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12. 어른



나이를 먹으면 나이를 먹을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 뿐이다. 나이가 어리면서 철이 들지 않으면 ‘철딱서니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을 뿐 사람다운 슬기나 사랑이 없다면 ‘늙어빠졌다’고 한다. 어른은 나이를 먹거나 늙은 사람을 가리키지 않는다. 어른은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이다. 그래서 나이가 적거나 어리더라도 ‘어른스러운’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철든’ 사람이란, 나이를 아랑곳하지 않고서 사람답게 슬기롭고 사랑스러운 길을 가는 몸짓을 펴는 사람이다. 우리 삶터를 보면 나이만 먹은 사람, 곧 ‘늙은 사람(늙은이)’인 몸으로 마구 구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어른이 말하면 아이가 들어야지!” 하고 여기는 이는 어른이 아닌 늙은 사람이다. 늙은 사람한테서는 배울거리가 없고, 늙은 사람은 아무도 가르칠 수 없다. 오직 어른한테서 배울거리가 샘솟으며, 어른인 사람만 가르칠 수 있다. 덧붙여, 아이다운 숨결일 적에 배우며, 아이답게 살아가는 숨결이기에 즐겁게 배워서 새롭게 거듭나거나 피어난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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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1. 듣는다



마음을 열어 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생각을 틔워 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눈을 뜨고서 바람이 나무하고 나누는 말을 듣는다. 온몸을 써서 흙하고 새롭게 이야기하면서 꿈을 듣는다. 귀로도 듣지만 마음이나 눈이나 몸으로도 듣는다. 말도 듣지만 생각이나 사랑을 함께 듣는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들을 수 있다. 마음을 닫거나 생각을 닫거나 눈을 감거나 꼼짝하지 않으면서, 모든 소리랑 말이랑 이야기를 하나도 안 받아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듣다”를 으레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잘 따르다”로만 여겨 버릇하지만, 말을 잘 듣는 삶이란 온누리에 있는 뭇목숨이나 뭇숨결이 저마다 노래하는 이야기를 알아채고 우리 목소리를 나누어 주는 몸짓이라고 느낀다.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나 기계 소리 말고, 상냥한 구름 소리나 미리내 소리를 듣자. 자질구레한 텔레비전 소리는 접어두고, 넉넉한 풀노래 꽃노래 나무노래 숲노래를 듣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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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0.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를 다니면서 ‘여느 날 낮에 버스 타기’를 거의 해 보지 못했다. 아주 드물게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탈 일이 있으면 어쩐지 대단히 잘못했거나 사람들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느꼈다. 요즈음 아이들 가운데 제도권학교를 안 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다시피 할 테니, 여느 날 낮에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면서 볼일을 보거나 마실을 다니는 삶을 누려 본 적도 드물 테지. 여느 날 낮에 느긋하게 책집에 들른다거나 박물관이나 도서관을 찾는다거나 공원에서 나무그늘을 찾는다거나 숲길을 걸어 보는 일도 드물 테고. 주말이나 방학에 우르르 몰려서 가는 ‘여느 날 볼일이나 마실’이 아닌, 언제라도 느긋하면서 넉넉하게 삶을 돌아보고 삶터를 헤아리는 나날이 되어야지 싶다. 여느 날 낮에 해를 보며 해바라기를 한다. 여느 날 낮에 바닷가에 찾아가 바닷물에 풍덩 뛰어든다. 여느 날 낮에 풀밭을 거닐며 풀내음을 먹는다. 여느 날 낮에 만화책을 펴고 시 한 줄을 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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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09. 안 깨우기



우리 집 아이들을 아침에 깨우는 일이란 거의 없다. 아이들이 아주 느즈막할 때까지 안 일어나는, 이를테면 아침 열 시가 되어도 안 일어날 적조차 되도록 안 깨웠다. 그리 늦게 잠들지 않았는데 아침 열 시나 열한 시 무렵에 일어나는 아이를 안 깨우기란 쉽지 않았지만, 더 자야 하니까 더 자야 하겠거니 여겼다. 이렇게 아이들하고 살아가는 어느 무렵, 작은아이부터 새벽 다섯 시나 다섯 시 반 무렵 스스로 깨어나더니, 큰아이도 아침 일곱 시 넘어서 깨어나는 일을 찾아볼 수 없다. 둘 다 스스로 새벽빛을 보면서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나 스스로도 울림시계를 쓴 일이 없고, 아이들도 울림시계를 안 쓴다. 우리는 몸에다 대고 이야기한다. 얼마쯤 자면 좋겠고, 언제쯤 일어나면 좋겠다 하고. 이러면 몸은 우리 이야기를 알아듣고는 고스란히 따른다. 어쩌면 우리는 잠을 아예 안 자고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몸한테 ‘잠을 안 자도 얼마든지 눈부시게 튼튼하지’ 하고 말한다면. 다만, 낮잠이나 밤잠을 살짝살짝 누리면서 꿈나라를 누빌 적에 기쁘니 굳이 잠을 안 잘 생각은 없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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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08. 값싼 것



아이들이 무엇을 골라서 사야 할 적에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들아, 우리가 쓸 세간을 고를 적에는 물건값을 쳐다보지 말자. 우리가 쓸 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보자. 두고두고 즐겁게 쓸 만한지 아닌지를 보자. 얼마쯤 쓰다가 망가져서 버릴 만하다면 처음부터 장만하지 말자. 우리는 더 싸거나 비싼 것이 아닌, 오래오래 즐겁게 쓰면서 누릴 세간을 살펴서 쓰면 돼.” 값싼 것을 여럿 둔대서 좋거나 즐거울 일이란 참말 아예 없다. 값싼 신을 여러 켤레 두면 좋을까? 제대로 좋은 것을 제값을 치러 꼭 하나 둘 적에 좋지 않을까? 신을 굳이 여러 켤레 둘 일이 없다. 가장 나은 신 한 켤레만 있으면 된다. 바깥으로 마실을 다니다가 밥을 사다가 먹어야 하는 자리에서도 가장 먹고 싶은 한 가지를 먹기로 한다. 주머니에서 돈이 적게 나갈 만한 싼 것을 먹을 생각이 없다. 느긋하게 즐겁게 넉넉하게 먹을 만한 밥차림을 살피기로 한다. 가만 보면 우리가 값싼 것을 찾으려 할 적에는 배울 이야기가 없다. 굳이 값싼 책을 여럿 장만해야 할까? 두고두고 되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책 하나로 넉넉하지 않은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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