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222. 토막말



진주 어느 밥집에 들어온 아저씨 손님이 아줌마 가게지기한테 토막말을 쓴다. 거꾸로 생각해 본다. 아줌마 손님이 아저씨 가게지기한테 토막말을 쓰는 일이 있을까? 오늘 한국에서 이런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가? 아저씨들은 무슨 생각으로 아줌마한테 토막말을 쓸까? 이런 아저씨라면 어린이 앞에서 대놓고 토막말만 쓸 테고, 오직 나이하고 성별만으로 사람을 가르는 길을 걸을 테지. 어쩌면 이 아저씨는 어릴 적부터 둘레 이웃한테 어떤 말씨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못 배웠을 수 있다. 사내는 아무 때나 어느 자리나 토막말을 해도 된다고 배웠을 수 있다. 온말이 아닌 토막을 치는 말로 어떤 사랑이나 슬기를 펼 만할는지 모를 노릇이다. 온말을 써야만 사랑이나 슬기를 펴지는 않겠지만, 말을 오롯이 헤아리면서 살리는 몸짓은 토막삶이나 토막넋이 아닌 온삶이나 온넋으로 나아가는 첫발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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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1. 묵으면



묵은짓은 새길을 가로막는다. 묵은말은 새꿈을 가로막는다. 묵은길은 새살림을 가로막는다. 아이들한테 이야기한다. 우리 말이야, 묵은것을 내려놓아야 즐거운 길을 새롭게 갈 수 있어. 묵은짓을 자꾸 하면 그 몸짓에 길들어 그만 새길을 못 배운단다. 우리 말야, 새롭게 웃고 배우면 어떨까? 우리 말이지, 늘 하느라 몸에 밴 버릇을 가만히 털어내어 언제나 눈부시게 거듭나는 나비 날갯짓을 배우면 어떨까? 아이하고 함께 새로 태어나자면 어버이부터 묵은말을 내려놓을 노릇이겠지요. 묵은낯빛도 씻어내고 묵은소리도 지우면서, 새말 새낯빛 새소리로 노래하는 하루를 열어야겠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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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20. 꿈 아닌 길



아이들하고 밤이랑 낮에 꿈을 꾸자고 이야기한다. 밤에는 밤잠을 누리는 꿈을, 낮에는 낮잠을 즐기는 꿈을 꾸자고 한다. 꿈을 꿀 적에는 몸을 고이 쉬면서 온몸에 새로운 숨결이 돌도록 하늘빛처럼 파랗게 거미줄처럼 튼튼하며 싱그럽게 빛을 고요히 그려 보자고 이야기한다. 하루에 밤이랑 낮에 한걸음씩 꿈꾸기를 하고 나서는 길을 짓자고 이야기한다. 우리 삶길을 생각길을 살림길을 노래길을 사랑길을 슬기로우면서 재미나게 짓자고 이야기한다. 아이들하고 ‘장래희망’이나 ‘미래직업’을 살피지는 않는다. 나 스스로도 이런 두 가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버이인 나부터 스스로 내 삶길을 신나면서 당차게 걸으려 한다. 스스로 튼튼한 몸이 되고 싱그러운 마음이 되어 삶을 짓는 길을 뚜벅뚜벅 상냥히 걸으려 한다. 이렇게 우리 길을 걸으면 우리 보금자리에 새롭게 빛나는 길을 우리 두 다리로 열 만하겠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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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9. 가리다



오늘날 우리 둘레에는 참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이 넘치지 싶다. 그러나 이렇게 넘치는 것 가운데 무엇이 우리 살림을 북돋우거나 살찌우거나 사랑할 만할까? 어마어마하게 넘치지만, 정작 알뜰히 누리거나 받아들일 만한 것은 드물지 않을까? 우리를 망가뜨리거나 무너뜨리거나 흔드는 것이 잔뜩 생겨서, 우리 스스로 살림을 짓고 배움길을 나누는 자리를 가로막지는 않을까? ‘골라서 살’ 것이 넘치는 듯이 보이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사랑스러울까? ‘돈이 있으면 골라서 살’ 것이 잔뜩 있다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즐거울까? 땅을, 별을, 물을, 바람을, 숲을, 푸나무를, 우리 목숨을 돌보거나 아끼려는 마음이 깃든 것은 오늘날 얼마나 될까? 가려야 한다. 편식이 아닌 가려야 한다. 넘치는 것 사이에서 삶을 사랑하는 길을 스스로 찾도록 가려내야 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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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218. 요일



우리는 요일에 맞추어 움직이지 않는다. 날마다 하늘결을 살펴서 움직인다. 다만 우체국에 가거나 읍내나 도시로 바깥일을 다녀와야 할 적에는 요일을 따져야 한다. 우리한테는 주말이나 휴일이란 이름이 따로 없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그리는 살림이 있고, 하는 일이 있으며, 즐기는 놀이가 있다. 어느 요일이라서 이렇게 해야 할 까닭이 없다. 가만히 보면 달력에 적힌 날이란 부질없다. 우리는 텔레비전 없이 얼마든지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달력 없이도 살 만하지 않은가? 졸업장학교나 공공기관 같은 사회 얼거리에서는 달력이며 요일을 따져야겠지만, 삶으로 본다면 요일이나 달력이란 없어도 된다. 우리는 달력을 너무 가까이하면서 철을 잊을 수 있다. 철을 잊으니 달도 날도 어떤 하늘결인가를 잃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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