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꽃

숲집놀이터 241. 쀼루퉁



해마다 삼월이면 우리한테 그날이 돌아온다. 바로 ‘의무교육 입학유예 신청서’를 쓰는 그날. 이날은 두 아이가 싫어도 학교에 가서 서류를 읽어야 하고, 서류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작은아이는 “난 학교 싫어. 그렇지만 아버지랑 같이 가면 좋아.” 하고 조잘조잘 노래를 부르고, 큰아이는 암말 없이 쀼류퉁한 얼굴이다. 누가 보아도 얼마나 싫고 못마땅하고 짜증나고 성나고 골나고 부아나고 …… 온갖 말을 다 갖다붙일 수 있을 만큼 식식거리는 낯이다. 면소재지 초등학교 샘님은 웃는 낯으로 큰아이한테 말을 걸지만, 큰아이는 한마디 대꾸조차 없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얘야, 아버지가 학교에 너희를 데려오기 앞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지 못했구나, 아버지가 잘못했네. “사름벼리 어린이, 온누리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단다. 모두 우리가 겪으면서 배우는 일이야. 쀼루퉁한 마음이 되어 그 기운이 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면 둘레에 다른 사람은 다 아무렇지 않아. 뿌루퉁낯인 사름벼리 어린이 너 혼자만 속이 불타면서 까맣게 타버린단다. 자, 종이 하나를 줄게. 여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네 마음을 글로 옮기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든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우리가 마음으로 바꾸면 돼. 우리 보금자리만 꽃터로 가꿀 수 없어. 우리가 발을 디디고 바라보는 모든 곳이 꽃터요 숲터가 되도록 가만히 바라보면서 우리 꿈을 바라보면 어떻겠니?” 사름벼리 어린이는 20분쯤 지나고서야 얼굴을 천천히 풀면서 종이두루미 하나를 접는다. 고마워.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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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꽃

숲집놀이터 240. 네가 해봐



어제 낮 무렵 우리 집 가스가 떨어진 듯하다. 그때에 나는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웠고,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버너를 꺼내어 국을 데워 놓았다. 마침 일요일이었기에 면소재지 가게로 자전거를 달려서 버너 하나를 얻었다. 면소재지 가게에서 이모저모 사면 덤종이를 주는데, 덤종이 예순 자락을 모으면 버너 하나를 준다. 집가스가 떨어지고서야 버너를 하나 바꾸어서 들인다. 이러고서 맞이한 아침에 가스집에 전화를 넣었고, 나는 아침 일찍 바깥일을 하러 나서야 하느라 이래저래 짐을 꾸리는데, 가스집 일꾼이 오셨네. 작은아이가 “아버지, 가스 왔어!” 하고 외친다. “응, 그래. 그런데 아버지는 짐 챙겨야 해서 못 움직이네. 네가 해봐.” “네!” 열 살 어린이는 가스집 일꾼이 새 가스통을 놓는 모습을 지켜보고 가스값을 건네고 “고맙습니다!” 하고 절까지 마친다. 훌륭하지. 너희도 다 할 수 있어. 아무것도 아니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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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배움꽃

숲집놀이터 239. 말을 깎다



아이가 홀가분하게 하는 말을 깎는 어른이 꽤 있더라. 어떻게 저 아이가 저런 생각을 함부로 하느냐고 꾸짖으려는 어른이 제법 있더라. 왜? 어른들은 저 아이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저 아이 같은 생각을 마음껏 쏟아내기도 하는데, 왜 저 아이는 저 아이 나름대로 생각한 이야기를 펴면 안 되지? 게다가 왜 어른들은 하나같이 저 아이한테 “말을 깎아”서 쓸까? 아이가 몸나이로는 어려 보이니 함부로 말을 놓아도 될까? 어른들은 몸나이가 많아 보이니 아이가 언제나 어른들한테 높임말을 사근사근 써야 할까? 우리는 겉말을 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속사랑을 나눌 때이다. 우리는 겉치레를 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속살림을 지을 때이다. 어른한테 생각이 있어 말하고 싶은 때가 있다면, 아이한테도 생각이 있으며 말하고 싶은 때가 있다. 아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겉몸이나 겉나이 아닌 슬기로운 어른이 될 수 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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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33. 한때



어찌 보면 아주 짧게 지나가는 값진 한때이지 싶다. 아니 언제나 아주 짧게 지나가는 아름다운 한때로구나 싶다. 미처 못 깨달은 나머지 어수룩하게 보낸 한때여도 좋다. 제대로 바라보고서 찬찬히 이야기를 들려주고서 빠르게 지나간 한때여도 좋다. 다만 한때일 뿐이다. 잘하건 잘못하건 한때이다. 이 모든 한때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차분히 맞아들이면 되는구나 싶다. 아이 곁에 앉아서 말을 섞는다. 어제 한때에 너희가 참 멋지더구나 하고. 오늘 한때에 아버지도 제법 멋지네 하고. 우리는 어느 날에는 참 엉성하기도 하지만, 어느 날에는 참으로 눈부시기도 하다. 이래서 나무라거나 저래서 부추겨야 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때에는 이런 하루를 물끄러미 보면서 살며시 토닥이면 되네. 저때에는 저런 나날을 말끄라미 보면서 살가이 쓰담쓰담하면 되더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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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38. 어떤 동무



‘졸업장 학교’ 아닌 ‘우리 집 학교’를 다니면서 마음껏 노는 우리 아이들을 마주하는 이웃 어른은 으레 “아이가 자랄수록 또래 동무를 바랄 텐데?” 하고 걱정을 한다. 걱정할 수도 있겠으나, 또래 동무가 많은 곳에 있대서 아이들이 동무를 잘 사귀면서 “사회성이 안 떨어진다”고는 조금도 안 느낀다. 졸업장 학교만 보면 쉽게 안다. 졸업장 학교를 다니는데 “사회성이 매우 떨어져”서 또래뿐 아니라 이웃을 괴롭히는 막짓을 일삼는 아이가 꽤 있다. 어느 학교를 다니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큰 터전이 있다. 바로 “어떤 집”에서 “어떤 사랑하고 살림”을 누리느냐이다. 따사로운 보금자리에서 따사로운 사랑을 누리면서 따사로운 살림을 스스로 익히는 아이라면,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마주하더라도 따스한 숨결을 나눈다. 더구나 ‘우리 집 학교’를 다닌대서 집에만 있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늘 여기저기 같이 돌아다닐 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숱한 사람을 마주한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은 늘 숱한 사람을 곳곳에서 마주하니, ‘사회성’이란 늘 몸으로 보고 부대끼며 배운다. 왜 졸업장 학교에서만 사회성을 배워야 하지? 졸업장 학교에 다니며 또래 동무를 만나야 한다고 여기는 어른들 길들여진 틀이 오히려 아이들이 사회성을 모르거나 멀리하도록 짓누른다고 느낀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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