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집놀이터 122. 부엌지기



  ‘부엌데기’나 ‘밥데기’라는 이름이 있다. 부엌에서 일하거나 밥을 짓는 사람을 얕잡는 이름이다. 부엌일이나 밥짓기가 나쁠 까닭이 없으나 이런 말을 꽤 옛날부터 쓴다. 부엌이 있어야 밥을 짓고, 밥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밥을 먹는데, ‘집밖일’을 우러르면서 집안일이나 가시내를 깔보는 셈이라 할 만하다. 나는 ‘-데기’라는 이름을 고쳐서 ‘부엌지기·밥지기’ 같은 새 이름을 써 본다. ‘살림꾼’도 ‘살림지기·살림님’처럼 새롭게 써 본다. 즐겁게 먹고 고맙게 먹으며 곱게 먹을 밥 한 그릇을 헤아리면서 부엌살림하고 밥살림을 우리 아이들하고 사랑스레 지으려 한다. 큰아이는 조금씩 부엌일에 가까워지고, 작은아이도 곧잘 부엌일을 거든다. 아주 작은 손길이지만 여러모로 보탬이 되는 심부름꾼, 때로는 ‘심부름지기’나 ‘심부름님’이 되어 준다. 나 스스로 ‘지기’나 ‘님’이 되면 아이들도 ‘지기’나 ‘님’이 된다. 찬찬히 살림을 지으며 물려준다. 나부터 새롭게 배우며 새삼스레 물려준다. 2016.10.2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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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21. 한가을에는



  나락이 무르익어 누렇게 빛나는 한가을. 이 한가을에 논둑을 거닐면 나락 내음이 고루 퍼지고, 샛노랗게 바래는 볏잎이 눈부시다. 열매랑 풀잎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금빛이 된다. 한가을에는 바로 이 논둑길을 달리면서 우리 놀이에 새로운 기쁨을 살짝 얹는다. 생각해 보면 걷기만 해도 재미있고 달리기만 해도 신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즐겁고 하늘바라기를 하며 구름이나 별을 느낄 적에도 아름답구나 하고 느낀다. 철을 살펴 철놀이를 하나둘 짓는 동안 어느새 철노래를 부를 수 있는 철살림을 그린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도록 한가을에 논둑길에서 잡기놀이를 누린다. 2016.10.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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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20. 물소리



  숲에 들어 골짜기로 다가서면 어느새 쩌렁쩌렁 울리는 물소리를 듣는다. 물소리는 참 대단하지. 바다뿐 아니라 숲도 물소리는 참으로 크지. 며칠 동안 큰비가 내리며 골짝물이 불었고, 작은아이는 골짝물이 이렇게 붇기 앞서 늘 좋아하며 올라타던 바위가 물에 잠겼다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래, 그 바위는 네 돌이라고? 알았어. 네가 좋아해 주면 그 바위도 좋아하겠구나. 철철 넘치는 골짝물은 끝없이 흐르며 끝없이 노래를 부르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한가을에도 온몸을 담그면서 시원한 기운을 나누어 받는다. 우리는 바로 이 골짝물을 마시고, 이 골짝물이 스며드는 바닷물을 누리며, 이 골짝물로 싱그러운 숲에서 얻는 밥을 먹는다. 2016.10.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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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집놀이터 119. 바다 놀이터



  물결이 세게 치는 바다에 갔다. 물결이 높게 쳐도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 드센 물결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더 신나게 놀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 엎드려서 앉아서 서서 물결을 받으면서 데구르르 구르기도 하고 깔깔거리기도 한다. 시원스레 치는 물결을 받으면서 가을 더위는 말끔히 잊는다. 물결이 치면서 온갖 소리가 어우러진다. 물결이 들고 나면서 힘차고 시원한 노래가 퍼진다. 놀 수 있으니 놀이터이고, 놀이를 누리는 살림을 배운다.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에서 살림을 지을 수 있고, 살림을 즐거이 짓는 곳에서 보금자리를 이룬다. 자전거를 달려서 다녀올 만한 바다가 있으니 좋다. 2016.10.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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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10-03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창 다시 여신 기념으로~ ^^
이 사진 저는 참 좋네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사진이라서요.

숲노래 2016-10-04 04:21   좋아요 0 | URL
이날 물결이 엄청나게 쳐서 다들 바닷물에 뒹굴뒹굴 구르면서 실컷 놀았어요.
그리고 그만큼 옷에서 모래알 빼내느라 애먹었고요 ^^;;;
 

숲집놀이터 118. 새로운 철



  새로운 철로 접어든다. 해가 짧아지고 새벽이 늦게 찾아오며 밤이 일찍 깃든다. 낮에 부는 바람은 아직 시원하지만 해거름에 부는 바람은 서늘하다. 한낮에 구름이 짙게 깔리면 쌀쌀하구나 싶고, 조금이라도 구름 사이로 해가 비추면 나락은 반가워서 촤락촤락 한들거리면서 노랗게 익는다. 새롭게 찾아오는 철이고,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가 된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어제하고는 다른 새로운 길이며, 오늘 우리가 보고 듣고 배워서 마음에 담는 이야기도 늘 새로운 사랑이 된다. 2016.9.22.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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