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17. 처음부터



네 사람이 함께 마실길에 오른다. 아침 일찍 이리저리 짐을 챙겨서 나온다. 빠뜨린 것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피며 다시 살피고서야 집을 나선다. 끌짐을 둘 이끌고 나오는데, 마을 앞으로 시골버스가 지나간다. 오늘 따라 시골버스가 마을 앞을 일찍 지나가네. 코앞에서 버스를 놓쳤으니, 읍내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자면 택시를 불러야 한다. 택시를 부른다. 마을 어귀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처음부터 택시를 불렀으면 어떠했을까? 읍내에서 고속버스 탈 때를 맞추어 느긋하게 택시를 탄다면 어떠했을까? 네 사람이 움직이는 길이니, 집부터 읍내까지 이런저런 짐을 꾸려 택시로 움직여도 좋다. 큰짐을 끌고서 시골버스를 타면 버스 일꾼이 좀 거칠게 모느라 짐을 붙잡느라 바쁘기도 하겠지. 어떤 일을 하자면 처음부터 틀을 잘 짤 노릇이다. 코앞에서 한 가지 일이 어긋난 뜻이 있으리라. 이 뜻을 잘 새기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6. 보여준 다음



우리 집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늘 느끼는데, 아무리 멋진 동영상이나 영화를 보아도 아이들이 곧바로 다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아이도 어른도 마음에 남는 몇 가지만 저마다 ‘마음대로’ 되새긴다. 모든 줄거리를 꿰지 못하기 일쑤이고, 줄거리마다 어떤 뜻이 흐르는가도 낱낱이 읽어낸다고 여길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동영상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한걸음만으로는 다 알거나 배우지 못한다. 두걸음 세걸음뿐 아니라 열걸음 온걸음을 떼어야겠지. 자잘한 심부름도 이와 같으리라. 글씨를 익혀 반듯하게 쓴다든지, 숫자를 똑똑히 헤아리면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에 이어 더 깊고 너른 셈길을 익힐 적에도 숱하게 다시 하고 거듭 해야 한다. 한걸음을 보여준다고 해서 다 배울 수 없다면, 두걸음 세걸음일 적에도 늘 한걸음을 보여주듯이 상냥하면서 즐거워야지 싶다. 무엇을 잘 해내거나 똑바로 맞추어야 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을 하는 길에서 어떤 몸짓이랑 눈빛이랑 말결로 마주하느냐를 돌아봐야지 싶다. 보여주기로 끝날 수 없다. 보여주고서 그 일이 곁에서 눈앞에서 벌어질 적에 어떻게 마주하느냐를 살펴야겠지. 애벌읽기로 책을 다 알아낼까? 세벌 네벌 열벌로도 모자라다. 스무벌이나 서른벌로도 모자라다. 그래 온삶으로 해야 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5. 모시지 마라



나는 스승을 모시지 않는다. 스승을 모셔야 할 까닭이 없다고 여긴다. 누가 나를 스승으로 삼아 모시고 싶다고 말하면 이때에 똑똑히 자른다.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면, 이제부터 나를 보시지 말라고. 한 마디를 덧붙여, 나를 보시고 싶으면 모시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시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시다 보면 놓치거나 잊는 대목이 많다. 우리 곁에 어른을 모시는 삶이 된다면 그만 배움길이 멈추기 일쑤이다. 모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시지 않을 수 있다면 볼 수 있다. 좋은 모습도 궂은 대목도 모두 볼 수 있지. 볼 수 있을 적에는 잘잘못을 가리는 마음이 아닌, 온삶을 고스란히 배우는 숨결이 된다. 곁에 어른 한 분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고 바라보고 살펴보면서 우리 갈 길을 새로 배운다고 할 만하다. 보아야 한다. 모시지 말아야 한다. 사진기를 모시지 말고, 사진기를 마음껏 다루어야 한다. 돈을 집안이나 계좌에 모시지 말고, 이 돈으로 기쁘게 배움길을 나서고 나눔길에도 펴며 살림길을 널리 지을 노릇이라고 느낀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3. 넘어졌네



넘어졌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넘어져서 아프다는 생각으로 무릎을 붙잡으면 될까? 넘어진 뒤이니, 이제 이 넘어진 곳이 새롭게 나으면서 한결 튼튼해지자는 생각을 하면 될까? 넘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아프다고 끙끙 앓을 수 있어. 네가 그 길을 바라면 그리 가렴. 그러나 우리는 얼마든지 새롭게 나아갈 수 있어. 밥을 먹은 뒤에 즐겁게 똥을 누지. 땀을 쪽 뺀 뒤에는 시원하게 씻지. 한창 뛰놀고 나서 느긋하게 잠을 자. 넘어져서 다쳤구나,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 이렇게 넘어질 적에는 다치기도 하니까, 다친 뒤에 어떻게 스스로 다스리면 될는지를 생각해 보렴. 다음에 비슷한 일을 맞닥뜨릴 적에 스스로 튼튼하면서 기운찬 몸짓이 되려면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지를 헤아리렴.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집놀이터 214. 물맛



여러 달 동안 우리 집 아닌 다른 집에 머무는, 우리 고장 아닌 다른 고장을 다니는, 마실을 다녔다. 마실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 작은아이가 불쑥 묻는다. “아버지, 수돗물은 다 이렇게 안 차가워? 우리 골짜기 물이나 우리 집 물은 덜덜 얼 만큼 차갑잖아. 마을 빨래터 물도 그렇고.” 작은아이가 묻는 말을 가만히 머리에 띄운다. 물맛하고 물결하고 물내음을 헤아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물기운이 왜 그러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집이나 마을 빨래터나 뒷자락 골짜기에는 ‘흐르는 물’이야. 흐르는 물은 늘 차갑다 싶도록 시원해. 그러나 수돗물은 안 흐르는 물이야. 안 흐르는 물은 고인 물이지. 고인 물은 시원할 수 없어. 오랫동안 갇혔다가 흐르니 죽은 물이기도 해.” 내가 작은아이만큼 어릴 적에도 우리 어버이나 둘레 어른한테 물결이 궁금해서 여쭌 적이 있을 텐데, 그때 나한테 물맛이나 물기운이 왜 다른가를 제대로 밝혀서 알려준 분이 없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도시라는 곳에서 꽤 오래 살며 스스로 물맛을 알아내야 했구나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