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배움꽃/아버지 육아일기 2022.4.7.

숲집놀이터 265. 마음껏



  2022년 4월 6일 밤, 아버지하고 이틀째 바깥마실을 하며 전주에서 하룻밤을 묵는 작은아이가 속삭입니다. “아버지, 새벽 다섯 시에 깨워 주셔요.” “새벽 다섯 시?” “네, 새벽 다섯 시에 바깥이 어떤 빛인지 보고 싶어요.” “그래, 그러렴.” 숲노래 씨는 일찍 자건 늦게 자건 으레 밤 열한 시나 한두 시에 일어납니다. 4월 7일에는 밤 두 시에 하루를 엽니다. 새벽 네 시부터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함박비가 쏟아집니다. 마실길에 슈룹(우산)을 안 챙겼으나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나설 아침 아홉 시에는 비가 그치고 하늘이 새파랗게 트이리라 생각합니다. 빗소리가 새벽을 어루만지니 반갑고, 빗소리에 부릉소리가 모두 잠기니 즐겁습니다. 비는 말끔이(청소부)입니다. 비 한 줄기가 들으면 온누리가 말끔해요. 비는 맑음이입니다. 비 두 줄기가 내리면 온누리가 싱그러이 살아납니다. 새벽 다섯 시를 지날 즈음 작은아이 이마를 가만히 쓸어넘깁니다. 굳이 ‘깨울’ 까닭이 없이 이불깃을 여미고 토닥이면 돼요. 고단하면 더 꿈나라를 누빌 테고, 새벽빛을 보고 싶다면 어버이 손길을 느끼며 눈을 뜰 테니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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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10.4.

숲집놀이터 263. 미리맞기(예방주사·백신)



우리말로 쉽게 하자면 ‘미리맞기’요, 한자말로는 ‘예방주사’요, 영어로는 ‘백신’인데, 이 ‘미리맞기’가 뭔지 제대로 짚는 사람이 드물다. 깜짝 놀랄 만하지만, 어쩌면 아주 마땅할는지 모른다. ‘미리맞기 : 몸앓이를 하도록 나쁜것을 몸에 미리 집어넣기’이다. ‘좋은것을 몸에 미리 넣기’가 아니라 ‘몸을 미리 앓도록 내모는 나쁜것을 넣되, 숲(자연)에서 흐르는 푸른 숨빛이 아닌, 뚝딱터(공장)에서 죽음물(화학약품)을 섞어서 짜낸 나쁜것을 넣는’다. 어떤 사람은 고뿔에 걸려도 가볍게 어지러울 뿐 멀쩡하다. 어떤 사람은 콰당 넘어져도 안 아프다. 어떤 사람은 고뿔에 걸려 며칠을 앓고, 가볍게 부딪혀도 멍이 든다. ‘죽음물을 섞어서 짜낸 나쁜것’을 몸에 넣고도 멀쩡한 사람은, 구태여 나쁜것을 미리 안 넣어도 돌림앓이에 안 걸린다. 여느 때에 돌림앓이에 쉽게 걸릴 만한 사람은 ‘죽음물을 섞어서 짜낸 나쁜것’을 미리 집어넣으면 목숨을 잃거나 크게 앓는다. 생각해야 한다. 튼튼한 사람은 가만 둬도 튼튼하고, 여린 사람은 미리맞기 탓에 빨리 죽는다. 왜 미리맞기를 나라(정부)에서 밀어붙일까?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종(노예)으로 삼을 뿐 아니라, 여린이(허약 체질)를 쉽게 치우는(죽여 없애는) 지름길이거든. 더구나 ‘군산복합체’ 곁에는 ‘병의학커넥션’이 있다. 나라(정부)는 돈이 될 길을 밀어붙여 사람들을 윽박지른다. 평화 아닌 전쟁을 짓는 군대를 밀어붙이고, 삶(생명) 아닌 죽음(살인)을 짓는 미리맞기를 몰아세운다. 그리고 이 모든 짓을 일삼으면서 그들(정부·권력체)이 오래도록 뒷배를 해놓은 글바치(지식인·과학자)를 허수아비로 내세워 사람들을 홀린다. 누구나 스스로 배울 적에 스스로 빛나는데, 요새는 배움터(학교)에 꼭 가야 하는 듯 밀어붙이고, 다들 그냥 아이를 배움터에 밀어넣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부터 늘 어버이 스스로 아이를 가르치고 사랑했는데, 이제는 남(전문가)한테 홀랑 맡기고 만다. 튼튼한 사람을 골로 보내고, 여린 사람도 골로 보내는 미리맞기인 줄 스스로 알아차리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정부·권력체)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바보로 뒹굴면서 스스로 바보로 뒹구는 줄조차 모르는 하루를 맞이하면서 쳇바퀴를 돌고 만다.


ㅅㄴㄹ


지난 2021년 10월 4일에 써놓았으나

그때조차도 차마

바깥에 내놓을 수 없던 글을

이제는 내놓아 본다.


‘사실’이 아닌 ‘진실’을 보는

스스로 슬기로운 사람으로

누구나 깨어나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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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2.2.27.

숲집놀이터 264. 한때



철이 되면 김치를 담그느냐고 묻는 분이 많았다. 이렇게 묻는 분은, 사내인 내가 아닌 가시내인 곁님이 김치를 담갔느냐고 묻는 말이더라. 그런데 우리 집은 처음부터 언제나 사내인 내가 집안일을 도맡았으니 “김치 담갔느냐?” 하고 묻는 말은 나더러 김치를 담갔느냐고 묻는 말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뒤늦게 깨닫고는 다시 나한테 김치를 담갔느냐고 묻는데, “저는 어려서부터 김치를 못 먹는 몸입니다.” 하고 대꾸한다. 이런 대꾸조차 ‘묻는 그분한테 진작 여러 해째 똑같이 들려준 말’이다. “그럼 김치를 안 드시나?” “저는 김치를 먹을 수 없는 몸입니다. 그러나 곁님하고 아이들은 김치를 먹는 몸이니, 저는 이따금 김치를 해서 먹이지요.” “허허, 김치를 못 먹는데 김치를 한다고?” “그러니까 김치가 왜 궁금하고, 김치를 담그느냐고 왜 물으세요?” 쉰 살 가까이 살아오는 사이에 나한테 ‘김치 담그기’를 묻던 어느 분하고도 더는 만나지 않는다. 만날 까닭이 없지 않을까? 이 나라에서 나고자란 사람이라면 모두 김치를 잘 먹어야 할까? 고춧가루가 이 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앗는데 고춧가루범벅인 김치를 누구나 잘 먹어야 할까? ‘소금에 절인 남새’는 참 오래된 밥살림이지만, ‘배추’가 이 땅에 들어온 지는 아직 즈믄해조차 안 되었다. 즈믄해가 지났어도 이 나라 모든 사람 몸에 배추를 절인 밥살림이 몸에 맞아야 할 까닭이 없다. 아이들은 몽땅 배움터(학교)를 다녀야 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모조리 일터(회사)에 나가야 하지 않는다. 논밭을 가꾸어도 즐겁고, 바다를 돌보아도 아름답고 숲을 품어도 사랑스럽다. 집살림을 도맡으면 얼마나 멋스러우면서 기쁠까. 한때 억지로 김치를 몸에 꾸역꾸역 넣으려 했으나, 이제 이 바보짓을 끝냈다. 먹을 수도 없는 김치를 간조차 안 보고서 제법 먹을 만하게 담가서 아이들한테 열 몇 해를 베풀었으나,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스스로 손질하고 절이고 간을 맞추고 양념을 해서 먹도록 이끈다. 못 먹는 김치를 굳이 담그지 말자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 사랑으로 살아갈 뿐이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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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9.26.

숲집놀이터 260. 뛰놀기



우리 집 아이들은 책집마실을 싫어하지는 않으나 아버지가 책집마실을 지나치게 오래한다고 여긴다. 아이들 말을 듣고서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맞다. 나는 책집마실을 끝없이 한다. ‘이제 좀 그만하면 좋겠는데’ 하고 쀼루퉁하도록 책집에 머문다. 그렇지만 모든 책집은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수록 더욱 새롭게 빛나는걸. 골짜기나 숲에 깃들 적에도 하염없이 머물 수 있고, 바다에서도 가없이 지낼 수 있다. 꼭 책집에서만 오래 지내지는 않는다. 다만 여태까지 살아온 자취를 본다면 서울·큰고장에서 살아남으려고 책집하고 보금자리 둘 사이만 오간 나날이었으니, 이 고리를 깨려고 아이들하고 시골살이를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다. 큰아이가 태어나 주면서 아주 마땅히 책집마실이 확 줄었고, 작은아이가 태어나 주며 더더욱 책집마실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자주 많이 다닌다’는 핀잔을 듣는데 눈앞에서 만지작거려야 비로소 살 만한지 아닌지, 또 글님하고 펴낸님이 어떤 마음결이었는가를 느낀다. 2008년부터 두 아이들 힘으로 책집마실을 줄이고 또 줄이는 사이에 마음읽기를 새로 배우고 숲읽기를 새삼스레 익힌다. 이 아이들은 뛰놀 적에 넓고 깊이 스스로 배운다는 대목을 일깨운다. 맞아, 너희가 아름다워. 너희 아버지도 어릴 적에 신바람으로 뛰논 개구쟁이였어.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개구쟁이 눈빛을 건사하며 같이 뛰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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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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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빛 2021.9.26.

숲집놀이터 259. 알밤



네 손에는 네가 즐기는 모든 놀이가 반짝반짝 있다. 너는 무엇이든 노래로 바꾸고, 너는 언제나 춤으로 돌리고, 너는 한결같이 웃음꽃으로 피운다. 알밤은 해바람비를 먹고 자란다. 해바람비가 깃든 알밤을 손에 얹으면서 네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해바람비 기운이 퍼진다. 이 알밤을 아작 깨물면 네 이를 타고서 뼛속으로 고루고루 해바람비 숨결이 스민다. 밤나무는 아이들이 곁에서 뛰고 놀고 노래하고 춤추는 빛살을 머금으면서 한 뼘씩 큰다. 아이들은 밤나무한테 가을마다 찾아가서 둘레를 빙그르르 돌고 웃고 떠들고 반기면서 두 뼘씩 자란다. 어른들은 밤나무를 둘러싼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또 아이들을 포근히 안는 밤나무를 어루만지면서, 어느새 석 뼘씩 마음을 밝힌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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