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사전 뜻풀이는 이제 그만
[오락가락 국어사전 1] ‘한풍=찬 바람’, 그러면 ‘찬바람’은?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오락가락하는 뜻풀이가 무척 많습니다. 한자로 된 낱말은 뜻풀이를 붙이면서, 텃말에는 뜻풀이를 안 붙이기 일쑤예요. 우리한테 텃말이 없다면 한자말이든 영어이든 받아들여서 써야겠지요. 그러나 텃말이 버젓이 있으나 텃말은 뒷전으로 밀어내고서 한자말만 북돋우거나 앞세운다면?

  ‘텃말’이라는 낱말이 낯설 분이 있을 텐데요, ‘텃밭·텃새’ 같은 낱말에서 보기를 얻어 제 나름대로 지어 보았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사람들이 살림을 짓고 오래도록 살아오면서 즐겁게 쓴 말을 ‘텃말’이라 할 만하지 싶습니다. 이 땅에 알맞는 오래된 씨앗이라면 ‘텃씨’이고,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겨레라면 ‘텃사람’입니다. 오순도순 사이좋은 오랜 마을이라면 ‘텃마을’이요, 즈믄 해가 넘도록 고이 이어온 살림집이라면 ‘텃집’이에요.

  이 터전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온 낱말을 조금 더 사랑하면서 찬찬히 아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락가락 뜻풀이는 이제 그만!” 하자고 외치려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낸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를 돌아보면서 “오락가락 말풀이”가 어떻게 있는지 차근차근 짚겠습니다.


수초(水草) : [식물] 물속이나 물가에 자라는 풀 ≒ 물풀
물풀 : [식물] = 수초(水草)


  물속이나 물가에서 자라는 풀이라면, 말 그대로 ‘물풀’입니다. 들에서는 ‘들풀’이고, 멧골에서는 ‘멧풀’입니다. 바다에서는 ‘바다풀(바닷풀)’이고요. 사전 뜻풀이는 ‘수초 → 물풀’로 고치고, ‘물풀’에 뜻풀이를 붙여야겠습니다.


조류(鳥類) : 조강의 척추동물을 일상적으로 통틀어 이르는 말 ≒ 새무리
새무리 : = 조류(鳥類)


  “조강의 척추동물”은 학문에서 쓰는 글월이기는 할 테지만, 아무래도 사람들 입이나 귀에 와닿기 어렵습니다.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풀이해도 되지 않을까요? 학문에서 ‘강’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갈래를 짓는다고 한다면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조강에 드는 등뼈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처럼 뜻풀이를 보탤 수 있습니다. ‘조류 → 새무리’로 뜻풀이를 고쳐야겠습니다.


질투(嫉妬) :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 ≒ 강샘·모질·투기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함
모질(嫉) : = 질투투기(妬忌) : = 질투
강샘 : = 질투
시샘 : ‘시새움’의 준말
시새움 : 자기보다 잘되거나 나은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고 싫어함. 또는 그런 마음


  한자말 ‘질투’는 뜻풀이가 있으나 한국말 ‘강샘’은 뜻풀이가 없습니다. 그래도 ‘시샘·시새움’에는 뜻풀이가 붙어요. 이 대목에서 살짝 한숨을 돌립니다만 ‘질투 → 강샘’처럼 뜻풀이를 고친 뒤, 올림말 ‘강샘’ 자리에서 뜻풀이를 찬찬히 붙여야겠습니다.


기우(杞憂) :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 군걱정
군걱정 : = 기우(杞憂)


  쓸데없이 하는 걱정이라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이를 줄여서 ‘군걱정’이라 하지요. ‘군것질’이나 ‘군말’이라는 말마디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군-’을 붙여서 쓸데없는 어떤 것이나 일을 나타냅니다. 한자말 ‘기우’만 뜻풀이를 붙인 사전 얼개를 고쳐야겠습니다.


신-(新) : ‘새로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새- : x


  사전에 ‘신(新)-’은 앞가지로 나오지만, ‘새-’는 앞가지로 안 나옵니다. 얄궂지요. 한국말 ‘새-’는 마땅히 앞가지로 올라야 합니다. ‘새마을·새마음’은 사전에 안 나와도 사람들이 대단히 흔히 써요. ‘새해·새달·새날·새집·새사람·새말·새길’ 같은 낱말은 바로 ‘새-’가 앞가지이기 때문에 지을 수 있습니다. 이밖에 ‘새책·새꿈·새넋·새돈·새글’처럼 새로운 낱말을 짓는 틀을 마련해야겠지요. 이렇게 해야 한국말이 살아납니다.


한파(寒波) : [지리] 겨울철에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현상. 한랭 기단이 위도가 낮은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생긴다
추위 : 추운 정도


  ‘한파’뿐 아니라 ‘추위’에도 뜻풀이는 붙습니다. 그러나 어딘가 엉성합니다. 텃말 ‘추위’는 이렇게 엉성한 뜻풀이여도 될까요? 한자말 ‘한파’만 길게 뜻풀이를 붙일 만할까요? 갑자기 추위가 닥친다면 ‘벼락추위·갑작추위’처럼 새말을 지을 수 있습니다. “추위가 닥친다”고만 해도 추위가 갑자기 오는 결을 나타내지요. ‘한파 → 추위’로 손질한 다음에 ‘추위’를 더 꼼꼼히 풀이해 주어야겠습니다.


심안(心眼) : 사물을 살펴 분별하는 능력. 또는 그런 작용 ≒ 마음눈
마음눈 : = 심안(心眼)


  마음으로 보는 눈이라고 해서 이를 한자말 ‘심안’으로 적는다고 하는데, 마음으로 보는 눈이라면 마땅히 ‘마음눈’이라 하면 됩니다. ‘심안 → 마음눈’으로 고칠 노릇입니다.


노염(老炎) : = 늦더위
늦더위 : 여름이 다 가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 ≒ 노염(老炎)·만염(晩炎)


  늦도록 가시지 않는 더위인 ‘늦더위’는 뜻풀이가 ‘노염’한테 안 밀립니다. 히유 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늦더위’에 붙은 “≒ 노염(老炎)·만염(晩炎)”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사전에 굳이 ‘노염·만염’을 실어야 할까요? ‘노염’이나 ‘만염’이라는 낱말을 꼭 써야 할까요? ‘늦더위’ 한 마디로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군말은 사전에서 덜어야겠습니다.


조언(助言) :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 또는 그 말 ≒ 도움말
도움말 : = 조언(助言)


  돕는 말이기에 ‘도움말’입니다. 그러나 사전 뜻풀이는 ‘도움말’ 아닌 ‘조언’에 뜻풀이를 붙입니다. ‘조언 → 도움말’로 뜻풀이를 고쳐야 합니다.


양다리(兩-) : 양쪽 다리
양쪽(兩-) : 두 쪽
두다리 : x
두쪽 : x


  “양쪽 다리”라는 ‘양다리’는 사전에 나오나, ‘두다리’는 사전에 없습니다. ‘양쪽’이라는 낱말은 사전에 올라도 ‘두쪽’이라는 낱말은 사전에 못 오릅니다. 이 뜻풀이와 올림말 얼개는 몹시 얄궂습니다. 한국사람이 스스로 한국말을 깎아내리거나 업신여기는 모습입니다. 다리가 둘인 모습을 가리킬 뿐 아니라, 어떤 일을 놓고서 이쪽 저쪽에 다리를 걸친다고 하는 모습을 빗대는 말은 ‘두다리’라는 말로 얼마든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한풍(寒風) : 겨울에 부는 차가운 바람. ‘찬 바람’으로 순화
찬바람 : 냉랭하고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찬 바람’으로 고쳐쓸 한자말이라는 ‘한풍’입니다. 그런데 사전에 ‘찬바람’이라는 낱말이 따로 올림말로 있어요. 다만 사전에 나온 ‘찬바람’은 차갑거나 싸늘한 기운을 빗대는 말이라고만 합니다. 참 엉성합니다. 차갑게 부는 바람인 ‘찬바람’이라는 낱말이 먼저 있어야, 이 차갑게 부는 바람처럼 차가운 기운이나 느낌을 빗대는 자리에 쓸 낱말이 있을 테지요? ‘한풍 → 찬바람’으로 뜻풀이를 고친 뒤에, ‘찬바람 : 1. 겨울에 부는 차가운 바람 2. 차갑거나 싸늘한 기운이나 느낌을 빗대는 말’과 같이 뜻풀이를 손질해 주어야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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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다·나누다·쪼개다’는 어떻게 다를까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12] 정서·감정·기분·마음·느낌, 시원·시작·처음·비롯하다, 구획·구분·가르다·나누다·쪼개다



  모든 말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말 한 마디에는 우리 마음이 담겨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이야기에 마음을 고이 얹어서 나눈다고 할 만해요. 말을 한다고 할 적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을 드러내면서 나누려고 하는 셈이지 싶습니다.


  스스로 이루려고 하는 길을 생각하면서 이 생각을 마음에 담아요. 이 마음은 언제나 소리나 글씨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요.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는 바로 ‘마음에 씨앗으로 심은 생각’을 나타낸다고 할 만합니다. 한국말사전은 ‘마음’을 어떻게 다룰까요? 또 ‘느낌’을 어떻게 풀이할까요? ‘정서·감정·기분’ 같은 한자말은 저마다 어떤 결을 드러내는 낱말일까요?



ㄱ. 정서·감정·기분·마음·느낌


  남녘 사전은 ‘정서’를 ‘감정’으로 풀이합니다. 북녘 사전은 ‘정서’를 ‘감정·느낌’으로 풀이해요. 남녘 사전은 ‘감정’을 ‘마음·기분·심정’으로 풀이하지요. 이러면서 ‘기분’은 “마음에 생기는 감정”으로 풀이합니다. ‘정서·감정·기분’이 뒤죽박죽으로 얽힙니다. 이러면서 ‘느낌’을 ‘기분·감정’으로 풀이하기에 여러모로 어지럽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정서(情緖) :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감정(感情) :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기분(氣分) : 1.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마음 :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느낌 :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정서(情緖) : 1.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2. 지역이나 집단 따위와 관련된 한정적 특성을 가진 성향 3. [심리] 갑자기 일어나는 노여움, 두려움, 기쁨, 슬픔 따위의 급격한 감정

감정(感情) :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하여 느끼어 나타나는 심정이나 기분

기분(氣分) : 1. 쾌, 불쾌 등의 감정을 느끼는 상태.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생기며 한동안 지속적인 상태로 나타난다 2.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마음 : 1.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 2. 무엇을 하고자 하는 뜻 3. 마음을 쓰는 태도 4. 사람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감정이나 심리 5.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본디의 속생각 6. 이성에 대해 느끼는 사랑하는 감정

느낌 : 어떤 대상이나 상태, 생각 등에 대한 반응이나 지각으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분이나 감정


(북녘 조선말대사전)

정서(情緖) : 1.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여러가지 감정이나 느낌 2. [심리] 감정의 표현형태

감정(感情) : 1. 어떤 일이나 물건의 특성을 놓고 그 좋고 나쁨, 진짜와 가짜 등의 내막을 가려내여 판정하는것 2. [법률] 예심기관 또는 재판소가 제기된 사건을 조사, 심리함에 있어서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경우 해당 부문의 전문가를 동원하여 진행하는 조사활동

기분(氣分) : 1. 대상이나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에 생기는 비교적 단순한 감정 2. 분위기나 환경

마음 : 1. 사람의 정신적이며 심리적인 움직임, 그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속생각 2. 기분이나 심정 3. ‘사람의 성품이나 심사’를 나타낸다 4. ‘각오, 결의, 의향’ 등을 나타낸다

느낌 : 느껴지는것 또는 느낀것

느끼다 : 1. 감각기관을 통하여 알아차리다 2. 마음속으로 그 무엇을 깨닫거나 인식하다 3. 직접 보거나 겪은 사실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다



  이 낱말을 풀이하면서 저 낱말을 안 쓸 수 없습니다만, 비슷하게 묶을 만한 낱말이 서로 빙글빙글 돈다면 뜻이나 쓰임새를 제대로 살피기 어려워요. 때로는 사전은 그만 집어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비슷한 갈래로 묶을 낱말이라면 뜻풀이가 빙글빙글 돌지 않도록 또렷하게 갈라야지 싶습니다.


  또한,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어느 한자말이 어떻게 어느 자리에 쓸 적에 알맞은가를 제대로 가려야지 싶어요. 한자말이든 한국말이든 알맞게 써야 하고, 제대로 써야 하며, 슬기롭게 써야 합니다. 이러면서 낱말 하나를 어떻게 어느 자리에 쓰면 되는가를 함께 밝혀야지 싶습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정서(情緖) : 마음에 생기는 느낌 → 마음

감정(感情) : 어떠하다고 느끼는 마음 → 느낌

기분(氣分) : 둘레에 따라 나타나거나 생기는 느낌 → 느낌

마음 : 1. 처음부터 갖춘 됨됨이나 몸짓이나 모습 2. 느끼거나 생각하는 기운 3. 느낌과 생각이 자리잡거나 생기는 곳 4. 어떤 일에 끌리는 기운이나 생각 5. 좋거나 싫음, 옳거나 그름, 맞고 틀림 들을 나누거나 살피는 생각 6. 좋다고 여기는 기운 7.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느낌 : 1. 어떤 일을 할 적에 받아들이는 기운 2.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헤아리거나 미리 아는 일



  ‘마음’은 매우 넓게 쓰는 낱말입니다. ‘느낌’은 마음에 담는 기운 가운데 하나를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큰 얼거리를 잡아 놓고서 여러 가지 말마디를 헤아려 봅니다. 먼저 ‘마음·느낌’이 어떤 결인가를 가누어 놓아야, 여러 가지 한자말도 옳게 가려서 쓸 수 있어요.


  ‘정서’나 ‘감정’이나 ‘기분’ 같은 한자말이 없이 ‘마음’이나 ‘느낌’이라는 낱말만으로도 우리 생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정서·감정·기분’은 조금씩 결이 다르고 쓰임새가 다른 만큼, 세 한자말 뜻풀이는 서로 겹치지 않도록 해야지 싶어요. 돌림풀이가 아닌 제대로 된 말풀이를 달아 주어야지요. 이러면서 한국말 ‘마음’하고 ‘느낌’을 깊이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면 좋겠습니다.



ㄴ. 시원·시작·처음·비롯하다


  한자말 ‘시작’을 이곳저곳에 대단히 자주 쓰는 요즈음 한국 사회입니다. 이 한자말이 쓰임새가 넓으니 두루 쓴다고 할 수 있으나, 웬만한 자리에서는 일본 말씨라고 할 만합니다. “나부터 시작한다”는 “나부터 한다”로 손볼 만해요. “누가 먼저 시작할까”는 “누가 먼저 할까”로 손볼 만하지요. “시작과 끝”은 “처음과 끝”으로 손볼 만합니다. “시작이 반이다”는 “첫발이 반이다”나 “첫걸음이 반이다”로 손볼 만하고요. 이 얼거리를 헤아리며 말뜻을 짚어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시원(始原) : 사물, 현상 따위가 시작되는 처음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

처음 : 시간적으로나 순서상으로 맨 앞

비롯하다 : 1. 어떤 사물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하다 2. 처음 시작하다 3. 여럿 가운데서 앞의 것을 첫째로 삼아 그것을 중심으로 다른 것도 포함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시원(始原) :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

시작(始作) : 1. 어떤 일이나 행위를 처음으로 함 2. 또는 어떤 현상의 처음

처음 : 일의 과정에서 시간적으로나 순서상 맨 앞에 놓이는 부분

비롯하다 : 1. 여럿 가운데서 처음으로 삼다 2. 처음으로 시작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시원(始原) : 사물현상이 시작되는 처음

시작(始作) : 1. 무엇을 처음으로 하는것 또는 쉬었다가 다시 하는것 2. 어떤 행동이나 현상의 처음

처음 : (시간적으로나 차례로) 맨 앞이나 먼저

비롯하다 : (여럿가운데서 차례로 말할 때 어떤 대상을) 첫자리로 하다 2.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다



  남북녘 사전은 ‘시원’이든 ‘시작’이든 ‘처음’이라는 낱말로 풀이합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시원’을 “비롯되는 처음”으로 풀이해요. ‘비롯되다·비롯하다’를 “처음으로 삼는” 일을 가리킨다고 풀이하는 사전이니, “비롯되는 처음”은 말이 안 되는 겹말입니다.


  남북녘 사전은 ‘비롯하다’를 하나같이 “처음 시작하다”로 풀이합니다. 한자말 ‘시작’이 ‘처음’을 가리킨다고 풀이하는 사전인데, “처음 시작하다”라고 하면, 이는 무엇을 가리키는 셈일까요? 이 또한 말이 안 되는 겹말이에요. 퍽 쉽거나 흔하다 싶은 말마디인데, 바로 이처럼 쉽거나 흔하다 싶은 말마디부터 뜻풀이가 엉성하게 뒤섞입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시원(始原) : 처음 생기는 자리 → 처음 . 비롯하다

시작(始作) : 처음 하는 일 → 처음 . 비롯하다

처음 : 때나 자리에서 맨 앞

비롯하다 : 1. 이제까지 없다가 있게 되다 (새로 있게 되다, 처음으로 있게 되다) 2. 어느 하나를 으뜸·첫째·한복판으로 삼거나 놓으며 여러 가지를 함께 놓다 (아우르다) 3. 아직 하지 않다가 이제부터 하다 (새로 하다, 처음으로 하다)



  ‘시원·시작’이라는 한자말은 이 한자말을 따로 쓰려고 할 적에 어떠한 결을 나타내는가를 단출하게 밝혀 주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처음’하고 ‘비롯하다’를 찾아보면서 말씨를 가다듬도록 도우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보기를 들면서 ‘시작’ 같은 낱말을 어떻게 손질해 볼 만한가를 알려주면 더욱 좋을 테고요.



ㄷ. 구획·구분·가르다·나누다·쪼개다



  비슷한말은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입니다. 비슷하지만 똑같지 않기에 비슷한말입니다. 낱말마다 결이 어떻게 다른가를 잘 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낱말을 어떻게 나누어야 슬기롭게 쓰고 알맞게 생각을 북돋울 만한가를 배우면 좋겠어요.



(표준국어대사전)

구획(區劃) : 토지 따위를 경계를 지어 가름

구분(區分) :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갈라 나눔

가르다 : 1.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2. 물체가 공기나 물을 양옆으로 열며 움직이다 3. 옳고 그름을 따져서 구분하다 4. 승부나 등수 따위를 서로 겨루어 정하다 5. 양쪽으로 열어젖히다

나누다 : 1.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다 2.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하여 분류하다 3. [수학] 나눗셈을 하다 4. 몫을 분배하다 5. 음식 따위를 함께 먹거나 갈라 먹다 6. 말이나 이야기, 인사 따위를 주고받다 7. 즐거움이나 고통, 고생 따위를 함께하다 8. 같은 핏줄을 타고나다

쪼개다 : 1. 둘 이상으로 나누다 2. 시간이나 돈 따위를 아끼다 3. (속되게)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웃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구획(區劃) : 1. 토지나 시가지 따위의 경계를 갈라 정함 2. 또는 그러한 구역

구분(區分) : 1.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나누어서 가름 2. [논리] 개념의 외연을 다시 나누거나 유개념을 거기에 속하는 종개념으로 나눔

가르다 : 1. (사람이나 물체가 대상을) 따로 나누어 서로 구분을 짓다 2. (사람이 사물을) 칼 따위로 베거나 쪼개어 둘 이상으로 만들다 3. (움직이는 물체가 물이나 공기 따위를) 두 갈래로 나누며 아주 빠르게 지나가다 4. (사람이나 사태가 가까운 관계를) 멀어지게 하거나 끊어지게 하다 5. (사람이 시비나 우열 따위를) 판단하여 결정짓다

나누다 : 1. 갈라 떨어지게 하거나 분류하다 2. 구별하거나 달리 속하게 하다 3. 몫을 분배하여 주거나 갖다 4. 함께 먹다 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말이나 인사를, 또는 둘 이상의 사람이 말이나 인사를) 서로 주고받다 6. 함께 경험하거나 겪다 7. [수학] 나눗셈을 하다 8.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피를, 또는 둘 이상의 사람이 피를) 같이 타고나다

쪼개다 : 1. (사람이)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웃다 2. (사람이 어떤 물체를) 둘 이상의 부분으로 나누다 3. (사람이 돈이나 어음 따위를) 일정한 금액으로 따로 떼어놓다 4. (사람이 일정 지역이나 공간을) 여러 부분으로 구분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구획(區劃) : 1. 경계를 갈라 정하는것 또는 갈라 정한 구역 2. [건설] 거리길 차길 등으로 경계를 이룬 도시와 마을의 일정한 부분. 사명에 따라 살림집구획, 공공건물구획, 공장구획 등으로 나눈다 3. [정보] 하드디스크의 령역을 의미하는 말

구분(區分) : 따로따로 구별하여 갈라나누는것

가르다 : 1.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2. 베거나 자르다 3. 량쪽으로 헤치다 4. 옳고그름을 따져 분간하다 5. 승부나 등수를 정하다

나누다 : 1. 몫몫으로 따로따로 되게 가르다 2. [수학] 어떤 수를 몇개의 똑 같은 몫으로 쪼개다 3. 자리를 같이하여 음식을 함께 먹다 4. 한곳에서 갈리여서 각각 딴 방향을 잡다 5. (말이나 의견 같은것을) 서로 주고받다 6. (기쁨, 즐거움, 괴로움 등을) 함께 겪다 7. 한근원에서 각각 갈라지다

쪼개다 : 1. (하나로 된것을) 나누어서 여럿으로 만들다 2. (시간이나 돈 같은것을) 아껴쓰다



  남북녘 사전을 살피면 한자말 ‘구획’은 ‘가르다’로 풀이하고, ‘구분’은 “갈라 나누다”나 “나누어 가르다”로 풀이합니다. 사전에서 한자말 한두 가지만 찾아보았다면 그러려니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해 보면서 사전을 더 살펴볼까요?


  《표준국어대사전》하고 《조선말대사전》은 ‘가르다’를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 되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고 풀이해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가르다’를 “나누어 구분을 짓는” 일이라고 풀이해요. ‘구분’은 “나누어 가르다”로 풀이하면서 ‘가르다’를 “나누어 구분을 짓는”으로 풀이하면 참으로 뒤죽박죽입니다. 더구나 ‘쪼개다’라는 낱말은 ‘나누다’라는 낱말로 풀이를 하니 더욱 엉키고 말아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구획(區劃) : → 가르기 . 가르다

구분(區分) : → 나누기 . 나누다

가르다 : 1. 하나이던 것을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다 2. 하나이던 자리·곳이 따로 떨어진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거나, 따로 떨어진 채 있도록 하다 3. 하나를 따로 떨어진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거나, 따로 떨어진 채 있도록 하다  (멀어지거나 끊어지거나 떨어지게 하다) 4. 두 쪽이나 여러 쪽으로 벌어지도록 하거나 열다 5. 바람이나 물을 옆으로 밀어서 둘이 되도록 하며 가거나 움직이다 6. 옳고 그름·좋고 나쁨·낫고 모자람 들을 살펴서 따로 놓다

나누다 : 1.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다 2. 여럿이 서로 고르게 가지다 (몫을 서로 고르게 가지다) 3. 여러 가지로 섞인 것·자리·사람을 고르게 모으다 (여러 가지로 섞인 것·자리·사람을 갈래에 맞추어 모으다) 4.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먹거나, 서로 고르게 받아서 먹다 5. 말·생각·이야기·느낌·마음을 서로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6. 기쁨·보람·즐거움·아픔 들을 함께 느끼거나 맞이하거나 겪다 7. 같은 뿌리나 핏줄에서 나오다 (같은 뿌리나 핏줄로 태어나다) 8. 한곳에서 서로 다른 길이나 곳을 잡거나 찾다 9. 어떤 수를 이보다 작으면서 똑같은 여럿이 되도록 하다 (나눗셈을 하다)

쪼개다 : 1. 하나이던 것을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다 2. 시간·때·날을 알맞게 쓰려고 자리를 따로 잡거나 어떤 일을 하려고 따로 비우다 3. 알맞거나 알뜰히 쓸 수 있도록 돈을 어느 만큼 따로 두다 4. 하나이던 곳을 여러 자리가 되도록 하다 5. 소리 없이 입을 살며시 벌리고 웃다



  한자말 ‘구획·구분’은 ‘가르다’나 ‘나누다’라는 한국말로 찬찬히 손질해 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면서 ‘가르다·나누다·쪼개다’ 세 낱말이 서로 어떻게 다른 결인가를 꼼꼼히 살펴서 갈라 주어야지 싶어요. 뜻풀이를 옳게 나누어야지요.


  때에 맞게 쓰는 낱말이 있습니다. 자리를 살펴 쓰는 낱말이 있어요. 어느 틀에 얽매이거나 길든 채 무턱대고 쓰는 낱말이 아닌, 우리 마음과 느낌을 새롭게 지피도록 이끄는 낱말을 고루 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말이 말다울 수 있도록 생각을 끌어내는 구실을 하는 책이 바로 사전입니다. 2017.6.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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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놀이에서 벗어나기를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11] 비밀·숨기다·감추다·가리다, 체험·경험·겪다·치르다, 교환·주고받다·나누다


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퍽 흔하게 쓰는 한자말인 '비밀'과 '체험·경험'과 '교환'은 사전에 어떤 뜻풀이로 나올까요? 퍽 흔하게 쓰기 때문에 이 낱말을 찾아볼 일은 없을까요? 이들 한자말하고 뜻이 맞물리는 수수하고 쉬운 한국말은 무엇일까요?

ㄱ. 비밀·숨기다·감추다·가리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익히려고 사전을 살피는 일은 마치 수수께끼 같습니다. 아직 한국말사전이 바르거나 옳거나 알차게 서지 못한 탓입니다. 온통 감추어졌구나 싶은 말결을 살피느라 고단할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오늘 한국말에 얽힌 실타래를 안 푼다면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더욱 엉성하거나 엉터리인 말을 물려받고 말아요. 이제부터 제대로 수수께끼를 벗겨야지요. 이제 ‘비밀’이라는 한자말하고 이 낱말하고 얽히는 한국말을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비밀(秘密) : 1. 숨기어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일
숨기다 : 1. ‘숨다’의 사동사(보이지 않게 몸을 감추게 하다) 2. 어떤 사물을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두다. 또는 어떤 사실이나 행동을 남이 모르게 감추다
감추다 : 1. 남이 보거나 찾아내지 못하도록 가리거나 숨기다
가리다 : 보이거나 통하지 못하도록 막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비밀(秘密) : 1. 남에게 알리지 않고 숨기는 일 2.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실상이나 속내
숨기다 : 1. 남이 모르게 감추거나 드러내지 않다 2. 남이 보지 못하게 두다 3. 몸을 감추게 하다
감추다 : 1.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거나 숨기다 2. 남에게 드러내지 않다 3. 어딘가로 사라지거나 없어지게 하다
가리다 : 1. 보이지 않도록 감추어지거나 막히다 2. 영향을 받아 드러나지 못하다 3. 보이지 않도록 감추거나 막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비밀(秘密) : 1. 알고있어야 할 성원밖에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되는 일 2. 남이 알게 되는것을 꺼리거나 남몰래 숨기는것 3. (자연이나 과학연구분야 같은데서)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
숨기다 : 1. ‘숨다’의 사역형(사람이나 동물이 드러나지 않게 몸을 비밀히 두게 하다) 2. 어떤 사실을 몰래 감추거나 드러나지 않게 하다
감추다 : 1. 남이 보거나 찾아내지 못하도록 숨기거나 가리다 2. 감정이나 어떤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하다 3. 없어지거나 사라져서 간 곳도 자취도 알수 없게 하다 
가리다 : 무엇을 보이지 않게 하거나 숨기기 위해 막거나 덮다


  ‘숨기’거나 ‘감추’는 일이나 이야기나 말을 ‘비밀’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남·북녘사전은 ‘숨기다’를 ‘감추다’로 풀이하지요. ‘감추다’는 다시 ‘숨기다’로 풀이할 뿐 아니라 ‘가리다’라는 다른 낱말까지 써요. ‘가리다’는 또 무엇일까요? 남·북녘 학자는 남·북녘 사전하고 얽힌 이 엉성한 실타래를 끊을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어야지 싶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비밀(秘密) : 숨기거나 감추는 일 → 숨기다 . 감추다
숨기다 : 1. 몸이나 어떤 것을 안 보이게 어디에 두도록 하다 (다른 사람 눈에 잘 안 띄거나 잘 찾을 수 없는 곳에 두도록 하다) 2. 겉이나 바깥이나 둘레에 잘 안 드러나도록 하다
감추다 : 1. 남이 보거나 찾지 못하게 어디에 두다 2. 어떤 일·마음·느낌·생각을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다 3. 어떤 것·일·모습·자취가 없어지거나 안 보이다
가리다 : 1. 사이에 무엇이 있거나 막혀서 안 보이다 2. 무엇으로 막거나 덮어 안 보이게 하다


  한자말 ‘비밀’을 안 쓸 수 있습니다. 이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말뜻을 제대로 짚거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모르는 채 마구 쓰다 보면 말결을 잊거나 잃을 수 있어요.

  ‘숨기다’는 안 보이도록 하는 모습이나 몸짓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감추다’는 찾지 못하도록 하는 모습이나 몸짓이라고 할 만합니다. ‘가리다’는 안 보이게 하는, 그러니까 더욱 나서서 막는 몸짓이라고 할 만하지요.

  세 가지 낱말이 세 갈래로 다르게 쓰는 결을 잘 살피면, 한국말을 한결 재미나면서 아름답게 살려서 쓰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ㄴ. 체험·경험·겪다·치르다

  손수 해 보아야 압니다. 엉터리 사전이더라도 우리가 손수 뒤적이면서 말뜻을 살피고 말결을 짚어 보아야 압니다. 한두 사람 손으로 이러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 테지만, 우리가 저마다 슬기로운 마음이 되어서 몸소 말을 생각하고 찾으려 한다면, 이때에 한국말이 제대로 살아날 만하리라 봅니다. 우리가 ‘겪는’ 일하고 얽힌 낱말을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체험(體驗) : 1. 자기가 몸소 겪음. 또는 그런 경험
경험(經驗) : 1. 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겪다 : 1. 어렵거나 경험될 만한 일을 당하여 치르다 2. 여러 사람을 청하여 음식을 차려 대접하다 3. 사람을 사귀어 지내다
치르다 : 1. 주어야 할 돈을 내주다 2. 무슨 일을 겪어 내다 3. 아침, 점심 따위를 먹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체험(體驗) : 1. 어떤 일을 실제로 보고 듣고 겪음
경험(經驗) : 1. 실지로 보고 듣거나 몸소 겪음
겪다 : 1. 당하여 치르다 2. 사귀거나 함께 지내며 경험하다 3. 상대로 음식을 차려 대접하다
치르다 : 1. (사람이 어떤 대상에게 주어야 할 돈을) 내어 주다 2. (사람이나 단체가 어떤 일을) 당하여 겪어 내다 3. (사람이 아침이나 저녁 따위의 끼니를) 입으로 씹거나 하여 뱃속으로 들여보내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체험(體驗) : (생활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당하고 겪은 경험 또는 그런 경험을 직접 당하거나 겪는것
경험(經驗) : 1. 직접 겪어보거나 해보는것 또는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 기능, 교훈적인것 등의 총체 2. 객관적현실에 대한 지식을 관찰 또는 실험의 방법으로 검증하는것
겪다 : 1. (경험이 될만 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하여 지내다 2. 손님이나 많은 사람을 음식으로 대접하거나 치르다 3. 사람을 사귀여 지내다
치르다 : 1. (갚아야 할 돈이나 값을) 물어주거나 셈하여 넘겨주다 2. (어떤 일을) 당하여 겪어내다 3. (끼니나 새참을 나타내는 단어와 함께 쓰이여) ‘먹거리나 요기를 하다’의 뜻 4. 손님을 받아 대접하여 보내다 5. 인사를 차리다


  남·북녘 사전을 살피면 ‘체험’이든 ‘경험’이든 “자신이 겪는” 일을 나타낸다고 풀이합니다. 남이 아닌 ‘내’가 겪는다는 뜻이니, 따로 ‘몸소·직접’을 넣지 않아도 나 스스로 겪는 일을 가리키는 줄 알 수 있어요. 북녘 사전을 살피면 ‘체험 = 겪은 경험’처럼 풀이하면서 겹말풀이가 되기도 합니다. 얄궂지요.

  더욱이 《표준국어대사전》은 ‘겪다’를 “경험될 만한 일을 당하여 치르다”로 풀이하니 몹시 엉성합니다. ‘경험’을 ‘겪다’로 풀이하면서 ‘겪다’를 이처럼 풀이한다면 사람들이 말뜻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요?

  한국말 ‘겪다’를 살피면 남·북녘 사전 모두 ‘치르다’라는 낱말로 풀이해요. ‘치르다’는 다시 ‘겪다’라는 낱말로 풀이하고요. 돌림풀이입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체험(體驗) : → 겪다 . 치르다
경험(經驗) : → 겪다 . 치르다
겪다 : 1. 어떤 일을 맞이하거나 듣거나 하거나 보다 (어떤 일을 맞이하거나 듣거나 하거나 보면서 알거나 배우다) 2. 손님을 맞이하거나 불러서 먹을거리를 내놓다 3.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거나 함께 지내다 (사람을 만나거나 사귀거나 함께 지내며 알거나 배우다)
치르다 : 1. 넘기거나 갚거나 내놓아야 할 돈이나 값을 주다 2. 어떤 일을 맞이하거나 하다 3. 끼니가 될 밥을 먹다 4. 손님을 맞이하거나 불러서 먹을거리를 내놓다 5. 고마움을 입어서 갚거나, 처음 만나서 절을 하고 이름을 밝히며 무엇을 주다 (인사를 하다. 예의를 차리거나 갖추다)


  ‘체험·경험’은 ‘겪다’나 ‘치르다’로 고쳐쓰도록 이끌어 주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겪다’는 어떤 일을 맞이하거나 듣거나 하거나 보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풀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쓰임새를 밝혀 줍니다. ‘치르다’는 “값을 주다”라는 뜻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쓰임새를 밝혀 주고요. ‘치르다’는 ‘인사치레’처럼 다른 쓰임새도 있어요. 이런 씀씀이를 하나하나 짚어 주면 좋겠습니다.


ㄷ. 교환·주고받다·나누다

  말은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려는 뜻이 있기 때문에 하지 싶어요. 생각을 말에 담아서 나눈다고 할까요. 우리는 어떤 생각을 어떤 말에 담아서 주고받을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말을 찬찬히 가꾸면서 나눌까요? ‘주고받다·나누다’하고 얽힌 낱말을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교환(交換) : 1. 서로 바꿈 2. 서로 주고받고 함 3. 전화나 전신이 통할 수 있도록 사이에서 선로를 연결해 줌 4. [경제] 어떤 재화나 용역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그 가격만큼 다른 재화나 용역 또는 화폐를 얻는 일
주고받다 : 서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나누다 : 1.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다 2.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하여 분류하다 3. [수학] 나눗셈을 하다 4. 몫을 분배하다 5. 음식 따위를 함께 먹거나 갈라 먹다 6. 말이나 이야기, 인사 따위를 주고받다 7. 즐거움이나 고통, 고생 따위를 함께하다 8. 같은 핏줄을 타고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교환(交換) : 1.서로 주고받음 2. [경제] 어떤 물품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그 값으로 같은 가치의 다른 물품이나 화폐를 얻음 3. 물건과 물건, 사람과 사람 따위를 서로 바꿈
주고받다 : 1. 서로 번갈아가며 하다 2. 서로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나누다 : 1. 갈라 떨어지게 하거나 분류하다 2. 구별하거나 달리 속하게 하다 3. 몫을 분배하여 주거나 갖다 4. 함께 먹다 5.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말이나 인사를, 또는 둘 이상의 사람이 말이나 인사를) 서로 주고받다 6. 함께 경험하거나 겪다 7. [수학] 나눗셈을 하다 8.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피를, 또는 둘 이상의 사람이 피를) 같이 타고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교환(交換) : 1. (이것과 저것을) 바꾸는것 2. 서로 주고받거나 나누는것 3. 전화국이나 전화를 놓은 곳에서 통화자들사이에 서로 말할수 있게 이어주는 일 또는 그 일을 맡아하는 사람이나 그곳 4. [경제] 사용가치가 다른 물건을 서로 바꾸는것
주고받다 : 1.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2. (말, 노래 같은것을) 서로 번갈아서 넘기고 받아가면서 하다
나누다 : 1. 몫몫으로 따로따로 되게 가르다 2. [수학] 어떤 수를 몇개의 똑 같은 몫으로 쪼개다 3. 자리를 같이하여 음식을 함께 먹다 4. 한곳에서 갈리여서 각각 딴 방향을 잡다 5. (말이나 의견 같은것을) 서로 주고받다 6. (기쁨, 즐거움, 괴로움 등을) 함께 겪다 7. 한근원에서 각각 갈라지다


  남·북녘 사전이 모두 ‘교환’이라는 한자말을 “서로 주고받다”로 풀이합니다. 이는 겹말풀이입니다. ‘주고받다’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가리키거든요. 뜻풀이에서 ‘서로’를 덜어야 올발라요. 이러면서 ‘나누다’라는 낱말을 풀이할 적에 남·북녘 사전 모두 ‘주고받다’라는 낱말을 쓰지요. 안타깝게도 돌림풀이에 갇힙니다. 이 같은 대목을 찬찬히 추슬러야지 싶어요. 우리 사전은 생각을 슬기롭게 주고받는 이야기보따리가 될 수 있어야 할 테니까요. 우리 사전은 마음을 기쁘게 나누는 이야기꽃으로 거듭날 적에 아름다울 테니까요.

  사전 말풀이가 겹말풀이로 나오기도 하지만 “서로 교환하다” 같은 말마디를 쓰는 분도 꽤 있습니다. 이는 겹겹말이 되겠지요. 겹으로 겹친 말씨이거든요. 이 말마디는 “서로 바꾸거나”나 “나누거나”나 “주고받거나”로 손질해 줍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교환(交換) : → 주고받다
주고받다 : 1.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2. 서로 보내거나 넘기고서 받다. 하나씩 보내고 받기를 되풀이하다
나누다 : 1. 둘이나 여럿이 되도록 하다 2. 여럿이 서로 고르게 가지다 (몫을 서로 고르게 가지다) 3. 여러 가지로 섞인 것·자리·사람을 고르게 모으다 (여러 가지로 섞인 것·자리·사람을 갈래에 맞추어 모으다) 4.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먹거나, 서로 고르게 받아서 먹다 5. 말·생각·이야기·느낌·마음을 서로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다 6. 기쁨·보람·즐거움·아픔 들을 함께 느끼거나 맞이하거나 겪다 7. 같은 뿌리나 핏줄에서 나오다 (같은 뿌리나 핏줄로 태어나다) 8. 한곳에서 서로 다른 길이나 곳을 잡거나 찾다 9. 어떤 수를 이보다 작으면서 똑같은 여럿이 되도록 하다 (나눗셈을 하다)


  한자말 ‘교환’은 ‘주고받다’로 고쳐 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이러면서 ‘주고받다’하고 ‘나누다’ 뜻풀이를 잘 추스르면 좋겠습니다. 여럿이 되도록 하는 일, 고르게 가지는 일, 함께 모여서 먹는 일, 말이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일 들을 ‘나누다’라는 낱말로 알뜰살뜰 나타내면 좋겠어요.

  생각을 슬기롭게 나누는 사전이 되도록 서로 힘을 모으기를 바랍니다. 마음을 기쁘게 살찌우고 꿈을 곱게 가다듬는 알찬 ‘말책’이 되도록 다 같이 사전을 가꿀 수 있기를 바라요. 느긋하게 생각하며 넉넉하게 보듬습니다. 나긋나긋 마주하며 넘실넘실 춤추도록 갈고닦습니다. 2017.5.1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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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슬기롭게 나누는 사전이 되도록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10] 비만·찌다·뚱뚱하다, 작파·포기·중단·그만두다·그치다·멈추다, 불안·초조·조마조마하다·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


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ㄱ. 비만·찌다·뚱뚱하다

  ‘비만’이라고 하면 어떤 모습을 가리킬까요? 이때 한국사람은 으레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살이 찐” 모습입니다. 둘째 ‘뚱뚱한’ 모습이지요. 자, 그러면 ‘찌다·뚱뚱하다’는 어떤 모습을 나타낼까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할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비만 → 찌다·뚱뚱하다’를 생각하기는 하지만, 막상 ‘찌다’나 ‘뚱뚱하다’가 서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내는가를 헤아리지는 않곤 합니다. 이제 이 세 낱말을 한국말사전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비만(肥滿) :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함
찌다 : 살이 올라서 뚱뚱해지다
뚱뚱하다 :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진 듯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비만(肥滿) :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함
찌다 : (살이) 몸에 올라서 뚱뚱해지다
뚱뚱하다 : 1. (사람이)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지고 굵다 2. (물건이) 한 부분이 붓거나 부풀어서 불룩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비만(肥滿) : 1.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한것 2. = 비만증
찌다 : 1. (몸에) 살이 많이 오르다 2. (물건에) 때나 먼지 같은것이 찌들어붙다
뚱뚱하다 : 1. 살이 쪄서 몸이 가로 퍼져있다 2. (물체의 한부분이) 붓거나 부풀어서 두드러져있다

  남·북녘 사전 모두 ‘비만’을 “살이 쪄서 뚱뚱함”으로 풀이합니다. 이다음으로 남녘 사전은 ‘찌다’를 ‘뚱뚱해지다’로 풀이하지요. ‘뚱뚱하다’는 남·북녘 사전 모두 “살이 ‘쪄’서 몸이 옆으로 퍼진” 모습으로 풀이합니다. 사전 말풀이는 이래저래 뒤죽박죽입니다. ‘찌다’를 ‘뚱뚱하다’로 풀이하고, ‘뚱뚱하다’를 ‘찌다’로 풀이할 뿐 아니라, 한자말 ‘비만’은 “쪄서 뚱뚱함”으로 풀이하니까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비만(肥滿) : → 찌다 . 뚱뚱하다
찌다 : 1. 살이 붙거나 늘어서 무게가 늘다 2. 때나 먼지다 달라붙다 (찌들다)
뚱뚱하다 : 1. 살이 많이 붙어서 몸이 옆으로 퍼지다 2. 어느 한 곳이 부풀어서 부피가 크다

  ‘찌다’하고 ‘뚱뚱하다’는 비슷하기는 해도 다른 낱말입니다. 아직 남·북녘 사전은 이를 제대로 가르지 못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한자말 ‘비만’을 자꾸 쓰는 바람에 ‘찌다·뚱뚱하다’가 어떻게 다른 결을 나타내는 낱말이었나를 우리 스스로 잊었다고 할 수 있어요.

  ‘찌다·뚱뚱하다’는 모두 살이 붙은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다음으로 ‘찌다’는 “살이 붙어 무게가 늘다”로 가르고, ‘뚱뚱하다’는 “살이 붙어 몸이 퍼지다”로 가를 만해요. ‘찌다’는 무게를 가리킨다면, ‘뚱뚱하다’는 ‘부피’를 가리킨다고 할까요.

  한국말을 알맞게 가려서 쓸 수 있다면, 때때로 ‘토실하다·토실토실하다’나 ‘통통하다·똥똥하다’를 알맞게 써 볼 수 있습니다.

ㄴ. 작파·포기·중단·그만두다·그치다·멈추다

  하다가 그만두면 안 하느니만 못 하다는 옛말잉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사이에 그치기보다는 끝까지 씩씩하게 이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요. 남·북녘 사전에서 ‘그만두다’하고 얽힌 한자말하고 한국말을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작파(作破) : 1. 어떤 계획이나 일을 중도에서 그만두어 버리다 2. 무엇을 부수어 버리다
포기하다(抛棄-) :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다
중단하다(中斷-) : 중도에서 끊다
그만두다 : 1. 하던 일을 그치고 안 하다 2. 할 일이나 하려고 하던 일을 안 하다
그치다 : 1. 계속되던 일이나 움직임이 멈추거나 끝나다 2.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어떤 상태에머무르다
멈추다 : 1.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이 그치다 2. 비나 눈 따위가 그치다 3. 사물의 움직임이나 동작을 그치게 하다
멎다 : = 멈추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작파하다(作破-) : 중도에서 그만둬 버리다
포기하다(抛棄-) : 도중에 그만두어 버리다
중단하다(中斷-) : 도중에 멈추거나 그만두다
그만두다 : 1. 멈추고 더이상 하지 않다 2. 벗어나 더이상 하지 않다
그치다 : 1. 더이상 계속하지 않다 2. 더이상 계속되지 않다
멈추다 : 1. 더이상 하지 않다 2. 계속되지 않도록 중단시키다 3. 더이상 계속되지 않다
멎다 : 1. (움직이거나 계속되던 작용이) 더이상 계속되지 않고 그친 상태가 되다 2. (비나 눈, 바람 따위가) 더이상 내리거나 불지 않게 되다 3. (시선이) 어떠한 사물에 고정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작파하다(作破-) : 일을 그만두어 버리거나 또는 파하다
포기하다(抛棄-) : 1. 끝까지 내밀지 않고 철회하여 버리다 2. 단념하다 3. 할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중도에서 그만두다
중단하다(中斷-) : 중간에 멎거나 끊다
그만두다 : 1. 하던것을 그치고 하지 않다 2. 할것이나 하려던것을 안하기로 하고 하지 않다 3. 가지고있던 자격이나 지위를 지니지 않게 되다
그치다 : 1. 계속되지 않게 되다 2.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서 더 나아가지 않다
멈추다 : 1. 움직이던 상태나 진행하던 행동을 그치고 그만두게 하다 2. 집중하다 3. 진행되던 상태가 멎다
멎다 : 1. 움직이던 사물이 운동을 그만두게 되다 2. 눈, 비 등이 그치다 3. 진행되던 이야기나 소리가 그치다

  남녘 사전이든 북녘 사전이든 ‘작파·포기·중단’을 ‘그만두다’나 ‘멈추다’ 같은 낱말로 풀이해요. 이 대목을 찬찬히 살핀다면 한국말 ‘그만두다·멈추다’를 알맞게 쓰고 ‘작파·포기·중단’을 털어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만두다·그치다’나 ‘멈추다·멎다’ 같은 한국말은 저마다 어떤 결일까요?
  《표준국어대사전》은 ‘그치다’를 ‘멈추다’로 풀이하고, ‘멈추다’를 ‘그치다’로 풀이합니다. 이러면서 ‘멎다 = 멈추다’로 풀이하지요.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중단하다 = 멈추거나 그만두다’로 풀이하는데, ‘멈추다 = 중단시키다’로 풀이합니다. ‘멎다 = 그치다’로 풀이하고요.

  《조선말대사전》은 ‘중단’을 ‘멎다’로 풀이하는데, ‘멎다’는 ‘그만두다’로 풀이하지요. 이러면서 ‘멈추다’는 “그치고 그만두게 하다”나 ‘멎다’
로 풀이해요.

  남·북녘 사전 모두 뜻풀이가 뒤죽박죽이에요. 실마리를 잡을 수 없고, 실마리를 알려주지 못합니다. 이 비슷하면서 다른 말을 이렇게 엉성한 뜻풀이로 어느 만큼 제대로 밝힐 만할는지요?

  《표준국어대사전》은 ‘멎다’를 “= 멈추다”로 다루지만 이는 옳지 않아요. “자전거를 멈추다”라고 쓰지만 “자전거를 멎다”라고 쓰지 않아요. “걸음을 멈추다”라고 쓰지만 “걸음을 멎다”라고는 쓰지 않아요. “놀이를 멈추다”라고 하지만 “놀이를 멎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다른 결을 사전에서 찬찬히 짚거나 다루어 주어야지 싶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작파하다(作破-) : → 그만두다 . 그치다
포기하다(抛棄-) : → 그만두다
중단하다(中斷-) : → 멈추다
그만두다 : 1. 하던 일을 더 하지 않다 2.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맡은 일을 끝까지 하지 않다
그치다 : 1. 더 움직이지 않거나 더 하지 않다 2. 더 나아가지 않다
멈추다 : 1. 하던 일이나 몸짓이 한동안 이어지지 않게 하거나 그 자리에 있다 2. 더 오거나 내리지 않다
멎다 : 1. 움직임이나 흐름이 사라지다 2. 더 오거나 내리지 않다 3. 눈길이 어느 곳이나 것에 그대로 있다

  ‘작파’라는 한자말은 ‘일(作) + 그만두다(破)’ 꼴이기에 “일을 그만두다”를 가리키니, “일을 작파하고”처럼 쓰면 겹말이 됩니다. 한자말을 쓸 생각이라면 ‘작파하고’라고만 쓸 노릇인데, 말뜻 그대로 쉽게 “일을 그만두고”나 “일을 그치고”로 손볼 때에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포기·중단’은 수수하며 쉽게 쓸 한국말을 단출하게 알려줄 때에 좋다고 느낍니다.

  ‘그만두다’는 일이라고 하는 테두리에서 더 하지 않는 모습이라면, ‘그치다’는 움직임이라고 하는 테두리에서 더 하지 않는 모습으로 가를 만합니다. 일을 할 적에는 움직이면서 하니, ‘그치다’는 “일을 그치다”처럼 쓸 수 있기도 해요.

  ‘멈추다·멎다’에서도 일이나 움직임이나 몸짓이나 흐름을 살펴서 두 낱말이 다른 결을 가를 만합니다. ‘멎다’는 “너한테 눈길이 멎었어”라든지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 눈이 멎었어”처럼 쓰임새를 넓히기도 합니다.

ㄷ. 불안·초조·조마조마하다·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

  여러모로 엉성한 사전을 살피다 보면 두근거립니다. 설마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이렇게 엉터리로 담을 줄이야 하는 생각으로 떨려요. 다른 낱말은 얼마나 얄궂게 다루었을까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됩니다. 이러한 느낌을 나타내는 여러 낱말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불안(不安) : 1.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 2. 분위기 따위가 술렁거리어 뒤숭숭함
초조(焦燥) :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에 대하여 염려가 되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다
뒤숭숭하다 : 1. 느낌이나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2. 일이나 물건이 어수선하게 뒤섞이거나 흩어져 있다
어수선하다 : 1.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가지런하지 아니하고 마구 헝클어져 있다 2. 마음이나 분위기가 안정되지 못하여 불안하고 산란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불안(不安) : 1. 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음 2. 분위기 따위가 안정되지 않고 뒤숭숭함
초조(焦燥) : 애가 타서 마음이 조마조마함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이 걱정되어 마음을 놓을 수 없고 불안하다
뒤숭숭하다 : 1. 어수선하고 불안하다 2. 종잡을 수 없이 뒤섞이거나 흩어져 어수선하다
어수선하다 : 1. 차분하게 안정되지 못하고 뒤숭숭하다 2. 수선스럽게 어질러진 상태에 있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불안(不安) : 1. 마음이 놓이지 않고 조마조마한것 2. 술렁거리며 소란하고 험악한것
초조(焦燥) : 안타깝게 마음을 조이는것
조마조마하다 : (닥쳐올 일에 대하여)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스럽다
뒤숭숭하다 : 1. 사물현상이 질서없이 뒤섞이거나 얽히여 종잡을수 없다 2. 궁금하거나 근심스러운 생각으로 정신이 산란하다 3. (분위기나 환경 같은것이) 안정되지 않고 들떠있다
어수선하다 : 1. 갈피를 잡을수 없이 흩어지거나 얽히여 어지럽고 수선하다 2. 깔끔하지 못하고 미적지근하다 3. 똑똑하지 않고 어렴풋하다

  ‘불안’을 ‘조마조마하다’나 ‘뒤숭숭하다’로 풀이하는데, ‘조마조마하다’를 “초조하고 불안하다”로 풀이하고, 다시 ‘초조’를 ‘조마조마하다’로 풀이한다면, 이 뜻풀이로 무엇을 알거나 짚을 만할까요?

  이런 어지러운 돌림풀이나 겹말풀이는 남·북녘 사전이 엇비슷합니다. 한자말은 한자말대로 엉성하고, 한국말은 한국말대로 엉터리로 다루지요.

  먼저 ‘불안’은 ‘조마조마하다’나 ‘걱정스럽다’나 ‘뒤숭숭하다’ 같은 한국말로 알맞게 손질할 수 있도록 알려줍니다. ‘초조’는 ‘조마조마하다’나 ‘떨다’ 같은 한국말로 찬찬히 손질하도록 이끌어 주고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불안(不安) : 1. 마음을 못 놓음 2. 차분하지 않음 → 조마조마하다 . 걱정스럽다 . 뒤숭숭하다
초조(焦燥) : 마음이 타거나 떨리다 → 조마조마하다 . 떨다
조마조마하다 : 1. 미리 걱정을 하면서 마음을 놓지 못하다 (어떤 일이 잘 안 되거나 잘 안 될 수 있으리라 여기면서 마음을 놓지 못할 만큼 힘이 들다) 2. 어떤 일이 있을는지 미리 헤아리거나 알기 어려워 마음이 뛰다
뒤숭숭하다 : 1. 마음·흐름·몸짓이 가라앉거나 조용하지 못하여 걱정스럽다. 안 가라앉거나 안 조용하기에 이리저리 흔들리기에 걱정스럽다 2. 이리저리 마구 섞이거나 흩어져서 제대로 알거나 찾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3. 이리저리 마구 섞이거나 흩어져서 제대로 알거나 찾기 어려우면서 걱정스럽다
어수선하다 : 1. 이리저리 마구 섞여 제대로 알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2. 마음·흐름·몸짓이 가라앉거나 조용하지 못하다. 안 가라앉거나 안 조용하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조마조마하다’는 마음을 놓지 못하되 걱정이 깃든 모습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헤아리거나 알기 어려워 마음이 뛰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이러한 모습을 말풀이에서 수수하게 다루어 줍니다.

  ‘뒤숭숭하다·어수선하다’는 뜻이나 결이 퍽 비슷하게 겹칩니다만 두 낱말은 쓰이는 자리에서 살그마니 갈라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어수선하다’는 가라앉지 않거나 마구 섞여서 알거나 헤아리기 어려운 결을 나타내지요. ‘뒤숭숭하다’는 이러한 결에 걱정스러움이 깃든다고 할 만해요.

  어수선할 적에는 딱히 걱정하지는 않는 마음이요, 뒤숭숭할 적에는 걱정까지 이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결을 사전에서 제대로 짚어 주어야 합니다.
2017.5.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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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로 생각하는 기쁨 찾기
[국어사전 돌림풀이 벗기기 9] 기후·기상·계절·날씨·철, 선천적·타고나다, 변화·변하다·바꾸다·달라지다·갈다·거듭나다


왜 '돌림풀이'와 '겹말풀이'를 벗기는가?
글쓴이는 2016년 6월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이라는 작은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한 권 써냈습니다. 이 작은 한국말사전을 써내려고 다른 한국말사전을 살피는 동안, 한국에서 그동안 나온 사전은 하나같이 돌림풀이와 겹말풀이에 갇혀서 한국말을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는 구실을 거의 못했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제가 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는 '한국말을 새롭게 손질한 뜻풀이'만 실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에서는 못 싣거나 못 다룬 이야기를 찬찬히 풀어내 보려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고 하는 두 가지 사전(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하고 북녘에서 내놓은 한 가지 사전(조선말대사전)에 실린 뜻풀이를 살피면서, 앞으로 한국말이 새롭게 나아가거나 거듭나야 할 길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한국말로 생각하는 기쁨을 누린다면 한국사람이 쓰는 한국말은 눈부시게 발돋움하리라 봅니다. 한국사람한테 아무리 빼어난 글(한글)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이 글에 담을 말(한국말)을 슬기롭게 가다듬지 못한 나머지 ‘한국말로 새롭게 생각을 짓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한국말은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칠밖에 없구나 싶어요.

  영어를 쓰든 한자말을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쓸 만할 때에는 쓰면 됩니다. 아직 다른 나라 문화나 문명을 우리 나름대로 삭히거나 거르지 못했으면 한동안 영어이든 한자말이든 다른 외국말이든 얼마든지 쓸 만해요. 다만 열 해가 가고 스무 해가 가며 쉰 해가 가는 동안 우리 나름대로 삭히거나 거르는 몸짓이 없다면, 이리하여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스스로 생각을 짓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모든 낱말을 우리 손으로 지을 수 없다고 여기곤 하는데, 참말 이와 같은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우리 손으로 지을 수 없다’는 생각에 갇히는 바람에 막상 우리가 얼마든지 새로 지을 수 있는 말도 미처 제대로 못 짓고 그냥 지나친 셈일 수 있거든요.

  고장마다 오랫동안 이어온 고장말을 헤아려 봅니다. 큰 테두리에서 함경말하고 평안말하고 황해말하고 경기말하고 강원말하고 충청말하고 전라말하고 경상말하고 제주말이 모두 달라요. 함경도나 경상도에서도 작은 고장에서 다 다른 말을 쓰고, 더 작은 고을에서는 또 다 다른 말을 쓰며, 더 작은 마을에서는 또 다 다른 말을 씁니다. 마을이나 고을이나 고장마다 스스로 삶과 살림을 짓는 터라, 이러한 삶결과 살림결에 맞추어 ‘즐겁게 삶을 짓듯이 즐겁게 생각을 지어 즐겁게 말을 짓는 모습’으로 드러나지 싶어요.

  ‘기후·기상·계절’이라는 한자말하고 ‘날씨·철’이라는 한국말을 나란히 놓고서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기후(氣候) : 1.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대기(大氣) 상태 2.일 년의 이십사절기와 칠십이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기’는 15일, ‘후’는 5일을 뜻한다 3. [지리] 일정한 지역에서 여러 해에 걸쳐 나타난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평균 상태 ≒ 천후(天候)
기상(氣象) :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현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바람, 구름, 비, 눈, 더위, 추위 따위를 이른다. ‘날씨’로 순화
날씨 : 그날그날의 비, 구름, 바람, 기온 따위가 나타나는 기상 상태
 : 1. = 계절(季節) 2.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 3. = 제철
계절(季節) :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자연 현상에 따라서 일 년을 구분한 것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기후(氣候) : 1. [기상] 기온, 비, 눈, 바람 따위의 대기(大氣) 상태 2. 일정한 지역의 여러 해에 걸쳐 나타나는 기온이나 강수, 바람 등의 평균 상태 3.일 년의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와 칠십이후(七十二候)를 아울러 이르는 말
기상(氣象) : [기상] 바람, 구름, 비 등 대기 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
날씨 : 비, 구름, 바람, 기온 따위의 변화에 따른 대기의 상태를 이르는 말
 : 1. 일 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시절로 구분했을 때의 한 시기 2. 일 년 중 어떤 일을 하기에 적합한 때 3. 알맞은 시절
계절(季節) : 1. 일 년을 기후 현상의 차이에 따라 나눈 한 철 2. 대개 온대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철로 나누고, 열대에서는 강수량에 따라 건기와 우기로 나눈다 3. 천문학상으로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로 나눈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기후(氣候) : 1. 일정한 지역에서 해마다 대체로 비슷하게 되풀이되면서 변화되는 일기상태 2. = 기체후
기상(氣象) :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상태와 그가운데서 일어나는 물리적현상
날씨 : 그날그날의 기압, 구름, 누기, 비, 바람, 눈, 기온 등으로 나타나는 대기의 운동과 변화상태
 : 1. 한해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시기로 가른 그중의 한 시기 2. 매해 되풀이하여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그런 시기나 때 3. ‘제철’의 준말
계절(季節) : = 철


  ‘기후’는 여러 해나 꽤 긴 해를 아울러서 꾸준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나 결을 그리는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기상’은 하루라는 테두리에서 하늘을 살펴서 어떤 모습이나 결인가를 나타내는 낱말이라고 할 만하고요.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넷으로 나눈 ‘철’을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날씨’하고 ‘철’이란 무엇일까요? 말풀이로 본다면, 먼저 ‘기상’은 ‘날씨’로 고쳐쓸 낱말이라 하는데, 정작 ‘날씨’를 ‘기상’이라는 낱말로 풀이하는 사전입니다. ‘날씨’이든 ‘기후·기상’이든 “대기의 상태·현상”을 가리킨다고 풀이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철’을 “= 계절”로 풀이하지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계절’을 ‘철’로 풀이하고, 《조선말대사전》은 ‘계절’을 “= 철”로 풀이해 줍니다.

  우리가 먼먼 옛날부터 하늘을 살피거나 읽을 적에 어떤 낱말을 썼는지 헤아린다면, 여러 한국말사전이 말풀이를 어떻게 할 적에 슬기롭거나 알맞은가를 알 만하리라 봅니다. 적어도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철’을 “= 계절”로 풀이하는 엉성한 짓에서는 벗어나야지 싶습니다.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기후(氣候) : 더위·추위·바람·구름·해·눈·비·안개 들에 따라 어느 곳에 제법 오랫동안(여러 해나 긴 해에 걸쳐서) 꾸준하게 나타나거나 흐르는 모습이나 결 → 철 . 철씨 . 날씨
기상(氣象) : → 날씨
날씨 : 바람·구름·해·눈·비·안개 들에 따라 어느 곳에 나타나거나 흐르는 모습이나 결 (으레 어느 하루를 콕 집어서 가리킬 적에 쓰지만, 봄이나 가을 같은 철이라든지 한 해나 여러 해를 아울러서 꾸준하게 나타나거나 흐르는 모습이나 결을 가리킬 적에 쓰기도 한다)
 : 1. 더위·추위·바람·해·눈·비 들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어느 때 (이를 흔히 네 철, 봄·여름·가을·겨울로 가르곤 한다. 더운 철과 추운 철이라든지 비가 잦은 철과 비가 드문 철처럼 두 가지로 가르기도 한다) 2. 어떤 일을 할 만한 때 3. 어떤 일이나 모습이 으레 나타나거나 한창 벌어지는 때 4. 자라거나 퍼지기에 알맞다고 여기거나 꼭 들어맞는 때 (제철) 5. 알맞게 어울리거나 쓰기에 좋은 때
계절(季節) : → 철
[글쓴이가 새로 지어 본 낱말] * 철씨 : 더위·추위·바람·구름·해·눈·비·안개 들에 따라 어느 곳에 제법 오랫동안(여러 해나 긴 해에 걸쳐서) 꾸준하게 나타나거나 흐르는 모습이나 결 


  정부에서는 ‘기상청’이라는 곳을 두고 ‘기상대’을 세웁니다. “기후 변화”나 “온대 기후” 같은 말을 사회에서 널리 씁니다. 이처럼 쓰는 말마디는 아직 어쩔 수 없이 이대로 쓰는 길이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말사전에서는 말뜻과 쓰임새를 알맞게 보여주면서 앞으로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새롭게 가다듬도록 도울 만한 틀을 잘 밝힐 수 있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 ‘날씨·철’ 두 낱말을 꼼꼼히 살펴서 제대로 말풀이를 붙여 줄 노릇입니다. 이러면서 ‘기후’가 ‘기상’하고 다른 쓰임새를 단출하면서 뚜렷하게 밝히면 되겠지요.

  “기후 변화”는 “날씨 변화”로 손질해서 써 볼 만합니다. “온대 기후”를 “온대 날씨”로 손질해서 써 볼 수 있을 테지요. “날씨가 더운 곳에서 왔구나”라든지 “날씨가 따뜻한 곳이 좋아”라든지 “날씨가 추운 나라입니다”처럼 흔히 씁니다. 이때에 ‘날씨’는 바로 ‘기후’를 가리켜요.

  ‘날씨’는 ‘날 + 씨’이고, ‘-씨’는 “어떠한 모습이나 결이나 몸짓”인가를 나타낼 적에 붙여요. ‘바람씨·마음씨’ 같은 낱말이 한국말사전에 나오지요. 한국말사전에는 아직 ‘볕씨·빛씨·물씨·해씨·철씨’ 같은 낱말은 없습니다. 날을 살펴서 ‘날씨’이듯, 철을 살펴서 ‘철씨’라는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 보면 ‘기후’가 어떤 말결인가를 잘 담아낼 만하지 싶어요.


(표준국어대사전)
선천적(先天的) : 1.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2. [철학] = 아 프리오리(a priori)
타고나다 : 어떤 성품이나 능력, 운명 따위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선천적(先天的) : 1. 태어날 때부터 이미 갖추고 있는 것 2. [철학] 인식이나 경험 따위가 후천적 경험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부여된 것
타고나다 :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선천적(先天的) : 성질, 체질, 질병 같은것을 날 때부터 몸에 지닌 곧 타고난 성질의(것)
타고나다 : 태여날 때부터 받아지니고 나다


  북녘 사전은 돌림풀이·겹말풀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만, 남녘 사전은 돌림풀이·겹말풀이에 얽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갖추고) 있는” 것을 ‘선천적’이라고 풀이하면서 ‘타고나다’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다”로 풀이하면 어떡하나요? 말이 안 됩니다. 더 살펴본다면 “지니고 있는”이나 “갖추고 있는”은 군더더기 말씨이거나 겹말입니다. ‘지니다·있다·갖추다’ 가운데 한 낱말만 골라서 써야 알맞습니다.

  ‘선천적·타고나다’를 더 헤아린다면 굳이 ‘선천적’에 말풀이를 안 달아도 될 만합니다. 한국말 ‘타고나다’를 알맞고 바르게 쓰도록 사전이 잘 이끌어 주면 되어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선천적(先天的) : → 타고나다
타고나다 : 태어날 적부터 몸에 있다


  쉬운 말은 쉽게 풀이해 주면 됩니다. 어렵다 싶은 말은 실마리를 차근차근 잡아서 알맞게 풀이해 주면 됩니다.

  다음으로 ‘변화·변하다’라는 한자말하고 ‘바꾸다·달라지다·갈다·거듭나다’라는 한국말을 견주어 살피겠습니다. 남녘 사전은 ‘변화’라는 한자말을 엉뚱하게 풀이하면서 ‘바뀌다(바꾸다)·달라지다’라는 한국말을 제대로 풀이하지 못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변화(變化) :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변하다(變-) : 무엇이 다른 것이 되거나 혹은 다른 성질로 달라지다
바꾸다 : 1. 원래 있던 것을 없애고 다른 것으로 채워 넣거나 대신하게 하다
달라지다 : 변하여 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사물을 다른 것으로 바꾸다 2. 어떤 직책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다
거듭나다 : 지금까지의 방식이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변화(變化) : 사물의 모양이나 성질이 바뀌어 달라짐
변하다(變-) : (무엇이) 이전과 달라지거나 딴것으로 되다
바꾸다 : 1. (사람이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또는 사람이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교환하여 대신 가지다 2. (사람이 무엇을, 또는 사람이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이미 있던 것을 치우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있게 하다 3. (사람이 무엇을, 또는 사람이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내용이나 상태를 고쳐서 전과 다른 것으로 만들다
달라지다 : (무엇이) 변하여 형편이나 모습이 전과 다르게 되다
갈다 : 1. (사람이 물건을) 사용하던 것을 버리고 다른 것으로 바꾸다 2.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맡고 있던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직책에 다른 사람을 앉히다
거듭나다 : 1. (사람이나 단체가) 긍정적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다 2. [기독] (사람이) 원죄 때문에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 다시 살아나 새사람이 되다

(북녘 조선말대사전)
변화(變化) : (사물현상의 성질, 모양, 상태 등이 변하여 다르게 되는것
변하다(變-) : 달라지거나 딴것으로 바뀌다
바꾸다 : 1. 어떤것을 주고 그 대신 딴것을 받다 2. 본래의것이나 낡은것을 딴것 또는 새것으로 되게 하거나 마들다 3. (낡) 피륙을 사다 4. 말이나 인사 같은것을 서로 주고받고 하다
달라지다 : 1. 다르게 되다 2. (사람이) 좋게 변하거나 나쁘게 변하다
갈다 : 이미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다
거듭나다 : 종교적관점에서, 다시 새 사람으로 태여나다


  ‘변화’를 “바뀌어 달라짐”으로 풀이하면 이는 어쩌자는 소리인지 알 수 없어요. 도무지 말이 안 되는 말풀이입니다. 남녘 사전은 ‘바꾸다’를 “다른 것으로 채워 넣거나 대신하게 하다”처럼 ‘대신(代身)’이라는 한자말을 써서 풀이하는데, ‘대신하다’는 “어떤 대상의 자리나 구실을 바꾸어서 새로 맡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남녘 사전은 “바꾸다 = 다른 것으로 채워 넣거나 ‘바꾸어서 새로 맡게 하다(대신하게 하다)’”로 풀이한 꼴입니다.

  남북녘 사전 모두 ‘갈다’를 ‘바꾸다’로 풀이하니, 이 대목에서도 말뜻이나 말결을 제대로 짚기 어렵습니다. 비슷한 얼거리로 묶을 만한 낱말은 서로 겹치거나 맴돌지 않도록 잘 살피고 가누어야 합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거듭나다’를 ‘변화하다’로 풀이하면서 더 뒤죽박죽 말풀이가 됩니다. 남북녘 사전은 모두 ‘변하다’를 ‘달라지다’로 풀이하고, ‘달라지다’를 ‘변하다’로 풀이하면서 돌림풀이예요.


(글쓴이가 손질한 새 말풀이)
변화(變化) : → 바꿈(바꾸다) . 달라짐(달라지다)
변하다(變-) : → 바꾸다(바뀌다) . 달라지다
바꾸다 : 1. 처음 있던 것을 없애고 다른 것으로 하거나 채우거나 넣다 2. 내 것을 다른 사람한테 주고, 이와 걸맞게 다른 사람 것을 받다 3. 처음 짠 줄거리나 모습이나 흐름을 다르게 하다 (고치다) 4. 이제까지 있거나 쓰던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두거나 쓰다 5.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두다 6. 어느 말을 다른 말로 풀어 놓다 (옮기다) 7. 처음 있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다 (옮기다) 7.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거나, 이쪽에 있던 것을 저쪽에 있게 하다 (차례를 번갈아 하다) 9. 곡식이나 옷감을 돈을 주고 사다 10. 말이나 인사를 서로 하다 (주고받다, 나누다)
달라지다 : 처음이나 예전과는 다르게 되다
갈다 : 1. 이미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하거나 넣다 (고치다) 2. 어떤 자리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두다
거듭나다 : 1. 예전 모습을 벗으면서 한결 밝아지거나 나아지다 2. 예전 모습을 말끔히 벗으며 아주 다른 사람이 되다


  한국말로 생각하는 기쁨이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로 생각을 새롭게 지으면서 삶과 살림을 곱게 짓는 길을 스스로 여는 기쁨이라고 봅니다.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서 풀이나 벌레나 물고기를 살피는 학자마다 제 나라 말로 풀이름·벌레이름·물고기이름을 다 다르게 지어서 붙이려고 하는 까닭을 헤아려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 있으면 이 이름을 살립니다.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 아직 없다면, 다른 나라에서 새로 받아들인 문화나 문명이나 생태 정보나 지식이라 한다면, 이때에는 나라마다 다 다른 이름을 제 삶터에 맞게 살펴서 이름을 짓습니다. 라틴말로 된 학술이름은 그대로 쓰되, 나라마다 그 나라에 맞게 이름을 다시 짓거나 새로 지어요.

  영어로 ‘weather·climate’가 있다면 한자말로 ‘기상·기후’가 있을 테지요. 그러면 한국말로는 무엇이 있을 만할까요? 우리가 스스로 말을 찾고 지으며 살릴 때에 우리 삶터가 나아지면서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스스로 피어나는 꽃이요 스스로 자라나는 말이에요. 말꽃이 피고 삶꽃이 피도록 조금 더 슬기로이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2017.4.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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