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93. 나누는 사이



어버이하고 아이는 나누는 사이로구나 싶다. 길든 짧든 깊든 얕든 무엇이든 나누는 사이라고 할까. 즐거움이든 미움이든, 노래이든 짜증이든, 참말로 아무것도 안 가리면서 모조리 나누는 사이로 하루를 지내지 싶다. 처음에는 이모저모 알려주느라 바쁘거나 힘들거나 벅찰 만하다. 그러나 우리가 품을 들이고 말미를 써서 알려주고 나누는 사이에 서로 새롭게 자란다. 듣는 사람은 품이랑 말미를 들여서 듣는 동안 ‘예전에도 들었지. 그런데 예전에는 아직 살갗에 와닿지 않았어. 이제 조금씩 와닿는구나’ 하고 여기면서 자란다. 말하는 사람은 품이랑 말미를 써서 말하는 동안 ‘예전에 말할 적에 못 알아듣거나 잊었다면 더 살피고 따져서 새롭게 알려주어서 배우도록 해 보자’ 하고 여기면서 자란다. 나누는 사이로 지내기에 나중에는 열 마디 말이 없어도 마음으로 살뜰히 읽으면서 수월히 지낼 만하다. 나누는 사이가 아닐 적에는 처음이든 나중이든 아무런 얘기가 오가지 않았으니 울타리나 담이 높을 뿐 아니라 두툼하다. 우리가 사랑이나 꿈이나 생각을 나누는 사이라 한다면, 번거롭거나 성가시거나 귀찮아 하지 말 노릇이다. 차분히 기다리면서 듣고, 찬찬히 지켜보면서 말할 적에 나눌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92. 손목시계



  우리 할아버지는 밥을 따로 넣지 않고 흔들어서 움직이는 시계를 차고 다니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 시계를 물려받았지만, 흔드는 바늘시계는 어린이한테 매우 묵직해서 손목에 차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즈음 1980년대 첫무렵에 수은전지로 움직이는 가벼운 전자시계가 널리 퍼졌고, 아이들은 이 시계를 얻고 싶어서 저마다 어버이를 졸랐다. 나도 전자시계를 얻었고, 어른들은 먼 마실길을 다녀오면 아이들한테 으레 전자시계를 선물하곤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선물받은 시계가 자랑스럽고 좋았는데, 나는 시계를 찰 적마다 손목이 마치 끊어지는 듯 아팠다. 손목에 헐렁하도록 시계를 차더라도 피가 안 흐른다고 느끼면서 저릿저릿했다. 어른들은 왜 이러한지 알지 못했고,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내 몸은 손목시계를 비롯해서 팔찌나 목걸이 모두 싫어했고, 얼추 열한두 살 언저리이지 싶은데, 그때부터 내 몸을 시계로 삼으며 살았다. 손목시계를 찰 수 없는 몸이니, 나 스스로 마음으로 몸에 말을 걸어서, 새벽 몇 시 몇 분에 일어나고, 어디로 갈 적에도 스스로 때를 어림하도록 몸한테 맡겼다. 열한두 살부터 마흔다섯 언저리까지 시계 없이 새벽에 일어나고픈 때에 마음대로 일어난다. 새벽 네 시이든 밤 세 시이든 몸이 잘 맞추어서 움직인다. 이러면서 살림을 돌아본다. 우리는 손목시계나 울림시계가 있어야 아침이나 새벽에 잘 일어나지는 않으리라. 옛사람은 시계 없이 바람, 볕, 물, 소리, 풀, 새, 풀벌레, 별, 하늘 들을 살펴서 때를 읽었다. 오늘사람도 누구나 이 여러 숲님을 헤아려 때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91. 몸에 맞는 옷



몸에 맞는 옷을 찾기는 쉬울까? 어쩌면 쉽다. 그러나 마흔 살에 이르도록 ‘내 몸에 맞는 옷이란 뭐지?’ 하고 헤맬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다른 누가 ‘쉰이나 예순 나이에 짧은치마를 입는다’며 손가락질을 하거나 흉을 본다. 그러나 쉰이나 예순 나이에 이르러 비로소 ‘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았기에 그 나이에 짧은치마를 입을 수 있다. 이이가 할머니이든 할아버지이든 말이지. 스스로 찾은 제 몸이 기뻐서 다른 사람 눈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몸을 누릴’ 수 있다면, 이이는 다른 사람 눈치가 아닌 제 마음길하고 마음속하고 마음결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새롭게 걷는 배움길이 된다. 제 몸에 맞는 옷이 아닌, 다른 사람 눈치에 따라서 맞춘 옷이라면, ‘우리 몸이 아닌 다른 사람 눈에 맞춘 옷’이라면, 이런 옷이 우리한테 좋을까? 기쁠까? 알맞을까? 아름다울까? 사랑스러울까? 아마 겉보기로는 멋져 보일 수 있겠지. 그래서 ‘그럴싸하다·그럴듯하다’ 같은 낱말이 있다. 겉보기로는 멋진 듯하지만 속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걸쳤다는 뜻이다. 우리 몸에 맞는 옷은 스스로 헤매면서 찾는다. 누구는 다섯 살부터 찾을 테고, 누구는 쉰 살에 이르러 찾는다. 또 누구는 백 살에 이르러 찾을 텐데, 백쉰 살이 되어도 그만 못 찾을 수 있다. 헤매는 길은 어렵거나 아프거나 고되지 않다. 헤매면서 길을 찾으니, 길을 찾은 뒤에 지을 엄청난 웃음꽃을 생각하면서 우리 옷을, 우리 몸을, 우리 마음을 찾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90. 알려준다



몰라서 묻는 사람한테 알려주려면 어떻게 할까? 한 마디를 들려주면 척 하고 받아들여서 알까? 아마 모르리라. 모르니까 한 마디로는 모자라고, 모른 채 있고 싶지 않아 ‘알려주는 사람’이 더 품하고 말미를 내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몰라서 묻기에 더 묻고 싶으며, 자꾸 묻고 싶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말을 훨씬 오래 길게 꾸준히 듣고 싶다. 말해 주는 사람 곁에 더 머물면서 품하고 말미를 나누고 싶다. 이리하여 알려주는 사람은 알고 싶은 사람한테 품하고 말미를 내어줄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품하고 말미를 쓰는 얼거리를 바로 헤아려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 이곳에서 우리 아이한테이든 이웃 아이한테이든 알려주는 사람은, ‘알려주는 어른이나 어버이로 자라기’까지 숱한 이웃이나 동무나 어른한테서 ‘품하고 말미를 나누어 받아’서 무럭무럭 배움길을 걸을 수 있었으니까. 그동안 받은 배움사랑을 오늘 여기에서 여러 아이나 이웃이나 벗한테 알려주면서 품하고 말미를 즐겁게 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189. 숨



새벽에 일어나서 숨을 쉰다. 맨발로 마당에 선다. 맨발로 땅을 디디면 땅에서 무언가 나한테 올라온다. 팔을 하늘로 뻗으면 하늘에서 무언가 나한테 내려온다. 어릴 적부터 맨발로 뛰놀 적에 훨씬 신나고 기운난다고 느꼈는데,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맨발차림보다는 신을 꿴 차림이 익숙하다. 그러나 옛사람 자취를 보면, 옛사람은 어른이어도 일하거나 쉴 적에 으레 맨발이었다. 우리는 맨발살림을 잊고 맨손살림을 잃으면서 몸이 차츰 무거워졌을 수 있다. 숨을 쉰다. 하늘을 쉬고 땅을 쉰다. 바람을 들이켠다. 하늘을, 풀잎을 스치는 바람을, 구름이 흐르는 하늘을,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내 몸을 드나드는 소리를 모두 마신다. 이 숨을 마시면서 이곳에 있으니, 저 숨을 마실 적에는, 그러니까 저 먼 별에 흐르는 숨을 마실 수 있을 적에는 별마실을 다녀오려나. 새벽을 지나 아침에 이르는 바람결이 곱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