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놀이터 103. 하루하루


  하루가 흘러서 하루가 온다. 하루가 지나면서 살림이 쌓인다. 하루가 저물고 다시 하루가 찾아들면서 이야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어제 하루는 어떤 삶이고 살림이었으며 이야기인가를 돌아본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에는 이 하루를 어떻게 지을까 하고 생각한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 무렵에는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또 하루를 맞이하려 하는가를 되새긴다. 아무것도 아닌 하루가 없다. 온 하루는 언제나 모든 것이 된다. 지나간 하루를 아쉬워할 까닭은 없다. 새로운 하루를 누리면서 즐겁게 이야기꽃과 살림꽃을 가꿀 수 있으면 된다. 함께 빚은 우리 달력에 우리 하루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으면서 하루마다 어느 만큼 거듭나는 몸짓인가를 돌아본다. 2016.6.18.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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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남 보성군 벌교중학교 푸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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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즐겁게 하는 일



  ‘직업’이라는 낱말은 “먹고살려고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직장’이라는 낱말은 “먹고살려고 일을 하는 곳”을 가리키고요. 직업이나 직장이 있다면, 먹고사는 일을 한다는 뜻이 될 만합니다. ‘일’이라는 낱말은 “먹고살려고 하는 모든 몸짓”도 가리키지만, “스스로 이루려 하는 모든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직업’은 “먹고사는 데”에서 그치는 낱말이지만, ‘일’은 “살아가는 자리”를 두루 헤아리는 낱말입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나날은 고스란히 ‘일’이기 때문입니다. ‘놀이’를 놓고도 “노는 일”이라고 해요. 밥을 먹을 적에도 “밥 먹는 일”이 되고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일”이 되고, 글을 한 줄 쓰면 “글 쓰는 일”이 됩니다.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비질을 해도 ‘일’이고, 두 다리로 걷거나 버스를 타도 ‘일’이에요. 우리가 보여주는 모든 몸짓은 언제나 ‘일’이 됩니다.


  ‘직업’이 있기를 바란다면 먼저 이 대목을 찬찬히 헤아려 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나서 “먹고사는 일”을 하는 일은 틀림없이 뜻이 있을 텐데, “먹고사는 일”만 하려는지, 스스로 어떤 꿈을 마음속에 지어서 이 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려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지 싶습니다.


  ‘일’은 남이 시켜서 할 수 없습니다. 남이 시켜서 그대로 따르는 몸짓이라면 ‘심부름’입니다. 그런데 퍽 많은 어른들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일’보다는 남이 시키는 ‘심부름’을 하기 일쑤입니다. 어떤 직업이 있으면서 직장을 다닐 적에는 ‘남이 바라는 일’을 해 주기 마련이거든요. 청소년이 하는 알바도 어느 모로 본다면 남이 시키는 일인 심부름이기 일쑤입니다. 나 스스로 좋아해서 즐겁게 배우려고 하는 일이기보다는 돈을 벌려고 하는 심부름이기 일쑤이지요.


  돈을 벌려고 하는 심부름이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심부름을 맡은 뒤에 얻는 돈으로 나 스스로 바라는 어떤 것을 장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이 대목에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지요. 남이 시키는 일만 하면서 돈을 얻는 삶이나 살림이 얼마나 즐거운가를 생각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얻는 삶이나 살림은 될 수 없는가 하고 생각할 노릇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 일’을 풀 수 있다면, 돈에 얼마나 얽매여야 하는가를 생각할 수 있을 테고요.


  우리가 손수 집을 짓고, 손수 옷을 지으며, 손수 밥을 짓는다면, 우리한테는 돈이 얼마나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손수 땅을 일구고 숲을 가꾸어서, 나무를 얻고 나물과 고기를 얻으며 실과 바늘을 얻는다면, 우리는 돈을 얼마나 벌어야 할까요? 자급자족을 하는 삶이나 살림이라면 우리는 돈을 얼마나 벌어서 얼마나 써야 할까요?


  숫자로 따지는 돈을 많이 버는 삶이 나한테 어떤 즐거움이 되는가를 생각하면서 일거리를 찾을 적에 몸이나 마음이 모두 홀가분하리라 봅니다. 숫자로 돈을 따지더라도 내 삶이나 살림을 즐겁게 건사할 만한 겨를이 어느 만큼 있는가를 함께 생각할 적에 언제나 한결같이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되리라 봅니다.


  저는 전남 고흥 시골에 머물면서 ‘한국말사전(국어사전)’을 짓는 일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인터넷과 컴퓨터라고 하는 것이 있기에, 굳이 도시에서 살지 않아도 이런 일을 시골에서 조용히 할 수 있습니다. 한결 느긋하게 삶터를 돌아보고, 한결 넉넉하게 보금자리를 생각하면서, 제 마음을 살찌우는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며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를 돈으로 벌어서 채우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를 버느라 막상 몸이나 마음이 너무 고단하고 만다면,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뜻이나 보람이나 사랑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도시로 가서 직업을 얻어야 성공”이라고 여기는 흐름이 대단히 짙은데, ‘성공’이라는 낱말은 “뜻을 이룸”을 가리켜요. 우리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뜻을 이룬다고 할 적에는, 참말로 스스로 하고픈 일을 바라는 꿈대로 이루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야만 가수이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럼없이 노래를 부르면서 웃는 사람이 가수이지 싶습니다. ‘프로’라는 이름이 붙는 운동선수가 되어도 성공 가운데 하나일 테지만, 프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스스로 즐겁게 공을 차거나 바둑을 두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누구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봅니다.


  날마다 먹는 밥은 ‘프로 요리사’나 ‘셰프’가 차려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늘 먹는 밥은 늘 사랑으로 따스하게 차리는 손길로 짓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하며, 새롭게 꿈꾸는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려고 하니까 하기 마련이고, 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하지 못하기 마련이라고 느낍니다. 남보다 나아 보이는 직업이 아닌, 내가 스스로 즐겁게 삶을 노래할 수 있는 신나는 일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이든 직업이든 아주 빨리 찾아내야 하지 않아요. 내가 마음속에 한결같이 품을 만한 꿈을 생각할 적에 내 일거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 이야기를 해 본다면, 저는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채 제 삶길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제 삶길을 걸어가는 일을 헤아리지 않고서 졸업장을 더 거머쥐어 본들 부질없다고 여겼습니다. 졸업장이 없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푸대접을 받거나 일거리를 못 쥐는 때도 꽤 있다고 할 만하지만, 졸업장이 있든 없든 저 스스로 마음에 담은 뜻이 있기 때문에, 제가 즐거우면서 홀가분하게 할 수 있는 일도 꽤 많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졸업장을 따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내 삶길을 즐겁게 갈고닦거나 가다듬는 데에 훨씬 힘을 쏟으면서 살아올 수 있었어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야 한다면 따면 돼요. 굳이 안 따야 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런 것에 얽매이지는 말아야지요. 온누리 모든 어머니는 ‘어머니 자격증’이 없어도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온누리 모든 농사꾼은 ‘농사꾼 자격증’이 없어도 아름다운 농사꾼입니다. 그런데 온누리 모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해서 모든 농사꾼이 슬기로운 사람(일꾼)일 수 있다면, 이분들은 모두 “언제나 새롭게 배우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땄다고 하더라도 배움을 멈추지 않을 때에 비로소 슬기로우면서 아름다울 수 있어요.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땄어도 배움을 멈춘다면 ‘삶이나 살림’을 바로 그때부터 멈춰 버립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지 않더라도 늘 새롭게 배우려는 마음이나 몸짓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내 ‘삶이나 살림’을 늘 새롭게 가꾸는 기쁜 웃음을 지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살면서 늘 새롭게 살림을 배우는 사랑을 싱그러이 살찌우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람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분은 ‘새롭게 배우는 사랑’을 그만 잊거나 잃었기 때문이지 싶어요. 어떤 일거리나 직업을 찾더라도, ‘늘 새롭게 배우는 사랑’을 벌교중학교 여러분이 마음으로 곱게 건사할 수 있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숲노래/최종규 .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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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102. 해 보기


  비질은 빗자루만 들어서 슥슥 쓸기만 하면 된다고 여길 만하다. 그런데, 이런 비질조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면 ‘쉽게 하는’ 일이 아니다. 구경해 보지도 않고, 지켜보지도 않으며, 소꿉놀이처럼 해 본 일이 없다면, 비질이나 걸레질도 ‘너무 어렵’거나 ‘서툰’ 일이 되기 마련이다. ‘그냥 쉽게 하는 사람’ 눈으로 바라보면서 아이한테 빗자루나 걸레를 맡기기만 한다면, 아이로서는 이래저래 스스로 해 보면서 배울 수도 있지만, 이때에는 배움이라기보다 다른 것이리라 느낀다. 배움이 되도록 하자면 아주 쉽다고 하는 일부터 즐겁게 놀면서 차근차근 해 보도록 이끌면서, ‘힘들면 쉬’고,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다시 해 보도록 북돋울 수 있어야지 싶다. 아이들은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우고, 어른들은 새롭게 가르치면서 배운다. 2016.5.15.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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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101. 풀내음



  나는 어릴 적에 풀밭에 드러눕기를 즐겼다. 내가 어릴 적에 나라에서는 ‘풀밭에 함부로 누우면 어떤 병원균이 옮는다’고 하면서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그렇지만 풀밭에는 들쥐뿐 아니라 수많은 벌레가 살고 지렁이가 산다. 풀밭에 드러누우면 병원균이 옮는다면, 시멘트나 아스팔트에 드러누우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풀밭이나 흙밭에조차 드러누울 수 없는 얄궂은 곳을 보금자리나 마을로 삼아서 지내는 셈일까? 큰아이가 감나무 곁 풀밭에 그냥 드러누워서 논다. 풀이 우거지기 앞서이니 꼭 알맞춤한 때에 드러눕는구나 싶다. 풀이 우거지면 낫으로 베어도 되고, 밭으로 일구려 할 즈음 뿌리까지 뽑을 수 있다. 풀밭에 누우면 풀내음을 맡고, 하늘숨을 쉰다. 풀밭에 누우면 흙을 새삼스레 느끼고, 햇볕하고 햇빛하고 햇살을 새롭게 받아들인다. 2016.5.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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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놀이터 100. 새롭게 바꾸기



  올해부터 우리 집을 또 새롭게 바꾸기로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이도록 살림을 지은 삶이 못 되었기에, 틈틈이 새로 배우면서 하나씩 바꾼다. 꾸준히 새롭게 깨닫고 익히면서 차근차근 바꾼다. 새로 바꾸려고 하는 몸짓은 ‘그동안 몸하고 마음에 익숙한 틀이나 버릇’을 내려놓고 새로운 꿈이나 사랑으로 가려고 하는 길이 될 만하다. 요즈음 들어서는 ‘플라스틱’을 집안에서 하나씩 치운다. 모든 플라스틱을 한꺼번에 치우지는 못한다. 냉장고 껍데기가 모두 플라스틱인데, 냉장고 없이 땅을 판 ‘밥곳간’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플라스틱을 차츰 치우다 보면 나중에 셈틀도 안 쓸 수 있을까? 그러나 ‘안 쓴다’기보다는 ‘우리가 쓸 것을 우리가 손수 짓자’는 생각이다. 우리가 누릴 삶은 우리가 손수 짓는 살림으로 채우자는 생각이다. 곁님은 애써 뜬 알록달록 예쁘고 재미난 뜨갯거리도 치우기로 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뜨갯거리를 이룬 실이 ‘털실’이나 ‘면실’이 아니라 ‘PP’인 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며칠에 걸쳐서 뜬 뜨갯거리도, 실꾸러미도 몽땅 거두어서 치운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한테는 새로운 것이 우리 손을 거쳐서 태어날 테니까. 2016.5.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집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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