말을 제대로 익히도록 북돋우려는 흐름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표준말하고 띄어쓰기에 지나치게 얽매이면서 막상 말을 말답게 살피고 익히도록 이끌지는 못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1. 익은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1. 곡식이나 열매 따위를 한데 모으거나 수확하다
거두다 : 1. 곡식이나 열매 따위를 수확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익은 것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한데 모으거나 수확하다
거두다 : 5. 수확하여 한곳에 모으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수확하다(收穫-) :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2. 수확을 보다
거두다 : 2. (수확, 성과, 승리 등을) 얻다

나락이 익어 즐겁게 거두는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 시골에서는 나락을 베느라 부산합니다. 가을에 나락을 베는 일을 두고 '가을걷이'라 하는데, <표준국어대사전>은 '가을걷이 : = 추수(秋收)'로 다룹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가을걷이 =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임'으로 다룹니다. 가을걷이는 으레 벼를 베는 일을 가리키고, 시골에서는 '벼베기'라는 낱말도 쓰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벼베기'라는 낱말이 안 실립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벼베기'를 올림말로 다루고 "다 익은 벼를 낫 따위로 베어 거두어들이는 일"로 풀이합니다.

농협이나 관청에서는 흔히 '수확'이라는 한자말을 써요. 남북녘 사전에서 한자말 '수확'을 찾아보면 모두 '거두어들이다'로 풀이합니다. 그래서 '거두어들이다'를 다시 찾아보면 '수확하다'나 '수확을 보다'로 풀이합니다. 돌림풀이예요. 비슷한말인 '거두다'도 '수확하다'로 풀이하는 사전들입니다.

이 같은 돌림풀이를 털어야겠어요. 먼저 '수확하다(收穫-) : → 거두어들이다'로 다루어 봅니다. 뜻이 같은 한자말하고 한국말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한국말을 알맞게 살펴서 쓰도록 사전에 도와야지 싶습니다. 다음으로 '거두어들이다·거두다'에서는 '거두어들이다 = 거두다 + 들이다' 얼거리라는 대목을 살펴봅니다. '거두어들이다'에는 두 가지 몸짓이 깃든다고 여겨야 합니다. '거두다'는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는 몸짓으로 얻는 모습을 나타낸다는 뜻을 밝히고, '거두어들이다'는 '거두다'를 한 몸짓에서 '들이다'를 하는 몸짓을 붙여 주면 됩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수확하다(收穫-) : → 거두어들이다
거두어들이다 : 1.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서 얻으며 한곳에 모으다
거두다 : 1. 곡식이나 열매를 베거나 따서 얻다

가을걷이나 벼베기는 '시골일'입니다. 시골에서 하기에 시골일입니다. 이는 '시골살림'이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하는 일을 흔히 '농업·농사'라는 한자말로만 나타내지만, 시골에서는 '들일·논일·밭일'처럼 말합니다. 들일하고 논일하고 밭일을 아우르자면 '시골일'이라 할 만하고, 시골에서 삶을 짓는 모습은 '시골살림'이라는 낱말로 새롭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몇 가지 낱말을 살피면 뜻밖에 모두 깎아내리거나 얕보는 느낌이 깃든다고 합니다. '시골뜨기' 같은 말을 쓰기도 하는데, '-뜨기'를 붙일 적에는 얕잡는 느낌을 담을 테지요. 시골뜨기하고 맞물려 '서울뜨기' 같은 낱말도 써요. '서울뜨기'는 서울사람을 얕잡는 느낌을 담습니다. 그렇지만 '-내기'를 붙일 적에는 어느 고장에서 나고 자랐다는 뜻과 느낌만 밝혀야지 싶습니다. '시골내기·서울내기'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하고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 나타내는 낱말로 다루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시골'을 뜻하는 한자 '村'을 붙여 '촌스럽다'라 하면 어수룩하거나 엉성한 모습을 가리킨다고 사전에서 다룹니다. 한자 '촌'을 쓰지 않은 '시골스럽다'를 놓고도 시골다운 모습을 얕잡는 뜻을 붙이는 사전이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촌닭(村-) : 1. 시골의 닭 2. 촌스럽고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촌스럽다(村-) : 어울린 맛과 세련됨이 없이 어수룩한 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보기에 시골의 분위기와 같은 데가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을 이르는 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촌닭(村-) : 1. 촌에서 키우는 닭 2.촌스럽고 어수룩하면서 생기가 없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촌스럽다(村-) : 세련된 맛이 없이 엉성하고 어색한 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세련되지 못하고 숫되고 어색한 데가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북녘 조선말대사전)
촌닭(村-) : 촌에서 기르는 닭
촌스럽다(村-) : 1. 촌맛이 나는데가 많다 2. 세련된 맛이 없고 어수룩해 보이는데가 있다
시골스럽다 : x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

'촌닭·촌스럽다' 같은 낱말은 화살표를 써서 '시골닭·시골스럽다'를 찾아보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시골닭' 뜻풀이에서는 사람들이 '시골스러움'을 함부로 얕잡는 말투가 알맞지 않다는 대목을 밝혀 볼 수 있습니다. '촌맛·촌티' 같은 낱말도 화살표를 써서 '시골맛·시골티'를 찾아보도록 이끌고, '시골맛·시골티'에 시골을 얕잡거나 깎아내리려는 뜻은 털어내고, "시골스러운 맛"하고 "시골스러운 티"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풀이를 붙여야지 싶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촌닭(村-) : → 시골닭
촌스럽다(村-) : → 시골스럽다
시골닭 : 1. 시골에서 키우거나 시골에서 사는 닭 2. 도시스럽지 못한 사람을 보며 어수룩하다고 놀리려는 마음으로 도시사람이 쓰는 말이나, 이는 이웃을 깎아내리려는 얄궂은 쓰임새이다
시골스럽다 : 시골다운 느낌이나 맛이 있다
시골내기 : 시골에서 나서 자란 사람

사전은 모든 낱말을 담아내려는 광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낱말을 담아내려고 하는 뜻이 나쁘지는 않으나, 더 많은 낱말을 사전에 담으려 하기 앞서, 말뜻하고 말결하고 말넋을 찬찬히 살피는 구실을 먼저 해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말을 익히도록 북돋우고, 사람들이 말을 사랑하면서 손수 가꾸도록 이끄는 구실을 슬기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수'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남북녘 모두 '손수'를 풀이하면서 '직접'이라는 한자말을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직접'을 풀이할 적에 '개재'라는 한자말을 쓰는데, 다시 사전을 살피면 '개재'는 고쳐쓸 낱말로 다룹니다. 그렇다면 '개재'라는 한자말로 '직접'을 풀이한 모습은 잘못이 될 테지요.

(표준국어대사전)
손수 : 남의 힘을 빌리지 아니하고 제 손으로 직접
직접(直接) : 중간에 아무것도 개재시키지 아니하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것들 사이에 끼여 있음. '끼어듦', '끼여 있음'으로 순화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손수 : 직접 자기 손으로
직접(直接) : 중간에 아무것도 끼거나 거치지 않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일이나 사실에 어떠한 요소가 사이에 끼여 있음

(북녘 조선말대사전)
손수 : 1. '자신의 손으로 직접'의 뜻으로 높이어 부르는 말 2. 제 손으로 직접
직접(直接) : 중간에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재(介在) : 어떤 관계를 가진 둘사이에 제삼자가 끼여있는것

예전에는 누구나 그냥 글씨를 쓰고 빨래를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따로 '손글씨'나 '손빨래'라는 낱말을 씁니다. '손글씨'는 아직 사전에 못 오르지만 '손빨래'는 어느새 사전에 오릅니다. 곧 '손글씨'도 사전에 오르리라 봅니다. 이뿐 아니라 '손-'도 따로 앞가지로 다루어서 "손수 하는 일"을 가리키는 자리에 붙여서 쓰도록 이끌 만해요.

이러한 쓰임새를 헤아린다면 '손수' 말풀이는 퍽 쉽게 손질해 볼 수 있습니다. 한자말 '직접'도 뜻풀이를 손질해서 '손수'나 '바로' 같은 한국말을 찬찬히 생각해서 쓰도록 이끌 수 있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손수 : 다른 힘을 빌리지 않고 제 손으로
직접(直接) : 사이에 아무것도 끼거나 거치지 않고. '바로·곧바로·손수' 같은 뜻으로 쓴다
개재·개재하다(介在-) : → 끼어들다·끼다

한국은 한국말사전을 한국사람 손으로 지은 지 얼마 안 됩니다. 게다가 한국말사전을 지은 사람들은 몇 없기도 합니다. 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거나 가꾸는 일을 하는 사람이나 모임은 무척 가난하거나 힘든 길을 걷기까지 합니다.

부피가 커다랗거나 번듯한 '큰 사전'은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나 삼백 해쯤 지나서 하도록 뒷사람한테 맡겨야지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살피고 사랑하고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지고 손질하는 데에 조금 더 힘을 쓴다면 한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바탕이 서지 못한 채 올림말 숫자만 많은 사전이라면 오늘날에도 앞날에도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껴요. 오늘 우리는 '더 큰 사전'보다는 '바탕이 제대로 선 작은 사전'부터 제대로 엮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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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풀이 깁고 더하기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1] 늘·언제나·항상·변함없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나오는 사전을 살피면 말풀이를 낱말마다 따로따로 다루었다고 느낍니다. 이 때문에 비슷한말을 다루면서 돌림풀이(순환정의)나 겹말풀이(중복표현)가 곳곳에 나타났고, 오늘날에도 이 모습은 그대로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슷한말을 한자리에 모아서 서로 겹치거나 빙빙 돌지 않도록 다스린 뒤에 따로따로 다루어야 할 텐데, 비슷한말 꾸러미를 모두어서 다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지금(只今) : 말하는 바로 이때

현재(現在) : 지금의 시간

이때 : 바로 지금의 때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지금(只今) : 말하고 있는 바로 이때

현재(現在) : 1. 지금 이 시점에 2.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시간

이때 : 바로 앞서 언급한 사건이 일어난 때


  그래서 ‘지금’을 풀이하며 ‘이때’를 쓰고, ‘이때’를 풀이하며 ‘지금’을 쓸 뿐 아니라, ‘현재’를 풀이하며 ‘지금’을 씁니다. 이 같은 말풀이라면 어느 누구도 말뜻이나 말결이나 말느낌을 짚기 어렵습니다. 이뿐 아니라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사전하고 멀어지도록 하겠지요.


(표준국어대사전)

도구(道具) : 일을 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연장 : 어떠한 일을 하는 데에 사용하는 도구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도구(道具) : 어떤 일을 할 때 쓰는 연장을 통틀어 이르는 말

연장 : 무엇을 자르거나 박거나 뚫거나 빠개는 데 쓰는 도구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돌림풀이는 토박이말하고 한자말 사이에서 가장 자주 드러납니다. ‘도구’를 ‘연장’으로 풀이하고, ‘연장’을 ‘도구’로 풀이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 같은 돌림풀이는 어른이 보는 사전뿐 아니라 어린이가 보는 사전에서도 엇비슷하게 드러납니다.


  돌림풀이를 없애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뜻이 같다 싶은 낱말이라면 한 낱말을 기둥말로 삼고, 다른 낱말은 이 한 낱말을 살피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큰길’하고 ‘대로’를 다음처럼 다루는데, 같거나 비슷하게 쓰는 토박이말하고 한자말 사이에서는 이 같은 말풀이가 알맞으리라 봅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큰길’을 풀이할 적에는 ‘너비’를 쓰고 ‘대로’를 풀이할 적에는 ‘폭(幅)’을 쓰지만 ‘대로 = 큰길’로 다루어도 되리라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큰길 : 크고 넓은 길

대로(大路) : = 큰길


(고려대한국어대사전)

큰길 : 너비가 넓은 길

대로(大路) : 폭이 넓은 길


  ‘도구’와 ‘연장’ 사이에서도 ‘연장’을 기둥말로 삼고 ‘도구 : = 연장’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 돌림풀이가 자꾸 나오는 까닭은 비슷한말을 처음부터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니, 앞으로는 이 대목을 눈여겨보아야지 싶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늘 : 계속하여 언제나

언제나 : 모든 시간 범위에 걸쳐서. 또는 때에 따라 달라짐이 없이 항상. 어느 때가 되어야

노상 : 언제나 변함없이 한 모양으로 줄곧

줄곧 : 끊임없이 잇따라

한결같다 :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 여럿이 모두 꼭 같이 하나와 같다

항상(恒常) : 언제나 변함없이

변함없다(變-) : 달라지지 않고 항상 같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늘 : 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언제나 : 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노상 : 1. 언제나 변함이 없이 2. 한 모양으로 늘

줄곧 : 끊임없이 죽 잇달아

한결같다 :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이 같다

항상(恒常) : 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변함없다(變-) : 이전과 달라지지 않고 같다


  토박이말인 ‘늘·언제나·노상·줄곧·한결같다’하고 한자말인 ‘항상·변함없다’를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늘 = 언제나’로 풀이하고 ‘언제나 = 항상’으로 풀이하며 ‘노상 = 언제나 변함없이’로 풀이하고 ‘한결같이 = 변함없이’로 풀이하지요. 이러면서 ‘항상 = 언제나’로 풀이하고 ‘변함없이 = 항상’으로 풀이하는 꼴입니다. 뜻이 비슷하지만 쓰임새나 결이 다른 여러 낱말인데, 사전 말풀이는 아주 뒤죽박죽입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늘’하고 ‘언제나’가 뜻풀이가 같으며, ‘노상’은 ‘늘’로 풀이합니다. ‘한결같다’는 ‘변함없다’로 풀이하고, ‘항상’은 ‘한결같다’로 풀이해요. 비슷하지만 다른 낱말을 제대로 가르지 못합니다.


  말을 다루는 사전이라면 말풀이와 보기글만 다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낱말마다 어떤 얼거리요 꾸러미인가를 헤아려서 낱낱으로 달리 쓰는 길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표준말만 밝히는 구실에서 그치지 말고, 낱말마다 어떤 숨결이 깃드는가를 밝혀야지 싶어요. 즐겁게 말하면서 생각을 가꾸도록 북돋우는 사전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늘 : 끊이지 않고 이어서. 드물지 않게 자주. 남다른 때가 아닌 여느 때에

언제나 : 어느 때이든 달라지지 않고 똑같거나, 모든 때에 걸쳐서. 어느 때가 되어야

노상 : 달라지지 않고 한 가지 모습으로 그대로

줄곧 : 어떤 일·모습·흐름·끝에서 더 나아가거나 잇거나 따라서

한결같다 :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똑같다. 여럿이 마치 하나인 듯이 같다

항상(恒常) : → 언제나

변함없다(變-) : → 한결같다


  제 나름대로 ‘늘·언제나·노상·줄곧·한결같다’하고 ‘항상·변함없다’를 놓고 말풀이를 손질해 보았습니다. ‘항상·변함없다’는 ‘→’나 ‘=’로 다루면 되리라 봅니다.


  사전은 어려운 낱말을 찾아보는 몫도 맡겠지만, 흔히 쓰는 말을 제대로 가누어 쓰도록 이끄는 몫부터 슬기롭게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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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0일, 전북 삼례에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조촐히 이야기마당을 나눕니다.

이 자리에 모일 분들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를

미리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


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

―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



  얼마 앞서 어느 분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쓴 책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을 읽으시기는 했는데, 이 책에 나온 대로 말을 고쳐서 쓰기는 힘들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자리에서 어느 말을 고쳐서 쓰기 어려우셨느냐 하고 여쭈었어야 했는데, 다른 분이 함께 계셨기에 미처 묻지 못하고 지나갔습니다.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열두 살 눈높이에 맞추어 쓴 글이고, 청소년이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말을 새롭게 배우기를 바라는 뜻으로 썼어요. 그러니 ‘청소년 아닌 어른’이 이 책에 나온 이야기가 어렵다고 들려준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떤 말이든 새롭게 가르쳐 주면 그자리에서 곧장 새롭게 배우는데, 어른은 어떤 말이든 아무리 새롭게 가르치고 또 가르쳐 주어도 그자리뿐 아니라 그 뒤로도 좀처럼 새롭게 배우지 못하시더군요.


  이때에 내 모습을 문득 돌아봅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 시골살림을 얼마나 새롭게 배우느냐 하고 말이지요. 새롭게 배운 뒤에는 이렇게 얻은 배움을 살림에 얼마나 받아들이느냐 하고 말이지요. 한두 번쯤 잘 받아들이다가도 서너 차례쯤 될 즈음 어느새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않느냐 하고 말이지요.


  우리는 말만 새롭게 써야 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말은 생각을 나타내는 소릿결이니, 말을 새롭게 쓰려고 한다면, 생각을 새롭게 가꾸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몸짓을 새롭게 가다듬으려 한다면, 몸짓에서 비롯하는 살림살이를 새롭게 돌보려고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나 말뿐 아니라 모든 몸짓과 삶과 살림을 늘 새롭게 추스르면서 하루하루 누린다고 할 수 있어요. 말도 생각도 몸짓도 살림도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지 않는다면 즐거움이나 기쁨이 찾아들지 않는다고도 할 만하다고 봅니다.


  어제 먹은 맛난 밥은 어제 먹은 밥이에요. 오늘은 오늘 새로운 밥을 먹어야 합니다. 어제 맛난 밥을 먹었으니 어제 맛본 밥만 떠올리면서 오늘 굶어도 되지 않아요. 하루쯤 맛난 밥을 먹었으니 열흘이나 보름쯤 굶어도 되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할 테지요? 날마다 맛난 밥을 먹어야 해요. 이처럼 날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말을 할 줄 알아야 해요. 날마다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몸짓으로 살림을 가꾸는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 줄 알아야 해요.


  고쳐쓰기 어려운 말이 있을까요? 있다고 여긴다면 있고, 없다고 여긴다면 없어요. 고쳐쓸 수 없는 말이 있을까요? 있다고 여기니까 있고, 없다고 여기니까 없어요.


  우리는 바로 이 대목을 잘 살펴서 알 수 있어야지 싶어요. 나 스스로 내 말투와 말버릇과 말결과 말놀림과 말넋과 말삶을 새롭게 가꾸려고 하는 마음이라면, 나는 어제까지 쓰던 모든 내 말투·말버릇·말결·말놀림·말넋·말삶을 내려놓거나 버릴 수 있어요. 이러면서 아주 새로운 말을 쓸 수 있어요.


  그렇다고 외국말이나 외계말을 쓰자는 소리는 아니에요. 낡거나 어설픈 모든 말을 걷어치운 뒤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말로 내 마음을 살찌울 수 있다는 소리예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누구나 삶과 살림과 사랑을 오늘부터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하려고 하니까 하지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못하고요. 도시를 떠나겠다는 생각은 으레 했지만 도시를 못 떠나는 사람들은 아직 스스로 ‘제대로 생각하지 않’은 탓이에요. 바쁘다는 핑계나 아직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도시살이가 ‘살 만하고 재미있으며 즐겁기’ 때문이지요. 도시살이가 ‘살 만하지 않고 재미없으며 안 즐겁다’면 바로 그만두겠지요.


  아이들을 보셔요. 아이들은 할 만하지 않은 놀이는 조금도 안 합니다. 아이들은 재미없는 놀이는 아무리 시켜도 안 합니다. 아이들은 안 즐거운 놀이는 아예 안 쳐다보아요.


  이 말을 써야 옳지 않습니다. 저 말을 안 쓰니까 그르지 않습니다. 이 말을 쓸 적에는 이 말과 얽힌 삶을 겪습니다. 저 말을 쓰는 동안에는 저 말하고 맞물린 살림을 누립니다.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나 쓴다고 할 적에는 생각도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입니다. 살림도 아무렇게나 한다는 뜻이고요. 말을 잘 가리고 살펴서 쓴다고 할 적에는 생각도 잘 가리고 살펴서 한다는 뜻입니다. 살림도 이와 같을 테고요.


  그러나 우리가 쓸 말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 들어맞는 말’도 아닙니다.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말’도 아니에요. 우리가 쓸 말은 ‘내 생각을 슬기롭게 드러낼 수 있는 즐거운 살림을 지으면서 아름답게 사랑하는 하루를 마음껏 밝히는 기쁜 웃음이 묻어나는 말’이어야지 싶습니다.


  저는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서 바로 이 대목을 더 도드라지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엮어 보았습니다. 비슷한말을 꾸러미로 묶어서 차근차근 살피면서 생각을 더 깊고 넓게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다 다르게 쓰는 까닭이 있는 말을 새롭게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습니다.


  저는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어요. 이 책은 이름처럼 ‘숲에서 말을 살린다’고 하는 이야기를 다루어요. 우리가 늘 쓰면서 언제나 마음에 담을 말이란 ‘숲이 한결같이 숲’이듯이 ‘말이 한결같이 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적어 보려 했습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잠든 뭔가 대단한 말을 캐내어서 쓰자는 뜻이 아니에요. 가장 수수한 말을 가장 즐겁게 쓰자는 뜻입니다. 가장 투박한 말을 가장 곱게 쓰자는 뜻이에요.


  풀을 풀이라 하고 꽃을 꽃이라 하며 나무를 나무라 합니다. 하늘을 하늘이라 하고 바다를 바다라고 하며 집을 집이라고 합니다.


  뭔가 좀 말이 안 된다고 느끼실 수 있을까요? 풀, 꽃, 나무, 하늘, 바다, 집 같은 수수한 낱말을 들었는데, 이 수수한 낱말을 놓고 한국 사회에서는 그야말로 온갖 한자말하고 영어가 퍼져요. 수수한 말로 수수한 생각을 짓고, 이 수수한 생각에서 스스로 즐거우면서 새로운 살림을 꽃피울 수 있을 텐데, 온갖 한자말하고 영어로 뒤범벅을 이루니, 머리에 자질구레한 지식만 가득 채우는 꼴이 되기 일쑤예요.


 + + +


  저는 이 자리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입니다. 둘째는,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입니다.


  ‘시골’은 사람이 가꾸어 지내는 보금자리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숲’은 사람 곁에 있으면서 사람을 사랑하는 숨결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시골숲’이라 할 적에는 사람이 스스로 가꾸고 보살필 뿐 아니라 사람을 가꾸어 보살펴 주는 따사로운 숨결이 늘 어우러진다고 하는 대목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그냥 도시하고 멀리 떨어진 시골이 아니라, 숲이 함께 있고 숲을 늘 가꾸며 사랑할 수 있는 ‘시골숲’이어야지 싶고, 이 시골숲에서 우리는 저마다 ‘숲집(숲을 이루는 집)’을 지어야지 싶어요.


  시골숲에서 아이랑 누리는 새로운 말이란,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어버이와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말을 새롭게 짓고 생각해서 물려줄 뿐 아니라 어버이와 어른 스스로 즐겁게 누리자는 이야기입니다. 물려줄 수 없는 말은 처음부터 쓰지 말자는 뜻이에요.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짓고,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집에 두면서 살자는 뜻이에요. 물려줄 만한 말을 즐겁게 아름답게 쓰면 아이들은 이 말을 저절로 배울 수 있어요.


  어른으로 깨어나는 말을 배우기란 아직 어려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학교를 너무 오래 다녔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더 높은 학교를 보내려고 하는 시험공부를 시키고, 마지막 대학교에서는 회사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공부를 시켜요.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사람되는 공부나 사랑짓는 공부나 살림하는 공부는 가르치지 못해요. 지식만 가르치고 책만 외우도록 시켜요.


  우리는 한국사람이지만 막상 학교를 다닐 적에는 ‘한국말을 배운 적’이 없다시피 합니다. ‘국어 수업’은 있되 ‘말을 배우지’는 못해요. 이리하여 학교를 오래 다닌 분이나 지식인이나 학자나 작가는 ‘이녁 몸과 마음에 길든 말투’를 쉽게 떨치지 못합니다. 익숙한 대로 글을 쓰거나 말을 하고 말아요. 어른답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고 ‘이녁 스스로 익숙한 대로’만 말을 하거나 글을 써요.


  나이를 많이 먹기에 어른이 되지 않아요. 나이만 많이 먹는 사람은 ‘철딱서니없는’ 사람입니다. 한자말 ‘부지’를 붙여 ‘철부지’라고도 하지요. 어른이란 ‘철이 제대로 든 슬기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에요. 시집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았기에 어른이나 어버이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철이 들어야 어른이고, 스스로 슬기롭게 살림을 지어야 어버이입니다. 말을 비롯해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지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일 때에 비로소 어른이거나 어버이예요.


  그러나 이 대목을 한국 사회는 거의 안 가르치거나 못 가르쳐요. ‘말’이란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말 하나는 아주 작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모든 삶과 살림과 사랑으로 나아가는 밑돌입니다. 모든 사회와 마을과 집은 ‘말을 하면’서 이루니까요. 말을 슬기로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쓰는 뜻은 ‘한국말 또는 토박이말을 아끼거나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말을 슬기로우면서 즐겁고 아름답게 쓰는 뜻은 ‘내 넋을 슬기롭게 깨우치고 내 몸을 즐겁게 다스리며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웃음꽃이 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말이나 더 나은 말은 없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는 말이 있습니다. 더 나쁜 말이나 덜 떨어진 말은 없습니다. 언제나 한 걸음씩 새로 내딛으면서 말을 하나씩 배웁니다. 삶자리가 시골이든 도시이든, 마당이 있는 집이든 없는 집이든,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슬기로운 숨결을 말 한 마디에 담아서 즐겁게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7.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말넋/말노래 .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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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93 빛, 빛깔, 빛결, 빛살



  지구별에서 빛은 해님과 함께 나타납니다. 해가 뜨면서 빛이 나타나는데, 빛은 볕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리하여 ‘햇빛·햇볕’을 말합니다. 햇빛이 퍼질 적에는 아주 빠르게 퍼집니다. 햇빛이 퍼지는 줄기, 이를테면 빛줄기(햇빛줄기)는 따로 ‘햇살’이라 합니다.


  우리는 ‘빛의 삼원색’이나 ‘색의 삼원색’을 말하면서 ‘빛’과 ‘색(色)’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빛’과 ‘색’을 제대로 갈라서 쓰는 사람이 드물고, 왜 ‘삼원색’을 ‘빛’과 ‘색’으로 나누는가를 알려 하는 사람이 드물며, 이렇게 가르는 잣대가 맞는지 살피는 사람이 드뭅니다.


  한국말사전에서 ‘색(色)’을 찾아보면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으로 풀이합니다. ‘색(色)깔’을 찾아보면, “= 빛깔”로 풀이합니다. ‘빛깔’을 찾아보면 “물체가 빛을 받을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그 거죽에 나타나는 특유한 빛”으로 풀이합니다. ‘빛’을 찾아보면 “1. 시각 신경을 자극하여 물체를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전자기파 2. 물체가 광선을 흡수 또는 반사하여 나타내는 빛깔”로 풀이합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오는 말풀이만 살피더라도 ‘色’이나 ‘色깔’이라는 낱말은 뜬금없거나 뚱딴지 같은 줄 알 만합니다. 이런 한자말이나 엉터리 낱말은 쓸 까닭이 없습니다. ‘빛’에서 ‘빛깔’이 나옵니다. ‘빛’은 온누리 모든 것을 알아보도록 이끄는 ‘전자기파’이고, ‘빛깔’은 빛을 받으면서 드러나는 알록달록한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이 대목을 제대로 가르고 살펴서 말해야 했습니다. 어설프게 ‘色깔’ 같은 낱말을 억지로 짓지 말아야 했고, ‘色’이라는 외국말(한자말)을 한국말로 똑똑히 옮겨서 써야 했습니다.


  ‘빛살’은 “빛 + 살”이면서, 빛이 흐르는 줄기(빛줄기)를 나타냅니다. 화살이나 물살처럼, 빛살입니다. ‘빛깔’은 “빛 + 깔”이면서, 빛이 이루는 모습(꼴)을 나타냅니다. 맛깔이나 때깔처럼, 빛깔입니다.


  ‘빛’과 ‘빛깔’이라는 두 가지 낱말만 써야 합니다. 괜히 ‘色’과 ‘色깔’이라는 낱말을 섞으니 뒤죽박죽이 되고 말아요. 그러면 ‘색종이’나 ‘색연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빛종이·빛깔종이’나 ‘빛연필·빛깔연필’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사람들 입과 손과 귀에 많이 굳었다 하더라도, 어른들 입과 손과 귀에 굳었을 뿐입니다. 아이들 입과 손과 귀에 굳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굳어서 딱딱하고 메마른 어른’ 틀에 맞추어 말을 뒤트는 짓을 그쳐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이 열린 아이’ 삶에 맞추어 말을 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말을 바르고 아름답게 쓰자는 뜻보다 ‘삶을 제대로 세우고 슬기롭게 갈고닦아 넋을 제대로 다스리자’는 뜻으로 낱말을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서 제대로 쓰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쓸 말은 ‘빛의 삼원색’이나 ‘색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빛’과 ‘빛깔’로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써야 맞지만, 자칫 헷갈릴 수 있으니, ‘빛’을 ‘빛살’로 바꾸어서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빛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세 바탕빛살’이며 ‘세 빛살’이고 ‘빛살바탕’입니다. ‘세 빛살’은 ‘빨강·푸름·파랑’입니다. 빨강은 “온 목숨”을 나타냅니다. 온 목숨은 “따뜻하게 흐르는 물”인 피를 품습니다. 이러한 물(피, 불물)을 몸에 담은 목숨은 ‘사람’과 ‘열매(알)’입니다. 모든 열매가 빨간 빛은 아니지만, 빨강이라는 빛으로 목숨을 이야기합니다. 푸름은 “풀과 나무와 숲”을 나타냅니다. 나뭇줄기는 흙빛을 닮으나, 나무에 매다는 잎이 풀과 같은 빛이고,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숲도 푸른 빛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파랑은 “바람·하늘과 물·바다”를 나타냅니다. 하늘빛은 파랑이고, 이 파랑이 바다빛이 됩니다. 물은 하늘을 닮아서 파란 빛이 되기에, 바다와 물은 파랑이라는 얼거리에서 하나입니다. 


  ‘적·녹·청’처럼 외마디를 따서 일컫기도 하는데, 외마디를 제대로 따려면 ‘빨·푸·파’라 해야지요.


  곧, ‘색의 삼원색’이 아닙니다. ‘세 바탕빛깔’이며 ‘세 빛깔’이고 ‘빛깔바탕’입니다. ‘세 빛깔’은 ‘빨강·파랑·노랑’입니다. 빨강은 목숨을 따뜻하게 안는 빛깔입니다. ‘핏빛’이나 ‘열매빛(알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랑은 바람과 하늘을 상큼하게 품는 빛깔입니다. ‘바람빛’이나 ‘하늘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랑은 온누리를 보드랍게 돌보는 빛깔입니다. ‘햇빛’이나 ‘불빛’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빛깔을 보면 짙거나 옅습니다. 짙거나 옅은 느낌은 ‘결’입니다. 그러니까, 짙은 빛깔이나 옅은 빛깔을 가를 적에는 ‘빛결’이라는 낱말을 쓰면 됩니다. 사회에서는 ‘농도(濃度)’나 ‘농담(濃淡)’ 같은 한자말을 쓰지만, 이런 한자말이 아닌, 한국말 ‘빛껼’을 써야 알맞습니다.


  이제 빛살과 빛깔을 살피면서 빛결을 말할 수 있다면, 한 걸음 내딛은 셈입니다. 한 걸음 다음은 두 걸음이면서 새 걸음입니다. 새롭게 내딛는 걸음입니다. 다음 걸음은 무엇인가 하면, ‘빨강’과 ‘푸름’과 ‘파랑’에서 무엇이 나오느냐입니다. 빨강은 핏빛이면서 알빛(열매빛)인데, 동백꽃빛이나 장미꽃빛이나 딸기알빛이나 앵두알빛이나 능금알빛으로 갈릴 수 있습니다. 빨강이라는 빛깔로 드러나는 꽃이나 열매를 떠올릴 수 있어요. 푸름은 풀빛이면서 잎빛입니다. 쑥잎빛이나 감잎빛이나 민들레잎빛이나 모과잎빛이나 풀개구리빛이나 개구리밥빛처럼 온갖 풀이나 작은 짐승이나 벌레를 그리면서 이 빛깔을 가리킬 수 있어요. 파랑은 하늘빛이면서 바다빛인데, 달개비꽃빛이나 봄까지꽃빛이나 쪽빛이라 할 만합니다. 노랑은 해님이 드리우는 포근한 기운이 서린 빛깔이니, 벼빛이나 보리빛이라 할 수 있고, 짚빛(마른 풀잎 빛깔)이라 할 수 있으며, 개나리꽃빛이나 원추리꽃빛이나 병아리빛이나 민들레꽃빛이나 씀바귀꽃빛 같은 모습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습니다. 노란 꽃이나 열매를 가만히 되새깁니다.


  빛깔은 내가 스스로 짓는 삶에서 찾습니다. 한국사람이 흔히 잘못 쓰는 빛깔 가운데 ‘갈색(褐色)’이 있습니다. 이 빛깔말을 으레 쓰기는 하지만 정작 어떤 빛깔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한국말로는 ‘흙빛’이거나 ‘도토리빛’이거나 ‘밤알빛(밤빛)’입니다. 나뭇줄기 빛깔이 ‘흙빛’이기도 합니다. 자작나무나 벚나무라면 흙빛이 아니지만, 여느 나무는 흙빛하고 거의 같습니다. 아니, 나무는 흙빛을 닮는다고 할까요. 흙이 까무잡잡하면 나뭇줄기도 까무잡잡하다고 할까요.


  푸름을 가리키는 풀빛은 잎빛이기도 하기에 솔잎빛이나 잣잎빛이나 후박잎빛처럼 쓸 수 있습니다. 감잎빛도 봄감잎빛과 여름감잎빛과 가을감잎빛이 다릅니다. 하얀 빛깔을 가리킬 구름빛도, 어느 때에는 잿빛인 구름이니, 매지구름빛은 새로운 잿빛이라 할 만합니다. 까만 빛깔은 까만 씨앗으로 나타낼 만하니 능금씨빛이나 배씨빛을 쓸 수 있고, 깨알빛이나 나팔꽃씨빛을 쓸 수 있습니다. 그림자빛이나 그늘빛을 쓸 수도 있습니다. ‘밤빛’은 밤알과 밤하늘을 가리키는 두 가지 빛깔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빛은 ‘낮하늘빛’과 ‘밤하늘빛’이 있을 테지요. 더 가른다면 ‘아침하늘빛’과 ‘새벽하늘빛’도 있어요.


  제 삶을 찾을 때에 제 빛을 찾습니다. 제 삶을 찾아서 바라볼 때에 제 빛을 찾아서 바라봅니다. 제 삶을 찾지 않는다면 제 빛을 보거나 알 수 없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봅니다. 아직 내 몸이 어둠만 보다가, 밤이 지나서 아침이 찾아올 적에 내 둘레에 어떠한 빛이 퍼져서 어떤 모습을 만날 수 있는지 그려 봅니다. 4348.3.14.흙.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숲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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